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88올림픽 뒤부터 “엄마, 내 몸이 이상해.”, “아빠, 내 마음이 이상해.” 하고 경고음을 계속 울렸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아이들이 몸으로 보여 준 항변이 바로 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아토피 피부염이다. 나날이 늘고 있는 아이들의 아토피 피부염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아토피 피부염은 아이들의 병든 몸과 마음의 상징적 호소이다.
자연 출산으로 태어나 엄마 젖과 자연 이유식과 생명의 밥을 먹고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면서 자란 예전의 아이들에게는 아토피가 없었다. 아토피는 지난 삼사십 년 동안 어른들이 저지른 자연 생태계 파괴의 업보이다. 산업혁명이라 칭송했던 산업문명이 낳은 ‘독의 홍수’ 즉, 극심해진 환경오염 때문에 아이들의 아토피가 급증하고 있다. 지금 어린 아이 열 명 가운데 서너 명이 아토피를 앓고 있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 강신영, 부산대 유아교육과아토피(Atopy)는 그리스어 어원으로 ‘기묘한’, ‘뜻을 알 수 없는’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아토피는 그 어원에서 짐작하듯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한자어로 말하면 일종의 ‘괴질(怪疾)’인 셈이다. 아토피의 원인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뒤엉켜 잘 알 수 없다보니 병원, 한의원, 민간요법 등 온갖 치료법을 동원해보지만 잘 낳지 않는다. 원인을 잘 모르니 치료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토피는 잘 모르지만 태열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아토피와 태열의 관계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서로 관계가 있다는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 아토피와 태열의 관계에 대해 ‘형제간이다’, ‘사촌간이다’, ‘팔촌간이다’ 등 의사나 학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어떻든 ‘같은 문중’으로 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태열을 알면 아토피를 짐작할 수 있다.
태열은 말 그대로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이나 피부에 나타나는 열꽃 증상을 말한다. 태열은 아기의 몸에 유입된 오염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열꽃 증상이다. 예전에는 태열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아빠 몸이 건강하고 엄마 양수가 깨끗하고 자연 출산으로 태어나 배내똥을 누고 초유와 모유 먹고 자란 아기는 몸이 깨끗하고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이 강하니 태열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태열이 약간 있다고 하더라도 삼칠이나 백일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 백일이 지난 뒤에도 태열이 사라지지 않아 걱정하면 예전 할머니는 “발바닥에 흙 묻히면 금방 나을 것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신다. 돌 이전까지의 이런 열꽃 증상을 태열이라 하고, 돌 이후에도 지속되거나 어느 시기에 나타나는 태열 증상을 아토피라고 한다. 예전에는 태열도 잘 없었으니 아토피 증상은 더욱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아토피 피부염은 두세 돌짜리 어린 아기는 물론 나이에 상관없이 나타나고 있다. 아토피 피부염은 피부가 매우 가렵고, 긁으면 진물이나 상처가 나고 심해지면 코끼리 피부처럼 거칠어지고 검붉게 변해 바깥출입도 어렵게 한다. 그렇다면 아토피 피부염이 왜 88올림픽 뒤 9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번지게 된 것인가? 한마디로 88올림픽 뒤 ‘코카콜라와 맥도날드의 상륙’으로 상징되는 급속한 서구화·산업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1964년 동경 올림픽 뒤 1970년대부터 아토피가 급증해졌으며, 중국은 2008년 북경 올림픽 뒤 2010년대부터 아토피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 강신영, 부산대 유아교육과 한편 아토피 증가 요인으로 아기를 낳는 산모의 양수가 예전에 비해 8~10% 정도 오염되었기 때문이라는 색다른 주장도 있다. 처녀 시절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기에 양수가 오염되었느냐는 말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환경오염의 심화, 양육환경의 악화, 식의주 생활의 서구화, 생활리듬의 파괴, 스트레스 증가 등으로 인해 아기들의 면역체계와 건강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자연의 이치와 조상의 지혜를 외면한 현대인의 식의주 생활이 아이들 아토피 증가의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아토피 원인과 대책은 굳이 과학적·실증적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 상식 수준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토피 아이를 낳은 제1세대가 누군가를 밝히면 아토피의 원인과 대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십 수 년 전에 오랜 고민을 통해 아토피 아이를 낳은 제1세대를 찾아냈다. 그들은 1970년대에 태어나 자란 세대이다. 왜 이들이 아토피 아이를 낳게 되었을까? 이들은 경제개발의 ‘혜택(?)’을 직접 몸으로 듬뿍 받으면서 자란 세대이다. 매우 상징적이긴 하지만 그들의 지난 생활사를 되돌아보면 아토피 아이가 탄생하게 된 사연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상급학년 시절 오후 수업 한다고 도시락 싸 가면서 도시락 반찬으로 햄·소시지를 싸가기 시작한 첫 세대이다. 전 세대들이 김치, 장아치, 멸치 등 ‘치’자 돌림의 도시락 반찬을 싸갈 때, 이들은 우아하게 햄·소시지 반찬을 싸가기 시작해 지금까지 20년 이상 먹다보니 몸에 배였다. 그러다보니 집안 냉장고 문 열면 햄·소시지가 제품별로, 크기별로 잔뜩 들어있다. 아이가 아토피로 북북 긁고 있는데도 아이 반찬 한다면서 냉장고에서 햄·소시지 꺼내 칼로 줄줄 썰어 후라이팬에 지지직 구워서 벌건 것 잔뜩 발라 자기도 먹고 아이도 먹인다.
중학교 시절에는 라면을 늘 달고 먹은 세대이다. 사흘만 라면을 안 먹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세대이다. 아이가 아토피로 북북 긁고 있는 지금도 밥하기 싫으면 그냥 라면 끓여 자기도 먹고 아이도 먹이고, 옆에 있는 남편 함께 먹는다. 싫은 내색 없이 먹는 것이 남편의 도리다. 집안의 평화를 위한 길임을 익히 알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빵순이·빵돌이 세대’로 자랐다. 예나 지금이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대입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가 자정 무렵에 귀가하는 생활의 연속이다. 어머니께서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주시지만 제대로 먹고 가는 학생 2-3명, 안 먹고 가는 학생 7-8명이다. 아침밥 안 먹고 간 학생 1교시나 2교시 마치기 무섭게 매점에 뛰어가서 빵과 우유를 3년 내내 먹어왔다. 습기 찬 한 여름에 한 달을 밖에 두어도 썩지 않는 ‘방부제 빵’을 말이다. 몸에 배인 그 습성 어디 가겠는가? 지금도 아이 생일, 남편 생일이면 으레 케익 사다가 먹고 얼굴에 찍어 바르기도 한다.
대학이나 직장 다니던 연애시절, 손잡고 다니면서 뭘 먹고 사랑을 나누었겠는가? 주머니 사정이 괜찮을 때는 피자 먹고, 주머니 사정이 어려울 때는 햄버거 먹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하여 사랑이 무르익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았다. 어떤 아기를 낳았겠는가? 그 해답은 바로 ‘아토피 아이’다. 그것도 ‘순정품 아토피 아이’다. 이렇게 하여 대한민국에 아토피 아이가 처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감탄할 만한 일인가?
» 강신영, 부산대 유아교육과결국 ‘피자 엄마와 햄버거 아빠가 아토피 아이를 낳았다’는 위와 같은 견해를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해도 좋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토피 아이가 낫는 듯 하다가도 햄·소시지 반찬이나 라면이나 빵, 우유나 피자, 햄버거를 먹고 나면 다시 뒤집어지는 것을 몸으로 익히 알고 있다. 정농회 회장 임락경 목사가 아토피를 환경병으로 규정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시골 농사꾼의 흙투성이 자녀들에게는 거의 없고, 도시의 빌딩 숲 속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병원균을 찾아내 치료하는 이들의 자녀에게 더 많은 병이다. 아이가 흙을 피해서 생긴 병이 ‘아토피(兒土避)’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흙을 피하고 자연과 멀어지는 반생태적·황색 식의주 생활이 아이들의 아토피를 만든다. 아토피를 치료하려면 식의주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 반생태적 생활에서 생태적 생활로, 황색 생활에서 녹색 생활로, 에코맘(Ecomom)의 생태적 삶(Eco Life)이 아토피 없는 에코키드(Ecokid)로 키운다.
한겨레신문사 육아사이트
baby tree(http://babytree.hani.co.kr)에 놀이 ․ 교육
‘임재택의 생태유아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1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