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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글쓰기
참석자ː정한용(시인, 빈터동인 대표)
박주택(시인,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이성목(시인, 웹디자이너)
일시ː2001년 8월 27일
장소ː인사동 시인학교
박주택 :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야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두 분과 함께 자리하게 되어 한층 더 실감이 느껴집니다. 그야말로 요즈음은 말로만 일컫던 디지털사회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생산자인 작가과 소비자인 독자와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고, 그에 따라 계급이니 계층이니 성별이니 하는 구분도 인터넷 상에서는 무력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닙니까? 대신 익명성에 의한 글쓰기, 소위 다원적 주체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인상이 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이퍼텍스트를 문학의 한 장르로 발현시켜 이를 정형화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글쓰기의 방식이 전달 매체에 따라서 많은 변화를 보일 것은 틀림없습니다. 해서, 매체변화에 따른 글쓰기의 문제점을 알아보고, 현재 우리나라의 문학적 상황과 21세기의 글쓰기의 변화성을 모색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 매체의 변화, 글쓰기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정한용 : 우리나라의 디지털화 과정이 상당히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80년대 후반 시작되어 90년대 초반까지는 소위 ‘통신문학’이 확대되면서, 활자 문학작품들이 컴퓨터 모니터로 옮겨왔습니다. 이것을 ‘초창기의 통신문학’이라고 한다면 그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되었지만, 작품의 수준의 문제에 있어서 소위 말하는 고급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에서 괴리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들어, 지금은 그런 순수/고급, 대중/저질이라는 것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많은 본격 문학작품들이 디지털 매체로 옮겨오고 있고, 이런 특징은 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낳고 있습니다. 매체의 변화는 당연하게 문학의 근본적인 면까지도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인터넷의 속도문제라든지 멀티미디어 구현 환경의 난점들이 많이 해결됨으로써 새로운 문학에 대한 도전과 독자의 요구가 강하게 다가온다고 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내외적인 변화들이 우리 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환경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이러한 논의가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주택 : 매체에 따른 새로운 글쓰기의 문제는 분명 기술적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시는 정신적인 것을 미학적으로 집중화시켜 완성시키는 것 아닙니까? 헌데, 인터넷상에서 쌍방향성을 가지는 글쓰기는 그 매체의 속성상 상당히 빠른 속도로 대응하잖습니까? 이같은 매체의 변화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빠름과 느림, 무거움과 가벼움, 더 나아가서는 소수 엘리트 중심 문학 등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성목 : 현재 디지털문학은 하이퍼텍스트의 기능을 외면하고 네트워크 기능에만 깊게 의존하면서 문학의 본질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방금 말씀하신 그런 우려들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은 영상이나 소리나 문자가 혼합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글쓰기는 매체의 변화에 대응하는 상상력, 즉 해체와 통합이라는 방향으로 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정한용 : 우리사회가 분명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고, 디지털을 이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사고양식까지도 변하고 있습니다. 문학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문학이 곧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인데, 디지털화되어 가는 사회를 반영하는 작품들의 계속 생산되고 발표되고 있거든요.
방금 말씀하신 대로 문학의 생산자와 그것을 소비 향유하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상당히 분리되어 있었던 것들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의 대중화로 그 거리감은 점점 좁혀지고, 누구라도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 디지털을 이용하여 작품을 생산하는, 즉 디지털만이 가능한 작품의 세계로 접근해 가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문학의 속성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문학 장치나 개념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합니다.
박주택 : 그렇게 본다면 현재 인터넷상의 문학은 문학과 기술이 결합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단순하게 발표 매체가 이동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 실제로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디지털화된 문학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면 새로운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예전에 김수영의 『풀』이라는 작품을 뿌리로 하여 하이퍼텍스트를 실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기술적인 장치와 문학이 가지는 개별성이 결합된 고유한 장르가 탄생하리라고 봅니다. 근대 자본주의가 소설을 잉태했듯이 디지털 문명이 새로운 장르의 탄생하리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이성목 : 매체의 변화라는 것이 글자에서 활자로의 변화와는 다른 개념의 변화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변화의 중심이 ‘인간과 인간’에서 ‘인간과 컴퓨터의 인터페이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컴퓨터를 중심으로 소통되는 인간들이라는 점에서 볼 때 미래의 문학은 컴퓨터와 문학 주체가 무엇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면서 이루어내는 결과물이 될 것입니다.
문맹에게 텍스트가 무의미하듯이 일차적으로 컴퓨터와의 소통을 위한 어떤 약속들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들이 언어의 수준에 이르거나 기존의 각 예술간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는 새로운 기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텍스트와는 달리 하이퍼텍스트는 외형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하이퍼링크의 집합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이퍼텍스트의 구현을 위해서는 우선 하이퍼링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겠지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는 방법, 즉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인 능력이 요구되기도 하겠지요. 또한 하이퍼텍스트는 기존의 문학작품과는 다른 구성과 전개방식을 요구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전혀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이 요구에 능동적일 때 새로운 장르의 문학이 가능해지겠지요.
박주택 : 기술적인 측면과 새로운 상상력의 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문학생산자는 곧 기술자가 되어야 된다는 말과 통하는 것 같은데, 과연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서구에서 이미 활발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하이퍼텍스트는 소설인 경우에는 그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으나 시에 있어서는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한용 : 디지털문학이라고 한다면 결국 그 끝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죠. 인터넷 언어는 html 언어입니다. 저는 html을 처음 대했을 때 엄청난 공포를 느꼈습니다. 세계 수많은 언어들이 나중에 html로 통일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놀라움 말이죠. 그런데 html은 사실 일반 작가나 시인들에게 쉬운 언어가 아니죠. 많은 작가 시인들이 인터넷에 친숙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기술적인 측면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술적인 측면과 상상력이 결합되어야 새로운 문학이 가능 할텐데 기술적인 측면은 아직까지는 편리하게 쓸 수 있을 만큼 쉽지 않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면 『글』의 경우처럼, 누구나 사용하지만 그 소스코드를 모르듯 html을 잘 몰라도 쉽게 html을 구현하여 하이퍼링크를 만들 도구가 있다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창작하는데 폭발적인 힘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예가 미국에서 나온 ‘스토리 스페이스’나 ‘그래마토론’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하이퍼텍스트를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검색자의 신분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를 좀더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를 염두에 둔다면 조만간 하이퍼텍스트 창작도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 시창작의 경우를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로버트 켄델의 <분리>라는 작품이 이미 있고, 현재도 그런 시도들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작품의 예를 든다면 하나의 문장이 나오고, 여러 개의 단어가 주어지는데 그 링크 중에서 어느 것을 따라가느냐 하는 선택권은 독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죠. 즉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선택에 따라 작품이 완성되는 방식의 새로운 시의 형태가 가능할 것입니다.
박주택 : 그렇다면 독자에게 주어졌던 향유성이 일회적이고 개별적이었던 것에서 입체적이고 다중적인 것으로 변화한다는 것이고, 창작자와 수용자의 관계 역시도 수직에서 수평으로 전이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같은 독자의 참여가 결국 글의 의미를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기표와 기의 문제에 있어서 기호로서의 언어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겠지요. 언어가 어떤 의미를 창출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주제의식을 던져주거나 표현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 논리로 변모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요.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호의 조작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고요.
게다가 저자의 작품 생산에 대한 미학적 측면이 거세된 채 흥미의 측면으로 갈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고요.
이성목 : 웹 애니메이션이나 게임들은 무엇보다도 놀이와 재미를 기초로 합니다. 이러한 놀이와 재미가 이제는 독자적인 예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전통적 의미의 수준 높은 작가정신을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작가들이 디지털의 특성을 살려내는 실천이 따른다면 이른바 새로운 서사의 완성이 전혀 불가능 것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디지털의 속성에 대응하는 미학적 완성보다는 문학의 새로운 유통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하다보니 문제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정한용 : 이렇게 비유하여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18세기 처음 산문이 나오기 전에는 문학이 거의 시였는데, 활자매체의 보편화와 함께 본격 소설보다 먼저 나온 것이 로망스이었습니다. 새로운 매체나 도구가 생기면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의 작업을 먼저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문학이 나온다면 그 시작은 아마도 저급한 것들, 대중영합적인 것들부터 시작이 될 겁니다. 그러고 나서야 작가 시인들이 새로운 매체나 도구에 익숙해지면서 새로운 상상력이 결합된 고급문학이 나타날 것이라고 봅니다.
■ 우리의 디지털문학은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
박주택 : 저자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과거 문학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는데 이제는 다양한 주체의 등장으로 그 경계선도 모호해지고 있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생각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디지털 기술을 보유한 소수 엘리트의 저자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시의 현실은 실천적으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의미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 경계나 외부에서 매체 체험에 대한 안목을 표현 것에 지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조만간 본격 디지털 문학이 누군가에 의해서 나타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런 작업들을 준비하고 있는 웹진 모임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활동 상황에 말씀을 나눠 보았으면 합니다.
이성목 : 웹진들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문예지를 갖고 있는 출판사들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데, 다만 이 웹진들은 기존의 문예지가 인터넷상으로 이동한 것에 불과합니다. 인터넷상에서 독자적인 웹진을 구축하여 부분적으로 멀티미디어를 결합하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모두 디지털이라는 고유한 특성과 결합하는 것이 아니고 유통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박주택 :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이성목 :『시인학교』, 『오프오프』, 『텍스트버그』 등을 들 수 있겠죠. 이러한 웹진들은 말씀드린 대로 디지털 웹진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단순히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하이퍼텍스트의 기능은 아닙니다만 디지털화 특성을 살려내려는 노력들이 플래시 애니메이션, 음악, 그림 등의 결합이라는 형태로 조금씩 나타나고는 있습니다.
정한용 : 지금 웹진을 말씀하셨는데, 결국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거든요. 컴퓨터를 이용한 상호소통과 그 소통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우리가 바라볼 문학의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독자의 접근을 용이하도록 하는 적절한 네비게이션의 구조에 대한 고려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인터넷 문학은 과도기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작품을 올리고 다른 사람이 댓글을 다는 정도의 소통을 인터렉티브 문학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작가와 독자가 함께 작품을 형성/완성해 가는 과정은 아니라는 것이죠. ‘시인학교’, ‘오프오프’도 그렇고 『빈터(http://www.poemcafe.com)』도 아직까지는 그 정도에 못미칩니다.
박주택 : 그 중에서 기왕 정한용 시인께서『빈터』동인을 만들고 현재 대표를 맡고 계시니까 『빈터』를 중심으로 만들게 된 동기나 이유를 디지털문학이라는 관점에서 말씀해 주시죠.
정한용 : 빈터를 만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표현 매체를 구축해보자 하는 것이 한 목적입니다. 또 과거의 동인 활동들이 시공간적 제약을 많이 받았다면 인터넷 네트워크는 그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고, 그래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의 시인들을 연결해보자는 차원에서 로고를 Global Poet Network라고 붙였습니다. 또 하나는 블록화되어 있는 우리 문단이나 잡지들의 폐쇄성을 인터넷을 통하여 상당 부분 개방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자극이 되었습니다.
박주택 :『빈터』라는 의미는 월리엄 깁슨이 말한 사이버스페이스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빈터』동인이 인터넷상 최초의 동인이라는 사적 의의 외에, 또한 오프라인 상에서도 동인지 발간이나 독자 모임과 같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바를 말씀드리면『빈터』의 작업은 오프라인 작업을 온라인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것,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글쓰기,말하자면 멀티미디어 시나 하이퍼텍스트 시의 모범이나 방향성은 아직까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말입니다. 그리고 외국 동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언어 소통과 같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이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한용 : 두 마리 토기를 다 잡긴 어렵겠지만, 우선 새로운 네트웍 매체를 활용하는 문학을 누군가는 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 작업을 우리가 한 번 해보자는 것이 저의 욕심입니다. 아직까지는 계획단계이긴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멀티미디어 시라든지 하이퍼텍스트 시 작품을 내놓고 우리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작업들을 해나가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온라인 상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오프라인이 가지는 장점들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쪽도 함께 다져가면서, 디지털 시대에 대응하는 글쓰기를 느리게라도 진행해 갈 생각입니다. 쉽지는 않겠지요.
■ 디지털 문학, 문제는 없을까
박주택 : 몰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빈터동인들이 그러한 것들을 시도해서 족적을 남기고 다시 그 족적이 하나의 전범이 된다면 우리 문학 주변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문학 장르로서 자리잡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 이런 문학적 변화가 지속되어 새로운 문학이 자리를 잡게되면 우려되는 점들도 있을 것입니다. 시라고 하는 것이 화자에 의한 자기 주체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하이퍼텍스트 시가 ‘경우의 수’에 의존하여 의미가 달라지고 주제가 달라지는 기호로서의 문학 형태이고 보면 시가 지니고 있는 개별적이고 고유한 것들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가 다 그렇게 변모하지도 않겠지만.
정한용 :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현실적인 것은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조건, 접근의 용이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e-book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또 하나는 독자들이 매우 수동적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만들어 냈을 때 거기에 독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작품의 아우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의 문제, 즉 독자 수용자세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면에서 하이퍼텍스트는 기존의 패러다임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고,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낯설기 마련입니다. 독자들이 친숙하지 않은 새로운 문학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성목 : 조금 조심스럽긴 하지만 문학의 미래는 프로슈머, 즉 생산자가 곧 소비자가 되는 시대로 이행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와의 관계라는 면에서는 사실상 경계 구분이 모호해질 것은 사실이지만, 문학 본질의 측면에서 디지털은 새로운 것일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정한용 : 독자는 새롭고 가치 있는 것에 투자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지금이야 쉽고 편한 것을 따르고 있지만, 이 거품이 어느 정도 걷히고 나면 진정한 문학을 향유하는 사람들로 대체 되리라고 봅니다. 문제는 작가나 시인이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창조하는 것을 전제 하겠지요.
박주택 : 그와 관련하여 볼 때 디지털 문학이 탈귄위적이고 탈맥락화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처음 시작해서 두렵고 힘들고 또한 비난을 받는 것과 같이 시련의 과정이 동반되겠지만 현실이 새로운 문학을 하도록 내모는 상황이 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며 이에 따라 문학에서도 이를 조심스럽게 준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아무리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문학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를 옹호해야되는 자기 서약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정한용 : 디지털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디지털화는 디지털을 이용하여 인간의 삶을 보다 아날로그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 ‘인간을 위한 디지털’이 최종의 목표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기술들이 좀 더 인간과 자연에 가깝게 발전해가고 있다는 낙관을 기초로 한다면, 문학의 양식이나 본질도 변화된 사회에 맞게 근본적인 면에서 재고하여야 할 시점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이성목 : 이런 논의들이 좀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논의를 통하여 허상처럼 보이는 디지털 시대를 명료하게 규정지을 수 있을 때,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문학이라는 실체를 가지고 나타나리라고 봅니다.
박주택 : 그런 의미에서 이 좌담이 향후 디지털 문학에 대한 논의의 촉매가 되고, 조금이나마 실천적으로 작품을 생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