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원자력 발전소 탐방기
출발지인 사당역으로 30분전에 나갔는데 신청한 회원들 거의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아마도 어제 밤에 소풍을 앞둔 학생들처럼 오고 가는 길목의 동해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연상하면서 잠들을 설쳤으리라.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나온 안내직원의 일정 설명이 있은 후에 예정시간보다 일찍 출발했다.
이번 원자력 발전소 탐방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참가 회원들의 흥미와 관심이 대단했다.
과학기술처 초대 장관을 지낸 김기형 장관님을 비롯해서 과우회 박승덕 회장님 등 초창기 경제개발 중장기계획 수립 등 과학기술 정책수립과 기반조성에 기여했던 주역들이 이미 퇴직해서 2선으로 물러 나 있지만, 그때 그 정책으로 이룩해 놓은 현장을 당사자들이 직접 탐방하는 길이기에 그렇고,
또 한 가지는 비록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오고 가는 길에 능파대(촛대바위), 해신당, 덕구온천, 불영계곡 등 명승지 관광이 일정표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삼척 이남에서 포항 이북으로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어서 특별히 이번 탐방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우리 일행 40명을 태운 관광버스는 복잡한 도심을 빠져 나가 고속도로를 동쪽으로 시원스럽게 달린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자연은 온통 秋色으로 물들어가고, 산자락마다 여름동안 잡초가 덥수룩하게 자란 묘들이 벌초로 뽀~얀 모습을 드러내며 추석에 성묘 올 자손들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도 가을 날씨가 좋아서 풍작이 예상되며, 풍성한 햇곡식 햇과일로 며칠 후에 다가올 명절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평창을 지나면서 대조적으로 안타까운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여름 국지성 폭우란 놈이 한바탕 휩쓸고 간곳, 여기 저기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골짝마다 덮어버린 토사를 치우는 포크레인, 무너져 내린 집들을 보수하고 신축하는 손길이 바쁘지만, 저들은 명절이 와도 즐겁기는커녕 겨울을 날 걱정에 한숨뿐이리라.
버스 안에서는 모처럼 만난 옛 동료들끼리 가족, 소일거리, 건강, 여행담, 옛 직장 이야기 등으로 왁자지껄 이야기꽃을 피우다 화젯거리가 떨어진 회원들은 꾸벅꾸벅 조는 사이 버스는 어느새 대관령을 넘어 동해시로 접어들고 예정시간에 맞추어 점심이 예약된 식당 앞에 닿는다.
한정식으로 푸짐하게 차려놓은 점심상을 대한 회원들은 박승덕 회장님의 제안에 따라 건배하고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옛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지 않은가.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 멋있는 경치를 둘러보고 머리를 맑게 식힌 후에 우리의 주목적지인 원자력 발전소로 들어가도록 지혜롭게 일정을 짠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 이광영 회원님의 깜짝 강의 “음식문화의 5단계”를 가는 길에 들었던들 매 식사마다 좀더 멋있는 Art 食이 되었으련만.....
버스는 지금까지 오던 길에서 직각으로 우회전 시원한 동해바다를 끼고 남쪽으로 20분쯤 달려 동해(시) 8경의 제1경인 능파대 주차장에 세우고 하차하여 촛대바위를 관광하였다.
비릿한 오징어 건조대와 한산한 건어물 판매대를 지나 기암괴석들이 바다에 촘촘히 박혀있는 그 한가운데서 무너질 듯 서있는 촛대 바위를 배경으로 여기저기 사진들을 찍는 모습은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듯, 80세 김기형 장관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박승덕 회장님과 카메라를 주고받으며 교대로 사진 찍는 모습은 중. 고등학생들의 소풍장면을 연상케 한다.
안내직원의 독촉으로 다시 버스는 남쪽으로 이동, 이번엔 해신당이란 별난 곳을 돌아보았다. 안내소에서 받은 팜프렛의 표지 사진을 보고 호기심 가득 찬 회원들이 깔깔거리며 무리 지어서 산줄기를 따라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소공원에 가지각색의 남근 조각물을 가득히 설치해 놓았다.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오고 야한 대화가 오간다. 그런데 있을 법도 한 “미성년 출입 금지” 표시는 보이지 않는다.
옛날 이 마을에 결혼을 약속한 처녀 총각이 살고 있었는데 처녀 홀로 애바위에서 해초 작업을 하다가 큰 풍랑이 일어서 물에 빠져 죽었다 한다. 그 후로는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남근을 만들어 제사 지냈더니 고기가 잘 잡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지금도 일년에 두 번씩 남근을 만들어 세워 제사 지낸다니 훗날 이 공원뿐 아니라 온 마을이 남근 조각품으로 뒤 덮일 날이 올 것 같다.
삼척을 지나면서 과학기술처와 관련된 일이 회상되어 적어본다
과학기술처 초창기 보조금 사업으로 동해산업기술연구소를 설치하려고 몇 년에 걸쳐서 건설공사를 진행하며 일부 기계 장비들을 도입했는데 연구 인력의 확보 난과 실효성의 문제가 제기되어 70년대 초 중단하고 폐쇄 하고 말았다. 그때 담당자로서 건설공사 진행 확인 차 수차례 출장을 왔던 일이 있어 아쉬움과 감회가 교차된다.
포구와 해수욕장이 해풍을 피해 숲속으로 오목오목 들어앉은 아름다운 해변을 굽이굽이 돌아 얼마간 남쪽으로 내려가니 드디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울진원자력발전소에 다다른다. 먼저 홍보팀장으로부터 전체적인 개황을 설명 듣고 안내에 따라 제3발전소 5호기로 이동하였다.
발전소의 출입은 사전에 확인된 신분에 의하여 발급된 임시 패스카드로만 출입이 가능하며 철저히 통제 되고 있다.
울진원전은 1988년에 1호기가 운전되기 시작한 후 현재 70여만 평의 부지에 6기의 발전기가 건설되어 운전 중 이며, 여기에는 발전소 직원 1,500명과 협력업체 직원등 2,700명이 근무한다고 한다.
특히 5,6호기는 한국형 발전기로서 얼마 전 북한에서 건설하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된 원전의 모델이라고 한다.
긴장된 마음으로 5호기 발전소 안으로 들어간 우리 일행은 안내원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2시간여 동안 구석구석 견학하였다.
발전원리와 과정, 제어장치, 연료교체, 폐기물처리, 안전문제 등, 회원들은 사뭇 진지한 태도로 질문하고 하나하나 확인하며 배워나갔다.
이번 탐방에서 원자력 발전과정을 가동 중인 실물 그대로 보면서 배우고, 그동안 의구심이 남아 있던 안전에 관한 확신을 가지고 돌아간다는 것이 큰 수확이다.
아직도 미진한 것이 있다면 내일 아침 호텔에서 예정된 원자력 발전에 관한 세미나로 미루고 발전소 전망대에 올라 시원한 바다와 발전소 전경을 바라보면서 오늘 탐방을 마무리 했다.
바닷가 회집으로 옮겨 김기형 전 장관님의 제안으로 건배한 후 소주와 저녁식사를 푸짐하게 먹고 난후 인근 숲속 덕구온천 호텔로 들어갔다.
물을 데우지 않고 자연 용출 그대로 쓰는 국내유일의 1급 온천에서 목욕하고 하룻밤을 지내니 피로가 확 풀린다.
탐방 이틀째
아침은 호텔식당에서 된장찌개로 가단하게 먹고 자리를 옮겨 어제 관람했던 원자력발전소 5호기 발전부장 주재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세미나는 어제 관람하고 난후, 의문 나는 문제에 대하여 질문하고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한 시간 반 동안 아주 진지하게 진행 되었다.
원자력의 홍보, 에너지문제의 전망과 원자력발전의 중요성, 원자력발전기의 고장문제, 방사선 폐기물의 안전성 문제, 주민에 대한 지원 문제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고 진행자는 진지하고 솔직한 답변으로 회원들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마무리에서 김기형 장관님은 방사능 폐기물 처리에 대하여 원자력 발전 도입 초기 미국으로부터 원자력 발전기를 도입할 경우 방폐물은 자기나라로 모두 가져가겠다고 약속 했는데 미 의회가 반대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단 된 거라고 일화를 공개했고, 박승덕 회장님은 아파트는 짓고 화장실은 안 지어 옥상에서 배설물을 처리하는 경우에 비유하여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함께 방폐장도 건설했어야 하는 것을 원자력 발전소만 건설하고 방폐장은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처음 계획이 잘못 되었음을 지적했다.
울진을 뒤로하고 기암괴석과 맑은 물과 숲이 어우러진 명승지 불영계곡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 후 단숨에 걸어서 유서 깊은 불영사까지 관광하고 돌아오니 점심때가 되었다.
인근 식당에서 찹쌀로 빚은 막걸리로 갈증을 해소한 후 산채나물 곁들인 점심을 맛있게 먹고 주말과 퇴근 시간에 겹친 교통 혼잡을 예상하여 서둘러 귀경 길에 올랐다.
오는 길에 김석권 회원님 연출로 진행된 “차내 임시 특별 프로그램”이 일품이었다.
노홍길 회원님의 노래한곡, 서정만 회원님의 크루즈 여행담, 장상권 회원님의
故 장성태씨와 관련된 의리담, 이광영 회원님의 음식문화 5단계론, 김석권님의 이동통신 강의 등.
1박2일간의 울진원자력발전소 탐방을 사고 없이 아주 즐겁고 유익하게 마치고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사당역에 도착하였다.
첫댓글 아주소상하게 글솜씨도 일품이네요.누군가는 써야할일인데 감사합니다.
김창진 회원님, 울진원전 시찰 탐방기 아주 잘 읽었습니다. 훌륭한 글솜씨이네요. 우리 카페를 통해 이렇게 여행기도 올리고 스냅사진도 올리게 되니 흐뭇합니다. 감사합니다. 가능하면 군데둔데 사진을 퍼다가 겻드리면 한결 보기가 좋을텐데??
과찬에 부끄럽습니다. 올려 놓고 보니 너무 장황하고 서툴러서 다른 회원님의 좋은 탐방기 기대합니다. 보는 관점도 각각 다를 테니까요.
이번의 여행은 참가하신 회원 모두가 보람있고 즐거운 여행이라고 들 하셔서 본 탐방기를 '9월과우소식지'에 올려 참가하지 못하신 회원님들께 소개코자 합니다.
훌륭한 여행기 읽으니 가지 않아도 전경이 눈에 확드러오는것 같아 마음이 기쁨니다. 훌륭한 글 감사함니다.
sooy님, 사정이 있으셨겠지만, 함께 하지 못해서 서운했습니다.
멋진글 잘 읽었습니다.울진원전탐방기간중 소홀히 흘렸던 기억이 새로워져 또다른 감회를 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