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갔다. 올핸 관리자 교육 프로그램이 유독 마음에 들어 공문이 오면 무조건 신청했다. 참 이상한 것은, 전에는 교육이 다 아는 사실을 재탕하는 무리한 교육이란 생각이 들어서 꼭 가야 할 교육 말고는 사양했다. 간혹 교육을 가더라도 강의를 듣는 것이 지루하고 피곤해서 거의 교육시간 내내 졸곤 했다. 물론 적합하지 않은 강사의 강의 내용이 원인일 때도 있었으나 무언가 애착이 없었던 모양이라고 해야 옳다. 그럼에도 올해는 내게 오는 교육공문 모두가 다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같은 일을 하는 이웃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여 교육에 더 애착을 갖게 됐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회가 보장해주는 연령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아쉬움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이리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도 교육의 제목처럼 은근히 직무 스트레스에 젖어든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에서 유발된 자극에 대한 대처능력이 클 때 나타나는 신체, 정신적 증상을 스트레스라고 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픈 데가 없으면 건강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신체의 건강을 뜻하는 것일 뿐 가장 중요한 핵과도 같은 정신적 건강이 빠져 있으므로 완전한 건강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변인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신체적 문제가 전혀 없음에도 어떤 환경에 처할 때 정서가 극도로 변화하는 사람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는 사이코 페스가 그것일 것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교과서적인 건강 즉,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안녕 감을 두루 갖춘 상태야말로 최상의 건강이라 말할 수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삶을 영위해야 하며 그 삶을 위해 그 무언가와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의 원인 중에서 관계갈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보이지 않는 자살의 길로 자신을 내모는 꼴이 되는 데 인간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랄 수 있겠다.
옛말에 원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다. 나를 중심으로 나를 향해있는 모든 것들이 나의 심신을 지배하게 되고 희로애락의 정서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원수로 여기는 그것은 삶의 가장 큰 목표일 수도 있으나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고통의 화살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본다면 스트레스는 자신을 내려놓지 못한 반응의 한 사례로 욕심이 과열된 욕망의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알고 적을 알아야하는데 자신은 모르고 적을 안 결과가 아닐까. 나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의 크고 작은 나를 동시에 느낄 때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물론 영악하게 속내를 감추곤 해서 어른대접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 사이 스트레스는 내 안에서 몸집을 부풀려 영역을 넓히는 바람에 염치에 손가락질을 받곤 했다. 그 이유를 정신과 의사는 다 큰 어른의 마음속에 미숙한 어린이 하나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어린이의 또 다른 이름은 심통인데 그것을 찾아내 이해하는 일이 삶을 유연하게 만드는 방법이랄 수 있으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성인 안에 잠재해 있는 그 어린이는 시기심과 외로움, 화와 경쟁적 사고, 자존심 결여 등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어 인격이 조절되지 않을 때 다중인격의 부정적 정서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안에 있는 어린이 즉, 심통과 자유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성인(成人)이란 뜻일 텐데 나는 왜 그와 부합되는 존재는 성인(聖人)뿐이라고 결론을 내는지, 아,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우리말로 하자면 긴장, 불안, 짜증이라고 한다. 적잖이 마음이 불편해지는 부정적 언어다. 그럼에도, 스트레스가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라면 긍정적인 면을 바라볼 줄 아는 인격을 닦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미꾸라지 양식장에 메기 한 마리를 넣어두는 이유는 미꾸라지에게 적당한 스트레스를 주어 활기를 되찾게 하고 건강한 육질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메기이론처럼 인간에게 적정 스트레스는 삶의 능률을 향상시키며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해 가도록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될 터이다. 소극적인 방법인 ‘왜 그럴까?’에서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인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마음을 두고 관계 갈등에 대처 한다면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심신의 고질병을 만드는 일은 드물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에 이유 없는 삶이 없듯 인간과 관련된 관계 속에서 타인의 문제점만 직시하기보다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어린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따뜻한 교류의 순간을 가져본다면 스트레스와 함께 질병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마구 질주하는 불상사는 면하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자꾸만 성인(成人)과 성인(聖人) 사이에서 뒤가 켕긴다.
(이분남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