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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공영권의 논리, 황도정신
<이 좌담회는 일만지日滿支에 한정되었던 ‘동아시아’에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남방아시아 권역이 포함됨으로써 ‘대동아공영권’을 구상하기 위한 지도원리와 그 방법에 관한 논의의 장이다. 따라서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아시아 문화연구소 같은 연구기관을 설치하여 그들의 종교 및 풍속, 습관 등 문화 방면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남방공영권이 경제권 장악을 목표로 상정된 이상 남아시아의 문화 연구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방 문화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일만지의 공고한 제휴를 기반으로 그 위에 남방공영권을 육성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이때 조선인은 자신이 곧 일본인이라는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을 요청받는다.
이들이 제시하는 대동아공영권의 지도원리는 황도皇道정신이다. 천양무궁天壤無窮의 황도정신은 팔굉일우八紘一宇의 포용정신을 갖고 있으므로 각각의 상이한 사회·문화를 공존시킬 수 있는 하나의 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개국 초기에 정신적 토대 없이 서양의 문질문화가 무분별하게 유입된 데 대한 반성으로써 통일된 정신문화를 우선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지도원리는 대중의 접근이 용이한 종교, 문학, 대중영화 등에서 구상할 수 있다. 아키바秋葉에 따르면, 종교적으로는 타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각각의 신앙을 아우르는 불교로 재편성되는 것이 적합하다. 왜냐하면 이슬람교, 기독교, 각국의 고유한 민간신앙까지 포용하여 재편성한 불교에 황도의 원리를 실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대동아공영권을 일본의 국체國體와 같이 견고한 세계로 통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는 바로 동아시아 제 민족이 꿈꾸는 유토피아이다. 그리하여 대동아공영권은 서양의 국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제 민족의 생활이 응축된 불교와 국가가 연결된 형태의 국가 개념이 된다.
한편 언어에서는 대동아권 진출을 위한 국어 교육과 국어 보급 등이 문제화 되는데, 이는 국내에서의 국어의 정리 통일과 공영권으로 유입되어야 할 일본어의 정리 통일 문제로 나뉜다. 이에 따라 공영권 내의 문학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순수한 일본어 보급이 과연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해 최재서는 식민지적 변종문화의 역수입 문제를 날카롭게 간파한다. 이 부분에서 이들은 용어의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논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이 문제는 결국 대동아건설의 취지에 적합한 문학작품을 번역 소개하기 위해 번역국飜譯局을 설치한다든가 라디오나 영화의 활용, 혹은 문화 장려를 꾀하기 위해 문학상을 제정한다는 구체적인 방법만을 논의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대동아문화권의 구상
·일시 : 쇼와 17년(1942년) 1월 31일
·장소 : 喜久井茶寮
·참석자: 아키바 다카시秋葉 隆- 경성대학 교수
가라시마 타케시辛島 驍-경성대학 교수
츠다 타게시津田 剛-녹기연맹 주간
모리다 코로森田 梧郞-총독부 000
최재서崔載瑞-본사측
■대동아공영권내 민족과 문화
최재서 : 대동아공영권의 정치적·경제적 기초가 이뤄지고 있으니, 이제 문화적 기초에 대한 구상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동아문화권과 관련해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자 모셨습니다. 먼저 아키바 선생님께서 대동아문화권내 민족의 종류 및 문화상태 등에 대해 사전지식 겸해서 대강의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키바 : 그리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흡족할 만한 답을 드리는 것도 불가능하겠고.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나 대동아문화권이라는 것은 앞으로 달성해나가고자 하는 목표이겠지요. 이상理想적이긴 하나 저는 이 이상을 실현해가려면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가지는, 우리 일본인은 지나사변이 일어나고서야 지나 열을 고조시켰지 그 이전에는 지나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는 점입니다. 가라시마 선생님처럼 이쪽에 해박한 분도 계시지만, 일반인은 지나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공부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상당할 텐데 지나를 넘어 대동아로 확대되면 남방에 대한 지식이든 이해든 지나의 경우보다 더 부족하겠지요. 앞으로 남방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남방인을 교육해 나갈 다양한 문화시설을 제공하는 기부의 측면입니다. 남방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남방인을 우리의 동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제공하며 일본을 이해시켜야 서로가 어울려 커다란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는 문화정책이 성립될 수 있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와 같은 기초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여러 연구기관이 도쿄 주변에 많이 생긴 듯 합니다. 그 중 내각정보국內閣情報局 지원을 받아 리쿄대학立敎大學 안에 설립된 남아시아 문화연구소에 그 방면의 소장학자가 모여 있다니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로, 특히 대만에서는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남방연구를 하고 있는 듯한데, 이런 연구기관이 경성근처에도 생긴다면 아주 좋은 일이겠지요.
그리고 남방민족이 어떤 부류냐 하는 문제입니다만, 남방민족에는 일본민족과 상당히 비슷한 부류가 많습니다. 일본민족의 구성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만, 몽고인의 피도 퉁구스의 피도 섞여있습니다. 또 남방인의 피도 있고요. 이는 인종적으로나 체질적으로 볼 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건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인종, 체질뿐만 아니라 민족개념의 중심을 이루는 문화적 방면, 즉 종교, 풍속, 습관 같은 것에도 실제로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가령 벼농사를 짓는 것도 북방보다는 오히려 남방에 가까운 현상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벼농사를 지어 쌀을 먹는 경제생활 측면으로 일괄하기 어려운 생활의 일면으로써, 일본에서도 벼의 영혼을 숭배하며 이세伊勢의 도요우케 오카미豊受大神1)를 모시고 있는데, 이러한 신앙의 근원, 원시적인 신앙에서도 공통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시문화는 보편적으로 어느 곳이나 동일하다는 설이 있지만, 인간의 생활은 결코 등질等質하지 않습니다. 이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점만 보아도 대동아문화권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모두 벼를 재배하는 민족입니다. 조선은 남선南鮮에서 벼농사가 전해졌다고 하는데 일본 내지에서도 똑같이 남에서 북으로 전해졌습니다. 근원은 결국 남방에 있습니다. 필리핀, 태국, 안남(安南 : 베트남), 란인(蘭印 : 인도네시아)에서도 벼를 재배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근본적 현실로 이 위에 구축된 신앙과 생활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국 하나의 문화권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종교로 국한해보면 이슬람교와 불교는 나중에 들어온 것이어서 종교적으로는 오래전에 대동아권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동아문화권을 육성해가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문화건설의 토대가 이미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 합니다. 대동아문화권 건설에 대해 낙관적인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최재서 : 그럼 앞으로 문화의 경우에서도 중심은 일만지日滿支겠군요. 경제방면에서는 남방공영권이 형성되고 나서 그래도 중심은 일만지라는 주장이 제기되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듯한데 어떻게 전개 될까요.
가라시마 : 아키바 선생님께서 대동아문화권 건설과 관련해 학문적으로도 근본적인 희망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시니 상당한 용기와 기대가 생깁니다만, 최재서 씨의 말씀처럼 근본 중핵체로써 이에 대한 지도는 역시 비교적 문화수준이 높은 이 전쟁 이전부터 굳게 결속되어 있는 일만지의 공고한 제휴 위에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남방 문제가 관심을 끌면서 자칫하면 가장 중심이 되어야할 일만日滿 등의 문제가 잊혀질 수도 있는데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훌륭한 해군의 공적이나 남방 파견 육군의 위대한 전과戰果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북만北滿의 들판이나 북지北支 산간에서 토지 방위와 건설에 노력하고 있는 황군의 존재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새로운 것에 쉽게 열광하는 일본인의 성격상 이런 시기일수록 더욱 조심하면서 차분히 건설에 매진해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그 문제에 얽매어 있자는 것은 아닙니다. 일만지를 중심으로 한 큰 스케일로 새로운 구상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최재서 : 문화수준에서 보자면 일만지가 중추적인 위치에 있고, 남양 부근은 언급할 만한 것이 없으며, 태국이나 안남은 그 중간쯤 되겠지요.
아키바 : 도죠東條 수상의 성명에도 있었듯이 적어도 독립할만한 능력이 있는 나라는 존중해야겠지요. 태국, 안남은 물론이고 그 외의 지방에서도 이쪽이 지배한다는 것을 생각해두어야만 합니다. 힘보다는 문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서 : 공영권내의 민족은 얼마나 될까요? 인도에서도 40이 넘는다던데요….
아키바 : 상당합니다. 필리핀 부근에도 4, 50정도 있으니까요.
가라시마 : 남방에서 독립이 인정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조선도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최재서 : 이제 그런 일은 거의 없겠지요.
가라시마 : 내 말은 조선이 일본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도 발생하겠지만.
츠다 : 대동아공영권내의 내선일체의 의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대동아권의 지도원리
최재서 : 이렇게 많은 민족을 공영권내로 통일시키는 지도원리, 지도정신은 어떤 것일까요? 츠다 군.
츠다 : 어려운 질문이네요.
최재서 : 츠다 군은 몇 년 동안 그 방면을 연구하고 있으니까요.
츠다 : 대동아공영권 및 문화권이 어떻게 구축되어 왔고, 또 구축되어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고찰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리 먼 과거까지 살펴볼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일부터 말씀드리자면, 만주사변이 이번 대동아공영권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만주사변에서 지나사변까지의 6년이 대동아건설의 제1기이고, 지나사변이 시작되어 이번 대동아전으로 확대되기까지의 4년 남짓한 기간이 동아공영권 건설의 제2기입니다. 이렇게 이번 전쟁이 시작되고 이름도 대동아전쟁으로 개칭되면서 대동아공영권의 이념 혹은 그 건설을 위한 전쟁이라는 대의명분이 명료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만주사변 해결에 매진한 6년, 지나사변 처리에 매진한 4년, 그리고 이번 대동아전, 내각에서는 이 전쟁을 10년 정도로 예측하여 모두를 합쳐 20년, 그것을 제1차 계획이라고는 하지 않지만 대체로 이런 식으로 제1기, 제2기, 제3기로 나누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건설을 독일도 하고 있는데, 제1차 4개년 계획이 쇼와 8년(1933)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로부터 제2차 4개년 계획을 세워 그것을 끝낸 뒤 구주대전歐洲大戰을 시작하여 마침내 유럽 신질서 건설로 나아갔는데, 이 또한 14년은 걸릴 거라고 봅니다. 러시아의 건설은 지지부진한 것 같은데, 쇼와 4년(1929)인가에 제1차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이어서 제2차, 3차 이런 식으로 건설해가려 하고 있습니다. 모두 위대한 구상 하에 거대한 공영권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구상에 의한 거대 공영권이나 독일의 레벤스라움2), 러시아의 공산주의적 건설 모두 하나의 구상 하에 10, 20년에 걸쳐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전개될지, 또 성공할지 못할지는 이데올로기의 가부可否로 결정되는 것이지 결코 우연적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지나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기 때문에 지나사변이 일어났다, 남방문제가 발생해서 급히 남방으로 간다는 식으로는 대동아공영권 기저에 흐르는 것을 포착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대동아공영 건설을 해결해 나갈 수 없습니다. 일본의 건설, 독일의 유럽 건설, 또 러시아가 진행하고자 하는 구상은 지금까지 앵글로색슨이 건설한 세계 제패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며 앵글로색슨의 건설과는 다른 방면으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경향이 현재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경향에 대해 동아공영권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적극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서 : 그럼 결국 어떤 원리로 가야 합니까?
츠다 : 바로 황도皇道입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지금 세계에는 세 가지의 새로운 구도가 있는데 다른 것에 비해 황도가 가장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본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대동아공영권을 관통하는 것은 오직 황도 하나라는 극히 명확한 구도를 그려야만 합니다. 임시로 황도생활권 같은 것을 생각해보았으면 하는데, 황도에 기초하여 황도문화권 내로 각양각색의 민족을 어떻게 수렴해 가느냐 하는 것이 문화권의 근본문제인 듯 합니다.
가라시마 : 포용이 근본문제군요.
츠다 : 황도에는 천양무궁天壤無窮이라는 그지없이 순수한 면과, 팔굉일우八紘一宇라는 끝없이 확장하려는 면이 있습니다. 즉, 구심력과 원심력 두 가지가 있는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공영권 건설과 문화 건설은 표리일체라고 생각합니다. 안으로는 천양무궁, 밖으로는 팔굉일우라는 정신이 앞으로 어떻게 건설되어갈지, 문화이념이든 뭐든 모든 문제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새로운 문화인의 임무라고 봅니다.
가라시마 : 그것을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건설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츠다 : 그렇게 다른 사회를 어떻게 화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내선일체는 국내 문제입니다만, 각기 다른 민족이 화和의 정신을 극도로 발휘한 것이 내선일체라면, 동아공영권에 황도가 발현되어 내선일체가 밖에서도 실현된다면 황도가 확고하다는 것이 입증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필리핀을 독립시키는데 조선도 어떻게 안 될까하는 바람은 황도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 삼을 가치도 없는 폭론暴論입니다. 그것은 각각의 기연機緣이나 문화 수준에 따라 서서히 발생하는 것이며 그 원리도 각각 구체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가라시마 : 항상 구체적으로 문제를 생각해야지 추상적으로만 생각하니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버리는 것 같습니다.
최재서 : 현재는 블록이론으로 정리되는 것 같은데, 대동아공영권은 러시아 블록, 구주 블록 등과 근본적으로 어떤 점이 다를까요? 경제적으로 보면 광역경제가 되겠지만, 문화는 지도원리 여하에 따라 상당히 달라지는 듯한데….
츠다 : 바로 거기에서 황도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러시아적 원리를 따르면 몽고처럼 비참해질 것이고, 앵글로색슨의 원리는 표면적으로는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는 방치하는 것으로 영원히 격차가 지속됩니다. 하지만 황도는 다행히도 일본문화가 전부를 아우르며 형성되어 있는 만큼 진정한 일본문화의 진수를 발휘할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형성의 시기였던 것이죠. 아무튼 일본이 전부 흡수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미얀마는 독실한 불교국으로, 이번에 태국 군대가 미얀마를 공격하자마자 태국에서 기도를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그 독실한 신앙을 일본문화가 받아들여 상당한 정도까지 심화시켰습니다. 그 위에 태국의 장점을 더욱 활발히 발전시켜 육성해가는 데에, 황도 문화의 특징이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란인蘭印 부근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만, 완전히 아메리카화 된 필리핀 부근은 이번에 반드시 필리핀의 지리적·경제적 입장을 현실에 입각해 무한히 진전시켜가야 합니다. 나아가 아메리카 문화는 수준이 낮아서 필리핀을 전혀 향상시키지 못했지만, 일본문화이기에 일단 흡수된 아메리카 문화의 나쁜 점을 철저히 없애버리더라도 좋은 문화재는 장래 필리핀 문화재의 일익으로 흡수시키는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의 과거 문화의 갈래가 몇 개인지 같은 건 아키바 선생님이 전문專門입니다만, 어쨌든 일본문화에 의해 성장되어 왔기 때문에 그로부터 적출된 세계의 문화재는 이제 새로운 광채를 띠고 각 지역의 특징을 만들어 갈 것이고 그로 인해 각 지역의 사람들이 어능위御稜威를 우러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분쟁 없는 철근콘크리트 같은 생활공영권이 생길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볼셰비키나 앵글로색슨, 혹은 나치가 만들려 하고 일본 학자가 추종하고자 하는 나치민족론 등을 까마득히 초월한 오묘하고 불가사의한 황도의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육성하는 것이 문화인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물질적 문화부터
아키바 : 네, 동감입니다. 황도이데올로기를 앞세우자는 데는 적극 찬성합니다만, 문화가 뒤떨어진 민족과 발전한 민족이 접촉할 때는 하나의 사회학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설로 받아들여도 무방한 설입니다. 한 마디로 우수한 문화를 가진 민족과 열등한 문화를 지닌 민족이 접촉할 때 물질문화와 정신문화 중 물질문화가 먼저 유입된다는 것입니다. 문화를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구분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들긴 하지만, 종래 학설에 의하면 물질문화 쪽이 먼저 우수한 민족으로부터 열등한 민족에게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황도정신이 굉원宏遠한 정신문화인 만큼, 이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서 물질문화가 앞서는 사실을 어떻게 활용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구체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라시마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키바 : 지금까지 앵글로색슨은 물질문화를 중심으로 훌륭한 도로나 건물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인이 물질적인 면에서 그들보다 뒤지면 주민의 이해가 황도정신의 굉원한 경지까지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델리케이트delicate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황도정신을 주장하는 것은 대찬성이지만, 그런 물질적인 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기술적인 문제를 많이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츠다 : 그게 출발점이 되겠군요.
아키바 : 맞습니다. 그것이 출발점입니다.
■종교문제
최재서 : 그런 지도원리가 문화의 각 방면에서 어떤 식으로 표출되느냐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종교·문학·대중영화 대략 이 세 가지 방면에 한하여 구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종교를 살펴보겠습니다. 국내에서도 상당히 문제이긴 한데, 현재 대동아공영권에서는 대체로 신도,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이 중심 종교입니다만….
아키바 : 인도교印度敎도 있습니다. 민족 고유의 민간신앙이지요.
최재서 : 사실 우리는 그 방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키바 선생님의 노트를 공부해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웃음)
아키바 : 터부라든지 토템 같은 말을 예사로 하지는 않았는데, 요즈음에는 소설에도 나오더군요. 정말 인식이 달라졌어요.
츠다 : 종교 중 불교가 가장 많지요?
아키바 : 글쎄요. 이슬람교도 꽤 되지 않나요?
모리다 : 불인佛印3)은 기독교입니까?
아키바 : 불교도 많겠지요. 필리핀 부근은 기독교가 많은 것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역시 토속적인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결국 불교나 기독교를 어떻게 재건하느냐는 문제겠네요.
츠다 : 그렇겠군요. 그렇다면 무엇보다 일본 국내의 문화를 재편성하는 것이 결국 출발점이 되겠네요.
아키바 : 기독교의 일본화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기독교가 상당히 순수성을 지닌 것이라서…. 마호메트교에도 그와 똑같은 경향이 있어서 다른 종교를 배척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너그럽게 오만 가지 민간신앙이든 뭐든 수용합니다. 그래서 절에서조차 불교와 상관없는 신을 모시는 일이 흔합니다. 마호메트교나 기독교에는 그런 성질이 없어요. 그러한 순수성이 신앙으로서는 장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편협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재편성하려면 불교가 비교적 쉬울 것 같습니다.
츠다 : 일본에는 일본정신이 3천 년간 이어져오며, 불교, 기독교 등 여러 가지 종교가 유입되었지만, 그 정신을 유지한 채 불교라면 불교의 근저에 하나의 근본으로써 문화지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가 유입되면 기존의 정치나 종교는 송두리째 뽑혀버리지요. 새로운 것이 유입되면 완전히 뒤집혀집니다. 일본정신은 그런 부분에서 차이가 있지만, 갑자기 동아공영권으로 들어가면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일본의 입장에서는 여러 종교가 유입되더라도 그 본질을 잃지 않게 오히려 더욱 일본정신을 풍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여기에 종교재편성의 원리가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문화인이 그러한 일본적 성격 탐구에 대한 노력도 부족하고 결과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최재서 : 언젠가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4) 선생님께서 ‘종교가는 믿는다, 학자는 연구한다, 정치가는 이용한다’고 하셨는데, 역시 공영권 내에서도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이 아닌가 합니다.
가라시마 : 그런 경우를 저도 많이 생각해봤는데, 순수성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한 종교에 갑자기 어떤 변화를 주려고 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문제는, 그것을 급격하게 어떤 형태로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새롭게 발전시킴과 동시에, 종교를 믿는 그 마음을 대동아 건설로 전념하게 만들어 이것이 일본문화의 위대성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도 함께 신문화 건설에 매진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책의 근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여러 군데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저는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키바 : 제가 말해두고 싶은 다른 하나는 종교가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 해도 결국 그것은 인간이 품고 있는 신앙으로 만주, 지나 혹은 서양에서 온 것 등등 각각 색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본에 들어오면 순수성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천황정신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기독교를 믿어도 일본인이 믿으면 달라집니다. 특별히 정책을 취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본 전통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와 유사한 일이 지나에서도 란인蘭印에서도 필리핀에서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양인이 파악한 기독교와 필리핀인이 파악한 기독교는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일본의 황도정신이 있습니다. 신神도 부처도 믿는 것이 서양인에게는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가능합니다. 일본인 이외의 동양인에게도 그런 전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라시마 : 동아인東亞人적 자각이 있다면 자연히 종교 그 자체를 변혁시키겠지요.
츠다 : 순수한 종교에서는 천국을 지상에 실현하려고 하는데, 일본의 역사나 국체가 영원한 세계를 실현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종교에서 묘사하는 천국이고 세계이지요.
아키바 : 서양은 그렇지 않죠. 교회가 스테이트state 위에 서 있으니 그만큼 순수한 면이 있다고 봐야겠지요.
최재서 : 독일이 애먹는 것은 기독교의 국제성 때문으로 히틀러를 비롯한 철학자들이 아주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적인 기독교를 건설하려는 모양인데 아주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츠다 : 모든 민족이 꿈꾸는 유토피아, 한 마디로 종교에서 말하는 지상의 낙원으로 동아공영권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황도에는 있다고 봅니다.
최재서 : 일전에 사토佐藤 씨가 부민관 문인협회에서 불교가 일본과 굳게 결합함으로써 그 본질은 달라졌을지 모르나 그 대신 불교가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었다, 지나에서는 불교의 순수성을 지켰지만 약화되었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가라시마 : 소화융합消化融合 하는 그런 일본의 모습을 설명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을 금후의 사람들이 배워가겠지요. 지금까지의 일본의 존재방식을 이제 대동아에 선양宣揚하는 일이 근본이 될 것 같습니다.
아키바 : 생활과 종교의 결합은 문화가 뒤처져 있을수록 쉽고 종교전문가도 상당히 관념화됩니다.
최재서 : 교회를 위해서라면 국가를 넘겨줘도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이 동양인에게는 없습니다. 동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종교도 국체에 부응하게 됩니다.
츠다 : 이렇게 말하면 국가사회학 선생님께 야단맞을지 모르겠지만, 종종 국가 개념을 서양의 국가 개념과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본의 국가는 생활공동체의 하나로 서양의 국가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불교가 국가와 결부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국가가 아닌 생활과 관계된 것입니다.
최재서 : 실제 조선의 기독교를 예로 든다면, 조선의 교회는 조선의 환경에 맞지 않는 것을 그대로 실행하려 했습니다. 일관성은 있으나 관념적입니다. 이것이 시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국어문제
가라시마 : 조선의 새로운 진전이 그런 방향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까 일본문화의 선양 문제를 말씀하셨는데요, 문화 선양의 소위 하나의 전제조건으로 국어문제가 있다면, 문학이나 영화 같은 문화적인 면이 당연히 거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모리다森田 씨 동아의 국어정책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리다 : 제가 감당하기에는 좀 벅찬 문제인데요.
가라시마 : 모리다 씨는 작년 도쿄에서 열린 각지의 국어정책 문제 모임에도 참가하신 조선 전문가이시니 부디 사양하시지 말고….
모리다 : 작년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주지하시는 바대로 국어대책협의회는 문부성 주최로 각지의 국어교육 및 국어보급 상황을 설명하는 정도로 진행해 왔습니다. 좀전에 츠다 씨가 대동아공영권 건설과정을 제1기, 제2기, 제3기로 나눴는데, 일본어의 해외진출 문제도 대략 제3기의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국어대책협의회는 지나사변 후 갑자기 대륙 경영과 관련하여 일본어 보급문제가 크게 거론되어 문부성 주최로 협의회를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제2기이고, 제1기는 그 이전 언제쯤인데, 국제문화협회에서 일본어의 해외 보급을 도모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만간 런던 근교의 대학에 일본어 강사가 파견될 것이라는 기사가 신문잡지에 자주 오르내린 것도 만주사변 이후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시대가 일본어 해외진출의 제1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대동아전에 이르러 공영권내의 일본어 진출 문제를 고려하게 된 것이 제3기입니다. 제2기의 대륙으로의 일본어 진출문제는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법전을 든 마호메트와 같았습니다. 즉, 전쟁을 하는 한편 선무반宣撫班을 보내 지나대륙에 일본어를 보급한 것이지요. 그렇게 화급을 다투는 정세였기 때문에 제2기의 일본어 진출은 졸속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의 지도자이자 동아의 맹주로써 일본문화를 공영권 내에 수립하는 것으로, 결국 문화의 근저를 형성하는 것은 언어인 만큼 제2기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좀더 차분하게 근본적인 문제부터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전에 아키바 선생님께서 우선 공영권 내의 민족을 알고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 근본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일본어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무엇보다도 공영권 내에서 사용되는 각양각색의 언어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게 선결과제라고 봅니다. 또 프랑스가 지금까지 불인佛印에서 어떤 언어정책을 취했으며 영국은 태국에서 영어 보급을 위해 어떤 정책을 쓰고 있었는가를 연구하면서, 유럽 제국諸國의 언어정책도 조사하고 연구해가야 합니다. 좀 전에 종교 문제에서 필리핀처럼 기독교가 성행하는 곳이나 이슬람교가 성세한 곳으로의 종교 전파는 각각 그 지역에 부합한 방법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일본어 보급도 역시 각 지역의 사정을 충분히 파악하고 나서 구체적인 정책을 세우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가라시마 : 지당한 말씀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미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아직 그 문제를 충분히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문화인 전체가 대동아 건설의 진전에 발맞춰 현실적인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통감하는 바입니다.
츠다 : 이 문제의 근본은 일본어의 재편성에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했으면 합니다. 가나 사용문제, 한자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모리다 :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국내 문제로써의 국어의 정리통일과 공영권에 내놓는 일본어의 정리통일 문제를 똑같이 처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라시마 : 예전에는 따로 다루었는데 말이지요.
모리다 : 이를 우리는 국어교육과 일본어교육으로 분리해서 말하고 있는데, 방법이야 조금 달라야 하겠지만 국어의 정리 및 통일 문제를 생각하면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아닌지 정말 제 자신도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저의 미숙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현재의 국어를 그대로 보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듯 합니다. 가령 가나 사용문제, 용자用子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가라시마 : 국어의 정리 문제는 국내적으로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데, 확실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아까 언급되었던 졸속주의적 수단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모리다 : 현재 정리되어야 할 일본어가 상당히 보급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꽤 많은 일본인이 진출했기 때문인데, 우선은 이런 일본어를 정리·통일하기 위해 손을 써야 합니다. 이런 일은 최재서 씨가 전문이시죠. 지나의 항구마다 비전 잉글리시Vision English라는 왜곡된 영어가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국어의 경우에도 왜곡된 일본어가 계속 보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데, 졸속의 폐해를 생각해서 보급과 동시에 정리·통일도 해나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가라시마 : 그러면 문학 문제가 매우 중요해질 것 같은데요.
최재서 : 이건 만주국 관리에게 들은 말인데, 만주국의 경우 순수 국어를 보급하려는 무리와 다소 순수함을 잃어도 좋으니 합리적인, 소위 문법책 한 권이면 족한 국어로 하자는 무리가 서로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아키바 : 그럼 에스페란토어와 똑같아지는 거죠.
최재서 : 그에 대해 국학자가 노발대발 화를 내면서 어려운 것이 일본어인데 그것을 없애면 일본정신이 사라져버린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언어가 바뀌면 문화가 바뀐다는 점을 숙고해야만 합니다. 그리스 문화가 식민지에서 언어가 변질되면서 매우 퇴폐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소위 코이네5)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언어의 변질은 언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영향을 주고, 문화가 변질되면 퇴폐적인 문화가 발생합니다. 또한 그것이 본토로 역수입됩니다. 민중은 엄격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식민지식 변종문화가 역수입되는 것이지요.
가라시마 : 이제는 양적으로 진출할 필요도 있는 듯 합니다.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신속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만큼 양적인 진출도 충분히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문학이나 여러 가지 새로운 시설施設 [방법]로 더러움을 청소해가며 급속히 전개시킬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리다 : 그래서 결국 공영권으로의 일본어 진출을 모색하다 보면 학교교육을 하나의 방편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어 진출은 학교교육 밖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게다가 앞으로는 예전보다 더한 기세로 이동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남방공영권 내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남방진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본어 지도자라는 자각을 갖고 나가주길 바랄 뿐입니다.
가라시마 : 백프로 공감합니다.
츠다 : 고도국방적 일본어, 좀 어색한 말이기는 하지만 만약 고도국방국가를 완성했었다면 지나사변 등도 상당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또한 문화도 고도국방 국가에 상응하는 것으로 바꾼다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어문제도 고도국방 국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최재서 : 국어의 국내적인 정리는 반드시 실행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여기 조선도 대체로 규슈九州 계통이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그 옛날 이러한 것을 자각해서 표준어를 확립했더라면 지금의 혼란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가라시마 : 따라서 진출하는 사람들이 일본 전체의 문화 수준을 가능한 빨리 끌어올리는 것이 총후의 임무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모리다 : 종래의 국어교육에는 편향적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국민문학에서 국어교육을 다룬 것이겠지만, 이번에 개정된 초등학교 교육 중 특히 국어교육에서 놀랄만한 개혁이 있었습니다. 이는 종래의 국어교육이 음성, 구어 교육은 등한시한 채 문자 교육에 치중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자에 의한 의사소통은 아오모리靑森와 가고시마鹿兒島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일단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같은 내지인데도 아오모리 사람과 가고시마 사람 간에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초등학교 교육에서는 문자언어는 물론이고 음성언어를 충분히 교육해야한다는 하나의 지도원리를 표방하며, 작년 4월부터 새로운 독본讀本을 문부성에서 내놨는데, 이는 일본의 국어독본 편찬사상 하나의 신기원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혀 문자가 없는 교재, 우리는 이것을 회화繪畵교재라고 부르는데, 국어 속에서 나고 자란 내지인 대상의 독본에 이런 문자 없는 교재를 끼워 넣는 편찬법을 취한 것입니다. 일본 문부성이 편찬한 것으로는 최초이지요.
기존에는 조선이 입문 시기임을 고려하여 외국어의 한 종류로 간주하여 회화부터 시작하는 편찬방법을 취해왔는데, 문부성이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결국 종래 교육에 대한 대폭적인 시정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일본의 교육이 철저해지면 공영권에 일본어가 전파되는 경우 변종어나 방언, 불순하고 왜곡된 형태의 국어가 진출할 염려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대체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도 상당히 불순한 것이고 일반적으로 우열은 있겠지만 음성언어의 경우 순정한 국어 영역과는 거리가 먼 교육 환경 속에서 생활했던 사람의 대다수가 지금 남으로 가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가라시마 : 국어교육을 재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라디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학교교육이나 일반, 문학 혹은 영화 토키 6)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교류
최재서 : 일본어를 공용권의 공통어로 고려할 경우, 영어가 일단 상업어商業語로 세계에 보급된 것처럼, 우선은 경제적 기초를 토대로 국어를 충분히 동아공영권의 공통어로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나아가 문학어, 학술어로써도 일본어를 동아공영권 내의 공통어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영어나 독일어가 학술어로써 편리한 점은 이 언어를 알고 있으면 어느 나라의 저술이든 번역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인데, 장차 일본어도 영어나 독일어처럼 서양의 다양한 학술서 및 문학작품을 번역할 수 있다면 일본어를 학술어로 확립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라시마 :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일본어로 하는 독자적인 발표가 봇물처럼 쏟아지게 될 겁니다. 또 지금까지는 일본의 학술 자체에 대해서 외국 학술은 대단히 우수하고 일본 것은 아주 저급한 하다는 식으로 생각했었는데, 적어도 이번 전쟁에서 일본이 군사적으로도 어뢰나 비행기 그 외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방면에서도 이러한 사실들을 찾아보면 매우 훌륭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학자의 입장에서 국어로 발표할 필요가 있겠지요. 또한 최재서 씨 말씀처럼 외국의 유산을 번역하여 일본어를 알기만 하면 모든 나라의 문화에 접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재서 : 제 말이 외국작품을 마구잡이식으로 번역한다는 뜻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세계의 문화를 일본어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면 일본어 보급은 자연히 확립되리라 봅니다.
츠다 : 지나 청년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에서 일본어로 전환한 이유는 일본어를 통해 세계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가라시마 : 이렇게 된 상황을 일본에서는 모르고 있었을 뿐이죠.
최재서 : 논문의 술어 같은 것은 대개 일본어에서 차용한 게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라시마 : 어법 같은 것도 점점 일본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최재서 : 앞으로 그런 부분을 더욱 강화해 간다면….
가라시마 : 또한 동시에 번역 대상이 새로운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적합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번역국飜譯局같은 것을 개설하여 커다란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겠지요.
아키바 : 지금은 번역서의 범람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확실히 오역이 많습니다.(웃음) 그것을 담당하는 데가 문화협회 같은 곳인데 상당히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이것도 한번 정비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츠다 : 동아공영권 내에서는 일본어만 알면 세계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키바 : 그런데 네덜란드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일본에 몇이나 되느냐는 문제에 부딪치면 참으로 암담합니다.
모리다 : 저는 학교 강습 등에서도 조선에서 철저하게 교육을 하려면 역시 조선어를 알아야 진정한 국어교육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남방쪽 언어도 열심히 공부해야겠지요.
가라시마 : 네덜란드어 공부 같은 걸 모두가 할 필요는 없지요. 다만 번역 관련자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차원에서 기획을 해보면 좋을 듯하네요.
츠다 : 석탄과 시멘트의 경우 통제회장統制會長이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독일문화 수입회장輸入會長같은 것을 만들어 맡기면 되겠지요.
최재서 : 관청의 통제와 민간의 창의성이 결합하면 가장 이상적이겠네요.
아키바 : 지금은 번역료가 저렴합니다. 번역에는 저자의 권리가 존재하고 국제관계의 문제가 있습니다. 과도한 저작권만 없어도
출판계에서 무척 감사해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채산採算이 안 맞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고생도 많은 듯 하고.
최재서 : 번역은 결국 서양문화 숭배가 아닌, 공영권 내 아직 뒤처져있는 사람들에게 서양문화를 소개하여 그들의 문화적 지위를 고양하는 하나의 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가라시마 : 선별해서 해야겠지요. 제도적으로 그 기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츠다 : 도쿄대학의 총장이 번역국 총재를 겸임하면 좋을 텐데요. 좀 샛길로 빠진 것 같네요.(웃음)
■대동아문학권
최재서 : 지금 동아공영권 내에 문학이 얼마나 있을까요? 일본문학, 그 중의 조선문학, 만주문학, 지나문학, 안남에는 있는 것 같은데 그 외에 또 있을까요?
가라시마 : 인도도 포함하면 거기에 몇 가지 있을 것 같은데.
최재서 : 대부분 영어겠지요. 하지만 신문을 발간하고 있는 토어土語7)만도 네다섯 가지이니 버나큘러vernacular8) 문학도 많을 겁니다. 그 중에서도 타고르가 처음 시에 썼던 뱅골어가 우수한 편입니다.9)
모리다 : 영국이 태국에 영어를 보급하면서 무척 애를 쓴 것 같던데.
최재서 : 그렇겠지요. 영국은 인도의 영어정책에 대해서도 매콜리T. Macaulay10) 시대부터 의회에서 대논의를 벌였으니까요.
아키바 :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일본 세력이 들어가면 점점 바뀌기야 하겠지만.
가라시마 : 이제는 신문도 신문이지만 라디오와 토키도 많이 활용해야죠.
아키바 : 라디오 아나운서의 영향이 대단하더군요.
모리다 : 일본인은 라디오를 들으며 더 예리한 언어감각을 다져가야 합니다.
최재서 : 이건 사적인 얘기입니다만, 지난 번 후쿠오카 <니치니치福岡日日>의 기자가 불쑥 찾아와 ‘대동아의 봄을 말한다’는 주제로 논평을 부탁해서 당황했습니다만, 그때 이런 것들을 말했었지요. 우리는 이제 구미문화를 모방하며 자족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우리 자신의 문화를 건설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우선 문화를 장려할 기관이 있어야 한다, 서양에서는 노벨상이 실제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 판단의 표준이 전부 유럽 중심이다, 그러니 이번에 이에 필적할만한 아니 오히려 그것을 능가할만한 것을 동아공영권 안에 만들자….
가라시마 : 찬성입니다.
최재서 : 또 작품은 가능한 일본어로 발표하자, 하지만 굳이 용어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으며, 공영권 내에서 발표된 작품 중 권위가 있는 것에 최고 문학상을 주자고 말입니다.
가라시마 : 훌륭한 의견입니다. 삼가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최재서 : 그렇게 하면 자연히 대동아 제 민족의 이상이 문학 테마로 취급될 것이고, 따라서 동양문학도 많이 바뀌겠지요.
가라시마 : 이제 노벨상에 감지덕지할 필요가 없겠네요.
최재서 : 문화를 향상시키려면 문화인을 국가 차원에서 잘 대우해줘야 합니다. 현재는 일본이 제일 잘 우대하고 있는 편이지만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라시마 : 정말이지 군함행진곡11)을 작곡한 세토구치 같은 분은 문화훈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재서 : 그러게 말입니다. 동상을 세우든가 해서 어릴 때부터 나는 훌륭한 시인이 되겠다든가 극작가가 되겠다든가 하는 야심을 품게 해야 합니다.
가라시마 : 그런 식으로 일본이 문화의 옹호자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츠다 : 만엽萬葉이나 선집選集에도 훌륭한 작품이 있었으니까요.
최재서 : 지금까지 퇴폐적인 문학이 출현했던 것은 작가가 불우했던 탓입니다. 그러니 훌륭한 작품을 쓰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라시마 : 새로운 문학상文學賞 문제는 아주 대찬성입니다. 오늘 가장 듣기 좋은 말이었고요.
모리다 : 국가에서는 아직 문화상文化賞을 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서 주최하고 있는 것뿐이지요. 이런 측면에서나 국어문제를 통일하는 측면에서 프랑스의 아카데미 같은 것이 일본에도 있어야 합니다.
최재서 :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또 서양문화가 들어 오겠지요.
■영화문제
최재서 : 그럼 다음으로 영화에 관련된 문제를 가라시마 선생님께서….
가라시마 : 내가 영화 쪽 전문가가 아니라서….(웃음) 아까 아키바 선생님이 문화가 전파될 때 물질문화가 정신문화보다 먼저 유입된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영화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힌트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정신적인 것이면서도 극히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일본 영화가 세계에서 우수한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요. 그러나 [일본만의 영화라는 한계를 벗어나] 뛰어난 기술과 우수한 기계를 사용하여 가장 건전한 정신을 가장 적절한 형식으로 각 지역에 전달하는 것, 이 일을 하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화는 대중성이 강한 만큼 대동아건설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국어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라디오와 함께 이 방면에서도 새로운 임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이러한 목적으로 보급하는 작품은, 종교문제에서 살펴보았듯이, 각 지역의 특성을 잘 파악한 작품이어야 하겠지요. 섣부른 독선에 빠져 있는 작품은 그 효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으니 무엇보다도 이 점을 주의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시나리오가] 문학 작품인 경우, 정말 뛰어난 것이 아니면 효과를 얻지 못할 테니 이런 부분을 참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를 조선에 국한하여 보면, 조선 영화계는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두 가지 임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 임무는 조선이 가능한 빨리 대동아의 지도자다운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조선인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조선의 현 문화 정세에 발맞추어 조선어 사용도 고려해보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조선의 현실을 선전宣傳하는 훌륭한 영화를 제작해 대동아공영권을 지도해 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 이 두 가지 임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필름 그 자체가 제한당하면 극히 엄정한 기획 하에 매우 진취적인 영화인이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이미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 영화는 생각할 수 없는 시기입니다. 한 편의 문화영화, 극영화가 대동아건설에 최상의 공헌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조선 영화계의 중책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종래 대동아공영권 내에 영미계, 주로 아메리카계 영화가 범람했었는데, 남방 방면에서는 이런 영화에 감화된 지나영화가 상당한 세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몰아내고 정말로 뛰어난 영화를 보급하는 것이 일본 영화계에 주어진 새로운 임무입니다. 이를 통해서 일본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겁니다. 정말이지 대동아공영권에서의 일본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책임의식이 부족한 회사가 난립하여 무분별한 경쟁을 하거나 약간의 신체제 냄새를 풍기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식으로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에 대해 더욱 엄정한 사회적 비판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영화의 오락성을 완전히 제거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겠지요. 지도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문화를 풍부하고 건전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재서 : 오랜 시간동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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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문학』번역 연합세미나 팀 /
김수영(동덕여대 국문과 박사수료, 비전속 번역가)
송미정(국민대 국문과 박사수료, 국민대 강사, 비전속 번역가)
이혜진(한국외국어대 국문과 박사수료, 세명대 강사,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