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인. 2008. 공기업 민영화의 정치학: 에너지 공기업을 중심으로. 「민주사회와 정책연구」2008년 하반기(통권14호). 민주사회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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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국에서 공기업 구조개혁에 대한 요구는 공기업이 사회적 통제로부터 유리되어 정권의 사적 전유물로 기능했던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개발독재 시기 이래 공기업이 정실주의의 온상이자 정권의 정치자금줄이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공기업의 독립성, 투명성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의 근저에는 공기업을 정권의 사적인 목적으로부터 독립시켜 국민의 감시와 통제하에서 본래의 목적인 공공성의 추구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공기업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통제가 공기업 구조개혁 요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공기업 구조개혁은 공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문제보다는 소유구조의 문제, 즉 민영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는 민영화론자들이 공기업 체제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불신, 그리고 그에 따른 구조개혁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선점하여 왔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공기업 구조개혁의 요구는 소유구조의 문제로 치환되었으며, 공기업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사회적 통제의 문제는 체계적으로 배제되었다.
공기업 구조개혁에 대한 요구가 공기업의 공공성 확보와 사회적 통제의 문제를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소유구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민영화는 공기업 구조개혁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민영화는 공적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 도덕적 해이를 창출하고 거대 공기업의 민영화를 둘러싼 정권과 자본의 결탁, 즉 정경유착을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갖는다. 공기업 구조개혁은 민영화를 통한 소유구조의 개편이 아니라 공기업의 운영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통제를 확보함으로써만 올바르게 전개될 수 있다.
1. 서론
공공경제의 운영에서 공기업 체제가 차지하는 위상과 그 사회적, 경제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체제에 대한 구조 개혁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공기업이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종속적인 기제로 전락하고 정실주의의 온상이 되었던 역사적 현실에 기인한다. 공기업이 공적 이익의 추구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국민의 감시와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정권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여 왔다는 점이 공기업 개혁에 대한 요구의 근본적 출발점인 것이다. 공기업 경영의 투명성, 독립성에 대한 요구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진단으로부터 출발하는 구조개혁의 핵심적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공기업 구조 개혁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 참여와 통제의 문제보다는 소유 구조의 문제, 즉 민영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이는 민영화론이 공기업의 투명성,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정치적으로 선점하였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김영삼 정부 시기 소위 공기업의 ‘주인 찾아주기’ 논리로부터 시작하여 공기업 구조 개혁에 대한 이후의 모든 논의는 구조 개혁의 핵심으로서의 사회적 통제와 참여의 문제를 민영화의 문제로 치환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는 공기업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핵심적 수단으로서 사회적 참여와 통제의 문제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악화시킨다는 데에 그 문제점이 있다. 이는 민영화가 공기업의 매각과 분할을 통해 사적 자본에 대한 대대적인 특혜로 기능한다는 점과 소위 ‘규제자의 포획’(regulatory capture) 이론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적 자본에 대한 공적 통제의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산업연관성이 높고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에너지 공기업의 경우 민영화로 인한 공적 통제의 약화는 사적 이익에 의해 공공의 이익이 포획, 잠식당하는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배병인, 2008: 139).
2. 민영화와 탈규제의 정치학
1) 공기업의 공공성과 민영화: 소유와 통제의 문제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공기업은 ‘시장의 실패’에 대한 보완 수단이자 국민경제의 운용에 핵심적인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특히, 여타 산업과의 연계성이 높고 원활한 자본축적의 전제가 되면서도 회임기간이 길어 민간투자가 용이하지 않은 대규모 사회기반시설의 경우 공기업이 시장과 민간자본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공기업의 공공성은 이처럼 국민경제의 운영과 사회구성원 전체의 복리를 위한 핵심적인 전제이지만 시장경제에 의해 확보되지 않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공적 서비스의 제공은 국가의 직접 소유를 통한 경제개입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서구의 대규모 공공경제나 경제개발 초기 취약한 민간자본을 대체, 보완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의 공기업들은 이러한 공적 기능을 국유화, 국영화의 방식을 통해 수행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유화, 국영화를 바탕으로 하는 공기업 체제가 그 자체로 공공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적 소유와 공공성간에는 일정한 긴장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데, 이는 국가 소유 자체가 갖는 이중적 성격에 기인한다. 한편에서 국가 소유는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하는 시장 경제에서 담보될 수 없는 공공성의 영역을 창출하는 단초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공공경제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를 시장경제의 근간인 사적 소유를 제한 혹은 전환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김윤자, 1999).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소유형태의 변화는 공기업에 대한 국가의 완벽한 소유와 지배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공공 경제의 영역에서 관료주의적 국가의 완전한 지배를 낳는다. 여기서 문제는 국가적 소유는 그 자체로는 ‘관료주의적 국가’의 연장일 뿐 공공성의 실현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에 의한 공기업의 포획’으로 요약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공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바탕으로 국가가 공공성의 확보보다는 정권이나 국가 관료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공기업을 활용할 가능성으로 나타난다. 국가소유가 공공경제의 운영 및 공공 서비스의 제공을 위한 핵심적 전제이자 출발
점이지만, 관료주의적 국가화의 위험을 제어할 장치가 보완되지 않는 한 국민다중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공정책의 결정 및 집행이 국민의 이익과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질 위험성이 증대하게 되는 것이다(배병인, 2008: 140).
국가소유 공기업의 공공성은 시장경제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 공적 서비스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측면과 공공부문의 민주적 운영이라는 측면을 동시에 포괄한다. 전자의 측면이 공공경제의 운영이 국가소유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공한다면, 후자의 측면은 소유형태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대중의 참여와 통제가 공공성의 중요한 한 축임을 제기한다. 결국 공공성의 문제는 ‘경제적 효과’의 문제이자 ‘정치적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개입의 축소를 주장하는 민영화의 논리가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 확산될 수 있었던 정치적 기초를 이해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영국, 미국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은 국가소유가 낳는 관료주의적 폐해에 대한 대중적 우려와 불만을 정치적으로 선점했다는 점과 관련된다. 이러한 불만은 국유화, 국영화를 통한 공공경제의 운영이 애초 기대와 달리 공공경제에 대한 공적 통제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관료와 정치집단의 사유물로서 공적 통제의 영역으로부터 유리되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Majone, 1994: 53-69). 대규모 국유 및 국영기업을 통한 공적 서비스의 안정적 제공이라는 측면과는 별개로, 국가의 비대화가 낳은 관료주의화의 경향과 그에 따른 국민다중의 민주적 참여의 배제가 공공부문에 대한 대중적 불신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맹신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은 ‘경제적 효율성 논리’의 승리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결핍’에 대한 정치적 선점 효과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탈규제, 민영화 등 대폭적인 국가 개입의 축소를 주창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공적 통제의 부재에 대한 대중의 불만, 즉 민주주의의 결핍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민영화=탈관료화=민주화”라는 도식 속에서 선점함으로써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배병인, 2008: 141-142).
공기업의 공공성과 국가 소유와의 긴장은 결국 공적 통제, 즉 사회적 참여와 통제의 문제로 요약된다. 사회적 참여와 통제가 전제되지 않는 공기업구조는 공공성의 확보라는 공기업 본래의 목적에 역행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의 공공성은 민간자본과 시장경제를 제한, 보완하기 위한 소유구조의 문제와 더불어 국가에 의한 공기업의 포획을 제한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공적인 통제의 문제를 동시에 제기함으로써만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이 갖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국가소유와 민주적 통제 간의 긴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지만, 이를 오직 ‘공공성’ 개념의 완전한 해체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국가소유가 제기한 공공성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가 아니라 공공성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배병인, 2008: 142).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 확산되어 가는 과정과 그로 인해 제기되는 ‘공공성’의 위협이라는 문제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개발독재 시기 이래 반복되어 온 공기업 운영의 비민주성은 공기업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핵심으로 하는 공기업 구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의 기초가 되었다. 소위 ‘낙하산 인사’와 ‘정권의 정치자금줄’이라는 불명예로 특징지어지는 정실주의의 역사적 경험은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를 낳았던 것이다(배병인, 2008: 142-143).
한국에서 공기업의 구조 개혁에 대한 요구는 근본적으로 공기업을 정권과 국가 관료의 사적 전유물이 아니라 공공성이라는 본래의 목표에 충실한 공공의 기업으로 전환시키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요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공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참여의 문제로 요약되는 것인데, 오랫동안 독립성과 투명성이 공기업 구조 개혁의 핵심 내용으로 제시되어 왔다는 점이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민영화론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소위 ‘주인-대리인’의 논리는 일말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대리인으로서의 공기업과 국가 관료가 주인으로서의 국민대중의 이익을 거슬러 자신들의 독자적인 이익을 추구했던 것이 공기업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주인’의 ‘대리인’에 대한 통제 구조의 확립을 통해 해결 가능한 것이지, 민영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사적 자본을 새로운 주인으로 앉힘으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배병인, 2008: 143).
한국에서 공기업 구조 개편 논의는 공공성의 핵심적 측면으로서의 사회적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 구조의 문제, 즉 민영화의 문제에 집중되어 왔다. 이는 공기업 체제의 비민주성의 문제를 그 소유 구조의 문제로 치환시키고 국가적 소유에 대비되는 사적 소유의 효율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선점 효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영화의 논리는 소유구조의 문제를 중심으로 공기업의 공공성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국가 소유와 공공성을 동일시하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거울상이라 할 수 있다. 민영화의 논리는 ‘국가에 의한 공기업의 포획’이라는 문제를 ‘사적 자본에 의한 공공영역의 전유’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공공성의 출발점으로서의 국가소유의 문제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소유 구조의 문제와는 독립적인 공적 통제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배제, 봉쇄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배병인, 2008: 143-144).
우리나라에서 민영화론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기인한다. 일반 국민의 절반 이상이
공기업이 경영 및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인사들에 의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이것이 공기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하시키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일반적 인식으로부터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서의 민영화라는 도식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민영화의 논리가 민주화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하며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특히 김영삼 정부 시기 민영화 논리는 개발독재 시기에 훼손됐던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복원하는 과정, 즉 민주화의 한 과정으로 이해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민영화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민영화의 논리가 정치적으로 선점한 결과였던 것이다(배병인, 2008: 144).
민영화 논리의 정치적 선점 효과는 개발독재 시기 공기업 운영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기초로 하고 있다. 민영화론의 득세는 그 경제적 효과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맥락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민영화론과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균열을 이해할 수 있다.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초로서의 방만한 경영과 비전문적 경영은 국가적 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공기업 체제 자체에 내재한 문제가 아니라 공기업이 사회적 통제로부터 유리되어 정권의 사적 전유물이 되었던 역사적 경험에 기인하는 것이다. 개발 독재 시기 이후 공기업은 집권세력의 정실주의 인사를 뒷받침하는 유효한 수단이자 정치자금의 동원 창구로 이용되어 왔다. 공기업에 대한 불신의 주요한 요인으로 지적되는 ‘방만한 경영’, ‘비전문적 경영’의 문제는 경영의 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공기업 체제 자체의 한계로서가 아니라 소위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등의 용어로 표현되는 정치권력에 의한 공기업의 전유에 대한 대중적
불만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배병인, 2008: 144-145).
이러한 사정은 비단 개발독재 시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1997년 대선 당시 소위 ‘안풍’ 사건은 집권세력이 당시의 안기부를 동원하여 한국통신을 비롯한 공기업으로부터 막대한 대선자금을 거두고자 했던 데에 그 본질이 있다. 소위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민영화를 주창하던 김영삼 정부 시기에도 공기업을 정치자금줄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여전하였던 것이다. 낙하산 인사의 문제 또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사건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공기업 임원의 임명과 관련된 법률을 제정하고 사장 추천위원회 등을 두는 등의 형식적 제도 개선 노력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에 대한 낙하산 인사를 둘러싼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있었던 소위 ‘청맥회’ 논란은 그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결국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근저에는 정치권력의 자의적 개입과 그로 인한 정실주의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 논리는 이러한 정실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즉 경제민주화의 과정으로서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민영화가 상당히 진전된 2005년 시점에도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공기업 개혁에 대한 요구가 민영화와 같은 소유구조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정치적 차원의 문제, 즉 공기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사회적 통제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배병인, 2008: 146).
2) 민영화의 정치학
‘합리성’과 ‘효율성’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지만, 민영화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결정이자 과정이다. 민영화의 정치적 성격은 크게 두 측면, 사회적 부의 재분배라는 측면과 공적 영역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가 공공의 자산을 민간 자본에게 불하하는 과정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는 사회적 부의 재분배, 특히 민간 자본의 축적과 확장에 우호적인 재분배의 성격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부의 재분배가 갖는 정치적 성격과 더불어 민영화는 국가 소유 자산의 매각이라는 형태를 띰으로써 국가에 의해 추동되는 재분배의 과정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국가가 민영화를 추진하는 주체이자 그 시기와 방식 등을 결정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민영화의 과정은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인 것이다(배병인, 2008: 146).
동시에 민영화는 직접적으로 공적 영역의 재구성과 관련된 정치적 행위이다. 과거 공적 영역에 귀속되었던 문제를 사적 영역으로 전환시키는 과정, 즉 공적 통제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문제를 사적 통제의 영역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공적 질서의 내용과 대상, 적용 방식을 전환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이는 국가적 소유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규제와는 다른 형태의 공적 규제를 새롭게 재구성할 필요를 낳게 되는데, 이와 같은 공적 규제의 재구성을 통해 국가의 영역을 전환시키는 정치적 행위가 발생하게 된다.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대규모 공공경제는 국가적 소유를 통해 국민다중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공적서비스에 대한 공적 통제를 확보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적 소유가 곧 공적 통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지면서 국가적 소유의 민간소유로의 대체를 주장하는 민영화와 탈규제의 논리가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민영화가 공적 통제의 영역을 재구성하는 정치적 행위로서 애초 국가소유를 통해 보장하고자 했던 공적 통제를 총체적으로 배제할 위험성을 낳는다는 점이다(Majone, 1994).
민영화의 정치적 성격으로부터 민영화가 창출하는 문제점들을 유추할 수 있다. 민영화론자들은 민영화를 공기업 체제가 낳은 부패구조, 특히 정경유착과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 체제가 낳은 부패구조가 소유형태의 함수가 아니라 사회적 통제와 참여의 함수라는 점에서 민영화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민영화는 사회적 통제와 참여의 문제를 소유 구조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공기업 체제하에서의 문제점을 다른 형태로 재생산할 뿐이다. 민영화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해 왔던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들조차 사회적 통제 장치가 동반되지 않는 민영화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나서고 있음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Perotti, 2004).
대대적인 민영화를 실시하였던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영화로 인한 사적 자본의 집적과 사회적 부의 불평등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석유, 전력, 가스 등의 에너지 공기업 민영화가 석유 재벌의 독점적 시장 지배 구조를 유지,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민영화를 통해 얻어진 재정수입을 상회한다.* 영국을 위시하여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영화는 재정적자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경제위기를 경험한 국가들의 경우 IMF 구제금융 등의 조건에 의해 재정 건전성에 초점을 맞춘 대대적인 민영화를 실시하게 된다. 그런데 공적 자산의 처분이 재정 수입의 증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시장 지배력이 강한 민간 자본이 수혜를 보는 것으로 귀결되며 이로 인한 민간 독점의 폐해는 국민 다중 모두에게로 전가된다는 문제를 낳는다. 특히 국민다중의 삶에 직결되는 공공 서비스의 민간 독점화는 서비스 가격 상승 등을 동반함으로써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키게 되는 것이다(Birdsall and Nellis, 2003).
* 공공경제의 영향력이 큰 공기업의 민영화는 생산적 효율성의 증대에는 공헌할 수 있으나 분배적 효율성은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서는 함시창, 1999.영국 공기업 민영화의 교훈. 「경제발전연구」 제5권 제1호를 참조하라. 영국 가스 산업 민영화에 따른 사적 독점의 강화 경향에 대해서는 Steve Thomas. 2003. “Gas as a Commodity. The UK Gas Market: From Nationalism to the Embrace of the Free Market.” in M. Arensten and R. Kunneke (eds.). National Reforms in European Gas. Amsterdam and Boston: Elsevier. pp. 181~212를 보라.
그러나 이와 같은 사회적 비용보다 심각한 것은 민영화가 국가권력과 사적 자본 간의 유착관계, 즉 정경유착 구조를 창출하는 토대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우선 민영화가 국가에 의한 정치적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 시기와 방법, 대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영화를 통해 특혜를 받을 사적 자본과 국가관료, 정치권력간의 유착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이를 바탕으로 민영화된 부문의 사후 통제를 담당할 규제자, 즉 정치권력과 국가 관료가 사적 자본의 이익에 의해 포획되어 민영화된 산업부문의 공공적 성격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 정책이 아니라 사적 자본의 이익에 종속적인 규제정책으로의 전환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배병인, 2008: 148).
영국과 남미, 그리고 구사회주의권 국가 등 민영화를 시행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와 같은 ‘사적 자본에 의한 국가 혹은 정부의 포획’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포획은 정치권력과 사적자본의 유착을 배경으로 한다. 즉, 정치자금에 대한 정치권력의 욕구와 민영화로부터의 혜택이라는 사적 자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선에서 국가의 규제정책이 결정, 집행되는 것이다. 결국 국가의 직접적인 공기업 소유가 야기했던 문제들이 그 형태를 달리하여 국가 권력과 사적 자본 간의 유착이라는 형태로 재현되는 것이다.* 특히 공기업이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민영화의 과정은 공기업을 인수할 자본력을 갖춘 사적 독점 자본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민영화는 사적 독점과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정부 정책의 사적 독점 자본에 대한 편향을 낳게 되고, 이는 시장경제의 운영에서 사적 독점이 낳는 폐해와 더불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대대적인 민영화를 실시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국내외 독점자본에 대한 특혜를 둘러싸고 각종 부정의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공기업의 공공성 문제가 소유 구조의 문제로 해소되지 않는 고유의 문제, 즉 사회적 참여와 통제의 문제를 제기하며 민영화가 이러한 문제를 우회,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는 것이다(배병인, 2008: 149).
* 엄밀한 의미에서 탈규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탈규제 또한 근본적으로 규제정책의 한 형태일 뿐이며, 이러한 점에서 규제정책을 둘러싼 정치권력과 사적 자본 간의 유착관계, 즉 ‘규제의 정치학’에 의해 규정된다. 규제의 정치학에 대한 일반 이론적 논의는 G. Stigler. 1971. “The Theory of Economic Regulation.” Bell Journal of Economic and Management Science, 2(1): 3~21; S. Peltzman. 1976. “Towards a More General Theory of Regulation.” Journal of Law and Economics, 19(2): 211~240.
** 이에 대해서는 D. Hall. 1999. “Privatisation, Multinationals and Corruption.” Development in Practice, 9(5): 539~556과 D. Kaufman and P. Siegelbaum. 1997. “Privatization and Corruption in Transition Economies,”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 50(2): 11~34 참조.
정경유착 문제와 더불어 민영화가 야기하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 특히 국가와 공공부문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지적되어야 한다. 민영화론자들의 주장처럼 공기업 체제가 국가의 후견에 안주하려는 경향으로부터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면, 민영화는 공공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국가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 공공 서비스의 제공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운영하는 핵심적인 전제이다. 민영화는 공공 서비스의 제공을 민간 부문에 이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이전이 공공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방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국가의 책무에 속했던 공공 서비스의 제공이 민영화를 통해 사적 부문에 이전됨으로써 국가가 그 책무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고 그 결과 공공 서비스의 제공과 관련된 정부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기업을 인수한 민간부문은 사적 이윤 추구를 존재의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에 민영화된 산업 분야가 갖는 본래의 공공적 성격과는 별개로 공공 서비스에 대한 책무로부터 자유롭다. 이 때문에 국민다중의 이익에 직결되는 공공서비스 제공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짐으로써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Gilmour and Jensen, 1998: 247-258).
대대적인 민영화를 추진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공공요금의 인상과 사회적 불평등의 증대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공공 서비스의 제공과 관련된 도덕적 해이 현상의 단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민영화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민영화는 공기업 체제 하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 특히 정경유착과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이를 다른 형태로 재생산하는 데 불과하다. 이는 민영화가 공기업 체제의 문제점을 소유형태의 문제에서 사고함으로써 공기업 구조 개혁의 핵심적 내용인 사회적 참여와 통제의 문제를 올바르게 제기하지 못한다는 데 기인한다. 이러한 점에서 민영화의 논리는 국가소유를 공적 통제의 문제와 등치시키는 주장과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민영화의 경우 특히 공적 통제의 영역과 대상을 축소시키고 그 책임의 소재를 불분명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통제와 참여의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데에 위험성이 있다. 민영화가 야기하는 정경유착의 가능성과 공권력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결국 사회의 공공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귀결된다. 공적 자산의 재분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가와 사적 자본 간의 유착이 공공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의 도덕적 해이와 결합할 때 그 귀결은 공공성의 실종일 뿐 아니라 국민 대중에 의한 통제, 즉 공적 통제의 소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배병인, 2008: 150-151).
3. 공기업 민영화의 추진과정과 문제점: 한국가스공사를 중심으로
1) 한국가스공사 민영화 논의의 전개과정
2) 문제점
한국가스공사의 민영화 추진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앞 절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민영화는 사적 자본에 대한 특혜로 기능하면서 사적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야기되는 사적 독점의 폐해와 더불어 민영화는 공기업의 인수를 둘러싸고 사적 독점과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가 공고화될 위험성을 내포함으로써 한국정치의 고유한 문제인 정경유착 현상을 대규모로 재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낳는다. 이와 동시에 민영화 정책의 추진 주체인 정부 해당 주무부서가 민영화 이후의 산업관리를 전담하게 된다는 점에서 소위 ‘규제자의 포획’이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민영화가 기본적으로 사적 독점에 대한 특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민영화를 통해 성장한 사적 독점이 이후 해당 주무부서의 산업관리 정책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을 국민경제 전체가 떠안아야 한다는 데에 있다(배병인, 2008: 156).
특히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고 산업 연계성이 큰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는 현실적으로 사적 독점 자본에 의한 공기업의 인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점은 그 어느 경우보다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발전 산업 민영화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는 에너지 부문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SK, LG 등 국내 독점자본에 대한 특혜로 귀결되었다. 비록 무위로 끝났으나 분할 매각을 통한 한국가스공사의 민영화 방안은 이미 초국적 자본과의 컨소시엄 등을 통해 상류부문 진출을 활발히 모색하던 국내 에너지 자본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특히 1998년 석유사업법 개정으로 현실화된 LNG 직도입은 이미 발전부문에 진출하고 있던 국내 에너지 자본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당시 SK와 LG 등 국내 에너지 자본은 정부의 민자발전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규모 LNG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SK는 미국의 Enron사와 합작으로 대한, 부산, 청주, 구미, 포항 도시가스를 계열사로 하는 SK-Enron이라는 지주회사 설립하고 정부의 민자발전계획에 따라 대구에 LNG 민자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LG(현 GS)는 이미 1967년부터 Caltex와 50:50의 지분으로 LG-Caltex (현 GS-Caltex) 정유를 설립하고, 역시 정부의 민자발전소 확장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부곡에 LNG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LG는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최대 수혜자로서 안양 부천 열병합 발전소를 매입하여 본격적인 에너지 산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는 양상이었다. 따라서 한국가스공사의 분할매각은 말할 것도 없고 에너지 산업의 경쟁체제 도입을 명분으로 추진된 직도입 허용 또한 이러한 국내외 에너지 자본에 막대한 혜택을 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에너지 산업과 같은 네트워크 산업의 특성상 민간 자본이 사적 독점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이 지불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배병인, 2008: 156-157).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민영화의 이와 같은 특혜적 성격이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어 온 정경유착의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민영화가 사적 자본에게는 엄청난 특혜로 작용한다는 점과 민영화의 추진주체가 결국 정치권력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특혜를 둘러싼 부패구조의 발생가능성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2002년 대선 직후 불거졌던 SK 비자금 사건은 이러한 예측이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SK는 1980년 대한석유공사 (現 SK(주))와 1994년 한국이동통신 (現 SK 텔레콤) 인수를 통해 정유 산업과 통신 산업에 진출함으로써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온실재벌’이라는 별칭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공기업 인수를 통한 이러한 비약적 성장의 근저에는 정치권력과의 긴밀한 유착관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1980년 당시 유공을 SK(당시 선경) 그룹에 넘겨주도록 한 것은 노태우 당시 보안사령관이었음을 전두환과의 대화 속에서 알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공기업 인수를 통한 성장의 이면에는 정치권력과의 긴밀한 유착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애초 SK 네트웍스의 1조 5,000억 원 규모 분식회계 사건으로 촉발된 SK사건은 2002년 대선 당시 최돈웅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거액의 비자금 제공이 밝혀지면서 정치자금 비리 사건으로 확산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SK는 대선 당시 한나라당에 약 100억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하였으며, 당시 민주당 측에도 한 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법정한도액을 초과하여 약 25억 원의 정치자금을 대선 직전 이틀에 걸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수백 억 원대의 정치자금 파문으로 번진 이 사건의 본질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둘러싼 정치권력과 사적 자본간의 긴밀한 유착관계였다. 공기업의 인수를 통해 성장해 온 SK에게 정치권력과의 긴밀한 유착관계는 기업의 성장을 위한 핵심적 방편이었으며 이를 위해 비자금 조성을 통한 정치자금의 제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 사건이 민주화가 상당히 진전된 2002년 시점에 불거져나왔다는 점이다. 즉 공기업 민영화를 둘러싸고 전개된 정치권력과 사적 재벌 간의 유착관계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민주화가 상당히 진전된 시점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정치자금법 개정 등을 비롯한 일련의 제도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민영화로 인해 야기되는 엄청난 특혜는 정경유착구조를 온존시키는 중요한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SK 사건은 일회적인 부정부패사건으로서가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형성되는 정경유착 구조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으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의 경우 그 어느 산업 분야 보다 사적 자본에 막대한 특혜를 줄 것이라는 점에서 SK 사건의 교훈을 음미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하겠다(배병인, 2008: 158).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1990년대 이후 민영화의 과정이 전경련을 비롯한 재벌집단의 정책 요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그동안 국민제적 효과와 산업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유예 또는 재검토 중이던 민영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고되면서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욱 증대되었다. 예를 들어, 이달곤 인수위 법무행정분과위원(서울대 교수)은 “일시에 대규모로 민영화를 추진하기는 어렵고, 몇 개 산업부터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며 “민간기업이 시장에서 공기업과 유사한 사업으로 경쟁하고 있을 경우 정부가 밀어주는 공기업에 비해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있다. 이럴 경우 시장에서 경쟁이 돌도록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부문은 정부가 그대로 맡고, 판매서비스 운영은 민간이 맡는 것을 공기업 민영화의 대략적인 얼개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공기업을 사적 자본의 시장 지배력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정책 제언은 이미 1990년대 이후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을 통해 줄기차게 주창되어 왔던 바이다. 결국 민영화 논리는 사적 독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공 경제를 이용하겠다는 정책 목표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공기업 구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창출되는 비용은 국민 전체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사적 자본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이익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배병인, 2008: 159).
4. 결론
한국정치에서 공기업은 오랫동안 정권의 사적인 목적을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기능하여왔다. ‘낙하산 인사’ 등으로 표현되는 정실주의적 경향과 정권의 정치자금줄이라는 오명, 그리고 비효율성 등으로 상징되는 도덕적 해이 등은 공기업 체제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적어도 1990년대 이후 민영화의 논리는 공기업 체제 개혁의 방안으로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민영화의 논리는 공기업에 대한 불신과 구조 개혁에 대한 요구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적 통제와 참여의 문제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공기업에 대한 불신은 공기업이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에서 본래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했다는 데에 기인한다. 정권이 필요에 따라 손쉽게 개입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공기업의 공익적 기능은 제약되고, 운영의 불투명성과 비독립성이 야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공기업이 본래의 공익적 기능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권의 자의적인 개입을 제어하고 공기업의 사회적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적 참여와 통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추진되어 온 민영화 정책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는 회피한 채 민영화라는 소유구조의 재편 문제에만 집착해왔다. 그러나 민영화는 공기업 체제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들, 예컨대 정경유착이나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악화시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는 민영화 정책이 결국 정권과 민간 재벌 간의 유착구조를 강화시키고 민간독점의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아 왔다는 사실 속에서 확인되는 바이다(배병인, 2008: 160).
결국 공기업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구조 개편은 민영화가 아니라 공기업의 운영에 대한 사회적 참여와 통제를 확보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국가에너지 정책과 관련하여 에너지 공기업이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할 때,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가 야기할 사회적 폐해는 실로 심각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민영화의 방식이 아니라 에너지 공기업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적 참여와 통제의 제도화가 시급한 과제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에너지 정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기구를 설립하고 이 기구의 운영과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양한 민간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모색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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