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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비 오는데 밝은 달을 보고 불 속에서 맑은 샘물을 퍼낸다.
바로 서니 머리가 땅에 닿고 옆으로 누우니 다리가 하늘을 가리킨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조사선祖師禪에 계합한다" 하니
불감 늙은이의 악독한 말이여, 몇 사람이나 기뻐하고 몇 사람이나 성내는가.
입안의 붉은 연꽃은 비상을 토해내고 혀끝의 벽력은 감로수를 쏟는다.
동두銅頭는 물러나 달아나고 철안鐵眼은 일어나 춤추니
어떤 사람이 일찍 이렇게 오는가?
◎ 서두에 불감선사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구름이 하늘에 꽉 끼어 비가 억수같이 퍼부으면 하늘이 캄캄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인데 흰 달을 본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아닙니까? 그러나 거짓말이 아닙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 하늘이 캄캄하지만 실지에 있어서 달은 환하게 밝아 있습니다. 또, 사람이 곁에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불길
이 치성한데 그 불무더기 속에서 물을 퍼낸다고 했습니다. 비가 오는데 어떻게 보름달을 볼 수 있으며, 불무더기
속에서 어떻게 샘물을 길을 수 있을까요?
서기는 바로 꼿꼿하게 섰는데 머리는 땅에 닿아있다 했는데, 사람이 바로 서면 발이 땅에 닿지 어떻게 머리가
땅에 닿을 수 있습니까? 또, 사람이 옆으로 누워있는데 다리가 하늘을 가리킨다고 하니 이것 역시 말이 되지 않는
거짓말 아닙니까? 서두부터 이상한 소리만 꺼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빗속에서 달을 볼
수 있으며, 불 속에서 물을 퍼낼 수 있으며, 사람이 바로 섰는데 머리가 땅에 닿을 수 있으며, 사람이 누워있는데
발이 하늘 위로 솟을 수 있느냐 이것입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조사선祖師
禪에 계합단다고 불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조사선의 골수법문입니다. 보통의 상식으로 볼 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
도리를 확실히 바로 알아야만 비로소 조사의 도리를 알 수 있고 모든 공안을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불감 근선사라고 유명한 대조사스님의 법문입니다. 오조 법연선사 문하에서 삼불三佛이 나와 임제종
을 크게 중흥시켰는데 그 삼불 가운데 한 분이 불감 혜근佛鑑慧懃 선사입니다.
허나 나는 불감 늙은이의 악독한 말이라 했습니다. 그런 대조사의 그 깊은 법문을 왜 악독한 말이라 할까요?
그런 법문을 듣고 환희심을 내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왜 또 성낸다고 했을까요? 아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입안의 붉은 연꽃은 혓바닥을 두고 한 말입니다. 때론 입에서 사람을 죽이는 독한 비상을 토해내기도 하고,
벽력처럼 크고 무서운 말로 감로수를 폭포같이 쏟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떠한가?
동두銅頭, 견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무서워서 물러나 달아나고, 철안鐵眼, 일체를 꿰뚫어보는 예리한 식견
을 가진 사람은 좋아서 환희심에 일어나 춤춘다고 했습니다.
이런 내 법문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자기 혼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녹음기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도 하고, 도저희 알아들을 수도 없고 우리와는 관계도 없으니 좀 현실적으로 말해주었으면 하는 요구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든 진리를 분명히 알아듣게 하는 것이지 절대로 모르는 소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청천
백일에 해가 뜬들 봉사는 그 해를 볼 수 없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노래를 부른들 귀머거리는 그 노래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귀머거리 봉사에 맞춰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를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러니 이렇게 말
하는 근본 뜻은 어디에 있는가? 봉사는 얼른 눈을 떠 밝은 해를 보고 귀머거리가 얼른 귀를 열어 그 노래를 들으라
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눈을 뜨고 귀를 열수 있는가? 어떻게든 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자성을 깨쳐야만 되지 그
러기 전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본칙 조주스님이 어떤 중에게 물었다. "일찍이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온 적이 있습니다."
"차 한 잔 마셔라."
또 어떤 중에게 조주스님이 물었다.
"일찍이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처음입니다."
"차 한 잔 마셔라."
이에 원주가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어째서 일찍이 왔던 사람에게도 '차 한 잔 마셔라' 하시고, 처음 온 사람에게도 '차 한 잔 마셔라' 하십니까?"
"원주야!" 하고 조주스님이 부르자 원주가 대답하니,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 차 한 잔 마셔라."
◎ 차 한 잔 마시라 한 것에 뭐 그리 대단한 뜻이 있다고 이러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이
는 일상사에서 사람 대접하며 차 한 잔 마시라 한 것이 아닙니다. 언외현지言外玄旨, 말 밖에 아주 현모하고 깊
은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조주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그 깊은 뜻은 무엇인가? 그것을 내가 한번 말해보겠습
니다.
착어 만국萬國에 티끌 연기 끊어지고
일천 집이 대문과 창문을 닫았네.
◎ 온 삼천대천세계에 티글 연기가 끊어지고, 가가호호마다 대문과 창문을 닫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알면 조
주스님이 차 마시라고 한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주주스님은 그냥 "차 마시라"고 했는데, 어째서 나는 "온 세계에
티끌 연기 끊어지고 가가호호마다 대문과 창문을 닫아걸었다"고 하느냐 말입니다.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소리
같지만 이것을 알아야 앞의 차 마시라고 한 법문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임제정맥의 원오스님 손제자 되는 응
암 화선사께서 조주스님의 공안에 게송을 지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소개하겠습니다.
송 응암 화선사가 송하였다.
조주의 차 마셔라 함이여, 나는 그를 무서워하니
만약 빛 받을 사람이 아니면 이는 곧 원수로다.
담장을 의지하고 벽에 기대어 무리를 이루고 떼를 지으니
누가 용과 뱀을 분별할 줄 아는지 알 수 없구나.
◎ "조주의 차 마셔라 함이여, 나는 그를 무서워하니"라고 했으니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 아닙니까? 조주스
님이 "차 한 잔 마셔라"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하고 먹을것이지 왜 무섭다고 했을까요? 그것도 어느 정도로
무서운 사람인가? 빚쟁이 아니면 불구대천의 원수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누가 제일 무섭냐고 물어
보면 빚쟁이가 제일 무섭답디다. 갚을 돈은 없는데 자구 독촉하니 발자국소리만 들어도 겁난답니다. 그런 무
서운 빚쟁이 아니면 부모를 죽이거나 한 불구대천의 원수거나 세세생생 만나기만 하면 칼로 찔러 죽이고 서로
물어뜯고 한 원수지간이란 겁니다.
또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많이도 모였는데 용과 뱀을 가려낼 사람이 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용은 성
스러운 동물이고 뱀은 징그럽고 독한 짐승 아닙니까? 참으로 이것이 용인지 뱀인지 아는 사람이 있는냐는 겁
니다. 결국은 조주의 법문을 바로 알아듣는 사람이 참으로 드물다는 말입니다. 응암스님의 게송에 내 한마디
하겠습니다.
착어 은혜를 아는 이는 적고 은혜를 저버리는 이는 많도다.
◎ 이 말을 알 수 있으면 조주스님의 법문도 알 수 있고, 응암 화선사가 "조주의 차 마시라는 소리가 참으로
무섭다"고 한 뜻도 알 수 있습니다.
송 송원 악선사가 송하였다.
조주의 차 마셔라 함이여 독사가 옛길에 누웠구나
밟아서 잘못된 줄 알면
부처도 되려고 않으리라.
◎ 독사가 길에 누웠으니 물리면 사람이 죽을 판입니다. 그 말은 조주가 "차 마시고 가라" 한 말이 길거리에 드러
누운 독사보다 더 무서운 소리라는 것입니다. 앞의 응암 화선사 게송과 내용이 일맥상통하지요?
그래서 그 독사를 밟았다는 말입니다. 밟아서 물리면 잘 못했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지 않습니까? "차
한 잔 마시라"는 조주스님의 말씀이 겉으론 참 좋은 말씀 같지만 속엔 독사보다 더 독한 뜻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 그 사람은 부처가 되라고 해도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부처도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송원 악선
사는 송하였습니다. 그럼 송원스님의 게송에 내 한마디 붙이겠습니다.
착어 도적은 도적을 알아보고 쐐기로써 쐐기를 빼낸다.
◎ 보통사람은 저 사람이 도둑인지 아닌지를 모릅니다. 도둑놈이라야 한눈에 도둑놈을 알아보는 법입니
다. 이렇게 말한 뜻을 알면 앞의 내용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송 개암 붕선사가 송하였다.
추운 곳에 불을 피우고 시끄러운 속에 벽돌을 던진다. 잔잔한 물에 배를 띄우고
다리를 씻고 배에 오른다.
◎ 표현이야 다르지만 내용은 앞의 응암스님과 송원스님의 게송과 똑같습니다. 그럼 여기에도 한마디 붙이겠
습니다.
착어 삼 년에 한 번 윤달이 들고 한낮에 삼경을 친다.
송 보암 옥선사가 송하였다. 조주의 차 마셔라 함이여 독사를 거꾸로 잡아내니 허공이 땅에 떨어지고
무쇠 나무에 꽃이 핀다. 야차夜叉와 나찰羅刹귀신과 미륵보살과 석가가 머리를 고치고 얼굴을 바꿈이
그 수가 끝이 없으니 풍류가 뭇 사람을 뛰어났다 하지 말라.
착어 고양이는 피를 뿜는 공로가 있고 범은 송장을 살리는 덕이 있다.
◎ " 고양이에게 피를 뿜는 공로가 있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 하겠지만, 어떻게 호랑이에게 송장을 살리는
덕이 있다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이제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염 백운 병선사가 염하였다. "첫머리에 판단하니 밝고 밝게 홀로 드러나 사사로움이 없고, 얼굴을 마주하여 서
로 드러내니 말과 말이 일찍이 가리고 덮음이 없다. 만약 두꺼비가 너의 귓속에 들어가고 독사가 너의 눈동자
속을 파고들면, 이러한 때를 당하여 너는 어떻게 할 것이가? 장차 오랑캐의 수염이 븕다고 하려 했더니 다시
붉은 수염의 오랑캐가 있다.
착어 나는 저에게 신라의 독한 부자약附子藥을 주었더니 저는 나에게 배 위의 순한 회향茴香으로 갚는다.
결어 대중들이여, 조주 고불古佛이 조그마한 칼도 쓰지 않고 종횡으로 죽이고 살려서 거리낌없이 자재하여멀리
천고에 뛰어나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으나, 한 무리의 도적들이 심간心肝을 쪼개어 내니 구할 수 있겠는
가? (한참 묵묵한 후에 말씀하셨다.)
차 한 잔 마셔라! (곧 자리에서 내려오시다.)
◎ 대중 여러분, 조주 고불古佛 께서는 조그마한 칼도 쓰지 않고 종횡으로 죽이고 살리며 거리낌 없이 자재
自在하여 멀리 천고에 뛰었으니 앞에도 이런 분은 없었고 뒤에도 이런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무리의
도적들이 조주스님의 배를 갈라 심장과 간을 끄집어내고 있으니 구할 수 있겠습니까?
차 한 잔 마셔라!
己酉(1969)년 11월 보름 해인사 해인총림 궁현당
첫댓글 읽고 또 읽어 봅니다
조주스님의 "차 한잔 하시게"
고맙습니다
만덕향님
덕분에 감사합니다
나날이 좋은날 되소서 ()()()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닷서!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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