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의 미덕
며칠 전, 그러니까 대구에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고 있는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도서관에서 온 것으로 빌린 책 한 권이 연체되었으니 반납하라는 내용이었다. 읽지도 않은 책을 방구석에서 찾아 밖으로 나가니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첫 눈이 저리도 많이 내리다니 운동화 꼭지가 잠길 지경이었다. 대구에 온 이후 세 번째 겨울 같은데 눈이란 걸 도무지 처음 본 것 같다. 메마른 대구 땅에 눈이 쌓이도록 내렸으니, 길거리에는 눈놀이 하는 아이들의 소란으로 가득했다.
난 책을 그대로 들고 도서관으로 가는 대신 동화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급행1이 동화사로 간다는 사실을 오래 전에 체크해 놓은 바 있다. 동화사로 말하자면 주변의 산책길이 아름답고 그 배경에 팔공산이 있어 산행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소시적에는 데이트하러도 가끔 갔던 명소다.
자고로 절이란 무엇보다 배경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백나무의 사연 때문에 붙여진 동화사桐華寺, 예나 지금이나 팔공산과 더불어 대구의 쉼터이고 위안이다. 나는 동화사로 향하는 버스의 안에서 눈 덮인 세상을 내다보며 주책없이 추억의 치기에 젖었다. 손잡고 걷던 산길이며 나뭇가지 사이에 달려 있는 초승달을 보며 한숨짓던 일이며... 아이들과 강아지가 가장 좋아하는 눈, 이게 종종 초로初老 인생의 마음도 들뜨게 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데 동화사 가기 몇 km 전 지점에서 버스가 멈추더니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일어나서 무슨 일이냐고 앞을 내다보는데 수많은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미처럼 길바닥에 달라 붙어있었다. 무슨 사고가 났나 하고 불평들을 하고 있는데 한참 지나서야 운전수에게로 무전이 날아왔다. 눈 때문에 동화사 쪽으로는 차가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여 불만을 토로했다. 눈을 보러, 그러니까 가능한 한 훼손되지 않은 순정한 눈을 보겠다고 산엘 가려는데 눈 때문에 갈 수 없다니.
그렇게 버스는 눈에 막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기다시피 시내로 돌아왔다. 성서 도서관 까지 오는데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눈 때문에 버스 안에 갇힌 나는 무거운 시간의 정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들고 간 책을 펴 보았다. 디지털 시대의 영상학인가 뭔가 하는 딱딱한, 최소한 눈의 서정과는 거리가 먼 책이었는데 얼마 전에 고 3을 대상으로 문학과 영화라는 특강을 하면서 빌린 책이었다. 순전히 차안에 갇힌 시간이 지겨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도서관 쪽에 왔을 때는 건성이나마 책을 거의 훑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덕분에 빌린 책을 보지도 않고 연체료만 지불하는 사태는 면하게 된 셈이다.
결국 폭설이 동화사 산책로를 걷는 센티멘털리즘을 버리고 책 한 권을 읽게 한 셈이니 전화위복이라면 전화위복이었다. 폭설이 미덕이 된 셈인데, 요즘 하는 말로 느림의 미학을 본의 아니게 실천해 본 것이다. 최근에 한국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설은 경제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안겨준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손실과 불편만 있었을까? 혹시 눈 속에 발이 묶여 뜻 밖에 주어진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뭔가 인생과 세상을 성찰해 보는 기회를 누린 사람은 없을까? 사실 속도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이 스스로 속도를 줄일 힘은 없다. 폭설이 강제로 그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고 느림의 미덕을 실천하게 했다면 폭설이 순전히 손실이나 불편만은 아니었지 않나 생각한다. 한지만 산다는 거, 성찰해 본다고 무슨 답이 나오나? 유구무언이다.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
눈이 문학에서 얼마나 각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다. 대체로 눈은 순정성이나 낭만성을 매개하며 많은 러브스토리의 배경으로 동원되었다. 가령 <러브스토리>나 욘사마 (배용준)를 탄생시킨 <겨울연가>에 눈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런데 이런 낭만적 배경과는 달리 폭설로 인해 사람들이 어떤 곳에 갇혀 본의 아니게 겪는 일들을 주제화한 문학 작품도 많이 있다. A. 크리스티의 <쥐덫>이나 이종호의 <폭설>은 눈 속에 갇힌 인간들이 벌이는 엽기적인 사건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고 정채봉의 <오세암>이나 김도연의 <검은 눈> 은 눈 속에 갇혀 오히려 도를 깨치는 불교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눈이 매개가 된 작품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오르한 파묵의 <눈>만한 게 있을까 싶다. 파묵은 터키 사람으로 2006년에 조국에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었으나 터키의 인권문제를 건드린 괘씸죄로 되려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소설가다. 대체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아랍 쪽 작가들 중에는 이런 아이러니컬한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Kar 독일어 판
<카르 Kar>, 터키 말로 눈이다. 주인공 이름도 비슷한 카(Ka). 40대 중반을 향하는 싱글 남자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2년간 망명의 세월을 보내다가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이스탄불로 귀향한다. 대학생 때 별 생각 없이 운동을 좀 하다가 쫓겨 독일로 도망가 12년이나 외국에 머문 것이다. 내가 독일에서 보낸 세월과 비슷하다. 이스탄불에 간 카는 신문사에 있는 옛 친구를 만난다. 그런데 친구는 터키 동북쪽에 있는 카르스Kars란 소도시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임시 기자증을 가지고 가 취재를 좀 해오라는 부탁을 한다. 이상한 일이란 이 도시에 이슬람 소녀들이 연쇄적으로 자살하는 사건을 말한다.
카르스는 터키 변경지역에 있는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으로 이슬람 전통주의와 현대식 개혁주의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소도시다. 무엇보다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카는 물론 글(시)을 쓰는 사람이긴 하지만 현실 정치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그가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여 카르스로 떠나는 것은 순전히 사적인 관심사 때문이었다. 학생 때 사랑했으나 피치 못해 해어진 여인이 있었으니 이펙Ipek이라 이름하는 여자였다. 그녀가 다름 아닌 카르스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펙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이혼당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있다는 것이다. 남자의 순정이 백년설처럼 녹지 않고 있다가 다시 빛을 발한다.
그러니까 옛 애인에 대한 그리움이 카를 눈의 도시 카르스로 떠나게 한다. 그가 시외버스를 타고 어렵게 카르스에 도착하니 카르스는 듣던 대로 폭설에 뒤덮여 있다. 외부와 완전히 두절되어 섬처럼 갇힌 세계다. 마치 카프카의 눈 쌓인 <성>을 연상케하는데, 잘 알듯이 <성>의 주인공도 비슷한 이름인 K 아닌가. 카르스라는 눈의 도시에서 옛 여인을 만난 카는 희열에 찬 섹스를 하는데 작가는 그 뜨거운 폭풍이 지난 뒤의 상황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들은 침대에 누워 말 없이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카는 이펙의 눈에서도 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이쯤되면 눈이 전방위적인 모티브로 동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카르스에서 카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화,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복잡다단한 갈등의 현장에 휩쓸리며 옛 애인을 만나 다시 사랑을 엮어나가는데, 이것이 500 페이지가 넘는 <눈>의 내용을 장식한다. 그야말로 눈 속에서 일어나는 격변의 역사이고 눈으로 인해 전개되는 비극적 러브 스토리다. 비극
적이라 함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는 이펙을 프랑크푸르트로 데려오는 데 실패한다. 이펙은 남편과 이혼하기 전부터 이미 어떤 이슬람주의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카를 수용한 것은 그 남자를 잊기 위한 일종의 도피수단이었을 뿐이다. 혼자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온 카는 외롭게 카이저가 Kaiserstrasse를 거닐다가 동족에게 살해당한다.
Frankfurt Kaiserstrasse
이렇듯 <눈>은 눈의 미덕, 눈의 미학, 눈의 폭력을 노골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나도 자세히 읽어 본 책은 아니나 독일에서는 꽤 명작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다. 혹 눈 때문에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시간 보내기가 막막하다면 한 번 즘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정치적으로 유럽에서 늘 이슈가 되고 있는 터키란 나라의 사정도 좀 알게 되겠지만 터키 사람들의 감성이 의외로 한국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점도 흥미로울 것이다. “눈의 신비로움이 나를 신에게로 이끈다”는 고백은 터키인들의 자연의식이 얼마나 동양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터키는 우리 카페지기에게 각별한 나라이고 프랑크푸르트는 cosmos에게 좀 친근한 도시가 아닌가 싶다. 하여 Fortsetzung erwartet.
첫댓글 배경음악 넣기에 성공하셨군요... 감축~~~ 눈구경하겠다고 오르막코스 창창한 동화사 갈 생각하고 무작정 버스탄 선배의 대책없는 감성에... 앞이 안 보일정도로 눈이 많이 오던 몇 해전 S-Bahn 타고 Karlsruhe Schloss 갔다 온 기억이 나네요. 오르막 전혀없는 철도를 선택한 내가 그래도 선배보다는 대책이 있네... 모르고 간 Schloss에서 하는 전시회도 보았으니 폭설의 미덕을 저도 경험하긴 했네요. 터키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
덕분에 드디어. 그런데 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Karlsruhe Schloss엘 갔어다고? 내가 Schlosspark에서 보낸 세월이 적어도 4-5년은 되지. 공원 연못에 있는 오리 수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언젠 또 터키 관광에 대해 열변하더니. 오늘 일어나니 12시라 하나님-dienst엔 못 갔다. Oh, Herr vergib mir!
터키는 여전히 또 여행하고 싶은 나라 중 하나여요. 볼 것도 많고... 1시반 청년부 예배라도 가야 Dienst 로 의식하는 것이지 않나여?
그래도 송구영신에 가서 주님 앞에서 마음을 좀 쇄신했기에 어제 같은 날 주를 앞에 두고도 크게 흔들리지 않은 거 아니겠나. 우짜든동 건전하게 한 해 보내야지.
터키....내두 인연이 많은데......... 동로마제국의 영화가 숨쉬는 곳....언제 단체로 함 가장....
경묵이, 유럽에 10년도 더 있어도 터키 구경 한 번 못했는데 네가 터키엘 다 갔다왔단 말이지. 그런데 대구에서 모디는데도 안 나타나면서 거가 어디라고 같이가자 하노. 일단 얼굴이나 한 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