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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방에 늦게 찿아 죄송 합니다.사정이 좀 있었읍니다.
0.일 시:2010년9월4일(토요일)07:00 -22:00까지
0.다녀온 산;전남 영광군 불갑산(516m)및모악산(484m)
※.산행로:불갑사-덫고개-노적봉-법성봉-투구봉-장군봉
-노루목-연실봉(정상)-구수재-용봉-용천봉(모아산 정상)
-용천사(4시간 소요)
0.같이간 회원:회장님외46명(회원:36명,일일회원:11명)
0.산행 종합 평가:후덥지근하고 더운 날이라 정상 코스:23명
얕은 산으로 힘이 안들줄 알았는대 어느 산이든 힘든 구간
이 있고 비가 올것 같은 날씨 였으나 하단에는 비가 10분간
내렸다는대 산행중엔 비가 오지 않았음.
선두와 후미 보조가 맡지 않아 선두는 달아나는 형이고
후미는 쫗아가는 형이라 무척 힘들어 하는것 같았으므로
중간 위주로 산행 결과를 올립니다.
0영광에 대하여
1.영광은 빛나고 광명 스러우며 조용하고 사계가 아름다운 군
으로3,3,3,을 자랑하는 군이다.(체육시설,삼백,호남의 3대성지)
가.6만여명의 군에 전국체전 가능한 체육시설 보유하고 백수
읍에 생활 체육공원과 홍능읍에 한마음 인조 잔디구장 자랑
나.영광의 삼백은 호남에서 가장 적설량이 많아 겨울내 녹지
않는 흰눈,영광 굴비를 염장하는 천일염(소금),간척지의 맑
은물과 기름진 땅에 해풍 맡은 흰쌀을 자랑하고
다.호남의 3대 성지는
1)백제불교 도래지:인도 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불법을 처음
전한 곳을 기념하기 위한 곳으로 부용루(벽면에 서가모니
출생-고행및해탈 전 과정을 23개 원석에 간다라 조각 기법
으로 음각),탑원,간다라 유물 전시관,사면이 다른 불상 건립
하여 불갑사와 더불어 관광 단자로 조성하고
2).기독교 순교지:6.25때 북한군 교회 탄압에 항거하여 신앙
지키려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한곳(염산교회:77명,야월교회
:65명)으로 역사 짧은 우리나라에 교인들의 깊은 신앙심에
숙연해 지는 곳이다.
3)원불교 영산성지: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이 태어난 곳
으로 세계 500개 교단에 100만 신도가 있으며(흰 저고리 검
정치마 입음)영광의 영광 성지와 이리의 익산 성지가 있다.
2.영광의 트산물인 영광 굴비:굴비는 고려 인종때 이자겸이 영광
유배 생활시 조기맛이 하도 좋아 임금님께 진상 하면서 아부가
아니라 백성된 도리로 하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굴하지 않는
다는 뜻으로 굴비라 이름 지었으며 영광 앞바다 칠산 어장에서
잡은 참조기를 1급수 맑은 물에 씯어 염장(3년이상 간수를 뺀
영광의 천일념)하고 하늬바람(북서풍)이 부는 법성포에서 자연
건조 시킨것
이자겸은 인주 이씨로 이자연(문종의 장인)의 손자로 왕실과 중
복된 외척 관계를 형성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십팔자설(이씨가
왕이 된다는 설:후에 이성계가 쿠대타로 왕위에 올라 조선을 세
움)을 믿고 인종을 없애고 왕위에 오르려다 왼팔격인 척준경에
의해 유배 생활함.
이자겸은 자기딸 순덕을 16대 예종의 비로 만들고 17대 인종에
게 다시 2녀3녀를 받치므로 권력 장악함.
3.영광은 봉래 양사언이 태어난 곳이며 자란곳으로 양사언의 아버
지 양민이 영광 사또르 부임시 춘삼월 어느 어촌 마을을 지날시
허기가 있는지라 먹을곳을 찿자 대다수 집들이 농번기라 비어 있
어 마침 어느 집에서 소녀가 나와 공손히 인사하고 찬은 없지만
밥을 먹고 가라는 말에 깨끗하게 차린 상에 밥을먹고 보니 소녀가
어찌나 공손하고 말 쏨씨가 부드러운지 기특하게 여겨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돈을 주니 기여코 거절 하므로 소매에서 청홍선이
달린 부채를 주며 그냥 주기가 멋적어 농담썪인 말로 고마움에 내
가 너에게채단으로 주는 것이니 받이라 하니 소녀가 방으로 들어가
홍보를 들고나와 바닥에 깔고 내려 놓으라 하니 사또가 놀라 왜 그
러냐고 물으니 패백으로 주는 채단을 어찌 맨손으로 받느냐고 하니
부채는 홍보위에 놓이고 소녀는 잘 싸 안방으로 가져간다.
세월이 흘러 사또는 이런저런 바쁜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한 노인
이 찿아와 뵙자고 하기에 만나니 부임시 시골집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한적 있느냐고 물으니 사또는 한참 생각타가 그런 일이 있다하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딸이 아무리 결혼하라 해도 가지않아
사연을 물으니 홍보를 내 놓기에 영문을 몰라 찿아 뵈었다고 하니
사또는 그래요 하면서 아내로 맞겠다고 날을 받아 보내라 한다.
사또는 식사 한끼 먹고 부채를 밥값으로 충분 할탠대 졸지에 아내
까지 얻게 됐으니 그 소녀가 후에 양사언의 어머니다.(kbs역사기록)
사또에게는 정실부인과 아들 양사언이 있고 후실인 소녀는 뒤에
양사언과 양사기 두아들을 낳았다.
세월이 흘러 정실부인이 죽자 후실인 양사언의 어머니는 세아들을
훌륭이 키웠다.아무리 잘 키워도 후실의 자식은 서자다.
세월이 흘러 양민이 죽자 양사언의 어머니는 자식의 서자 딱지를
때기 위해 초상날 큰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하는 부
탁이 후에 내가 죽으면 3달 상복으로 두아들이 서자인것을 알것이니
내가 죽고 아버지와 같이 초상을 치면 상복으로 서자인것읊 모를 것
이니 내가 죽은뒤 두 동생한태 서자라고 부르지 않겄다고 약속하면
죽어서도 영감 곁에 누울수 있다하자 정실부인 아들이 지금까지 저
희들을 잘 키워 왔는대 무슨 말이냐고 말렸으나 실로 어머니는 성복
날 자결하고 만다.
자기 아들을 서자라는 멍애를 풀고 떳떳하게 세상을살아가게 하고
싶었던 여인,선구자적인 신여성이 아니었나 한다.후에 양사언은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오른다.끝없는 어머니의 사랑은 어디에서 나
오는 것일까?
봉래 양사언,만호 한석봉,추사 김정희는 조선 3대 명서 예가이자
문인이다.관직에 있다 철원 사또로 부임하게 되고 자연 인접에 있는
금강산을 찿아 금강산의 매력에 젖어 살게 된다.
●.양사언의 시조:태산이 높다하되.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재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노력하면 안되는일 없다는 교훈으로 알고 있지만 그이면에 어머니의
처절하게 살다간 시리는 어머니 정이 묻어 있다고 할수 있는 시조다.
훌륭하던 안하던 어머니의 은공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어머니 상은 율곡과 그어머니 신사임당,한석봉과
어머니를 들지만 우리의 어머님은 내놓지 못하지만 만은 시련을 겪
으며 자식 잘 되기를 바라며 살았을 것이다.
0산에 대하여(불갑산과 모악산 그 언저리)
1.불갑산은영광군과 함평군의 경계로 영광의 진산으로 진량포 모악산
이라 부르다 인도의 마라난타 존자가 중국 동진(진나라)을 거처 진량
포 모악산에 들어와 불갑사를 창건하니 그 뒤부터 법성포 불갑산이라
불렀다.
가.법성포:진량포라 부르다 그후 아무포(아미타불의 아미가 와전) 고
려시대엔 부용포(연꽃모양) 고려후기부터 마라난타(성인)가 불법(법)
을 갖고온 포구라 법성포라 부름.
나.불갑사:불교 불자에 육십갑자의 처음인 갑자를 섰으나 불교 사찰중
어뜸이라는 뜻.
2.불갑산은 늙은 쥐가 산에서 내려오는 형상이며 산세는 순한 편이며
덫고개,노적봉,법성봉,투구봉,장군봉,연실봉으로 이루어 졋으며 산
행하기 매우 좋은 지형이다.
3.불갑산 불갑사에서 좌측은 진일암골이고 우측은 동백골로 불갑사 저
수지 주위 9월 중순경 상사화가 만개시 꽃길을 형성하고 저수지 끝부
분에 좌측은 해일암 오르는(조금 가파름) 길이고 우측은 구수재 오르는
길이다.구수재에서 좌측은 연실봉 오르고 우측은 모악산과 용천사 간다.
4.모악산은 어머님 품같이 포근한 산으로 그아래(함평쪽) 20만평의 상사
화가 무리지어 피는곳에 천년고찰 용천사가 있다.
●.용천사는 용이사는 샘에서 유래되어 용천사라 했으며 조계종 제16
교구(백양사) 말사로 백제 무왕 워년에 행은선사가 창건 했으나 조선
사찰 사료에 의해 용천사 대웅전 현판 단청기에 보면 주국 당나라 현종
(712년-756년)때 국행스님이 창건 했다 한다.(폐터에 새로 지었지 않
나 생각 한다) 1275년(고려 충렬왕)에 각전스님이 중수하고 1351년에
왕사로 책봉되고 사후에 국사가 됨.
임진란때 폐허되고 1636년(인조13년)에 쌍인,개인 스님이 중창하고
1705년에 여러 스님들의 시주를 모아 중수하여 오늘에 이름.
보물로는 대웅전에 오르는 셰단인 소멧돌(연꽃 줄기와 꽃봉우리 양각)
문화재로는 1685년에 조성한 석등과 돌 해시계(별도 보관),1688년에
새운 괘불 석주가 있으며 대웅전엔 극락의 주인이신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불갑산 불갑사는 호남의 명찰로 유서깊은 사찰이다.삼국시대에 백제
불교가 처음 들어온 곳이며 인도 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남중국 동진(진
나라)을 거처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영광땅 진량포로 들어와 모악
산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 하였는대 이 사찰이 모든 사찰의 시원이며 으
뜸이 된다하여 불갑사로 이름 지었다 한다.
불갑사 대웅전 부처님은 남으로 보고 앉아 계신다.이는 마라난타 존자의
고향인 인도 남방 불교의 양식으로 우리나라에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이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는 부처님을 볼수 있다.
불갑사 대웅전 조각이 특이한 것은 창살 무늬 때문으로 이것은 보기드문
눈송이 설문이고 대들보는 용이 기둥을 타고 내려오며 오소리를 쫓는 형
국이다.대들보 조각을 마칠때까지 부정한 여자는 이곳을 오지 말라 했는
대 어느날 절에 시중들든 하녀가 궁금해 자기방 문틈으로 내다보니 조각
장이가 피를 토해 죽고 피가 까치로 변해 날아 같다 한다.지금도 대웅전
불상뒤 벽에 조각장이를 기리기 위해 까치그림 2폭이 남아 있다.
불갑산 사천왕상은 조선 중기에 조성된 목조로선 국내 제일 큰것이며
균형미가 뛰어나고 섬세하고 화려한 쏨씨로 조각된 것이며 사천왕상은
귀신들의 수장으로 부처님 설법에 교화되어 제석천 수미산 동서남북에서
부처님을 보호하는 신장이다.사천왕상은 외모도 준수 하지만 몸 안에서
1997년9월 월인석보등 보물급 고서 50권이 나와 더욱 유명하다.
동쪽:지국천왕(칼과 주먹을 쥐고),남쪽:중장천왕(용과 여의주를 쥐고)
서쪽:광목천왕(창과 탑을 쥐고)북쪽:다문천왕(비파를 들고 있다)
5.불갑사와 용천사 주변엔 9월중순(9/17-9/19까지 축제함)에 상사화가
지천으로 피며 상사화는 개상사화,위도 상사화,붉은 노라 상사화,진노랑
상사화,흰상사화,백양꽃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7월 하순부터 8월엔 국산
상사화가 연한 자주색과 연분홍색으로 피며 9월 중순에 만개하는 상사화
는 붉은색이며 일본산으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것을 꽃무릇 이라 한다.
고창 선운사,영광 불갑사,함평 용천사에서 9월 중순 꽃무릇 축제를 한다.
상사화는 주로 농촌에서 개난초라하며 뿌리가 둥글어 한자어로 석산이라
한다. 석산을 절간에서 키우는 이유는 뿌리에 알카로이드 성분이 방부제
역활을 하기 때문에 경전을 만들어 마무리 하여 묶을때 풀에 갈아 사용
하면 좀쓰는것을 예방하고 탱회 그릴때 천에 바르면 오래 보존 가능하기
때문에 절근처 심어 자란다,
상사화는입이나는 3월엔 상사초이고 꽃이 피는 가을엔 상사화다.
상사화는 잎이 지면 꽃이 피기에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
하는 꽃이라 상사화라 하며 집근처엔 잘 기르지 않는다.
0.산행 실시
1.12:10분에 불갑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불갑사 경내를 관광하고 산행
시작(23명),구수재-용천사(12명),불갑사-용천사 관광(12명)
●.불갑사 오르는 좌측에 불갑산 덫고개에서 잡은 호랑이 상이 있다.
호랑이는 1908년 한 농부가 불갑산 덫고개에서 잡은것을 일봉인 하라구
찌가 당시 논 50마지기에 해당하는 값(200만원)에 사들여 일본 동경 스
마스 박제 제작소에서 박제하여 목포 유달 초등학교에 기증하여 현제까
지 보관 중이며 남한에서 잡은 호랑이 박제는 불갑산 호랑이 밖에 없다.
호랑이 잡은 100주년 기념에 영광군에서 유달초등학교와 환경부 국립
생물 관리관의 협조로 관광객에게 볼거리 제공차 복제하여 모형을 제작
하여 만들어 놓고 가까이 가면 울도록 전자 장치를 해 놓았다.
2.불갑사 좌측 덫고개 오르는 이정표를 따라 23명이 등산하니 경사는 좀
심하지만 15분 소요.(선두 쉬는 동안 후미는 20분 소요)
●.덫고개는 농부가 오랑이 잡을시 덫을 놓아 잡았다고 붙여진 이름.
3.덫고개는 정자가 있으며 노적봉까지 400m란 이정표가 있다.
12:40분 출발하니 경사가 심하다.노적봉 바로아래 호랑이가 살던 천연
동굴과 그앞에 호랑이 상이 앉아있고 그옆에 호랑이 잡은 유래 설명 표
시판이 있다.
4.호랑이 굴에서 잠시후 노적봉이다.노적봉은 공간은 좀 있으나 볼것은
없다.(노적봉은 멀리서 보면 집단 쌓은듯하여 붙여진 이름)
구름 꽉낀 길로 10분 지나니 법성봉이다.법성봉은 좌측으로 우회길이
있어 3명만 법성봉에 오르고 그냥 우회 한다.
앞에 전장터의 투구처럼 뽀쪽하게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멀리서 보면
경사가 심하게 보이지만 그리 심하진 않다.투구봉까지 15분 소요됨.
5.투구봉지나 방군봉 오르는 길에 회원이 멀미 난다기에 멀미약이 없어
소주 한잔 드렸더니 괜찮다고 그냥 걷는다.장군봉은 암산이나 그래도
흙이 많이 있엎 걸을만 하다.
6.12명은 노루목에서 식사하라 했는대 노루목 지나 식사 한다 한다.후미
11명은 노루목 포장로에서 식사를 했다.식사후 150m거리에 있는 해일
암에서 물을 떠 오니 남자 회원들은 가고 여자 회원들만 있다.
●.노루목은 여러곳에 지명이 있다.누루가 잘 다니는 길이라기도 하고
삼거리를 노루목 이라고도 한다.
●.해일암은 불갑사 암자로 스님 한분만 계신다.참선 하시는 스님 같다.
대응전1동과 요사채 1동과 스래트 집으로 공양간을 사용 하는것 같다.
요사채는 먼지가 자욱해 쓰지 않는것 같다. 절마당에 잡초도 무성하고
전설의 고형에 나오는 사찰 같다.
7.노루목에서 여자 회원들과 같이 정상 연실봉에 오르려니 밥 먹은뒤라
힘들어 하며 오르니 좌측으로 위험한 길이라 표시되 있어 여자 회원들
을 우측으로 가라하고 위험한 길로 오르니 좌측은 절벽이고 돌길이라
난간대를 잡지 않으면 위험 할것 같다.좌측에 기름진땅 묘량면이 한눈
에 들어온다.위험한 돌길 지나니 우측으로 같던 여자 회원들이 오른다.
잠시후 앞에계단길이다.260여개의 계단길 오르니 정상 연실봉이다.
●.연실봉 정상은 화강암 둥근 정상석이다.(정상:516m)정상석 뒤로 낙
조가 아름다울것 같다.사방을 나무로 난간대를 설치해 두고 공간도 제
법 있다.우리나라 지도 제작시 사용하는 삼각점도 있다.
8.정상에 서니 비가 솟아질것 같아 신속한 사진 촬영을 하고 청산모 현수
막을 접고 가려하니 선두가 묘량면으로 내려선다.
돌아오라하니 후미가 선두되고 선두가 후미다.계단 오르는길에 구수재
이정표가 있는대 설명 할땐 뭘 들었는지 궁금하다.물을수도 없고----
9.정상 오르던 계단길로 10계단 내려서니 좌측으로 구수재 이정표다.
길도 못 찿던 선두가 후미에 오다 쫓아 달린다.비가 올것 같았는대 비
는 오지 않는다.구수재 가는 돌길과 경사길로 내려서니 과주 정씨 합
장묘다.지난 콤파스 태풍이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조금더 내려서니 평산신씨 할머니 묘다.길은 완만하고 곧이어 구수재다.
10.구수재에서 불갑사로 하산길이 열리고 직진하면 모악산으로 가는 길
이다.구수재에서 60이 넘은 부회장이 사모님 젖을 빠니 젖이 나온다하여
한바탕 웃고 모악산으로 길을 재촉했다.오르막 5분뒤 모악산과 용천사 갈
림길 이다.회원님들이 더위에 땀을 많이 흘렸는지 그냥 용천사로 가려 한다.
11.10명이 모악산 오르고 13명은 용천사로 가려 한다.
산행 부대장이 모악산 용출봉 오른다하여 그냥 용천사로 하산.
산허리 도니 쉼터에 군 유격장에 있을 체육 시설이다.
이정표에 정상(0.75Km),용천사(0.58Km)다.용천사로 하산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용봉돌아 모악산 같다오는 회원들도 그리 험하지도 않는대
안온다고 한다.(정상에서 하산길도 못찿는 회원들이)
12.쉼터에서 잠시 내려서니 용천사다.용천사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
려서니 용천사다.용천사는상사화도 일부 피어있다.(회원 앨범에 사진
참조 하세요)
●.용천사 옆에 문화재 석둥아래 노란 상사화가 피어 있다.
대웅전 앞 내려서는 계단이 소멧돌이다.그옆에 용이 살았다던 용천샘
이다.
13.주차장에 도착하니 총무님괴 회원들이 끓여놓은 굴비 조림 익는 냄새
가 진동을 한다.상사화 공연장에서 10냄비에 쪼린 굴비를 5명1개조로
나누어 먹으며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 회장님의 회원님들의 단합과 회 발
전을 위한 위하여를 하고 웃으면서 마무리 하고 귀가길에 오름.
●.굴비 조림을 위해 수고한 총무님께 감사 하다는 말 전하고 촘무님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이 있어 회발전이 있다고 봅니다.도와주시 모든분께
감사 합니다.
첫댓글 후기를 감상하니 파노라마 처럼 산행을 하는 듯 즐거움과 공부를 다시 합니다. 노루목에서 점심을 ..회원님들의 빈물통을 모아 해일암까지 같다와서 전해주는 마음. 청산을 좋아하는 대장님의 마음을 배워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