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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동 156번지 일대는 서울시의 도시환경정비사업에 의해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오랜 사연을 안고 있던 음식점들이 몰려 있던 이곳에는 지상 23층, 지하 6층 규모의 업무용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50년 이상 이곳에서 장사를 해온 집들은 모두 근처로 자리를 옮기거나 문을 닫았다. 다동뿐이 아니다. 서울의 4대문 안이 요즘 포클레인으로 날마다 부서지고 있다. 나지막한 건물, 한옥풍의 단층집 음식점이 몰려있던 도심의 오래된 골목이 재개발 바람에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현재 세종로사거리 주변에서 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은 다동과 무교동, 종로구 청진동, 동화면세점 뒤편 신문동, 현대해상화재 뒤편 당주동 등지다.
15일 오전 11시45분쯤 유모(36·자영업)씨는 종로구청 맞은편의 한 한옥대문 앞에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곳은 유명한 복집이었는데 대문에는 '재개발로 인해 ○○○으로 이전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거래처 손님과 같이 왔던 유씨는 "조용한 골목에 있는 한옥식 가게라서 자주 왔는데 고층건물로 옮겨갔으니 무슨 분위기가 있겠냐"고 말했다.
종로구청 맞은편에는 아직도 2~6층 높이의 건물들이 10여 개쯤 남아 있고 영업 중인 가게도 있었다. 하지만 절반쯤은
'30년 전통의 ○○가 이전합니다'라는 식의 안내 간판만 남기고 떠났다.
이날 오후 청진동을 찾은 일본인 마키 다카오카(여·30)씨도 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옥'을 찾았다가 헛걸음을 했다. 다카오카씨는 "2년 전 왔던 청진옥은 천장이 낮은 식당 안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해장국을 먹는 한국적인 분위기가 좋았다"며 "출장을 온 김에 일부러 짬을 냈는데 현대식 건물로 이전했다고 하니 실망했다"고 말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도심 재개발에 대해 서울시는 "너무 노후화 된 지역이라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의 도심재개발팀 최종인 팀장은 "도심부의 안전·위생·미관 등을 고려해서 재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의 한 관계자는 "폭이 좁은 골목에 식당들이 있으니까 실외기와 전기배선 따위가 엉켜있는 게 위험하기도 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거리로 고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맛골'처럼 600년 이상 역사를 간직한 도심 골목을 헐어버리는 것만이 대안이냐는 지적도 있다. 오래된 골목에는 세월을 따라 서울 시민들이 쌓아온 삶과 추억, 애환들이 묻어있고, 그 자체만으로 문화와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골목들은 한번 결정으로 허물게 되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점에서 절박한 안타까움이 있다.
시민단체 '문화우리'의 이준재 사무국장은 "오래된 골목들을 '경제적 효율성이 낮은 곳'으로만 보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발상"이라며 "유럽에서처럼 옛 정취 자체를 문화적인 가치로 보전하려는 노력이 아쉽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오래된 건물뿐 아니라 구시가지 자체를 원형대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본은 1975년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해 건축물뿐만 아니라 그 주변 환경까지 '보존지구'로 삼아 관리하고 있다. 건물을 신축해도 원래 있던 건물의 외벽이나 이미지를 남기는 식으로 설계를 한다. 이런 '보존지구' 제도는 영국과 프랑스도 시행하고 있다.
독일의 뤼벡시에서는 중세부터 내려온 거리의 모습을 지켜가기 위해서 구(舊) 시가지의 건물을 고치거나 새로 지을 때는 전통적 외형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외벽의 가로·세로 비율이나 창문의 위치, 벽의 재질과 색 등을 세심하게 규제해서 다양한 건물들이 일종의 통일성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서울포럼 대표인 건축가 김진애(여·55)씨는
"새로 건물을 짓더라도 원래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 영업하던 가게들이 가진 '얘깃거리'는 지켜가야 하는데 우리는 큰 건물을 올리는 데만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명소(名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얘깃거리(Story Line)가 필요한데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역사적 기억은 가장 좋은 소재라는 것이다.
김씨는 "기존 주민과 상인들이 영위해온 삶을 지키는 방식으로 '재개발'이 아닌 '도심재생'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첫댓글 역사, 자연사 박물관 또는 지역에 특산인 농업, 인삼,도자기 등 전시관을 짓고 그것을 자랑 홍보하기 위한 방송이나,잡지 기사들을 종종 보게 되지만, 그 건축물 안에 담고 있는 실체가 생명력이 없는 한계로 보통 관람객들이 한번 방문하는 일회용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 하지요 . 그러나 골목길은 "인간의 향기"가 있고 그 때 그때 존재하는 인간이나 대상이 변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유산입니다. 강화도를 "뚜껑(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평가 받고 있기에 앞으로 이런 방향에 재창조의 목표가 실현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