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 초계면은 주변의 적중면과 청덕면일부를 포함하여 3개면이 함께 침식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우리 합천 사람들은 이곳을 옛 초계현의 이름을 따서 초계산안이라 부른다.
이 초계산안을 둘러싸고 있는 산군(山群)을 초계산맥이라 부르는 것은 달리 호칭할 만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이고 차후에 적당한 이름이 있다면 개명하기로 하겠다.
초계산맥은 대암산(大岩山) 591m, 무월봉(舞月峯) 612m, 태백산(太白山)577m, 천황산(天皇 山)665.6m,
미태산(彌泰山)662m, 옥두봉 단봉산200m의 연봉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연장길이 2~30km로써
작다고 할 수 없는 초계산안을 둘러쌓고 있는 산맥이다.
▲대암산정상부분에서 바라본 초계산안 들판
지난날에는 이 산들의 골짜기와 능선마다 여느 산들처럼 나뭇꾼들과 약초캐는 사람들,
소먹이는 아이들로 산길들이 빤질빤질 나있었고 산이 헐벗어 걸어 다니기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취사와 난방의 재료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고 성묘객들 외에는
발걸음이 끊긴지가 오래되어 산길은 황폐해져 칡넝쿨과 가시덤불로 뒤엉켜 이상 보행하기가 어려워진지
이미 30년이나 지났다.
나도 年前에 평소 지리산을 즐겨 다니는 호기로 어릴 때의 옛 자취를 더듬으며 대암산과 미타산을 몇 번
오르다가 가시덤불이 발목을 잡고 길을 분간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발걸음이 끊어진 지 오래되어 보드라운 흙위에 낙엽이 켜켜로 쌓여있는 처녀지 같은
산길이 좋기도 하려니와 노루와 꿩들이 인기척에 놀라며 푸드득 날고 도망가는 야생의 모습을 보노라면
가슴이 고동치며 엔돌핀이 솟아 올라 그 나름의 매혹에 빠지곤 하였다.
심지어는 야간산행을 하며 길을 잃어 헤매다 별다른 도리없이 날이 밝기를 앉아 기다리며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다니다보니 여기 초계산맥의 능선길을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길을 뚫어 내 아이와 함께
산길을 걸으며 아버지가 어릴 때 이 산길을 걸으며 살아온 이야기와 굽이굽이 산능선에 얽혀있는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도란도란 걸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거기에다 더 발전시켜 산악마라톤이나 산악자전거 코스로 개발, 홍보하여 사람들을 유치한다면
무너져가는 우리 합천의 농촌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만화같은 상상을 펼쳐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생각에도 그러함을 알았고 문제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개발에 대한 뜻있는 여러사람들의 합의이고 더 중요한 것은 예산과 인력의 문제일 것인데
그런 것들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어서 서로가 실없이 돌아보며 안타까와 할 뿐이었다.
그러던 차 이번 설날 연휴에 고향인 합천에 내려가니 지인으로부터 郡예산으로 대암산에 등산로를
정비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등산로가 어떤 형태로 닦여 있는지? 개발지상주의적인 생각으로
불도저같은 것으로 밀어 산을 버려 놓은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를 해보며 얼른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내려온 명절연휴의 짧은 시간이고 산에 눈이 조금 쌓여있는 것이 보여 산행길이
망설여지긴 하였지만 내 호기심을 막지는 못하여 잠깐 시간을 내어 대암산 능선 등산을 나서기로 하였다.
그것도 설날 아침 제사를 모시고 성묫길에 잠시 틈을 내 거창에서 온 동생더러 차를 태워달라고 하여
원당리 뒤 대암산청소년수련원으로 난 임도(林道)를 따라 대암산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정상부분까지 와서
등산화를 조여매고 스타트를 했다.
▲대암산정상부분에서 능선길 출발지점
▲정곡저수지 뒤 정상부분 도로와 만나는 곳
등산로의 개척작업은 대암산정상에서 정곡저수지위로 난 도로까지 되어 있었다.
대암산 정상부분에서 그곳까지 가는데에는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1시간30분 정도가 걸렸는데
정곡저수지 뒤 정상부분에서 미타산 방향으로는 종전에 철탑을 세우려고 낸 길 외에는 별도로
손댄 자국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아마 여기까지 군예산으로 등산로 개척작업을 하였는가 보다.
이번에 새로 만든 등산로는 일단 별다른 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되어 있었다.
내가 평소에 지론으로 생각하던 산을 다치지 않고 사람과 산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호흡하면서
산아일체(山我一體)가 되는 그런 등산로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등산로가 잘 닦여 있다는 뜻은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내 판단기준으로 잘 되었다는 의미이지만
현재 공사한 상태보다 더 손을 대었다면 자연파괴의 시비거리가 되겠고 덜 손대었다면 부실 작업의
시비가 되었을 것이라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길 가운데 나무를 자르지 않고 작업을 한 세심한 마음에 감동했다.
그래도 사람의 일에 어디 불만이 없겠는가?
공사에 불만인 지적하라고 한다면 헬기장에서 내려가는 길이 가파라서 쇠파이프에다
나무 받침으로 하여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계단의 간격이 좁은 것과 계단을 만들기 위해서
쇠파이프를 박은 것이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계단의 간격이 좁은 것은 노인들이나 아이들을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생각할 수 있으니 보폭이 큰 사람은 두 계단씩 오르내리면 되지 않는가고 반문을 해 보니
지금의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고 쇠파이프를 박지 않고 나무로 박았다면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아 부스러져 유명무실해져 버려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 버릴 것이 자명하여
쇠파이프를 박아 튼튼하게 하는 것이 또한 옳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여 생각을 고쳐먹기로 하였다.
그리고 등산로 중간중간에 대암산 정상 주차장을 기준으로 거리표식을 해 나간 것을 확인했는데
예산은 한계가 있고 해야 할 일은 많은 합천군이겠지만 이 거리표식이 초계산맥 전체를 한바퀴
돌아와서 초계산안을 내려다보며 열시간 가까운 시간을 소요하면서 초계산맥 일주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끝으로 앞으로 이 산을 찾아 능선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마인드를 이해하며 등산로를 다듬은 분들의
고운 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이런 일은 겉으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아 등한시하기 쉬운 일인데도
예산을 배정해준 합천군수 이하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이 글을 마치련다.
▲헬기장정상에서 내려오는 비탈길 계단
▼거리표시 리본
▲등산로 중간중간에 종전 길이 혼미할 때 표식으로 달아놓은 리본들이
또한 정겨운 느낌이 들었는데 그 몇가지를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아래는 대암산 정상에서부터 정곡저수지 뒤 정상까지
이번에 작업을 마친 소담스런 등산로 사진이다.
▲마지막 사진의 부분은 지난날 가시덤불이 무성하여 어쩔수없이 우회하여 지나
다니던 곳인데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작업의 거침과 힘듦을 말하듯 가시덤불
의 뿌리까지 들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산행중 계속 내려다보이는 초계산안이 그날 날씨가 흐린 관계로 뿌옇게 보인다.
첫댓글 합천사람이고 합천에 살고 있으면서도 무심히 지나쳐 온 부분을 세심하게 챙기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사진의 오솔길 사진을 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짜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번 주말에 맨발로 저 길을 걷고 싶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