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독립영화, 한번 보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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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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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2 / 안효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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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혜성처럼 불쑥 나타나는 미지의 작품들을 만났을 때 생긴다. 한 해 독립영화의 공과를 결산하는 서울독립영화제2007에서 발견한 네 편의 다른 영화를 소개한다.
11월 22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막한 서울독립영화제2007(이하 '서독제2007')이 30일 막을 내렸다.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아래 51편의 본선 진출작과 25편의 국내 초청작, 8편의 해외 초청작이 상영됐다. 멀티플렉스(CGV압구정, 용산)에서 열렸던 지난해에 비해 관객점유율은 다소 떨어졌지만 현장의 열기는 못지않았다. 서독제2007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많은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들에 관심을 보였으며, 감독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서독제2007을 빛낸 진정한 의미의 '다른 영화'들이 눈에 띄었다. <올드랭 사인> <낮술> <소년 감독> <할매꽃>, 2007년 독립영화계의 수확들을 소개한다.
다른 사랑은 가능하다 <올드랭 사인>
사랑은 남녀만의,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젊지 않아도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소준문 감독의 <올드랭 사인>은 힘겹게 살아온 풍파의 흔적이 얼굴에 가득한 두 노인의 로맨스를 그린 멜로영화다. 창식(김길호)은 종묘공원에서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성태(이태훈)를 우연히 마주친다. 반가운 마음에 창식은 말을 건네지만 무료급식을 먹던 성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젊은 시절, 같이 떠날 약속을 했던 두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난 뒤 만나 모텔로 향한다. 고이 간직했던 기억을 하나둘 꺼내는 두 남자. 설렘이 밤을 달린다.
<올드랭 사인>은 섬세한 연출력이 압권이다. 소준문 감독은 일상적인 대화와 작은 소품을 이용해 인물의 감정을 묘사한다. 창식이 샤워를 하러 간 사이 성태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 창식이 성태의 더러워진 옷을 빨아 드라이어로 말려주는 장면, 이가 약한 성태가 자장면을 먹으면서 단무지를 잘 씹지 못하는 걸 보고 창식이 입으로 베어주는 장면에선 연인들 간의 애틋함이 절절이 묻어난다. 특히 단무지 장면을 찍을 때 스탭, 배우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혐오스럽거나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소준문 감독은 소신대로 밀고 나갔고 창식과 성태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운이 스르르 녹는 결정적 장면이 되었다.
김길호, 이태훈 두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다. 어색함을 물리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창식, 돌아누워 그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는 성태의 연기는 강렬한 몰입과 보편적 감응을 이끌어낸다. 배우를 만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출연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고 두 배우 역시 초반에는 손을 잡거나 몸을 드러내는 장면에 난색을 표했다.
서독제2007에서 <올드랭 사인>이 상영된 후 소준문 감독은 물론 두 배우도 많은 힘을 얻었다. ‘두 노인의 동성애를 그린 작품이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소준문 감독의 우려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노년의 두 배우가 갖고 있던 조바심은 관객들의 진심 어린 격려와 함께 사라졌다. 다른 사랑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다른 영화, <올드랭 사인>의 힘이다.
소준문 감독 인터뷰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나? 종묘공원과 탑골공원을 지나칠 때마다 노인들을 보게 된다. 그들을 보면서 저때까지 난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사랑'이 멀어 보이는 것은 노인이나 성적 소수자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섬세한 감정 연출이 발군이다. 사랑은 이벤트나 격한 감정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빨래해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에는 큰 사랑이 담겨 있다. 또 이분들 나이가 되면 감정 표현을 하는 데 제약이 많다.
두 사람은 헤어지는데, 연결시켜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슬픈 결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다시 만났다는 사실, 그 순간이 귀하다. 서로 마음을 아니까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연출한 입장에서 어떤 장면이 마음에 드는가? 두 노인이 박스를 쓰고 나란히 걷는 장면이 있다. 애초 계획한 장면이 아니었다. 비가 그치지 않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었다. 꽤 괜찮게 나와 흡족하다.
좌충우돌 여행잔혹사 <낮술>
기약 없는 여행만큼 근사한 것도 없다. 계획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것은 꽉 짜인 일상을 사는 현대인의 로망이다. 하지만 그 여행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어떨까. 이러한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가 <낮술>이다. 여자 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혁진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여행을 가자는 제의를 받는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제안을 수락한 혁진. 하지만 친구들은 밤새 퍼마신 술에 녹초가 돼 계획을 작파하고 혁진 홀로 정선을 여행한다.
<낮술>은 ‘여행잔혹사'라는 부제를 붙일 만하다. 시작부터 어긋난 여행이 평탄할 리 없다. 친구가 소개한 펜션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면서 일진이 사나워진다. 혼자 왔다는 옆방 여자를 찾아갔더니 한 남자가 뜨악한 표정을 짓고, 경포대에서 다시 만난 그들에게 사기를 당해 팬티 바람으로 찬 아스팔트를 뛰어다닌다. 차를 태워준 인상 좋은 트럭 운전사는 몸을 더듬어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는 자신의 옛 여자 친구와 사귀는 중이라니. 죽을 맛이다.
이 잔혹한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은 유쾌하다. 강릉행 버스에서 만난 한 여자와의 에피소드. 여자는 호의를 보이지만 혁진은 귀찮은 마음에 잠을 청한다. “개새끼”라는 저주를 퍼붓고 떠나는 여자.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팬티 바람의 혁진이 세운 차에 하필 그녀가 타고 있을 줄이야. 여자는 또 “개새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친구와 함께 간 펜션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 또 한 번 수모를 당한다. 예측불가능한 상황과 에피소드에선 재기가 넘친다. 데뷔작인지라 기술적인 결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름다운 설경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여행기는 기술적 단점을 덮고도 남는다.
노영석 감독 인터뷰
어떻게 이런 영화를 구상했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정선의 펜션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쓴 시나리오는 공모전에 낙방했고 적은 제작비로 빨리 만들 수 있는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 그게 이 영화다.
대부분 야외에서 낮에 촬영했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실내에서 밤에 찍으면 조명을 써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심각하지 않고 웃긴 독립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밝게 찍었다.
감독, 각본, 음악, 촬영, 편집까지 거의 원 맨 시스템으로 작업했다. 감독이 이것저것 다 하면 이슈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농담이다. 이전에 음악을 했기 때문에 데뷔작의 음악은 내가 하고 싶었다. 촬영은 촬영감독과 일정이 안 맞아서 내가 했다. 제작비 아끼는 데는 도움이 됐다.
배우들의 연기가 지극히 자연스럽다. 실제로 술을 마시고 촬영을 했다. 서로 어색하니까 연기가 안 되더라. 진짜 술을 먹였더니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왔다. 술 먹는 것 자체가 연기다.
아름다운 카메라 <소년 감독>
8mm 카메라로 세상을 보는 소년이 있다. 경험한 것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더 많은 소년. <소년 감독>은 아버지가 물려준 카메라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한 소년의 동화다. 강원도 산골에 사는 상구(김영찬)는 아버지가 마을 공동집하장에 그린 벽화를 찍고 싶어한다. 하지만 소년에겐 필름을 살 돈도,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도 없다. 공동집하장이 허물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상구는 사진관 할아버지에게 서울에 가면 필름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상구는 이장집 딸 민희(론다 리)에게 러시아인 어머니를 찾아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돈을 빌려 서울로 간다.
소년은 서울 여행을 통해 잊고 있던 두 가지를 찾는다. 하나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고, 다른 하나는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진돗개 병태와의 우정이다. 사진관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들으면서, 청소년 영화학교에서 아버지가 사용했던 물건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필름 값을 벌기 위해 병태를 판 상구는 병태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새삼 깨닫는다. 카메라는 소년에게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잊을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만들었다.
상구가 바라본 것은 이우열 감독이 <소년 감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다. ‘소중한 것에 대한 기억과 상상’이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된 이유다. 감독의 의도는 인물들을 통해 나타난다. 영화를 사랑해 나이가 들어서까지 카메라를 붙잡고 있는 사진관 할아버지, 집 나간 러시아 엄마를 그리워하는 민희, 아버지와 병태를 그리워하는 상구까지. 상구가 찾아간 청소년 영화학교는 이우열 감독이 영화를 배운 ‘독립영화 워크숍’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후반부 노을골에 도착한 상구가 뒤를 돌아보는 장면은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노을 가득한 들판에 선, 그리움 머금은 상구의 눈빛은 애잔하면서도 아름답다. 가장 크게 공들인 장면이기도 하다. 클로즈업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던 감독은 결정적인 순간 상구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감정의 진폭을 키운다. 소중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큰 울림을 주는 순간이다.
이우열 감독 인터뷰
연출하게 된 동기는? 영화에서 ‘청소년 영화학교’로 등장한 ‘독립영화 워크숍’을 찍고 싶었다. 내가 영화를 배운 곳이다. 공간이나 카메라는 낡지만 기억은 낡지 않는다. 소중한 것은 지키고 싶다.
배경이 되는 노을골의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 헌팅하러 전국을 다니다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찾아냈다. 저녁마다 노을이 물드는 게 한 편의 우화를 만들기에 아주 좋았다. 리얼함보다 우화적인 영화가 좋다.
김상호, 윤제문, 최여진 등 출연진이 화려한데 김상호, 윤제문과는 친구다. 최여진은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흔쾌히 승낙했다. 돈도 얼마 못 줬는데 열심히 임해줘 고맙다. 이건 모든 배우에게 하는 감사의 말이다.
기억에 남는 현장 에피소드가 있나? 상구와 진돗개 병태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상구가 자꾸 울었다. 애초 설정은 그게 아니었는데. 둘이 워낙 친했다. 한번은 병태가 풀려나 이태원을 활보한 적이 있었다. 아주 귀한 개라 정신없이 쫓아다녔다.
비밀의 가족사를 캐다 <할매꽃>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는 상처를 꺼내 극복하라 하고 혹자는 묻어두고 살라고 한다. <할매꽃>은 가족사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찾으려는 다큐멘터리다. 문정현 감독은 2001년, 평생을 정신병으로 고생하던 작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우연히 망자의 일기를 접한 감독은 자신의 가족사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는다.
지식인 집안에서 나고 자란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고 해방 후 좌익운동을 한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경찰서에 감금돼 고문을 받던 외할아버지를 면회하러 갔다가 경찰이 쏜 공포탄 소리에 쇼크를 받아 정신병을 앓는다. 정신질환이 시작된 후 그는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자해를 하는 등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쓰러져가는 가문의 중심을 잡은 것은 외할머니다. 큰 오빠가 평소 친분이 있던 이에게 총살을 당하고, 남편이 고문을 당한 뒤 피폐한 삶을 살고, 동생이 일본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외할머니는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비탄의 가족사를 치유하기 위해 처음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상처를 꺼내 극복하는 것이다. 감독은 외할머니의 큰 오빠를 죽인 가해자 가족을 만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상황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흔들린다. 과거를 들춰 현재를 사는 사람들을 또 다시 아프게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픔을 묻어둬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사람 사는 데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는 어머니의 말은 문정현 감독의 고민과 일치한다.
마지막 장면. 전쟁과 이념 대립을 맨몸뚱이로 견뎌낸 외할머니가 병상에 누워 있다. 감독은 "다음 세상에는 마음 편히 사세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고통과 회한의 역사를 품은 부모와 그 이전 세대에게 던지는 위로의 말을 들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문정현 감독 인터뷰
촬영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내 가족 이야기라는 것이 힘들었다.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이 필요하다. 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정제하기 쉽지 않았다. 한풀이나 위로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와의 대화가 많다 어머니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인생을 배워가는 작업이라는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됐다.
영화에 담지 못해 아쉬운 이야기는? 편집과정에서 일본에 사는 삼촌들, 북에 있는 친척들 이야기가 많이 삭제됐다. 일본의 삼촌들, 그 자손들의 경우 재일 조선인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다 담지 못한 게 아쉽다.
향후 계획은? <할매꽃>이 내년 2월 열리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영포럼 부문에 초청됐다. 서독제2007에서 관객들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편집을 하고 있다. 완성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 소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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