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파주 용주골을 다시 가다








작년 인터넷 카페에 파주 용주골에 대한 간략한 글을 올렸다. 용주골이 지닌 슬픈 역사적 의미를 바탕으로 용주골의 현재적 모습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기록했다. 올해 이곳을 지날 때 마다 특별하게 변화가 없는 용주골(현 연풍리) 모습에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파주시에서 용주골 프로젝트를 시행하겠다고 공포했기 때문이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용주골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자세하게 얻게 된 기회를 가졌다. 파주 역사올레에서 세 번째 주제로 ‘미군부대’를 선정했고 용주골 탐방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지금은 퇴락한 용주골은 과거 50-60년대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다. 전쟁의 폭력이 지상의 모든 것을 파괴시킨 대한민국에서 용주골은 가장 발달되고 선진적인 지역이었다. 돈과 물질적 이익 그리고 쾌락이 미군으로부터 흘러나온 시대에 사람들은 그들 옆에 기생하였다. 미군이 이동하고 주둔하던 지역이 바로 당시 최고의 번화한 거리였다. 용주골에는 과거 영화가 상영되던 극장터와 미군들이 출입하던 클럽의 건물이 퇴색한 형태로 남아있다. 지금은 초라한 모습이지만 초가집과 판잣집이 대부분이었던 그 때 이러한 건물들은 화려함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용주골의 본 모습은 작년에 올린 사진에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용주골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좀 더 뒷쪽 골목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곳에 극장이 있었고, 클럽이 있었고, 접대부의 거주지가 있었고, 미군과의 동거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오밀조밀한 골목길로 연결된 과거의 흔적은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외부에서는 볼 수 없는 숨어있는 어두운 장소, 그 곳은 일상적인 외부의 시선에서는 차단되어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장소였다.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의 어두움을 자각시키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날 답사는 파주의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작가 ‘이용남’ 선생이 진행하였다. 그의 설명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전쟁의 긴장과 불안 속에서도 흑백 인종의 갈등이 여전했다는 점이다. 흑인들이 이용했던 클럽이 달랐고, 백인들이 애용했던 클럽이 다른 장소에 위치해 있었으며, 흑인들을 상대했던 접대부에 대한 백인들의 거부감도 상당했다고 한다. 거대한 전쟁의 혼돈과 와중에서도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사소한 관념적 세계였으며 타인과의 구별을 통한 우월감 확인이라는 찌질한 인간의 욕망이었다. 이러한 차별과 구별은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고 위계화되어 가장 낮은 위치에 있던 파주의 원주민들을 모욕과 불이익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60년대 용주골은 수많은 이주민들의 전입으로 인구는 늘어났고 미군 상대 클럽들도 성장했다. 한국의 대중가수들의 산실이 바로 미군부대 클럽이었다는 사실은 여기에만 정상적인 문화적 흐름이 작동되고 있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사람들이 늘고 돈이 모이자 당시 파주초등학교(국민학교)만으로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초등학교인 ‘연풍초교’가 설립되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학교가 ‘사립학교’라는 점이다. 돈을 버는 방식이 비록 자랑스럽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부자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1970년대까지 전성기였던 이곳은 미군부대의 철수와 병력 이동으로 점점 쇠퇴의 시간을 갖게 된다. 미군들이 사라진 장소는 그 흔적에 기생하는 형태로 오랫동안 남을 수밖에 없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새롭게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구성하려는 지방정부의 ‘용주골 프로젝트’ 계획이 어려운 것은 이 곳 건물과 토지의 소유자들이 대부분 외지인이기 때문이다.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대박의 꿈을 지닌 집주인들은 헐값에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길 거부하고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적 질서가 지배하는 한 이곳은 외부의 상황에 의존한 채 폐허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유지될지도 모른다.
폐허의 유지는 우연하게 올레 길에 동반한 관계자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용주골의 사창가는 폐지되었다고 보도되었고 얼핏 보아서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는 아직도 사창가가 유지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것은 일종의 작은 충격이었다. 사창가가 유지된다는 말은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며, 현재의 퇴락 속에서도 여전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과거의 폐허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상처와 흔적은 쉽게 제거될 수 없음도 또한 확인하게 된다.
올레 답사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주자를 만났다. 지역은 발전하지 못하고 점점 낙후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찾아오는 답사객들의 모습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항상 장소는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시선이 공존한다. 외부는 그 곳을 낭만적으로 바라보기 쉽지만, 내부의 거주자는 자신의 삶을 강탈당하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허락받지 않고 흘러다니는 사람들, 비록 막을 수는 없어도 내부자들에게 그들은 현재를 위협하는 침투자이다. 그들의 등장이 현재의 자신의 삶을 개선시켜준다는 확신이 없을 때 그런 불만은 더욱 커질 것이다.
모든 변화는 쉽지 않다.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변화에 따른 명확한 유용성을 확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한 설명과 정보를 통해 다시 방문한 용주골에 대한 인상은 더욱 무거워졌다. 자신의 거주 장소에서 아무 것도 결정할 힘을 가질 수 없는 세입자들의 무력감만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분명한 발전계획이 수립되기 전까지는 이 곳은 점점 허물어질 것이고, 무너진 것들은 방치될 것이며, 위험과 불안은 누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곳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좌절감은 무력감으로 전환되면서 이 곳의 쓸쓸함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 모습이 안타깝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닌, 방향을 잃고 방황하며 쪼그라져 가는,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 방치된 외곽지대에 대한 안타까움인 것이다.

첫댓글 슬픈 역사의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