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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노라니 몸이 힘들고 마음에 아픔도 많지만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다 보니 .. 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인생길이 순탄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노라니 가시밭길 많지만, 그때마다 내 삶의 길섶에서 따뜻하게 .. 손잡아 주는 이들이 있기에 내 인생길이 순탄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이름이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노라니 실패와 유혹도 많지만 그때마다 '안 된다'하고 일어선.. 내 이름이 얼마나 귀한지를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모습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노라니 눈물 흘릴 때도 있지만 눈물을 그치고 열심히 살아가는.. 내 모습이 건강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착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노라니 나쁜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돌아서서 후회하고 ..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터를 넓혀 가다 보니 .. 이제는 착해진 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퍼온 글> |
오늘 저녁은 옥상에서 저녁을 묵었다. 돗자리에 누워 조용히 하늘을 쳐다본다. 차츰 어두워져 웅석봉 능선만 선명하게 그려진 하늘엔 달은 없고 별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온 하늘이 별 바다로 변한다. 별 천지가 別天地다.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은 높고도 넓다.
우리가 情따라 다닌 햇수가 15년에다, 올해로 회갑을 맞게 됐으니-- 인생은 아름다워! 추억도 아름다워! 지난날들이 감사할 뿐이다.
잘 익은 과일은 가을에 향기가 나듯이, 남은 인생은 향기로운 일들만 있게나. 잊을건 잊고 버릴건 버리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되새기며 이해와 양보와 사랑의 향기가 나는 세월만 있거라.
만나봐야 어디 별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만나 세월을 붙잡아 보는거지. 마다않고 참석해 주니 고맙다 친구야!
2006,8 열락당에서- |
속리타운/영빈관 043-543-2909(숙박예약) 속리 신토불이식당 043-543-0433 화양구곡-빠가사리 매운탕(능운대휴게소) 청주향토음식(올갱이국) 진주냉면(해물육수) 속리산 능선→ |
<길잡이> 인삼랜드휴게소-추부IC-37번-서대산휴양지(잠간 쉬고)-옥천정지용시비,생가(?)-
장계관광단지-속리산숙박(영빈관에 짐풀고 식사)-법주사(산책관광 조각공원 황토길 등)-
37번-청천면-우32번-화양구곡(우암선생과 경치감상)-다시,청천면-32번-좌19번-우511번
초정약수,운보미술관-청주시,한국공예관(다기전시),고인쇄박물관,우암공원(한두곳 들리고)-
고속도-대전-산청
서대산 레저타운
해발 903m 서대산 북쪽 기슭의 성당2리에 자리 잡고 있는 종합관광휴양지이다. 개덕사,원흥사,직녀탄금대,구름다리,신선바위,벼슬바위등 기암절벽이 장관이다.
시인 정지용 (詩人 鄭芝溶)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 8·15 후 《경향신문》 편집국장,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조선문학가동맹을 가까이 했으나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 정부 수립 후 전향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했으나 6·25 때 납북된 것으로 보인다.
충북 옥천읍에서 북동쪽으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곧게 뻗어 나간 산줄기, 일자산(一字山)이 있다. 이 산의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실개천을 이루고 있는데, 이 개천을 건너는 다리가 청석교(靑石橋)이다. 지용은 1902년 6월 20일(음력 5월 15일), 이 다리 바로 옆에 있는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고, 하동 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하여 4대 독자로 태어났다.
우리 시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노래가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향수(鄕愁)』이다. 지용과 함께 1930년대 우리 문단을 풍미한 김기림은 지용이 “조선 신시사상(新詩史上)에 새로운 시기를 그으려한 선구자이며,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소월과 지용은 동갑이지만, 그들의 시를 보면 100년의 차이가 난다”고 유종호는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소월이 한국적 한(恨)의 정서를 바탕으로 정통적이고 잠재적인 모국어를 구사했다면, 지용은 시적 대상의 적확한 묘사력과 언어조탁, 시적 기법의 혁신으로 모국어를 현대화시킨 최초의 모더니스트요 탁월한 이미지스트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 최고 시의 성좌(星座)임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옥천 장계 관광지(대청비치랜드)
안내면 장계리에 위치한 장계관광지(대청비치랜드)는 대청호반의 아름다운 절경을 이용해 향토전시관, 모험놀이 시설, 사계절 썰매장, 물놀이장, 인공폭포 및 연못, 분수대, 야외취사장, 휴게소, 식당 등을 조성하여 가족단위관광객 및 청소년의 휴식공간으로 명실상부한 종합관광지입니다.
보은군 향토 민속자료 전시관
1995년에 개관한 것으로 일제시대의 보은지역 의병들의 재판 판결문, 민속생활자료, 전통음식 등이 전시되어 있다. 부지 600여평(보은군청 입구 )
1995년 10월에 개관하였다. 역사실에는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물을 전시하였으며, 일제시대의 보은지역 의병들의 재판 판결문이 전시되어 당시 보은지역의 의병 활동상을 엿볼 수 있다.
민속생활실에는 교육자료, 의복, 부엌기구, 농기구 등 전통생활용품이 다양하게 전시되고, 조선시대 인체해부도, 동의보감필사본, 그 밖의 민속품이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느낄 수 있도록 전시하였으며, 관람시 보은군내의 문화재를 비디오로 볼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속리산(俗離山)국립공원
1970년 3월 국립공원 지정 한국팔경 중의 하나인 속리산은 태백산맥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하여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1057m인 속리산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변성퇴적암이 섞여 있어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변성퇴적암 부분은 깊게 패여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은 가히 절경을 이루고 있어 광명산(光明山), 미지산(彌智山), 소금강산(小金剛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화강암의 기봉(奇峰)과 산 전체를 뒤덮은 울창한 산림은 천년고찰 법주사와 잘 조화되어 승경(勝景)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峰)을 중심으로 비로봉(毘盧峰), 길상봉(吉祥峰), 문수봉(文殊峰)등 8봉과 문장대(文藏臺), 입석대(立石臺), 신선대(神仙臺) 등 8대 그리고 8석문이 있다.
은폭동(隱瀑洞)계곡, 용유동계곡, 쌍룡폭포, 오송폭포(五松瀑布), 용화온천이 있으며 정이품송(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호) 등 희귀 동물을 포함하여 344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자원의 보고이기도 한다.
법주사(法住寺)
보은의 얼굴로 일컬어지는 법주사는 속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으로 창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창건 이래로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다. 성덕왕 19년(720)과 혜공왕12년(776)에 중창하였는데 이때부터 대찰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고려에 들어서도 그 사세를 이어 홍건적의 침입 때는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환궁하는 길에 들르기도 하였고 조선 태조는 즉위하기 전 백일기도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병에 걸렸던 세조는 딸린 암자인 복천암에서 사흘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정유재란때 충청도 지방 승병의 본거지였다 하여 왜군들의 방화로 모조리 불에 타버렸으며 그후 사명대사가 대대적인 중건을 시작하여 인조 4년(1626)까지 중창이 마무리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친 후 오늘에 이른다.
예전 법주사 가람배치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화엄산앙축과 용화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미륵신앙축이 팔상전에서 직각으로 교차하고 있었으나 1990년에 높이가 33미터에 이르는 청동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그 배치가 흩어져 버렸다.
화양동 계곡 (華陽洞 溪谷)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402-2
청천면 화양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청천면 소재지로부터 송면리 방향 9km지점에서 3km에 걸쳐 화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좌우에 산재해 있는 명승지이다. 넓게 펼쳐진 반석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의 울창한 숲이 장관을 이룬다. 인조~숙종왕때 좌의정을 지낸 대학자 우암 송시열이 산수를 사랑하여 은거한 곳으로 그와 관련된 유적이 많으며, 산자수려한 구곡이 훼손되지 않은 채 잘 보존되어 있다. 경천벽은 기암의 형세가 길게 뻗치고 높이 솟은것이 하늘을 떠받친 듯하다. 운영담물이 소를 이루어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읍궁암은 우암 송시열이 효종대왕이 돌아가심을 슬퍼하며 새벽마다 이 바위 위에서 통곡하였다하여 지어진 것이다. 첨성대은 큰 바위가 첩첩이 겹치어 장관을 이루며 높이가 100m에 이르는 것이다. 금사담은 맑고 깨끗한 물과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널리 펼쳐져 있다. 능운대는 담애에 암서재가 있어 운치를 한껏 돋구아 주며 큰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다.
와룡암은 용이 꿈틀 거리는 듯한 바위가 길게 누워있다.
학소대는 바위산 위에 낙낙장송이 운치있게 서 있으며 이곳에 학이 둥지를 틀었다한다.
파천은 넓은 개울에 바위가 용의 비늘처럼 이어져 있어 티 없는 옥반처럼 느껴지며 화양동 계곡에 잘 보존되어 있다.
<華陽의 의미>
“말은 화산의 남쪽 기슭으로 돌려보내고, 소는 도림의 들에 풀어 놓았다.”
(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挑林之野)
전쟁에 사용한 말과 소를 숲이나 들로 돌려보내어 다시 쟁기나 수레를 끌게 했다는 것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음을 의미한다.
우암 송시열 유적 (尤庵 宋時烈 遺蹟)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청천 우암 송시열유적은 화양동계곡 안에 있는 화양서원터와 만동묘터를 중심으로 암서재,읍궁암,애각서적,묘소와 신도비 등 송시열과 관련된 사적들로 구성되었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하였던 곳에 세워진 서원으로써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으며, 만동묘는 임진왜란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의종의 위패를 모신사당으로서 유지가 잘 남아있다.
이 외에도 화양동에는 충효절의 비례부통등 많은 애각사적이 산재해 있어 송시열의 북벌애국사상과 민족자존정신이 깃든 유적의 성격과 조선성리학의 중심지로서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고 왜곡된 사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송시열 (1607∼1689, 선조40∼숙종15)
조선 중기 문신 학자.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본관은 은진(恩津).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생. 아명은 성뢰(聖賚). 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의 문인으로 성리학과 예학을 배웠고,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 경릉참봉(敬陵參奉)을 거쳐 35년 봉림대군(鳳林大君;후의 효종)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잡혀가자 낙향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49년 효종의 즉위로 다시 벼슬에 나와 장령(掌令)·세자시강원진선(世子侍講院進善)·집의(執義)를 지내면서 13개 조항의 봉사(封事)를 올렸다. 당시 집권당인 서인(西人) 중 청서파(淸西派)에 속했던 그는 공서파(攻西派)의 김자점(金子點)이 영의정에 오르자 낙향,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서적편찬 및 후진양성에 몰두하였다. 김자점 몰락 후, 효종의 북벌계획을 도우며 집의·이조판서 등을 지냈는데 효종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북벌계획은 무산되었다.
초정약수(운보미술관)
초정약수부근 511번 지방도에는 유유어린이 놀이시설, 광명 난관광농원, 운보의 집, 고려도예, 초정약수목욕탕, 구녀성이 연이어 있다. 초정약수는 세계3대광천의 하나로 약600년 전에 발견 되었다.세종대왕이 행차하여 60일간 머물면서 안질을 치료한 적이 있다한다.
운보의 집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화백의 사저로써 약 26,600평의 부지위에 운보미술관, 우향미술관, 도예전시관, 운보공방, 운보찻집 등을 건립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운보선생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특히, 운보선생의 그림을 넣은 각종 도자기를 구입할 수 있다. 약 3,000평 규모의 주차장을 갖추고 있으며, 경내 전체가 자연석, 인공폭포등 휴식공간으로써 많은 시민이 찾아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야외예식장으로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청원(淸原)청주(淸州)고인쇄박물관, 우암산(牛岩山)종합공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흥덕사 터에 설립한 박물관이다. 인쇄 발달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고서와 그림 사진 등이 고려 목판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우암산은 소가 누운 형상이라 하여 와우산 이라고도 불리 우는 주산으로 등산로가 있으며 우회도로, 3,1공원, 우암정, 국립 청주박물관, 우암 어린이회관, 명암유원지등이 있다.
향 수 (鄕 愁)
정 지 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발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
첫댓글 할아버지! 할머니! 더운 여름동안 쉬시지도 못하고 민박관리하시느라 힘드셨지요? 친구분들과 함게하는 즐거운 여행 잘 다녀오세요... 예찬이 올림
예찬아 고맙다. 예찬이도 자라거든 산과 들로 여행을 많이 다니거라. 여행은 어떤 스승보다 못지 않단다.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