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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기 전후·해 지기 직전 생명력 넘치는 철새들 군무,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 선사
무슨 은밀한 신호라도 주고받았을까? 호수에 흩어져 쉬고 있던 가창오리들이 술렁이더니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른다. 흡사 벌떼처럼 무리지어 움직이는 가창오리 떼는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타원형을 그린다. 일직선으로 날다가 갑자기 원을 그리기도 한다. 수만 마리가 뒤엉켜 있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새들의 날갯짓 소리에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해질 무렵, 가창오리 떼가 군무(집단춤)를 선보이고 있는 해남 고천암호 풍경이다.
해남 고천암호·순천만·강진만 등 가창오리·흑두루미·백조 떼 서식
자연의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움을 가장 잘 1느낄 수 있는 소재 가운데 하나가 철새들의 군무(집단춤)다. 하늘을 나는 철새들의 역동적이면서 화려한 군무는 언제라도 신비롭다. 평상시에도 아름답지만 무리 지어 하는 날갯짓이야말로 ‘살아있는 자연’이다.
올해도 해남 고천암호와 순천만, 강진만 등 도내 철새 도래지에는 가창오리 떼와 흑두루미, 백조(큰고니) 등 겨울철새들이 찾아왔다. 철새들은 갈대밭과 갯벌 등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곡식 낟알을 주워 먹는 등 한가로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군무 등 멋진 볼거리로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겨울철새를 보기 위해 찾아드는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지자체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가창오리 떼가 찾아오는 해남군에선 보리와 밀 재배지 386㏊를 철새쉼터로 조성하고 수확이 끝난 논 110㏊에 볏짚을 남겨두는 등 겨울철새의 월동을 돕고 있다. 순천시도 수확이 끝난 논 250㏊에 볏짚을 남겨두고, 순천만에 인접한 70㏊ 규모의 보리밭을 철새쉼터로 조성했다. 흑두루미의 안전한 서식을 위해 순천만 농경지 내의 전봇대 280여개도 철거했다.
철새들의 군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이른바 탐조시간은 해뜨기 전후 2시간과 해지기 직전이 최적이다. 이때 먹이활동을 위한 날갯짓을 하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찾아가 관찰하는 것을 흔히 ‘탐조여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단지 새를 구경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탐조여행의 본질은 날갯짓을 하는 새도 새이지만 자연 속의 질서를 보는 것.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자연의 정직성을 느껴보는 것이다. 철새 떼와 갯벌 그리고 갈대밭이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을 느끼는 여행이기도 하다.
올 겨울, 가족과 함께 자연의 신비를 느껴볼 수 있는 탐조여행 계획해 보는 것도 좋겠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생태체험 학습장으로도 이만한 곳이 없다.
해남고천암 가창오리떼의 군무
해남 고천암호, 가창오리 떼의 화려한 군무
호수에 흩어져 쉬고 있던 가창오리들이 서서히 술렁이기 시작한다. 수만 마리의 술렁임이 마치 파도타기라도 하는 것 같다.
순간 날갯짓이 시작된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꺼번에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 일사불란하다. 잘 훈련된 전투기 편대의 비행 같다.
해질녘 석양으로 지는 노을 속을 무리 지어 나는 가창오리 떼의 군무는 붉은 하늘과 호수, 갈대바다와 어우러져 절정을 이룬다.
이를 보고 어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새떼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군무”라고 했다.
가창오리 떼의 군무는 해마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펼쳐진다.
가창오리 떼는 주로 낮에 고천암호의 물위에서 쉬다가 해가 저물 무렵이 되면 몸 풀기에 들어간다. 땅 위의 먹이를 찾아 이동을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몸이 적당히 은폐될 만큼 어둠이 섞인 시간에 날갯짓을 시작한 가창오리 떼는 무슨 내밀한 신호라도 주고받았는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타원형을 만들고 둥그런 원도 그리며 이리저리 날다가 하늘이 거의 잿빛으로 변할 무렵 어디론가 사라진다.
고천암호가 겨울철새들에 인기를 끄는 것은 영암호, 금호호 등 크고 작은 호수가 있고 주변에 드넓은 곡창지대와 갈대숲이 있어 새들의 보금자리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영산강과 남도의 갯벌이 있어 먹이가 풍부한 것도 갈 곳을 잃어가는 철새들이 찾아드는 이유다. 겨울에도 호수가 얼지 않는 따스한 기후도 철새들을 유혹한다.
여기에선 가창오리 외에도 먹황새와 독수리 등 희귀철새도 볼 수 있다. 갈대밭도 드넓다. 갈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정취는 덤이다.
☞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국도 광산나들목-13번국도-나주-해남읍-내사리-고천암호
○ 서해안고속국도 목포나들목-2번국도-독천-성전-해남읍-내사리-고천암호
순천만의천연기념물 흑두루미.
순천 순천만, 천연기념물 흑두루미의 비상
순천만은 사철 아름다운 곳이다. 지난 가을에는 멀리 수평선까지 빽빽하게 이어진 갈대밭으로 감동을 주더니 연이어 철새 도래지가 되어 겨울의 멋을 보여준다.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검은머리 갈매기, 청둥오리, 흑부리오리, 민물도요새 등이 무리지어 나는 모습은 평소 물이 빠졌을 때 길게 S자를 그려내는 뻘밭과 갈대 가득한 순천만의 아름다움에 비례한다.
한국에서 가장 질이 좋고 건강한 습지라는 순천만. 갈대와 갯벌이 잘 보존돼 있어 철새들의 먹이가 다양하고 풍부해 다양한 갯벌생물과 희귀 철새들이 터전으로 삼기에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먹이를 찾아다니는 철새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자연생태공원이 있어 탐조도 편리하다. 보트를 타고 갈대 사이에 난 물길로 이동해서 바다로 나가 볼 수도 있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관찰데크가 갈대숲 안으로 이어져 있어 산책하듯 철새들을 만날 수도 있다.
계절 따라 일곱 가지로 색이 바뀐다는 칠면초도 겨울 순천만의 삭막함을 없애준다. 갯벌과 갈대숲 사이에서 붉은 색에 가까운 진자줏빛 칠면초가 갈꽃과 어우러진 갯벌 풍경도 발길을 붙잡는다.
노을도 황홀하다. 해질녘 순천만은 시시각각 그 색을 달리 한다. 햇살을 받은 갈대꽃은 황금색으로 빛을 내고 칠면초 군락은 물결처럼 흔들리면서 더욱 붉어진다. 갈대밭 사이로 S자를 그려내는 구부러진 물길, 그 위로 내려앉는 물안개의 어우러짐도 환상적이다.
일몰은 순천만 동쪽의 해룡면 농주리 해안이나 언덕이 좋다. 와온마을과 와포리와 우산리도 호젓한 일몰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국도 순천나들목-2번국도(벌교방향)-818번지방도-대대동 갈대밭
○ 서해안고속국도 목포나들목-2번국도-강진-벌교-818번지방도-대대동 갈대밭
강진만의 고니.
강진 강진만, 큰고니 노니는 ‘백조의 호수’
강진만은 겨울 진객인 백조(큰고니)들이 노니는 ‘백조의 호수’다. 백조는 해뜰 때 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새. 역광을 받아 검은색으로 빛나던 백조는 태양의 높이에 따라 황금색에서 순백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백조는 강진만 상류 구강포(九江浦)에서 쉽게 관찰된다. 강진만 북동쪽 칠량면 송로리 구로마을 제방, 그 반대편인 강진읍 남포마을에서 흔히 보인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품은 만덕산 아래 남포둑에서도 관찰된다. 도암면 만덕리 신평마을(해창포구) 철새관측소에서 남포마을에 이르는 3.5㎞ 비포장 제방길도 괜찮다.
백조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11월부터 찾아와 이듬해 3월까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이 기간 강진만은 백조 1000여 마리를 비롯 큰기러기, 청둥오리, 물오리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강진만이 이처럼 철새 도래지가 된 것은 예부터 청정했던 이곳에 갯지렁이나 게, 수초 뿌리 등 먹이가 풍부한 때문이다.
구강포는 둑이 높은데다 서식지도 가까워 쌍안경이 없더라도 백조를 탐조할 수 있다. 게다가 백조는 자동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여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차 안에서 보는 게 제일 좋다. 그러다가도 사람이 차에서 내려 움직이면 백조들 스스로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일쑤다.
강진군은 오는 2011년까지 20억원을 들여 강진만 일대에 친수공원을 조성, 탐조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계획이다.
☞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국도 광산나들목-나주-영암-강진-도암(완도방면)-구강포
○ 서해안고속국도 목포나들목-독천-강진-도암(완도방면)-구강포
해남 고천암.
녹색의 땅 전남새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