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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밤
출12장40-42절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삼십 년이었다.◎ 마침내,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 날, 주의 모든 군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 ◎그 날 밤에 주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의 밤'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 위대한 꿈이 이끌어간 삶-요셉 ●
사람들의 꿈 가운데는 하루 빨리 ‘깨어나야’ 하는 ‘헛된 꿈’이 있는가 하면,
비록 쉬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서 꼭 품고 가야 하는
‘참된 꿈’도 있습니다.
사람들 가슴에 품은 꿈의 ‘헛됨’과 ‘참됨’을 가늠하는 잣대는 뭘까요?
꿈이 ‘어디에서 왔느냐’하는, 꿈의 <출처>가
꿈의 가치를 재는 잣대라고 생각합니다.
세속의 욕망을 꿈꾸며, 안목의 정욕에 젖은 자리에서 생긴
꿈이라 한다면 아무리 그 꿈이 아름답다 할지라도
헛된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어주신 꿈이라면
그 꿈을 놓아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는 축복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꿈의 사람 요셉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꿈이
그의 인생을 이끌고 갔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께서
그 가슴에 지어주신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었습니다.
요셉의 별명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꿈쟁이 요셉의 꿈은 전혀 현실성은 없었으나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기 까지
요셉의 생애를 보면 만만찮은 생을 살았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겨우 목숨은 부지했으나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바로 왕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에게 발탁되어
그의 심복이 되어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억울한 모함을 받아
왕궁안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꿈의 사람에게는 감옥도 기회의 장소였습니다.
거기서 시종장의 꿈을 해몽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바로왕 앞에 서고, 바로의 꿈을 해몽하여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창41:38)>이라는 인정을 받고
전격적으로 총리대신이 됩니다.
창세기39장2절에는 이런 요셉을 두고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창세기39장5절b에는
[주님께서 요셉을 보시고, 그 이집트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주께서 내리시는 복이, 주인의 집 안에 있는 것이든지,
밭에 있는 것이든지, 그 주인이 가진 모든 것에 미쳤다.]고 합니다.
꿈쟁이 요셉의 생애를 보면-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가슴에 품은 당신의 꿈과 함께 하시고,
앞길이 잘 열리도록 하나님께서 돌보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교우들 모두가 이런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를 복으로 채워져 주시는
거룩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지어주신 꿈으로 끝내 세상을 이기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이 우리로 인하여 축복을 받는
위대한 꿈의 사람이 다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빈들공동체-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있는 사람들 ●
꿈은 현실에서 그 현실을 넘어서게 하는 희망입니다.
그래서 꿈은 현실보다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차라리 현실만도 못한 꿈이 있습니다.
우리의 꿈이 세속의 안목에 깊게 빠지면 빠질수록 꿈이 허황해집니다.
그 헛된 꿈은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능사입니다.
그 꿈은 눈을 뜨고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헛된 꿈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꿈은 미래를 현실로 당겨오는 능력입니다.
그 꿈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 꿈은 하나님의 꿈입니다.
내 가슴에 품고 있지만 그 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꿈으로 요셉처럼 힘든 세상 너끈하게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꿈’이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때
우리는 꿈을 ‘비전’이라는 조금은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비전>이란 말은 잠언 29장18절에 나오는 <계시>라는
히브리 단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시가 없으면 백성은 방자해지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말씀에서 <계시>를
영어성경 흠정역(King James Version)과
RSV(Revised Standard Version)번역판에서는
‘Vision’(비전)으로 풀어,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번역했습니다.
이 <계시>라는 뜻의 히브리 단어 <하존(hajon)>은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같은 단어를 우리말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묵시’라고 했으며 ‘예언’으로도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잠언서에서 [계시가 없으면 백성은 방자해지나(29:19a]하는 구절에서
<방자해지다>는 말의 히브리어 단어<이파라(ipara)>는
<멸망하다> <사라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의미를 새겨보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없는 공동체는 망하게 되고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뜻이지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분명한 비전-즉 하늘의 뜻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시고 부흥하게 해주십니다.
우리 빈들공동체는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있음을 우리교우들이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올해는 우리가 품은 하늘의 뜻=하나님의 비전으로
반드시 부흥하는 빈들공동체가 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새로운 교회’라는 꿈을 지어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하여 부흥지로의 비전도 보여주셨습니다.
<기드온의 300용사>는 새로운 교회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지어주신 빈들의 비전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의 꿈과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빈들공동체의 부흥을 위한 비전은 우리의 뜻이 아닌
하늘로부터 우리 가운데 임재 한 하나님 당신의 꿈입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요셉의 꿈처럼 우리의 꿈도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을 위하여 이루어 진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위하여 이루어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꿈도 주님 당신의 거룩한 영광을 위하여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 주시는 힘으로 좌절하지 않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
그리하여 끝내 하나님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사람들-
우리 빈들공동체 교우들 모두가 그 사람들이기를 축원합니다.
● 부흥은 우리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라는 말씀으로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위하여-
믿음으로 헌신하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날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올 한해도 성경말씀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비전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그 비전이 이루어지는 길로 우리를 인도 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비전(꿈)을 보여주시고,
당신의 비전을 목소리로 들려주시고, 말씀 가운데서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찾아오시어 직접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생명의 말씀을 읽으면서 복된 우리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비록 보여줄 만한 것이 없어도 당신께서 보여주신 꿈으로
우리 현실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가-앞을 알 수 없는 내일을
오늘의 일처럼 보면서-흔들림 없이 나아갑니다.
올 한해 우리 빈들공동체가 부흥지로를 위한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믿음 가운데 힘 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당신의 말씀 안에서 거룩한 능력으로 사로잡아주시기를 빕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가
근사한 믿음의 사람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당신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시겠다는 위대한 비전을 위하여
모세를 부르신 주님께서는 오늘 타락한 세상에서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실 새로운 교회로
빈들공동체를 세우시고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를 빈들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런 하나님 섭리와 뜻이 있습니다.
이미 25년 전 우리에게 새로운교회라는 소명을 지워서
빈들공동체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빈들공동체를 새로운교회로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는
그 섭리를 이룰 당신의 백성을 불러 세웁니다.
우리를 빈들에 부르신 것은 하나님 당신의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 필요가 있게 한 전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자하는 주님,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와 긍휼이었습니다.
올해 부흥지로를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헤아리면서,
우리 한 해 동안 인도해주실 하나님의 은혜에 먼저
감사를 지어 올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년 주일예배에서 올해 담임목사가
화두처럼 붙잡은 말씀이 부흥이라고 했습니다.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빈들공동체가 부흥이전에 먼저
깨닫고 믿어야 할 게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부흥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어떻게 빈들공동체의 부흥을 위해서 일하시는지를
우리가 깊이 깨닫고 아는 겁니다.
<이 시대 수많은 교회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라는
비전으로 지난 25년 전 우리를 불러 빈들공동체를 창립하게하신
주님께서는 빈들공동체에 지어주신 당신의 비전을 위하여
때로 밤을 새우시면서 열정을 다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빈들공동체의 부흥을 위하여 이미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심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믿고 감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우리 의지나 동력이 아닌 하나님의 간섭과 개입으로 ●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일하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말씀에는 이집트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밤을 지새우시면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선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출12:40-42)◎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삼십 년이었다.◎ 마침내,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 날,
주의 모든 군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님의 밤'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이 말씀 안에서 우리 빈들을 위해서 밤을 새워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우리 눈이 열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가운데 42절 말씀에 <주님의 밤>이 있습니다.
이 밤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신 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밤을 새셨으므로, 그 밤은 자손들이 대대로
밤을 새우는 밤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그 밤을 430년이 끝나는 마지막 밤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달력은 유월절을 지나면서 한해가 시작합니다.
<주님의 밤>이란 바로 유월절의 밤이었습니다.
새로운 한해를 맞는 마지막 밤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있었던 밤이고,
<주님의 밤>은 지난 역사의 어느 시점에 있었던 과거사건이 아니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겪고 느끼는
<오늘의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밤>은 어떤 밤인가요?
430년을 살았던 이집트.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 백성들이 살아야할 데가 아니었습니다.
거기 그 삶을 예레미야서11장4절에서는
[쇠를 녹이는 용광로와 같은 이집트]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역과 질고의 삶을 살아가던 당신의 백성들을
조상들과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삶으로 인도하시고자 하십니다.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시작해야할 때가 되었을 때
-그 새로움을 시작하는 단초는 우리 안의 의지나 동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과 개입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주셨으므로(본문42b]-이 말씀 한 구절에서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 나가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보게 됩니다. 그 하나님을 만난 예레미야는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내가 깨달았습니다(렘10:23a)]고 고백하게 됩니다.
● 스스로 세우신 언약을 성실하게 실천하신 하나님 ●
430년 전, 이집트에 자리를 잡은 야곱의 집안 식구는,
이집트에서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은 요셉의 가족까지 합해서
70명이었습니다(창46:27). 이 가족이 이집트에서 살았던 430년 동안
장정 60만명 가량(출12:37) 되었습니다.
장정 60만명이란 노동력이 있는 20세 이상 성인 남자들의 숫자입니다.
60만명 안에는 여자와 어린아이와 노인들이 제외되어 있습니다.
장정 60만명이란 숫자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전체 출애굽인구는
적게 잡아도 약200만명은 족히 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자손이 늘어났습니다.
무얼 의미합니까? 비록 노예로 고된 삶을 살았으나
하나님의 축복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부분적이긴 했지만-신실하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 빈들공동체의 지난 25년 역사도 여기 하나님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오늘에 이른 역사였음을 의심하지 않고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빈들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래전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당신의 백성을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를
<주님의 밤>에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밤>은 새롭게 가야할 길을 앞에 두고 있는 이들이면
누구나 있어야하는 밤입니다.
그 밤은 오래 묵은 과거를 완전하게 청산하는 날이었습니다.
<주님의 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부흥의 시작을 알리는 밤이었습니다.
그 밤은 출애굽의 밤이었습니다.
출애굽은 온전히 하나님 당신의 기획이었고, 의도였고 섭리였으며,
믿음의 조상들에게 스스로 세우신 언약을 성실하게 실천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행동이었습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구원의 작품이었습니다.
출애굽을 위하여 주님의 밤이 있었습니다.
그 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냥 무심코 지나가기만했던 그 일상(日常)을 깨트리는 밤이었습니다.
향유를 들고 온 여인이 옥합을 깨트리던
그런 사건이 생기는 밤이었습니다.
주님을 박해했던 사울이 주님을 만나 거꾸러지고
다시 바울로 거듭난 다메섹도상과 같은 밤이었습니다.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가 주님을 만나서
새롭게 삶을 다시 시작했던 그 밤이었습니다.
우리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에 눌러 앉아 있던 타성의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밤이었습니다.
그릇된 습과 관성에 얽혀 있던 고리를 끊고
새로 삶을 시작하게 하는 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해란 430년의 역사를 청산하고
출애굽을 하는 첫날 아침입니다.
우리 빈들공동체가 올해 부흥지로를 제대로 가려면
반드시 <주님의 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밤을 지새우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주님을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그 밤을 지켜야 할지를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말씀이 역사에 대한 교양이 아니고,
오늘 내 삶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도대체 우리에게 <주님의 밤>이 어떤 의미입니까?
또 우리 빈들공동체는 <주님의 밤>을 어떻게 체험해야할까요?
주님의 밤을 지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가
빈들공동체에는 어떤 의미입니까?
● 성심과 정성을 다해 축복의 그 밤을 지키는 한해 되기를 ●
새해는 달력을 새로 갈았다고 해서 새해가 아닙니다.
주님의 몸된 빈들공동체의 새해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새 비전과 꿈을 향하여 새롭게 영적인 다짐을 하고 출발 할 때
새해가 시작되는 겁니다.
올해는 우리 빈들공동체가 사반세기가 되는 해입니다.
25년 전 주님께서 빈들공동체를 세워주셨습니다.
수많은 교회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로 빈들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새로운교회를 위하여 지난 10년 전에는 벧엘의 집을 세우시고,
빈들공동체와 함께 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난 해 우리에게 새로운교회로 빈들공동체에 섭리하시는
당신의 꿈과 비전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세이비어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새로운교회에 대한 영감을 주시고,
벧엘의 집과 거룩한 동행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올해 우리가 빈들공동체에 새겨주신 주님의 꿈과 비전을 품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걸음을 뗍니다.
이 새로운 시작은 우리의 의지나 희망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우리의 힘과 수고로 가는 길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가게하시는 길인만큼 주님의 힘으로 가야할 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당신의 백성에게 새로운 길을 가게 하시면서
그 백성을 홀로 두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친히 밤을 새우시면서
당신의 백성들이 부흥지로를 제대로 갈 수 있도록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도 그 주님을 기억하며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攝理)와 역사(役事)라는
큰 그림 안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의 장래와 우리 존재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위대하신’ 주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우리는 ‘위대한’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고 계시며(계 21:5),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지어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위대한 비전과 꿈을 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심령의 부흥과 거듭남의 변화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빈들공동체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지어 주신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교회>라는 거룩한 꿈과 비전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세워주셨고, 우리에게
축복이 되게 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의 삶으로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께서-
주님의 밤을 새워가면서-우리 모두의 삶을 부흥하는 삶으로
올 한 해 동안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밤은 거룩한 꿈과 비전의 밤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빈들의 부흥지로를 위하여,
지금도 우리 안에서 우리 빈들공동체의 부흥과
우리 모두의 영적인 부흥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밤을 새우시며 일하시는 주님을 우리 한시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일하시는 축복의 그 밤을 우리 성심을 다하고
온 정성을 다해 지키는 한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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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의 밤을 꼭 체험하는 2010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빈들의 밤이 주님의 밤으로 채워지길 빕니다. 오, 거룩하게 일하시는 주님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