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찾아간 곳은 금역당 사당 및 종가입니다.
종가는 흥해 배씨의 종가입니다.
신라 6촌의 성씨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리 이사금이 양산촌을 양부(梁部)라 하며 이씨(李氏)를, 고허촌을 사량부(沙梁部)라 하며 최씨(崔氏)를, 대수촌을 점량부(漸梁部) 혹은 모량(牟梁)이라 하며 손씨(孫氏)를, 간진촌을 본피부(本彼部)라 하며 정씨(鄭氏)를, 가리촌을 한기부(漢祇部)라 하며 배씨(裵氏)를, 고야촌(명활부, 明活部)를 습비부(習比部)라 하며 설씨(薛氏) 성을 주었습니다.
배씨는 신라를 대표하는 성씨입니다.
역사에 나타난 큰 인물로는 고려 개국공신인 배현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가 멸하고 조선이 개국할 즈음에, 조선 개국에 반대하고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 중에 백죽당 배상지가 있습니다.
백죽당 형제가 금계로 낙향을 하였던 것은 외가가 그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백죽당 형제는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와 함께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의 외손이며, 손홍량은 일직(一直)에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백죽당 배상지는 목은 이색의 문인으로 벼슬이 통훈대부(通訓大夫) 판사복사사(判司僕寺事)에 이릅니다.
배상지는 고려의 국권이 흔들리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물러났다가, 포은 정몽주가 순절하였을 때 동지 70여 인과 함께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칩거하고, 나중에 안동 금계리로 옮겨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금계로 내려와서 고려가 망함에 이르자 측백나무[栢]와 대나무[竹]라는 두 글자를 써서 당호를 백죽당이라고 함으로써 고절한 기개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임연재(臨淵齋) 배삼익은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58년(명종 13) 생원이 되고, 1564년 식년문과에 급제, 학유(學諭)를 역임하였습니다. 1573년(선조 6) 홍문관에 등용되었으며, 풍기(豊基)현감·양양부사를 지내고. 1584년 교리(校理), 이듬해 사간(司諫)을 역임하고, 1587년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588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가 큰 흉년을 만나 구황(救荒)에 힘쓰던 중, 병을 얻고도 민정시찰을 강행하다가 순직하였습니다. 힘찬 필법(筆法)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고 문집 《임연재문집》이 있습니다.
금역당 배용길은 임연재의 아들로 거문고와 주역에 능하여 금역당이라 호를 지었다 합니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결벽한 성품이어서, 그 아버지 상사에 본도(本道)에서 주는 부의가 매우 많자 “어찌 상사로 인해 치부를 할 것인가.”라고 하여, 사양하여 물리쳤습니다.
임진왜란에 적이 밀물처럼 휘몰아 덮쳐, 8도를 휩쓸어 공이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김해의 구사와 합쳐 대장 김해의 부장이 되어, 용궁 등지에서 적을 겨루어 쳐서 사기가 크게 떨쳤습니다. 정유재란에는 화의를 반대하는 상소로 실계칠사(失計七史)를 논했으며, 또 시무 6조를 상소했습니다. 1630년 임진란의 공으로 선무원종공훈을 받고 통정대부 좌승지에 증직되었습니다.
임진왜란에 원병을 이끌고 안동에 머물렀던 명나라 장수 주원조(朱元兆)의 금역당 시는 공의 인품과 격 높은 풍류를 잘 묘사하였습니다.
마침 종손께서 집에 계셔서 배문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연로하심에도 긴 시간 할애하여 은혜를 주신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세 번 째 찾아간 곳은 이태형 고택입니다.
집 안 텃밭에 수확하고 남은 배추가 좀 있고, 사람의 온기가 없네요.
고성 이씨의 관향은 경남 고성을 말하는데, 고성의 옛 이름이 철성이므로 철성 이씨라고도 합니다.
이 곳 안동에서는 고성 이씨 관련해서 임청각이 유명하고, 독립 운동가인 석주 이상용 선생이 고성 이씨 집안의 큰 인물이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은곡서당입니다.
서당이라 규모가 작아서 사당은 없고, 지금은 고택 체험의 장소로 사용되어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손님맞이 청소가 한창이었다.
은곡 박진은 반남 박씨인데, 반남은 지금의 전라도 나주이다. 저번 답사에 가보았던 영주 수도리에 세거한 두 성씨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행랑채 처마 밑에 준비해 놓은 화목이 예뻐 보여서 찍었다. 장식인지 진짜 화목으로 쓸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간식을...
총무님이 늘 부지런하시다. 감사 감사 ^_^
커피와 직접 구운 쿠키(?)이다. 허기와 추위를 달래는데 안성맞춤이다.
아이조아님은 석동가는 길이 정겨운가 봅니다.
지나가는 버스를 세워서 차편을
확인
하고...
해서 석동을 한 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용상 칼국수집에서 들깨수제비로 저녁식사를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첫댓글 역시 슈렉님이십니다.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으며 읽었습니다. 감사!!
읽어주셔서 감사 ^_^
연말 이리 저리 바삐 다니다 감기가 10일이 넘도록 안 놓아줘서... 헤매다 이제사 들어와 봅니다. ^^ 내년도 슈렉님 답사 안 가시면 큰 일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