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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제 9 구간(오정자재 ~ 방축재)
1. 산행일자 : 2008년 10월 25일(토)
2. 산 행 지 : 강천산(584m) - 전북 순창, 담양
3. 출발일시 : 2008년 10월 25일(토)
4. 출발장소 : 수원 월드컵경기장 정문 옆 여권민원실 앞
5. 참 가 자 : 강동규, 강영재, 노승애, 박봉하, 박상호, 설경자, 안상경, 윤희원, 유선만, 이용준, 장현옥 등 11명 신청
6. 산행 계획 --- 일정 및 소요시간
[1] 총 산행 : 총 약 18.2km, 8시간 40분 정도 소요
[2] 구간별 거리
○ 오정자재(792번지방도, 240m)← [1.6km]→ 510봉 ← [2.2km] → 강천산(583.7m) ← [1.3km]→ 제2형제봉 ← [3.3km] → 산성산(603m) ← [1.7km] → 시루봉 ← [2.4km] → 광덕산(578m) ← [1.6km] → 262.9봉 ← [2.9km] → 덕진봉(370m) ← [1.2km] → 방축재(130.4m, 24번국도)
[3] 일정 및 소요 시간
① 수원(05:00) ∼ 천안논산간, 호남고속 ∼ 정읍IC ∼ 21번국도 ∼ 쌍치면(07:40/아침/08:20) ∼ 792번지방도 ∼ 오정자재(08:50)
② 오정자재(09:00) → 510봉(09:35/09:45) → 암봉(09:55) → 강천산/깃대봉삼거리(10:40/10:50) → 왕자봉삼거리(10:55) → 제2강천호수갈림길(11:05) → 북문(11:50/12:00) → 송낙바위(12:10) → 산성산/연대봉(12:15) → 운대봉(12:20) → 북바위(12:25) → 동문(12:35) → 시루봉(12:40/점심/13:15) → 적우재헬기장(13:50) → 광덕산(14:10/14:20) → 358봉(15:20/15:30) → 332봉(15:50) → 덕진봉(16:50/17:00) → 방축재(17:40)
③ 방축재(18:00) ∼ 추월산국민관광단지 식사 및 숙박(19:00 ∼ )
7. 산행의 실제
[1] 참 가 자 : 강영재, 노승애, 박봉하, 박상호, 설경자, 안상경, 윤희원, 유선만, 이용준, 장현옥 등 10명 참석
<會員 動靜>
♣ 산 그리고 준 : 회장님 환갑기념 산행을 겸해서 정맥을 갑니다. 정맥 일정 탑재가 늦어져 죄송합니다만 긴급하게 차량 대여 여부를 묻는 연락이 와서 가능한한 21일(화) 까지 참가 희망 댓글을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08.10.21 15:31
♣ 새둥지 : 저 갑니다. 08.10.20 18:41
♣ 강영재 : 근데 새둥지는 누구십니까? 윤사장님? 맞다면 윤사장님뒤를 바짝 따라 붙겠습니다. 이번 정맥산행은 회장님 환갑연이 있어 더욱더 많은 분들이 참가하셔야 하는데..... 한배 파이팅. 08.10.21 12:36
♣ 강동규 : 갑니다 08.10.21 09:57 ---> 심마니 : 조속히 시력회복 기원합니다. 08.10.22 01:32
♣ 산 그리고 준 : 참가 신청 빨리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08.10.21 15:32
♣ 박봉하 : 갑니다. 08.10.21 16:03
♣ 산타 : 가겠습니다. 08.10.21 18:35
♣ 심마니 : 가야지요. 08.10.22 01:31
♣ 노승애 : 기다렸습니다. 저도 갑니다. 08.10.22 12:55
♣ 산향 : 저도 갑니다. 08.10.22 17:19
♣ 까치sla : 안상경, 갑니다. 08.10.23 08:17
♣ SanYa : 아이고 늦어서 미안!!! 유선만도 갑니다. 08.10.24 10:09
[2] 날 씨 : 맑음(산행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
[3] 일정 및 소요 시간(산악대장 제공 자료)
① 수원(05:05) ∼ 천안논산간, 호남고속 ∼ 정읍IC ∼ 29번국도 ∼ 답동리(07:50/아침/08:40) ∼ 792번지방도 ∼ 오정자재(08:50)
② 오정자재(08:59) → 510봉(09:34/09:43) → 깃대봉삼거리(10:26) → 왕자봉삼거리(10:29/10:52) → 형제봉삼거리(11:01) → 북문(11:40/12:01) → 송낙바위갈림길(12:09) →산성산/연대봉(12:18) → 북바위(12:26) → 동문(12:30) → 시루봉(12:35/점심/13:48) → 적우재헬기장(14:20/14:34) → 광덕산(14:46/14:59) → 성황당(15:32) → 332봉(16:12) → 덕진봉(16:33) → 방축재(16:54)
③ 방축재(17:05/차량회수/17:47)
[4] 산행 마무리 및 숙박
○ 뒤풀이 : 담양 德仁館(떡갈비, 죽순요리 전문, ☎ 061-381-7881)
○ 숙 박 : 담양군 용면 월계리 추월산 관광단지 은송회관(민박집, ☎ 061-381-8877 )
[5] 탈출로 및 편의사항
○ 태향식당(063-653-1314, 652-1766),
○ 순창개인택시(063-653-3307)
[6] 산 행 기
(1) 산 행 전
10월 말에 접어들었는데도 여름의 꼬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기온이 연일 20도를 오르내려 계절 감각이 혼동이 된다. 길고도 지루한 여름이다. 때가 되면 다음 계절에 자리를 비켜 줘야 함에도 떡 버티고서 움직이지를 않는 것을 보니 참 뻔뻔스럽고 파렴치하다. 그래도 자연의 순리에는 어쩔 수 없는지 기온에 관계없이 가로수와 산은 온통 가을 색으로 갈아입고 아침저녁에는 찬 기운이 옷섶으로 파고든다.
내일(10 / 25)은 호남정맥 9 구간(오정자재 ~ 방축재)을 산행하고 다음 날은 추월산을 돌며 담양호의 멋진 풍경을 보게 된다.
지난 10월 12일 일반산행 때 설악산 안산에서의 만추의 여운이 그대로 남았는데 또 한 번 黃, 靑, 紅으로 물들어 있을 산을 볼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되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산행 대비를 게을리 한 것이 걱정이 된다.
10월 25일 05 : 00시, 박사장이 윤사장과 함께 차를 가지고 집 앞에 대기. 바로 승차해서 경기도 여권 민원실 앞으로 이동 했다. 강사장만 보이지 않고 모두 제시간에 도착해 있다. 강사장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바로 출발이다.
07 : 50분, 순창군 복흥면 답동리(畓洞里)에 도착. 『태항식당』에 들려 올갱이국과 감자탕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오늘 점심시간에 회갑연에 쓸 음식을 분배하여 배낭에 담았다.
<답동리(畓洞里)>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있는 리(里)이다.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추령천이 흐르면서 충적지를 넓게 만들어 복흥면에서 논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구산(龜山), 신기(新基), 농곡(農谷)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이 지역은 논이 많은 곳이란 말로 논골. 농곡 등으로 불리우던 마을로 구산은 후룡의 형상이 영구하산(靈龜下山) 형상이란 말의 준말로 구산(龜山)이라 이름 붙여졌다.
(2) 산행 출발지인 『오정자재』
08 : 40분, 식당을 뒤로하고 『천치재』를 넘어 08 : 40분경 오늘 산행 출발지인 『오정자재』에 도착했다.
오정자재에는 「장수(長壽)와 장류(醬類)의 고장 / 순창 / 안녕히 가십시오!」, 「내장산 25km / 복흥 14km」, 「쌍치 14km / 강천산 4km」,「 ‘전라남도 담양군」 등의 표지판들을 세워 놓았다.
『오정자재』의 원래 이름은 『오누르재』였으나 마루턱에서 전라북도쪽으로 1km쯤 내려간 곳의 마을이 「오정자」이므로 두 이름을 함께 부르다가 『오정자재』로 굳어졌다 한다.
(3) 밤, 약초, 산채 재배농장
08 : 59분, 표지판을 배경으로 단체로 사진 촬영을 한 후 바로 출발을 했다. 산으로 진입을 해 보니 「밤, 약초, 산채 재배농장」표지판을 나무에 매달아 놓았고 좀더 진행하다 보니 사람과 짐승의 접근을 막기 위해 전선을 길게 연결시켜 놓았는데 마치 여자 이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듯 전선을 넘나들며 진행을 하는 것이 너무 不便스럽다.
(4) 510 岩峰과 부처손
선두의 걸음이 빨라지고 산의 고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숨소리도 가빠진다. 물 두병, 간식, 사과 두 알을 배낭에 넣었는데 어깨가 저리고 무게의 느낌이 예전과 다르다. 예상한데로 산행 준비를 게을리 한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겨우 30여분 산행을 했는데 모자창끝으로 땀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지니 앞으로 남은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된다.
숨을 몰아쉬며 급경사를 오르니 평지로 이어진다. 고도표를 보니 493.2봉에 올랐다. 이곳부터 삼각점이 있는 510봉, 493.2봉까지는 비교적 평지 능선으로 이어진다.
09 : 40분경, 삼각점(순창 405-1991재설)이 있는 510봉(여시골산)에 도착, 잠시 숨을 고르며 물 한 모금 마시는 쉼을 가진다.
쉼도 잠시, 510봉에서 좌측으로 바짝 꺾어 내려간다. 510봉을 뒤로한지 10여분, 큰 암봉이 앞을 가로 막는다. 암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밧줄이 매여 있고 「부처손」이 지천으로 나 있다.
<부처손>
부처손은 관다발식물 석송목 부처손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Selaginella tamariscina」고 분포지역은 한국·중국·일본·타이완·필리핀·북인도 등이며 건조한 바위면에서 자란다고 한다. 담근체(擔根體)와 뿌리가 엉켜 줄기처럼 만들어진 끝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서 높이 20cm 정도 자란며 가지는 편평하게 갈라지고 앞면은 녹색, 뒷면은 다소 흰빛이 돈다. 습기가 없을 때는 말리므로 공처럼 되었다가, 습기가 있으면 다시 활짝 펴진다.
잎은 1.5∼2mm로 4줄로 배열되고 끝이 실처럼 길어지며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으며 포자낭이삭은 잔가지 끝에 1개씩 달리고 네모지며 길이 5∼15mm이다. 포자엽은 달걀 모양의 삼각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포자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 전초를 하혈(下血)·통경(通經)·탈항(脫肛)에 사용하고, 관상용으로 가꾸기도 한다. 부처손이란 한자명인 「보처수(補處手)」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출처> 여울목 불로그(http://blog.daum.net/ddr06700/11294456)
「부처손」과 닮은 것으로 「바위손」이 있는데 암봉에 나 있는 것이 부처손인지 바위손인지 구분을 할 수 없다.
(5) 『완자실』과『분통』 갈림 길
밧줄을 잡고 다리에 힘을 주며 암봉에 올라 잠시 주변을 조망하고 봉 삼거리를 지나 안부 사거리에 도착했다. 좌측은 『완자실』, 우측은 『분통』으로 가는 길이다.
안부에서 직진을 해서 잠시 힘들게 올라 6, 7분을 더 진행(10 : 30분경)하니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 넓은 길이 나온다. 파란 기둥의 이정표에는 「병풍바위, 깃대봉 3,000m, 담양분통마을2,000m, 왕자봉, 형제봉 1,500m」라 표시되 있다.
이곳에서 3,000m 지점에 있는 『병풍바위』는 호랑이가 새끼를 낳으면 절벽 위에서 떨어뜨려 살아남은 놈만 키웠다는 이야기와, 절벽 아래 넓적한 암반에서 신선이 노닐었다는 옛이야기가 전하는 곳으로 절벽 밑에 있는 큰 바위는 신선이 잠시 놓아둔 갓이 바위로 변했다하여 갓바위, 또는 선관(仙冠)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분통(粉桶)』담양군 용면 용연리에 있는 마을로 1670여년경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에 분재실(粉在實), 통사(桶事)골 등의 지명이 남아있는데 이 지명의 앞글자를 따 분통(粉桶)이라 불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대흥(大興), 분통(粉桶), 용평(龍平), 소천지(小天持), 세룡동(細龍洞), 용동(龍洞), 등과 함께 용연리(龍淵里)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1961년 10월 1일자 조례에 의거 용연리 1구 분통마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담양군 용면 마을유래>
(6) 가을 산행의 정취
이제 강천산을 찾는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강천산』 주능선을 따라 진행을 하면 오늘 산행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가는 길도 넓고 완만해 휴식을 겸한 산행이 될 것 같다. 더하여 걸을 때마다 낙엽 밟히는 소리가 아삭 아삭 박자를 맞추고 낙엽에 조용히 묻혀 있는 향내도 가는 길을 돕는다. 色과 音과 香이 어우러져 고단한 산행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아마도 이맘 때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산색의 아름다움 때문이겠지만 덤으로 얻는 音과 香이 산행의 서정을 도와주기 때문에 산을 찾는다는 생각이 든다.
(7) 왕자봉 삼거리
『왕자봉, 형제봉』방향으로 약 5분여를 더 진행하니 다시 삼거리가 나오고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 「깃대봉1,390m, 강천산왕자봉200m, 형제봉삼거리780m」라 표시되 있다.
※ 깃대봉 : 전북 순창군 팔덕면, 구림면
왕자봉(583.7m, 전북 순창군 팔덕면) 삼거리에 도착했다. 선행 팀들이 후미로 오는 우리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휴식.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쉰다 했는데 금방 출발이다. 강천산 제1봉인 왕자봉(583.7)을 지척(삼거리 : 마루금에서 200여 m를 벗어나 있음)에 두고서도 오르지 못하고 선두를 따라 나선다.
(8) 형제봉 삼거리
왕자봉 삼거리를 뒤로하고 山竹 길 斜面을 따라 수월하게 진행한지 10여분, 『형제봉(505m, 전북 순창군 팔덕면 / 전남 담양군 용면)』삼거리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구장군폭포1,390m, 왕자봉990m, 송낙바위3,280m」라 표시되 있다.
이정표에 표시된 『구장폭포』는‘마한시대 혈맹으로 맺어진 아홉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서 자결하려다 죽기 전에 한 번 더 싸워보자는 비장한 결의를 다지고 전장에 나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전설이 흐르고 있는 명소로 인공폭포며 높이가 120m가 되며 강천호 갈림길에서 25분쯤 올라 댐을 건너 절벽에 걸린 로프를 타고 오르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들의 모자처럼 생겼다는 송낙바위에 오를 수 있다.
(9) 금성산성(金城山城)
형제봉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산죽길을 따라 465.4봉, 488.5봉, 495.9봉을 돌아나가니 우측 산 아래로 『담양호』의 푸른 물이 시원스럽게 눈에 들어오고 바로 앞에 성벽이 가로 막는다. 가파른 길을 따라 성곽에 오르니 전망이 툭 터지고 좀 전에 본 담양호가 더욱 선명하고 『추월산』도 한 눈에 들어온다. 『금성산성 북문』에 도착(11 : 50분경)했다. 북문터 안내판이 설치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성곽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餘念이 없다.
<북문터(北門址)>
담양군에서 세워 놓은 표지판에는「금성산성의 외성에는 4개소의 문루가 있는데, 이곳은 북문이 있던 자리이다. 북쪽에 치성(雉城)이 있고 운대봉과 연대봉을 지나 동문과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서문과 연결되는데,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고 급경사를 이뤄 성곽을 단이 지게 쌓았다.
북문은 성곽 전체롤 볼 때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서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 외부의 인근마을(담양군 용면 분통리)과 강천사(전북 순창)로 연결되는 좁은 산길이 있다. 성문 바깥쪽 산길 좌우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유사시에는 외부로의 퇴각로로 이용되었을 듯 하다. 문루는 문터 위에 드러난 주춧돌로 보아 정면 3칸, 측면 1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북문터(北門址)』에 대한 소개를 해 놓았다.
산행 후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어떤 산성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금성산성(金城山城)』은 전라남도기념물 제52호였다가 1991년 8월 24일 사적 제353호로 再指定되었다. 삼국시대에 축조되었으며 조선시대인 1409년(태종 9)에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후 1610년(광해군 2)에 파괴된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을 구축하였으며 1622년에 내성 안에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1653년(효종 4)에 성첩(城堞)을 중수하여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담양군 금성면과 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성산에 위치한 금성산성은 해발 603m이며 담양읍에서 동북쪽으로 약 6km 거리에 있다.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이르며 돌로 쌓은 성이다.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으며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건물들이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통로 이외에는 사방이 30여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통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금성산의 주봉인 철마봉을 비롯하여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또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분지로 되어 있어 요새로는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내성 앞에는 별장(別將)을 지낸 가선대부(嘉善大夫) 국문영(鞠文榮)의 비가 있다.
금성산성 문루는 외남문의 경우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우진각 지붕형태에 규모는 24.44m이며 내남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으로 25.44m 규모로 담양읍을 비롯한 금성산성으로 오르는 평야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인 담양 금성산성의 정상에 오르면 앞에는 무등산과 추월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담양호가 펼쳐져 있다.
1994년부터 성곽복원사업을 착수하여 외남문·내남문·서문·동문을 복원하였으며, 외남문은 보국문(補國門), 내남문은 충용문(忠勇門)이라 명명하였으며, 2010년까지 약 7,000m가 넘는 성곽 보수를 비롯해 동헌 등 관아 시설, 대장청 등 군사 시설, 민속촌 등을 조성하여 금성산성을 호국안보 학습장으로 복원할 계획이다.<출처> 두산백과 ’라고 상세하게 소개 되어 있어 그대로 옮겼다.
(10) 시루봉 가는 길(산성산, 운대봉 / 북바위)
『북문터』에서 잠시 휴식을 가지며 추월산과 담양호의 경관을 조망하고 단체로 기념 촬영을 한 후 동문 방향으로 진행(12 : 01분)을 했다.
사면 형태의 길을 따라 10여분 진행을 하니 넓은 공터와 큰 나무 한 그루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제2 강천저수지와 동문, 운대봉 방향의 갈림 길로 이정표(구장군폭포1,810m, 북문0.6km, 형제봉삼거리3.3km, 동문1.0km, 운대봉0.6km)를 세워 놓았다.
삼거리에서 동문 방향으로 산성을 따라 5분여를 진행해 『산성산(603m)』에 도착했다. 쉼 없이 眺望이 좋은 『산성산 연대봉(전북 순창군 팔덕면 / 전남 담양군 용면)』을 뒤로하고 山城을 따라 가니 성곽에 삼각점(순창 446-1981 재설)이 나온다. 『운대봉』이다.
운대봉을 지나 산성을 따라 3분여를 더 가면 『북바위』인데 조망이 뛰어나지만 지난해 일반산행으로 강천산을 왔을 때 올라본 기억이 있어 『북바위』를 20여 m 앞에 두고 우측 성곽 아래로 내려와 『시루봉』으로 향했다.
(11) 동문(東門)
성곽을 내려 와 잠시 진행하니 또 하나의 이정표(구장군폭포1,730m, 북문1.2km, 송락바위2.7km, 동문0.6km, 광덕산2.7km)를 세워 놓았다. 갈림길 마다 이정표를 세워 둔 것은 그만큼 강천사, 강천산의 절경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동문 600m, 산색 좋고 조망 또한 일품인 산성을 따라 진행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룰랄라 길을 따라 3,4분 진행하니 석축과 이정표(시루봉0.5km, 남문1.5km, 북문1.6km)가 나온다. 동문(東門)이다.
<동문 안내판>
"금성산성의 외성에는 4개소의 문루가 있었는데 이곳은 동문이 있던 자리이다. 측단 상부에는 주초석이 일부 드러나 있어 문루가 정면 3칸, 측면 1칸인 것을 알 수 있다. 협축의 성벽을 따라 형성된 옹성이 있고 그 끝부분에는 높게 쌓인 망대가 있다.
망대는 상부평면이 가로 6.25m, 세로 2.50m의 긴 네모꼴이며 바깥쪽 석벽은 2.7~3.8m 높이로 외곽의 성벽에 비해서 높은 편이다. 돌 쌓는 수법은 성벽과 달리 아랫부분에 점판암 계통의 길다랗고 납작한 돌로 쌓아 올렸으며 자연암반과의 부착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망대 아랫부분에는 强灰를 사용하였다. '99년도에 옹성과 성벽을 보수하였으며 다른 門址보다 성벽이 높고 특이한 옹성형태를 가지고 있다."
(12) 시루봉에서
東門을 지나 북바위에 이어 또 하나의 바위봉에 오른다(12 : 45분경). 『시루봉(525.5m, 전북 순창군 팔덕면 / 전남 담양군 금성면, 용면)』이다. 정맥길은 시루봉을 오르기 직전 삼거리에서 좌측 사면으로 빠져야 하는데 오늘 산행을 함께한 한배 산꾼들이 시루봉에서 점심 식사 겸 회갑연을 베풀겠다고 한다.
산봉에 올라보니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준비해 온 생일케익, 떡, 전, 과일 등 푸짐하게 음식을 펼쳐 놓았고 코펠에도 불을 지펴 음식(쇠고기)을 끓이고 있다. 더하여 장부장님은 노란 落葉으과 둘레를 만들고 중앙에 빨간 단풍잎을 붙여 멋진 관을 만들어 내 머리에 씌워준다.
더디어 회갑갑연 준비가 다 되었다. 선물 증정, 생일 축하 노래, 촛불 끄기 등 어느 연회보다도 값진, 그리고 이색적인 회갑 잔치가 열렸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한배 산꾼들의 성의가 고맙고 감사하다.
금년 초, 윤사장님의 산중 회갑연을 시발점으로 한배 산꾼들의 회갑은 山峰에서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장부장, ‘나도 꼭 山에서 回甲을 할 것인데 한배 산꾼 모두가 참석을 해야 한다.’고 德談을 한다. 장부장 회갑까지 다리 힘을 잘 다져 두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한 시간여(12:35/13:48) 喜喜樂樂한 시간을 갖고 오늘 산행의 가장 고비가 되는 『광덕산』을 향해 출발을 했다.
(13) 광덕산(廣德山, 564m) --- 강천산
시루봉을 뒤로하고 암봉, 철계단을 내려와 완만한 능선 길을 30여분 진행, 광덕산 오르기 직전의 안부 헬기장에 도착했다.
이정표( (구장군폭포1,940m, 광덕산450m, 송락바위3,240m)를 보니 광덕산 정상까지 450m, 가파른 오름 길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점심 식사 힘을 모아 광덕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바탕 숨을 급하게 몰아쉬며 오르기를 15분, 철계단 난간을 잡고 오른 곳이 광덕산 정상이다. 오늘 산행의 가장 고비인 『廣德山, 564m』에 올랐다(15 : 05분경). 정상석(해발 578m, 순창군)과 이정표((구장군폭포 2,000m, 북바위 2360m, 강천사 2,230m)가 세워져 있고 나무에는 많은 산행 표지기가 달려 있다.
깃대봉, 왕자봉, 형제봉군의 강천산과 연대봉, 운대봉, 시루봉 군의 산성산, 그리고 광덕산(선녀봉)을 통틀어 강천산이라 부른다.
『강천산』은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 해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으나, 조선중기 학자 송익필(1534~1599) 선생의 ‘숙(宿) 강천사’라는 시가 널리 알려지면서 강천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호남정맥에서 살짝 벗어나 있으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이다. 광덕산(廣德山 564m)·산성산(山城山 603m)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1981년 1월7일 한국 최초의 순창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아담한 산이지만 병풍바위 · 용바위 · 비룡폭포 · 금강문 등 이름난 곳이 많다. 또 광덕산 · 산성산에 이르기까지 선녀계곡 · 원등골 · 분통골 · 지적골 · 황우제골 등 이름난 계곡만도 10여개나 된다. 여기에 용바위 · 호두암 · 투구봉의 바위들과 금강굴 · 수좌굴 · 형제굴 등 신비로운 동굴들이 어우러져 있다.
강천산-광덕산 능선의 서쪽 계곡의 물, 담양호의 물은 영산강이 되어 목포로 흘러내려가고 동쪽의 물은 강천제, 순창읍을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14) 덕진봉(德進峰) 가는 길
광덕산 정상에서 넉넉한 휴식을 갖고 출발, 앞서 가던 산악대장, 가다 멈춘다. 길을 잘못 들어선 모양이다. 광덕산 정상은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고 정상에 오르면 직진 방향으로 길이 뚜렷하게 나 있고 표지기도 많이 달려 있는데 이 길은 『신선봉』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며 정맥은 철계단 있는 곳으로 되돌아 나와 정상 직전의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길 좋은 건너편 산줄기를 탄 것이다. 다시 정상으로 오르는 것도 난감하여 산허리를 가로질러 건너편 산줄기로 올라섰다. 뚜렷한 산길, 마루금이다.
급한 내림길, 임도 ---능선---삼거리---임도---숲---돌무더기---묘를 거쳐 358봉에 올랐다. 지척에 332봉이 지척에 있고 멀리 덕진봉도 눈에 들어온다. 휴식, 다시 출발, 대장과 박사장, 유장학관, 노, 장부장은 부지런히 앞서 가고 안교장과 윤사장과 휴미로 처져 332봉(뫼봉)을 거쳐 가다 쉬기를 거듭하며 마지막 고비 384m 『덕진봉』에 올랐다(16 : 50분경). 덕진봉 정상에는 절반쯤 싸놓은 돌탑이 있고 나무에 덕진봉 표지판도 매달아 놓았다.
(15) 덕진봉(德進峰, 370m)
『덕진봉(德進峰)』은 ‘전남 담양군 금성면과 전북 순창군 금과면, 팔덕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순창군 팔덕면 『德進마을』에서 이름을 따온 모양이다.
『德進마을』은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昌德里에 속해 있는 마을로 현 팔덕면이 1897년 팔등방과 덕신방으로 분리될 때 덕진방의 소재지였으며 「효례골 또는 소례골」이라고도 부르는데 南으로 금과면과 경계를 이루는 낮은 언덕지역으로 「덕진, 평지(平地), 동고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평지(平地)는 양(陽)인 하늘(天)과 음(陰)인 땅(地)의 유래로 근원이 되겠으나 마을의 지형상이 음혈(陰穴)이라 음기가 충만하다 하여 마을에 남근석(男根石)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민속자료를 두고서 확인을 하지 못하고 산행을 하는 것이 아쉽다. 추후라도 기회가 되면 창덕리와 산동리의 남근석을 보았으면 싶다.
(16) 금과면 방축리(防築里), 방축재
17 : 05,『덕진봉』 출발했다. 山 斜面형태의 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약 5분여를 진행하니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 3분여를 더 가니 대나무 숲과 폐농가가 나온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지점 『방축리』에 도착한 모양이다.
대나무 숲을 지나 마을 시멘트 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를 5분여, 슈퍼가 있는 24번 국도변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강부장을 휴대폰으로 호출하니 금과면 파출소 앞에 있다고 한다.
파출소 앞에 도착하여 대원들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다시 확인, 금과면 파출소 반대 방향인 금과 출장소 앞이라고 한다. 방향을 바꿔 10여분을 내려가니 출장소 건물이 있고 횡단보도 끝 지점에『방축마을』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담양군 금성면과 순창군 금과면의 경계지점인 『방축재』에 도착을 했다. 오늘 산행의 종착지다.
『방축(防築)마을』은 순창군 금과면에 있는 마을로 전설에 따르면 동쪽으로는 배를 메어두는 배매산이 있고 마을에는 물이 가득 고여 있는 방죽으로 제방을 막아 취락을 이루었다하여 방죽골이라 불리었으나 마을의 형상이 쪼그리고 앉은 쥐를 삽살개가 쫓으려하는 모양(방축 : 尨逐)이라 하였던 것인데 한자표기하면서 방축(尨逐)을 방축(防築)으로 기록이 되었다고 한다.
대장과 박사장, 차를 돌려 오는 동안 「금과 토종 순대(위치 : 금과 검문소 앞, ☎063-652-1560, H.P011-9627-6299, 011-9449-6299, 김형남, 박순덕 / 소머리국, 옛날순대, 순대, 소수육 전문)」집에 들려 맥주 두 병을 시켜 칼칼한 목안을 적시는데 주인아주머니, 따끈한 순대국을 한 그릇을 내온다. 아주머니의 따끈하고 훈훈한 인심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컵을 마시니 산행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다.
(17) 산행 마무리
잠시 후 대장과 박사장 도착, 담양으로 이동「德仁館(담양읍 백동리 408-5, ☎ 061-381-7881 떡갈비, 죽순요리 전문점」에 들려 떡갈비와 죽순 무침을 푸짐하게 시키고 이스리 잔을 부딧치며 저녁 식사 겸 산행 뒤풀이를 하고 늦은 시간에 숙소인 「은송회관, 민박집, 담양군 용면 월계리 217-3, 추월산 관광단지 주차장 200m 후방, ☎061-381-8877, H.P019-611-8877, 초재남, 메기탕, 토끼탕, 송어회, 가물치, 촌닭, 오리, 빙어회 전문)」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호남정맥 9구간 산행을 마쳤다.
<참고자료>
○ 昌德里男根石(전북민속자료 제15호)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민속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에서 창덕리로 넘어가는 농로 아래 ‘미륵쟁이’라 부르는 곳에 있으며, 높이 165㎝, 둘레 145㎝이다. 화강암으로 섬세하고 대담하게 남자의 발기된 성기 모습을 조각하였다. 하단부에 조각된 연꽃 등은 다른 남근석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정확한 조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청상과부가 산동리에 1기를 두고, 이곳에 또 1기를 두고 갔다는 설이 있다. 또다른 전설은 15세기경에 태촌마을에 한 거지가 살았는데 신분 때문에 결혼이나 성생활을 할 수 없음을 비관하고 그 설움을 나타내고자 남근을 조각하여 이곳에 세웠다 한다. 자손이 귀하거나 불임증이 있는 여자가 이곳에서 공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많은 부녀자들이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이곳에서 기자제(祈子祭)를 지냈다.
○ 산동리남근석(민속자료 제14호)
팔덕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쯤 가면 '팔왕터'라는 마을(산동리 272)이 있는데 이 마을 앞에 조각된 화강암의 남근석(男根石)이 세워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미륵"이라고도 하는데 제작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그 크기는 높이 2.0m이고 지름이 150cm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에는 이곳에서 아들을 원하는 부녀자들이 주변에 움막을 치 고 치성을 드리기도 하고 음력 정월 보름밤에 음식을 장만하여 그 앞에 차려놓고 아들낳기 를 빌었다고 한다.
또 아들을 두지 못한 사람은 이 마을에 이사하여 사는 것만으로도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전설에 의하면 약 5백여년전 한 청상과부가 두 미륵(남근석-男根石)을 치마폭에 싸가지고 오다가 하도 무거워서 하나는「미륵쟁이(창덕리 昌德里)」남근석이 있는 곳에 내려놓고 하나만 이곳 팔왕터로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이에 얽힌 전설이 많이 있으나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이 남근석 주변에는 철책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 平地(평지) 마을 : 이곳 이름을 소머리와 같다고하여 와우터라 했고 또한 소의 핑경을 비유 핑경터라고 하다가 말이와전되 핑징으로 발음 오늘에는 핑징이라고 하 였으나 행정구역 개편 (1972년)으로 평지라고 칭함.
※ 東古(동고) 마을 : 5백여년전 김해김씨의 자손으로 덕망이 높은학자가 산수좋은 고을을 찾 아 이곳에 정착 동고지라 하다가 행정구역 개편(1972)으로 동고라 칭함.
※ 台村(태촌) 마을 : 마을은 5백여년전 남원윤씨가 남원에서 살다가 산동지구 구령굴로 이사 하여 생활하고 있다가 태봉산 아래터가 좋다하여 이곳으로 이사하여 살았다고 함
※ 방축(防築)마을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있는 리(里)이다. 서쪽에 덕진봉(德進蜂, 380m)이 있고 그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서쪽은 높고 동쪽은 낮은 지형이다. 방죽골, 전자촌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방죽골이라 부르던 것이 제방을 쌓아서 마을이 형성되었기에 방축리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제방을 쌓은 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방죽을 막을 만한 위치가 못되며 설사 방죽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방축(防築)이란 말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마을의 형상은 쪼그리고 앉은 쥐를 삽살개가 쫓으려 하는 모양(尨逐 鼠)의 준말로 방축(尨逐)이라 하였던 것인데 한자표기하면서 방축(防築)으로 기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8.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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