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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1일 서울 대학로에 자리한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사무실에서 두 시간여에 걸쳐 “우리 시대의 성모 마리아 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나자렛의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고백해 왔으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그분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해서 상경지례(上敬之禮)로 표현하며 지극한 공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지나친 성모신심은 나주 성모발현사건 등의 기복적인 사적계시로 왜곡되어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 신앙 안에서 마리아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지나친 성모신심의 문제점을 살펴보며, 오늘날에 바라는 새로운 마리아상을 조명해 보려고 한다. 이 논의에 참여해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표시한다. -편집자 [토론] - 김선실 /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전임 대표 - 최우혁 / 서강대 종교연구소 선임 연구원 [진행] - 한상봉 지금여기 편집국장 [정리] - 정현진 기자 |
▲ 골판지에 그린 송용민 작, '아줌마'
복되신 마리아, 우리들의 ‘아줌마’
한상봉 :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사무실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사무실에서 들어오니 벽에 걸린 그림에 눈이 갑니다. 먼저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김선실 : ‘아줌마’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 옆에 서 있으면 누구나 그림의 인물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돼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하고 평범한 아줌마의 모습이죠. 송용민이라는 민중작가의 작품인데 2001년 송 작가의 전시회가 열렸을 때, 작품 중에서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천주교 여성공동체 이미지에 맞는 것을 한 점 모셔왔습니다. 특히 박장대소하면서 웃는 모습이 굉장히 좋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실제 경기도 마석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어느 아주머니가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여성의 모습이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낙천적으로 환하게 웃는 모습과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힘이 느껴져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었습니다.
흔히 구할 수 있는 골판지에 그린 그림이라서 더 정감이 가고, 여성운동에 던져주는 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헤쳐 가는 여성들의 긍정성과 생명력, 그런 모습은 결국 여성들이 가져야 하고 신앙 안에서 추구해야 하는 충만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분을 닮고 싶고 따르고 싶어집니다. 아마 우리가 오늘 이야기할 마리아도 그런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최우혁 : 그림이 아주 편안해 보입니다. 동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아줌마, 우리 동네 재래시장에서 콩나물을 파는 아주머니의 모습과 닮았어요. 콩나물 한 봉지를 팔면서도 어떻게 요리해 먹으면 맛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아주머니죠.
김선실 : 어려운 중에도 상황에 찌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극복해서 환하고 즐겁게 사는 이들이 있어요. 삶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입니다.
복되신 마리아, 불행을 극복한 여성
한상봉 : 이 그림을 보면서, 성경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모 마리아는 우리 삶과 너무 높이, 너무 멀리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우혁 : 성경을 읽으면, 출산을 하자마자 피난민이 되어 어린 아들과 함께 이집트로 떠나야 했던 마리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주민으로 뿌리도 없이 남의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이주 노동자의 삶이 그러하겠지요. 남편인 요셉이 일찍 죽고, 홀몸으로 자식을 어렵사리 키우고, 다 큰 자식 예수는 죽을 자리를 찾는 사람처럼 위험에 놓여 있었죠. 결국 아들을 먼저 저승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정말 불운한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서 마리아는 그림의 아주머니처럼 환하게 웃으며 아들의 제자들에게 예수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어린 시절에 있었을 법한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테죠. 성경에 나오는 탄생 및 유년기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마 제자들은 역사상 묻혀 있는 예수 이야기들을 마리아에게서 들었을 것입니다.
김선실 : 예수가 죽었을 때 마리아는 40대 중반 이후 중년기의 여성이었을 텐데, 그림의 아주머니와 비슷한 연배일 것 같아요. 장성한 아들의 처절한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마리아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커다란 한을 가진 여인이었지요. 그렇지만 이 슬픔을 뛰어넘어 제자들과 함께 아들의 뜻, 아들이 하고자 했던 일을 잇고자 인류와 세상을 위해 살았던 모습이 더욱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대범하고 긍정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정말 ‘복된 여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된 여인’이라는 칭호는 마리아영보 때부터 받았지만, 사실 세속적으로는 복된 인생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결국엔 모든 것을 감내함으로써 스스로 복된 여인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굴곡 많은 삶을 살았던 할머니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자리를 지켜내며 꿋꿋하게 살아내시는 모습을 보며, 주변에선 “그만하면 참 잘 살았다. 복 받은 인생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이소선, 배은심 등 유가협 어머니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자식을 잃고 피눈물 나는 세월을 싸우며 살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아낸 연륜만큼 예전보다 훨씬 큰 어르신으로 서 계십니다. 자식을 잃고 통곡했지만, 이 때문에 더 많은 자식을 얻고, 더 넓은 세상을 위해 마음 쓰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힘을 얻어요. 이렇게 새삼 다른 이들에게 힘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변하신 분을 ‘복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성모 마리아도 그런 분이십니다.
▲죽은 마리아의 영혼이 아기가 되어 예수의 품에 안겨 있다.
성모승천, 여왕 이미지의 성모 마리아?
한상봉 : 오는 8월 15일은 성모승천대축일인데, 이것을 혹시 그분 (성모 마리아)의 복이 하늘에 닿았다는 은유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 최우혁 씨
최우혁 : ‘성모승천’은 초기교회에서부터 민간에서 믿어왔던 신앙입니다. 동방교회의 이콘(성화)을 보면, 임종을 맞는 마리아 곁에 제자들이 모여 있고, 부활한 예수가 와서 아기 모습을 한 마리아의 영혼을 안고 있습니다. 하늘에 오르는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 예수의 품에서 어린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의 여왕으로 받들어지기 이전에 아기의 모습으로 하늘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던 것이 초기교회의 성모신앙이었다고 하겠지요.
민간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영혼이 하늘에 살아계신다고 믿었는데, 점점 마리아의 몸과 마음이 모두 살아계신다는 믿음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영혼이 올라가셨지만 예수가 부활하신 것처럼 성모 마리아도 온전히 살아계신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주무시고 계신다.’ (Dormitio) 고 표현했습니다. 소박한 신앙이었지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에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성모승천 교리가 선포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모님이 승천한 것처럼 ‘죽은 이들도 승천한다'는 교리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성모승천 전승이 교리로 선포되면서, 그 의미가 협소해지고, 오랜 전승의 맥을 잃게 되면서 정교회나 개신교 측의 비난을 받게 됩니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이 선포한 ’원죄 없는 잉태’ 교리처럼 ‘성모승천’의 교리는 초기교회의 생생한 믿음을 규격화시켜 생동감을 잃게 되었습니다.
한상봉 : 전쟁 때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성모승천 교리가 선포되었다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리의 배경은 무엇인가요?
최우혁 : 비오 9세 교황이 ‘원죄 없는 잉태’ 교리를 선포할 당시는 교황권이 정점에 달하는 동시에 모든 세속 권력과 영토를 잃어버린 시기입니다. 교황은 다만 정신적 지도자라는 위상만 남게 되면서, 흠 없는 하느님을 대표하는 교황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모 마리아에 주목하게 됩니다. ‘원죄 없는 상태에서 예수를 잉태한 성모 마리아’에 관한 이콘을 보면, 마리아는 순결한 처녀, 지고지순한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요. 교회가 세속적인 권력을 다 끊고 거룩하고 순결한 이미지로 가는 것이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였지요.
한상봉 : 그러면 이 교리 역시 신학적 상징이라고 봐야 하겠죠.
김선실 : 이 교리 역시 교리화 되기 전에 이미 신자들 사이에서 전승되던 믿음이었는데 공식화된 것입니다.
한상봉 : 대중적 갈망이 성모 마리아에게 투사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최우혁 : 여신(女神)적 요소가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죠.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는 여신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여신의 이미지가 교회 안에서는 성모 마리아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한상봉 : 성화 중에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에 대한 묘사가 있더군요.
최우혁 : 중세에 들어와서 나타난 모습입니다. 승천 이후, 천상의 여왕으로서 관을 받는 것이죠. 그러나 성모님이 그렇게 표현될수록 일반 여성의 지위는 떨어집니다. 성모님만 하늘에 계시고 다른 여성들은 바닥에 있기 때문이죠. 교회 안에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가 있었습니다. 여성은 출산의 주체나 성적 대상으로서만 인식되었고, 그 이상의 지위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여성들이 비하됨으로써 성모님은 상대적으로 성스럽고 이상적인 여성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상봉 : 남성들에게 정복당하지 않은 여인, 흠 없고 순결한 여인인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가 그것 인가요?
최우혁 : 그렇지요. 1200년대 단테의 <신곡>에서 천상여왕의 이미지가 등장하지요. 성모승천에 관한 고대교회의 이콘은 아기의 모습으로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인 데 비해 단테 이후에 시작되는 성모님의 여왕 이미지를 중세교회에서 받아들이게 된 것이고, 이콘의 묘사도 마리아가 황금 왕관을 쓴 하늘의 여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모신심, 민간신앙인가? 교권의 교두보인가?
▲ 인천교구 '바다의 별' 성모상. 인천교구는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이해 이 성모상을 지구별로 나누어주고, 본당순회를 하고 있다.
한상봉 : 작년에 안동교구 40주년을 맞이해 보통의 하얗고 소박한 모습의 성모상 거동행사가 있었는데, 올해는 인천교구에서 화려한 왕관을 쓴 ‘바다의 별 성모상’을 만들어 본당으로 거동행사를 하면서 보급하고 있습니다. 인천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으로 ‘새 성령강림 5050’운동을 전개하는데, 50주년 되는 2011년까지 50만 명의 신자 만들기 운동을 벌이는 거죠. 굳이 인천교구 등에서 공식적으로 그런 마리아 이미지를 운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최우혁 : 유럽에도 그런 전통이 있었고, 요한 바오로 2세는 특별히 파티마의 성모상을 좋아했습니다. 여기서 나주 성모에 대해 말할 필요를 느낍니다.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가 주는 위로와 신심이 필요한데, 현재 나주 성모의 경우엔 교도권과 갈등관계에 있습니다. 나라마다 민간신앙 차원에서 상징적인 성지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발현 사화도 없고 대표적인 성모 성지도 없습니다.
신자들은 성모님이 필요합니다. 현재 광주대교구와 나주의 입장이 달라서 갈등을 빚고 있는데, 교회사 안에서 성모님은 위로자 어머니로 기능을 해 왔습니다.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민간신앙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살면서 힘들 때마다 도움을 받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신앙의 대상을 찾게 되는데, 성모님이 바로 그분인 것입니다.
▲ 나주 율리아 씨는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주 성모의 경우, 예전에 활동했던 봉사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의 견해로는 초기엔 성모님에 대한 순수한 원(原) 경험이 있었을 것인데 지금은 왜곡되었고 점점 상업화된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나주 성모와 관련된 원체험이 율리아의 체험이 아닐 수도 있지만, 뭔가 시작점은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초기에 어떤 씨앗이 있었다면, 그것을 찾아내서 신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어야 합니다. 나주 성모 문제는 교권이 개입하는 교회의 쟁점이 되었고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메주고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곳도 지역의 주교들이 반대해서 성모성지로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성지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메주고리로 가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나주로 온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뭔가 있기 때문에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겠지요. 이런 현상들을 단순히 교도권 차원에서 금지만 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봅니다.
상주 데레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주 데레사가 증언한 성모발현사건을 다룬 자료 중에는 한국전쟁 직후 태극기 위에 발현한 성모님을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호국적 신앙을 호소하는 신앙이 담긴 그림이지요. 성모발현 사건은 신자들의 갈망에 대한 응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농담처럼 이야기하자면, 한국교회의 200년이 넘는 역사에 성모발현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부끄러운 일이죠. 상주 데레사 사건이나 나주 성모 발현사건의 경우에 원체험을 발견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차원에서 살아있는 성모신심의 싹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공동선을 위하여 건전한 신앙실천의 모양을 갖추도록 성숙시켜야 할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교권 차원이 아니라 원로신학자들을 통해 이 일들의 근원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원체험의 가능성과 체험이 시작된 시점, 오염되기 전의 씨앗을 밝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가 그 정도의 진실을 밝히고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고 봅니다. 그 안에서 성모님에게서 오는 위로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식민지와 전쟁 등 역사적 격동을 많이 겪었고, 성모신심은 대표적인 신앙의 표현양식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인정하는 성모성지가 없습니다. 교구 차원에서 시작된 최근의 성모신심 운동, 인천교구에서 ‘바다의 별’이라는 공식화된 성모상을 제시한 것 등은 나주 성모를 공경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성모신심을 감싸 안을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겠지요. 신자들의 자발성과 갈망에서 시작되었는가와 그 성격의 자연스러움이 운동의 성패를 이끌어내겠지요.
▲김선실 씨는 사적 계시로 알려진 성모 사건들이 개인의 위로 차원을 넘어서야 제대로 된 성모신심이라고 강조한다.(사진/한상봉 기자)
성모신심, 개인의 욕구에서 공동선의 지향으로 확대되어야
한상봉 : 특정한 역사적 격변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많을 때, 그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고 시대의 상황을 상징하는 성모발현 같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들리는데, 그래도 여전히 사적 계시와 연관된 이런 사건들은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일종의 추문으로 비추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 김선실 씨는 환하게 웃는 여성의 모습에서 고난 받는 여성의 희망을 건져 올린다.
김선실 : 사실 상주 데레사나 나주 율리아 문제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기복신앙화 되어 있는 현실인데, 교구에서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습니까? 상주 데레사, 나주 율리아 문제들도 처음에 순수한 체험이 있다 해도 타인에게 영향을 주게 되면서, 부풀려지고 불순한 의도가 생긴 것이지요. 설령 원체험이 있었다 해도, 그게 개인적인 위로 차원에 그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제대로 된 체험이라면 공동선과 불의한 사회구조에 대한 변화를 갈망하는 마니피캇의 의미가 성모신심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를 생생하게 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성모신심을 그렇게 개인적이고 기복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의도가 상당히 불순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들은 성모, 기적 운운하면서 개인적인 이익까지 취합니다. 원체험을 다시 볼 수도 있겠지만, 너무 많이 왜곡된 것 같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주는 깊은 차원의 구원과 치유는 개인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넘어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그 여부에 따라 진정성이 밝혀진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교구조차도 막연히 성모 마리아만 내세우면 신자들이 따라오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마리아 신심을 단순히 수많은 여성을 동원하는 데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중세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는 일반여성들과는 동떨어진 존재였지요. 오직 성모님만이 천상에 있고, 우리는 아래서 바라만 볼 뿐, 현실의 여성들과는 어떤 연관도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성모 마리아는 구원도, 위로와 치유도 줄 수 없습니다.
멀리 있는 성모 마리아를 우리 곁으로 모셔야 합니다. 여성 신학자들이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는 첫 번째 관점은 하늘의 성모 마리아를 일상적 삶 속에서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이지요. 그분이 다시 하늘로 가더라도,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갈 때는 뭔가 다를 것입니다. 여성들과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원죄를 타고난 인간이지만 원죄 없는 상태를 지향하는데, 그 표상이 마리아라면 먼저 성모 마리아가 우리 옆으로 내려와야 하지요.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여야 합니다. 우리처럼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한 ‘우리와 같은 마리아’, 동시에 세상에서 참되게 사는 여성들을 보면서 성모 마리아의 흔적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새삼 주변을 돌아보면 언제나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니피캇에 나타난 마리아처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이웃과 세상에 활짝 열려 있으며, 하느님 안에서 내적 충만함이 채워져 생활고 속에서도 긍정성을 잃지 않고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분들이야말로 성모신심을 실천하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우리와 같은 마리아’를 따라 세상 한복판에서 마리아처럼 사는 분이지요.
성모발현은 민중들의 요구에 대한 응답
▲ 1531년 12월 9일 멕시코 원주민 요한 디에고에게 나타난 과달루페의 성모. 이때는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지 40년,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10년째 되는 해로서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 언덕이었고, 성모님은 인디안의 피부를 하고 장밋빛 옷에 푸른 망토를 두르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발현하였다.
한상봉 : 성모발현 등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지 아닌지 저로선 확인할 도리가 없지만, 그러한 현상의 배후를 어떻게 봐야 할까, 고민이 됩니다.
최우혁 : 성모 발현사건들은 대중의 요구와 갈망이 자발적으로 드러난 경우라고 봐야 해요. 모든 발현은 자발적이었는데 특히 긍정적으로 소화된 것이 루르드의 성모입니다. 루르드 역시 처음에는 단죄 받았지만, 점차 교구에서 인정하고 교구성지로서 개발되어 건강한 신앙으로 확산했습니다.
메주고리도 교권과 수도회가 이해관계로 얽혀서 충돌하면서, 목격자도 모두 떠나고 한 사람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성모 발현이 이루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모발현 자체는 하늘로 올라가 버린 성모 마리아에게서 민중들이 필요한 위로를 찾으려고 할 때 나타나는 민간신앙입니다. 발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는가가 문제입니다. 성모발현 사건 가운데 귀족들이나 권력자에게 성모님이 나타난 경우는 없습니다. 상주 데레사 역시 글도 모르는 할머니였습니다.
한상봉 : 성모발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문제라는 뜻이군요.
최우혁: 나주와 루르드를 그렇게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성모발현이 일어났을 때, 교회가 신앙의 신비를 어떻게 수용하는지가 중요한데, 교회가 능동적으로 수용하지 못해서 왜곡될 수 있는 싹을 그냥 두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무관심했던 것이지요.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체험이 일어났을 때 그들 나름의 표현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잘 수용했다면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걸 교회가 버려둠으로써 이상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목격자들이 아직 살아있는 동안 왜곡된 현상 아래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차원에서 금지만 할 것이 아니라 민중의 언어를 받아들여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목격자들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태극기 위의 성모’일 수도 있고, ‘성체가 날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신앙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인가, 어느 차원까지 수용할 것인가는 대화하고 신학적 성찰을 거쳐서 밝힐 문제이지 교권으로 단죄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김선실 : 데레사나 율리아 뿐 아니라 그 밖에 많은 신자가 신앙체험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체험이 공적으로 드러날 때,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가 신앙적으로 건강하고, 공동선과 세상에 대한 사랑, 연민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체험한 사람과 주변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신앙이 중요합니다.
나주나 상주의 경우, 그들의 체험이 진실이라고 해도 그들의 신앙이나 그 주변의 신앙이 ‘기복신앙’이었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결국 아주 안 좋은 예가 되어버린 것이죠.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신앙 실천의 형태와 그 주변 환경이 지닌 한계입니다. 신앙체험을 건강하게 만들고 더 넓게 공감하게 하려면 주변의 환경과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신앙의 성숙도와 교회의 가르침이 맞물려 기복신앙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죠. 아직은 한국의 성모신심이 기존의 민간신앙과 기복신앙에 맞물려 있습니다.
최우혁 :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잘 분별할 능력만 있다면, 그리고 나주나 상주에서 이를 겸손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경험이 한국 교회의 유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상봉 : 나주와 상주뿐 아니라 결국 교회당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겠군요.
최우혁 : 나주 율리아나 상주 데레사나 신학적 차원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의 연구가 통합되어 공적인 차원에서 분석되고 해석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럴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기복신앙화 되었던 것입니다.
김선실 : 지금이라도 교회가 성모신심에 대한 분명한 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히 위로받으려고 기도하는 신앙이 아니라, 정작 마리아가 어떤 분인지, 그분의 신앙에서 무엇을 배우고 본받아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기복적인 마리아신앙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 루르드의 성모를 모방해 지은 대구 성모당에는 연일 신자들이 찾아와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사진/한상봉 기자)
마니피캇, 해방하는 마리아
한상봉 : 모든 신앙에는 기복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복’이 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제는 마리아 신심에서 지나치게 ‘기복신앙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겠지요.
최우혁 : 가톨릭교회의 신학은 기복적 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한 예로 2008년 10월 로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주제로 치러진 주교 시노드에서는 마니피캇 (마리아의 노래)과 Fiat,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의 성모님을 새롭게 보는 관점을 열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가 ‘예’라고 응답한 것은 단순히 ‘순종’하라는 뜻이 아니라, ‘아닌 것은 아니고 맞는 것은 맞다’고 말하는 ‘진리에 대한 응답’으로 발언한 ‘Fiat’이라는 것입니다. 에디트 슈타인 역시 ‘Fiat’의 성모 마리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마리아의 “예”라는 응답이 없었다면 예수 사건도 불가능했습니다. 마리아의 동의 없이 그리스도 사건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가톨릭교회의 성모신심을 기복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성모신심이 여신숭배처럼 왜곡된 역사가 교회사의 한 부분을 차지해온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선실 : 천주교 여성공동체에서 <왜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라는 책을 쓰면서 성모님과 관련해 가장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마니피캇입니다.
▲마니피캇, 산드로 보티첼리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김선실 : 성모 마리아의 Fiat (루카 1,38),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는 이 노래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전망을 보이고 몸소 실천하는 것이지요. 성모 마리아는 복종과 순종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전망을 온 생으로 살아냈던 여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날마다 바치는 <성모송>에는 이러한 피아트와 마니피캇의 내용이 빠져 있어 참 아쉽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김선실 : <성모송>은 마니피캇을 다루고 있는데, 성모님에 대한 칭송과 빌어달라는 이야기만 실려 있고, 주님 자비의 내용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사회적 전망을 노래하는 부분이 함께 언급되어야, 시골처녀였던 마리아와 같은 가련한 백성에게 왜 ‘복이 왔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식과 가정만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가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지 고민하는 마리아, 더 나아가서는 온 우주까지 품어 안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본 위에서 뱀을 밟고 서 있는 성모님 상본이 있습니다. 그것이 원죄를 없애는 구원의 성모상이며, 예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구원을 가져오는 여성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동참하고 실천하는 여성의 모습입니다. 그런 여성은 결국 우리와 동떨어진 성모님이 아니라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우리와 같은 마리아’의 모습이지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연민이 넘쳐서 나라, 지구, 우주까지 품고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일상 안에서 충만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곧 우리의 성모신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리아, 새로운 인간의 모델
▲ 엘리사벳을 찾아 유다로 길을 떠난 마리아의 용기가 새삼스럽다.(마리아 반 갈렌 수녀 작품)
한상봉 : 마니피캇의 마리아는 ‘해방의 이미지’를 지닌 것 같습니다. 우리 자신의 ‘예’라는 응답이 사회적, 우주적 차원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을 마리아를 통해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최우혁 : Fiat로 응답한 성모 마리아였기에 마지막 고통의 성모님까지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 “Fiat” 라고 말할 수 있었기에 고통스러운 30여 년을 살았으며, 아들의 실패, 그리고 죽음 이후에 교회 안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분의 생애가 박해 가운데도 의연히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의 일생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80년대 운동권에서는 ‘어머니’하면 누구나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떠올렸듯이, 당시 교회에서도 예수의 제자들 누구에게나 마리아가 ‘어머니’로 불렸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는 단지 여성들만의 모델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델입니다. 마니피캇을 노래한 사람이 성모 마리아 개인이든 초대교회이든 상관없이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인의 대표자, 즉 교회가 됩니다. 진리에 대해 응답하는 성모 마리아라면 그 역할을 여성들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진리를 받아들이고 죽음까지 가는 새로운 인간의 모델로서 성모 마리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새로운 인간의 원형이라고 하지만, 교리적 차원에서 본다면, 그분은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신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가 완전한 인간이 되는데 인간인 마리아의 자발적 응답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의 응답 없이 구원은 없습니다. 처녀인 마리아가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간, 하느님의 짝인 신부가 되고, 성모가 된 것이 바로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한상봉 : 새로운 인간의 모델로서 예수 이전에 성모 마리아가 있었다는 말이군요.
최우혁 : 그렇지요. 평범한 사람들의 응답을 대표하는 마리아라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Fiat으로 대답한 마리아야말로 모든 신앙인의 새로운 모델이지요.
김선실 : 이미 교회의 모든 문헌에서 마리아를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간 중에서 가장 복된 분으로 말입니다.
최우혁 : 그렇게 고백했지만, 교회 문서들을 보면, 항상 마지막 장식처럼 마리아를 언급함으로써 그 진정성이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오히려 마리아의 처지에서 교회의 고백을 시작한다면 교회문헌은 선포가 아니라 고백의 성격이 될 것이고, 교회는 처녀의 순수한 고백과 어머니의 모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선실 : 고백은 충분하지만, 과연 교회에서 얼마나 이 내용을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영적 체험은 일상의 삶 속에서 녹여내야 할 부분인데, 그 체험에 집착해서 그것을 환상으로 만들고, 그 체험 위에 가상의 현실을 덧붙여 왜곡시켜 나가는 것은 문제이죠.
성지순례도 중독인가?
▲교회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한 성모신심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나주성모 현상은 나주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교회 전체에 일반화된 '부적'같은 신심이 문제다.(사진/한상봉 기자)
한상봉 : 대부분 종교인은 성지순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티베트 사람은 평생에 한 번은 만사를 접어두고 가야 할 성지가 있다고 믿더군요. 성모발현과 관련해 많은 성지가 상업적 측면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신앙인이 그곳에 가는 이유가 뭘까요?
최우혁 : 성지는 여전히 신앙인들에게 매력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슷한 갈망을 지니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성지에서 만나서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무릎으로 기어가며 기도하는 열심한 순례자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결국 성모발현이나 성지 그 자체보다도 그곳에 찾아온 사람들에게서 어떤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지순례는 하나의 경험으로서는 좋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성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모님을 만나는 것이지요.
김선실 : 성지순례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특정한 영적 체험을 찾아 여기저기 성지를 찾아다니는 것도 일종의 중독입니다. 지나친 것은 어느 것이나 좋지 않아요. 신자들이 많이 바치곤 하는 구일 기도 (54일 기도) 역시 그 기도의 틀 안에 갇혀서 기계적으로 염송하면서, 효과를 기대한다면 기복적인 부적이나 다를 바 없죠. 그런데 그런 기복적 신앙에 바탕을 둔 틀에 박힌 기도가 왜 성모신심에만 유독 많은지 모르겠어요. 가톨릭교회가 개신교 측에서 비판받는 게 그런 것 때문입니다. 왜곡된 성모신심에 대한 교회의 애매한 태도 때문이죠. 때로는 문제 삼고 때로는 여러 이유로 은근히 부추기는 태도 말입니다. 교회는 성모신심을 이용해 성직자에 대한 복종심을 독려하기도 합니다.
최우혁 : 저는 그동안 한 번도 유명한 성모성지에 다녀온 적이 없는데, 과달루페에는 한 번쯤 다녀오고 싶어요. 그 성모님의 자녀임을 확인받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나 봐요. 과달루페의 성모님의 눈에는 멕시코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희생당한 인디오들의 슬픔과 새로운 민중이 된 메스티조들의 희망이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분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가난한 민중이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 절망과 희망의 역동성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순례객의 행렬이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선실 : 그러나 여전히 남는 문제는 성모 마리아가 인간인 우리와는 동떨어진 존재, 즉 어떤 의미에서는 왜곡된 지나친 성모신심이 마리아를 신격화시키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한상봉 : 마리아가 하늘 높이 계신 분으로 신격화되면, 성모님과 가장 바닥에 있는 여성들 사이에 중간 존재가 생기는 법이죠. 영적 위계를 교권적 위계로 전환한 것이라 하겠지요. 독신자인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일반 여성들과 마리아 사이에서 영적 권력을 누리는 것입니다. 신자인 여성들에게 성모님의 위로를 전해 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복종을 요구하고, 교회의 권위는 영적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최우혁 : 그래서 마리아론 학자들은 마리아를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이용당한 여자라고 부르지요. 가장 무거운 짐을 아직도 지고, 아름다운 여왕으로 왜곡된 채로 신심 안에 갇혀 있는 성모 마리아라는 것입니다.
김선실 : 과연 성모 마리아가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사제들에게는 어떤 존재인지, 이론이 아닌 실증적인 연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아마 수도자들은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따라 다를 것으로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성모 마리아는 어떤 존재일까요?
한상봉 : 이제 우리 모두가 답을 찾아 떠나야 하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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