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댕겨온 칠순 잔치 글
祝! 화환 대신합니다>
-지루한 농부의 일상에서-
한 농부가 해 저문 도랑에 삽을 씻고 주막에 들러, 미주구리 몇 점에 탁배기 한 사발로 목 축이고서,
끄~윽 끅! 딸꾹질 장단 삼아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흥얼대며 어둑어둑 사립문 안쪽 사랑채 문지방 넘어서면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정갈케 차려진 그 나물에 그 밥, 주구장창 소박한 곤피 시래기에 풀떼죽만으로도 오감타 하다가 오늘은 힐끗,짜증스레 할멈에게 툭 던진 한마디
"그 눔에 칠순잔치는 아직 멀었나 갱태(최경태)는 뭐라 카드노?"
넘 얘기인 양 퉁명스레 내뱉었지만
속으로는 짐짓 날짜 재는 눈치다
-살다 살다 이런 날도 있어-
5/19 근사할 거라 소문난 잔칫상, 3시반까지 나오라카니 와인에 갈비 몇 짝도 준비 시킬라카나
再行 가는 신랑처럼 생애 가장 멋진 모습으로, 틀니도 단디 챙겨 폼 나게 갈비 뜯고 늘그막에 동갑끼리 이름표 달고 가~압신 마셔도 될랑강
벌건 얼굴은 술 때문 아니라고 한사코 우기시니,
칠순까지도 꽃이 못된,인고의 세월에 물든 홍단풍이라 그렇단 말인가
그래도 지금이 내 생애 화양연화의 끝물이라
맨날천날이 오늘만 같아라
- 잔치 끝나 70고개 넘으면-
초저녁에 밝은 별도 새벽이면
스러지고
세월이 바람처럼 떠난 날, 사랑도 젊음도 풀잎처럼 스러지나니
우리는 더 이상 밀림의 왕도 아닌
한시절 무림의 고수였을 뿐이야
꽃은 지고 바람을 탓하지만
우리 같은 단풍이 진다고 누구 원망하겠노
오늘 칠순 헌주(獻酒)잔 겸허히 받잡고 이제는 섭리에 순응해야 할 從心의 나이인 듯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심 그리고 '67년 그 아스라한 그리움에 불씨를 댕겨준 잔치에 감사드립니다
언제가 될지 또 염치없이 팔순을 손꼽으며
어제 떠나온 수수밭으로 나 돌아가리니
한 잔의 약주로 목 축인 千개의 바람들이여!
부디 남은 생애 만사형통하옵소서
(p.s 2023.5월8일
밭둑에 퍼질고 앉아 그날을 상상하며 갈긴 낙서,
혹 눈살 찌푸리게 하지는 않았는지요?)
일중19회 이채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