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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촌마을, 경복궁 서쪽 동네가 들려주는 이야기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
서촌마을, 경복궁 서쪽 마을을 부르는 별칭이다. 본격적인 서촌마을 여행에 들어가기 전 지도부터 살펴보자. 서촌이 과연 어디쯤을 지칭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면 인왕산(338m)과 북악산(342m), 낙산(125m)과 남산(262m)을 중심으로 소개된 서울성곽 지도면 좋겠다. 지금이야 그 의미가 퇴색하기도 했지만 '한양 도성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가 바로 이 서울성곽 아니던가. 21세기 현대인들이 '강남'에 살고 싶어 하듯 당시 조상들은 '사대성문' 안에 살고 싶지 않았을까.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18km에 달하는 성을 쌓는다.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소개한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 능선을 따라 구축된 성곽은 사대 문과 사소문 그리고 그 사이에 암문을 뚫어 사람들이 들고 나게 했다. 북대문(숙정문)·서대문(돈의문)·남대문(숭례문)·동대문(흥인지문)으로 이뤄진 대문과 4개 대문 사이에 자리한 북소문(창의문)·서소문(소의문)·남소문·동소문(혜화문) 등 사소문이 주인공이다. 아쉽게도 모두 온전히 남아 있지는 않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으며 성곽은 물론 성문까지 훼손되었다. 지금 우리들이 서대문과 서소문 등은 터만 가늠하게 된 이유다.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오자.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에 자리한 공간이 보이는가. 인왕산과 북악산을 잇는 성곽을 따라가면 자하문이라고도 불리는 창의문과 만난다. 성곽을 경계로 청운동과 부암동이 나뉜다. 성곽 안쪽에 자리한 청운효자동, 통인동, 체부동, 옥인동부터 경복궁역까지, 그러니까 성곽에 안긴 경복궁 서쪽 동네를 '서촌마을'이라 한다. 가만, 익숙한 이름 북촌마을이 보인다. 경복궁 동쪽에 자리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경복궁 서쪽이 서촌이라면, 어째서 경복궁 동쪽 마을을 북촌이라 부를까. 이는 청계천 북쪽에 자리했다고 그리 불렀단다. 북촌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에는 경복궁역부터 사직터널 북쪽에 자리한 '서촌'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그동안의 역사지식을 모으면 내로라는 권문세가들이 모여 살았다는 북촌,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 중인이 살았다는 서촌, 그리고 무늬만 양반인 가난한 선비들이 모여 살던 남산골, 조선시대 사대성문 안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서촌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북촌문화센터부터 들러보자. 이곳에 서울시 한양도성도감에서 제작한 '경복궁 서측 걷기' 안내책자가 있다. 서촌에 대한 설명과 자세한 지도가 있어 여행에 큰 도움이 된다. 여기서는 서촌을 이렇게 설명한다.
옛 골목길을 그대로 간직한 경복궁 서측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청운효자동, 사직동 일대를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 궁녀, 의관, 중인들의 생활 공간이었으며 세종대왕 생가, 권율과 이항복의 집터가 남아있어 다양한 계층의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인왕산 자락이 명승지로 유명해 권문세가들이 별장을 지어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옥계시사(백일장)가 열리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추사 김정희의 명필이 탄생한 곳도 이곳이다. 근대에는 이중섭, 윤동주, 노천명, 이상 등이 거주하며 문화예술의 맥을 이었다. 현재 경복궁 서측은 서울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660여 채의 한옥과 옛 골목, 재래시장, 근대문화유산이 최근 생겨난 소규모 갤러리, 공방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어떠한가. 이번 서촌 여행이 초행길이라면 아마 조금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만큼 켜켜이 묵은 이야기가 골목 구석구석에 쌓여 있다는 뜻이리라. 단번에 모두 알려는 욕심 대신 찬찬히 한 바퀴 돌아보자. 마음에 드는 공간이나 이야기는 언제든 다시 찾아가 걸으며 들을 수 있다. 언제든 바로 떠날 수 있는 서촌여행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으로 나오면 시작된다. 앞서 소개한 북촌문화센터에서 안내책자 챙기는 것도 잊지 말자! 이 둘은 도보 30분 거리다.
'경복궁 서측 걷기' 안내책자에는 1코스_예술산책길, 2코스_옛추억길, 3코스_골목여행길, 4코스_하늘풍경길로 걷기 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초행길이라면 코스를 따라 걷는 것이 아무래도 수월하다. 종종 골목에 숨어 찾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물어물어 찾아가는 용기, 서촌을 제대로 여행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출출하다면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서보자. 세종마을 금천교 시장 초입이 보인다. 〈체부동잔치집〉〈코끼리냉면집〉 등 서촌 맛집들이 모여 있다. 그게 아니라면 4번 출구로 가자. 대림미술관과 이제는 밑둥만 남은 '통의동 백송'을 지나 보안여관과 만난다. 통의동 백송은 큰길가의 안내판을 보고 골목으로 들어서서 다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나온다. 서촌에 자리한 대부분의 포인트들은 동선을 고려해 자리잡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계속해서 골목을 들고 나야 만날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경복궁 서문 영추문을 끼고 청와대로 향하는 길, 건너편으로 통의동 〈보안여관〉이 보인다. 얼핏봐도 심상치 않다. 간판은 달았지만 숙박은 할 수 없는 여관이다. 대신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1930년대에 오픈해 80여년 동안 '여관'으로 자리했다. 서정주 시인도 이곳에 묵으며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 보안여관은 돈 없는 예술가들이 무작정 상경해 자리를 잡기 전 장기투숙하던 공간이었다. 재개발 붐을 타고 사라질 뻔했으나 언젠가 예술가들을 품었던 공 덕분인지 예술가들이 힘을 합해 그를 구했다. 이름만 여관인 보안여관은 2010년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안여관을 지나 좌회전하면 큰 사거리가 나온다. 큰 사거리에서 직진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이곳이 '세종마을'이라 불리는 이유다. 중인들의 공간으로 알려진 서촌이지만 조선 초기 이곳에 살던 이들은 대부분 왕가와 연이 있는 이들이었다. 왕이 즉위 전에 살던 사가를 '잠저'라고 한다. 정확한 위치는 짚을 수 없지만 이 즈음에 세종대왕의 잠저가 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세종의 아버지 태조 이방원이 왕위를 차지하기 전의 일이었다.
조선초기에는 왕족이 살던 동네라. 그것도 세종대왕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니! 서촌이 품은 이야기는 과연 얼만큼일까? 계속 직진하다 〈옥인동부동산〉 골목으로 들어서면 서촌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대오서점〉이 나온다. 많은 이들이 이 낡고 낡은 서점에 열광한다. 조용하고 한적한 여느 주택가와 별 다를 바 없는 이 골목은 〈대오서점〉 덕분에 찾는 이들이 많다. 맞은편 세탁소 주인장은 "찾는 사람만 많지, 동네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별로 없다"고 얘기하면서도 이것저것 물어대는 객에게 답을 잊지 않는다.
〈대오서점〉에서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올라가다 삼거리가 나오면 큰길로 들어선다. 군인아파트 방향으로 올라가면 왼쪽으로 〈송석원터〉가 나온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황후 윤씨의 백부 윤덕영이 40개의 방을 지닌 프랑스풍 저택을 지어 '송석원'이라 불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구한말, 왕궁보다 거대한 '사가'를 지었다는 것으로 당시 혼란스럽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되돌아 내려가서 골목길로 들어서 〈옥인상점〉을 지나 〈박노수 가옥〉을 찾아보자. 이완용과 쌍벽을 이루던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1938년 지은 이층집이다. 지금은 종로구에서 미술관으로 새단장 중이라 들어설 수 없다. 〈윤동주 하숙집터〉를 지나 옛 옥인아파트가 있던 곳까지 걸음을 이으면 인왕산 수성동 계곡과 닿는다. 수백년의 시간을 묵묵히 품은 기린교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가 찾은 이들을 반긴다. 과거 언젠가, 이 자리에 섰을 그들 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땠을까.
< 서울 도보관광 6코스 경로 지도(서촌 한옥마을 개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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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예술촌이 부활했다,
세종마을 서울 즐기기 추천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