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례길 4.
지금은 공사중이라 휘장을 덮어 형체를 볼 순 없었으나,
나바위 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조선교구 3대 교구장이신 고 페레올주교님과 다블뤼 안 신부님
그리고 11명의 조선 교우들과 첫발을 내디디신 곳이다.
사제서품 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을 태운 배가 풍랑을 맞아
예정지인 한양이 아닌 이곳 금강줄기의 강경 나바위 인근에 상륙했던 것이다.
한국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나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한국적인 미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첫발을 디디신 하느님 은총의 섭리가 배치된 거룩한 터임에
다시 한번 신앙의 의미와 순교의 역사성을 되짚어보며, 묵상한다.
나바위성당 내부의 제대와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는
100년이 넘게 신앙선조들의 기도의 숨결을 담고 있다.
성지나오자 마자 길게 뻗은 수로와 평행선을 달리는 호남선 철길을 따라 걷는
3km 정도의 나란한 안개숲길이 더없이 한적하니 아름답다.
밤새 서리가 어찌나 무성히 내렸던지 우리가 내딪는 발길마다
들풀위에 하얀 설탕가루를 뿌린듯한 서리꽃이 한창이다.
아침을 밝히는 햇무리에 밤새 내린 잔서리와 안개가 걷히더니
가지마다 영롱한 물방울꽃들이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난다.
둑길마다 신천지를 걷는 듯 아름답지만
무성한 억새와 잡초들의 이슬로 우리의 등산화가 젖어 발걸음은 무거워 진다.
우리들이 풀숲을 스치고 지나는 발자욱 소리에
수풀속에서 놀던 꿩들이 놀라, 푸드득 날아가는 소리에 우리들은 또 놀란다....
나바위 출발하여 두어 시간지나, 유유히 흐르는 금강지류를 지난 이후에도
끝없이 펼쳐진 뚝길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의 연속이다.
외가리떼가 흰 날개를 우아하게, 자유롭게 솟아오르 내리며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이 아름다워, 걷는 우리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오늘의 길은 수로따라 금강합류점을 지난 이후에도 여러 다리들을 지나도록 되어있다.
다리들은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며
만남을 주선하는 장소가 되었고,
사람들은 다리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생각과 물품을 주고 받았다.
그곳에는 고단한 삶을 묵묵히 건너간 옛사람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베어있다.
우리가 나바위 성지를 묵은 월요일은 휴일이므로
맡겨놓은 피정의 집 열쇠를 찾아, 우리가 들어가서 사용하고
아침식사도 라면을 끓여먹고 출발했다.
11시경 용기교를 지날 때 마을로 내려가 고창마을에서 점심을 해결하려 했는데
천변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올 일이 아득해 우선 더 가보기로 한다.
구평교 중리교 지나는 12시쯤
이진식 강동암 선생님께서 점심 어쨌느냐고 전화하시더니,
아주 멀지않은 곳이라며 30분후 성남1교로 김밥을 배달해 주신다.
10월 30일에 전북도와 4개 종단이 합심하여 아름다운 순례길을 선포한 이후,
배낭메고 이 길을 온전히 걸어보겠다고 나선 이들이 거의 없다지만
우리들이 무엇이라고 이렇게까지 보살펴 주시는지
시시각각 주시는 배려와 따뜻함에 감동해 할 말을 잊는다.
뚝길따라 이어지던 하천이 끝나고 연동리마을로 들어서니 “미륵산 자연학교”가 있다.
주인없는 마당에서 휴식을 취하고 개울따라 대원정사 지나 산길을 들어선다.
어깨에 무게감이 눌려온다.
배낭을 내려놓고 벌렁 누워 하늘을 쳐다보니
고요하고 밝은 늦가을 햇살 가득한
소나무숲에 누워보는 하늘의 나무들이 시원하다.
여기저기서 새소리 들리는 미륵사 가는 조봇한 산길은 조용하다.
한 모롱이를 돌자 갑자기 산불 예방 계몽나온 말탄 산림청 직원을 만나 증거샷 한컷~~^^
미륵사지 가까이 가도록 산길은 고즈넉하여 걷고 싶은 길의 연속이다.
이렇게 가다 돌아보며 찍은 아네스님 카메라에 내 모습이 꽤 있을텐데 다 날아가 버렸다니 아쉽다.
숲길에서 나오자마자 미륵사지터가 나오며, 동탑이 보인다.
미륵사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고자 지은 호국사찰로서
백제가 망할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백제 30대 왕인 무왕인 서동이 부인인 선화공주와 함께 행차하다
현재 미륵사지터인 용화산 아래 연못에 이르렀을 때 미륵 삼존이 나타나자
이를 본 왕비(선화공주)의 부탁으로
이곳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웠는데 이 절이 미륵사지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탑으로
부처님을 받들고, 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설립했다.
정교한 백제의 목조탑을 나무가 아닌 돌로
목조 건축물의 특징 하나 하나를 정교하게 깍아 만들어 놓은 석탑이다.
백제 최대의 절이었던, 국보 11호 미륵사지 석탑이 모두 해체되고 1층만 남았다.
일제가 무너진 서쪽 부분을 시멘트로 보수하기 전
이미 우리 선조들이 300년 전에 보수한 흔적이 발견되어 흥미를 더 해 주고 있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미륵사 사리장엄구 발견을 통해
1400년간의 침묵을 깨고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사택왕후.
그녀는 선화공주의 사랑을 허구로 만든 논란의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1400년 전 백제인들의 삶과 사랑 격동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려주는 소중한 인물이라고 해석해 본다.
격동의 역사속에서 선화공주와 서동, 적대국의 왕과 공주의 결혼~~!!!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아름다운 사랑의 대서사시로 꽃피운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이야기 서동요.
서동과 선화에 대한 사랑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의 숙소는 미륵사지 뒤편의 전북과학고 옆에있는 온천 한증막이다.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예약해주는 숙소들은....
송광사가 개인적으로 탬플스테이를 요청하면 30,000원이고,
천호성지 토마스쉼터가 피정시 숙박만 25,000원이다.
그런데 순례문화연구원을 통해 예약하고 걸어오는 순례자들은
저녁과 아침 2식을 합해 15,000원을 받는다.
찜질방도 담요와 2식에 15,000원이다.
찜질방 입구의 우렁쌈밥을 먹고프다 했더니 쿠폰을 주어 저녁과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찜질방 안에서의 하룻밤이 마치 우리 네 인생살이의 축소판과도 같았다.
우렁쌈밥을 맛있게 먹고 들어와 여성수면실에서 일찍 누워 쉬어보려는데
60대 아주머니 한분이 옹알이를 하는데 한시도 쉬지않고 뭐라뭐라 얘길한다.
뉘한테 한이 많이 맺혔는지 화까지도 많이 내면서~~
잠을 청할 수 없겠다 싶어 바깥거실 TV앞으로 깔개를 갖고 나왔다.
그랬더니 동네 아주머니 몇 명이 수다를 떠는데 도저히 TV볼륨과 맞물려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수면실 옆 복도 구석으로 가서 누웠더니
그 옆의 비상문으로 들락거리며 피우는
담배연기에, 차가운 바람에 산만하기까지 해 있을 수가 없다.
그래, 또다시 수면실로 들어갔더니
그 아주머닌 여전히 중얼거리다 깊은 잠이 들면 코까지 심히 곤다.
게다가 옆방에선 손발을 동동거리며 웃는 소리에 저녁내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그래도 돌아다녀 본 다른 곳보다는 더 나았다.
나중에 들으니 그날까지 개업기념으로 파격할인을 해,
그야말로 동네 인근사람들은 다 찜질방에 와서 잤다는 것이다.
구상 선생님의 꽃자리가 생각난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자비하신 주님......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 28, 15)
하고 주님께서 저희에게 약속하셨으니
‘제가 하고 있는 여행의 목적(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을 제발 이루어주십시오’ (창세 24, 42)
모든 피조물이 당신께서 놓아두신 바로 그 자리에 엎드려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누군가를 위해 쉼의 자리가 될 때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 31)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 삶을 마치는 그 날까지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나, 맞이하는 현실을 바로 품어안고
그 자리에서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보는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임을 반갑고, 고맙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제게 이르신 대로 하였습니다. (창세 27, 19) 라는
아름다운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제 삶에 은총을 내려주십시오~!!!
첫댓글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만난 작은 소음과 불편을 하필이면 편히 쉬어야 할 찜질방에서 만나게 되다니... 그건 그렇고 찜질방 앞 우렁 쌈밥 주인여자는 전 국가대표 정구선수 출신이라는 것릏 알고 계십니까? ㅎㅎㅎ
나팔씨에게 직접 들은 순례 이야기보다도 더 실감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