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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성장한다는 것
최영환 재미교포 3세로 미국의 공립 대안학교인 메트스쿨에서 11년째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지난 7월 26일에 있었던 서울시대안교육센터 교사 워크숍에서 한 특강을 최연희 프리랜서 교육 전문 기자가 정리한 것입니다. 메트스쿨에 대한 자세한 것은 『학교를 넘어선 학교』를 참고하세요.
이렇게 뵙게 돼 반갑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리부터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 옆에 앉아 계신 분이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라면 자리에서 일어나 모르는 분 옆으로 옮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여러분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는 분인지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만약 제 강의에서 별 소득을 얻지 못하더라도 친구 한 사람은 얻어 가실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릴 수 있어서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제 아내에게도 제가 학교에서 겪었던 일을 들려주고 싶지만, 아내는 너무 피곤해 그 이야기들을 들어줄 시간이 없지요. 바라건대, 오늘 저녁에 일부러 제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와 주신 여러분들을 저희 집에 모셔다가, 제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면 언제든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특히 실수한 경험이나 후회스러운 일은 더욱 어렵지요. 하지만 실수하고 잘못했던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여러분들과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저는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는 제가 경험한 여섯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제가 교사로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_ 나이키와 손톱
몇 년 전 저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교사가 되려 했던 것은 어려서부터 경험했던 여러 문제들, 즉 인종주의나 차별 같은 사회문제들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함께 논의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교생실습 기간 중 어느 날 소풍을 가게 됐고, 저는 앞서 걸어 가던 한 교사와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두 사람은 나이키 신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화제가 나이키 신발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곧바로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마이클 조던이었을까요?
‘나이키’라는 말을 듣고 처음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 신발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저임금 노동자가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지를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 두 사람은 신발 스타일이나 색깔, 가격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교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지요. 학생들을 지나치게 소비 중심으로 몰아가는 미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지 않고, 그저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들려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5년 뒤인 1995년, 저는 지금의 메트스쿨에서 인턴십 과정으로 교사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는 아이들한테 브레이크 댄스도 배우고, 베개 싸움이나 농구도 함께 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여학생들과는 친하게 지내기가 어려웠습니다. 한번은 한 여학생이 장식용 손톱을 길게 붙인 채 월요일 날 등교했더군요. 컴퓨터 수업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은 긴 손톱을 붙인 터라 타이핑도 제대로 못해 끙끙거렸습니다. 저는 그 여학생을 보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저렇게 쓸데없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느라 학교에 와서는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구나, 하고 말이죠. 그래서 그 아이를 불러 이야기했습니다.
“너 손톱은 왜 붙였니? 그것 때문에 타이핑도 못하잖아.”
그런데 나중에 발견한 사실은 제가 그 여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반 전체 여학생들로부터 그다지 존경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저는 제 판단 기준과 가치에 따라 아이들을 판단할 뿐, 정작 아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어려움에 빠진 것은 그 때문이었죠.
여학생들 중 일부는 교장선생님에게 저와 관계 맺기가 힘들다고 털어 놓았고, 저 역시 교장선생님께 어떻게 여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도움말을 구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저더러 아이들과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고, 쇼핑도 하며 시간을 함께 보내라고 했습니다. 저는 조언을 따랐고, 아이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나이키 운동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저는 당시 그 교사를 제대로 보지 못한 셈입니다. 무려 6년이 지난 다음에야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그 교사는 자신의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를 통해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저와 아이들은 서로를 존경하는 법, 다른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그런 유대감을 쌓아 가면서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낼 수 있는지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두 번째 에피소드 _ 모범생과 낙제생
저는 고등학교 시절 모범생이었습니다. 늘 반듯했고, 늘 최고 점수를 받았죠. 누군가 저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그가 가장 뛰어난 장학생이 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제가 왜 우수한 학생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건대, 저는 항상 숙제를 잘했고, 늘 수업 들을 준비가 잘 되어 있었으며,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은 그대로 따르는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뉴욕 시에 있는 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고, 우수한 학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 학기가 끝났을 때, 50퍼센트에 이르는 학생들이 숙제를 해 오지 않아 정해진 교육과정을 따라오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그 50퍼센트의 아이들은 바보라서 제대로 교육과정을 따라오지 못했을까? 성공한 50퍼센트의 아이들은 똑똑한 걸까? 우수하다는 건 진정 무엇일까?
교육과정을 따라오지 못한 학생 중에는 스티븐이라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항상 수업을 방해하며 끊임없이 질문하곤 했습니다. “제가 왜 그걸 배워야 하죠?” “그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지금 선생님이 가르치는 게 저한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나요?”
처음에 저는 그 녀석이 제 수업을 방해하고 있으며 저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아이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이 끝난 뒤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고, 그가 정말로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가 어떤 곳인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학교는 명령에 따르는 곳이라는 게 그 아이의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자신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아이는 진심으로 그 질문의 답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더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방식으로 수업방법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스티븐은 그 수업의 의미를 금세 이해했고, 그 수업방식이 ‘생각하게’ 한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그러자 스티븐은 수업태도를 완전히 바꾸었고, 결국 온 마음을 쏟아 수업에 참여하는 방식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제가 어릴 때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영리한 학생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처럼, 스티븐도 자신만의 방식을 가지게 된 것이었지요. 그는 그때까지 수업에서 배우는 것들의 ‘앞뒤’가 무엇보다 궁금했던 거죠. 누구도 앞뒤를 설명해 주지 않았으니 반발심이 커졌구요. 제 생각에 스티븐은 어린 시절의 저보다도 훨씬 우수한 학생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해 낙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은 우수하고 저 학생은 우수하지 않다는 낙인은 참으로 옳지 않은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 _ 학생들의 거짓말
이제까지 가르쳤던 아이들 중에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했던 아이가 있습니까? 만약 “없다”라고 답하는 분이 있다면 분명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정말로 좋은 교사이거나, 학생들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은 교사이거나. 이렇게 단정지어 말씀드리면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제가 맞닥뜨렸던 상황입니다.
같은 학생들을 4년 동안 가르칠 때의 장점은 1년 동안 가르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4년을 함께 지내고 졸업을 할 때가 되면 아이들은 이전에 교사에게 했던 거짓말까지도 이야기하게 됩니다. 조이라는 학생은 졸업할 무렵이 되어 이렇게 털어 놓았습니다. “선생님, 제가 전에 도서관에 간다고 했던 거 기억하세요? 사실 그때 그냥 집에 갔는데, 거짓말한 거예요.”
키에데라는 학생도 체육관에 찾아가서 수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보고서까지 작성했지만, 사실 한번도 체육관에 간 적이 없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야단을 치기엔 이미 너무 늦어 버린 일이었지만, 그래도 저는 쉽사리 화를 가라앉힐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 사건이 교사로서 실패를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면밀히 관찰해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시정하도록 조치하는 게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한 셈이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아이들은 열정과 의욕이 넘치고 지혜로웠으며,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했습니다. 그렇게 거짓말을 일삼았던 아이들이 이런 덕목을 갖추고 있다니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한 적이 없나? 나는 어릴 때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짓말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낼지 화를 내지 않을지가 아니라, 아이들의 거짓말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계속 거짓말을 할까요? 또, 거짓말은 그들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여기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거짓말을 해 보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거짓말을 하셨나요?
저는 교사로 일할 때, 교장선생님께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병가를 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주말에 이어 더 오래 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 모두가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겠지요. 진실을 이야기하기보다 거짓말하기가 훨씬 쉬우니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버리지 않도록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구와 욕망을 분명히 드러낸다는 건 당연히 두렵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프다거나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학교를 빠진 뒤에, 비디오 게임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가르칠 때, 그것의 효과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진실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질 수 있고, 그 감정을 자신이 소유할 수 있게 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학생들이 “어제 결석한 건, 친구들이랑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학생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면, 그 아이는 당신을 두려움 없이 신뢰할 것이고,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라도 들려줄 겁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아이들이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걸어와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고 말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신 ‘술 마시느라 학교에 못 왔다’고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지요. 처벌을 생각하지 않고 정직하게 말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도록 가르치는 것이고, 그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도움이 절실할 경우 어른들에게 그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교사로서 반드시 그 아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야만 합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 _ ‘안 돼’라고 말하는 것
미국의 공교육은 공장에서 명령에 잘 복종하는 젊은이들을 양산하기 위한 체제입니다. 공교육의 구조를 생각해 보십시오. 벨이 울립니다. 그러면 다른 교실로 이동해야 하고, 지도와 감독을 받으며 정해진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합니다. 공교육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힘든 또 한 가지 이유는 학생 수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교사는 보통 하루에 200~300명의 아이들을 만나는데, 그런 구조에서라면 어떤 교사라도 학생들을 제대로 발견하기 어려울 뿐더러, 그 아이들에게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도 쉽게 알아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죽었다고 하더라고 학교는 이를 알기 어렵고, 따라서 그 아이를 도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반학교에서 대안학교로 옮겨간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학생들 개개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고, 그 아이들의 가족들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안학교로 옮긴 뒤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잘 알게 되어 저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안학교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저는 별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학생들이 누구인지, 그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른 채 아이들과 만나게 됐습니다.
저를 상당한 어려움에 빠지게 했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도밍고라는 아이였는데, 한 번은 그 아이가 쓴 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매우 우울했고, 자신을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탓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밤, 그 아이는 새벽 두 시에 저에게 전화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선, 가족 중에 누군가를 깨우게 해 도밍고가 혼자 있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자 저는 도밍고가 너무 걱정돼, 그가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지원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도밍고에게 일종의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그 아이가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에 이발소에 들러야 하니 일찍 보내 줄 수 없겠냐고 요청했을 때 허락해 주었습니다. 도밍고가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발소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저는 여러 번 이 아이에게 관대하게 대했습니다. 그저 그가 딱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 대한 저의 동정심은 결국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느끼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꾸만 자신에게 예외를 두어 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그것이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지금도 저는 도밍고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아이는 여전히 이 사회가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상황에서 제가 해야 했던 일은, 도밍고의 처지와 상황을 동정하기보다 좀더 깊은 사랑으로 자신의 상황을 다르게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도록 독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네 삶을 바꾸어 나가려면 이렇게 예외적인 요청을 반복해서는 안 돼’라고 말이지요.
교사는 때때로 ‘안 돼’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혼란스러운 일입니다만, 아이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상황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물론 ‘안 돼’ 하고 모든 대화가 끝나서는 안 되겠지요.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어야만 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경계’가 어디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행동을 어디까지 밀어 붙여야 하고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지, 그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어디가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인지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거기에서 멈춰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다시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 저는 이른바 모범생이었고 밖에 나가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이들을 만나 노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요. 아버지께서 그 사실을 아시고는 “공부는 이제 그만하고, 나가 놀면서 친구를 사귀도록 해 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말씀 덕분에 밖에 나가 노는 것도 배우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당시에는 왜 밖에 나가 놀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하고 그저 따라야 했던 것이 저에겐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른들의 역할은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를 알려 주는 데서 그치지 말고, 왜 그런지 설명하고 도와주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자주 변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때로 실수를 하게 되고, 아이들은 그 실수에 대해 반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계를 정할 때는 아이들과 의논해서 정해야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중학생 때 미국으로 왔지만, 그럼에도 매우 한국적인 분이었습니다. 아버지 지시에 제가 “왜 그렇게 해야 해요?”라고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얘기했으니까!” 우리 부모님 세대가 우리를 가르쳤던 방식은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대로 나타나곤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 버리면 아이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 사회는 명령에 잘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설명과 설득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 아이들의 생각도 움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다섯 번째 에피소드 _ 위기를 받아들인다는 것
교사로서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아이들로 하여금 하기 싫은 일도 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요. 여기에 저는 아이들에게 하나 더 요구합니다. 개인적인 위기를 놓치지 말라고 말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조용하면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춤추기를 두려워하면 춤을 추도록 만들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면 그것에 도전하게끔 합니다. 제 경험에 따르자면, 아이들은 이런 도전을 통해 4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평소에 아주 조용했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첫 발표 시간에 교실 밖으로 도망쳐 버릴 정도로 내성적인 친구였지요. 저는 ‘저 학생은 발표하는 상황을 힘들어 하니까 혼자 두어야지’하고 마음먹는 대신, 두려움을 극복하고 발표하는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발표를 시키고 옆에서 도와 주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 교실을 뛰쳐 나가기까지 했던 여학생은 고학년이 되자 연극 대본을 쓰고, 연기 지도를 하고, 연출까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삶을 변화시키고 싶고 성장하길 원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자기 앞의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저는 역사를 전공했지만 뉴욕에서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영어 교과를 담당해 영시까지 가르쳐야 했습니다. 저는 9학년 아이들이 영시를 쓰고 마지막에는 발표까지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했는데, 그 아이들이 쓴 작품은 정말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발표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저는 그 아이들에게 “네가 쓴 글은 정말 대단하다”고 독려해야 했습니다. 결국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쓴 시를 성공적으로 발표했고, 그해 유일하게 시를 발표하지 않은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생각해 보건대, 저 역시 시를 쓰고 발표하는 게 두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저도 그 ‘위기’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시를 써서 발표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려워 보이는 일도 해 보니 되더라’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을 해 냈을 때,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진정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위기’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아이들에게 새로 나온 춤을 배우고, 못하는 노래도 하고, 한복을 입고 출근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신기해하고, 저는 한복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새로운 ‘위기’를 맞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일기를 발표해 보라고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기록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 서로 지원해 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위기를 받아들이는 것과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해낸다는 것은 다릅니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당혹감을 나누고 계속해서 배우고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_ 4년 동안의 포옹
메트스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첫해, 두 학생이 심하게 싸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먼저 맞은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되받아 치려고 하는 순간, 교사들이 달려 들어 싸움을 말렸습니다. 맞기만 하고 되받아 치지는 못한 아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맨주먹으로 벽에 구멍을 내고 창문까지 때려 심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결국 그 학생은 귀가 조치를 당하고 말았지요. 저는 두 학생이 싸웠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그 아이는 또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어 가만히 껴안아 주었습니다.
4년 뒤 졸업할 때가 되자, 그 아이가 말하더군요.
“선생님, 그때가 저에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었는지 아세요? 그 포옹 덕분에 학교와 선생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됐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 매우 기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을 아이는 4년 동안이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아이를 껴안았을 뿐으로, 어쩌면 안아 주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순간의 판단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굉장한 영향을 미치는구나, 새삼 알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순간 갑작스런 충동을 느끼거나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요. 그 순간 저는 제 직감을 믿고 그 중요한 순간이 그저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열려 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젊은 친구들이나 학생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공유하고 싶어 하고, 절박하게 도움의 손길을 구합니다. 마약이나 알코올중독,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것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식입니다.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도 많지만 여기까지만 해야겠지요. 부디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도움을 갈구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잡지 민들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