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원 입법계품(53)
六, 解脫 長者 --- 第五 具足方便住善知識
1, 依敎趣求
(1) 思修前法
(2) 顯修利益
2, 見敬諮問
(1) 善知識의 大善利
(2) 發菩提心의 相
(3) 讚能誘誨
오늘 입법계품, 89쪽에 해탈 장자(解脫 長者)의 이야기를 시작을 해서 덜 끝난 상탭니다. 지난번에 한 반(半), 하고. 큰 과목(科目)에 정시법계(正示法界)라, 하는 데부턴데요. 대개 순서가. 가르침에 의해서 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나서는 그런 이야기. 그 다음에 그 선지식(善知識)을 뵙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법을 묻는 이야기가 나오죠.
3, 正示法界(정시법계)
(1) 入定黙示(입정묵시)
그러고 정시법계(正示法界)라고 하는 거는 그 선지식(善知識)이, 여기서는 해탈 장자(解脫 長者)라 그랬는데 그 선지식(善知識)이 진리의 세계를 바로 보여주는, “당신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또 무엇을 말씀으로 가르칠 것인가?”, 이런 것들이 정시법계(正示法界)라고 하는 과목(科目)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정시법계(正示法界), 여기에 입정묵시(入定黙示)라고 하는 내용이 있고. 출정언답(出定言答)이라. 입정(入定)은 선정에 들어가서, 다시 말해 삼매에 들어가서 묵묵히 뭔가를 보여주는, 그런 내용이 해탈 장자(解脫 長者)가 가르치는, 가르침 중의 한 가지가 되고요. 또 한 가지는 그 삼매에서 나와 가지고 말로, 말로써 가르치는, 그 물음에 답하는 게 되겠죠. 그런 것이 또 한 가지의 가르치는 내용이 되고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내용이 두 가지로, 입정(入定)에서 또는 출정(出定)에서. 입정(入定)에서는 묵시(黙示)할 수밖에 없는 거죠. 묵묵히 보일 수밖에 없는 거고. 또 정(定)에서 나왔으니까 그 때는 이제 말로 할 수 있다. 요렇게 이제, 과목(科目)을 살펴보면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여기 처음에는 입정묵시(入定黙示)죠. 뭔가 보여주는데, 해탈 장자(解脫 長者)가 보여주는데 선정에 든 채로, 삼매에 든 채로 뭔가 보여주는 그런 내용입니다.
삼매에 들어가 가지고서 해탈 장자(解脫 長者)의 몸, 신체에서 가지가지의 일을 나타내 보이는 모습이죠. 그러니까 삼매에 드니까. 삼매에 들었다고 하는 말은 모든 진리의 세계가 하나가 되고 부처님의 세계가 하나가 되었다, 하는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가 됐으니까 선정에 든 해탈 장자(解脫 長者)의 몸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세계와 하나라는 뜻이 되죠. 혼연일체가 된 상태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의 일을 이 몸으로 다 나타내 보인다, 라고 하는 것이 내면에, 밑에 깔려 있는 어떤 당위성, 어떤 하나의 이치가 되겠습니다.
時에 解脫長者가 以過去善根力과
시 해탈장자 이과거선근력
그 때 해탈 장자(解脫 長者)가 과거선근력(過去善根力)과. 과거. 과거생에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했다. 좋은 일이라고 하는 것은 남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위시해서 그, 경전 공부를 하는 것도 그렇고·기도를 하는 것도 그렇고·참선을 하는 것도 그렇고·마음 닦는 일·잠깐 입정을 하는 일, 이런 일들이 사실은 좀더 고급스러운 선근(善根)이예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쌍한 사람 돕고 보시하고 하는, 그런 것도 좋은 선근(善根)인데. 불교에서는 그런 거 못지않은 좋은 일이 자기 마음 닦는 일, 마음을 어디다 집중하는 일. 그래서 경전을 공부한다든지·기도를 한다든지·참선을 한다든지·주력을 한다든지·염불을 한다든지, 하는 그런 일들을 아주 좋은 선근(善根), 아주 좋은 일이라고 그렇게 봅니다. 왜냐? 이 세상의 모든 근본이 되는, 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이고 또 마음 닦는 일이다, 이렇게 우리가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과거선근력(過去善根力)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그런 여러 가지 수행, 자기 수행이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죠.
佛威神力과
불위신력
자기가 닦은 것만이 아니고 부처님의 어떤 위신력하고
文殊師利童子憶念力故로 卽入菩薩三昧門하시니
문수사리동자억념력고 즉입보살삼배문
문수사리동자가 해탈 장자(解脫 長者)를 생각해 주는. 이 <화엄경>은, 특히 그 중에서도 <입법계품>은 문수사리보살로부터 출발을 해서 문수사리보살의 상대인 보현보살로 끝을 맺는 걸로 돼 있거든요. 그래 이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고 보현은 어떤 지혜의 실천을 뜻하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는 이제, 문수사리보살이 등장을 자주 하고 여기는 동자(童子)라고 그렇게 했어요. 혹은 보살, 뭐, 동자(童子)··· 그래서 문수는 동자(童子)로 잘 나타나요. 오대산도 문수 동자(童子)가 나타난 그런 역사가 있고 문수 동자(童子)상을 조각을 해 놓고 또 칠불에도 문수 동자(童子) 이야기가 있죠. 거기도 문수 도량,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문수사리동자의 억념(憶念). 기억해 주는 그 힘을 쓴 까닭에. 그 힘 때문에 즉입(卽入), 곧 들어갔다. 보살삼매문(菩薩三昧門)에 들어갔는데. 이 보살삼매문(菩薩三昧門)이 이게 뭐냐 하면
名普攝一切佛刹無邊旋陀羅尼라
명보섭일체불찰무변선다라니
일체부처님 세계의 무변(無邊), 가없는 세계를 두루두루 포섭하는 그런 다라니다. 그러니까 보섭일체불찰무변선다라니(普攝一切佛刹無邊旋陀羅尼)다. 삼매 이름이 그래요.
入此三昧已하야는 得淸淨身하사
입차삼매이 득청정신
이 삼매에 들어가서는 청정한 몸을 얻어 가지고서. 아주 뛰어난 몸, 훌륭한 몸을 얻었다. 그러니까 삼매에 들어가니까, 삼매에 들어 간 거는 바로 부처님과 혼연일체된, 부처님과 동격시된 그런 몸이 됐다, 이거야. 동일한 몸이 돼서
於其身中에 顯現十方各十佛刹微塵數佛과
어기신중 현현시방각십불찰미진수불
그 몸 가운데 현현(顯現)했다. 아주 환~하게 잘 나타냈다. 나타냈는데 무얼 잘 나타냈는고 하니. 시방(十方)의 각 십불찰미진수(十佛刹微塵數) 부처님. 부처님 한 분을 나타내는 게 아니고 수없는, 수없는 미진수의 부처님을 나타냈다.
及佛國土衆會道場과
급불국토중회도량
그리고 부처님만 나타낸 것이 아니고, 그 몸에서. 불국토(佛國土)에 있는, 그 부처님이 계시는 그 지역의 땅, 그 국토, 도량(道場), 부처님 계시는 도량(道場)과 거기에 모인 대중. 중회(衆會)라고 하는 말은 대중들이예요. 부처님을 따르는 대중들. 그런 대중과 그 지역 도량과, 그런 것들도 다 환~히 나타내 보이고, 몸에서.
種種光明諸莊嚴事하며
종종광명제장엄사
그리고 여러 가지 광명과 그리고 부처님 계신 훌륭한 사자좌도 있을 것이고 뭐, 주변을 잘~ 꾸며놓고 장엄했을 테니까, 그런 장엄한 모습도 이제, 잘 나타나고요.
亦現彼佛往昔所行神通變化와
역현피불왕석소행신통변화
또 그뿐만 아니라 저 부처님, 그러니까 어떤 부처님이 있다. 여기는 시방(十方)의 십불찰미진수 부처님[十佛刹微塵數佛]이라 했으니까. 그 예를 들어서 한 부처님을 지칭한다면은 그 어떤 부처님이 과거에 수행했던, 신통변화의 그런 일들,
一切大願助道之法과
일체대원조도지법
그리고 모든 큰 원력과 도(道)를 돕는, 여러 부수적인 수행법.
諸出離行淸淨莊嚴하며
제출리행청정장엄
출리행(出離行)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生死)의 길에서 벗어나는, 생사(生死)의 길에서 벗어나는 아주 훌륭한 그런 장엄과, 이런 일들을 아주 잘 나타낸다.
亦見諸佛의 成等正覺과
역현제불 성등정각
또 역현(亦見). 여기 ‘견[見]’자(字)지만 “현”이라고 발음해요. 또 어떻게? 나타낸다. ‘나타낼 현[見]’, 그래요. 또 나타낸다. 해탈 장자(解脫 長者)가 말하자면 삼매에 들어가니까 그 몸에서 이런 걸 나타낸다, 이거야. 제불(諸佛)의 성등정각成等正覺과. 모든 부처님의 정각(正覺)을 이룬 것.
轉妙法輪과
전묘법륜
법륜을 굴리는 것. 그러니까 부처님이 법문(法門)하시는 모습도 이 해탈 장자(解脫 長者)의 몸에서 비치고 있다, 이거야. 그 몸속에서 그러한 부처님의 행적이 환히 나타나고 있다.
敎化衆生하사
교화중생
중생을 교화하고,
如是一切를 於其身中에 悉皆顯現하야
여시일체 어기신중 실개현현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그 몸 가운데서 실개현현(悉皆顯現)했다. 다~, 모두를 다~ 나타냈다.
無所障礙하며
무소장애
그래서 나타낸데 대해서 아무런 구애가 없고 장애가 없었다. 여기 기, 무슨 말인고 하니. 말하자면 삼매에 들었다고 하는 것은. ‘해탈 장자(解脫 長者)가 삼매에 들었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경지와 혼연일체가 됐으니까 곧 해탈 장자(解脫 長者)가 부처님이 된 것이고. 그렇다면 그 부처님이 과거, 어떤어떤 수행을 했다, 라는 것까지도 그 부처님에게 다 포함돼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뜻으로, 그러니까 이런 것을 보고 예를 들어서 뭐, <법성게>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이런 말을 해요. 한 인간이 앉아 있는, 앉아서 선정(禪定)에 들어있는 모습 속에 부처님의 세계가 다 나타나고. 부처님의 과거·현재·미래, 현재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수행한 것 까지도 다 나타내고. 부처님 법문(法門)하는 것도 중생을 교화하는 것도, 이런 모든 것들이 해탈 장자(解脫 長者)라고 하는 한 인간의 몸에, 다~ 그것이 나타난다, 라고 하는 말이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먼지 속에 온~ 우주법계가 다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표현을 불교에서는 곧잘 쓰죠.
이것은 불교의 법계연기관(法界緣起觀), 특히 <화엄경>에서 말하는 법계연기(法界緣起). 온~ 우주법계는 저 산골의 이름 없는, 하찮은 풀 한 포기. 이 세상의 누구 한번도 그 풀을 봐주지 않는, 그런 어떤 바위 그늘에 있는 자그마한 풀 한포기라고 하더라도, 그 풀 한포기와 우리들과 그리고 온 우주법계와 전~~부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법계(法界)적인 연기(緣起) 속에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죠. 그래서 그 풀 한포기를 들면은 온 우주가 같이 따라 들리고 ··· 이런 게 사실 또 들려요.
우리가 예를 들어서 집에 있다가 공부하러 왔다, 이거예요. 이 오는 이 과정에 온 우주가 다 따라온 거야. 최소한도로 여러분들을 중심으로 한 우주법계는 다 따라온 거야. 그래, 여러분들이 왔으니 여러분들이 중심이 돼서 온 우주가 펼쳐져 있는 거야.
이게 불교에서 파악한,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살펴본, 말하자면 우주와 나와의 관곕니다. 그래 좀 가까이 있는 인연들은 좀 더 그 영향을 크게 받고 크게 미치고요. 좀 더 멀리 있는 관계들은 좀 더 약하게, 좀 더 멀리, 그렇게 서로 영향을 끼치고 받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아주 멀리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할 때는 그건 그만치 멀리 있는 관계는 그 영향력이 적은 거죠. 적을 뿐이지 다~~ 미치는 영향력은 다 있기 마련이예요.
예를 들어서 고요한 이런 곳에 물에 돌을 하나 탁, 던지면요. 그 물결이 자꾸 번져 가는데. 그 던진 돌의 주변에 아주 가까이 있는 물결은 크지요. 그래, 멀리 그 파장이 갈수록 적어요, 아주 약해요. 물결이 아주 약해요. 약하지만 저~ 끝까지 그게 펼쳐간다고요. 그 파장이 펼쳐가··· 그래서 이것은. 관계가 본래 이렇게 맺어져 있어요. 우리가 전부 그렇게 상의상관(相依相關)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서로 관계하고 하는, 그런 속에서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래서 말하자면. 기도라든지, 내가 무엇을 하려고 원(願)을 세웠다, 라든지 할 때. 그럴 때는 그런 원리를 알고 그 원리에 맞게 우리가 마음가짐을 갖고 기도를 하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말하자면 어떤 파장을, 조성하는 일입니다, 기도를 한다, 라고 하는 말은. 참선을 한다, 라고 하는 말은. 어떤 정신적으로 어떤 하나의 파장의 힘을 만들어 내는 거죠. 그러면 그 파장이 물결쳐가요.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 물결쳐 가는 거야.
예를 들어서 어느 방송국에서 전파를 쏘았다. 그럼 전파가 물결쳐가요. 가까이 있는 지역에서는 더 잘 들리죠, 선명하게. 좀 멀리 있으면 잘 안 들려요. 성능이 좋은 라디오 같으면 또 잘 들려요.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너무 멀리 있으면 또 잘 안 들려. 그와 같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내 마음속에 어떤 원(願)을 세웠다, 어떤 마음을 하나 탁 가졌다, 그것을 위해서 아주 지극한 정성을 기울인다, 라고 할 때는 파장의 집합체 같은 그런 역할을 하고 거기서 내가 일을 이루려고 하는 쪽으로 파장을 보내요, 보내는 게 된다고요. 보내며는 그게 이제 여러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 같으면은 같이 공명(共鳴)을 하게 돼. 근데 여러 사람에게 이익이 안 되고 하면은 공명(共鳴)이 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주파수를 맞추면 공명(共鳴)하잖아요? 같이 울거든요. 주파수가 맞으면 다 공명(共鳴)한다구요. 그런데 그게 이제 안 맞으면 공명(共鳴)을 안 하는 거야.
가끔 제가 비유를 들지마는 전화를 이렇게 걸 때. 거는 사람도 TV, 같은 채널 틀어놓고 걸고. 낮춰 놓죠, 물론. 듣는 사람도 마침 그 채널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 그냥, 전화 건 사람이 알잖아요? 본인은 낮춰 놔도 아는 거라. 전화선을 통해서 공명(共鳴)하는 소리 때문에 그래, 안다고요. 근데 주파수가 서로 다른 채널을 보고 있으면 잘 안 들려요. 주파수가 다르면 잘 안 들려. 대개 볼륨을 높여 놓기 전에는 안 들려요. 근데 주파수가 같으면 볼륨을 싹 낮춰 놔도 그냥, 전화선을 통해서 공명(共鳴)을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거는 아마 여러분들이 경험을 많이 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뭘 기도한다·뭐한다, 할 때. 전부 불보살(佛菩薩)의 세계. 그리고 나의 어떤 정신세계. 이것이 공명(共鳴)하도록 마음가짐을 가져야, 이게 영험이 따르는 거예요. 그러면 목이 터져라고 고함 안 쳐도 영험이 있다고요. 그리고 볼륨을 잔뜩 높인다고 그 라디오나 그 TV가 잘 들린다는 보장은 없는 거야. 정확하게 그 채널이 맞아야 되고 그것만 맞으면은 저절로 소리가 깨끗하게 잘 들리죠. 마찬가지로 그 라디오와 전파를 보내는 곳은 전부 하나로 통일이 돼 있는데. 그 주파수를 라디오에 제대로 맞추느냐·채널에 TV가 제대로 맞춰지느냐 못 맞춰지느냐, 여기에 상당한 문제가 있어. 그러니까 우리도 불보살(佛菩薩)에게 기도를 한다·참선을 해서 성불(成佛)한다, 하는 이런 것들도 결국은 그런 세계의 주파수 맞추기예요. 주파수 맞추기 노력이라, 이게.
그래, 우리가 딴 생각하고. 부처님은 동쪽을 생각하는데 나는 서쪽으로 생각하면서 계속 “부처님, 부처님”하고 소리높이 외친다고 해서 서쪽을 생각하는 내가 동쪽을 생각하고 있는 부처님하고 맞아떨어질 리가 없는 거라. 소리는 약해도 부처님이 향하고 있는 동쪽을 향해서 말하면 그 소리를 약하게 질러도 듣는다고요. 쉬운 표현으로 그렇게 간단하게 우리가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거는 왜 그런가하면 여기서 이야기했듯이 법계연기(法界緣起)야. 온 우주에 있는 것이 전~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관계가 되어 있는 것을, 말하자면 통로를 개척해 주는 그런 어떤 현명하고 슬기로운 마음가짐. 그런 마음. 어차피 관계는 돼 있어요. 관계는 돼 있는데 그 관계를 제대로 통로 연결을 해 주는 슬기로운 마음자세, 이게 중요합니다. 그래, 우리가 부처님 법문(法門)을 듣는 것은 바로 그런 슬기로운 마음자세를 가짐으로 해서 ‘아, 이거 정말 내가 비록 부처님이 아니라 하더라도·이웃 사람이라 하더라도·한 가족이라 하더라도 이제 나하고 공명(共鳴)할 수 있도록, 내가, 내 마음이 그렇게 준비되어 있는가?’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공명(共鳴)을 할 거고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공명(共鳴)을 안 할 거다, 이거야. 그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돼요.
어차피 여기에 말씀드렸듯이 한 인간이 “삼매에 들어간다.”고 하는 그 일을 통해서 온 우주법계 부처님의 세계와 하나가 되거든, 공명(共鳴)하거든. 그래, 과거 부처님이 수행한 거·정각을 이룬 것·중생 제도한 것, 법문(法門) 한 것. 이런 것이 그 인간, 해탈 장자(解脫 長者)라고 하는 한 인간 속에 다 포함돼 버리는 거야. 그, 현재일만 공명(共鳴)하고 있는 게 아니고. 과거까지도, 과거까지도 전부··· 요즘 이제 과학이 발달해 가지고 과거에 상영했던 영화들, 지금 볼려면 볼 수 있잖아요? 일반화는 아직 안 됐지마는 얼마든지 보는 거야. 작년 요 때 보던 뉴스를 지금 볼려면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돼 가요, 지금. 작년, 예를 들어서 8월 추석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싶어 가지고 돌려 가지고 그쪽에서 딱, 하면은 작년 추석 무렵에 있었던 일이, 2004년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어떤 뉴스나 소식을 볼려면 볼 수 있어요, 지금.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돼 가요. 일부분이긴 하지만. 앞으로는 거의 일반화 될 거야, 머지않아서. 그런 세상이 열린다고요. 그게 이제 예를 들어서 과거 부처님이 어떻게 했고 미래에 뭘 할 것이고, 이것까지도 해탈 장자(解脫 長者)라고 하는 한 인간 속에 다 나타내 보였다, 라고 하는 게 이게 그냥 경(經)에서 아구, 이게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부처님 세계에서나 하는 소린갑다, 우리가 그렇게 치부해 버리면 그걸로 끝나지마는. 요걸 우리가 좀 더 우리 현실로 이끌어다가 이해를 하면 그런 뜻입니다, 전부가. 그런 뜻으로 해석이 되는 거예요.
그래, 기도 같은 게 비과학적인 거 같지마는 그 원리를 우리가 분석해 보면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지극히 과학적이고 너무나 타당한 그런 노력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게 제대로 주파수가 안 맞게 노력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고. 주파수를 제대로 맞춰서 기도를 하면 약하게 해도 소리가 울리거든요, 공명(共鳴)하거든요. 그런 이치와 같이 우리 마음자세가 어떠한가? 하는 것. 이게 중요하고. 그것은 결국은 연기(緣起) 관계, 상의상관(相依相關). 서로 의지하고 서로 관계를 맺고. 손과 손가락의 관계야, 그냥. 그렇게 즉(卽)해 있다, 그래. <화엄경>의 표현으로 상즉상입(相卽相入)이라. 서로 즉(卽)해 있고 서로 들어가 있어. 손은 손가락에 즉(卽)해 있고. 연결돼 있고. 손가락은 손에 연결돼 있어. 손과 손가락은 둘이 아니야. 그러면서 또 나눠 놓고 보면 손가락 이야기 따로 하면 손가락 이야기 따로 있고. 손바닥 이야기 따로 하면 손바닥 이야기가 따로 있을 수가 있죠, 그거는 또. 너와 내가 서로 상즉상입(相卽相入)이 돼 있으면서 또. 네 이야기는 네 이야기고 내 얘기는 내 얘기고. 각자 따로 이야기 할 경우도 있고 그러면서도 전~부 연관관계를 우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는 그런 이칩니다, 이게. 그걸 이제 부처님은 파악하신 거죠. 그래, 여기서 보면 우리 보통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런 말들이 ··· 계속 나옵니다, 이제. 과거·현재·미래, 뭐 정(定)에서 나와 가지고 그런 것을 본다, 라고 하는 말로 출정(出定)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여기서는 먼저 몸에서 나타내고. 거기서는 내가 그런 거를 본다. 그 다음에는 그런 이야기로 연결되는데.
장애함이 없다. 다 나타나게, 장애되는 바가 없다. 혼연일체가 됐으니까, 하나가 됐으니까. 해탈 장자(解脫 長者)가 손바닥을 보이고 싶으면 손바닥을 하나 턱, 들어 보이는 거 하고 다를 바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種種形相과 種種次第가 如本而住하야
종종형상 종종차제 여래이주
근본, 또는 ‘본(本)’이라 그러죠, 본(本). 근원되는 것과 근원되는 것 그대로. 말하자면 머물러서
不相雜亂하니
불상잡란
잡란(雜亂)은 뒤섞이거나 어지럽지 아니하니.
所謂種種國土와 種種衆會와
소위종종국토 종종중회
가지가지 국토와 가지가지 중회(衆會). 이거는 모임이죠. 예를 들어서 이 시간에, 화엄경 공부를 하고 있는 이 모임을 중회(衆會)라 그래요. 대중이 모였다, 이 말입니다, 중회(衆會). 회중(會衆). 이것도 뒤바뀌어 가지고 회중(會衆), 이렇게도 하고요. 또 ‘가운데 중[中]자(字)’ 쓰기도 하고.
種種道場과 種種嚴飾이니
종종도량 종종엄식
또 종종도량(道場)과 엄식(嚴飾). 도량(道場)을 꾸몄을 때 엄식(嚴飾)이라 그러죠. 엄식(嚴飾)이니
其中諸佛이 現種種神力하며 立種種乘道하며 示種種願門하며
기중제불 현종종신력 입종종승도 시종종원문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부처님이 종종신력(種種神力)을 나타내며 가지가지의 승도(乘道)를 세우며. 승도(乘道)는 무슨 대승(大乘)·소승(小乘), 어떤 기준이 되는 가르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또 종종원문(種種願門)을 보이며
或於一世界에 處兜率宮하야 而作佛事하며
혹어일세계 처도솔궁 이작불사
한 세계에서 도솔천궁(兜率天宮)에 있으면서 불사(佛事)를 짓는다.
或於一世界에 歿兜率宮하야 而作佛事하며
혹어일세계 몰도솔궁 이작불사
또 혹은 한 세계에서 도솔궁(兜率宮)에서 돌아가셔가지고서. 몰(歿). 몰(歿)은 돌아가신다, 이 말이여, 없어진다, 이 말이여. 돌아가셔 가지고 불사(佛事)를 짓고. 그 자체가 불사(佛事)예요. 태어나고 죽고 떠나고 하는 거, 다 그것이 불사(佛事)야. 불사(佛事)를 지으며
如是或有住胎하며 或復誕生하며
여시혹유주태 혹부탄생
이와 같이 혹은 주태(住胎). 어머니 태(胎) 속에 머물러 있으며. 혹은 태(胎) 속에 있다가 탄생하고
그 부처님의 일생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데. 이거, 우리 모두가 다 해당되는 거죠.
或處宮中하며 或復出家하며 或詣道場하며
혹처궁전 혹부출가 혹예도량
궁(宮)에, 집에. 우리가 탄생 한 뒤에는 집에 한참 있죠. 성장할 때 까지. 그래, 어떻게 했죠? 출가했죠. 그다음 출가해서 나중에 보리수 나무 아래에 갔죠. 6년째 되던 해에 보리수 나무 아래에 가며. 그게 예보리도량(詣菩提道場)이예요. 도량(道場)에 나아가며
或破魔軍하며
혹파마군
앉아 가지고 그 때 마군하고 마구니, 막 들끓었죠. 그 때 마구니란게 그림이나 팔상성도(八相成道)나 부처님 생애 같은 데 보면 현상이 나타나가지고 험상궂은 얼굴로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활을 쏘기도 하고 창을 들고 찌르려고 하기도 하고 혹은 뭐, 아주 현란한 그런 모습. 어떤 여자의 벗은 모습을 부처님 앞에서 내보여 가지고 하는 그런 모습. 또 그랬다가 그 여자가 마구니의 험상궂은 얼굴로 변했다가. 그 험상궂은 얼굴로 변하면 칼과 창을 들고 부처님을 찌르려고 했다가··· 아주 머릿속에서 잡다한 그런 최후의 번뇌가 그렇게 나타나는 거죠. 그런 것을 다 견뎌, 이겨 내는 거죠. 파마군(破魔軍)입니다. 마(魔)의 군대를 깨뜨리다. 깨뜨리고
或諸天龍이 恭敬圍遶하며
혹제천룡 공경위요
혹은 모든 하늘 용들이 부처님을 아~주 훌륭하다고 보호해 주고 에워싸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或諸世主가 勸請說法하며
혹제세주 권청설법
세주(世主)라고 하는 것은 임금이나 왕이나 대신이나 무슨 장자(長者)나 이런 이들이 와서 부처님에게 설법(說法)해달라고 청하는 권청설법(勸請說法)이죠. 설법(說法)을 권청(勸請)하고.
或轉法輪하며
혹전법륜
그러니까 어떻게 해? 법륜을 굴리겠죠? 혹전법륜(或轉法輪).
或般涅槃하며
혹반열반
혹은 열반에 든다. 이 반열반(般涅槃)은 열반에 든다.
이제 부처님의 생애, 일생이 다 나왔죠.
或分舍利하며
혹분사리
부처님 열반에 드니까 화장을 해서 사리를, 온 나라에서 사리를 전부 서로 가져가려고 서로 싸우고 그랬어요, 그 때는 또. 서로 사리 모셔 가려고. 그 당시 작은 나라들이 수없이 많았거든요, 인도 곳곳에서. 그래가지고 우리나라에도 나중에는 전해 오고. 그래, 부처님 사리가 많았어요. 그러니까 사리를 나누며.
或起塔廟하며
혹기탑묘
그래 사리 가져가서 어떻게 했다고요? 기탑묘(起塔廟)라. 탑묘(塔廟)를 세우고. 탑을 세웠죠. 그런 것들도 나타내고
彼諸如來가 於種種衆會와 種種世間과
피제여래 어종종중회 종종세간
저 모든 여래가 가지가지 중회(衆會)와 가지가지 세간과
種種趣生과
종종취생
가지가지의 취생(趣生)과. 이 취생(趣生)은 말하자면 지옥 아귀 축생··· 여러 가지, 중생들의 태어나는 갈래들입니다. 취생(趣生)과.
種種家族과 種種欲樂과
종종가족 종종욕락
종종(種種)의 가족과 종종(種種)의 욕락(欲樂)과. 뭐, 취미와 하고저 하는 게 얼마나 여러 가지가 많습니까? 그걸, 욕락(欲樂)이죠. 각양각색이죠.
種種業行과 種種語言과
종종업행 종종어언
종종(種種)의 업행(業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짓는 일들이죠. 하는 일들이라. 하는 일들도 또, 요즘 세상이 다양해지니까 직업도 아주, 수십 만종, 뭐, 수백 만종의 직업이 있죠. 그 다음에 말씨. 말이 뭐, 우리나라 좁은 나라에도 말이 여러 가지이듯이 전 세계에는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種種根性과
종종근성
근성은 이제 근기, 성품.
種種煩惱의
종종번뇌
번뇌가 또 얼마나 여러 가집니까? 사람마다 번뇌가 뭐··· 각양각색이예요. ‘슬프다’해도 뭐, 다 달라. 그 슬픔의 맛이 다 다르고. ‘기쁘다’ 해도 그 기쁨의 맛이 사람마다 다 다르고. 뭐, ‘기분 나쁘다’해도 어떻게 기분 나쁜지 저 혼자만 아는 거야. 내가 기분 나쁠 때하고 그 사람이 기분 나쁠 때하고 달라. 사람마다 기분 나쁜 맛이 전부 다 달라. 종종(種種)의 번뇌라, 그래서.
隨眠習氣인
수면습기
수면(隨眠)이라고 하는 것은 잠재되어 있는 기운이예요. ‘따를 수[隨]’자, ‘잠잘 면[眠]’자(字)인데. 이게 이제 보통 구사(俱捨)나 유식(唯識) 같은 데서 잘 쓰는 용어인데. 어떤 잠재되어 있는 성향, 기운, 기질같은 거예요. 그거 다 번뇌죠. 기질이 다 다르고. 습기(習氣). 습기(習氣)도 이제 익힌 기운들. 늘 익혀 놓으며
옛날에는 사람 아는 것도 쉬웠어요. 사람이 단순했잖아요? 기껏해야 사농공상(士農工商)이야. 사(士). 선비 집안. 그 다음에 농사. 대다수가 농사죠. 8, 90프로가 농사 지어. 그 다음에 공(工)이다, 하는 게 불과 몇이 안 됐어요. 거기 뭐, 연장·낫·칼, 이런 거 만드는데 풀무간에서 그런 거 만드는데, 칼 만들고 낫 만들고 농기구 만들고··· 하는 것. 그것도 한 여남은 가구나 될까 말까한, 그게 공(工)이야, 그냥. 물론 목공도, 철공, 목공 다 해당되겠죠. 얼마나 단순합니까? 그 다음에 상업이야. 사농공상(士農工商), 네 가지 뿐이야. 그 외에 없다고요. 벼슬 하는 사람들, 전부 사(士)에 들어가, ‘선비 사[士]’자(字). 참~ 단순한 세상이었어요. 그러면은 예를 들어서 누구를 안다, 하더라도 “아, 그 집이 뭐하는 사람이야?” “아, 농사짓고 살아.” “아, 그래?” 농사짓고 그렇게 살아 있으면은 아주 순박하게 농민으로서 철철이 자연에 순응해 가지고 그렇게 사니까. 성격도 파악이 되고 생활 습관도 파악이 되고, 당연히 안다고요. 그 뿐이야, 그냥. 달리 다른 게 없어. 그냥, 공업한다, 공업하면 철공업 하느냐, 목공업 하냐? “아, 목공업 한다.” 그러면 농이나 짜고 그랬겠죠. 나무 짜고 집 짓고··· 그 정도 였지.
지금은 업종이 여러 수백만 가지 업종이 되고, 그래서 누가 어떻다, 하더라도 도저히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는 거야. 소득이 알 수가 없고. 뭐, 어떻게 살아 왔는지, 뭐하다가 직업 바꾼 거, 여러 수십 번 가능하구요. 옛날에는 직업 바꾸는 거 상상도 못했거든요. 농사 짓는 사람은 대대로 농사만 지었고. 공업은 대대로 공업 했고. 그저 양반, 하면 대대로 양반, 내려 오면서 계속 양반이었지 뭐 다른 거 없거든요.
그래, 지금은 직업도 일생동안 수십 번 바꿀 수도 있고 그래, 한 집안에 농사짓는 사람 전부 농사지어요. 대개 농사지었지. 거기에 뭐, 아들은 뭐하고 동생은 뭐하고··· 이런 게 없거든요. 지금은 안 그렇잖아요. 지금은 뭐, 기상천외하게도 한 가족이 서로서로 다른 업종, 다른 직장, 기술, 다른 일을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그런 시대라. 참 복잡한 거죠. 그래서 여기 이제, 근성·번뇌·수면·습기, 이런 것들이 참 많이 다양해졌다, 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諸衆生中에 或處微細道場하며 或處廣大道場하며
제중생중 혹처미세도량 혹처광대도량
혹은 미세도량(微細道場). 아주 작은, 아주 작은 도량(道場)에 처하며. 혹은 광대(廣大). 그 반대로 광대한 도량(道場)에 처하기도 하며.
或處一由旬量道場하며 或處十由旬量道場하며
혹처일유순양도량 혹처십유순양도량
혹은 1유순(一由旬)이나 되는 도량. 그 전에 14.4km라고 그랬는데, 1유순(一由旬)이. 그런 데에 처하기도 하고. 혹처십유순도량(或處十由旬量道場). 그, 굉장히 크죠.
或處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由旬量道場하사
혹처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유순양도량
이건 뭐, 이루 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말할 수 없다 소리거든요, 불가설(不可說)이란 게.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이 되는 그런 도량(道場)에 처하기도 하사.
以種種神通과 種種言辭와 種種音聲과
이종종신통 종종언사 종종음성
말을 같은 말을 해도 음성이 각각 또 다르구요.
種種法門과 種種總持門과
종종법문 종종총지문
이건 다라니죠. 총지(總持)는 모두 가진 것.
種種辯才門하며 以種種聖諦海와 種種無畏大師子吼로
종종변재문 이종종성제해 종종무외대사자후
성제해(聖諦海)라고 하는 것은 성스러운 진리, 4성제(四聖諦), 그러죠. 가지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바다와 두려움이 없는 큰 사자후로서
說諸衆生의 種種善根과 種種憶念하며
설제중생 종종선근 종종억념
모든 중생의 가지가지 선근과 가지가지 억념(憶念)을 설(說)하고. 설(說). 설명한다. 중생들의 가지가지 선근. 뭐, 착한 일을 했다 해도 사람마다 다 다르고요. 또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다 달라. 그래서 종종억념(種種憶念). 가지가지 기억하고 있는 것에서
授種種菩薩記하며
수종종보살기
또 종종보살기(種種菩薩記)를 주고. 가지가지 보살, 보살이 된다고 하는 그런 수기(授記)를 주고
說種種諸佛法이어시든
설종종제불법
종종 모든 부처님이 법을 설하시거든
彼諸如來의 所有言說을 善財童子가 悉能聽受하며
피제여래 소유언설 선재동자 실능청수
모든 여래의 소유언설(所有言說)을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실능청수(悉能聽受)한다. 다~ 듣는다, 이거예요.
선재 동자(善財 童子)도 법을 잘 아는데. 이것을 여기서 이, 해탈 장자(解脫 長者)는 삼매에 들어 있고. 삼매에 들어 있는데 부처님의 세계가 나타나고. 그 부처님의 세계가 나타나는 데는 말도 있고 법문(法門)도 있고, 뭐 별의별거 다 있는데 거기에서 설하고 있는 것을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듣는다, 이거지. 그러니까 이게 완전히 원융(圓融)한 그런 세곕니다. 원융(圓融)한 세계를 나타내는 거예요.
그러면 해탈 장자(解脫 長者)는 말이 없잖아요? 말이 없는 가운데 그 속에 말이 있고. 말 없는 가운데 있는 말을 선재 동자(善財 童子)는 듣는 거야, 그걸. 말 없는 말을 듣는 거야. 해탈 장자(解脫 長者)는 삼매에, 정(定)에 가만~히 들어 있는데, 정(定)에 들어 있는데 무슨 말이 있겠어요? 말이 없는 가운데 있는 말을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들을 줄 안다, 이거지.
또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이야기 할 때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 그래요. 흰 옷을 입으신 관세음보살님은 말이 없이 설하시고. 말 없는 말씀을 하시고. 남순동자불문문(南巡童子不聞聞)라. 관세음보살을 따르는 동자(童子) 이름은 남순동자예요. 여기는 선재 동자(善財 童子)고. 또 문수 도량에는 문수 동자(文殊 童子)고. 남순 동자는 불문문(不聞聞)이라. 듣지 않으면서 듣는다. 듣는 이런 노력 없이. 우린 뭐 듣는다면 귀를 쫑긋하고 온갖 자기의 상식을 다 동원해 가지고 들으려고 하잖아요? 거, 아니야. 아예 관세음보살님은 말 없는 설법을 하시니까. 남순동자도 이제, 말하자면 관세음보살의 시자니까 격이 그쯤 되겠죠. 듣지 않고 듣는다. 들음 없이 듣는다. 그런 아주, 관음 보살과 남순 동자를 찬탄한 그런 게송이, 관음 기도 할 때 의례히 스님들이 못 알아듣게 염불해도 그 소리 거기 다 있어요. (웃음) 가만~히 들어보면 ‘아!, 그게 그 소리구나!’ 알 때가 있겠지. 그걸 이제 실능청수(悉能聽受)한다.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다 받아들인다. 들어서 받아들이며
亦見諸佛과 及諸菩薩의 不可思議三昧神變하니라
역견제불 급제보살 불가사의삼매신변
또 본다. 모든 부처님과 그리고 모든 보살의 불가사의한 삼매신변(三昧神變)을 또한 보았다. 그래 여기서 ‘또한[亦]’이라고 하는 것은 해탈 장자(解脫 長者)가 삼매 속에 들어 있으면서 이러한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았고. 또 그 외에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불가사의한 삼매신변(三昧神變). 신변(神變). 신통변화죠. 삼매 속에서 일어나는 신통변화를 다 본다, 그렇게 됩니다.
이게 뭐, 당치도 않는 세계, 부처님들만의 세계가 아니라 아까 제가 말씀드린 법계연기(法界緣起)의 관점에서 우리가 생각을 하면은 꼭히 이해 못 할 내용도 아니예요. 그리고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로 전부 연관 관계를 갖고 있고. 동서고금 전~부와, 그리고 또 부처님의 세계와 중생의 세계. 이게 전~부 얽히고설키고 날줄과 씨줄처럼 전부 관계를 맺고 있어요, 알고 보면. 그게 이제 끊어져 있는, 단절의 세계가 아닙니다. 깨달음의 안목으로 보면은 끊어져 있는 세계가 아니야. 전부 어떤 이유로서든, 전~부 관계를 맺고 있고 연관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게 이제, 온 우주법계가 상의상관(相依相關)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그게 법계연기(法界緣起)예요, 법계연기(法界緣起). 그래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먼지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어가 있고. 또 시간으로 보면은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법성게>.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그거는 이제 시간을 말하는 거야. 구세(九世)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 삼세(三世)죠. 과거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현재에 또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미래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거야. 그럼 구세(九世)가 되는 거야. 십세(十世)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서 현전일념(現前一念). 현전일념(現前一念)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코앞에 있는 한순간을 말하는데 코앞에 있는 한순간은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야. 과거라 할라니까 아직은 현전일념(現前一念)이니까 과거라 할 수가 없고. 현재라 할라니까 이미 과거가 되고. 미래라 할라니까 현전일념(現前一念)이니까 아직 미래는 아니고. 그래서 현전일념(現前一念), 그래 가지고 그걸 십세(十世)라 그래요.
구세(九世)는 삼세(三世)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삼센[三世]데. 삼세(三世)마다 각각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 그래 3*3=9, 구세(九世), 십세(十世)는 현전일념(現前一念)까지 합해 가지고.
그래 호상즉(互相卽)이라. 서로서로 상호. 요즘 우리 습관대로 하면 상호고 중국 사람들은 호상(互相), 그러죠, 호상(互相). 호상관계(互相關係), 뭐 이래 쌓는데. 상호관계(相互關係)를 호상관계(互相關係), 그래요. 그래, 호상즉(互相卽)해 있어. 전부 서로서로가 연결돼 있다, 이 말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전부 연결돼 있다. 지금 뭐, 어떤 갑(甲)이라고 하는 사람이 여기에 이 자리에 이렇게 있다. 이거는 어디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고 정말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온~~갖 것과 전부 연관이 돼서 오늘 이 순간에 이 자리에 이렇게 있는 거여.
수억만 인연들이 동원이 돼서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있는 거라. 수억만. 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의 인연이 동원이 돼 가지고 이 자리에 있다고요.
예를 들어서. 아이구, 나는 오늘 친구가 “가자” 그래서 비도 오고. 뭐, 심심해서 따라 왔다. 딱, 한 가지 인연을 딱 든다고 합시다, 예. 물론 그런 경우가 또 있겠죠.
그럼. 지가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따라 왔겠나? (웃음) 암만 친구가 가자해도 개 같으면 못 따라왔을 거란 말이야?
그러면 사람이 되기까지는 또 몇 가지 인연이 있다?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 거야, 이제···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 거야···
그래, 이런 데서 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라고 하는 게 깨달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은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 그 이상은 어떻게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우리 귀에는 설고 무엇이 그런 표현이 있는가, 싶지마는 그 분들의 상식으로는 그렇게 표현해도 성에 별로 차지 않아.
할 수 없이 그저 그 정도로 표현하고 마는 거예요. 할 수 없이···
그러니까 여기, 안목의 차원이 다르니까, 안목의 차원이 다르니까 그런 표현들이 우리 귀에는 설죠. 자꾸 공부를 하면은 차츰차츰 가까이 다가가는 거죠.
설사 개가 아니고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오늘, 오늘 마침 시간이 있었으니까 또 올 수 있었던 거지 만약에 이 친구가 전화하기 전에 딴 친구가 먼저 전화해서 만나자는 거야. 마, 그래 버린 거라. 마, 그 친구 따라가고
이런 거 전~~부 계산하면요,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해도 계산 다 안 나옵니다. 한 사람의 어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수많은 인연을 다 간추려 내지 못합니다. 컴퓨터가 산출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는 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 말로 할래야 할 수가 없고 설명 할래야 할 수가 없고··· 무량(無量) 무수(無數) 무변(無邊), 뭐···,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 불찰미진수(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 그런 표현을 할 수 밖에 없어, 알고 보면은.
한 번 여러분 집에 가서 가만히 계산해 보세요. 적어 나가 봐요. “내가 오늘 법회에 간 인연이 어떻게 해서 이어지는가?” 거기에는 몇 가지 인연이 동원이 됐는가? 제일 위에 우리 부모에서부터, 선조서부터 쭈욱 한 번 적어 내려가요. 그, 가닥 잘못 치면 복잡하니까 한 가닥씩 차악~, 하고. 그 다음에 그 가닥에서 또 가닥치고 가닥치고 가닥치고···이렇게 하나씩하나씩 ···그러면··, 그게 조금 어느 정도는(···)
|
첫댓글 스님 법문을 듣고 "오늘 이 법문을 듣게 된 인연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쑥불쑥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고 가슴 아프다가 고맙다가 보고 싶다가 그저 막막해 지네요....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네요. 원수거나 친한 이나 모두 성불하여지이다. 지금의 이 인연. 이런 제가 되게 해 준 인연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_()()()_
_()()()_
法界緣起....가을햇살님, 수고하셨습니다. _()()()_
_()()()_
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고맙습니다...()()()
불보살과 내가 주파수를 맞추어 놓고 共鳴하도록 하는 일.. 우주와 내가 서로 相卽相入하고 있다. 가깝게 또 멀게 모든 인연과 서로 맞닿아 있다.. 고맙습니다. _()()()_
삼매에 들어간다는 것........감명 깊게 잘 읽고 갑니다. 가을햇살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
가을햇살님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나마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복혜구족하소서. _()()()_
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가을햇살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法界緣起..... 가을햇살님, 너무 고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_()()()_
감사합니다_()()()_
法界緣起 속에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맙습니다._()()()_
삼매 : 모든 진리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와 하나가 됨. 法界緣起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_()()()_
_()()()_
法界緣起觀 온~ 우주법계는 저 산골의 이름 없는, 하찮은 풀 한 포기. 이 세상의 누구 한번도 그 풀을 봐주지 않는, 그런 어떤 바위 그늘에 있는 자그마한 풀 한포기라고 하더라도, 그 풀 한포기와 우리들과 그리고 온 우주법계와 전~~부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법계(法界)적인 연기(緣起) 속에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기도,참선도 불.보살과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白衣觀音無說說 南巡童子不聞聞
해탈 장자가 삼매에 들어 있고 거기서 부처님 세계가 나타나서 그 법문을 선재 동자가 듣는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