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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장이 정맥길
2002년 11월 29일 영천행 심야열차에 올랐다.
누누이 말했듯이 다소 지루함에도 무궁화호 열차를 애용하는 건
전적으로 저렴하고 운행시간이 정확하다는 이점 때문이다.
이재에 아둔하여 축재하지 못한 늙은 이의 대간과 정맥 종주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체력이 아니라 만만찮은 비용이니까.
구두쇠 작전이 불가피한 이유다.
또한 대구를 경유하는 경부선 이용은 낙동정맥의 종점이 멀지
않았음을 시사하므로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영천역의 매너(manner)는 대간과 9정맥에 접근하는 동안
거쳐 간 모든 역들중 최하위였다.
오지의 작은 역도 맞이방(대합실) 만은 열차의 운행과 관계 없이
24시간 개방하건만 소등을 이유로 맞이방에서 쫓겨났다.
겨울 문턱의 어중간한 시간, 싸늘한 비까지 내리는 새벽 4시에
어찌 하라고.
시티재에 조금이라도 더 접근하려는 욕심만 있었을 뿐 이 지역
교통망에 대한 무지가 낳은 오류였다.
동대구역에서 편히 대기했다가 새벽 통일호편으로 안강역에
도착했더라면 한결 수월했을 것인데.
구두쇠 작전의 양면(명암)인 걸 어쩌겠나.
곡절 끝에 도착한 안강휴게소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는 동안 비
대신 산뜻한 산행날씨로 변했다.
200m ~ 500m대의 완만한 정맥길은 최고봉 510m의 어림산과
가파른 관산에서 잠시 땀을 느끼게 할뿐 일사천리였다.
단조로움을 불식시키려 함인가.
무료를 달래주려는 건가.
줄곳 흔들어대다가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버리는 개구장이다.
마치재의 927번과 한무당재의 909번 지방도로 관통뿐 아니라
저지대의 정맥답게 계속해서 이 도로들을 가까이 끼고 가므로
아무 때라도 탈출할 수 있다.
마음 놓고 계속해도 되는 이유다.
어림산 이후로는 경주시와 영천시를 가르며 가기 때문에 양자
택일권이 임의적이다.
신음하는 만불산과 섬뜩한 만불사
그러나 이런 호조건은 만불산이 끝이다.
만불산 이후 아화고개 까지는 정맥이 이미 자취를 잃어버리고
말았거니와 만불산 자체도 수난을 당하고 있다.
만불산을 제물로 하여 거대하게 자란 만불사가 몸집을 더욱 더
키우기 위해 제물 되기를 계속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상부에서 본 만불산의 참상은 실제보다 많이 은폐된
것임을 고개 아래에 내려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맥을 찾겠다고 좌왕 우왕하는 사이에 일몰이 시작되었다.
아화고개 직전 불빛 찾아 내려선 마을에서 소형트럭을 만났다.
농협소속인 듯한 이 트럭의 마음 착해 보이는 운전자는 기상
천외의 제안을 해왔다.
내가 원하는 곳 까지 데려다 주는 대가로 자기 가정사의 상담에
응해 달라는 것.
가출한 아내와 두 딸에 관해서 였다.
과연 내가 별나게 보이는 건가.
마땅한 숙박처가 없는 아화고개에서 만불사를 택했다.
"저 큰 절 안에 설마 이 한 몸 하룻밤 쉴 곳 없으랴"
그러나 트럭에서 내린 나는 그 자리에서 움츠러지고 말았다.
추위 때문이 아니라 섬뜩한 이 절에 압도돼 버렸기 때문이다.
휘황한 조명 아래 작업중인 각종 기계들의 굉음은 심장을 도림질
당하며 토해 내는 만불산의 신음이 아닐까.
차라리 절규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신음을 먹고 비대해져 웅장을 과시하고 있는 만불사는 공룡이
되기 위해 더욱 광분하고 있는 것인가.
사문고를 통해서 제도중생을 결심하신 부처님이다.
온갖 영화를 버리신 대자대비의 부처님께서 저 절 어디에 머무실
수 있단 말인가.
부처님도 계실 수 없는 초호화판에 한낱 초라한 늙은 山나그네가
의탁할 곳이 있겠는가.
(요즘 회자되고 있는 비구니 지율의 단식 투쟁을 보는 이 절 여러
분의 시각은 어떤 것일까)
아화리의 李洪雨
여기 저기 기웃거려 보았다.
웅대한 절에 걸맞게 식당도 거대했다.
순간적으로 파브로프(I.P.Pavlov)의 조건반사 현상이 일었다 할까.
그러나 정해진 식사시간이 이미 끝났기 때문인가.
관심 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뿐 아니라 모두 소 닭 쳐다보듯 했다.
말 한 마디 꺼내 보지도 못한 채 돌아서고 말았다.
저 앞에서 모텔의 네온 사인이 교태를 부리지만 엄두도 못내고
아화고개를 향해 터벅터벅 오를 때는 허기에 지친 상태였다.
이른 아침에 먹은 한 그릇의 국밥이 10시간의 산행과 2시간의
방황을 지탱해 주었으니 제 아무리 맹물로 가는 자동차 같은
몸이라 해도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까 봐둔 고개마루 너머 태기지휴게소에 들어갔다.
빈 속을 채울 거라곤 막걸리 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푸 마시는 중에 옆 자리의 두 중년이 말을 걸어왔다.
거나한 취기가 시키는 말들이겠거니...
가볍게 응수했지만 한 사람은 진지한 자세였다.
경주시 서면 아화리 830의 이홍우
그는 사리가 분명한 사람으로 기억되게 행동했으며 비록 취중의
말이라 해도 귀담아 듣게 했다.
경쟁력 없는 영농의 극복을 위해 고심하고 노력하는 그의 진지한
자세와 안이하고 비전 없는 꼼수 위정자들을 향한 그의 질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을 것 다 묻고 들을 것 다 듣고 나서 소리없이 사라진 회령이나
남회령의 어떤 분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가끔 목격한다는 낙동정맥 종주자들에 대한 그의 관심이 휴게소
여주인에게 나의 1박을 부탁하게 했는가.
남들 앞에선 자기 집으로 가자다가 어물쩍 사라져 버린 이들과
달리 그는 휴게소 주인을 설득하여 늙은 山나그네의 하룻 밤을
해결해 주었다.
하절기에 한시적으로 민박 영업을 하기 때문에 냉방이란다.
어느 새 내 막걸리 값까지 셈한 이홍우가 떠난 후 내가 안내된
방은 과연 냉방이었다.
긴 식탁이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식탁 위에 침낭을 펴고 들어가니 견딜만 했다.
가장 비싼 휴양림이 가장 불편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자면서도 돈 버는 방법이라며 여관 대신 여인숙을 택하곤 했다.
노천의 통비닐 속에 비할 소냐.
더구나 무료 숙박 아닌가.
스쳐가는 상판저수지의 악몽(백두대간 11회 참조)이 한기를
잊고 편안안 밤이게 하는 것 같았다.
상대적이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