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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시와 반시 초대석 혜암 최춘해 대담 변희수
들어가는 말
동시를 쓰면서 나는 종종 되돌림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어는 쪽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분명치 않지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것은 항상 중요하다. 예를 들면 시가 가진 지적 미학성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시의 진짜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세계에 대한 어줍잖은 성장을 멈추어보고 싶을 때, 동시는 나에게 되돌림의 장소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동시는 하이데거가 시의 본성에서 대해서 말한 것처럼 본래적인 것, 외부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것,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 그것만으로도 꾸밈없이 블링블링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를 쓰다가 동시를 쓰는 순간은 갑자기 푸른 들판을 발견한 노고지리처럼 쾌활해진다. 울라브하우게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복잡한 사람들이지만 현관에 놓인 나막신처럼 바로 신으면 되는 시를 만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상기되곤 한다.
푸른 들판을 발견한 노고지리처럼 쾌활해지는 시
변희수: 선생님, 안녕하세요?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이제 막 첫 동시집을 낸 저를 비롯하여 시를 쓰면서 동시를 꿈꾸는 많은 시인들에게도 뜻 깊은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최춘해: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만 첫 동시집 『가끔 하느님도 울어』를 읽고 감동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동시집을 내기 전에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을 해서 시집을 세 권이나 내고 그 시집이 모두 문학나눔 도서에 선정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2018년과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 지원을 받고 천강문학상과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첫 동시집 『가끔 하느님도 울어』는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작으로 발간되었기에 우수한 시인으로 인정이 되셨습니다. 시뿐만 아니라 소설, 음악 등 예술 전반에 통달하고 있어서 우러러 보입니다.
변희수: 부끄럽습니다. 그저 관심만 조금 갖고 있는 정도로 미미합니다. 선생님께서는 60년 가까이 아동문학을 해오셨습니다. 그 긴 시간은 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입니다. 할결같은 마음을 어떻게 지켜오셨는지요?
최춘해: 제가 아동문학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햇수는 오래 되었습니다만 돌아보면 아동문학에 별로 보탬도 되지 못했고 후배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제가 아동문학을 하게 된 동기부터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상주글짓기회원이었을 때, 등단 전 작품 수련할 때 이야기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상주에는 글짓기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이름이 났었지요. 당시에 상주에는 신현득, 김종상, 이무일, 이천규, 강세준, 박노익, 이철하, 권태문 등 이름난 아동문학가들이 많았습니다. 이어서 하청호, 김재수 박정우, 이상우, 이창모 등이 활동을 했지요. 신현득, 김종상, 이무일 등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어린이 글이 신문 잡지 등에 많이 발표되고 백일장에도 상주 어린이 글이 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윤석중 선생은 상주 어린이 글로 서울에서 시화전을 열고 그 작품으로 <동시의 마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1966년에는 경향신문사에서 글짓기지도 단체상을 주었는데 상주글짓기회에서 김종상씨가 대표로 상을 받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글짓기 지도 연수를 했습니다. 저는 상주에서 8km 떨어진 사벌초등학교 근무를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으로는 모자라서 그 안에 회원을 만나러 갔습니다. 글짓기 회원들은 형제보다도 더 가깝게 지냈습니다. 회원들은 학교마다 어린이들의 글을 발표하는 학교신문을 냈습니다. 학교 신문을 내면 전국의 글짓기 지도 교사들과 교환을 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벌초등학교에서는 신문 이름을 <경천대>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전국 단체로 한국학교신문 지도 협회가 있었습니다. 한 해에 한 번씩 총회를 했는데 상주에서는 정국진 교육장과 함께 학교신문을 내는 학교 글짓기 지도 교사가 참석했습니다. 전국학교신문 지도회 회장은 이진호씨였습니다. 1970년대 이전까지는 학교신문, 문집 등은 등사판 인쇄였습니다.
상주글짓기회원들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 학교에 나와서 학교신문이나 학교문집을 등사하기도 하고 글짓기 지도를 했습니다. 가끔 아이들을 밤에 자기 집에 데려다 글짓기 지도를 했습니다. 자기 사비로 김천 대구 서울 등지로 아이들을 인솔해서 백일장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글짓기 지도는 생활지도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기 지도를 알뜰히 했습니다. 일기를 검사하면서 반드시 붉은 글씨로 칭찬을 하거나 생활지도를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써 준 붉은 글씨를 읽기 위해 일기를 더 열심이 쓴다고 했습니다. 글을 쓰는 방법과 아울러 생활지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글짓기 지도를 하면서 본보기 글 자료로 내가 쓴 작품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글짓기 연수회를 할 때 자신의 작품을 가져와서 합평도 함께했습니다. 신현득과 김종상은 이미 등단을 해서 동시집을 냈습니다. 같은 회원이지만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칭찬을 많이 해 주어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영남일보에 계속 작품 발표를 했습니다. 원고료를 받는 건 아니지만 습작을 하는 처지에서는 자기의 글이 신문에 발표되는 게 기뻤습니다. 영남일보 덕에 많이 쓸 수 있었고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 간사를 맡았습니다.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의 발자취 말을 옯겨 보면, 1963년 7월 14일 신현득, 오규옥, 옥미조, 하계덕 발기로 대구칠성국민학교에서 발족. 『전국 교사 아동문학회』로 가칭. 간사 신현득 당시 회원 김동극, 강청삼, 김종상, 김원기, 엄기원, 이진호, 이천규, 임교순, 허동인
매월 1회씩 작품을 교환하고 전호 작품에 대한 각자의 평을 하기로 함. 동인지의 명칭을 “은방울”이라고 정함. 회장이 없고 간사가 회무를 집행하기로 했다. 1963년 8월 1일에 『은방울』 1호가 나오기 시작해서 1964년 6월 15일까지 신현득 간사가 『은방울』 10호를 내었다.1964년 6월 18일부터 동인회 본부를 대구 칠성국민학교에서 강원도 명주군 사천국민학교로 옮기고 엄기원 회원이 간사 임무를 인수. 1964년 7월 15일에 『은방울』 11호를 엄기원이 내기 시작해서 1965년 3월 10일에 『은방울』 17호를 냄. 1965년 3월 16일 동인회 본부를 경북 상주군 사벌국민학교로 옮기고 간사업무를 최춘해가 맡았습니다.
1965년 4월 5일에 『은방울』 18호를 내고 5월 6월에 19호 20호에 이어서 1965년 7월 1일에는 『은방울』 21호를 처음으로 인쇄판으로 발행했습니다. 1965년 12월 1일에 『은방울』 27호도 인쇄판으로 발행했습니다. 등사판으로 낸 것은 다 없어지고 인쇄판 발행 21호와 27호만 남아 있습니다. 1965년 6월에 중앙일보 최종률 문화부 기자가 내가 근무하는 사벌국민학교에
교단아동문학동인회 활동 모습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시골이라 여관이 없어서 학교 사택인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갔습니다. 곧 중앙일보 문화면에 전면 특집을 했습니다. 교단아동문학동인회의 발족부터 다달이 『은방울』을 발간하는 과정, 활동이 왕성한 회원들의 소개, 초대 간사를 맡았던 신현득씨의 작품 소개, 『은방울』 동인지의 사진 등이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에 상주에서 회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것은 유능한 회원들이 열성적으로 잘 협럭을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강세준, 김종상, 이무일, 이천규, 이철하, 박노익, 권태문, 등이 상주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고문은 윤석중, 이원수 두 분이고 회원 수는 40명이었습니다. 회원이었던 분들 중 문단에 널리 알려진 분들은 권태문, 권기환, 김삼진, 김선주, 김완기, 김원기, 김종상, 박승일, 박택종, 신현득, 엄기원, 오규옥(오규원) 옥미조, 유상덕, 이무일, 이영호, 이진호, 이천규, 임교순, 전문수, 최일환, 한상수, 허동인 등인데 현재 남아 있는 분이 저를 포함하면 14명이고 11명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3대 간사를 마치고 대구 유상덕 회원께 인계를 한 뒤에 『은방울』 동인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동인지는 만 3년간 지속되다가 사라졌습니다.
대구에서 신현득 권기환 최춘해 3인 동인 활동을 한 적도 있습니다. 신현득 선생은 칠성초등학교에 있다가 대구초등학교로 옮기고 권기환 선생은 동인초등학교, 저는 신천초등에서 종로초등으로 옮겼습니다. 학교 근무가 끝나면 매일 만났습니다. 주로 막걸리 집인데, 신현득 선생은 술을 즐겼고, 권기환은 술을 못 했고 저는 신현득 선생을 거들 정도였습니다. 화제는 언제나 작품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작품 이야기를 하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신현득 선생이 장부를 만들어 와서 작품을 의무적으로 써 오기로 했습니다. 합평한 내용을 일기장에서 옮겨 봅니다. ‘1970년 1월 12일 (월) 작품합평회에 ‘새 길’, ‘물이 출렁(아폴로가 달에 도착하던 날)’ 두 편을 가져갔다. 누비 다방에 나가니, 권기환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고, 조금 뒤에 신현득 선생이 나왔다. 나의 단점인 신중하지 못한 것이 합평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세 사람의 합평이지만 우리나라 전 문단의 평가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내 작품 두 편은 4일 동안에 만든 것이다. 온 신경을 쏟지도 못했다. 우리말본 공부를 하는 동안에 쓴 것이다. 말본 공부는 신경을 곤두세워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작품 쓰는 데 소홀했던 것이다. 앞뒤 상이 덜 어울리고 대충 마무렸기 때문에 평도 짐작한 대로였다. 신 선생은 내 생각을 꿰뚫었다. 역시 작품 보는 눈이 밝았다. 다음에는 보다 성실하게 정확한 표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현득 선생이 수상한 세종아동문학상 수상 작품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도 합평을 한 기억이 납니다. 합평할 때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수상작이 되고 나니 훨씬 돋보였습니다. 신현득 선생은 앉으나 서나 술을 마시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늘 시를 생각했습니다. 권기환과 저한테도 그렇게 하기를 바랐습니다. 작품도 더 쓰게 되었고 작가의 자세와 열정도 길러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부산 안장현씨가 발행하는 『한글문학』에서 제정한 최근유 한글문학 신인상을 받았고, 권기환은 해강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시상식 때는 세 사람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그러다가 신현득 선생이 대구에서 떠나게 되어 3인 동인회도 끝났습니다.
글짓기 지도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분은 이오덕 선생입니다. 이오덕 선생은 잠시 대구에서 근무한 적도 있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서 산골 학교로 들어가서 어린이 글짓기 지도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선생은 ‘글짓기’라고 하면 글을 꾸민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글쓰기’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쓴 사투리도 고치지 마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실제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린이 글은 겪었던 것을 쓰게 해야지 어른들이 쓰는 동화처럼 꾸며서 쓰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정직한 삶을 글쓰기에도 지도해야 된다는 이론입니다. 정직성을 지도한다는 이론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어린이들이 쓴 글을 모아서 어린이 문집을 많이 냈습니다. 책이 나올 때마다 저한테 보내와서 많은 참고가 되었는데, 맞춤법이 틀린 것도 고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지 않지만 정직한 생활 태도를 기르기 위해서 겪었던 것을 거짓 없이 눈에 보이듯이 나타내도록 지도하는 데는 적극 동감을 했습니다. 이오덕 선생과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대구 경북에도 여러분 있었습니다. 현재 경북아동문학회장인 박경선, 회장을 지낸 윤태규, 이호철, 서정오, 김진문, 오승강, 김영길, 김일광 등입니다. 글쓰기 지도에서 정직성을 강조하듯이 자기 작품도 정직성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경북글쓰기 회원들이 만든 회가 경북아동문학회입니다. 경북아동문학회 연간집이 2023년에 38집이 나왔는데 해마다 주제를 정했습니다. 주제는 ‘정직성을 기르는 문학’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 ‘목숨을 사랑하는 문학’ ‘우리말을 사랑하는 문학’ 등입니다.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등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북아동문학 회원들은 등단을 하지 않은 회원이 많습니다. 경북아동문학회에서는 약자 편에 서서, 어린이 편에 서서 작품을 쓰려고 했습니다. 오승강의 정직한 삶을 주제로 한 동시 한 편을 들어보겠습니다. 가정환경 조사를 하던 날/아버지 직업란을 쓸 때/나는 망설였다.//꾹꾹 눌러 담은 도시락을 싸 들고/날품을 찾아/고속 터미널 옆 인력 시장 가신 아버지//공장 잡부도 되었다가/공사판 인부도 되었다가/비닐하우스 채소밭 일꾼도 되는//우리 아버지 직업은 /회사원이 아니다.//그러면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막노동하시는 아버지의 직업//막노동이라고 쓰기는 부끄러워/썼다가 지우고/망설이고 망설이다/그 자리에 회사원이라 써 넣고//학교에 있을 때도/집에 돌아왔을 때도/가슴이 벌렁벌렁 떨렸다./거짓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정직하지 못한 놈/마음속에서 자꾸 그 소리가 들렸다./아버지 얼굴도 바라볼 수 없었다. (오승강의 ‘아버지 직업’)
질문2)
최근 동시마당에 시인들의 진입이 활발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작자로서 장르간의 혼용과 다양성의 경험은 문학적 토대가 된다는 시각도 함께 있습니다. 선생님의 견해를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최춘해 : 지금은 시와 동시의 한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시를 쓰던 시인이 동시를 쓰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동문학을 한 지는 60년이 돼 갑니다만, 요즘 판타지, 상상의 시를 쓰는 젊은이들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만나면 곁에 두고 감상을 하기도 하고, 좋은 작품을 필사한다는 생각으로 워드로 입력해 놓고 수시로 감상을 합니다. 동시마중에서 2022년에 발간한 『올해의 좋은 동시』를 곁에 두고 감상을 합니다. 그리고 제가 본받아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워드로 필사하듯이 입력한 작품은 이안, 이상교, 권영상, 안진영, 임수현, 김성은, 이화주, 하청호, 김보람, 최지영, 현경미, 변희수 등의 몇 편들의 동시입니다. 이안의 『동시마중』에서 호마다 이어지는 ‘이안의 창작 강의’를 관심 있게 읽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질문3)
선생님께서 2003년에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이란 이름으로 10년 동안 강의를 하셨고 그후 ‘혜암아동문학 교실'로 이름을 바꾸어서 후학들에게 물려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춘해’라는 이름이 굉장히 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혜암으로 바꾼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최춘해 : 1998년에 교직에서 퇴임을 하면서, 국록을 먹고 살았으니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봉사할 수 있는 일은 아동문학을 오래 했으니 아동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장소를 찾았습니다. 도서관 복지관 교회 등을 찾아갔으나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돈이 넉넉하면 세를 주면 되지만 그럴 수도 없어서 무료로 쓸 수 있는 장소를 찾던 중 그루출판사 이은재 사장께 이야기했더니, 우리 사무실에서 하라고 했습니다. 2003년 9월에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이란 이름으로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월요일에는 오전반, 화요일에는 오후반으로 나누어 강의를 했습니다. 수강료를 받지 않고 무료로 했습니다. 전기세,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난방비 등도 무료로 했습니다. 이은재 사장님도 넉넉하지 않은 데도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당시에 MBC나 개인으로 아동문학 강좌를 개설했다가 수강생이 없어서 강의를 그만두었는데, 제가 개설한 강의는 수강생이 많아서 1년 뒤 수료생이 28명이나 되었습니다.
제가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이란 이름으로 강의를 한 것은 2003년부터 만 10년 동안입니다. 제가 강의를 시작할 때부터 만 10년만 하고 그 다음에는 제자들에게 물려 줄 생각을 했습니다. 만 10년을 마친 뒤에 오전 강의는 안영선 선생이 맡고, 오후반 강의는 정순희 선생이 맡았습니다. 제가 강의하던 교재와 강의 자료를 그대로 물려주었습니다. 제가 무료로 봉사를 했으니 물려받은 선생님들도 무료 봉사를 했습니다. 물려준 뒤에도 다음 해 수강생 모집은 제가 맡고 있고 처음 한 달 동안 기본이 되는 내용은 해마다 제가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강좌 이름도 최춘해아동문학 교실에서 혜암아동문학 교실로 바꿔서 물려주었습니다. 물려준 뒤에도 제가 강의를 할 때와 같이 수강생도 많고 차질 없이 강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강의하는 분이 오전반은 정순오 선생이, 오후반은 권영욱 선생이 맡고 있습니다. 올해 20기가 수료하고, 21기 수강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수료생 수가 줄기는 했으나 올해부터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리라 짐작합니다.
춘해라는 이름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이웃 사람들이 불렀던 이름이라서 주민등록의 이름 춘매 椿梅보다는 춘해 春海라는 이름이 좋아서 필명으로 쓰고 있습니다. 혜암 兮巖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지어준 저의 호입니다. 춘해라고 하면 가식 없는 저라는 느낌이 들고, 혜암이라고 하면 저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과 어울려 있다는 생각으로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에서 혜암아동문학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질문4)
선생님께서 해 오신 강의 내용은 세계아동문학사를 비롯하여 정서법까지 매우 폭넓고 다채롭다고 들었습니다. 문학성과 교육성의 조화는 물론 어린이 편에 서서 작품을 쓰되 ‘서정을 중요시한다’는 창작 원칙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동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문학이 판타지와 허구를 원동력으로 삼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최춘해: 『세계 아동문학‧아동도서사』는 신현득 교수가 한양여자대학 문창과 교재로 활용하던 책입니다. 세계 아동문학을 시대별로 명작을 편집한 것입니다. 목차를 들어보면,
Ⅰ. 아동문학과 아동도서
Ⅱ. 고대와 중세의 아동문학
Ⅲ. 근세의 아동문학‧아동도서
Ⅳ. 19세기의 아동문학‧아동도서
Ⅴ. 20세기의 아동문학‧아동도서
그 시대를 대표할 명작을 편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동서양의 명작들이 무척 많습니다. 이 명작들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읽고 토론을 하도록 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 읽은 사람도 있습니다만 토론에 참석함으로써 간접으로 읽은 체험을 갖게 됩니다. 이 고전만 열심이 읽으면 창작법을 공부 안 해도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강생 가운데서 아동문학‧아동도서사를 공부하기 좋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정서법은 개강 초에 받아쓰기를 합니다. 열 문제 중에 두세 문제만 맞고 거의 틀립니다. 다 한 뒤에 한 문제씩 설명을 하면서 채점을 합니다. 채점이 끝난 뒤에, 성적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정서법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알아서 앞으로 우리나라 글을 바르게 쓰려는 마음을 다짐하기 위해서라고 일러줍니다. 글 쓰는 사람이 제 나라 글을 바르게 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장부호법도 개강 초에 가르칩니다. 학생 때 공부를 하지만 문장부호 명칭이라든지 사용 방법 등이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에 다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교과서에는 문장부호법대로 쓰고 있는데 주로 시를 쓰는 사람들이 문장부호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온점(.)을 안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시를 쓰는 사람도 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동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문학이 판타지와 허구를 원동력으로 삼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이 질문에는 앞의 질문 2)에서도 제 의견을 간단히 말씀 드렸고 뒤의 질문 7)에서 상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판타지와 허구를 원동력으로 삼는 현상을 적극 동의합니다. 다만 독자가 공감이 되는 내용이라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5)
저는 동시를 쓰면서 종종 벽에 부딪히는 부분이 어린이의 ‘입장’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른의 간섭과 아이가 내는 생목소리를 어떻게 문학적으로 완성시키느냐의 고민이 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을 하시는지요?
최춘해 : 저는 수강생들에게 문학 공부를 하는 자세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정으로 산다. 둘째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 셋째 계속하면 열매를 맺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사랑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듯이 문학 작품도 밑바탕에 사랑이 깔려 있어야 감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편에 서서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도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동심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이 인형을 안고 자기와 같은 생명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여 인형과 대화를 합니다. 풀, 나무, 벌레, 짐승, 바위들이 나처럼 말을 하고 생각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순수한 마음이 동심인데, 차츰 자라면서 퇴색이 되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일찍 퇴색이 되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퇴색이 덜 되어 동심을 지닌 분이 많습니다. 아동문학을 하시는 분들이 바로 동심을 지닌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의인화 즉 물활론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자체가 동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6)
시를 먼저 쓰게 된 저의 경우, 동시를 쓸 때마다 동시가 시라는 사실을 분명하고도 명학하게 느끼게 됩니다. 저와 같은 이유로 많은 시인들이 동시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고 동시의 외연 또한 넓어졌습니다. 동시의 어제와 오늘, 후배 동시인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요?
최춘해 :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서정이 바탕에 깔려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광복 전후에는 교훈성이 짙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동문학의 특징은 어린이가 주독자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영양이 될 교훈적인 요소가 들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교훈이 겉으로 드러나서 도덕 교과서처럼 재미가 없으면 안 되겠지요, 교훈성이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데 광북 전후에는 교훈성이 드러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1960년 후반부터 1970년대는 동시도 시여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서 문학성을 강조하다 보니 난해한 동시가 되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차츰 난해성을 극복하려는 경향으로 흘렀습니다. 일반적으로 난해성을 극복하려는 의도인 듯하나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보면 신선한 작품을 선택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시 난해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기보다는 신춘문예 당선을 위한 작품인 듯 보입니다. 신선하더라도 보편성이 있으면 난해하지 않은데 보편성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난해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판타지 즉 상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동시로 발전하지 않을까 짐작이 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배 시인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먼저 판타지, 상상의 시, 신선한 시를 쓰는 데 동참해 주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저의 경우는 농촌에서 나서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내 자신이 자연이 되어 산 것이 작품을 쓰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책이 귀할 때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 학생 때 책을 많이 못 읽은 것이 후회가 됩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게 제일 큰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지혜롭게 대처하고 품위 있고 값지게 살아갑니다. 동시를 많이 읽고 동화를 많이 읽으면 굳이 창작법을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작품만 읽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명작을 읽으면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많이 읽기를 제일 권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일기 쓰기입니다. 문장력을 기르는 데 일기 쓰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의 생명은 문장력입니다. 문장력과 더불어 값지게 사는 인생관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질문7)
같은 선상의 질문입니다만, 월트 휘트먼이 시집 ≪풀잎≫(1856)을 내면서 오랫동안의 억압된 운율의 강박과 표준의 규칙에서 벗어나게 되었듯이 동시 또한 내용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기존 동시의 한계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로 탄생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전위적 실험에 비해서는 매우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동시의 발전을 위해 방향을 모색해 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지요?
최춘해 : 저는 현재 판타지, 상상의 시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의 특성 중에 꿈이 있다는 게 가장 소중한 보물일 것입니다. 어린이의 꿈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어린이의 꿈을 작품으로 나타낸 것이 판타지, 상상의 시가 아닐까? 판타지, 상상의 시라고 해서 근거도 없는 공상이나 망상이 작품이 될 수는 없겠지요. 1957년에 이원수의 동시 ‘겨울나무’는 판타지, 상상의 시입니다.
나무야, 옷 벗은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오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지내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는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이 동시는 작곡이 돼서 오랜 세월(60여 년) 어린이들이 애창했습니다. 나무를 의인화해서 본 상상의 시입니다. 상상의 시는 60여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근간에 발표된 작품과 비교해 볼까요?
여름의 사과가 말했다
조인정
“사과가 되고 싶어.”
나는 여름의 사과
나는 사과일까
아직 익지 않은 연두 사과는 사과가 아닌 것 같아
꽃을 피우는 햇빛이 말했어. “너는 사과야.”
작은 잎을 두드리며 소나기가 말했어. “너는 사과지.”
지나가는 바람도 말했어. “안녕, 너는 사과구나.”
나는 사과일까
언제부터 사과이고 언제까지 사과일까
“사과가 되고 싶어.”
나는 사과가 되고 싶은 여름의 사과
심장이 뛴다
사과가 되고 싶으니까
아직은 아니지만 사과인 채로
언젠가 사과가 되기 위해
두 편을 비교해 보면, 두 편이 다 같이 의인화했습니다. 형식면에서 보면, ‘겨울나무’는 2절로 나누어서 곡을 붙일 수 있도록 운율에 치중했습니다. 율을 살리기 위해 표현에 제약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과가 말했다’에서는 형식에 제약을 받지 않았습니다. 한 줄의 길이, 문단의 줄 수 등이 아무 제한을 받지 않았습니다. ‘겨울나무’의 바탕에는 서정이 깔려 있고, ‘사과가 말했다’ 바탕에는 동심이 깔려 있습니다. 사과가 되고 싶은 여름 사과, 아직 익지 않은 연두 사과는 사과가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햇빛, 소나무, 바람 등이 사과라고 일러 줘도 아직 익지 않았으니 사과가 아닌 것 같다고 하는 말은 사과가 되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가 아닐까. ‘사과가 되고 싶으니까 심장이 뛴다’는 말이 그런 뜻을 뒷받침해 줍니다. 동심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순수한 동심이기 때문에 사과처럼 신선합니다. 동심을 가진 어린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서 공감을 할 것입니다. 동심은 어른도 노인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공감을 할 것 같습니다.
질문8)
동시의 독자에 대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요즘 동시의 가장 열렬한 독자는 어린이보다 동시를 쓰는 어른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요보다 트롯트를 더 즐겨 부르고 동화보다 애니메이션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심정은 어떠신지요?
최춘해 : 세월이 흐르면 세월 따라 유행이 바뀝니다. 청소년들이 한국의 K팝에 심취하듯이 세월이 흐르면 어린이들도 취향이 달라집니다. 1945년 광복 전후에는 어린이들이 동요를 즐겨 불렀지만 지금은 동요보다는 트롯트를 더 즐겨 부르고 동화보다는 애니메이션을 더 좋아하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취향이 달라진 것을 강제로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어른들의 노래 대회에 어린이들이 나와서 유행가를 부르는 것을 보면 주최 측에 왜 어린이들이 출연하도록 허용하느냐고 항의를 하고 싶지만 세상이 달라진 것을 어쩌겠습니까? 달라진 세상에 순응을 하는 수밖에요.
질문9)
한때 잔혹동시가 세간의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동시를 쓰면서 창작자가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나 덕목이 있다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어린이 시와 동시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도 함께 여쭙고 싶습니다.
최춘해 : 1986년 12월 25일 大邱文學에 발표된 글 일부를 옮겨보겠습니다.
아동문학의 특수성과 독자와의 관계
최춘해
아동문학 작품 즉 동시, 동화, 소년 소설 등은 성인이 써서 아동에게 읽으라고 주는 글이다. 성인도 읽기는 하지만 첫째 대상은 아동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낱말도, 생각도 아동에게 맞아야 한다.
성인은 아동의 단계를 이미 벗어났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쓰는 용어도 아동이 안 쓰는 말을 많이 쓰고 생각도 아동과는 차이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에게 맞추어야 하니 제약을 많이 받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제약을 받아야 할 것은 교육성이다. 성인 문학에서는 성인 사회의 부조리나 비인간적인 면, 추하고 악랄한 면을 그대로 나타내도 비판을 하면서 읽기 때문에 오히려 효용성이 클 수도 있지만 아동들은 비판할 능력이 없으므로 금방 오염이 된다. 그러므로 아동문학에서는 밝고 긍정적인 면에서 취재가 되어야 한다. 물론 그늘지고 어두운 면은 아동문학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동의 생활이 담겨 있고 아동의 단계에서 바르게 비판을 할 만한 내용이면 굳이 기피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효용성이 클 수도 있다. 어쨌든 교육성을 고려해야 할 제약성이 있다.
또 한 가지 아동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꿈과 환상의 세계이다. 아동들이 한 가지 더 가진 것이 꿈과 환상의 세계이다. 아동들의 이와 같은 특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장르가 동화라고 하겠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잔혹 동시를 다시 들어 보겠습니다.
잔혹 동시 학원가기 싫은 날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은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이렇게 끔찍하게 저주하는 글을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이 책으로 발간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 책을 일찍 회수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질문10)
지금은 어느 때보다 아동문학이 주목을 받고 있는 때인 것 같습니다. 혜암아동문학회 홈페이지를 보면 그동안 배출된 시인들의 활약상을 소상히 알 수 있는데 한국아동문학 속에서 대구라는 지역 동시문단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와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최춘해 : 전국에서도 대구에서 아동문학 단체가 가장 먼저 발족한 것 같습니다. 1957년 3월 3일 대구아동문학회 창립총회를 원화여고 교장실에서 열고 이응창을 초대 회장으로 선임했습니다. 창립회원은 이응창 김성도 김진태 윤운강 여영택 이민영 신송민 정휘창 서월파 윤혜승 서광민 박인술 등입니다. 김성도씨가 소천아동문학상을, 강준영 신현득 김종상 하청호 김녹촌 최춘해 등이 세종아동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초창기부터 회원들의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에 대구아동문학회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 뒤에 영남아동문학회, 경북아도문학회, 새바람아동문학회, 혜암아동문학회 등이 발족했습니다. 5개 단체가 각각 활동을 하다가 아동문학협회라는 걸 만들어서 하나의 단체로 활동하려고 기획을 하는 중입니다. 혜암아동문학회는 가장 늦게 발족한 단체이지만 회원 중에 작품을 잘 쓰는 사람이 많아서 회원이 낸 책이 세종아동도서 등 우수 도서로 선정이 되고, 각종 콘텐츠 창작지원에 많은 회원들이 선정이 되고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자 혜암아동문학회가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단체 간의 불협화음도 있었으나 지금은 해소되어서 모임에서도 상호 교류가 되고 있습니다.
질문11)
선생님께서는 교육자로서 창작자로서 긴 시간 동안 활동해 오셨습니다. 동시의 현장에서 느낀 소회나 보람 또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최춘해 : 저는 교직에서 최선을 다 했습니다. 교직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오로지 어린이를 가르치는 데 매달렸습니다. 글짓기 지도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글짓기 지도 논문이 당선이 되어 문교부장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직자들이 원하는 교감 교장 관리직에도 남보다 일찍이 그리고 더 오래 (교장 12년) 근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교직을 떠나면서 생각하니까 관리직을 오래 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관리직을 하면 제자가 없습니다. 계속 담임을 했더라면 정다운 제자가 많았을 텐데 하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동문학을 하면서 즐거웠던 일은 1979년 세계아동의 해에 문교부와 한국일보사 공동으로 주최한 작품모집에서 동시 부문에 금상으로 당선 것, 1980년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1984년 세종아동문학상 수상, 1993년 방정환 문학상 수상 및 경북문화상 (문학부문) 수상 등을 수상한 것. 흙 연작시를 발표한 뒤에 ‘흙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받았을 때입니다.
제가 ‘흙’ 연작시를 쓰게 된 동기는 1979년 세계아동의 해에 문교부와 한국일보사가 공동으로 작품 모집을 했는데, 제가 응모한 흙 연작 8편이 금상으로 뽑혔습니다.
흙 · 2
최춘해
흙은 너무 지쳐서
겨우내 잠을 잔다.
북풍이 몰아쳐도
곤하게 잠을 잔다.
살갗은 얼어도
품속 개구리, 씨앗들을
제 체온으로 다독인다.
잠 속에서도 다독이는 건
흙의 버릇이다.
풀뿌리 하나라도
감기 들까 걱정이다.
입춘 무렵 흙은
잠이 깨어도
자는 척 누워 있다.
품속 어린 것들
선잠 깰까 봐.
(수상자 8편 중 한 편)
금상 수상을 하고 나서 계속 흙 연작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1979년 8월 15일에 동시집 젖줄을 물린 흙을 발간했습니다. 1980년 1월 15일(화) 시사통신에 제6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자 결정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냈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 온 최춘해 씨는 문예진흥원의 출판기금 지원을 받아 지난 해 동시집 『젖줄을 물린 흙』을 낸 바 있고, 아동의 기념 전국아동문학 작품모집에서 최우수상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최춘해 씨의 수상작은 연작 동시 『흙』이다.
제가 ‘흙’ 연작시를 쓰는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금상 수상을 하고 나서 계속 흙 연작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1979년 8월 15일에 동시집 젖줄을 물린 흙을 발간했습니다. 1980년 1월 15일(화) 시사통신에 제6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자 결정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냈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 온 최춘해 씨는 문예진흥원의 출판기금 지원을 받아 지난 해 동시집 『젖줄을 물린 흙』을 낸 바 있고, 아동의 기념 전국아동문학 작품모집에서 최우수상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최춘해 씨의 수상작은 연작 동시 『흙』이다.
제가 ‘흙’ 연작시를 쓰는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으며 흙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나도 흙의 한 부분입니다. 봄에 새싹이 돋고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흙이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심의 원초적 생각인 물활론의 눈으로 흙을 보게 되었습니다. 흙을 소재로 동시를 썼습니다. 1979년 세계 아동의 해에 문교부와 한국일보사 공동 주최로 세계 아동의 해를 기념하여 동시 동화 현상모집을 하였습니다. 시․도 대회를 거쳐 전국 대회로 이어졌습니다. 흙 연작 동시 8편을 투고하여 전국 대회에서 동시 부문에 금상을 받았습니다. 그 뒤부터 흙을 연작으로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연작을 쓰면서 지구를 살리는 데도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지구가 오염 또는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작품을 쓰는 사람이 당면한 절실한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흙은 뿌리, 어머니, 고향 등 여러 가지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런 넓은 의미의 흙을 작품으로 승화시키자는 것입니다.
흙을 사랑하는 것은 고향을 지키는 것이요, 전통을 살리는 것입니다. 순수해지는 것이요, 이웃끼리 정다워지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요,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느긋하게 참고 순리에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욕심을 내거나 억지스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농산물 개방으로 앞으로는 농촌을 더 많이 떠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흙과 점점 멀어지고 인심도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흙을 멀리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간접으로라도 흙을 겪게 하기 위해서 흙을 소재로 쓴 문학 작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더 늦기 전에 흙을 소재로 한 작품을 앞장서서 써 보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흙은 모든 생물이 태어나서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랑과 봉사의 뜻이 있습니다. 목숨을 가진 모든 것들이 태어나서 살아가도록 해 줍니다. 봄에 밖에 나가보면 흙이 있는 데는 어디든지 목숨의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갖 벌레와 동물들이 기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겨울 동안에 품안에 안고 있다가 따뜻한 봄이 돼서 제대로 살아갈 만할 때 밖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들딸을 사랑하듯이 흙은 모든 생물을 감싸 안아 줍니다. 그 많은 생물들이 자라고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먹을 것을 다 대줍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주기만 합니다.
또 흙은 정직합니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는 콩이 나지 절대로 팥이 나지 않습니다. 부지런한 농부한테는 풍성한 곡식을 거둬들이게 하고 게으른 사람한테는 절대로 곡식이 잘 되게 하지 않습니다. 땀 흘려 일한 만큼만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생물, 무생물들이 흙의 한 부분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아갑니다. 하늘, 산과 들, 강, 바다, 동식물 등, 이런 자연을 숨 쉬며 그들이 주는 은혜를 입고 살아갑니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말없이 수많은 이치를 끝없이 가르쳐 줍니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배우고 슬기를 얻고 바르게 사는 방법을 배웁니다. 사랑을 배우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배웁니다. 여기서 흙이라고 한 것은 흙 한 가지만이 아니라, 자연 모두를 통틀어 말한 것인데, 그 가운데 대표되는 것이 흙이란 뜻입니다.
1992년 최지훈 선생이 출간한 『동시란 무엇인가』에 작품론 「생명의 젖줄, 흙의 노래-최춘해의 연작시 흙」이라는 글이 실렸는데 ‘흙의 시인’이라는 별칭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춘매 시인의 시가 갖는 큰 특징은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인 춘매는 자연을 그냥 아름다운 대상이나 신비한 사물로 보고 즐기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자연의 비밀과 질서를 사람의 삶에 비추어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눈으로 발견한 것은, 자연이 사람의 바른 삶을 위해 주는 상징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는 그 자연을 통하여 발견한 참 삶의 진리를 시로써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이미지의 시라기보다 상징으로 보여 주는 메시지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의 시란 어떤 모습을 그림처럼 한 장면으로 보여 주는 시입니다. 비유라는 색으로 칠하여 곱게 서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지의 시는 무엇인가 깨달아야 할 일을 말해 줍니다. 특히 진리를 전해 주려고 합니다. 이때는 대개 ’상징‘이라는 연필로 써서 읽게 하거나 말로 들려줍니다. 여기서 「흙」 그의 그러한 생각이 다만 메시지의 시 중에서 대표적인 시입니다. 여기에서 ’상수리나무‘는 성실하고 겸허한 시인의 삶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 시의 상수리나무는 시인이 존경하고 이상으로 여기는 ’아름다운 사람‘의 상징입니다. 내가 보기엔 그 아름다운 사람이 바로 시인 자신으로 여겨집니다. 성실한 사람, 겸허한 사람---그것은 시인의 모습이며 시인의 삶임에 틀림없습니다. 그와 함께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함께 문학 활동을 하던 동료와 선후배들이 하나같이 고향을 등지고 대도시로 나아가 유명해진 후에도 그는 지금까지 고향 땅에 뿌리 내리고 살면서 소리 없이 시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거짓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세상 누구에게도 부끄러움이 없는 영혼을 지녔다는 뜻이며, 그러므로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다는 뜻입니다. 땅을 굳게 딛고 당당하게 시 읽는 모습이 교만 방자하게 남을 위압하고 겁주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뒤에 계속된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궁궐의 정원수도, 대중의 환호도, 값비싼 귀한 몸도 되고 싶지 않다는 겸허한 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분수를 알고 겸허하게 이웃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구김이나 부끄러움도 없고 기죽지도 않는 떳떳한 기개가 곧 성실한 마음입니다.
으리으리한 궁궐로 상징되는 권세도, 윗사람의 칭찬으로 상징되는 명예도, 값비싼 몸으로 상징되는 귀족의 신분이나 재산에 대하여도 초연한 태도로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며 세상의 이웃과 살겠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소박한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달관한 인격입니다. 향기 높은 인격입니다. 마치 예수가 고행 끝에 사탄에게 당한 유혹을 뿌리쳤던 고매한 인격과도 같습니다. 이런 인격은, 바로 우리의 가까운 주위에서 이름 없이 자기 일에 성실하며 최선을 다하고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것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이웃 사람에게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흙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삽니다. 흙은 나무를 감싸고 지켜주며 먹이고 키워주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흙은 어머니이며, 가정입니다. 흙 떠난 나무가 살 수 없듯이 어머니를 버리고 가정을 떠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아가 ‘나’를 지켜주고 낳아 준 조국을 버리고 한 몸의 영달을 위해 떠나서 제대로 값진 제 생명 값을 지키며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흙이 나무의 젖줄이듯이 이 나라 이 땅은 겨레의 젖줄이며, 내가 사는 가정은 내 생면의 마지막까지 보루입니다. 거기에 뿌리 내리고 지키는 자만이 꽃피우고 열매 맺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생략)
1984년에 세종아동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작품은 빈 새 둥지 아침 숲속 흙 산비탈 의 참나무 4편입니다.
빈 새 둥지
최춘해
아기 새가 떠나간
보금자리엔
따슨 얘기들이
흥건히 괴어 있다.
알에서 아기 새가
태어나기까지
피를 말리며
온몸으로
알을 품고 있던
어미 새.
내 배는 고파도
먹이는 아기 새 부리에
넣어 주고
보송보송한 털
파란 하늘이 괸
말간 눈동자
동글동글한 샛노란 노래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그것만을 보람으로 여기던
어미 새.
아기 새는 자라서
어디론지 떠나가고
외로운 어미 새는
친구 찾아 나들이 간 지금,
빈 새 둥지엔
찬바람이 썰렁하다.
아침 숲속
최춘해
솔잎에서 나온
싱싱한 바람으로
마음의 티를 닦아낸
산새들,
맑게 닦인 목소리가
굴러 나온다.
높은 산 숲 속을 지나온
햇볕은 더 밝고
더 따스하다.
솔숲 바람에 닦인
하늘은 더 맑다.
숲 속 아침 공기는
코가 찡한 박하 냄새.
어둠이 걷히면
하룻밤 못 본 사이가
서로 반가와서
눈짓으로
몸짓으로
숲 속 식구들
인사를 나눈다.
차 소리, 기계 소리가
없는 여기서는
목소리가 부드럽다.
산새가 지저귀어서
더 고요하다.
송아지가 울어서
공기가 더 부드럽다.
구비치는 낙동강
꼬부랑 오솔길.
높았다 낮았다 한
산봉우리.
가지런하지 않아서
더 어울린다.
나무는 가지를
뻗고 싶은 대로 뻗고
칡덩굴은 가고 싶은 대로
산을 긴다.
심사 소감
순박한 농촌의 자연을 노래
소재와 표현에서 개성 두드러져
추천을 거쳐 심사위원회에 넘어온 작품은 30명 작가의 것으로 9권의 동시집 ,1권의 동시조집, 11권의 동화집에서 고른 작품과 어린이 잡지 등 지상에 발표한 것이었다. 수준이 고르고 실력에 찬 작품을 발표해 준 작가들에게 감사한다. 이 중 신언련, 노원호, 최춘해 씨의 동시 <빈 새둥지> 외 3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은 이유는 두드러진 그의 개성에 있다. 최춘해 씨는 어린이들에게 농촌의 자연을 애향심으로 일깨워 주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그의 개성은 이런 소재면을 떠나서 표현면에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최 시인은 비교적 무기교적인 표현을 통해 시를 빚고 있다. 따라서 그의 동시는 아기자기한 재미보다 읽고 남은 여운으로서 무게가 남는다. 이런 우직한 그의 개성이 순박한 농촌의 자연을 노래하기에는 공감도가 크리라. 이런 면에 심사위원 전원의 의견이 모아졌다. <심사위원 : 김동리, 어효선, 김종상>
1993년에는 방전환문학상과 경상북도 문화상 문학 부문 연거푸 받았습니다.
제3회 방정환 문학상 시상식 안내장 내용 중 심사기와 심사 소감을 옮겨 봅니다.
심사 소감 : 최춘해 시인의 <뿌리내리는 나무>는 그의 회갑 기념으로 펴낸 시선집으로서 그의 시 세계를 조망하는 데 아주 효과적으로 꾸며진 것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이미 알려진 대로 근본(뿌리)을 소중히 여기는 데 (찾기, 알기, 지키기) 있다. 특히 연작시 ‘흙’은 그의 평생 대표작이며 우리 동시사에 기리 남을 수 있는 명시편으로 꼽힐 수 있는 작품이다. 동화, 특별상 심사 소감은 생략합니다.
경북문화상 (문학 부문)에 대해서 영남일보 기사를 옯겨 봅니다. 도문화상수상자 확정
문학부문 崔椿梅씨 조형예술 羅富榮씨 공연예술 文武範씨 체육부문 洪進杓씨 경북도는 문학부문에 최춘매 구미시 금포교 교장을 선정하는 등 제34회 경상북도 문화상 수상자 4명을 확정했다. 도는 12일 오후 문화상 심사위원회를 열고 조형 예술 부문에 나부영 동국대 교수(경주캠퍼스), 공연 예숲부문에는 문무범 구미전자공고 교사를 선정했다. 또 문학 부문에는 최춘매 교장(필명 최춘해), 체육 부문에 홍진표 효성여대 교수를 문화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경북도는 언론 출판 부문 등 모두 8개 분야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사람을 문화상 수상자로 선정, 시상하고 있으나 올해는 언론 출판과 자연과학 부문에는 신청자가 없었고, 인문 사회과학과 문화 부문은 심사 결과 마땅한 대상자가 없어 수상자 선정을 하지 않았다. 도는 12월 9일 도청 강당에서 경북도 문화상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들에게는 각 3백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질문12)
선생님께서 창립하신 <혜암아동문학회>는 회원들의 봉사와 더불어 운영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특히 <혜암아동문학상>은 선생님께서 쾌척하신 적잖은 기부금이 문학상의 존속과 위상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최춘해 : 혜암아동문학회가 활동하고 있는 것은 다달이 연수회를 열어서 작품 합평, 회원이 책을 냈거나 상을 받았을 때 격려해 주고 함께 기뻐하는 일, 수강생을 모집해서 강의를 하는 일, 총회 때 혜암아동문학상 시상, 혜암아동문학 교실 수료식, 연간집 출판기념 행사를 하는 일입니다. 거창하게 떠벌리지 않고 지금 하는 일을 알차고 내실 있게 하고 싶습니다. 각각 맡은 부서별로 스스로 잘 추진하고 있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동문학 교실 강의는 봉사할 강사가 있고 수강생이 있으면 계속했으면 좋겠습니다. 혜암아동문학상은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모든 건 운영위원회의 결의를 존중하려고 합니다. 제가 성의껏 상금 기금을 기부한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남의 신세를 안 끼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내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변희수: 글의 정신을 절실하게 하는 힘이 결국은 문장력에 있다는 생각을 저도 다시 해보게 됩니다. 가장 근래에 내신 시집 『말 잘 듣는 아이』에 실린 <오늘>이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제가 아직 동시에 대한 견해가 짧습니다. 소상한 답변으로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세요.
최춘해 : 변희수 선생님의 알찬 질문에 답변이 허술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은 다 드린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햇빛이 환하다.
더 바라고 싶지 않다.
저한테
오늘을 주신
하느님이 고맙다.
-최춘해 <오늘>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