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회 산행일지 : 눈의 향연 속에서 맞은 무자년 첫 날
(전북 진안군 마이산)
일시 : 2008년 1월 1(화)
날씨 : 맑고 차가운 날

11월 산행을 쉬었다고 굳이 12월 정기산행이라고 하지만 날은 해를 바꾸어 무자년 새해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한잠 자고 8시 40분 약속이었는데 다들 조금씩 늦었다. 총무는 라면도 사지 못했고 김이돌은 산행 시 아침마다 사오던 김밥 집에도 들르지 못하고 오는 길이다.
다행히도 길이 한산하여 화원 IC에는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닿을 수 있었다. 마이산을 산행지로 정하면서 등산 같지 않고 오히려 야유회 같은 느낌이 들어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녀와야 할 100명산이라며 억지로 정한 느낌이 있었다. 한 가지 위로라면 정초인데 다소 편안한 일정과 마음으로 여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화원에서 마이산을 네비에게 물으니 147.9km로 알려준다. 88고속도(12번)에서 함양에서 대진 고속국도(35번)로 갈아타고 금방 나타난 함양휴게소에서 커피와 옥수수를 샀다. 우측의 육십령 고갯길 방향, 덕유산 부근에는 눈 덮인 산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듯하다. 장수에서 며칠 전 새로 개통된 동서간 20번 고속국도인 군산-포항간의 부분인 장수-군산간 고속국도로 갈아타니 이제는 완전한 설국이다. 우리처럼 작은 나라에서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날씨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새삼 이상스러웠다.
진안 IC에서 내리니 통행료가 4,600원, 마이산 북부 주차장 쪽을 향하다가 남부주차장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너른 눈밭인 주차장에 차를 대니 생각 외로 차가 많다. 네델란드 출장에서 사온 나막신 모형을 선물로 회원들께 전해주고는 배낭을 메고 눈밭에 내린다.
입장료로 또 그놈의 문화재 관람료를 2,000원씩 지불하여야 등산로로 들 수가 있다. 오늘은 전망대-암마이봉-탑사-주차장 코스로 산행 길을 잡았는데 입구에서 어느 아저씨가 암마이봉은 2004년부터 10년간 산행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산도 낮은데 정상을 다녀올 수 있으리라 마음먹고 곧바로 눈 덮인 전망대 방향의 좌측 산길로 접어들었다. 입구 승마장에 매여 있는 말 한 마리가 많이도 추워 보인다.
뉴스에서는 30cm 가량의 폭설이 왔다고 들었는데 과연 쌓여있는 눈의 두께가 대단하다. 눈이 귀한 고장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눈이 반갑기도 하다. 아침에 출발할 때 딸 세정이가 대구에는 눈이 안 온다며 서운해 하며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오라고 했는데...
오르막이 조금 힘이 들 무렵인 5-600미터를 오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의 탑사, 북부주차장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능선에 오르자 눈바람이 매우 차갑다. 그러나 다행이도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있어 스패츠를 하지 않아도 눈이 신발사이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도 약간 오르막이기도 하거니와 눈바람이 강하여 힘이 든다. 철계단을 70여개 오르면 해발 527m 나봉암 위에 세워진 비룡대란 이름의 전망대이다. 벽면에는 류모 도백과 임모 지방수령의 공치사 같은 ‘비룡대기(飛龍臺記)’가 걸려있다. 
암마이봉의 조망은 좋으나 숫마이봉은 암마이봉에 겹쳐서 봉우리 끝만 조금 보인다. 남쪽으로는 멀리 높고 큰 덩치의 산이 구름에 맞닿아 있고 북으로는 산들 틈새에 자리 잡은 들판 가운데를 20번 고속국도가 길게 달리고 있다.
예전에 다녀간 마이산은 너른 들판에 두 개의 봉우리만 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오늘에 다시 보니 산들이 많고 골도 깊다. 사방으로 전망이 좋긴 하지만 바람이 너무나 세 오래 감상할 여유가 없다. 시간은 12시를 조금 넘기고 있다. 아직도 마이산 정상인 암마이봉은 저만치 멀리에 있다. 나봉암에서 하산하는 길은 다소 미끄럽다. 아이젠을 준비하긴 했으나 곧 점심자리를 찾을 것이라며 버티어 본다. 탑사방향으로 큰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고 볕이 좋을 뿐 아니라 눈까지 쌓이지 않은 맞춤의 장소에 전을 펴고 귤과 사과, 똑 같은 메뉴의 점심을 먹었다.
원래 예정대로 산행을 하려면 탑사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했는데 북부주차장 방면으로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총무 말로는 북부주차장 가다가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우측 길이 있다기에 거기에 넘어갔던 것이다. 별로 올라오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내리막이다. 우측에 작은 길이 있기에 암마이봉을 향하는 길인가 하여 잠시 들어가 보았더니 바위 밑에 비닐하우스가 있고 목탁소리가 난다. 좀 더 가까이 가니 아주머니 한분이 나오시며 이곳으로는 길이 없다고 하신다. 곧 뒤돌아 조금만 내려서니 황량한 북부주차장이다. 마침 눈이 내리고 있고 바닥은 눈과 얼음판이다. 겨울의 고즈넉한 풍경이다. 이제 다시 ‘마이산 가는 길’ 이정표를 따라 탑사방향으로 오른다. 입장료부스에서는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남부주차장에서 입장료를 내고 돌아왔다고 하니까 영수증을 보여 달랜다. 마침 총무가 영수증을 챙기지 않은 탓에 증거도 없이 사실만을 예기하니까 “보내주기는 하겠는데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걸어온 신발을 보여줄까? 김이돌이 든 흙 묻은 스틱을 보여줄까? 등의 생각이 있었지만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미 부스를 통과한 한참 후의 일이다. 너른 계단 길에 한쪽 구석만 제설이 되어있다. 천황문까지는 오르막이다. 마지막 부분은 목제계단 공사 관계로 우회 길을 만들어 두었으나 좁고 미끄러웠다. 너른 광장에 올라서면 좌측은 화엄굴이 150m 지점에 있고 우측으로는 0.6km 지점의 암마이봉에 오르는 등산로이지만 식생 복원을 위한 자연휴식년제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눈 위에 발자국이 있는 걸로 보아서 지나간 사람들이 있어 보이지만 산을 사랑하는 우리가 참기로 했다.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마이산은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의 주능선에 위치하며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한국명승 12호로 지정된 산이다. 산전체가 수성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숫마이봉(667m)과 암마이봉(673m) 두 봉우리는 조선 태종 때부터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이산은 산전체가 콘크리트 더미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김이돌 회원은 산행 중 “콘크리트로 길바닥을 보수한 것 같다”고도 했으니 말이다.
가까이서 본 큰 바위는 모두 굵고 잔 자갈돌을 몸속에 무수히 지니고도 있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는 모습들이다. 그런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도 나무들은 뿌리를 박고 있다. 
마이산을 뒤로하고 목조계단으로 잘 놓여진 길을 따라 탑사방향으로 내려오면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깃든 은수사가 있고 마당에는 큰 북과 그 아래로는 청실배나무가 있다. 이 청실배나무는 태조 이성계가 심어 수령이 600년 정도인데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이곳에만 있어 천연기념물 제386호로 지정된 중요한 가치의 나무란다. 사실 이 나무는 우리 눈에 띄지 않았고 다만 사진의 배경으로만 보여 나무를 좋아한다는 나로서는 애써 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또한 뒤에 안 얘기이지만 이곳 마이산에 그릇에 물을 떠 놓으면 고드름이 거꾸로 자란다고 한다는데 눈여겨 살펴보지 못한 안따까움이 있다. 그러기에 미리미리 예습하여 공부해 두면 그만큼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데 아쉽다.
이쯤에서 뒤를 돌아보면 특히 암마이봉은 군데군데 움푹 패인 돌구덩이가 많이 있는데 이러한 지형을 ‘타포니’라고 하는데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큰 것이라 한다. 이러한 타포니마다, 암벽마다 길게 줄지어 매달린 고드름은 볼만 하다. 이쯤에서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며 바위 구멍을 안내하던 사람은 사진사였다. 숫마이봉이 코끼리형상으로 보이는 곳에 전을 차려놓고 사진 찍기를 권하고 있다. 금도현과 김생곤은 그곳에서 포즈를 취하였지만 사진사는 나였다.

탑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탑사는 이갑룡 처사(1860∼1957)가 1885년 마이산에 들어 30년 동안 쌓았다는 120여기 중 현재 남은 돌80여기의 돌탑이 유명하다. 탑사 앞에는 코앞까지 차고 올라온 즐비한 식당과 기념품점이 다소 씁쓸하게 보인다. 속세와 선계가 내 머릿속에 함께 있듯이 애당초 물리적으로도 이리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
탑사를 뒤로하고 남부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호수 중간에 오리배가 한척 떠있고 얼음이 살짝 얼었다. 이 길은 굵은 벚나무가 양옆으로 줄지어 서있다.
도종환 시인은
‘꽃나무라고 늘 꽃을 달고 있는 건 아니다/삼백예순 닷새 중 꽃 피우고 있는 날보다/빈 가지로 있는 날이 훨씬 더 많다’고 하면서 ‘꽃 피던 날의 기억으로 허세부리지 않고/담담할 수 있어서 담백할 수 있어서/나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했다. 오늘은 눈꽃을 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인의 말대로 담백하고 담담한 모습이다. 나도 언제쯤이면 이처럼 ‘바람 앞에 섰다고 엄살떨지 않고’ 담담할 수 있을까? 입구에 줄지은 돼지갈비 굽는 연기에 세상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날씨는 차다.
가조의 백두산 온천에 들렀다. 할인권을 구하지 못하여 온돈 주고 들었더니 사람이 꽤 많다. 얼굴 차가운 노천탕에서 여유를 즐기고 저녁은 우리 동네의 버섯마을에서 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