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진정한 레이니즘’ 지구환경공학자 한무영 서울대 교수 (월간 마음수련4월)
월간마음수련 마음으로 만난사람
“세계의 물 부족 문제 기술 보다 마음으로 풀어야죠 ”
한국의 빗물 지혜 알리는 ‘진정한 레이니즘’ 지구환경공학자 한무영 서울대 교수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농부의 마음과 똑같이 그 비를 기다려온 학자가 있다. 한무영 교수는 상하수 처리 분야 전문가다. 그는 어느 날 깨끗하지만 버려지고 있는 빗물에 눈길을 돌렸고, 그 후 10년째 빗물 연구와 활용 운동을 해오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했단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 빗물탱크가 설치됐고 레인시티를 만들겠다는 자치단체도 생겨났다. 베트남, 아프리카 같은 물 부족 국가들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선조들의 빗물 지혜를 마음으로 전하는 사람. ‘진정한 레이니즘’ 한무영 교수를 ‘물의 날’ 즈음해 만나보았다.
인터뷰 허진, 사진 김혜균
쯔나미 피해 지역 사람들도 살게 한 빗물 지혜
2004년 쯔나미(지진해일)로 수십만 명의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한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전 세계가 피해 지역 복구에 힘썼고, 그로부터 2년 후, 마음의 상처는 남았어도 삶은 복구되었을 것이라고 모두 예상했다. 그런데 당시 그곳을 방문한 한무영(54) 교수의 눈에 띈 것은 덩그러니 서 있는 빈집들이었다.
사람이 살지 못하고 떠나버린 유령마을 같은 땅. 먹을 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구하며 집만 뚝딱 지어줬을 뿐, 반다아체 이재민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인 ‘물’ 문제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2007년 1월 말, 한교수는 학부와 대학원생 12명을 데리고 다시 반다아체를 찾았다. 일반 주택과 보건소, 유치원 등에 5톤가량의 빗물 저장 물탱크를 설치해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주민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수십 억 달러의 비용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물 문제를 한무영 교수팀은 이틀 동안 단 300달러로 해결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는 한국보다 2배나 비가 더 오는데도 자기 소득의 30%를 물을 사 먹는 데 들여야 했단다. 하늘이 내려주는 빗물을 활용해 ‘영원한’ 물 공급을 보장받은 가난한 주민들의 기쁨과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 세계의 물 관련 전문가들은 다 본다는 국제물협회 발행 학술잡지 2007년 6월호 표지엔 ‘반다아체에서의 빗물 구호’라는 제목으로 한무영 교수의 빗물 봉사가 감동적으로 소개됐다.
그는 빗물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면 우리나라의 오지 마을에서부터 일본, 베트남, 아프리카까지 어디든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한 해만 14개국 55개 도시가 그를 찾았다. 사람들은 그를 ‘빗물 전도사’라고 불렀다. 하늘이 주시는 비를 그처럼 소중히 여기는 이가 또 있을까. 그는 빗물이면 전 세계가 직면해 있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씩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각국의 전문가들이 줄지어 견학을 오는 서울 광진구 주상복합빌딩 ‘스타시티’의 빗물 이용 시설은 독일과 미국의 관련 전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또 수원시가 도시 전체의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재활용하는, 이른바 ‘레인시티(빗물활용 도시)’ 구상도 현실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빗물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아니다. 여느 도시 사람들처럼 비가 오면 지저분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의 전공은 ‘수(水)처리’로, 그는 도시의 물 순환과 상하수의 처리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환경공학자였다.
그의 관련 논문은 2005년 전 세계의 환경공학?과학교수협의회(AEESP)에서 매년 한 편씩 선정하여 주는 최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그 내용이 물 관련 전문가들의 필독서인 미국의 대학교재에 수록되어 있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이었고, 오랜 검증과 기여도에 의해 선정해 대부분 원로에게 수여된다는 그 상을 그는 ‘최연소’로 수상해 더욱 화제가 되었다. 그런 명성만큼 자기 분야에서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계기가 있었다.
2000년 봄,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할 때였다. 처리할 물 자체가 없으니 전문지식도 무용지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비를 보며 문득 저 물은 뭐지? 깨끗한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저걸 다 버리고 있었구나, 가뭄에 목이 말라 하면서도 버리는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깨침이 온 거죠. 내가 하는 일이 깨끗한 물을 공급해주는 것인데, 오염된 물을 백 번 처리하기보다는 먼저 깨끗한 빗물을 모아 쓸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 그제야 든 거예요.”
아주 평범했지만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수처리 전문가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그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불모의 빗물 연구 분야로 뛰어드는 데에는 적잖은 고민이 뒤따랐다. 상하수 처리는 돈이 되지만 빗물을 모아서 쓰는 것은 돈이 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수십 년간 쌓아온 지식과 전문가로서의 명성도 쓸모가 없어진다는 점이었다. 경제적 보장과 명성을 내려놓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결국 그는 더 많은 사람들, 더 가난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선택이 자신에게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내가 배운 거 가지고 몇 사람을 살릴 것인가? 빗물 쪽으로 가면 많이 살리겠구나, 돈보다도 당장 물 없어서 쩔쩔매는 사람에게 방법만 가르쳐주면 되는 건데, 이런 건 교과서에도 없는 것 아닌가, 생각을 바꾼 거예요. 버리고 가자, 하고요.” 다 버리고 나면 참으로 다 있다던가. 개인적 이득을 희생한 결정이 오히려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안겨주었단다.
“빗물에 떨어진 먼지 제거하는 데 제 기술이 필요한 거예요. 빗물을 해도 수처리를 모르면 한계가 있어요. 과감히 버렸더니 다시 두 분야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할까요. 아무도 생각지 못한 분야를 처음으로 연구하다 보니까 선구적인 논문도 나오고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 거죠.”
빗물 연구에 뛰어들고 보니 식수난은 물론, 기후 변화에 의한 홍수와 가뭄, 에너지 과다 사용, 산불, 수질오염 문제 등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물 문제의 대부분이 빗물 관리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다. 그것도 아주 인간적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한 해법은 있다
그의 학문과 삶의 목표는 단순 명쾌해졌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Everybody Happy!)’ 일, 바로 빗물이었다. 그 후 그는 하루 24시간 빗물만 생각했다.
이 땅 어딘가에, 지구촌 어딘가에서 물 문제가 해결돼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었다. 진작 빗물을 알았더라면 거대한 댐 건설한다고 수몰민이 되어 고향에서 쫓겨난 가슴 아픈 사연들도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빗물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그는 궁리를 거듭했다. 그러나 처음엔 완고한 틀과 편견의 벽에 부딪쳤다. 사람들은 물의 순환에서 비의 중요성을 몰랐고, 또 산성비에 대해서 너무 과장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
“흔히들 빗물을 더럽다고 생각해요. 빗물이 흙에 떨어져서 흙탕물이 되는 것을 보고 저것이 빗물이다 생각하는데, 떨어지기 직전의 비는 완전히 생수보다도 깨끗한 물입니다. 또 산성비도 그 산성도가 오렌지주스보다도 훨씬 낮아요. 황사비를 중금속 덩어리라 하는데 그 수준을0.005ppm이라고 하면 음용수 식수 기준은 5ppm 정도이니 황사비가 수돗물의 1천분의 1인 셈이죠.”
그는 “특히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빗물은 최고의 청정수(淸淨水)” 라고 말한다.
만약 하루 종일 비가 온다면 처음 10~20분 동안을 제외한 다음의 비는 증류수와 다름이 없이 깨끗하다는 것. 우리는 이것을 다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전문가와 정부를 설득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빗물 연구를 한다고 할 때, 웃긴다고 했어요. ‘한무영 교수, 아직도 빗물 하냐?’라는 얘기를 듣곤 했고, 벌써 포기했을 거라는 비아냥거림도 받았어요. 그럴 땐 학문적으로 증명하자 다짐했죠.”
심지어는 ‘빗물은 경제성이 없다,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집집마다 빗물 이용 시설을 만들라 하니 행복추구권을 박탈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지금은 공공건물에 빗물 이용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자치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하지만 처음엔 관련 정부 부처에서도 부정적이었다. 한교수는 그런 어려움이 오히려 자신을 더 강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많은 어려움을 겪다 보니 단련을 받으면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거의 개발하게 됐어요. 어떤 문제가 와도 빗물에 대해서만큼은 답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빗물 연구를 하며 그가 더욱 확고히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자신의 빗물 연구가 한국인으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어떤 정신을 담은 과학이어야 하는지 그 뿌리를 찾게 된 것이다. 빗물을 받아 활용한 지혜의 원조는 우리 선조들이었다. 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저수지인 김제 벽골제는 당시의 규모와 수리기술적인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
이 기술은 후에 일본에 전해졌다. 조선시대에는 제언사(堤堰司)라는 관청을 만들고 제언절목(堤堰節目)이라는 조례와 지침을 만들어 수천 개의 저수지와 보를 만들어 관리를 했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기후 특성의 어려움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나갔는지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강우량은 많지만 계절별로 편차가 커서 홍수와 가뭄이 매년 반복됩니다. 또 전 국토의 70%가 산악지형이라서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기도 전에 흘러내려가니 모아 두기가 매우 어려워요. 최악의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삼천리 금수강산을 만들어온 겁니다. 물 관리는 한국이 가장 앞설 수밖에 없어요. 물 문제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대학생급’의 가장 어려운 과제를 풀어왔기 때문에 빗물 종주국이 된 거고 물 관리에선 형님 나라인 거죠.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기에 수천 년을 잘 살아왔나, 여기에 비밀이 담겨 있는 거예요.”
그 비밀의 핵심은 마음에 있고, 그것이 전 세계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교수는 말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 한 방울도 소중히 하는 마음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기도 했다.
“상류에 사는 사람들이, 하류에 사는 사람들이 홍수나 가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상류에 저수지와 웅덩이를 만들어 빗물을 가두는 것은 바로 ‘남을 위하는’ 마음인 겁니다. 홍익인간 정신이지요. 나는 생전 홍수가 안 나는 곳에 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하는 고운 마음씨가 홍수를 방지하고 살려주는 겁니다. 전 세계의 홍수, 가뭄의 해결책은 ‘슈퍼컴퓨터’나 ‘IT’가 아니에요. 제방이나 댐도 아닙니다. 사람을 위하는 이런 마음이 해결할 겁니다.”
사람 중심, 선조들의 빗물 관리 지혜
사람도 나무도 행복하고 개구리 나비도 행복한 물 관리를 지금까지 왜 못했을까. 미국 교과서를 보고 했기 때문이다. 거기엔 빗물은 나오지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식 물 관리는 지하수 파고 댐 만드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런 물 관리 시스템은 그동안 자연을 훼손하고 사람 마음에 상처 주고 갈등을 키워왔지만 빗물은 갈등 없고 돈 안 들고 모두 행복한 해결책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든 그를 찾는 곳이 있으면 달려가 빗물 이야기를 한다.
“기뻐서 하는 일이니까요.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해요. 그러는 과정에서 한국을 좋아하게 되면 우리나라 제품도 사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려면 마음을 주자, 마음을 주는 방법은 빗물을 주는 거죠. 돈 안 드는 최고의 방법이죠.”
요즘 가뭄에 지하수가 말라서 죽어갈 생물들 생각하면 걱정이지만, 딱 한 가지 고마움이 있단다. 사람들이 빗물의 소중함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어려움은 그에게는 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기회였다. 한국이 기후 조건의 어려움에서 최고의 물 관리 지혜를 갖게 되었듯이, 또 빗물 운동을 하며 겪은 숱한 난관 덕에 오히려 어떤 과제가 와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마련하게 되었듯이 말이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사람과 자연을 생각하는 따스한 마음을 중심에 두고 살아온 한무영 교수.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그는 오늘도 지하철 안에서 빗물 구상을 펼친다. 어떻게 하면 빗물로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그를 보면 평화를 꿈꾸는 성직자 같다.
한 무 영 님은 서울대 토목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에서 환경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9년부터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수처리 분야의 세계적인 환경공학자인 님은 서울대에 빗물연구센터를 설립, 세계 곳곳에 빗물 이용 지혜를 알리고 있습니다. 국제물학회(IWA) 빗물 이용 분야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5년 전 세계의 환경공학?과학 교수협의회(AEESP)에서 선정한 최고논문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엔 SBS 물환경대상에서 두루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월간마음수련웹진 http://webzine.maum.org/
월간마음수련4월호
첫댓글 빗물의 소중함... 우리는 너무 일상적인 것에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왔네요^^* 진정한 레이니즘~
레이니즘.... 멋진 비..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