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5편
본 시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 기간에 자기가 가장 믿었던 아히도벨이 배반했을 때 개인적인 고뇌와 사회적인 불안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호소한 탄원시로 여겨지고 있다(삼하15:3, 16:15, 대상27:33). 다윗은 가까운 친구의 배신에 대하여는 분노로, 하나님께 대하여는 굳건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다윗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모형으로, 아히도벨의 배반을 가롯 유다의 상징으로 적용하기도 한다. 다윗은 현제 처해 있는 현실에서 새처럼 도피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원수들은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며, 그 언약을 배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간구하고 있다.
시 55: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이 귀절은 간절한 기도의 표현이다. 기도할수록 하나님은 더욱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는 때에, 그 기도자는 이렇게 말할 만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욱 간절히 찾는 여부를 시험해 보시려고, 응답하시지 않고 오래 참으시는 때가 있다.
시 55: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근심"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쉬카인데, 수풀을 의미하기도 하나 역시 근심을 가리킨다. 근심은 수풀이나 가시덤불처럼 복잡하고 착란(錯亂)한 심사 때문에 생기는 고로, 이 글자가 사용된 듯하다.
시 55: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다윗이 우고를 가지는 이유는, 그 원수들이 그를 압박하는 까닭이다.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 하며".
곧, 원수들이 그에게 악을 던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원수들의 압박 행위를 말함이다.
시 55:4-8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나의 마링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 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이 귀절들을 종합하여 보면 다윗에게는 이중으로 마음고생이 있었다. 곧, 우수(憂愁)와 공포(恐怖)이다. 그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던 사실은, 그가 광야로 날아가 피했으면 좋겠다는 탄원을 보아서 알 수가 있다. 다윗이 환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에는 피신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시 11:1). 그러나 여기서는 다윗이 피신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그의 불신앙이라기보다 그의 심리 고통을 묘사(描寫)함이다. 이런 심리 고통을 기회로 하여 믿음이 생길 수도 있다.
시 55:6,7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대저 주께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셨나이다.
간절한 기도는 흔히 서원을 가진다. 그 이유는, 그런 기도는, 기도자 자신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원은 간절한 기도 끝에 오는 사랑스러운 열매이지만, 그 열매가 신실이란 감로(甘露)로 잘 익어야 될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낙헌제"(네바다). 이것은 단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이다(출 25:2, 35:29; 레 7:16, 22:21; 민 15:3). 누구든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면 즐겁게 드려야 된다. 부득이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가납(嘉納)될 수 없다. 이 낙헌제(樂獻祭)의 이유는, 6절 하반과 7절이 보여줌과 같이, 과거의 주님의 구원 행위로 보아서 그의 이름이 선하신 까닭이다. 주님의 이름은, 그의 구원 행위로 나타내신 계시(啓示)를 말함이다.
시 55:9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다 함은, 그 성이 악독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악독한 고로 다윗은 거기 있는 자들을 멸망시켜 주시기를 기도한다. "혀를 나눔"은 악도들의 의견을 불일치시켜 그 계획이 실패되게 함을 가리킨다(창 11:1-9).
시 55:10 저희가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중에는 죄악과 잔해함이 있으며.
"저희가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며". 곧, 윗절에 말한, "강포와 분쟁"이 성벽 위에 횡행(橫行)한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시적 표현이니, 그 뜻은 성안의 평안을 확보해야 할 성벽이 도리어 강포와 분쟁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중에 죄악과 잔해암이 있으며". 곧, 치안(治安)이 확보되기 쉬운 도시(都市)에 죄악과 폭행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보면, 그 나라가 대단히 부패하였다.
시 55:11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
칼빈(Calvin)은, 이 귀절이 사울 정권하에 있었던 이스라엘 나라의 부패상(腐敗相)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압박과 궤사"는 그 죄악 사회;의 주요한 악행을 대표로 든 것이다. 무죄자나 약자를 "압박"함과 속이는 일들은, 극악(極惡)한 사회에서 나온다.
시 55:12-14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러다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다윗은, 여기서 자기에게 대하여 배은 망덕한 자를 원통히 지적한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내부에서 생기는 원수가 있다. 버나드(Bernard)가 말한 것 같이, 그런 원수는 우리가 피할 수도 없고 그를 도말하게 할 수도 없다. 그 원수가 본래부터 원수였거나 생소한 사람이었더면, 그는 그 받는 박해를 자연스럽게 여겨 정신적 고통은 그리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박해를 안 할 친구가 그리하니, 고통은 배가한 것이다. 우리는 외적보다 내적(內敵)이 더 무서운 줄 알아야 된다. 그런 원수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된다.
시 55:15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성도는 이런 저주를 자기 개인적 원수에게 하지 않는다. 이 저주는, 하나님의 원수에게 대하여 예언자의 처지에서 발설한 것이다. 69편 설교를 참조하여라.
시 55: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다윗은 그 때에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그러나 기도로써 승산을 가진다.
시 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이 말씀을 보면 옛날부터 성도들은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인간성은 부패하였으므로 규칙의 제재 없이는 도무지 기도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Calvin). 단 6:10, 9:3 참조.
시 55: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이것은, 다윗이 불원한 장레에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될 줄 확신하는 말씀이다.
"평안하게 하셨도다".
여기 사용된 과거사(過去詞)는, 미래사(未來詞)에 대한 예언적 확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 55:19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고 성도를 배신하며 그와 절교하는 악도들은, 변역하심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벌하신다.
시 55:20,21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저 악도들은 변절함에 빨라서 언약을 배반하며 구밀복 검식(口蜜腹劒式)의 행동을 좋아하였다. 유다가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팔 사실이 여기 예표(豫表)된다.
시 55:22,23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로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다윗은 우고의 큰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만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상선벌악하심을 확신한 까닭이다. 곧, 하나님께서 반드시 "의인의 요동함(멸망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고, 악도들을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