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덤
<全四幕(전4막)>
고성의 작
나오는 사람들
장만수(20세)-------------------------------------------------
선봉녀(19세)-------------------------------------------------
옥분이(꼬마)-------------------------------------------------
추무당-------------------------------------------------------
금숙이(꼬마)-------------------------------------------------
영순이(꼬마)-------------------------------------------------
순희(꼬마)---------------------------------------------------
명자(꼬마)---------------------------------------------------
애희(꼬마)---------------------------------------------------
말순이(꼬마)-------------------------------------------------
박영감-------------------------------------------------------
송영감-------------------------------------------------------
구영감-------------------------------------------------------
기철(벙어리 흉내)--------------------------------------------
여인(금숙이 엄마)--------------------------------------------
여인2--------------------------------------------------------
여인3--------------------------------------------------------
여인4--------------------------------------------------------
장영감(만수의 아버지)----------------------------------------
[페이지] F04
윤노파(만수의 어머니)
구경꾼들-----------------------------------------------------
섬사람들-----------------------------------------------------
늙은 어부----------------------------------------------------
동네 아이들 다수---------------------------------------------
동네 계집애들 다수-------------------------------------------
[페이지] 연-001,,0A0010
때-가을
곳-섬마을
(프롤로그
편의상 막 앞을 동네길로 설정한다. 막이 오르기 전에 파도소리와 해조음 잠시
고조된다. 그 소리들이 고조되었다가 차차 낮아지면서 어부의 쓸쓸한 노래 소리
들려온다.
[노래] --- 에야노 야노야
에야노 야노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
이어 노래를 흥얼거리며 상등하는 어부 한사람. 그물을 어깨에다 치렁치렁 걸머
맨 늙은 어부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왜그런지 몹시 고독히 보인다. 어부
등장하면서 계속 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 --- 어스름 달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
오늘밤도 봉녀 생각이
[페이지] 연-002,, 0A0020
절로 나누나
에야노 야노야
에야노 야노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
이때 무대 왼쪽에서 아이들이 책가방을 들고 발랄하게 뛰어 나온다.
계집아이들도 있다. 아이들 늙은 어부를 보자 "야!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합창으로 인사하며 어부를 에워싸고 기뻐서 야단이다.)
[할아버지] (껄껄 웃으며) 오냐, 오냐 그 녀석들 언제나 인사성이 밝아서
좋구나. 허허 --- 그래 벌써 학교에서들 오느냐?
[아이1] 네. 오늘은 공부가 일찍 끝났어요.
[소녀1] 할아버지, 오늘도 고기 많이 잡으셨어요?
[할아버지] 암, 많이 잡구말구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서 그물이 다 찢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그물을 꿰매려고 또 들어왔지.
허허---
[아이2] 그럼 그 그물 우리가 꿰매드릴테니까 할아버지 또 옛날 이야기
해주세요.
[페이지] 연-003,,0A0030
[소녀2] 그래요. 할아버지 네? 네? 오늘은 아주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해주세요. 어제 해주신 소금장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요.
[아이3] 그래요. 할아버지.
[소녀3] 저도 그물 꿰매드리겠어요.
[소녀4] 저도요.
[아이4] 저도요---
(어부의 등을 밀고 팔을 잡아당기고 야단이다.)
[할아버지] 허허 --- 그녀석들 오늘도 이거 잘못 걸렸구나. 그래, 해주지.
너희들만 좋다면야 얼마든지 해주고 말고 그럼 또 저기 저 --- (무대 왼쪽을
손가락질하며) 정자나무 밑으로 가자꾸나.
[아이들] 그래요. 야, 신난다!
(아이들 기뻐하며 어부를 에워싸고 무대 왼쪽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소녀] (걸으면서) 할아버지, 오늘은 어떤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할아버지] (걸으며) 글쎄 ---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옳지! 오늘은
너희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이 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겠구나.
[페이지] 연-004,, 0A0040
[아이1] 우리 섬 전설말이예요?
[소녀1] 우리 섬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있나요?
[할아버지] 암, 있다마다 --- 자, 그럼 천천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어흠 흠! (헛기침 하고나서) 예, 그러니까 이섬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상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어요 --- 정말 아주 이상한 전설이었어요 ---
(이 대사를 끝으로 어부와 아이들의 모습이 무대 왼쪽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동시에 불이 꺼지면서 은은히 들려오던 파도소리와 해조음이 다시 고조된다. 잠시
외따른 섬의 고적함을 상징하듯 파도소리 해조음이 "어부가"의 경음악과 함께
팡파르를 이루면서 막이 오른다.)
[페이지] 연-005,, 0A0050
[막] 제 1 막
(무대는 우측 상단에 초가집이 반쯤 보이고 꽤 넓은 마루와 방문이 하나
보인다. 초가집 측면에 열려진 부엌문이 보이고 벽에는 찢어진 그물과 도르레,
찢어진 돛배 따위들이 지저분하게 걸어져 있다. 무대 좌측으로는 허름한 싸리문이
있으며 싸리문을 조금 들어와서 을씨년스런 고목이 한그루 서있다. 그 너머로
엉성하고 낮은 싸리 울타리가 보이며 멀리 바다와 먼산이 보인다. 막이 오르면
장노인이 마루에서 그물을 꿰매고 있고 윤노파는 싸리 울타리에다 생선을 걸쳐서
널고 있다. 이런 무대 정경에 그 늙은 어부의 이야기 소리가 해설식으로 임펙트
된다.)
[이야기] 옛날부터 이 섬엔 묘를 쓰면 안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섬엔 무덤이 하나도 없었어요. 섬에 무덤이 있게 되면 재앙이
내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배가 파선되고 섬에 불이 나고 섬사람들이 죽는다는
거예요.
[페이지] 연-006,,0A0060
(장노인이 마루에서 그물을 꿰매다 말고 주먹으로 어깨를 두드린다. 허리도
두드린다. 그러다가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어디가 많이 아픈 모양이다.)
[이야기] 그래서 누구 집에 불만 나도 섬에다 누가 몰래 묘를 썼다고 사람들이
온 산을 뒤지곤 했어요. 그럼 초상이 나면 묘를 어디다 썼느냐? 그건 저기 저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돌섬에다 장사를 지냈어요. 그래서 아무도 살지않는 저
돌섬엔 지금도 비석과 무덤들이 많아요. 자, 그럼 이 섬에다 묘를 쓰면 안된다는
전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요? 허, 이거 참 알쏭달쏭 궁금하기 짝이
없읍니다 그려. 아뭏든, 그 소름이 오싹 끼치는 무서운 전설을 용케도 밝혀낸
집이 하나 있었지 뭡니까요. 누구네 집이었냐 하면 옥분이란 애의 집이었다
이겁니다요.
(열세살 정도의 옥분이가 헐레벌떡 싸리문 안으로 뛰어들며 소리친다.)
[옥분이] 아빠!
[장노인] 옥분이냐? 왜 그래? (돌아본다.)
[페이지] 연-007,,0A0070
[옥분이] (뜨락에 서며) 큰일났어요.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에요.
[장노인] 큰일이라니? (윤노파가 생선을 널다말고 마루쪽으로 걸어가며)
[윤노파] 무슨 큰일 말이냐? 얘가 오빠가 탄 배가 들어오나 안들어오나
나룻터에 나가보랬더니 거긴 안가고 무슨 엉뚱한 소리야?
[옥분이] 오빠가 탄 배는 들어왔어요 엄마.
[윤노파] 그래? 고기는 그래 많이 잡았다더냐?
[옥분이] 하나도 못 잡았대요. 멸치꼬리 하나도요.
[윤노파] 뭐? 이번 어장도 허탕이라고?
[옥분이] 네, 그리고 응--- 응--- 고기는 하나도 못잡고 폭풍을 만나서 죽을뻔
했다고 했어요. 배 돛대가 부러지고 --- 다른 뱃사람들이 배에서 내리면서
그랬어요.
[장노인] (놀라며) 뭐야? 이번 어장에서도 또 돛대가 부러졌어?
[옥분이] 아빠 그보다 더 큰일이 생겼다니까요.
[장노인] 더 큰일이라니, 무슨 큰일?
[옥분이] (질린 얼굴로) 응--- 응--- 저 까치재 언덕밑에 사는 영순이네 집에
무슨 큰일이 생긴 모야이예요.
[페이지] 연-008,0A0080
온 동네 사람들이 막 고함을 지르면서 영순이 집으로 몰려가고 야단이예요.
[장노인] 영순이 집이라면 --- 얼마전에 남편이 죽은 그 과부댁 말인가?
(윤노파를 돌아본다.)
[윤노파] 그래요, 바로 그 집이예요. 그런데 무슨 일일까? (옥분이에게) 그래
동네사람들이 뭐라고 고함을 지르며 그 집으로 몰려가더냐?
[옥분이] 묘를 파내라 당장 묘를 파내 하고 고함을 질렀어요.
[윤노파] 뭐라구? 묘를? 아니 너 그, 그게 정말이니? 응? 응?
(이때 지친 어부차림으로 만수(20세)가 싸릿문 안으로 들어서며)
[만수] 네, 정말입니다. 어머니. 아마 영순이 엄마가 아빠 묘를 이 섬에다 쓴
모양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온 섬이 지금 발칵 뒤집혔읍니다. 묘를 파내고
영순이 집 식구들을 이섬에서 쫓아내자고요.
[윤노파] (파랗게 질려서) 아이구,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섬에다 묘를
쓰다니--- 아니 그때 장사지낼 때에 분명히 관을 돌섬에다가 묻었었는데 어떻게
[페이지] 연-009,,0A0090
이섬에다 다시 장사를 지냈어?
[만수] (마루에 걸터앉으며) 밤에 아무도 모르게 다시 관을 파내서 이 섬
뒷산에다 파묻은 모양입니다.
[윤노파] (공포로 떨며) 아이구,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야? 그래서, 그래서
그랬구먼! 그래서 어장을 나간 배마다 폭풍을 만나고--- 고기는 한마리도 못잡고
돛대가 부러져서 들어오구--- 배가 깨져서 들어오구--- 아이구 무서워라!
산신령님이 노했어. 섬에다 묘를 써서 산신령님이 노했다니까.
[장노인] (버럭) 듣기 싫어! 산신령이란 것이 어딨어? 그건 다 쓸데없는
미신이야.
[윤노파] 아이구, 저 영감이 또 겁없는 소리를---
[장노인] 글쎄, 닥치래두! 돛대가 부러진건 폭풍을 만났기 때문이도, 배가
깨진것은 어쩌다가 암초에 부디쳤기 때문이야. 산신령은 무슨 개코같은
산신령이야. 날씨를 잘못 택하고 어장을 나갔기 때문인데.
[윤노파] 좀 살살 말해요, 살살! 산신령님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산신령님이 듣고 우리 집에도 무슨 재앙을 내리면 어쩌려구 그러냔 말이우?
[장노인] 아, 재앙을 내릴려면 내려보라지! 내가 끄덕이나하나
[페이지] 연-010,,0A0100
(하고 일어서다가 갑자기 휘청하며 마루위로 쓰러진다.)
[만수] 아니, 아버지! (얼른 부둥켜안고)
[윤노파] 아이구 영감!
[옥분이] 아빠!
(세식구가 부둥켜 안고 어쩔줄을 모른다. 장노인 사지를 뒤틀며 경련을
일으킨다.)
[만수] 아버지, 정신 차리십시오. 아버지!
[옥분이] 아빠--- 아빠--- (울음부터 터트리고)
[윤노파] 아이구, 영감 정신차려요. 갑자기 이게 무슨 변이예요. 그러길래 내가
뭐랬어요. 산신령님을 개코같다고 하니까 신령님이 노해서 당장 벌을 내리잖아요.
(만수에게) 아, 뭘 하느냐? 빨리 방으로 모셔라, 방으로! 그리고 옥분아! 넌 빨리
가서 무당을 불러와! 어서! 큰굿을 하게!
[옥분이] 네, 알았어요. (달리는데)
[만수] 옥분아, 가지마! 무당보다 의사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섬엔
의사도 약방도 없으니 이거 큰일났구나. (다시 아버지를 돌아보며) 아뭏든
아버지, 일단 방으로 들어가십시다.
[페이지] 연-011,,0A0110
편안한 곳으로--- (방으로 부축하려고 하자)
[장노인] (손을 가로 저으며) 갑갑한 방보다 --- 난 여기가 더 편하다 --- 나를
이대로 둬다오 ---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아 --- 숨이 --- 숨이 ---
가빠오는구나 --- 난 틀렸어 ---
[윤노파] 틀렸다니, 아이구 이게 무슨 소리예요? 영감, 영감! 정신 차리세요!
아이구, 영감!
(부둥켜 안고 어쩔줄을 모른다. 만수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옥분이는 뜨락에
엉거주춤 선채 훌쩍훌쩍 울고 있다.)
[장노인] (더욱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 만수야.
[만수] 네, 아버지.
[장노인] 그리고 옥분아.
[옥분이] 네, 아빠. (더욱 훌쩍인다.)
[장노인] 이 애비는 --- 산신령의 노여움 때문에 --- 죽는것이 아니야 ---
고혈압이라는 병때문에 --- 죽는거야 --- 만수는 내 병을 --- 잘 알고 있지?
[만수] (고개 떨군다.)
[장노인] 내 병을 잘알면 --- 내가 죽거든 말이다 --- 나를 건너편 돌섬에다
버리지 말고 --- 이섬에다 묻어다오
[페이지] 연-012,,0A0120
--- 꼭 이 섬에다 ---
[윤노파] 아이구 영감! 어쩌자고 그런 무서운 소리를 또 하세요 ? 이젠
헛소리까지 하시군요. 제발 정신 차려요 영감.
[장노인] 만수 내 말 듣느냐?
[만수] 듣고 있읍니다 아버지.
[장노인] 나를 --- 꼭 이섬에다 묻어야 한다 --- 내가 이섬에 묻혀도 ---
아무런 재앙이 내리지 않으면 --- 그땐 내가 앞장서서 --- 미신과 무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 이 섬 사람들을 --- 옳은 길로 계도해야 한다 ---
젊은이답게 앞장서서 ---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이건 이 애비의 --- 마지막
유언이다 --- (고개가 옆으로 툭 떨어진다. 운명한 것이다.)
[만수] (왈칵) 아니, 아버지!
[윤노파] 영감 (시체에 엎어져 울음을 터트리고)
[페이지] 연-013,,0A0130
[옥분이] 아빠! 안돼! 안돼! 죽으면 안돼! 아빠! 아빠아---
(마루로 뛰어올라 아버지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며 몸부림을 친다. 슬픈 음악과
함께, 세식구의 통곡소리 고조되며 불이 꺼진다.
같은 무대에 푸르스름한 달빛이 비치고 있다. 고목나무 저편에 둥근달이
떠있다. 옥분이가 싸리문 쪽에서 망을 보고 있고, 집 뒷쪽에서 뭘 만드는지
톱으로 쓰윽 쓱 써는 소리와 이따금 망치질 소리가 들린다. 귀뚜라미 소리가
처량하다. 여기에 그 늙은 어부의 이야기 소리가 깔린다.)
[페이지] 연-014,,0A0140
[이야기] 만수는 자식된 도리로써 아버지의 유언대로 하기 위해 관을 두개를
만들기 시작했읍니다요. 도대체 왜 관을 두개씩이나 만들까요? 그 이유야 간단한
거지요. 관 하나에는 돌을 집어 넣어서, 동네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장례를 치른
다음 돌섬에다 보란듯이 묻기 위해서며, 관 하나에는 아버지의 진짜 시신을
입관해서, 아무도 모르게 이섬에다 묻기 위해섭니다요.
(이윽고 망치질 소리가 멎고, 잠시후에 만수가 지게에다 빈관을 짊어지고 집
뒷쪽에서 나온다. 옥분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돌아본다.)
[만수] (싸릿문 밖을 살피고 나서)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지?
[페이지] 연가-001,,0B0010
[옥분이] 응 오빠.
[만수] 됐다. 그럼 넌 여기서 좀더 망을 봐라 알았지? 누가 오면 빨리 이
오빠한테 알려야 해.
[옥분이] 알았어 오빠.
[만수] 그럼 잘 살펴라.
(한편 더 싸리문 밖을 살피고 나서 급하게 관을 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방문을
닫는다. 옥분이는 싸리문쪽에서 떨며 망을 본다. 잠시후에 방안에서 말소리
들린다.)
[윤노파] (소리) 아니 뭐야? 너의 애비 유언대로 꼭 이섬에다 묘를 쓰겠다구?
[만수] (소리) 어머니 살살 좀 말씀하세요. 누가 듣겠어요.
[윤노파] (소리) 안된다. 그건 안돼. 그랬다가 또 섬에 재앙이 생기면 어쩌려구
그래? 너의 애비도 그래서 갑자기 변을 당했는데.
[만수] (소리) 어머니 묘 때문에 우리 섬에 재앙이 생긴다는 것을 추무당의
쓸데없는 거짓말입니다. 봉녀 어머니가 믿는 터무니 없는 미신이란 말예요.
아뭏든 전 이번 기회에 아버지의 유언대로 우리 섬에서 미신을 뿌리뽑아
버리겠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 어떤 장애가 있어도 ---
[윤노파] (소리) 이놈아 미쳤느냐? 지금 제 정신이야?
[페이지] 연가-002,0B0020
너의 애비의 유언을 들어 주기 위해서 온 섬사람이 다 죽어도 좋단 말이냐?
재앙을 받아서 다 죽어도---
[만수] (소리) 어머니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어머니는 모른
척하고만 계세요.
(무대 밖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린다. 옥분이가 놀라며 밖을 내다보다가
파랗게 질린다. 즉시 마루쪽으로 뛰어가서 나직하게 알린다.
[옥분이] 오빠 오빠 무당 딸이 와요. 아, 아니 봉녀 언니가 와요.
[만수] (방문 열고 튀어나오며) 뭐? 보 봉녀가?
(옥분 파랗게 질린 얼굴로 끄덕인다. 만수 마루에서 내려와 신을 신고 빠른
걸음으로 싸리문쪽으로 가 밖을 살핀다. 다음 태연하게 고목나무를 기대고 서며
달을 쳐다본다. 옥분이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발소리 가까워지며
봉녀(19세)가 싸리문 밖에서 안을 기웃거린다. 싸리문은 가슴높이 밖에 안된다.)
[만수] (문득 돌아본 척) 누구요?
[페이지] 연가-003,,0B0030
[봉녀] 저예요. 봉녀예요.
[만수] 아니 봉녀가 이밤중에 웬일이야?
(싸리문쪽으로 가서 문을 열어준다. 봉녀 만수를 보자 반가운듯 생긋 웃으며
들어선다.)
[봉녀]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봤어. 바다에 나갔다가 오늘 들어왔다면서?
[만수] (덤덤하게) 응.
[봉녀] 이번에더 고기 통 못잡았다면서?
[만수] 그랬어. 폭풍을 만나서 ---
[봉녀] 폭풍때문에 그랬을까? 영순이 엄마가 묘를 이 섬에다 써서 그렇지.
[만수] (대꾸대신 노려본다.)
[봉녀] 왜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나를 보지? 내가 무당딸이라고 만날 때마다
그러는 거야?
[만수] (계속 노려본다.)
[봉녀] 알았어. 쳇 나는 보고 싶어서 들렀는데 --- 나 지금 심부름 가는
길이야. 잘있어.
(싸리문을 나가서 하퇴한다. 만수 잠시 살피다가 싸리문을 잠그고 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옥분이가 다시 나와서 망을 보기 시작한다. 방안에서 말소리 또
들린다.)
[만수] (소리) 어머니 그럼 다녀오겠읍니다. 봉녀가 심부름
[페이지] 연가-004,,0B0040
을 갔다가 오는 길에 또 들를지도 모르니 빨리 가봐야겠읍니다.
[윤노파] (소리) 안된다. 이놈아. 못간다. 죽어도 이 섬에는 못 묻어!
[만수] (소리) 어머니, 이거 놓으십시요. 관이 떨어지겠어요.
[윤노파] (소리) 안돼. 안돼 이놈아.
(즉시 방문이 열리고 지게에다 관을 진 만수가 나온다. 그뒤를 따라 나오며
윤씨가 관을 붙들고 울음을 떠뜨린다.)
[윤노파] 아이구 영감, 못갑니다. 못가요. 그 길이 얼마 멀다고 이렇게 금방
떠납니까요. 못갑니다. 못가요. 영감. 영감.
[만수]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며) 어머니, 왜 이러십니까? 진정하세요. 제발
---
[윤노파] 영감 날 두고 혼자 어딜 가세요? 같이 갑시다. 나도 따라가겠어요.
(지게 다리를 붙잡고 몸부림을 친다. 옥분이도 뛰어나와서 같이 붙잡고 운다.)
[옥분이] 아빠! 아빠! 안돼! 안돼!
[만수] (험하게) 옥분아! 넌 어머니를 붙잡아. 어서! 어서! 이 오빠 말이
안들려?
[페이지] 연가-005,,0B0050
(하면서도 자신도 울어버린다. 주먹으로 눈물을 훔친다. 슬픈 음악과 몸부림을
치는 모녀의 울음이 고조되면서 막이 내린다.)
(프롤로그)
(막앞 길은 여전한 달빛이 쏟아지고 있다.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지게에다 관을 진 만수가 하등한다. 관위에 삽과 괭이가 보인다. 만수 무대
중앙쯤 오다가 갑자기 홱 뒤돌아본다. 깜짝 놀란다. 뜻밖에도 옥분이가 따라오고
있다. 옥분 주저 주저 하며 만수 가까이 다가간다.)
[만수] (의아해서) 왜 왔느냐?
[옥분이] (슬프게) 오빠가 걱정이 돼서 따라 왔어.
[만수] (기특하게 보다가) 너도 다 컸구나 ---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가서
어머니나 보살펴 드려라. 어머니 혼자 얼마나 슬퍼하시겠느냐. (돌아서서 걷는다.
옥분이 따라간다.)
[만수] (돌아보고) 빨리 가래두.
[옥분이] (주춤할뿐)
[만수] 산길이 험해서 너도 못 따라와. 어서 가라니까.
[페이지] 연가-006,,0B0060
(다시 간다. 옥분 또 따라간다.)
[만수] (돌아보고 화낸다.) 무슨 애가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어서 가지 못해.
[옥분이] (주춤 서며) 아빠 --- 아빠가 더 보고 싶어서 그래. 아빠가 더 보고
싶어서 그런단 말야. (훌쩍 훌쩍 운다.)
[만수] (눈물이 핑 돈다.) --- 그래 --- (왈칵 울먹인다.) 어린 네 마음을 이
오빠가 너무 몰라 주었구나 --- 그럼 같이 가자. 뒤따라 오면서 망이나 잘 봐라.
(다시 걷는다. 옥분 따라가며 뒤를 자꾸 살핀다. 남매 그렇게 상퇴한다. 또
다시 멀리서 개짖는 소리 들린다.)
[페이지] 연가-007,,0B0070
[막] 제 2 막
(깊은 산속이다. 무대 좌우로 굵은 나무 치들이 서 있고 중앙 부근은 숲에
둘러싸인 잔디밭이다. 그 너머로 달이 떠 있고 푸른 달빛이 고고하게 내리비친다.
어디선가 부엉이와 뻐꾸기가 기분 나쁘게 운다. 풀벌레 소리도 들린다. 한마디로
무섬증이 확끼치는 무대 분위기다. 막이 오르면 만수가 무덤을 만들고 있다.
삽드으로 엉성한 무덤을 만들고 있다. 그 옆에 서서 옥분이가 보고 있다가)
[옥분이] (갑자기 오빠의 팔에 매달리며) 오빠,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울음을 터뜨린다.)
[만수] 갑자기 왜 이러느냐?
[옥분이] (울며) 아빠가 숨이 막혀 그만해 그만 그만 (하다가 확락 무덤 위로
엎어지며) 아빠 --- 아빠 --- 아빠를 --- 여기다 혼자 두고 우리만 어떻게 내려가
아빠, 다시 살아나 --- 다시 살아나 --- (몸부림을 치며 운다.)
[만수] 옥분아, 왜 이러느냐?
[옥분이] 아빠 --- 아빠 ---
[페이지] 연가-008,,0B0080
[만수] 이러면 안돼. 어서 일어나. (일으키자)
[옥분이] 오빠.
(와락 오빠의 품에 안긴다. 외면하며 그만 울어버리는 만수. 남매 잠시 부둥켜
안은 채 서럽게 운다. 이때 부근에서 또르륵 하고 돌맹이 구르는 소리. 만수
울다가 홱 그쪽을 돌아본다. 무대 좌측의 나무 둥치 뒤에 누가 숨어서 보고
있다가 재빨리 도망을 치다가 엎어진다. 만수가 쫓아가서 와락 일으킨다.
뜻밖에도 봉녀다.)
[만수] (기절할 듯 놀라며) 아니, 보 봉녀 ---
[옥분이] 어맛 봉녀 언니 ---
(놀라며 그쪽으로 간다. 봉녀 한쪽 어깨를 만수에게 붙잡힌 채 공포로 떨고
있다. 갑자기 와락 봉녀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만수] 숨어서 다 보고 있었구나. 어떻게 알고 왔지? 어떻게 알고 뒤따랐어?
(멱살을 흔든다.)
[봉녀] (비틀거리며) 시 심부름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
[만수] 그래서? 그래서?
[봉녀] 골목에서 관을 지고 가는 것을 우 우연히 ---
[페이지] 연가-009,,0B0090
[만수] 그런데 왜 도망을 쳤어? 조금 전에 왜?
[봉녀] 자 잡히면 죽일 것 같아서 ---
[만수]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죽일듯이) 이제 어떻게 할테야? 이 섬에다 우리
아버지의 묘를 쓴걸 봤으니 어떻게 할 테냔 말이야?
[봉녀] (숨이 막혀 버둥거릴 뿐)
[만수] 난 무지에 빠진 우리 섬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내 아버지의 묘를 이
섬에다 썼다. 썩어빠진 풍습을 깨우쳐 주려고 말이야.
[봉녀] (깔딱거리며) 다시 --- 다시 파서 돌섬공동묘지에다 묻으세요.
[만수] 뭐라구?
[봉녀]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돼요. 섬사람들이 또 죽는단 말이야.
[만수] 그렇지 않아.
[봉녀] 눈을 빼도 그래요.
[만수] 그래도 난 내 의지를 꺽을 수 없어. 어쩔테야?
[봉녀] ---
[만수] 대답해! 대답하란 말이야.
[봉녀] 생각해 보겠어요.
[만수] 생각? 무슨 생각?
[페이지] 연가-010,,0B0100
[봉녀] 전 섬사람들을 위하고도 싶고, 만수를 위하고도 싶으니까요.
[만수] 닥쳐. 그만 닥쳐. 그렇다면 비밀을 안 이상 난 널 살려둘 수 없어.
섬사람들의 올바른 삶을 위해서 네가 먼저 희생되 줘야겠단 말얏!
(목을 조른다. 버둥거리다가 쓰러지는 봉녀. 만수 쓰러진 봉녀를 계속 목을
조른다.)
[옥분이] 안돼 오빠 오빠 참아 (만수에게 매달린다.)
[만수] 넌 비켜. (뿌리친다. 옥분이 사정없이 나동그라진다. 일어나서 다시
매달린다.)
[옥분이] 오빠, 안돼? 봉녀 언니가 오빠를 얼마나 생각해 주는데 왜 죽이려고
해? 봉녀 언니는 동네 사람들한테 소문 내지 않을거야. 봉녀 언니 그렇지? 응?
그렇다고 빨리 대답해 봉녀 언니.
[만수] 비키란 말얏. (뿌리치고 옥분이 또 나동그라진다. 다시 일어나
매달린다.)
[옥분이] (울부짖는다.) 오빠! 이러지 마. 이러면 안돼.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천벌을 받아. 봉녀 언니!
[페이지] 연가-011,,0B0110
빨리 도망쳐! 내가 오빠를 붙잡고 있을 테니까 빨리! 빨리 도망치란 말야!
(있는 힘을 다해 오빠의 팔을 잡고 늘어진다. 그 바람에 약간 기우뚱하는 만수.
그 순간을 이용하여 봉녀가 만수를 힘껏 밀어버리고 재빨리 무대 좌측으로 도망을
친다.)
[만수] 서! 서란 말얏!
(일어나서 급히 쫓다가 그만 엎어져 버린다. 다시 일어나다가 또 쓰러져
버린다. 벌써 사라지고 없는 봉녀)
[만수] (발목을 움켜잡고 고통스러워 하며) 옥분아! 빨리 봉녀를 붙잡아!
뒤쫓아 가서 빨리 붙잡으란 말이야.
[옥분이] 벌써 도망치고 없는 걸.
[만수] 그래도 가서 붙잡아. 어떤 일이 있어도 붙잡아야 해!
[옥분이] 싫어! 싫어! 내가 가서 붙잡을 수도 없지만, 붙잡으면 또 죽이려구.
[만수] 잔소리 말고 빨리 가서 붙잡아 이 바보야! 어서! 어서! (악을 쓴다.)
(옥분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서 맴을 돌다가 울음을
터뜨려 버린다.
[페이지] 연가-012,,0B0120
만수가 어서 가서 붙잡으라고 계속 악을 쓰며 막이 내린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지면 무대는 제1막과 같은 만수의 집이다. 낮이라 무대가 밝다. 막이
오르면 계집아이들이 대여섯명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 넘기를 하고 있다. 옥분이도
즐겁게 같이 논다.
[노래]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땅에도
또 다시 본이 온다네
아리앙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을
어서나 가세
여기에 그 늙은 어부의 이야기가 또 깔린다.)
[이야기] 헌데, 이해못할 일이 한가지가 있었읍니다요. 그건 뭔고하니 다름이
아니라 봉녀의 행동이예요. 봉녀라는 처녀는 추씨 성을 가진 추무당의 무남독녀
외딸인데 섬에다가 만수가 묘를 쓴
[페이지] 연가-013,,0B0130
사실을 아직까지 비밀에 붙이고 있지 뭡니까요. 자기 어머니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기만 하면 만사는 끝장인데 말씀이예요. 도대체 봉녀는 그런 무서운 사실을
왜 소문을 내지 않고 있을까요? 거참 알쏭 달쏭 봉녀의 마음이 참으로
얄궂습니다요.
(계집아이들이 이번에 다른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 넘기를 한다.
[노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 불긋 꽃대궐
차리는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야기] 그건 그렇고 자 그럼 이제부터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까요? 섬에다
묘를 쓰면 섬사람들이 떼죽음을 하는 무서운 재앙이 내린다는데 과연 그런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요? 아이구 저 저런 --- 정말 무슨 일이 터진 모양입니다요.
(싸리문 안으로 영순이라는 계집아이가
[페이지] 연가-014,,0B0140
파랗게 질려서 뛰어들며 소리친다.)
[영순] 얘들아! 큰일났어 큰일. (옥분이와 친구들이 고무줄 넘기를 하다 말고
일제히 영순을 에워싸며)
[금숙] 큰일이라니?
[순희] 무슨 큰일?
[명자] 왜그래, 영순아?
[영순] (벌벌 떨며) 주 죽었어
[애희] 죽다니?
[말순이] 누가? 누가 죽어?
[영순] 말순이 너의 언니하고 명자 금숙이 너희들 언니도 함께 다 죽었단
말이야.
[말순이] 뭐? 우리 말자언니가?
[명자] 우리 언니도?
[금숙] 우리 금희 언니도? 왜 죽어? 왜? 우리 언니들이 왜 죽어?
[영순] 개펄에서 미역을 따다가 파도 휩쓸려서 다 죽었단 말이야.
[말순이] 뭐라구?
[금숙] 우리 언니가?
[영순] 그래 빨리들 개펄로 가봐. 지금 시체들을 가마
[페이지] 연가-015,,0B0150
니에 덮어놓고 너희들 엄마들이 통곡을 하고 야단이야.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구. 다섯이나 되는 동네 처녀들이 떼죽음을 했다구 말이야.
[금숙] 언니
(와락 울음부터 터뜨리며 싸리문을 뛰어 나간다. 그 뒤를 말순이와 명자도 울며
뛰어 나간다. 이어서 옥분이만 남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뛰어나간다. 동시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만수가 뛰어나온다. 윤노파도 누워 있었는지 무릎걸음으로
기어나온다.)
[만수] (마루에서 뛰어내리며) 옥분아. 방금 너의 친구가 와서 뭐라 그랬지?
응? 뭐라고 그랬어?
[옥분이] (겁먹은 얼굴로) 미역을 따다가 동네언니들이 다섯이나 물에 빠져
죽었다구 했어요.
[만수] (충격적으로) 뭐라구?
[윤노파] (마루에 털썩 주저 앉으며) 아이고.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구나.
기어이! 섬에다 너의 애비 묘를 써 산신령님이 재앙을 내렸어. 아이고 큰일났네!
큰일났어! 이 일을 어찌하누?
[페이지] 연가-016,,0B0160
(공포로 마루를 이리저리 기어다니다가)
[윤노파] (공중을 우러러 두 손을 싹싹 빌며)
아이고 산신령님 산신령님 지혜없는 인간들이라 죽을 죄를 졌읍니다.
살려주십시요. 살려주십시오. 당장 묘를 파내겠읍니다 --- (절을 하고 야단이다.)
[만수] 어머니 남들이 다 듣겠어요. 좀 조용히 하세요. (어머니의 절을
제지한다.)
[윤노파] (홱 뿌리치며 엄하게) 시끄럽다 이 녀석! 잔말말고 당장 파내라. 파내
묘를 당장 파내서 돌섬 공동묘지에다 파 묻어!
[페이지] 연가-017,,0B0170
[만수] 어머니 고정하세요. 사실인지 아닌지 일단 제가 가서 동네처녀들이
떼죽음을 했는지 --- 그럼 저 다녀오겠읍니다. (옥분을 보며) 옥분아.
[옥분이] 네 오빠.
[만수] 넌 어머니 모시고 옆에 꼭 붙어앉아 있어. 알았지? 오빠 금방 갔다
올테니까 (급하게 싸리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동시에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지면 윤노파가 여전히 마루에서 두손을 싹싹 빌며 뭐라고 중얼중얼하고
있다. 만수가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급히 마당으로 들어선다.)
[옥분이] (반가와서) 오빠 엄마 오빠와요.
[윤노파] (손 비는 것을 멈추고 만수를 보며) 어 어찌됐느냐?
[페이지] 연가-018,,0B0180
정말 처녀들이 떼죽음을 했지? 그렇지? 이놈아 어서 말을 해 봐!
[만수] (침착하게 어머니 옆에 걸터 앉으며) 네. 다섯이나 한꺼번에 물에 빠져
죽었더군요. 개펄 바위에서 갯것을 하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
[윤노파] 아이구 이젠 우리가 죽었구나. 우리가 죽었어. 너의 애비 묘때문에
처녀들이 떼죽음을 했다는 것을 아는 날이면 온 섬사람들이 우리 식구들을 가만
둘성 싶으냐? 가만둘 줄 알아? 아이구 이젠 맞아 죽었네. 맞아 죽었어.
[만수] 어머니 처녀들이 죽은 것은 아버지 묘 때문이 아닙니다.
[윤노파] 뭐가 어째?
[만수] 그건 실수로 죽은 겁니다. 처녀들의 실수로 말입니다. (옥분이가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싸리문을 빠져 나간다.)
[윤노파] 실수? 이 미련한 놈아! 실수도 유분수지 --- 하필이면 왜 이런 때에
실수를 해? 너의 애비 묘가 섬에 있을 때에
[페이지] 연나-001,,0C0010
[만수] 어머니도 참 답답하십니다. 실수라는 게 어디 언제하라고 딱 시간이
정해져 있읍니까. 아무때나 주의를 하지 않으면 생기는게 실수죠.
[윤노파] 아는 것도 많구나. 아는 것도 많아!
[만수] 어머니 정말 그 처녀들은 실수로 죽은 겁니다. 처음에 한처녀가 물속에
있는 미역줄기를 잡으려고 허리를 굽히다가 발이 쭉 미끄러져서 물에 ---
[윤노파] (가로챈다.) 풍덩 빠지니까? 그래서?
[만수] 다른 처녀들이 살려주려고 서로가 다투어 손을 내밀다가 하나 둘 빠져서
결국 다 죽게된거예요.
[윤노파] 이놈아, 모르면 잠자코 있어! 그건 산신령님이 노해서 물귀신이
끄집어 당긴거야. 물귀신이!
(이때 멀리서 아우성과 함께 "불이야! 불이야! " 소리 들린다. 벌떡 일어서는
만수. 윤노파는 공포로 어쩔줄을 모른다. 동시에 옥분이가 파랗게 질려서 숨차게
뛰어들며)
[옥분이] 오빠! 불 --- 불 ---
[만수] (옥분이 쪽으로 마주 뛰어가며) 어디서 불이 났어? 응? 어디야? 누구
집이야?
[옥분이] (오빠 앞에 멈춰서서) 싸리문쪽 먼 곳을 손가락질하며 저기 저 나루터
쪽에 ---
[만수] 나루터 어디?
[페이지] 연나-002,,0C0010
[옥분이] 오빠가 타는 배 사공 아저씨 집이예요.
[만수] 뭐라구? (허둥지둥 뛰어나간다.)
[윤노파] 이놈아 거 봐라! 이번에는 동네에 불이 났다! 불이 났어! 당장 너의
애비 묘부터 파내!
(만수 사라지고 없다. 윤노파, 마루에서 맨발로 뛰어내리며)
[윤노파] 이놈아 어딜 가느냐? 우리집에도 불이 날지 모르는데 어딜가? 만수야!
만수야! (쫓아나가다가 그만 엎어진다.)
[옥분이] 엄마! (부둥켜 안는다.)
[윤노파] (눈을 휘번덕거리며) 넌 엉큼 부엌에 가봐! 어서! 아, 어서!
[옥분이] 왜 엄마?
[윤노파] 아, 이것아! 우리집에도 지금 불이 나고 있을지 모르니 어서 부엌에
가보란 말이야! (하며 허둥지둥 자신이 부엌쪽으로 사라진다.)
[옥분이] 엄마! 괜히 겁먹지 마! 오빠 말이 맞아! 난 오빠 말이 맞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아빠 무덤하고 동네 불난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불이
나려면 우리집부터 불이 나야지. 우리집은 아무렇지도 않잖아! 엄마.
[페이지] 연나-003,,0C0030
(소리치며 엄마뒤를 따라간다. 멀리서 고조되는 아우성과 '불이야' 소리. 막이
내린다.)
(프롤로그)
(막이 오르기 전에 무대 오른쪽에서 봉녀가 밭에 갔다오는지 배추바구니를 옆에
끼고 천천히 등장한다.)
[이야기] 바로 그 다음날이었어요. 불은 한시간만에 꺼졌지만 섬사람들은
모두가 공포와 불안으로 떨고 있었어요. 섬에다 누가 또 몰래 모를 썼기 때문에
재앙이 내렸다고 떨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섬의 유지 영감님들이 동각에
모여서 누가 묘를 썼는지 그것을 밝히자고 회의를 열고 야단들이었읍니다요.
(이때 봉녀의 뒷쪽 무대밖에서 "봉녀--- 봉녀--- " 하는 소리가 들린다. 봉녀
돌아보다가 깜짝 놀란다. 다음 도망을 친다. "봉녀! 봉녀!" 소리 점점 가까와지며
이내 만수가 흙이 묻은 삽을 한손에 들고 무대 오른쪽에서 뛰어나온다.)
[페이지] 연나-004,,0C0040
[만수] 봉녀! 봉녀! 서! 내 말 한마디만 듣고 가!
(봉녀 무대 왼쪽으로 계속 도망을 친다. 만수 쫓아가서 팔을 잡고 나꿔챈다.)
[봉녀] (뿌리치며) 놔! 왜 이러는 거야?
[만수] (다시 팔을 꽉 잡으며) 봉녀! 만나고 싶었어. 그동안 만나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통 만날수가 있어야지.
[봉녀] 흥! 나를 만나려는 용건이 뭐죠?
[만수] (무대 왼쪽을 턱짓하며) 우리 저기 정자나무 밑으로 가서 얘기할까?
[봉녀] 싫어요! 할 말이 있으면 여기서 하지 왜 저런 으슥한 곳으로 가자는
거야? 할 말이 있으면 해봐요. 무슨 말인지 들어는 줄테니까.
[만수] 부탁이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 저쪽으로---
[봉녀] 싫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난 벌써 다 알고 있어요.
[만수] 봉녀! 아뭏든 고마와!
[봉녀] 뭐가 고마와? 섬에다 묘를 썼다는 걸 내가 소문 내지 않아서 고맙다는
건가요?
[만수] (고개 숙여버린다.)
[봉녀] 흥! 그렇다면 나를 잘못 봤어요! 나는 무당딸이예요. 근데 내가 왜
아직까지 소문을 안내고 있는지
[페이지] 연나-005,,0C0050
아세요?
[만수] (고개 들고 쳐다본다.)
[봉녀] 만수를 생각해서 내가 소문을 안내고 있는지 아세요? 천만에요! 흥 내가
왜 만수를 생각해? 만수가 뭔데? 겨우 뱃놈밖에 더 돼?
[만수] (노려본다.)
[봉녀] 아무리 만수가 물에 나가서 고등학교까지 나오구 우리 섬에서 제일
똑똑한 청년이라지만 그래도 현재는 시시한 뱃놈밖에 더 되냐구요? 흥! 너무
잘난체 하지 말아요! 우리 섬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자기 혼자뿐이라고!
[만수] (계속 노려볼 뿐)
[봉녀] 그것 때문에 내가 소문을 안내고 있는 줄 안다면 그건 큰 착오예요!
똑똑히 들어주세요! 내가 아직까지 소문을 안내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만수] 뭐야? 그 이유가 뭐냔 말이야?
[봉녀] 이유는 간단해요! 만수의 말마따나 정말 섬에 묘가 있어도 아무런
재앙이 안생기나 그걸 내눈으로 직접 한번 더 보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어때요?
재앙이 안생겼나요? 안 생겼냐구요?
[만수] ---
[페이지] 연나-006,,0C0060
[봉녀] 분명히 생겼잖아요! 동네처녀들이 갯것을 하다가 떼죽음을 당하고
동네에 불이 나고---
[만수] 그만! 그건 사람들의 실수로 생긴 일들이야! 우리 아버지의 묘 때문이
아니란 말이야! 불이 난 것은 아이들이 성냥불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불이 났고
처녀들은---
[봉녀] (가로챈다.) 그래요! 나도 그 두가지 사고는 사람들의 실수로 생각하고
싶어요! 허지만---
[만수] 허지만 뭐야?
[봉녀] 배들이 어장을 나가면 왜 통 고기를 못잡죠? 전에는 들어오는 배마다
만선이었느데 말예요! 만선이라고 뱃사람들이 꽹과리징을 치면서 갑판에서
난리들이었는데 왜 지금은 그런 만선배가 한 척도 안들어오죠?
[만수] 그건 어장을 나가서 사공이 물때를 잘못 짚었기 때문이야! 고기라는 건
물때를 잘 짚어야 많이 잡혀!
[봉녀] 흥! 똑똑한 사람이라 아는 것도 많군요! 천만에요! 그건 우리 섬에 묘가
있기 때문이예요! 우리 어머니의 맘대로 섬에 묘가 있기 때문에 배들이 고기를
하나도 못잡는단 말예요!
[페이지] 연나-007,,0C0070
[만수] 그건 썩어빠진 한낱 미신이야!
[봉녀] 미신 미신 하지 말아요! 그리고 똑똑히 들어둬요! 지금까지는 내가
비밀을 지켜주었지만 앞으로 한번만 더 섬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만수] 그러면! 그러면 어쩌겠다는 거야?
[봉녀] (뒷걸음질 치며) 우리 섬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없이 만수 아버지의
묘를 소문내고 말겠단 말예요!
[만수] 뭐가 어째? (다가든다.)
[봉녀] (계속 뒷걸음질 치며) 또 저를 목을 졸라 죽일건가요? 어디 한번 죽여
보세요! 또 한번 죽여보란 말이야! (이때, 무대 왼쪽에서 왁자하는 소리와 함께
고함소리 들린다.)
[소리] (멀리서) 배들어오네 배--- 아이구, 저, 저런 저게 누구네 배야?
[소리] 또 돛대가 부러졌구먼! 만선을 커녕 또 돛대가 부러져서 돌아와! 근데
뱃사람들이 왜 저렇게 갑판에서 울고 있지?
[소리] 아이구! 누가 또 어장을 나가서 물에 빠져 죽었는 모양이구먼! 그랬어!
죽었어! 아이구, 또 초상났네--- 초상
[페이지] 연나-008,,0C0080
(아우성과 함께 소리들 멀어진다. 무대에서 파랗게 질려있는 만수와 봉녀)
[봉녀] (다시 뒷걸음질 치며) 저 소리 들었죠? 들었죠? 저건 모두 만수
아버지의 묘 때문이예요! 그 묘 때문이란 말예요. (홱 뒤돌아 무대 왼쪽으로
도망친다.)
[만수] 아니, 봉녀--- 봉녀
(뒤쫓아 퇴장한다. 동시에 오른쪽에서 낯선 청년 하나가 등장한다. 남루한
보따리를 손에 들었다. 기철이라는 청년이다. 기철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좀
모자란 사람처럼 천천히 무대 가운데쪽으로 걸어간다. 잠시후에 역시 무대
오른쪽에서 빨래통을 머리에 인 여인 하나가 등장한다. 여인, 앞서가는 그 청년을
발견하고 주춤했다가 다시 걷는다.)
[이야기] 헌데, 바로 이날 어디서 흘려왔는지 낯선 청년이 하나 갑자기 이 섬에
나타났지 뭡니까요. 도대체 어디서 온 누구일까?
(여인의 발소리를 듣고 청년이 문득
[페이지] 연나-009,,0C0090
뒤돌아본다. 여인이 청년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경계하듯 멈칫한다. 그러자
청년이 뒤돌아 여인 가까이 가서 서며 무조건 꾸벅 절을 한다.)
[여인] (놀라 주춤서며) 나는 잘 모르겠는데--- 누구시우?
[기철] 버버--- 버버버--- (또 꾸벅 절한다.)
[여인] 버버버--- 바버라니?
[기철] 버버버--- (손짓 발짓으로 이상한 흉내를 낸다.)
[여인] (보다가 픽 웃으며) 오라! 이제보니 벙어리구먼! (기철 바보처럼 헤
웃으면서 맞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여인] (다시 위아래를 훑어보며) 어디서 왔어요?
[기철] (먼데서 왔다고 손짓 발짓한다.)
[여인] (먼데서 왔다고? 뭍에서?
[기철] (끄덕끄덕)
[여인] 근데 이 섬엔 뭐하러 왔어요? 뭍에서 이 외로운 섬까지
[기철] 버버버버 ---
(괭이로 밭을 파고 지게를 지는 흉내를 내며 배가 고파 죽겠다는 시늉을 한다.)
[여인] (끄덕이며) 오라! 이제보니 배가 고파서 머슴살이
[페이지] 연나-010,,0C0100
라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예요?
[기철] (맞다고 끄덕이며, 잘 좀 봐달라고 여러번 절을 한다.)
[여인] 그럴줄 알았어. 어쩐지 꼬락서니가--- 그렇다면 잘못 왔어요.
[기철] ---?
[여인] 이 섬은 모두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사는 주민들 뿐이예요.
밭이나 논을 가진 집이 몇집 안돼요. 그래서 머슴을 두지 않아요.
(기철, 여인의 손을 잡으며 울상으로 애원한다. 손을 싹싹 빌기도 한다.)
[여인] 아유 딱하구먼! 글쎄 이봐요. 작년에도 몇사람 머슴을 살려고 왔다가
그냥 갔단 말예요. 배는 탈 줄을 모른다고 말이예요. 배라도 타보지 그래요 그럼?
(기철, 배는 멀미때문에 못 탄다고 머리를 흔들고 야단이다.)
[여인] 그럼 다시 뭍으로 가요. 배라도 탈 줄 안다면 모르지만---
(기철, 갑자기 보따리 속에서 화장품 하나를 꺼내준다.)
[페이지] 연나-011,,0C0110
[여인] (받으며) 아니 이게 뭐야? 어머나! 화장품 아니야? 아이구 분이네 분!
(뚜껑을 열고 냄새를 흥흥거리며 맡아보고는)
[여인] 아유 이 분냄새--- 향기롭기도 해라! (좋아서 호들갑을 떨다가) 이거 날
주는 거예요?
[기철] (끄덕인다.)
[여인] 호호호--- 고맙기도 해라. 그렇지만 날 잘못 봤어요. 난 공짜는
싫어하는 사람이예요. 이 섬사람들이 다 그래요. 남의 물건을 탐내거나 댓가없이
남의 동정을 받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해요.
[기철] (눈만 껌벅껌벅)
[여인] 그러닉까 이건 내가 돈을 치르고 사겠어요. 이 섬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귀한 화장품이니까 이따가 우리집에 가서 드릴께요. 그건 그렇고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어야 할텐데--- (생각하다가) 옳지! 그럼 추무당한테 한번
부탁해볼까--- 올해는 그 집이 머슴을 둘지도 모르는데--- 아뭏든 따라와 보세요.
(무대 왼쪽을 향해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좋아라고 몇번이고 절을 하며
뒤따르는 기철)
[페이지] 연나-012,,0C0120
[여인] (걸으면서 얘기 계속한다.) 이섬에선 누구든지 추무당 말이라면 거절을
못해요. 누가 병이 나면 굿을 해서 고쳐주기도 하니까요. 병이 낫지 않고 죽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기철] (묵묵히 따른다.)
[여인] 그리고 우리 섬에선 제일 알부자예요. 섬에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푸닥거리를 해서 돈을 쓸어 모으니까요. 그래도 그 집은 배는 안부려요. 그래서
논밭이 많아요. 아이구 내가 무슨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지? 어서 갑시다.
(두 사람 무대 왼쪽으로 사라진다. 불이 꺼진다.)
[페이지] 연나-013,,0C0130
[막] 제 3 막
(무대 오른쪽에 대청이 있는 고색 기와집이 반쯤 보이고, 뒷마당의 기와담장
너머로는 숲과 먼산이 보인다. 그 담장 한귀퉁이에 붉은 천이 매어져 있는
대나무가 우뚝 서 있다. 한눈에 무당집임을 알 수가 있다. 가끔 집뒤 숲에서
새우는 소리 들린다. 막이 오르면 여인이 빨래통을 머리에 인채 기철을 데리고
들어온다.)
[여인] (빨래통을 한쪽에다 놓고 방문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봉녀 엄마! 집에
계시우?
[추무당] (방문열고 마루로 나오며) 금숙이 엄마 우리집엘 웬일이야?
(무대 왼쪽에 서 있는 기철을 힐끔 바라보며 의아해 한다. 화려한 한복에
금반지와 금목걸이가 반짝거린다.)
[여인] (기철쪽을 힐끔 보고 나서) 사실은 저--- 저 총각이 뭍에서 왔는
모양인데 머슴을 살겠다고 해서--- 한번 데려와봤어요.
[페이지] 연나-014,,0C0140
[추무당] (오만하게 마루에 턱 앉으며) 머슴을?
[여인] 네. 아마 배가 고파서 머슴살이라도 하려고 온 모양이예요.
[추무당] (기철의 행색을 찬찬히 살피고 나서) 어디 뭍에서 왔대요?
[여인] 오면서 물어보니까 기차타고 배타고 서울서 왓다고 하던데요.
[추마당] 서울? 아니 귀하신 서울 양반이 왜 이런 촌구석지까지 머슴살이를
하러 와! 좀 모자란 사람 아니야?
[여인] 아이구 눈치도 빠르셔 호호호--- 쪽집개로 콕 찍어내듯 참 잘도 봤어요.
사실은 말을 못하는 벙어리래요.
[추무당] 그러면 그렇지! 내눈이 어떤 눈이라고--- (헛기침 한번 거만하게
하고나서) 나이는 몇살이래요?
[여인] 딱 스물다서이래요.
[추무당] 젊어서 일은 잘하겠구먼! 장가는 갔대요?
[페이지] 연나-015,,0C0150
[여인] 아직 총가이래요. (기철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다.)
[추무당] (기철을 또 한번 보고나서) 인물은 순하게 생겼구먼! 그렇잖아도
올해는 머슴을 하나 둘까하고 있는 참인데---
[여인] 그럼 불쌍하니까 한번 둬보세요. 벙어리면 어때요. 일만 잘하면
되잖아요.
[추무당] 그럼 보증은 금숙이 엄마가 서는 거죠?
[여인] 예? 아니 내가 무슨 보증을--- 나도 동네길에서 처음 만난 총각인데---
왜요? 뭘 훔쳐서 도망이라도 칠까봐 그러세요?
[추무당] 사람속을 누가 알아요? 생전 듣도 보고 못한 뜨내기 총각인데---
[여인] 아이구 봉녀엄마도 의심은 호호호--- 설령 뭘
[페이지] 연나-016,,0C0160
훔쳐서 도망을 친다해도 제까짓게 어딜가요? 뛰어야 벼룩이지! 이 섬안에서야
안잡히고 베겨요?
[추무당] 하긴 그런데--- (기철에게 거만하게) 총각! 이리 와봐요.
(기철 바보처럼 희죽 웃으며 뜨락에 선다. 그리곤 추무당에게 여러번 절을
한다. 그것이 우스운지 한바탕 깔깔대고 나서)
[페이지] 연다-001,,0D0010
[추무당] 고개 빠지겠어요. 절 그만하세요. (기철, 고맙다고 또 절을 여러번
한다. 여인과 마주보며 또 한바탕 깔깔대고 나서)
[추무당] 이름이 뭐예요? (기철, 무조건 보따리를 내려놓고 풀기 시작한다.)
[여인] 오면서 물어보니까 보따리 속에다 아주 호적초본을 가지고 다니다고
했어요. 아마 그 호적초본을 지금 꺼내는 모양이예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그 당시엔 주민등록증이라는 것이
없었을 때였읍니다요. 그래서 벙어리 총각이 보따리 속에 간직한 호적초본을 마악
꺼내려는데---
(무대 왼쪽에서 동네 유지 영감이 서너명이 등장한다. 긴 담뱃대를 든 영감도
있다.)
[박영감] (일어서며) 아이구, 어서 오세요. 그렇잖아도 동네 어른들께서 저의
집엘 찾아오실 줄 알았어요. 처녀들이 떼죽음을 하고 동네에 불이나고, 오늘은 또
어르신네 배가 어장을 나갔다가 뱃사람이 하나 그물에 걸려서 물에 빠져
죽었다면서요? (마루
[페이지] 연다-002,,0D0020
에서 내려와 고무신을 신고 반색을 한다.)
[박영감] 그렇소, 그래서 내 직밑접 추무당을 찾아왔소. 세상에 내 배가 어장을
나갔다가 사람이 죽고 돛대까지 부러져서 들어오다니--- 이 이런 기막힌 일이
세상에 어디 있냔 말이오? (하다가 기철을 보고는) 아니, 저 젊은이는 누구야?
처음 본 젊은이 같은데---
[추무당] 네. 저기 저 서울서 왔다는데---
[송영감] 서울?
[추무당] 예. 말을 못하는 벙어린데, 어떻게 하다보니 이 섬까지 들어오게 된
모양이예요. 머슴이라도 살 생각으로요.
[구영감] 벙어리? 쯧쯧쯧--- 등신은 멀쩡한데---
[추무당] 그래 불쌍해서 저의 집 머슴으로 뒤 볼 생각이예요. 마침 추수때고
해서--- (기철에게) 총각 그건 이따가 보기로 하고 일단 오늘부터 일을 한번 해
봐요. 총각이 쓸 방은 (집 뒷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 골방이예요. 우선 그 방부터
가서 깨끗이 치우세요.
[기철] (호적초본을 다시 보따리 속에다 집어넣으며)
[페이지] 연다-003,,0D0030
버버버--- (고맙다고 절을 여러 번 하곤 덩실덩실 춤을 추듯 집 뒷쪽으로
사라진다.)
[여인]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어요. 그럼 또 봐요. (추무당에게 말해놓곤
영감님들 뒤를 조심조심 지나 무대 왼쪽으로 퇴장한다.)
[추무당] (영감들에게) 자, 좀 저리로 올라가세요. 대청으로.
[박영감] 괜찮소. 그보다 섬에 끔찍한 변괴가 연달아 일어나니, 이건 대체
어이된 일이오?
[송영감] 그래서 누가 또 섬에다 묘를 썼나 안썼나 그걸 좀 추무당한테
물어보려고 왔소.
[추무당] 글쎄요---
[구영감] 글쎄요라니?
[추무당] 그건 재앙을 내리는 신을 불러서 굿을 해봐야 알죠.
[박영감]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럼 당장 굿을 해보도록 하시오. 이번에
굿한 돈은 내가 특별히 후히 내놓을테니, 그저 어떤 놈이든지 묘를 썼기만
해봐라. 동네 돌매를 해서 이섬에서 추방해 버릴테니까.
[구영감] 그정도로 그쳐서 쓰나. 단단히 분풀이를 해야지.
[페이지] 연다-004,,0D0040
폭풍에 깨진 배들도 변상하게 하구.
[송영감] 아, 뭘하고 있소? 빨리 굿을 시작하시오.
[추무당] 아이구, 예 예 --- 그럼 오늘밤에 동각 앞길에서 굿을 시작하겠어요.
참, 내정신좀 봐라. 빨리 그럼 준비를 해야지.
(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세 영감 기대의 얼굴로 서로 마주보다가 헛기침하며
퇴장한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지면 무대는 길고 달밤이다. 안방과 대청 쪽의
방문 불이 환히 켜져 있다. 집 뒷마당 쪽에서 소리도 처량하게 들린다. 귀뚜라미
소리도 처량하게 들린다. 안방문에 무당옷을 입은 추무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다가 곧 방문이 열리며 나온다. 무당들이 입는 의관과 의대를 했다.)
[추무당] (마루로 나오며) 봉녀야 아, 봉녀야 어디갔어?
[봉녀] (대청 쪽의 방에서 나오며) 저 여기 있어요. 왜요, 어머니?
[추무당] 아, 이 정신빠진 것아, 바빠 죽겠는데 방에 들어가 쳐박혀 있으면
어떡해?
[페이지] 연다-005,,0D0050
[봉녀] 피곤해서 좀 쉬고 있었어요.
[추무당] 지금 쉴틈이 어딨어? 머슴은 왜 안보여?
[봉녀] 뒷마당에서 소 여물을 먹이고 있어요.
[추무당] 그럼 네가 찾아봐. 장구하고 바라 어디있지? 아, 꾸물대지 말고 빨리
좀 찾아봐.
[봉녀] 고장이 나서 고쳐달라고 뒷집 할아버지 한테 맡겨 뒀잖아요.
[추무당] 그럼 빨리 찾아 와, 아, 어서
[봉녀] 알았어요.
(추무당 다시 안바으로 들어가고 봉녀 신을 신고 무대 왼쪽으로 퇴장한다.
뒷마당 쪽에서 또 소울음소리 들린다. 잠시 소 울음 소리 뿐 공간의 무대,
이윽고, 뒷마당쪽에서 이마의 땀을 옷소매로 닦으며 기철이 나온다. 기철 앞마당
쪽으로 나오다가 문득 아무도 없음을 느낀다. 좌우를 한번 살피고 나서 살금살금
안방쪽에 귀를 기울인다. 기철 신을 신은체로 마루로 올라서서 문틈으로 방안을
엿본다. 아무도 없음을 알았는지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시
소울음소리가 두어 번 들리고 공백의
[페이지] 연다-006,,0D0060
무대---. 이윽고, 대청 쪽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기철 뭔가를 보자기에
싸서 훔쳐서 나온다. 동시에 추무당이 안방에서 나오며)
[추무당] 봉녀야 아 빨리 안 찾아오고 뭘해? (하다가 뭘 훔쳐서 나오는 기철을
보고는) 아니? (깜짝 놀란다.) (기철 후다닥 도망을 치다가 그만 마루에서 굴러
떨어진다.)
[추무당] 아이구 이 도둑놈도 도둑이야 (버선발로 뛰어내려 엎어진 기철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기철] 놔. 놓란말야. 놓치 않으면 알지?
[추무당] 아니? 이 이놈이 말을 하네. 벙어린줄 알았더니 말을 해. 이놈아 이
도둑놈아. 도둑질을 하려고 이제까지 벙어리 행세를 했구나. 도둑이야.
도둑동네사람들 우리집에 도둑 들었네---
(기철 추무당을 힘껏 밀어버리고 도망친다. 이때 봉녀가 장구와 바라를 들고
들어오다가 기절할듯 놀란다. 기철 봉녀와
[페이지] 연다-007,,0D0070
마주치자 잠시 머뭇거린다. 그 틈에 추무당이 어느새 쫓아와서 기철의 멱살을
잡고 힘껏 밀어버린다. 사정없이 넘어지는 기철. 다시 일어날 줄을 모른다.)
[추무당] 이 도둑놈아, 내 집에서 도둑질을 하다니--- 이 죽일 놈--- (다시
멱살을 잡고 일으키다가 파랗게 질린다. 사지가 뻣뻣해진 기철. 뇌진탕으로 죽은
것이다.)
[추무당] 아니? 주 죽은것 아니야? 총각, 총각 정신차려요. 총각---
(세차게 흔드나 이미 늦었다. 봉녀 파랗게 질려서 그자리에 얼어붙어 있다.)
[추무당] (미친사람 처럼) 총각, 총각 정신차려요. 눈을 떠봐요. 눈을 (하다가
시체를 놓아버리며 당황하게)
[추무당] (봉녀에게)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지? 응? 없었지. 이것아 뭘하고
섰어? 빨리 대문부터 걸어 잠가 대문부터 어서--- (하고 시체의 두다리를 잡고
흡사 미쳐버린
[페이지] 연다-008,,0D0080
사람처럼 뒷 마당 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한다. 그대로 선채 공포로 어쩔줄을
모르는 봉녀.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지면 같은 무대와 같은 달밤이다. 귀뚜라미 울우는 소리와 소울음
소리도 조명이 한줄기 뒷 마당쪽을 비친다. 거기 집 모퉁이 쪽에 봉녀가 공포의
얼굴로 떨며 뒷 마당 쪽을 보고 섰고, 시체를 따에다 파묻는지 흙을 파는 괭이질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린다. 그러나 추무당의 모습은 집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추무당의 떨리는 목소리만 들려 나온다.)
[추무당] (소리) 이것아. 왜 이러고 섰어? 빨리 와서 좀 거들잖구.
[봉녀] (떨뿐)
[추무당] (소리) 아, 어서--- 그리고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엇지? 응? 정말
없었지?
[봉녀] 있었어요.
[추무당] (소리) 뭐? 누가 봤어?
[봉녀] 제가 봤잖아요.
[페이지] 연다-009,,0D0090
[추무당] (소리) 뭐가 어째?
[봉녀] (울먹인다.) 엄만 나빠요. 나쁜 사람이예요. 사람을 죽여놓고 왜 몰래
파묻죠? 섬에 묘가 있으면 재앙이 생긴다고 섬사람들한테 큰소리를 치면서 왜
엄만 시체를 몰래 파묻느냔 말예요?
[추무당] (소리) 이것아, 모두가 너를 위해서야 이 애미가 살인범으로 읍내
경찰서에 잡혀가면 너는 좋겠니? 응? 좋겠어?
[봉녀] ---
[추무당] (소리) 이것도 재앙인지도 몰라 이것아. 누가 섬에다 묘를 썼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재앙을 받는지도. 아, 뭘해? 그러고서 있지만 말고 빨리 와서
거들라니까.
[봉녀] 몰라요. 무서워요. 무서워요. 무섭단 말예요. (방으로 뛰어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공포로 흐느끼는 소리 들려나온다.)
[추무당] (소리) 아니, 봉녀야, 어딜 가?
(즉시 흙묻은 괭이를 든 채 뒷마당쪽에서 나타난다. 두리번거리다가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안도한다. 다음, 조금 망설이다가 무대 왼편쪽을 힐끔
살피고나서 다시
[페이지] 연다-010,,0D0100
급하게 뒷마당쪽으로 사라진다. 이어 괭이질 소리 계속 들리며)
[이야기] 어이구 세상에 저런 무시 무시한 일이 또 어디있담. 사람을 죽여놓고
자기집 뒷마당에다 감쪽같이 파묻다니--- 허기사 죽은 저 총각놈은 실인즉
서울에서 강도질을 하다가 이 섬까지 도망쳐 온 놈이었어요. 그런데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여기서도 도둑질을 하다가 저런 변을 당하다니 쯧쯧쯧. 그건 그렇고
추무당은 시체를 감쪽같이 암매장한 다음, 이날 밤 태연히 동각 앞길에서 큰굿을
벌였겠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지면 무대는 섬의 나룻터를 배경으로 한 동각 앞 공터다.
무대 왼쪽에 양철지붕의 동각 (처마밑에 동각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어야 함)
건물이 절반쯤 보이는데 내부 구조는 대청같은 마루바닥이 내있을 뿐이고 거기에
장기판과 바둑판이 있으면 된다. 그 너머로 낮은 돌담이 엉성하게 보이고 그
너머로는 질펀한 바다와 방파제 같은 나룻터가 관객들의 시선에 약간만 보이면
된다.
[페이지] 연다-011,,0D0110
파도소리와 해조음은 쉴새없이 들릴수록 좋다. 막이 오르면, 무대 양쪽과
중앙의 낮은 돌담쪽에 구경꾼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고, 지금 추무당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큰굿을 하고 있다. 두 여인이 한쪽에 앉아서 각각 장구와
바라를 치고 있고, 제단에는 돼지머리와 떡 부치기 과일 따위들이 엄숙하게
차려져 있다. 박영감을 비롯한 동네 유지 영감님들은 동각의 마루바닥에 올라서서
구경들을 한다. 구경꾼중엔 만수도 있다. 무대 왼쪽의 맨 뒤에 서서 태연하게
구경한다. 옥분이와 꼬마들도 킬킬대며 구경한다. 그러나 봉녀는 보이지 않는다.
추무당 한바탕 춤을 추고 나서 상앞에 꿇어앉아 절을 하고 두손을 싹싹 빌며)
[추무당] 휘이이--- 들어오소사 어라불사 만신몸주 대신불사 천궁불사 일월불사
일월용왕 일월성신 중불사 여신불사라. 동해로는 동부칠성 남해로는 남부칠서
서해로는 서부칠성 북해로는 북부칠성 사해용궁 불사요, 삼루는 일곱칠성이라.
휘이이 들어오소사 안산은 박산에 너희 제신에 천하장군 지하장군
[페이지] 연다-012,,0D0120
명주고 복주고, 살기좋은 이 고을에 꽃같은 처녀들 떼죽음이 웬말이여, 화재가
웬말이며, 흉어가 웬말인고---
(다시 또 일어나서 덩덕궁 덩덕궁 춤을 추기 시작한다. 꼬마들은 무당의 춤이
우스운지 계속 킬킬댄다. 옥분이도 천진하게 킬킬댄다. 그러나 심각한 만수, 이때
봉녀가 만수옆으로 등장한다. 서로가 쳐다보고 흠칫한다. 만수가 뭔가 달래듯
말을 건네려고 하자, 봉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무대 뒷쪽의 구경꾼들 쪽으로
가버린다. 만수 동네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더 접근하지 못한다. 추무당 한바탕
춤을 추고나서 또 상앞에 꿇어앉아 절을 하고 손을 싹싹빈다.)
[추무당] 천하신장 지하신장 백마신장. 동방에 천괴신장 남방에 주작힌지아
서방에 백호신장 북방에 현무신장 천괴조화에 포효신장 삼태칠성에 재뢰신장
이십팔수 재후신장님들 오셨구나. 오셨어. 아이구 오시자마자 노기충천이
웬말이오. 탔구나 탔어 이 섬이 부정탔어 동방에 천괴신장 남방에 주작신장
서방에 백호신장
[페이지] 연다-013,,0D0130
북방에 현무신장. 불호령에 내노라 아이고 이일을 어찌할꼬 어찌할꼬.
(다시 또 일어나서 한바탕 춤을 추다가 손을 들어 장구와 바라를 제지한다.
다음 휘파람같은 한숨을 길게 토해내며 동각 쪽으로 간다.)
[박영감] (동각 마루 바닥에 선채) 섬이 부정을 탔다니 누가 묘를 쓴것이
틀림없소?
[추무당] 그건 신들이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노해서 물러가 버렸어요.
[송영감] 물러가다니?
[구영감] 그럼 이제까지 헛굿을 했단 말이오?
[추무당] (얼른 대답을 못한다.)
[박영감] 허, 이런 싱거운 무당봤나, 이젠 굿도 못하겠구먼.
[추무당] (당황하게) 아, 아녜요--- 누가 묘를 쓴것만은 틀림없어요.
그랬으니까, 아 처녀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불이 나고 배들이 고기를 통못잡은것
아녜요. 안그래요. 틀림없어요. 누가 또 묘를 쓴게.
[박영감] 음, 하긴 그것도 그런데---
[송영감] 그래. 그래 그건 그래.
[구영감] 추무당 말이 옳아 백번이고 천번이고 말은 옳은 말이야.
[페이지] 연다-014,,0D0140
[추무당] (기세가 나서) 참, 저번에 과부댁집 묘를 파낸 뒤로 초상이 난집이
뉘집이었죠?
[구영감] 아, 그거야 장영달영감 집밖에 더 있어? (만수를 가리키며) 저기 저
만수놈 집 말이야. (만수가 흠칫 놀라며 긴장한다.)
[송영감] 허나, 그 장영감은 초상을 치른뒤 관을 돌섬 공동묘지에다 분명히
묻었지 않았나. 그건 동네사람들이 다 봤어.
[박영감] 그럼 그 뒤로 누가 또 죽었단 말이야? 떼죽음을 한 처녀들도 돌섬
공동묘지에다 묻었고 우리 배에서 죽은 순임이 애비 시체는 아직 초상도 치르지
않고 있는데---
[추무당] 그 과부댁처럼 돌섬에서 다시 관을 파내 이 섬에다 감쪽같이 이장을
한 집구석이 있을지 누가 또 알아요?
[송영감] 그렇지.
[구영감] 그것도 그래. 그 과부댁도 그랬으니까. (만수가 슬그머니 무대
오른쪽으로 퇴장해 버린다.)
[추무당] (문득 그 만수를 발견하고는) 저 영감님들.
[박영감] 왜 그러오?
[페이지] 연다-015,,0D0150
[추무당] 혹시 저 만수 총각이 그런게 아닐까요? 아버지 묘를 다시 이섬에다
이장을 했을지도 말이예요.
[박영감] 그건 왜요? 느닷없이---
[추무당] 아, 저놈이야 뭍에서 공부깨나 하고 왔다고, 걸핏하면 우리 섬에서
미신을 추방해야 한다고 큰소리를 치던 놈 아녜요? 섬에 묘가 있어도 아무 탈이
없오. 이런 큰굿도 다 쓸데없는 미신이라고 말예요.
[송영감] 그렇지.
[구영감] 저놈이 혼자 독불장군처럼 과학이 어떻고 문명이 어떻고 하면서
외고집을 부렸지.
[박영감] 음.
[추무당] 틀림없어요. 저놈 거동이 수상해요. 지금도 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버리잖아요.
[송영감] 뭐?
[구영감] 그랬어?
(구경꾼들을 둘러본다. 구경꾼들 그대로 빙 둘러서서 수군대고 있고, 만수
보이지 않는다. 봉녀는 증오와 경멸의 눈으로 자기 어머니를 쏘아보고 잇다.
옥분이가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무대 오른쪽으로 사라져간다.)
[페이지] 연다-016,,0D0160
[박영감] 음, 그렇다면 저놈의 행동이 좀 수상쩍구나. 가만있자--- 그럼
이럴게아니라 날이 밝으면 내일이라도 온 산을 뒤집시다. 온 섬 사람들을
남녀노소 할것 없이 동원해서.
[추무당] 그래요. 그럽시다. 온 산을 이잡듯이 뒤집시다.
(기세가 나서 소매를 걷어 붙힌다. 불이 천천히 꺼지면서)
[이야기] 아뿔사, 일이 묘하게도 이렇게 돌아갔겄다. 날이 밝으면 만수아버지의
묘가 까딱하다간 발각이 나게 생겼는데--- 허나 멍청이 아닌 만수가 일이 그렇게
돌아갈 줄 왜 짐작을 못 하겠읍니까요. 만수는 벌써 일이 그렇게 돌아갈 줄 알고
이날 밤 당장 산중으로 올라가 아버지의 관을 파냈지 뭡니까요. 일단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돌 섬 공동묘지에다 감쪽같이 파묻기 위해서였어요. 그랬다가 섬이
조용해지면 다시 섬에다 옮길 생각이었어요. 그러니까 썩어빠진 미신을 섬에서
추방하여 밝은 마을로 만들기 위해 만수는 끝까지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굽히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어요. 요샛말로 말하면 훌륭한 새마을운동 같은 것이었어요.
[페이지] 연다-017,,0D0170
(불이 켜지면 같은 무대에 같은 달빛이 비치고 있다. 무대 오른쪽에서 아버지의
흙묻은 관을 지게에 짊어진 만수가 쫓기듯이 등장한다. 옥분이가 앞서 걸으며
이리저리 망을 본다. 바람소리가 음산하게 윙윙거리고, 파도소리가 제법 높다.)
[이야기] 만수는 아버지의 관을 파내서 그길로 나룻터가 있는 동각 앞으로
달렸어요. 돌섬 공동묘지를 가려면 거룻배나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시간은 새벽 4시쯤 이었어요. 산중으로 올라가서 묘를 파고 어쩌고
하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려 버렸어요. 헌데 이, 이런 기절초풍할 일이---
(옥분이와 만수 주춤주춤하며 무대 중간쯤 마악 이르는데 갑자기 무대 밖에서
돛을 내리는 도르레 소리가 들리더니)
[소리] (무대 밖에서 여자 외치는 소리) 아이구 배 들어오네. 배---
[동네사람들] 배 들어오네. 저게 누구네 배야?
[소리] (다른 여자 외치는 소리) 아이구 또 고기는 하나도 못잡았는
모양이구먼! 만선이며 꽹과리 징을 치고
[페이지] 연다-018,,0D0180
뱃사람들이 갑판에서 야단 법석일텐데!
(만수 관을 지고 어쩔줄을 모른다. 옥분이는 오빠의 다리에 찰싹 매달리며
오들오들 떤다.)
[만수] 큰일났다! 큰일났다! 동네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이집 저집에서 나오고
있다.
[옥분이] 오빠 무, 무서워--- 저기 방천길로 해서 이쪽으로 많이 몰려오고
있어!
[만수] 빨리 뒤돌아 가자! 어서! 일단 집으로 가자. (남매 다시 뒤돌아
갈팡질팡 달린다. 옥분이 달리면서 뒤돌아보다가)
[옥분이] 오빠 누가 벌써 보고 쫓아오고 있어요.
[만수] 뭐라구? (홱 돌아본다.)
[옥분이] 어머나! 오빠 봉녀 언니예요. 봉녀언니
(즉시 봉녀가 무대 왼쪽에서 뛰어오다가 만수와 옥분이를 보곤 주춤한다. 만수,
애원의 표정이고 봉녀 비웃듯이 싸늘하게 보고 있다. 옥분이는 지게 다리를 잡고
떤다.)
[만수] (급하고 당황하게) 봉녀! 모른척 해줘 제발---
[봉녀] 흥! 이제야 나한테 구원을 청하시는군요.
[페이지] 연다-019,,0D0190
[만수] ---
[봉녀] 전 처음부터 그말 한마디를 얼마나 원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만수는
저를 몰을 졸라 죽일려고만 했어요. 내 마음도 몰라주고.
[만수] (노려본다.)
[봉녀] 하지만 이젠 늦었어요. 이런 경우--- 제가 살기 위해서는 나도 동네
사람들 편을 들어야 하니까요. (다시 홱 뒤돌아 뛰어가려고 한다.)
[만수] (얼른 팔 붙잡으며) 봉녀!
[봉녀] 놓으세요! 이젠 내가 살아야겠어요. 만수도 그때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가서 동네 사람들한테 알려야겠어요.
[만수] 봉녀! 그땐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줘! 제발
[봉녀] 이젠 늦었다고 했잖아요. 놓세요. 이거 놓으란 말예요.
[만수] 봉녀! 봉녀!
[봉녀] 이거 못놓겠어요? 그럼 소리를 지르겠어요.
[옥분이] (봉녀의 다리에 매달리며) 봉녀언니! 소리 지르지 마. 소리지르면
우리 오빤 맞아죽는단 말야. 봉녀언니, 봉녀언니--- (운다.)
(이때)
[페이지] 연다-020,,0D0200
[소리] (무대밖에서 여자목소리) 아니? 저기 누구야.
[소리] (다른 여자 목소리) 누가 저기서 싸우고 있지? 아, 누가 가서 좀 말려!
(순간 만수가 봉녀를 홱 밀어버리고 무대 오른쪽으로 급히 도망을 친다.
옥분이도 뒤를 따른다. 무대 바닥에 사정없이 넘어진 봉녀, 동시에 등불을 든
동네 노인 대여섯명이 무대 왼쪽에서 뛰어나오다가 주춤한다.)
[여인2] (쓰러진 봉녀를 보고) 아니 이게 누구야? 봉녀 아냐?
[여인2] (무대 오른쪽을 바라보다가 깜짝놀라며) 아니 저, 저기 도망친건
누구지? 지게에 진건 저건 뭐야? 무슨 판자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한데---
[여인4] 어디? 어디? (등불을 높이 치켜들며 그쪽으로 걸어간다.)
[봉녀] 안돼요. 가면 안돼요. (벌떡 일어나서 여인4를 붙잡고
[페이지] 연다-021,,0D0210
늘어진다.)
[여인4] 아니? 안되다니? 뭐가 안돼. 저게 누군데 이렇게 못가게 해.
[봉녀] (갑자기 반대편으로 휙 달리며) 동네사람들 묘가 있어요. 우리섬에
송장이 땅에 파묻어져 있어요. (무대 왼쪽으로 사라져 버린다.)
[여인2] 뭐? 뭐라구?
[여인3] 우리섬에 뭐가 있다구.
[여인4] 어디야? 어디? 어느 집구석이야. 봉녀야 .
(우르르 무대 왼쪽으로 퇴장한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지면 무대는 제 4막과
같은 추무당 집이다. 막이 오르면 대문을 박차는 소리 들리며 봉녀를 선두로
동네사람들이 우르르 들이닥친다. 박영감, 송영감, 구영감, 금숙이 엄마, 여인
2.3.4 등등도 보인다. 즉시 안방문을 열고 독무당이 겉옷을 급하게 입으면서
마루로 나온다.)
[추무당] 아니? 이밤중에 누구예요. (하다가 봉녀를 보고는) 아니 보 봉녀야!
웬 사람들이야!
[페이지] 연다-022,,0D0220
[박영감] 어디야 봉녀야 송장이 어디 파묻어 있어 어서 대지 못해!
[봉녀] 여. 여기예요! 이쪽 뒷마당으로 오세요. (뒷마당쪽으로 앞장서서
달린다.)
[추무당] (새파랗게 질리며) 아니 저, 저, 저년이--- 이년아! 미쳤느냐?
(맨발로 뛰어내려 뒷마당쪽으로 달린다. 이어 봉녀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오며)
[추무당] 이년아! 이 정신빠진 년아! 네가--- 네가--- 세상에 네가--- 아, 빨리
방으로 와! 동네 사람들한테 맞아죽기 전에
(안방으로 끌고 들어간다. 뒷마당쪽에서 박영감의 호령소리가 터진다.)
[박영감] 빨리 괭이를 찾아다가 여길 파봐라 어서! 어서! 괭이 저쪽에 있다.
(잠시후에 땅을 파는 소리 무대를 음산하게 울린다. 그 틈을 이용하여 추무당이
봉녀를 끌고 안방에서 뛰어나온다. 돈과 값나가는 패물을 한손에 들었다.)
[페이지] 연다-023,,0D0230
[봉녀] (뜨락에서 버틴다.) 난 안가요! 이 섬에서 살겠어요! 엄마대신 내가
벌을 받고 이 섬에서 살겠단 말예요.
[추무당] 시간없어 이년아! 맞아죽어!
[봉녀] 맞아 죽어도 좋아요. 안가요. 도망치려면 엄마 혼자 도망쳐요.
(마루를 잡고 버틴다. 옥신각신 하다가 손에 든 함이 하나 떨어진다. 확 쏟아져
나오는 귀금속 패물들---)
[추무당] 아이구 내 패물--- (허겁지겁 패물들을 줏는데 봉녀가 도망을 친다.
그러나 다시 붙잡혀 버린다.)
[봉녀] 놔요! 놔! 죄를 졌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지. 왜 도망을 치려고 해요?
[추무당] 잔소리 말고 이년아, 같이 가 돈도 있으니 이젠 뭍으로 가서 살잔
말이야.
(붙잡고 놔두지 않는다. 이때 뒷마당 쪽에서 놀라 자빠지는 소리들
[여인2] 아이구! 정말이네 정말
[여인3] 정말 송장이 파묻어져 있네!
[박영감] 아니? 이 이사람은 바로 이집 머슴 아니야?
[송영감] 맞구먼!
[페이지] 연다-024,,0D0240
[여인] 아이구 이 총각은 내가 이집에다 소개를 해줬는데--- 이 총각이 왜
죽었지? 왜 죽어? 누가 죽인거야?
(추무당이 다급하게 봉녀를 끌고 무대 왼쪽으로 도망을 친다.)
[봉녀] (버틴다.) 싫어요. 안가요. 난 이 섬에서 살겠단 말예요.
[추무당] 잔소리 말고 따라와 어서 이년아!
(봉녀를 억세게 끌고 퇴장한다. 잠시후에 뒷마당쪽에서 사람들 우르르
등장하며)
[여인] 아이구 분해라! 이제까지 자기집 뒷마당에다 송장을 파묻어 놓고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으니---
[여인2] 그러게 말이야 그래놓곤 뭐 섬에 묘가 있어서 재앙이 생긴다구?
[여인3] 엊저녁에 동각 마당에서 뻔뻔스럽게 그 큰 굿 좀 봐! 아이구 분해라.
이제까지 우리들이 속아왔네. 속아왔어!
[여인4] 그랬어. 그러고보면 만수총각 말이 맞아! 큰굿이고 뭐고 그런게 다
쓸데없는 미신이라고 했다면서?
[페이지] 연다-025,,0D0250
[여인] 그래 그 총각 말이 맞았어! 섬에 묘가 있다고 배들이 고기를 못잡는
버이 어딨어? 그건 그렇고 이 무당년 어디갔지? 그년을 빨리 끌어냅시다.
[여인2] 그럽시다!
[여인3] 이 무당년아 나와!
(우르르 마루로 뛰어오르면서 이방 저방 문을 연다. 다른 사람들은 집
여기저기를 뒤진다.)
[여인] 아니? 벌써 내빼버리고 없네. 없어!
[여인2] 정말 딸년도 안보여!
[박영감] 뭐라구? (동네 사람들을 둘러보며) 아 뭣들 해! 빨리 뒤쫓아가 잡아!
필시 머슴놈을 죽여서 파묻은 것이 분명하니 빨리 가서 잡아!
[청년1] 잡아라.
[청년2] 잡아!
(와아--- 노도같은 함성을 지르며 동네 사람들 모두 무대 왼쪽으로 퇴장한다.
막이 내린다.)
(프롤로그)
(막 앞을 만수가 박영감, 송영감, 구영감을 모시고 무대 왼쪽에서 등장한다.
[페이지] 연다-026,,0D0260
영감들이 만수 뒤를 따른다.)
[박영감] 이사람아! 우릴 지금 어디로 데려가나?
[송영감] 갑자기 어딜 데려가?
[만수] 꼭 보여드릴게 있어서 모시고 가는 길입니다.
[구영감] 글쎄 꼭 보여줄게 뭐구 어디고 데리고 가는게야?
[만수] 죄송하지만 잠시만 따라와 주십시오. 직접 보여드리고 용서를 빌 일이
있읍니다.
[송영감] 아니 이놈이---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박영감] 아뭏든 한번 따라가 보세! 대체 어디서 뭘 보여주려는지---
(만수에게) 자 어서 또 가자.
[만수] 예---
(다시 걷기 시작한다.)
[이야기] 추무당과 봉녀는 그날 새벽에 나룻터까지 무사히 도망을 쳤어요.
그리고 나룻배를 아무거나 하나 집어 타고는 추무당이 노를 젓고 이섬을 얼마쯤
떠날수가 있었읍니다요. 헌데 봉녀가 만수를 못잊어 배에서 바닷물로 뛰어내리자
그 딸을 추무당이 붙잡으려다 아뿔사! 그만 거룻배가 뒤집혀버리고 말았읍니다
그려 때마침 폭풍이 일어서 시체도 못찾고 말았어요. 애석하고 안타깝게도 봉녀의
시체도 말입니다요.
[페이지] 연다-027,,0D0270
그로부터 두어달이 지난 어느날 이었읍니다요. (만수와 유지 영감님들 무대
오른쪽으로 퇴장한다.)
[막] 제 4 막
(무대는 제 2막과 같은 산속이다. 다만 만수 아버지의 묘가 없어진 것 뿐이다.
대신 무대 왼쪽 잔디밭에 꽃으로 뒤덮혀진 새로운 무덤이 하나 있을 뿐이다.
비석도 세워져 있다.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평화롭다. 막이 오르면
무대 오른쪽에서 만수가 세 영감님들을 모시고 등장한다.)
[만수] (무대 중간쯤에서 멈춰서며) 다 왔읍니다. 그리고 보여드릴건 바로 저
무덤입니다.
(무덤을 보고 나자빠지듯 놀라는 세 영감님들)
[박영감] 아니 저 저건---
[구영감] 무 무 무덤 아니야?
[송영감] 누구 무덤이야. 이놈? 어느 집구석 무덤이야 빨리 대답하지 못할까
[페이지] 연다-028,,0D0280
[만수] 예 실은--- 추무당의 딸 봉녀의 무덤입니다.
[박영감] 뭐, 뭐라구 이놈? 누구 무덤?
[만수] 봉녀의 무덤입니다. 한 달포전에 우연히 뒷 벼랑 바닷가에서 봉녀의
시신이 떠밀려 와 있어서---
[박영감] 그래서 네가 묻어주었단 말이냐 하필이면 이 섬에다 빨리 대답하지
못해 이놈!
[만수] 예 그렇습니다. 정직하고 순결한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제가
건져다가 묻어주었읍니다. 봉녀가 태어나고 자란 자신의 고향땅에다가요.
[구영감] 뭐가 어째 이놈?
[만수] 그리고 이섬에다 묻어준 또하나의 이유는 우리섬에 묘가 있어도 아무런
재앙도 안일어난다는 저의 확신때문이었읍니다.
[송영감] 뭐라구 이놈 닥치지 못할까
[만수] 죄송하지만 한말씀만 더 드리겠읍니다. 이제 두고 보십시오. 이렇게
섬에 봉녀의 무덤이 있어도 배들이 고기만 잘 잡아오는것 입니다. 바다에 폭풍이
일어나는 것은 과학적으로 기상 변화 때문이며 고기가 잘 안잡히는것은---
[박영감] 썩 닥쳐라 이놈! 동네 몰매를 가해서 너의 집 식구들을 쫓아내기 전에
어서 당장 묘를 파내지 못할까! 어서 이놈!
[페이지] 연다-029,,0D0290
[만수] 실은 얼마전에 저의 아버지 묘도 이곳에다 썼었읍니다만 저의 늙으신
어머니가 하도 걱정을 하셔서 돌섬 공동묘지에다 이장을 했었읍니다. 그러나 이제
곧 다시 이 섬으로 묘를 옮길 생각입니다. 유골이나마 고향땅에 묻히시도록
말입니다.
[송영감] 아니 이 죽일놈이 갈수록---
[박영감] 이놈! (와락 멱살을 잡으며 구영감에게) 구영감! 빨리 내려가서 동네
청년들을 불러오게! 내 이놈을 꽉 붙잡고 있을테니! 어서 동네에 또 무슨 재앙이
내렸을지도 모르니까
(이때 멀리서 꽹과리 징소리가 흥겨웁게 들려온다. 일동 모두 무대 오른쪽을
멀리 바라보다가 깜짝놀란다.)
[박영감] 아니 저건 무슨 농악소리야?
[구영감] 아니? 만선배가 들어오구먼! 만선배가
[송영감] 뭐라구? 어디--- 아이구 저 저런 만선배야 만선배! 아니 저 저 얼마나
많이 잡았으면 기를 꽂고 춤을 추고 저 난리야. 저 저기 누구네 배야?
[박영감] 아니 저 저건 바로 우리 배 아니야 엉? 아이구
[페이지] 연다-030,,0D0300
우이배야 우리 배 허허허--- 허허허--- 만선이네 만선! 우리배가 만선을 했어.
할멈! 할멈 어디 갔어?
(만수의 멱살을 잡고 있다가 춤을 덩실 덩실 추며 무대 오른쪽으로 뛰어간다.
그 뒤를 송영감 박영감도 따르며)
[송영감] 만선이네! 만선! 오랫만에 만선이네 얼씨구
[구영감] 절씨구 섬에 묘가 있어도 만선이여! 만선!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조오타.
(덩달아 춤을 추며 퇴장한다. 잠시 그대로 선채 눈물이 글썽하는 만수 이윽고
무덤쪽으로 가 무덤을 뒤덮고 있는 꽃들을 흐뭇하게 손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일어서서 만선배가 들어오는 쪽을 향해)
[만수] 봉녀어---
(찡하게 메아리치는 에코와 함께 봉녀의 웃는 얼굴이 슬라이드로 화면에
클로즈업 된다. 고조되는 만선배의 꽹과리, 징소리)
[이야기] 이리하여 이 섬은 그때부터 미신을 추방하게
[페이지] 연다-031,,0D0310
되었으면 발고 건전하게 날로 발전하여 지금은 지금은 도시 못지 않게 아주 잘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읍니다요. 헌데 그때 그 만수가 바로 이 할애비
입니다요. 허허허---
(천천히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