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 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ㅡ《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이 시는 1980년대 가족과 사회의 해체, 인간의 해체로 인한 부조리한 현실과 상황을 섬뜩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개인에서 사회로 점점 확산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시인이 느끼는 고통은 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아프게 전달된다. '그날'이란 어떤 특정한 날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는 날들 중에 시인이 의미를 부여하여 지칭한 날에 불과하다. 현실의 삶이 병들고 부조리하게 타락했을지라도 그것을 그렇게 느끼는 것은 시인의 의식이다. 현실은 항상 위기였고 생각 있는 자의 비판의 대상이었다. 사회와 국가 전체가 병들고 타락했을 수도 있지만 시인은 그것을 한 가족의 일상사를 통하여 해부하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에서 궁핍하고 병든 현실사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성복은 이와 같은 현실을 '유곽'이라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다. 그의 문단 데뷔 시 제목이 <정든 유곽>이라는 것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이것은 전통사회가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파괴되어 해체되고 기성사회의 의식구조와 권위와 관습이 추악하게 바뀌고 변화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아픔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이 점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에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이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 시가 발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모든 것이 정화되고 올바른 자리로 돌아갔는가는 의심스럽다.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김원호 지음
맹태영 옮겨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