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내 어린 시절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연과 숨 쉬고 뛰놀며 자랐으며 꼴뚜바우 세계 제1 무역을 자랑하던 텅스텐 상동광업소 그 당시 개도 돈 만 원짜리(지금화폐가치로는 오만 원짜리 몇 장)를 물고 다닌다는 물질의 풍요함이나 아름다운 자연, 교육에 최고봉인 꼴뚜바우 상동중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었습니다. 한국전력 태백 장성변전소 소장님이셨던 이용경 아버님 전근으로 꼴뚜바우 바로 아래 상동변전소로 전출오시면서
♫ 백운산 젖빛 안개 빛나는 아침~ 이곳에 고두암이 우릴 부르니~
♫ 교가를 부르며 상동중학교에 입학했었지요.
□ 인격과 재능을 가꾸어 준 고마운 상동 중학교 학창시절
양옆으로 가파른 산 산 산골짜기에 중석물이 흐르고
이산에서 저산에 빨랫줄을 걸어도 되겠다는 말처럼
작은 고을
그래도 울창한 숲 생동적이던 고장은
젊음으로 들끓었지요.
그렇게 우린
상동중 교정에 책가방을 풀고
청청한 깃발 하나 나부끼며 첫 출항을 시작했던 겁니다.
상동 교육 산실은
우리네 시린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은사님들의 그 : 쩌렁쩌렁한 음성에 기운찼었고
안쓰러운 후배들 행여나 기죽을까
부추김으로 달래던 선배님들 위안에
우린 또 그렇게 철부지 응석받이 되어
손만 뻗으면 금새 잡힐 것 같은
백운산 四季를 마주하며 우리는 하나씩 허물을 벗고 ...
세월의 물살에 떠밀려 오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보니
우리 함께 떠났던 행렬은 흩어져
어느새 듬성듬성 빈자리가 완연하고,
갈 길이 무에 그리 바빴는지
왜 그리도 급히 서둘러 떠났는지 모를 선생님들 선배님들, 친구들
그리운 이름들을 되뇌어보니
가슴 한 켠 휑하니 매운바람이 훑고 지납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한국 제일무역으로 꼽히던 텅스텐 상동광업소의 지원으로 세워진 우리 상동중고 교육 산실은 이 나라 어느 일류 사립중고등학교보다 우수한 환경 속에 공부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출신 등 우수한 교사들(이세창 교감선생님, 김희태(국어)교감선생님, 양문한 국어선생님, 임순홍 수학선생님, 김재기 수학선생님, 김우성 지리선생님, 박병호 화학선생님, 김순 영어,독어선생님, 황원 역사선생님, 이일순 음악선생님, 김예호 미술선생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셨고, 화학 실험실에는 각자 이름이 씌어진 개인별 실험 기구 세트가 있었고, 가정실에는 각 개인별 재봉틀이 구비되어 있었고, 음악실에는 1인 2기 악기도 개인별 2세트씩 주셔서 저는 쎅스폰과 플롯 그리고 피아노를 배웠답니다.
음악선생님께서 지휘하시면서 가르쳐주신 여성 3부 합창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 노래를 29년 전 1992년 전국우수교원 해외 연수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도나우 강 바라보며 왈츠 춤 실어 불렀더니 박수가 갈채를 받았지요.
우리는 음악선생님 잘 만나서 상동 중학교 때 벌써 우리 한국가곡은 물론 세계적인 명가곡 오솔레미오, 희망의 속삭임, 슈베르트의 연가 보리수, 홍수 등등..많이 가르쳐주시고 합창 발표도 했지요. 그보든명곡들을 52년 전에 배웠고, 솔베이지와 페르귄트의 짠 한 사랑이야기 담긴 애잔한 단조음계의 그리그의 * 솔베이지의 노래* 를 퇴임 후 여행지 노르웨이 그리그 생가 베르겐트롤 언덕에서 부르던 감회야말로...
아~ 이런 일도 있었네요.추운 겨울날 소방서 불자동차 소리가 좁은 골짜기에 크게 울렸고 상동중학교에 불이났다는거예요. 마을에서 학교까지 2㎞ 넘는 거리를 우리학생들은 울며불며 불 끄겠다고 양동이를 들고 뛰어갔지요.
불은 숙직실 부엌의 장작 과열로 났는데 이미 숙직실 두칸 방과 등사실과 창고까지 붙은 불은 거센 불에 휩싸여 음악실이 있는 학교 건물 에 옮겨 붙기 직전이었어요.
이일순 음악선생님께서 이미 와계셨고 건물로 불이 옮아 붙지 못하게 소방관은 소화탄으로 불길에 뿌리고 또 한편 호수로 벽에 옮겨붙지못하도록 물을 뿌리는데 달아올라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연기에 쌓여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뜨거운 연기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은 음악실로 올라가 양동이로 화장실의 물을 퍼서 3층 교사와 음악실에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뿌리는데 벽은 지글지글 뜨거워지고 금새 불이 옮겨 붙을 것 같았지요. 이일순 선생님께서는 “피아노와 악기가 재가 되고 학교 교실이 타버린다면 나는 살 수가 없다” 하시며 3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려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을 만류하면서 우리는 다함께 울면서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내 주를 가까이하려함은 십자가짐같은 고생이라 ~ 주여 임하소서.울면서 노래 기도하며…….
불은 꺼지고 우리는 엉엉 울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렸지요.
우리는 매년 10월3일 개교기념일 예술제(연극 음악회)와 체육대회축제 때 가정실에 각 개인별 구비되어 있는 재봉틀로 학생들은 연극 무대의상과 가장 행렬 의상 소도구 등 직접재단하고 재봉틀로 재봉하고, 화실에서는 무대세트, 무대 의상 옷에 그림 그리고 페인팅하고 포스터 만들어 하칠랑리서부터 교촌,턱골 단양촌까지 벽보를 붙이고, 축제기간에는 뺀드부들이 앞장서서 행진곡 연주하고 바퀴달린 꽃전차부대 타고 옆에는 드레스 입은 아가씨차림 신사복 입은 영국신사 차림 여학생들이 춤추며 가고 , 축제마당에는 가면무도회가 열리고, 각설이 타령, 인디언 부대, 곤봉체조 매스깨임 등등 예술 한마당이 열렸고, 다음날 극장에서는 김희태 선생님의 극본 「마의태자」 연극 무대에서 이광자 제가 낙랑공주를 했었지요. 속세를 떠나 금강산으로 떠나는 마의태자를 따라가겠다고 “ 나도 중이되리라~ ” 하며 긴 가발 머리채를 자르다가 나의 생머리까지 싹둑싹둑~ 풍성하고 다채롭던 개교기념일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의상 제작 무대 세트등 제작 그 모든 것은 우리 학생들 손으로 만들었지만 어마어마한 물품을 보내주시고 지원해주신 텅스텐 상동중석 광업소 덕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축복받은 학창시절 이었습니다.
첫댓글 선배님 모교화재사건은 모든상동인들의 아픔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