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과 대설·혹한으로 얼어붙었던 미술계에도 해동(解凍) 소식이 찾아왔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원로·중견작가 50여명, 그리고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 미국 작가 에릭 오어까지 합세한 대규모 미술축제가 마련됐다. 그 규모와 내용만 살펴봐도 새봄을 여는 대표적인 전시회로 손색이 없다.
신춘 화단을 빛낼 제1회 ‘한국현대미술제(KCAF)’가 27일부터 3월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린다. ‘21세기, 세계로 가는 한국미술’을 부제로 한 이 전시회는 한국 현대미술의 오늘과 내일을 조망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주최는 세계 미술시장을 가장 많이 노크한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과 미술전문 월간지 ‘미술시대’(주간 유석우)가 맡았다.
전시는 본전시와 특별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본전시는 40명의 원로 및 중진·중견작가들을 초대, 9m×6m×6m 크기의 부스를 제공해 개인전 형식으로 꾸민다. 참여 작가들은 자신의 대표작과 미공개 신작을 전시해 작업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게 된다. 작가당 10~15점이 출품돼 모두 800점에 이를 전망이다.
미술관 1층에는 원로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며 2층에서는 중진·중견 및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한국미술의 해외진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취지에서 ‘판매하는 전시’보다는 ‘보여주는 전시’에 역점을 두었다는 주최측의 설명이다. 물론 판매도 한다.
출품작가는 정창섭·윤형근·김창열·서세옥·박서보·이인실씨 등 원로를 비롯해 윤명로·이규선·이종상·황영성·함섭·황창배·이왈종·장순업·심영철·지석철·차대영·황주리씨 등이다. 신진작가로는 김나현·박계훈·한지선씨 등과 성신여대 출신 5명으로 구성된 ‘조디악그룹’이 참여한다.
특별전인 ‘백남준 비디오아트전’과 ‘에릭 오어전’은 3층에 마련된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지난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진 백남준씨는 이번에 그의 1963~69년 초창기 TV작업을 위주로 20점이 선보인다. 대부분이 미공개작인 그의 초창기 작품이 8점씩이나 한자리에 모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발전기를 이용해 TV화면에 왕관 형태를 만들어내는 ‘TV 왕관’, 브라운관 앞에서 자석을 움직여 독특한 화면을 연출하는 ‘마그네트 TV’ 등 시대를 앞서간 대가의 면목을 보여준다. 재작년 타계한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에릭 오어의 작품은 돋음골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 물조각품 10점이 나온다. 돌·브론즈·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의 유작들은 이번 전시를 위해 미국에서 특별히 공수돼왔다.
주최측은 “해외전에 1회 이상 참가하는 등 검증이 끝난 작가를 대규모 초대, 전시함으로써 침체에 빠진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매년 전시를 열어 국제적 위상을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미술제는 SK텔레콤·포항제철·서울벽지 등이 협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