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단한 이야기이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마셈~
머리말1.
노자의 도덕경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道可道 非可道(도가도 비가도) - 도를 도라 했을 때, 이미 도가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 도를 도라 했을 때,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양자역학에서도 비슷하게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을 양자역학이라고 했을 때, 이미 그것은 양자역학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적는 양자역학도 결국은 양자역학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럼에도 여기에 양자역학을 적는 나의 행동이 참으로 모순 되어 보인다.
머리말2.
진공관 라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는 라디오가 매우 컸다.
그리고 그 큰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나이가 어린 과학자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부지~ 라디오에서는 어떻게 해서 소리가 나요?"
아버지는 잠깐 고민했다.
전파의 변조와 복조, 진공관에서의 신호의 증폭, 스피커를 통한 소리의 재생...
이런 것들을 설명하려고 하니 아이가 이해를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 을 해 주었다.
"응... 저 라디오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어서 말을 해줘. 그래서 소리가 나는 거야."
머리말3.
용자가 200년 전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사람들에게 mp3 플레이어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조그맣게 생기고 소리가 나는 그 물체를 참으로 신기하게 생각했다.
용자는 과거에서 만난 친구 덕후에게 mp3 플레이어를 선물해주고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덕후는 용자에게 받은 mp3 플레이어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이걸 누르면 소리가 커지고, 이걸 누르면 소리가 작아지고, 이걸 누르면 다음 노래가 나오고..."
덕후의 설명을 듣고 있던 친구 중에 한 놈이 덕후에게 물었다.
"덕후야, 왜 그렇게 되는거야?"
덕후는 말을 했다.
"낸들 아냐? 나는 그냥 이렇게 된다는 현상만 설명할 수 있을 뿐 원리는 설명할 수 없어."
양자역학 개론.
양자역학을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양자역학을 어려워한다.
양자역학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양자역학은 인간의 직관과 위배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고전역학에 익숙한 우리의 상상력으로는 양자역학적인 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양자역학적인 현상과 인간의 직관 사이에는 참으로 큰 간격이 있다.
이 간격을 인식하지 못하고 양자역학을 배우면 많은 곤란함에 빠진다.
양자역학을 배우는 첫번째 마음가짐은 "양자역학은 인간의 직관으로는 설명이 안된다."이다.
아래에 양자역학에서 나타나는 신기한 현상들을 몇 개 적어보겠다.
1. 전자의 이중슬릿 간섭문제.
야구공이 운동장에서 창문을 통해서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내 방은 창이 두 개 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의 직관은 당연히 "두 개의 창문중 한 개만을 통과했을 것이다."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동시에 둘 다 통과했다."라고 설명을 한다.
야구공이 두 창문을 통시에 통과해서 내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야구공이 분신술을 사용해서 두 창으로 동시에 들어 온 것은 아니다.
분명 야구공은 한 개이고 분신술을 쓰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창으로 동시에 들어왔다.
이러한 신기한 현상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중슬릿을 놓고 전자 빔을 쏘아주면, 스크린에는 간섭무늬가 생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슬릿을 통과한 전자들이 서로 간섭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직관으로 옳은 설명이다.
그렇다면, 전자를 1분 간격으로 한개씩만 쏘아보자.
전자를 한개만 쏘면 전자는 두 슬릿 중 한 슬릿만을 통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간섭무늬는 생겨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직관으로는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간섭무늬가 생겨난다.
전자가 분신술을 쓰지 않고도 두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해서 스스로 간섭무늬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에 관한 속편 실험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왜 이런 신기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위의 라디오 이야기를 인용하면, 전자가 도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2. 빛과 물질의 이중성(Duality)
나는 이것을 설명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먼저 한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어서 한번도 앞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빨간색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링크)
우리는 파동과 입자의 특성이 따로 분리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은 많이 보았지만,
이 둘의 특성을 동시에 갖는 그 무엇은 한 번도 눈으로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이상한 놈을 설명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관에 위배되는 설명이다.
나는 "이중성에 대한 설명"이 위에 적은 "맹인에게 빨간색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언어로는 이 두가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노자의 말을 인용하면, 이중성을 말로 설명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이중성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중성을 배우면서,
우리의 상상력과 직관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를 상상해야 하고 받아들어야 한다.
이것은 머리가 3개 있고, 눈이 4개 있고, 팔이 7개 있고, 다리가 5개 있는 괴물을 생각하는 것 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이중성에 대한 오해도 매우 많다.
나는 이중성에 대한 힌트를 아주 우연히도 Trinity(삼위일체)라는 단어로부터 얻었다.
기독교에서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성령"의 세 위가 서로 다르지만, 모두 같은 하나의 하나님이다.
Duality(이중성)이라는 말은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이 서로 다르지만, 모두 같은 하나의 본질적인 성질이다.
하나의 본질을 나타내는 성질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식의 문제로 "이중성"이라는 모순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양자 세계의 모든 구성물은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파동의 성질을 관측하면 입자의 성질은 사라져 버린다.
거꾸로 입자의 성질을 관측하면 파동의 성질은 사라져버린다.
이중성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으로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동전의 앞면은 동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성질이며, 뒷면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이 서로 분리된 앞면만 있는 동전(혹은 뒷면만 있는 동전)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내가 동전의 앞면을 관측하면, 뒷면은 관측할 수 없게 사라져버린다.
반대로 내가 뒷면을 관측하면, 앞면은 사라져버린다.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방법은 양자역학에서는 찾아낼 수 없다.
이중성(duality)은 입자(particle)와 파동(wave)의 두가지 성질의 결합체가 아닌,
Wavicle 이라는 한 가지 성질의 서로 다른 두 표현인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wavicle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wavicle과 비슷한 예가 전자기학(electomagnetic), 시공간(spacetime), 운동량-에너지(momenerge) 등이다.
3. 코펜하겐 해석
이걸 적으려고 했는데...
우연히 어떤 동영상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걸 본 사람도 있겠지만,
이 동영상으로 대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