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6일
제목: 분노, 어떻게 치유할까?
본문: 야고보서 1:19-20
길을 걷던 사람에게 칼을 휘두른 사람, 술에 취해 닥치는 대로 부수고 난동을 부린 사람, 남의 차에 불을 지른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분노를 참지 못하여 저지른 일들입니다. 분노는 한 번 잘못 폭발하면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분노의 쓴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뿌리가 남아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분노를 다스리며 치유할 수 있을까? 오늘 말씀에서 그 답을 듣기를 바랍니다.
분노는 왜 생기는가?
분노는 학습효과를 통해 생기기도 합니다. 잠언 22장 24-25절은 말씀합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질까 두려움이라.” 화를 잘 내는 사람과 가까이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닮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주 화를 내면 자녀도 분노를 쉽게 표현하는 사람이 됩니다. 늘 불평하고 짜증을 내는 남편은 아내에게도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 주변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노는 전염병처럼 옮겨지는 성향이 있습니다.
또한 분노는 조급한 사람에게서 쉽게 나타납니다.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거나 계획이 늦어질 때 쉽게 짜증을 냅니다. 잠언 14장 29절은 말씀합니다.“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가인처럼 시기와 질투 때문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또 불의를 당하거나 모욕감을 느낄 때에도 분노가 생깁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때도 화를 냅니다. 잠언 15장 1절은 말씀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게 한다.”
험담을 듣거나 부당한 말을 들을 때,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할 때도 우리는 쉽게 분노합니다. 분노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든지 결국 그 분노는 우리 자신에게 가장 큰 해를 끼치게 됩니다.
분노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첫째,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장 20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모세는 한 번의 분노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반석에게 말하지 않고 지팡이로 반석을 쳤습니다. 결국 그 일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둘째, 분노는 파괴적입니다. 분을 품었던 가인은 결국 아벨을 죽였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면 사람은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분노는 인격을 무너뜨리고 인간관계를 깨뜨립니다.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결국 가장 크게 무너지는 사람은 분노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셋째, 분노는 다툼을 일으킵니다. 잠언 1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분노는 싸움을 일으키고 갈등을 키웁니다.
그뿐 아니라 분노는 마음의 평안을 빼앗고 몸까지 병들게 합니다. 혈압이 오르고 위장 장애가 생기기도 합니다. 분노는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되며 삶을 막히게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분노는 내 인생을 갉아먹는 벌레와 같습니다.
시편 37편 8절은 말씀합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니라.” 또한 에베소서 4장 31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분노는 우리 몸과 마음에 남겨 두어서는 안 되는 이물질과 같습니다.
분노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먼저 분노는 바르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분노 자체는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슬퍼할 일을 보고 슬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는 것도 정상입니다. 화가 나야 할 상황인데 아무 감정도 없다면 오히려 무감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때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6-27절에서 말씀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성경은 분노 자체를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노가 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래 품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타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화를 통해 분노를 해결해야 합니다. 많은 갈등은 대화 부족과 소통 부족에서 시작됩니다. 서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상대의 뜻을 오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원인이 밝혀지면 갈등도 풀릴 수 있습니다. 진실한 대화는 분노를 치유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시편 기자는 분노를 이기는 방법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시 147:2-4) 여기에는 두 가지 위로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분노합니다. "누가 내 억울함을 알아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이름까지 부르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억울함과 눈물과 상처도 모두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사정을 가장 깊이 이해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줄 때 분노가 누그러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가장 완전하게 아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고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셨고, 억울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셨고, 끝까지 참으셨으며,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까지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분노까지도 녹여내십니다.
이사야 61장 1절은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분노를 치유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피난처』의 저자인 코리 텐 붐은 자신과 가족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던 독일 간수를 용서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십자가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침을 뱉고 조롱하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볼 때 분노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분노를 이길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실 때 분노는 절제로 바뀌고, 상처는 치유로 바뀌며, 미움은 용서로 바뀌게 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분노는 한순간의 감정이지만, 그 결과는 평생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분노를 하나님께 맡기고 다스리는 사람은 자신의 삶도 지키고 가정도 지키며 믿음도 지킬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도 마음속에 오래된 분노와 미움, 억울함을 품고 계십니까? 그것을 혼자 붙들고 있지 마십시오.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상처를 아시는 주님께서 위로하시고, 우리의 분노를 다스리시며,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노하기는 더디 하고 사랑하기는 빠른 사람, 분노를 품기보다 용서를 선택하는 사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