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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강좌 75-(5)문수사리문질품14
求一切智하되 無非時求가 是菩薩行이며
雖觀諸法不生이나 而不入正位가 是菩薩行이며
雖觀十二緣起나 而入諸邪見이 是菩薩行이며
雖攝一切衆生이나 而不愛着이 是菩薩行이며
雖樂遠離나 而不依身心盡이 是菩薩行이며
雖行三界나 而不壞法性이 是菩薩行이며
雖行於空이나 而植衆德本이 是菩薩行이며
求一切智하되 無非時求가 是菩薩行이며
(구일체지하되 무비시구가 시보살행이며)
일체지혜를 구하는데 때마다 구하지 아니하는 게 없어
그러니까 언제든지 구한다. 이 말이야
일체지혜를 구하는데 때마다 무슨 문수원에 가서 예를 들어서 경공부 할 때만 구하고 신 벗고 밖에 나가면 나는 몰라라 지혜 하고는 관계가 없다 불교하고는 관계없다 부처님 말씀하고 관계없다 이래버리면 보살행이 아니다 이거야 無非時求 어느 때든지 구하지 아니한 때가 없다 이 말입니다 無非時求란 말이 구하지 아니한 때가 없는 것 항상 구하는 것 항상 어떤 지혜의 관념 속에서 언제나 현명한 어떤 삶 불교적인 그런 삶 이것이 보살행이다 일체의 지를 구하되 법당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법당 밖에서도 구한다.
좋은날만 초파일날만 관심 있는 것이 아니고 초파일 전날도 관심 있다 초파일 지난날도 관심 있다. 항상 그렇게 필요치 안는 것은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과연 불교의 지혜가 필요하면 항상 우리가 갈고 닦아야 되는 것이고 항상 갈고 닦을 필요가 없는 것 같으면 안 해도 돼
우리가 제대로 마음을 가라앉혀서 생각해보면 그리고 불교를 제대로 이해해보면 이것은 어느 순간,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든지 필요치 안이한 때가 없거든요 그래서 求一切智하되 無非時求라 때마다 구하지 않을 때가 없다 항상 이것은 부처님의 지혜는 우리의 삶 전반에서 적용되어져야 한다. 이런 의미겠죠.
雖觀諸法不生이나 而不入正位가 是菩薩行이며
(수관제법불생이나 이불입정위가 시보살행이며)
비록 모든 법이 생하지 아니함을 관하나
그러니까 일체법이 불생불멸이다 이거여
그것은 근본적으로 현상은 생멸하지만은 본질에 있어서는 불생불멸이거든요
질량불변의 원칙이라든지 또 우리 마음에 그 본바탕의 입장이라든지 어디로 보나 마음이든 무슨 바깥현상이 간에 본질은 불생불멸이다 그것을 관찰을 해요 알아 그렇지만은 정위에 들어가 있지 않아 정위는 불생불멸이라 불생불멸하는 불생자리거든요 열반을 정위라고 그러는데 열반은 불생불멸이거든요 그 자리에 들어가 있지 않아 불생불멸을 알지만은 불생불멸은 늘 관찰 하지만은 그렇다고 불생불멸에 속에 빠져 있지 않다 이 말입니다. 생멸한다. 생멸도 이해한다 이거여 본질은 불생불멸해 영원해 그렇지만 밖으로는 생멸하는 것을 어떻게 해 한순간한순간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면 생멸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다변하고 무엇이든지 다 생멸하고 한다. 이 양변을 양쪽입장을 다 우리는 깊이 이해하고 다 인정해주고 다 수긍해주고 다 받아들이고 그래야 되는 거죠 우리가 또 생멸하니까 모든 것이 생멸한다. 이렇게만 이해하고 있으면 그것도 안돼 불생불멸 하는 것도 이해해야 돼 생멸 하는 것도 이해해야 되고 다 용납이 되어야 그게 바람직한 정신 상태고 그게 보살행이다 하는 것입니다
雖觀十二緣起나 而入諸邪見이 是菩薩行이며
(수관십이연기나 이입제사견이 시보살행이며)
참 이게 아주 더 아주 유마거사 다운 과감하고 용기 있는 그런 말씀이에요
12연기 이것이 이제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12가지 인연 12가지 조건 아니겠습니까? 12가지 조건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여러 가지 그런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불교가 어떤 종교보다도 우리 인간의 태어나서부터 전 과정을 또 심리적 문제까지 육신의 문제까지 이런 12가지 그 과정과 조건에 의해서 생성 변멸한다 하는 것을 관찰한 것이고 부처님 깨달은 것이고 그러거든요 부처님 12연기를 관해서 깨달았다 이런 말이 있어요 이것은 불교에서 아주 자랑하는 그런 소견이라고요 인간에 대한 12연기에 어떤 안목은 그러면서 이런 바른 안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뭐라고 삿된 견해 여러 가지 삿된 견해에도 들어갈 줄 아는 것이 이게 보살행이다 전혀 얼토당토 안은 소리하는 것도 이해해줘 이해해주라이거여 무슨 뭐 땅이 있어라 하니 있었다. 그 소리도 어~ 그래 옛날에는 그것다 포함했어. 이해해주라 이거여 해가 있어라 하면 해가 있었다. 그것도 이해줘 이해해준들 뭐 잘못될 것 있어요. 그게 보살행이다 여러 가지 삿된 견해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불교는 이런 아주 올바른 관점에서 정말 철두철미하게 깨달은 그런 올바른 관점에서 모든 존재를 풀이하고 또 이해하고 설명하고 거기에 맞게 생활하는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은 또 다른 그와 정반대되는 그런 잘못된 견해 이런 것들도 이해해주고 그것을 바로 잡아도 줄줄 알고 들어가야 뭐 바로 잡던지 하지 사견 속에 들어가야 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고 바로잡지 나 몰라라 아이고 저건 불교하고 아니야 하고 등져버리면 그건 보살행이 아니야 등지면 안 된다고요. 아무리 하찮은 소견이라고 하더라도 등지지 말고 거기에 들어가서 더불어 같이 생활하고 같이 알고 그래서 그 사람들을 제도하고 바로 가르칠 줄 아는 것 그 속에 푹 빠져들어 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入諸邪見이라 여러 가지 삿된 견해에 들어가는 것 이게 보살행이다
雖攝一切衆生이나 而不愛着이 是菩薩行이며
(수섭일체중생이나 이불애착이 시보살행이며)
일체 중생들을 섭원 섭수한다. 포섭한다. 제도한다. 이말 이죠.
불교에서 특히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보살사상 부처님의 마음은 무엇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중생제도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우리가 사실은 당장에 부처님의 경전에 말씀이 부처님 지혜의 말씀이 아주 재미있고 또 굉장히 유익하고 내 삶에 또는 내 어떤 영혼에 그야말로 살을 찌우는 그런 아주 교양으로도 또는 어떤 우리 정신순화에도 여러 면으로 훌륭하고 참 좋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설사 공부한다손 치더라도 그래도 불교의 궁극적으로는 남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참선도 중생제도를 위해서 하는 거여 교리공부도 중생제도를 위해서 하는 것 불교적인 모든 행위는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게 이제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마음이거든요 이게 불교의 마음이고요
그리고 바람직한 불교의 마음이라 소승불교는 또 그렇지가 못한 경우가 있어요. 자기 안녕만을 도모하는 그런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은 불교에서도 외도라고 그러죠 그게 攝一切衆生 일체중생을 포섭하고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 그런다고 해서 그게 불교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목적이라고 하지만은 중생들에 대해서 너무 애착하고 있으면 그것도 병이다 이거야 애착하지 않는 것 이게 보살의 행이다 애착하지 아니하면서 힘 있는데 까지 도와주고
건져주고 포섭해주고 거두어주는 것 이것이 보살행이다.
우리는 거두어 주지도 못하면서 애착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대로 예를 들어서 내 자녀를 거두어주어야 되고 바로 살게 해되고 하는 그런 생각이야 있지만은 막연하게 애착만 하면서 오히려 교육을 잘못 시킨다든지 오히려 자녀들의 어떤 앞길을 망쳐놓게 한다던지 하는 그런 경우가 많거든요 애착만 하고 포섭은 못해 그런데 보살은 아니야 포섭은 해 제도도 하고 거두어주고 잘 보살피기는 하지만 애착은 안한다. 참 멎진 말이야 이쯤 되면 그래도 세상 홀가분하게 살수 있는데 그렇다고 두 손 묶고 살어라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중생제도하고 남을 위해서 노력하되 그렇다고 애착을 하지 않는다. 중생은 애착만 하고 제대로 포섭을 못하니 그게 병이죠. 또 그런 관계들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대한 어떤 불교적인 이해 그것은 다른 말로하면 중도적인 행위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雖樂遠離나 而不依身心盡이 是菩薩行이며
(수락원이나 이불의신심진이 시보살행이며)
비록 멀리 떠난다. 이 몸과 마음은 이 몸뚱이 이것 그리고 우리의 망상 번뇌 여기서 떠나야 하는 것은 몸뚱이나 망상 번뇌 이런 것을 떠나는 것을 즐긴다 이거야 이것은 특히 근본불교에서 또는 원시불교에서 흔히 권장하는 수행방법이죠 그것을 즐기지는 하지만은 몸과 마음이 다하는 것을 의지 하지 안이해
다시 말해서 이 몸과 온갖 마음에 따린 생각들이에요 이것은 근본 본래신이 아니고 그런 생각들이 떠나기를 좋아하지만 또 이것 몸과 마음이 다하는 것 다 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은 그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이거야 몸과 마음이 다 하는 것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을 가지고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간다 이 말입니다 떠나기를 좋아하면서도 또 이 몸을 잘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간다. 이 몸과 마음을 다해서 살아간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것이 보살행이다
雖行三界나 而不壞法性이 是菩薩行이며
(수행삼계나 이불괴법성이 시보살행이며)
비록 삼계를 행하나 欲界, 色界, 無色界 또 온갖 계층의 어떤 삶이라고 할까 여러 가지 경우의 그런 삶들을 우리가 겪게 되지만은 법성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이것이 보살행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욕심을 부린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는 등지냐 하면 그게 아니야 욕심 부릴 땐 부리더라도 진리는 또 진리대로 우리가 이해하고 진리 속에서 진리를 부정하지 않고 산다. 법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랬어요. 진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법의 성품을 법의 성품은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가 없거든요 또 각계각층 또 다종다양한 삶의 그런 양상이 없습니다. 법성은 평등해요 부처의 삶이나 중생의 삶이나, 축생의 삶이나, 지옥의 삶이나, 천상의 삶이나 이 법성 자리에는 평등하거든요. 그래서 삼계라고 하는 것이 없어요. 법성자리에는 그러니까 여기는 삼계를 우리 인연 따라서 삼계로 흘러 다니면서 살지만은 그렇다고 평등한 진리자리 법성자리 그 자리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부정하지 않는다 이거여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거예요 그것도 보통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안목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되어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여기 와서 신선한 부처님의 공부를 하고 있죠. 또 우리 어떤 상황에 돌아가면 어떤 축생만도 못한 그런 삶을 살수도 있고요 남하고 싸우기도 하고 화도내고 속이기도 하고 남을 헤 꼬지도 하고 그럴 수가 얼마든지 있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나가서 온갖 차별된 중생의 삶을 산다. 그것은 몹쓸 것이다 그렇게 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삶이 부정당하지 전체가 부정당하지 않습니까. 부정당해서는 안 되거든요
불교는 어떤 인간의 말하자면 안 좋은 삶도 부정하지를 않습니다.
지옥의 삶도 부정하지 않고, 축생의 삶도 부정하지를 안 해요. 그것은 그대로 긍정하면서 또 그보다 다른 차원의 삶도 알려고 하는 거죠 그것도 그러니까 여기서 삼계를 행한다 하는 것은 뭐여 온갖 차별된 삶의 역정이에요 이런 삶, 저런 삶, 별별 삶을 삼계라고 그래요 욕계 색계 무색계니까 별별 삶이거든요 이게 세수로 이야기해서 그렇지 우리 하루 가운데도요 삼계뿐 만아니라 뭐 삼십 가지의 삶을 살 거야 아마 이 대결해서 삼계지 사실은
그런데 별별 삶을 살지만 그렇다고 신선한 어떤 진리의 삶 최고의 삶이거든요 법성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공부하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야 공부해도 뭐 속에 망상이 부글부글 끊으면 그것도 역시 삼계야 만약에 오로지 아무 번뇌 없이 그대로 이 유마경의 분위기 속에 그대로 젖어들어 있다고 하는 것 이것을 법성이라고 한다면 그런 삶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정 반대되는 그런 어떤 삶을 예를 들어서 남을 속이는 어떤 일을 했다 남을 헤 꼬질 하는 일을 했다 그러면 여기 와서는 예를 들어서 경을 공부한다. 그것을 어떤 사람들은요 그럴 바에 뭐 하려고 공부하나 그럴 바에는 왜 절에 가나 이런 경우가 참 많거든요 그게 아니라고요 하루 가운데는 밤도 잇고 낮도 있어 하루의 삶속에는 부처님하고 영 반대될 경우도 있고 부처님하고 딱 맞아 떨어질 때도 있어 그게 사람의 삶이야 그런 반대되는 삶을 전부 인정해주는 거라니까 여기는 그렇게 사는 게 보살의 삶이고 바람직한 삶이다 그렇다고 아이고 내가 이런 삶을 불교를 믿는 사람이 이런 삶을 살면 되나 이건 자살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요 그리고 또 나는 이렇게 사니까 아이고 부처님 도량에 갈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또 많아요. 그럴수록 부처님 도량에 가야 돼 부처님 도량에 가서 청소하고 또 와서 또 어지르고 어지르고 또 와서 청소하고 이게 그만입니다. 삼계를 행하지만은 법성의 경지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이고 이 죄 많은 중생이 어떻게 절 도량에 가나 절 도량에 가야 돼 죄 많은 중생일수록 절 도량에 가야 돼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제사를 지내 다던가 무슨 뭐 시체를 봤다든가 뭘 봤다든가. 상여를 봤다든가 하면 절에 안 간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찝찝한 어떤 일이 있을수록 가야지 안 좋은 일 때문에 부처님은 있는 거요 전부 이세상이 좋다면 부처님은 안계십니다 필요가 없어요. 중생들의 삶속에 욕계 색계 무색계라고하는 온갖 각양각색의 삶이 있기 때문에 신선한 법성의 경지 요것은 진리의 경지거든 진리의 도량 아닙니까? 이런 경지가 존재할 필요가 있고 이유가 있는 거여 존재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에 있는 거여. 존재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에 있는 거여 그러니까 삼계를 행하되 법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부처님 생각을 하면서 부처님과 등지는 일도 하고 부처님과 등진 일도 때로는 하면서 그렇다고 부처님을 잊어버리지 않는 거여 그런다고 부처님 잊어버리면 되는가? 그러니까 이 유마경이 쭉~ 저 앞에서도 참 유마거사의 아주 시원시원한 그런 법문들을 옮겨봤지만 우리의 어떤 삶도 전부 인정받는 거여 그동안은 아이고 이것은 참 안되는데 안 되는데 했던 것들을 참 여기서는 우리가 수기를 받는 것이고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고 마음 놓게 되는 것이고 그런 입장이거든요 좋은 경전이죠. 유마경이 그래서 좋은 경전입니다
비록 삼계를 행하지만 법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우리 삶이 그렇거든요 어쩌니까 화장실에 갔지만 식당에 와서 또 밥은 지어야 될 것 아니야 그게 우리 인간의 삶이라고요 내 화장실에 갔던 거만 머릿속에 있으면 언제 그것 밥 짓을 수 있습니까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자유 자제하게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그게 우리 인간의 본성이니까 본래심의 됨됨이가 마음자리가 본래 그렇게 되어있어요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도록 되어 있는게 우리의 마음이라 이것이 보살행이다
雖行於空이나 而植衆德本이 是菩薩行이며
(수행어공이나 이식중덕본이 시보살행이며)
이것도 참 기가 막힌 말이야
비록 공을 행한다. 공 도리를 안다 이거야 모든 것이 본래 공하다
불교하면 언필치공 이야기 아닙니까?
공의 철학 공도리 언필치공이야기거든요
왜냐 본래 공이거든요 눈앞에 보이는 이 현상은 그야말로 현상이라
실제는 공이라고요 공만 실재하는 거라 현상은 실재하지 안 해요. 계속 변멸해 계속 변화무상하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 텅 빈 것은 그것은 실재한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공이라고 본래 공이라고 그리고 나중에도 공이라고 모든 것이 공인데 그렇다고 두 손 딱 묶고 아무 일을 안 하면 어떻게 공을 향해 공의 삶을 살지만은 그러면서 또 植衆德本 온갖 덕의 뿌리를 심는다 온갖 근본을 심는 것 온갖 좋은 일 다 한다. 좋은 일 열심히 하는 것 보고 누가 옆에 있다가 그것 다 공인데 일체개공인데 그것 좋은 일 열심히 하면 뭐하나 이게 병든 사람이에요.
그런 공 도리를 알지만 온갖 좋은 일 열심히 하는 거라 좋은 일 열심히 하면서 공의 이치도 알아 다 무상하고 공한 것 너보다 더 잘 안다. 내가 더 잘 아니까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산다 이거지 공이니까 열심히 복 짓고 산다. 열심히 복 짓고 살면서도 공 도리를 알고 쌓은 사람이 무너뜨릴 줄도 알고 참으로 무너뜨릴 아는 사람이 쌓을 줄도 알고 그렇게 되어야 되는 거죠. 어디에 집착해버리면 쌓아 놓았다고 해서 거기 쌓아 놓아가지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했는데 무너진다. 그럼 자기 인생도 무너져 열심히 쌓을 줄도 알지만 그것이 금방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도리도 알아야 돼 무너지는 도리도 공도 행해야 한다. 공 도리도 알아야 돼
雖行於空이나 而植衆德本 공을 행하지만 온갖 덕의근본을 심는다.
참 기가 막힌 이야기라 이렇게 살면 뭐 우리가 정말 뭘 해도 걸리지 않고 크게 집착하지 않고 하는 거야 되게 집착하지 않는 사람의 병은 안하는 거라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병인데 여기는 그게 잘못이다 하는 것입니다 집착 안하면서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되 집착하지 않는 것 이런 삶이 가장바람직한 삶이고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보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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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雖行三界(수행삼계)나 而不壞法性(이불괴법성)이 是菩薩行(시보살행)이며...비록 삼계를 행하지만 법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도록 되어 있는게 우리의 마음이며 보살행이다.) 고맙습니다._()()()_
雖行於空이나 而植衆德本이 是菩薩行이다. 열심히 살되 집착하지 않는 않는 삶을 다른말로 보살행이라 한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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求一切智하되 無非時求가 是菩薩行이며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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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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