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순대국밥은 시골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어느 장터에서나 허기진 장꾼들의 저렴한 한 끼 식사로 사랑받아 온 메뉴다. 지금도 장이 서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순대국집 간판을 단 식당 한두 곳은 있게 마련이나, 특이하게도 유관순 열사가 독립 만세를 외치던 아우내(병천) 장터에는 수십 곳의 ‘순대 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큰창자(대창)를 쓰는 함경도 아바이 순대와 달리, 병천 순대는 작은창자(소창)를 써서 특유의 돼지 누린내가 적다. 잘 손질한 소창에 배추, 양배추, 당면 등을 정성껏 넣어 만든 야채순대는 담백하고 쫄깃한 맛으로 수십 년 전부터 아우내 장터를 찾는 사람들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병천 순대의 또 한 가지 맛의 비결은 돼지 뼈를 여러 시간 고아 뽀얗게 우려낸 국물에 있다. 기름기를 일일이 걷어낸 국물은 야채순대와 어우러져 병천 순대 특유의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낸다.
몇 해 전부터 서울에도 ‘병천 순대’라는 간판을 단 체인점이 성업을 할 정도니 가히 북녘에 함경도 아바이 순대가 있다면, 남녘에는 병천 순대가 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아우내 장터에 순대국집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원조집인 청화집이 문을 연 것은 50년 전. 하지만 15년 전까지만 해도 청화집은 장날에만 문을 여는 허름한 순댓국집이었고, 그나마 그 시절까지도 병천의 순댓국집이라고는 이곳과 충남집 두 집밖에 없었다. 청화집과 충남집이 매일 손님을 받기 시작한 몇 년 후부터 하나둘 새로 문을 연 순댓국집이 본격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IMF 사태 이후였다. 가뜩이나 더 어려워진 장꾼들 주머니 사정에 저렴한 순대와 탁주 한 사발은 고기를 구워 먹는 것만큼이나 맛있고 영양 만점인 메뉴였다.
어느새 순대는 병천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고, 호두과자 하나로 근근이 버티던(?) 천안의 먹을거리를 풍성하게 하는 지역 효자 특산품이 되었다. 지금은 주말이면 서울에서 순대 맛을 보기 위해 손님들이 찾아온다. 둘이 먹어도 부족함이 없는 푸짐한 순대 한 접시가 6,000원, 순대국밥이 4,000원이니 친구나 연인끼리 찾는다면 맛있게 먹고 기름값 정도는 충분히 빠진다.
차를 두고 왔다면 순대에 어울리는 탁주 한 사발도 좋다. 이곳에선 진하고 톡 쏘는 맛의 조껍데기동동주와 맑고 달달하면서 약초 향이 좋은 한방동동주를 내놓고 있다. 기왕 오는 걸음이라면 1, 6일마다 서는 병천 장날에 맞춘다면, 순대도 맛보고 장 구경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특별히 병천장을 대표하는 특산품은 없지만, 잡곡과 야채를 서울보다는 훨씬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