베트남의 위치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위치한 가늘고 긴 S자형의나라로 북쪽으로는 중국, 서북으로는 라오스, 서남쪽은 캄보디아와 접해 있다. 면적은 우리나라(남북 포함)의 약 2배, 인구는 8,000만 명정도이다. 다민족국가로 인구의 약 90%가 칸족이 차지하고 있고 50여개 이상의 소수민족이 있다.
나라 모양이 긴 S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베트남인들은 자기 나라가 거꾸로 선 용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왼쪽의 그림 참고) 우리가 우리나라의 형상이 호랑이가 포효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다. 며칠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호치민에서 겪어본 베트남인들은 재주도 있고, 부지런하고,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어 이 민족이 정말 합심해서 일을 한다면 정말 용이 되어 하늘을 누빌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우리와 경제적 차이가 좀 있는 편이지만 그 반대가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 베트남의 역사
베트남은 중국과 프랑스, 일본 등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온 민족이다. 중국 당나라, 명나라,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와는 1858년에 다낭에 포격을 가하면서 개국을 강요하여 1862년에 프랑스와 협정을 맺고 메콩델타의 일부를 프랑스에 넘겨주었고, 1882년에는 프랑스가 하노이를 점령함으로써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자, 일본이 프랑스와 협정을 맺고 베트남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18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자 북부는 중국, 남부는 프랑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북부 베트남의 호치민은 프랑스 식민지주의에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프랑스군에 저항을 강화했다. 동시에 남부 베트남에서도 저항군이 공격을 시작했다. 끈질긴 북부 베트남의 공격에 프랑스는 미국에 의존하게 되고, 케네디 대통령은 본격적인 군사 개입을 결정하여 북부 베트남에 폭격을 시작했다.
이 기나긴 전쟁은 1975년 4월 30일에 종지부를 찍고 베트남 통일을 이루었다.
이렇게 베트남은 긴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고 독립된, 통일된 나라를 일으킨 지 채 30년이 되지 않는다. 아직 공산주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호치민이 주는 느낌은 더 이상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의 물결이 넘치고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 과일 이야기
베트남에서 먹어본 과일 중에 입맛에 맞는 과일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베트남은 말 그대로 과일의 천국이다. 이런 기회에 과일을 이가 시리도록 실컷 먹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다.
타인롱-선인장 열매로 붉은 색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이 나오는데 검정깨 같은 작은 씨가 박혀 있다. 씹으면 아싹아싹하면서 씨가 씹힌다.
난 - 일명 용의 눈이라 해서 많이 먹으면 눈이 밝아진단다.
랑브탄 - 성게처럼 빨간 털로 싸인 껍질을 벗기면 반투명한 달콤한 살이 나온다.
망고 - 남국 과일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과일이다. 먹어본 과일 중에 가장 맛이 있다. 이 망고 즙을 갈아 얼음에 채워 먹는 음료를 신또 망고라 한다. 쉽게 생각해 망고 세이프를 생각하면 된다.
● 베트남의 글자
베트남의 글자는 쿠오크구(국어)로 프랑스 선교사가 만든 로마자 표기어다. 길거리의 모든 간판이 이렇게 되어 있어 읽을 수가 없으니 답답할 때가 많다.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사용하던 한자는 이제는 특수한 교육을 받은 사람 외에는 읽을 수 없는 언어가 되어 버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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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는 용 - 베트남(호치민)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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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날/
베트남 여행의 친절한 안내자 - 사오마이 호텔 2001.8.16(목)
● 익숙하면서도 낯선 땅 - 베트남
베트남 여행이다. 베트남이란 말보다는 월남이란 말이 더 익숙한 곳. 월남전, 고엽제, 말라버린 밀림, 공산주의, 베트콩, 맹호부대 그리고 더위. 이러한 낱말만이 떠오르는 곳인 베트남을 간다. 솔직히 기대와 함께 불안감도 떨치기 어렵다.
국제인천공항도 처음이고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보는 것도 처음이다. 그래선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저녁 8시 아시아나(OZ301) 항공편인데 무슨 일인지 1시간 늦게 출발한다. 외국인들도 많이 이용할텐데 이렇게 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될까 하는 불만이 터져나올 무렵 비행기가 공항을 이륙한다. 도착 시간은 12:01. 물론 베트남 시간이니까 우리 시간으로는 새벽 2시가 되는 셈이다. 베트남 까지는 약 5시간이 걸린다.
호치민에 있는 탄손누트 공항에 내리니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어두운 공간, 그리고 몰려 있는 인파들, 왁자하게 시끄러운 분위기.. 비행기 안에서 참았던 담배를 공항 밖에 나가 한 대 피우고 싶어도 그 사람들의 무리가 마음에 걸려 선뜻 거리에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비를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자니 우리가 묵을 사오마이 호텔의 사장이 마중 나와 있다. 호텔까지는 차로 약 10분 거리.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SAO MAI2 HOTEL (sao는 별(star), mai는 내일이란 뜻으로 새벽별, 샛별). 호텔이라기보다는 가정집에 온 느낌이다. 방을 배정받아 들어가니 70년대로 되돌아온 듯한 느낌을 준다. 침대 하나, 욕실(공간이 작아 샤워를 하려면 변기에 바로 붙어서 해야한다), 선풍기, 냉장고, 옷장 하나, 높다란 천장에 푸른색 페인트, 곰팡이가 쓰는 듯한 이상한 냄새, 옛날 영화에서 보던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 쓰던 그런 방이다. 그런대로 운치를 느끼며 샤워를 한 뒤 잠에 들었다.
베트남에는 여행이 자유화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깨끗한 호텔이 그렇게 많지 않다. 몰려드는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옛날 건물을 개조하고 수리해서 사용한다. 호텔에 들어갈 때는 에어컨이 있느냐, 냉장고가 있느냐에 따라 등급이가 요금이 다르게 적용된다. 우리가 묵었던 사오마이 호텔도 가정집과 같은 형태이지만, 시설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2001.8.17(금)
● 오트바이의 행렬
어디서 테니스 치는 경쾌한 소리에 잠을 깨니 벌써 아침이다. 창문을 열고 나오니 바로 옆에 테니스 코드가 있다. 새벽인데도 남자들이 나와 열심히 라켓을 휘두르고 있다. 고급 공산당원들만 이용하는 곳이란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새벽이어선지 날씨도 그리 덥지 않고 상쾌하다. 대충 샤워만 하고 호텔을 나섰다. 도로변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 시클로(자전거), 오트바이 등이 길가에 늘어서 있다가 나를 보더니 무조건 타란다. 도로로 나오니 이건 도로가 아니라 오트바이의 거대한 물결이 나를 덮쳐온다. 신호가 바뀌자 말자 수백 대의 오트바이가 서로 앞다투어 질주해 오는데 어지러울 정도다. '과일 바구니에 담겨 있던 과일이 와르르 쏟아지듯(김홍배 표현)'. 그런 와중에도 좌회전 차와 직진 차들이 뒤엉켜 곧 부딪칠 듯 부딪칠 듯 하면서도 용케도 빠져나간다. 그 정신없는 가운데 과일을 가득 씻고 가던 자전거가 고장이 났는지 그 네거리 한 복판에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바퀴를 들여다보다, 과일을 담다 한다.그래도 클랙션을 누르는 사람도 없고 다들 알아서 잘도 비켜나간다. 무질서한 속에도 자기네들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는 모양이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조마조마해서 간이 콩알만해진다.
하얀색의 아오자이(아오는 윗도리, 자이는 길다라는 뜻)를 입은 여자가 긴 머리를 나풀대며 오트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입에 마스크나 수건을 얼굴에 걸치고 있다. 나중에 알아보니 매연 때문에 그렇단다. 베트남도 벌써 오트바이의 물결 때문에 공기가 그만큼 나빠졌나 싶으니 문명이란 물결의 폐해가 절실히 느껴진다.
호텔로 돌아오니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땅콩 죽이다. 어제 술을 마셨을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죽을 했단다. 호텔 주인이 한국 사람이라 나오는 반찬도 김치부터 전까지 한국식이다. 약간 양이 모자란 것 같기는 하지만 개운한 입맛으로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커피가 나온다. 베트남은 커피의 주 생산국이다보니 커피가 많이 보급되어 있다. 그런데 커피 메이커가 특이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알루미늄 필터를 사용한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커피를 갈 때 알맹이가 약간 굵게 엉성하게 갈아야 한단다. 커피를 걸르고 나니 컵에는 약간의 찌꺼기도 남아 있다. 맛은 부드럽고 순하다. 자판기 커피에 익은 우리의 입에는 약간 싱겁다는 느낌이 돌지만 먹고 나니 입안에 남아 있는 향이 그윽하니 좋다.
첫날 여행지는 구찌터널이다. 킴까페(kim cafe)를 이용해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카페는 술집이 아니고 미니여행사를 말한다. 여러 가지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가격도 싸고 영어를 하는 가이드가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단다. 구찌 터널행은 1인당 9$. 벌써 외국인들이 버스에 가득 타 있다. 버스는 거의가 한국에서 수입된 차다. 옆에 앉은 여자는 스웨덴에서 왔단다. 동양인은 일본인 6명, 가족으로 보이는 월남인 4명, 우리 일행 11명, 그리곤 모두 서양인들이다.
● 월남의 신흥 종교 - 카오다이 교
구찌 터널에 이르기 전에 먼저 타이닝 시부터 들렀다. 호치민에서 서북쪽으로 100Km 남짓한 곳에 있는 도시인데 9시에 출발해서 도착하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100km를 오는데 2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평균 시속이 40km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기어오다 시피 한다. 길을 덮치는 오트바이 행렬, 차선도 없고 인도도 없는 길을 오트바이와 사람을 피하다보니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도로는 포장은 되어 있지만 울퉁불퉁하고 길 가운데에만 포장이 되어 있어 오트바이, 자전거 행렬 할 것 없이 모두 포장된 길로만 가려고 파고 들어오니 서로 엉켜 차가 속도를 내지를 못한다.
타이닝에는 베트남의 신흥종교인 카오다이교 본부가 있는데, 예배 시간 전에 도착해야 신전의 내부도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예배가 시작된 뒤다.
카오다이 신전은 월남의 토속신에다가 카톨릭, 불교, 유교, 힌두교 등 여러 종교에서 장점만을 따와 새로 만든 베트남에만 있는 독특한 종교다. 그래서 인지 건물도 여러 종교적 건물의 특징들만 따와서 지었다. 첫눈에 바라보아도 낯이 익으면서도 어딘지 낯선 묘한 기분을 주는 건물이다. 가이드는 스물 두어살 먹은 청년인데 억양이 아주 특이한 영어를 사용한다. 혀를 얼마나 굴려서 발음을 하는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위해 애를 쓰다가 나중에는 포기해 버렸다. 사실 포기하고 나니 얼마나 배짱이 편하든지...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건물 안은 아주 경건한 분위기이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앉아 연주되는 음악에 맞추어 절을 하고 있다. 2층에 올라가니 연주실이 있고 거기에 여자들이 여러가지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기둥과 벽은 용과 요란한 문양으로 아주 화려하게 장식을 했고, 천정에는 하늘을 상징하듯 별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창문과 정면에 커다란 눈을 그려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천안(天眼)으로 카오다이 신전을 상징하는 것이란다.
구경을 마치고 나와 사진을 찍는데 비가 뿌린다. 순식간에 옷은 비에 폭 젖어버린다. 그 와중에도 한 외국인 부부는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버스에 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괜히 비를 피해 버스에 달랑 올라와버린 우리가 머슥해진다.
여기에서 30분만 가면 캄보디아에 이른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식당에 들렀다. 한 테이블에 네 명이 앉아 머리를 맞대다가 이름도 낯설고 음식 맛을 알 수가 없어 몰라 대충 볶음밥과 닭고기를 시켰다. 가격은 대충 15,000동(1500원) 정도다. 배가 고프던 차라 일단 맛이나 보자하며 음식 하나를 놓고 네 명이 숟가락이며 젓가락으로 먹었더니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외국인이 신기하게 우리를 쳐다본다. 쳐다보든 말든 입에 맞는 음식을 또 시켜놓고 배부르게 먹었다. 한 사람이 2인분씩을 먹은 셈이다. 스페인에서 왔다는 사람은 국수 종류를 하나 시켜 먹고는 만다. 그 덩치에 그것 가지고 배가 고파 어떻게 버티나 싶을 정도다. 또 한쪽에는 젓가락 사용이 신기한지 젓가락으로 병도 집어보고 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다. 계산을 하고 일어서니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이 제일 푸짐하다. 외국인이 앉았던 테이블은 접시 하나씩, 그것도 깨끗하게 다 먹었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배 터지게 먹어야 되는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그것도 모자라 나오면서 도나스를 사서 또 먹었다.
● 해방전선의 상징 - 구찌터널
버스는 다시 호치민 시로 향해 간다. 1시간쯤 달리자 구찌 터널이 나온다. 바로 이곳이 월남전 때 해방전선의 중심 거점으로 미국이 폭격과 대량의 고엽제를 뿌리자 이 구치 지하 굴을 파고 미군의 공격에 끝까지 저항했다는 곳이다. 엄청나게 뿌려댄 고엽제 때문에 큰 나무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숲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지하 300m, 총 길이 200km에 이르는 굴인데 이곳에서 끝까지 게릴라전으로 미군에 맞섰다고 한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출입구에서부터 군데군데 설치된 부비추렙 등 열세한 무기를 가지고 미국과 상대로 싸워야 했던 당시 월남인들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다. 관광객을 위해 공간을 조금 넓혀 놓았다는 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완전히 오리걸음을 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이다. 천정에 머리를 부딪치고 엉덩이는 굴의 벽에 박으며 앞사람의 엉덩이에 코를 박고 앞으로 나가니 질식할 듯이 더운 공기가 덮쳐 온다. 몇 백 미터를 기어가다 밖으로 나오니 온몸이 땀에 절어있다. 그 당시는 이런 굴을 괭이 하나와 삼태기 하나로 파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땅 속에 만들어놓은 식당에서 허연 식물 뿌리를 주는데 맛은 고구마와 꼭 같다. 굴 속에 있으면서 이런 식물 뿌리로 연명을 했다고 하며 주는데 오리걸음을 하느라 시장한 탓이었는지 맛있게 먹었다. 어디엔가 사격장이 있는지 간간히 들리는 총소리를 들어며 내려오니 벌써 5시가 가까이 되었다.
호치민 시에 도착하니 벌써 7시 가까이 되었다. 날씨는 어둑어둑해 지고 퇴근 시간인지 오트바이의 행렬이 또 시작된다. 아침에 보던 모습과는 또 다르다. 오트바이가 차를 호위하듯 둘러싸서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드문드문 보이는 차들은 오트바이에 싸여 끌려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버스에 앉아 도로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오트바이가 버스에 부딪칠 듯하여 아슬아슬하다. 그런데도 오트바이를 모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빠져나간다. 이렇게 오트바이가 앞뒤 옆 할 것 없이 빠져나가고 들어오고 하는데도 버스가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도 나중에 월남을 떠올리면 이 오트바이 행렬만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만큼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니 차가 깜빡이를 넣거나 후진을 하면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나온다. 처음에는 내가 탄 차만 그런줄 알았더니 모든 차가 다 그렇다. 아마도 오트바이에게 내가 지금 차선을 바꾼다 하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설치를 하는 모양이다.
저녁은 야자수밥으로 해결했다. 라오까우라고 하는데 야자의 열매 물에 쌀을 넣어 찐 밥이란다. 약간 독특한 향이 나는 밥인데 맛있게 먹었다. 1인분에 50,000동(5,000원). 베트남에서는 꽤 비싼 음식에 속한다. 여러 가지 곁들인 반찬이 나오는데 시금치 비슷한 것으로 만든 국이 시원한 것이 우리 입에 맞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디저트로 야자수 열매 속에 삶은 팥을 넣은 것을 준다. 달싹하니 맛이 있다. 먹고 나니 입안이 개운해진다.
식당 앞에는 조그만 신상을 만들어 놓았다. 가이드에게 물어도 시원하게 설명을 하지 못한다. 그냥 우리나라의 토지신이나 삼신 할매를 모시듯이 장사가 잘 되라는 뜻으로 조상신 등을 모셔둔 것이라고 한다.
● 자유화의 물결 - 가라오케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첫날이어서인지 벙벙한 느낌이 든다. 피로도 풀고 기분 전환도 할 겸해서 호치민의 젊은이들이 간다는 가라오케 구경을 갔다. SAO DEM(사오는 별, 뎀은 밤이란 뜻으로 nightstar) 귀를 찢는 듯한 음악 소리에 술을 마시고, 한쪽에는 우리나라 노래방처럼 무대에 나와 노래를 한다. 다들 노래를 잘도 한다.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입으로 노래를 따라하기도 하며 어깨를 들썩거리기도 하면서 흥겹게 논다. 보통 이곳에 와서 맥주 2병에 과일 안주 하나를 시키면 10만 동(10,000원)이 된단다. 일반 공무원의 월급이 30만 동(30,000원)이라니 여기에 오는 젊은이들은 이곳에서는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모두 말끔하고 옷을 입고 있는 것도 평상복은 아닌 듯 한껏 꾸며온 듯하다. 우리 일행도 그냥 갈 수 있느냐 해서 노래를 몇 곡 불르고, 나중에는 함께 한 호텔의 사장 부부도 합세해서 노래를 부르고 했다. 나올 때 우리가 노래 부른 모습을 CD에 복사해 준다.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모두가 작다. 키가 겨우 150cm가 될 듯한 작은 키에 몸매도 가냘퍼 마치 중학생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래도 다 20살은 되었단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공산주의 국가에 자유의 물결이 들어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듯하다. 찢어드는 듯한 음악과 노래, 그리고 술... 그리고 거기에 취해있는 몽롱한 눈빛들. 베트남이 변해도 많이 변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거리를 오가다보니 가라오케라고 쓰여진 곳이 의외로 많이 있다. 그 많은 가라오케가 저녁이면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온단다. 놀기도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1.8.18(금)
오늘은 호치민 시내를 관광하기로 했다.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9시에 호텔을 나섰다. 거리는 여전히 복잡다. 오트바이 행렬은 어제나 오늘이나 마찬가지다. 그 사이를 뚫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다 아찔아찔하다.
● 침략과 억압의 역사
맨 먼저 들른 곳은 역사박물관. 들어가는 입구부터 느끼는 것은 우리와 문화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같은 동양권이고 유교 문화였고 중국의 영향을 받다보니 우리와 같은 문화를 이루었으리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흔히 우리나라는 반도에 태어나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는 못하고 수없는 침략을 받은 나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베트남은 우리보다 더 하다. 어쩌면 요 근래 30여년 간을 두고는 내내 다른 나라의 침략과 억압 속에서 지낸 민족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정도의 문화와 경제를 이루어냈다는 것은 베트남 인의 자긍심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것일게다.
●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보존된 전쟁박물관
그 다음에 전쟁범죄 박물관을 들렀다. 베트남 전쟁 중에 일어난 전쟁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이다. 정원에는 월남전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전부 월남전 때 미군들이 사용하던 것을 가져다 놓았다. 영화에서 보던 각종 무기들을 손으로 만져보며 바로 이곳이 전쟁이 있었던 곳이구나 하는 실감을 할 수 있었다. 전시장 안에는 대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너무도 끔찍한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많다.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이 역겨워져 사진은 건성으로 보고 전시장을 나와버렸다. 말로만 듣던 전쟁, 비록 군대에서 3년을 보내기는 했지만 이렇게 인간이 잔인해 질 수 있다는 점에 진저리가 쳐진다. 죽고 죽이고, 그리고 고엽제 때문에 괴물이 되어가고.... 한쪽에 가니 고엽제 때문에 기형이 된 태아를 방부제가 담긴 용기에 담아놓았다. 인간을 이렇게 잔혹하게 만든 미군들도 밉지만, 그것을 보란 듯이 용기에 담아 내놓는 베트남인들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가이드 말로는 베트남과 한국이 수교를 맺은 이후로 한국군인이 나오는 사진은 모두 철거를 했단다. 그거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전쟁이 다시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전시장을 나오니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비를 맞으며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다음 건물로 들어가니 '고문의 섬'이라고 불린 콘손 섬의 감옥을 그대도 복원해 두었다. 이곳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심한 고문으로 죽어갔다고 한다. 고문 당하는 사람의 인형을 놓아두었는데, 벽에는 한시가 적혀 있다.
身體在獄中
精神在獄外
欲成大事業
精神更要大
신체는 감옥 안에 있지만 / 정신은 감옥밖에 있네
마음은 큰 사업을 이루고 싶지만 / 정신은 다시 큰 것을 구하네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던 지사들의 고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마지막 방에는 테트남의 전통 악기들을 놓아두고 직접 연주도 해준다. 모든 악기들이 다 신기하기만 하다. 거문고와 같이 생긴 악기는 줄이 하나 뿐인데도 소리를 희한하게 잡아낸다. 또 대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내어 그것으로 음악을 연주한다. 그리고는 우리들보고 직접 만져보고 두드려 보란다. 대나무를 50cm 정도의 길이로 잘라 묶은 다음 손바닥을 마주쳐 공기를 불어넣으면 통통통 하는 소리가 나면서 음계를 잡아내기도 한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니까 서울의 찬가와 아리랑을 그 자리에서 연주해 주기도 한다. 전쟁과 음악,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이 한 자리에 앉아 그나마 우울했던 마음을 씻어준다.
● 통일회당 - 월남전의 종지부를 찍던 곳
다시 차를 타고 통일회당이라고 불리는 구대통령궁을 들렀다. 지금은 베트남의 수도가 하노이이기 때문에 대통령궁은 하노이에 있고, 호치민에 있는 이 궁은 관광객이 들르는 관광지가 되어 있다. 1966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이 대통령 궁을 지을 때만해도 베트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선 경제와 문화를 가진 나라였던 모양이다. 물론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 보니 프랑스풍이 많이 남아 있고, 월남전 때문에 모든 나라의 기반 시설이 파괴되어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우리나라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한때는 우리나라보다 몇 십년은 앞섰던 나라였다.
● 베트남의 전통음식 - 쌀국수(퍼)
오전 내내 호치민 시내를 돌아다녔더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베트남의 전통 음식인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유명한 퍼 고아(쌀 국수)다. 소뼈를 우린 국물에 나오는 것은 퍼보, 닭고기 수프에 나오는 것은 퍼가라고 한단다. 쉽게 생각하면 베타남 국수라 할 수 있는데, 쇠고기나 닭고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다. 한 그릇에 15,000 동(1,500원)으로 가격도 싸다. 우리가 간 식당은 유명한 식당인지 빈 자리가 없을 정도다. 2층에 올라가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퍼 고아를 먹었다. 소스 탓인지 국물이 시원한 것이 먹을 만하다. 양이 좀 적은 것 같아 면을 더 주문해서 먹었더니 과식을 한 모양이다.
● 벤타인 시장에서 즐거운 쇼핑
실컷 배를 채우고 오후에는 벤타인(邊城)시장에 갔다. 규모도 크고 물건도 다양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물건 값은 우리 나라와 비교하면 아주 싸다. 물론 물건의 품질은 많이 떨어지겠지만 싼 가격 탓에 재미를 느껴 꽤 많은 물건들을 쌌다. 가격도 정해진 것이 없고 부르는 게 값이다. 큰 소리로 값을 깎아가며 물건을 하나씩 사는 재미도 유쾌하다. 15만 동(15,000원)이라고 부르던 전자 시계를 10만 동(10,000원)에 쌌다고 자랑하니 옆의 사람은 7만 동(7,000원)에 쌌다고 껄껄 웃는다. 바가지를 써도 그냥 즐거운 모양이다.
시장 구경에 쇼핑에 빠져 있다보니 어느덧 오후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버스에 오르니 신 까페(SINH CAFE)에 가서 내일 갈 메콩 델타 예약을 하러 가잔다. 다양한 어행 상품이 갖추어져 있고 그 주위에는 간단하게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있어 일명 배낭족 거리(대탐거리)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신 까페에서 메콩델타 예약을 하니 현재 네 명만이 예약을 했다고 한다. 우리를 포함해서 15명이 되는 셈이다. 2층에 올라가 신또 망고(망고 셰이크)를 마셨다. 한 잔에 5,000동(500원)인데 이제까지 먹은 음료수 중에 제일 맛이 있다.
호텔로 돌아오니 닭도리탕을 저녁으로 준비를 해놓았다. 오랫만에(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식 음식으로 포식을 했다. 저녁을 먹고 가지고 간 커피 믹스로 커피도 한 잔 하고나니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팀은 술집으로 가기로 하고 나머지는 사이공강의 유람선을 타러 가기로 했다. 유람선이 있는 곳으로 가니 알록달록한 전구를 달아 호화롭기 이를데가 없다. 강을 연한 도로에는 오트바이와 사람들의 무리로 뒤섞여 있고, 어두운 빛을 띤 강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전구 빛으로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다. 나무 그늘 밑 잔디에 있는 벤치에는 젊은 남녀 쌍쌍이 허리를 감싸안고 다정하게 앉아있다. 바로 그 옆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하는데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둘 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다. 역시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곳에는 으레 자신들이 타고온 오트바이가 하나씩 놓여 있다. 이네들의 생활은 오트바이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인 것 같다. 더러는 오트바이를 세워놓고 그 위에 다정하게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다정하다 못해 부럽기까지 하다.
● 사이공의 유람선
3층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유람선인데 따로 입장료 같은 것을 받는 것은 아니고 저녁 8:00부터 9:30까지 1시간 30분 동안 유람선이 사이공강을 오가는데 그동안 사이공의 야경을 즐기며 음식을 즐기면 된다. 전망 좋은 곳을 찾아가느라 2층에 자리를 잡았더니 주위에 시끄러운 친구들 밖에 없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음식이 나오고 술잔이 돌자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기 시작한다. 10명 정도씩 무리를 지어 앉아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웃고 노래도 하고 떠들며 논다. 마치 1970년대 우리가 대학 다닐 때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는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목청껏 소리 지르던 모습이 떠올라 한편으로는 정답기도 하다. 유람선에는 각 층마다 밴드가 있어 계속해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갑자기 칠갑산이라는 노래가 나오더니 여자 가수가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하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우리가 앉은 테이블로 온다. 그러더니 우리들보고 노래를 부른단다. 얼떨결에 2절을 부르고 나니 손에 돈을 들고 있다. 아마도 팁을 내라는 말인 모양이다. 우리 얼굴에 한국인이라는 이름이라도 씌었나 싶어 쳐다보니, 여러 나라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 나라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마이크를 주고 흥을 돋구곤 한다. 아마도 민족간의 얼굴 생김새에 어떤 특징이 있는 모양이다.
옛날 상고시대의 기록에 우리나라에서 제천 행사를 지낼 때 '연일(連日) 가무음주(歌舞飮酒)'라 하여 우리 민족은 흥이 많고 놀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했는데, 베트남 민족을 보니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를 노래를 좋아하고 놀기를 즐긴다. 참 놀기 좋아하는 민족들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귀에 익은 우리나라 음악이 나온다. 이정현의 '와'라는 노래에 맞추어 여자가 나오더니 불을 입에 넣었다 뿜었다 하는 불쑈를 한다. 미친 듯이 뿜어내는 음악 소리에 맞추어 분위기는 거의 광란의 무대로 변해버린다.
우리는 저녁을 실컷 먹고온 뒤라 맥주를 한 잔씩 하기로 하고 안주로는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것을 시키기로 했다. 비둘기 요리가 한 접시에 40,000동(4,000원)이다. 아무도 비둘기 요리는 먹어보지 못했다 해서 그것을 시켰다. 조그만 비둘기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서 접시에 놓여 나온다. 서로 쳐다보고만 있다가 고기를 조금 찢어 먹어보니 구수한 맛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그러나 서로의 선입관 때문에 그 작은 고기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그래서 바다 게를 시켰더니 그것은 맛이 우리가 먹는 것과 비슷한데 껍질이 어찌나 두꺼운지 그냥 손으로는 부술 수가 없다. 종업원이 주는 집게로 뜯어 먹는데 명덕대게나 홍게보다는 맛이 싱거운 것 같다.
시간은 어느듯 9시 40분을 가리킨다. 배에서 내리니 거리는 조용해져 있고 부슬비가 내린다.
호텔로 가기 위해 7인승 택시를 불렀다. 우리나라 다마스처럼 생긴 차인데 7명이 타니 딱 알맞다. 기본료는 10,000동(1,000원)부터 시작하는데 호텔에 오니 43,000동(4,300원)이 나온다.
● 인간의 손길이 그렇게 따스할 줄이야
호텔에 돌아오니 밤 10시다. 아직 술을 마시러 간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그냥 우리끼리 호텔 방에 있기도 뭣해서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발맛사지 집에 가기로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칸막이는 쳐져 있어도 앞을 틔어져 있어 서로를 바라보면서 발맛사지를 받도록 되어 있다. 7명 모두가 나란히 앉아 발맛사지를 했다. 130,000동(13,000원)인데 우리와 함께 간 호텔의 안주인 덕택에 80,000동으로 깎았다.
내 발을 맛사지하는 아가씨는 우리말을 제법 한다. 인상도 좋고, 눈을 감고 누웠으려니 따스한 손길로 발을 만져주는 것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사람의 손길이 그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줄을 새삼 느꼈다. 담배를 피워무니 '담배는 건강에 해로워요'하면서 충고도 해준다. 그러면서 마마, 파파가 한국에 있다면서 얼굴에 그늘이 깔린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무엇이 있는 듯하여 선 듯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요'란다. 1시간을 넘게 맛사지를 하고 있는 가냘픈 몸을 보니 오히려 측은한 느낌마저 든다. 맛사지를 끝내고 나서는 내 옆에 앉아 계속 말을 건네며 떠나지를 않는다.안된 마음에 따로 팁을 주고 싶은데 다른 사람도 있어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우리 일행이 함께 계산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8월 19일(일)
● 메콩 델타 여행 - 베트남의 젖줄
오늘은 메콩 델타 여행이다. 메콩 크루즈라는 용어를 쓰는데, 크루즈는 배를 타고 강을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8시에 신 카페 앞에 가니 벌써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있다. 메콩 텔타행만이 아니라 여러 행선지가 모두 여기서 출발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북적댄다. 메콩 델타행이 어제는 4명밖에 없어 걱정을 했는데 버스가 도착하자 금새 버스가 사람들로 가득찬다. 거이에다 가이드가 두 명이 타기에 이상하다 했더니, 버스에 탄 사람들은 하루 여행 코스와 1박 코스로 나누어져 있단다. 우리는 '투 데이 원 나이트'라고 신식 영어로 표현해 준다. 11시쯤에 미토에 도착하자 하루 코스(원 데이)를 택한 사람들은 내리란다. 결국 '투 데이 원 나이트'는 28명에 6개 나라 사람들이 남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 일본 등 여러 민족이 모였는데, 버스 안이 가히 국제적이라 할 수가 있겠다. 우리처럼 11명씩 온 팀은 없고 두 명씩, 세 명씩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가이드는 자신을 땀(mr. Tam)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시골 사람처럼 생겼는데 발음에 악센트가 세고 끝을 딱딱 끊는 특이한 발음을 한다. 그런데도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무엇 무엇이라 떠든다. 나중에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더냐고 물으니 월남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서 월남전, 나중에는 자기 식구 자랑까지 하더란다. 우리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나중에는 자기 자리에 앉아 가만히 앉았다.
차가 계속 달려 11:30 쯤 되자 드디어 물의 나라에 온 것을 알 수가 있다. 누런 황토물이 흐르는 메콩강의 지류가 한도 끝도 없이 나타난다. 차가 달려도 달려도 끝없이 나타나는 것이 누런 물줄기 뿐이다. 강 가에 있는 집 앞에는 일일이 다리를 만들어 놓았고, 작은 배를 장대로 밀어가며 수로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이기 시작한다. 차에서 내려 좁은 골목길을 접어드니 십여 명이 탈 수 있는 배가 세 척이 와 있다. 나누어 타고 가니 식당이 나온다. 수상 식당이다. 식탁에 앉자마자 과일 한 접시가 나온다. 3,000동(300원)이다. 과일에 붙어 있는 개미를 털어가며 먹다가 옆 테이블을 보니 다른 외국인들은 아무도 과일에 손을 대지 않는다. 우리만 열심히 먹고 있다. 점심으로 새우구이, 쇠고기 볶음(beef), 생선찜(mudfish) 등을 시켰다. 거기에 우리가 준비해간 고추장에다 김에다 호화판으로 먹다보니 옆 테이블은 마찬가지 간단한 음식 하나만 시켜 먹고 있다. 역시 한국 사람은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3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배가 여러 척 준비되어 있다. xeo-quit(Rung Tram Forest)란 곳인데, 사공은 검은 옷 계통을 입은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듯이 곤드라운 배를 타고 앉으니 노로 땅을 짚어가며 배가 나아간다. 겨우 배 한 척이 지나갈 듯한 좁은 수로를 따라 고불고불 나아간다. 일종의 늪지대인 모양인데, 수로 가에는 옛날 베트콩의 숙소였다는 팻말이 붙은 집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인다. 좁은 수로를 따라가면서 옛날 월남전에서 미군이 결국은 질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이 미로처럼 펼쳐진 늪지대의 수로를 통해 미군들과 끝까지 전쟁을 치르었던 베트남인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수로에는 부레옥잠이 많이 자라있다. 앞배를 젓는 여자 사공은 몸매가 가냘픈 사람이 노를 얼마 젓지 않아 등이 땀에 폭 젖었다. 얼마나 용을 섰으면 저럴까 싶어 안타깝기만 하다. 30분 가량을 좁은 수로를 돌아 처음에 있었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처음에 탔던 배를 타고 버스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강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밝다.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준다. 한때는 전쟁터였던 곳, 서로 총을 들고 싸우기도 했을 사이였지만 아이들은 낯선 우리를 한결같이 반겨 준다. 활짝 웃고 있는 그 모습이 그렇게 착하고 순진할 수가 없다. 저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 베트남에도 평화가 정착되고 아시아의 큰 용이 되어 있으리라고 빌어본다.
버스가 빈동에 접어들자 어느덧 차 양쪽으로 펼쳐지는 평야.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평야에 모두가 넘실거리는 것은 벼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끝에는 우뚝 선 야자수 나무가 경계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아마도 메콩 델타에 가까워진 모양이다.
● 메콩 크루즈
4시에 빈롱에서 버스를 내리니 제법 큰 배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29명이 모두 타고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꽤 큰 배다. 여기서부터 3시간동안 메콩강을 따라 내려서 칸토(Can tho)까지 간단다. 여기서부터는 강폭이 상당히 넓어진다. 메콩강의 본류를 타고 있는 듯하다. 배의 지붕위에 올라가 앉아 있으려니, 꿈틀대며 흘러내리는 메콩강의 누런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양쪽에는 끝없는 야자수 열매, 간간히 노를 젓는 배들이 지나가고 바람은 쉬임없이 불어온다. 평화로움 그 자체다. 처음에는 시원하던 바람이 어둑해지면서 몸이 추워진다. 아마 바람에 체온을 많이 빼앗긴 탓인 모양이다. 긴옷을 호치민의 사오마이 호텔에 두고온 탓에 갈아입을 옷도 없다. 떨면서 기다리다 보니 날은 저물고 황혼이 진다. 발갛게 물드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려 또 배의 지붕위에 올라갔다. 이제는 검어진 물결 위로 발갛게 물든 하늘, 그리고 야자수 나무 그림자, 모두들 배 위에 올라와 기념 사진을 찍는다고 법석이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기록에 남기고 싶었지만 간단한 자동 카메라만 가져간 탓이라 몇 장 찍기는 해도 어떻게 나올지 믿을 수가 없다.
7:45에 드디어 칸토에 도착했다. 주위는 벌써 어둡다. 버스를 타고 10분 쯤가니 우리가 묵을 허우장(HAU GIANG)이다. 6층 건물의 낡은 건물인데 프랑스식으로 베란다가 나있는 작은 건물이다. 에어컨이 있는 방을 사용하려면 5$을 더내란다. 방은 직사각형 구조에 침대 2개 화장실, 그것이 끝이다. 그 흔한 냉장고 하나 없다. 침대 위에 모기장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모기장을 치고 잠을 자본 적이 언제적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짐을 풀고 베란다에 나가보니 옛날 영화에서 보던 거리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가이드가 식당을 소개해 준다. 3층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니 작은 도시의 모습과 강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바람도 이젠 서늘하게 불어온다. 음식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닭, 쇠고기, 돼지고기 등속인데 이제는 입에 썩 맞는 음식이 없다. 메뉴판을 들고 연구를 거듭해도 먹고 싶다는 음식이 없다. 며칠도 되지 않아 이곳 음식에 식상해버린 모양이다. 돼지고기 구이가 가장 무난할 것 같아 주문을 했더니 돼지고기 위에 얹어둔 소스 때문에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이 식당에서는 서비스로 뱀술을 한 잔씩 준다. 가이드가 뱀이 담겨져 있는 병을 가리키며 여기 있는 술을 다 먹어도 됩니다 하며 농담을 던진다. 술병에는 여러 가지의 뱀이 뒤섞여 들어있다. 일단 주는 술은 먹어야 한다면 한 잔씩 마셨다. 함께 온 외국인 친구들이 뱀이 든 술병 앞에 와서 신기하게 들여다보니 종업원이 손을 넣어 그 뱀을 끄집어내어 그 외국인 친구들 얼굴에 대어준다. 바로 코 앞에서 그 뱀을 바로보던 외국인 여자는 '뷰티풀'이라고 표현을 한다. '어머 징그러워'하며 내숭 떠는 여자들보다는 훨씬 솔직하게 보인다.
8월 20일(월)
오트바이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일어나니 시계는 아직 5시밖에 되지 않았다. 잠도 깨울 겸 해서 베란다에 나가 내려다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다. 거리를 쓸고 있는 여자 청소부부터 많은 사람들이 뭐가 그리 바쁜지 바쁘게 오간다. 여기저기서 오트바이 시동 거는 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다. 누가 한국인더러 부지런한 민족이라 했던가. 여기 월남인들을 보라. 아직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부지런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라.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길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는 사람들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줘봐라.
● 칸토에서의 메콩 크루즈
아침 식사를 호텔 식당에서 먹으면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르게 해석을 한다. 이곳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시원한 아침에 일을 한다고. 그 말이 또 맞는 것같기도 해 머쓱하다.
7:30에 열 댓명이 타는 배를 타고 메콩강의 지류인 하우잔(後江)을 타고 가는 메콩 크루즈다. 어제 왔던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1시간 쯤 가니 수상시장이 나온다. 어제는 보지 못한 시장이 열려있다. 크고 작은 배들이 뒤엉켜 서로 물건을 사고판다. 우리가 탄 배는 우리가 구경을 할 수 있도록 그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음료수를 파는 배가 언제 왔는지 우리 배 옆에 달라붙어 파도에 일렁이는 배를 한 손으로 잡고 음료수를 권하는 모습이 결사적이다. 거절을 하지 못해 맥주 몇 병과 음료수 몇 병을 시켰다. 황토물을 치고 거슬러 올라가니 어제와는 달리 물보라가 얼굴까지 친다.
● 쌀종이 공장
배가 닿은 곳은 쌀국수 공장이란다. rice paper(반짬)라는 쌀종이를 만드는 곳이란다. 쌀가루를 얇게 쪄서 종이처럼 얇게 펴 찐 다음 햇빛에 말린 뒤 가늘게 썰어서 만드는 국수다. 언젠가 TV에서 본 것인데 그 과정 하나하나를 보여주며 설명을 해준다. 웃통을 벗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화덕 옆에는 여자들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 쌀종이를 만들고 있다. 쌀국수를 손으로 만져보니 의외로 찰기가 있고 질긴 느낌이다. 쌀을 그냥 찌는 것이 아니라 몇 단계를 거치면서 발효를 시키기 때문에 그런 맛이 난다고 한다. 한참 설명을 듣고 있자니 햇볕에 말린 쌀종이를 기계에 넣어 채를 썰듯이 썰어 국수를 만든다. 4명이 1개조가 되어 국수 가래를 뽑아내는데, 그 옆에서 그 과정을 설명하는 가이드는 모터를 사용한 기계를 이용해 국수를 뽑아내는 것이 자못 자랑스런 모양이다. 아주 자랑스럽게 설명을 한다.
그러나 그런 모습과는 달리 국수를 만드는 바로 옆에는 돼지 우리가 있어 냄새가 지독하고 길바닥은 완전 진흙탕이다. 그런데도 외국인인 우리가 와서 보는데도 부끄러워하거나 꺼리는 모습이 전혀 없다. 그냥 당당하게 자신들의 할 일을 한다. 얇게 쌀가루를 펴던 여자는 외국인 여자가 손에 낀 반지를 보면서 예쁘다는 제스처를 써가며 밝게 웃기도 한다. 그리고는 구경만 하지 말고 와서 직접 해보라고 하기도 한다.
다시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파파야 농장이다. 메콩강을 따라 거슬러가다 좁을 수로로 접어드니 강 가에 늘어선 집들이 모두 깨끗한 것이 생활 수준이 높은 것 같다. 여기가 농장이고 소득이 높은 곳이란다. 바나나 잎을 둥글게 말아 묘목을 담을 받침을 만들고 거기에 겨를 태운 재를 넣고 씨앗을 하나씩 심는다. 이것을 여러 단계를 거쳐 물을 주고 햇볕을 차단하고 해서 파파야 나무 묘목을 만든단다. 앞서가는 농업기술인 모양이다.
다시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정미소. 우리에겐 익숙한 곳인데 외국인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인 모양이다. 벼를 얻어 보니 길고 홀쭉하게 생겼다. 한때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오던 알랑미(안남미)의 고장이 바로 여기였던 모양이다. 껍질을 까 입에 넣어보니 생쌀 맛은 그대로다. 정미소를 나오니 비가 온다. 강가의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으며 비를 피하기로 했다. 특이하게 쌀종이, 쌀국수, 라면, 닭도리탕, 닭파인애플 등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놓았다. 먼저 쌀종이에 쌀국수, 라면, 닭고기, 야채 등 여러가지를 얹고 쌀종이를 감싼 다음 소스에 찍어 먹는다. 쌀종이는 조금 질긴 느낌을 주면서 먹을 만하다. 닭 파인애플은 파인애플의 맛이 닭고기에 배어 달싹한 맛이 든다. 몇 번 베어 먹으니 느끼한 느낌을 주어 많이 먹지는 못하겠다.
● 서민들의 영양식 - 라우제
식사를 마치고 1:20에 버스에 다시 올랐다. 이제는 5시간을 달려야 한다. 어제는 배를 타고 왔던 길을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간다. 메콩강을 건널 때는 아직 다리가 없어 버스를 배에 싣고 건넜다. 그 큰 배에 차를 싣고, 사람들이 내리고 하는 모습은 과히 장관이다. 배가 건너편에 닿자 말자 우선 오트바이 행렬이 하늘이 무너질 듯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호치민에 도착하니 저녁 7시다. 오늘 길에 바라보는 오트바이 행렬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신까페 앞에 도착하니 사오마이 호텔 사장이 마중 나와 있다. 그러면서 사이공의 명물인 라우제(Lau De)를 먹으러 가잔다. 허름한 건물인데 벌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라우제는 양고기를 숯불에 구워먹는 음식인데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 탁자에 쪼그려 앉아 먹는다. 살고기와 유방 고기 두 가지가 나온다. 굽은 고기는 여러 가지 양념을 넣은 소스에 찍어먹는데 숯 냄새와 함게 맛이 있다. 한국의 양구이집(서민들이 많이 가는) 정도에 비교하면 되겠다. 고기를 먹고 탕을 먹으면 국수에 골, 내장 등 여러 가지가 나온다는데, 우리는 덥기도 덥고 시끄러워 탕은 먹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총 금액이 350,000동(35,000원)으로 매우 싼 편이다.
식당을 나와 사오마이 호텔에 거쳐 짐을 찾은 후 막바로 붕따우로 향했다. 붕따우로 가는 길은 호치민에서 남동쪽으로 난 고속도로를 타고 간다. 베트남에 와서 처음 보는 고속도로다. 그런데 통행료를 내는 모습이 아주 특이하다. 길 가에 있는 부스에서 돈을 내고 통행권을 받은 다음, 10m 쯤 가서 그 표를 내고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표를 파는 사람 혼자서 해도 될 일을 나누어서 한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물으니 인구는 많고 일자리는 적어서 정부에서 일부러 이렇게 일을 나누어 시킨단다.
8월 21일(화)
몇 시간을 자지는 못했지만 푹 잠을 잔 덕에 일어나니 몸이 개운하다. 방문을 열고 나오니 바로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적인 휴양지라고 불리는 붕따우의 아침이다. 선선한 날씨인데도 벌써 바닷가에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 붕따우에서의 아침식사 - 십금탕
8시에 호텔을 나왔다. 우리가 잔 곳은 외국인 전용구역이 아니라 조그마한 가게와 조그만 기념품을 들고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레 융(Le Dung)이란 식당에 들어갔다. 각가지 해물을 담아놓은 수족관이 있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런 곳에서 과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침 식사는 해산물 요리다. 볶음밥에다 십금탕(十禽湯)이란 요리를 시켰다. 열가지 재료를 넣어서 만드는 요리인데 한국의 신선로 비슷한 요리로 보면 되겠다. 가제, 게, 한치, 돼지 염통 등등 이름을 모르는 여러 가지 재료가 익으면서 내는 구수한 냄새는 이제까지 감돌던 역겨운 냄새를 없애준다. 맛은 괜찮은 편이다. 해물을 넣어 만든 볶음밥도 우리 입맛에 맞고, 해물탕도 구수하니 먹음직스럽다.
● 석가대불과 예수상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석가대불이란 곳으로 갔다. 얕은 언덕에 흰 색을 한 불상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니 선림사(禪林寺)라는 이름이 붙은 대웅보전이 있다. 안에는 석가불을 모셔놓았는데, 광배에 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전자 장치를 달아놓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앞에 앉은 스님은 웬 사람과 함께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옆의 계단을 오르니 석고로 만든 듯한 거대한 불상이 놓여 있다. '본사 석가모니불'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다. 연화대 위에 가부좌를 하고 두 손을 모으고 있는데, 굴곡이 뚜렷한 조각으로 되어 있다. 그 옆에는 코끼리가 엎드려 있고 원숭이가 복숭아를 부처에게 공양하는 특이한 조각을 한 불상이 있다. 그 위쪽에는 와불이 있다. 모두 흰 색으로 되어 있는데 돌은 아닌 것 같고 석고같기도 한데 근래에 만들어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구 프랑스 총독관저라는 곳으로 갔다. 독립이 되고 난 뒤에는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이 되었다고 한다. 입장료 5.000동을 내고 들어가니 바다를 겸해 있는 풍광이 꽤 뛰어난 곳이다. 바다 쪽의 정원에는 대포 십 여기가 바다를 보고 놓여져 있다. 정원도 잘 가꾸어 놓았는데 건물 안의 시설은 너무 엉성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이 쓰던 침대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고, 의자는 천이 터져 속이 다 비져나오고 있다.
11시 쯤에 예수상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도로에서 바라보니 언덕 위에 두 팔을 벌린 흰 색의 예수상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날씨가 후덥지근하더니 비가 간간히 뿌리기 시작한다. 오히려 시원하다는 생각을 하며 조그만 산으로 나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일일이 돌을 박아 만든 계단을 걸어오르자니 군데군데 조각상을 새겨놓았다. 양을 안고 있는 요셉상, 마리아상, 어린 아이들의 상 등이 늘어서 있는데 그 조각을 한 솜씨가 특이하다. 세련된 표현이라기 보다는 각이 조금씩 진 조각으로 거친 솜씨인데도 사람을 끄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계단 중간에 서 있는 마리아상은 보면 볼수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내려오는 길에 이 마리아상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퍼붓는 비 때문에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계단을 다 올라가니 양쪽에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상이 서 있다. 여기서부터는 천국의 땅인 모양이다. 기념 사진을 찍고 올라가니 30m에 이르는 거대한 예수상 아래에 최후의 만찬, 예수가 로마군에게 끌려가는 모습, 요셉에게 세례를 받는 모습 등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예수상은 서양식 용모에 길쭉한 얼굴로 사랑을 담뿍 안은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 예수상 뒤쪽에는 벤치가 놓여져 있어 그곳에 가니 붕따우의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불어와 여기까지 올라오며 흘린 땀을 씻어준다. 바다가 호를 그리듯 펼쳐져 있고, 이 바다를 끼고 전형적인 휴양지의 도시가 펼쳐져 있다. 붉은색 건물이 야자수 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올 때부터 뿌리던 비가 내려올려니 갑자기 소나기가 되어 퍼붓는다. 기다리다 비가 좀 뜸해 진 틈을 타 내려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젠 비가 폭우가 되어 퍼붓는다. 윈도 브러쉬를 빨리 돌려도퍼붓는 비를 다 지울 수 없을 정도다.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이렇게 비가 내린단다. 잠시 내리고 말 비가 아니다. 오후에는 바다에 들어가 해수욕도 하고 제트 스키도 타겠다는 계획은 모두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남아 도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발맛사지를 하기로 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인데, 발마사지를 할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이곳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란다. 별로 생각이 없었지만 막연히 1시간을 보내기도 힘들 것 같아 또 발맛사지를 했다.
점심은 한국인 부부가 경영하는 곳으로 한일관이란 상호가 붙은 식당에 들었다. 식당의 규모가 꽤 큰 것이 많은 돈을 투자한 것 같다. 상 가득히 나오는 푸짐한 반찬이 역시 이렇게 먹어야 우리 입맛이란 느낌이 절로 난다. 게를 뜯어먹고 나니 따뜻한 물에 레몬을 담구어 준다. 여기에 손을 씻으면 손에 배인 냄새가 사라진단다. 모르고 왔으면 이 물을 마실 뻔 했다. 가지고 간 소주가 동이 나 식당에서 사 먹으려니 한 병에 90,000동(9,000원)이란다. 마지막 날인데 우리 입맛에 맞는 술을 먹자 해서 그 비싼 술을 사 먹었다.
호치민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비는 계속 내린다. 이렇게 비가 와서야 어디 비행기나 뜨겠나 하는 걱정까지 생긴다. 그런데 고속도로에는 휴게실의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어제 밤에도 소변이 마려워 차를 좀 세워달랬더니 컴컴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는 아무데서나 볼일을 보란다. 남자들이야 어떻게 한다고 하지만 여자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다시 차를 타고 가다 카페 앞에 차를 세운다. 카페의 화장실을 이용하란다.
7시에 사오마이 호텔에 도착해 짐을 꾸리고 공항으로 향했다. 아시아나 OZ362호 새벽 1시발이다. 막상 베트남 관광이 끝났구나 생각하니 아쉬운 생각만이 남는다. 언제 또 베트남을 찾아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