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7장 22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18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누가복음 7장 22절, 새번역>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18절, 새번역>
CCM가수 강명식씨의 3집 앨범 수록 공 중 '진리'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아직 안 들어보신 분들은 꼭 한 번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ydiFJlFyY8
이 찬양의 가사 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구하면 산다. 세상 헛된 것에 소망 두지 말고 하늘의 것을 구하면 산다'
저에게만 와 닿았던 찬양 가사가 아니었습니다. 이 찬양을 처음 접했던 당시 아홉살이었던 첫째 아들이 이 구절을 듣고 직접 써서 TV 상단에 붙여 놓기까지 할 정도로 의미가 있었던 가사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아빠, 하늘의 것을 구하며 산다는 것이 어떤 거예요?"
이 질문을 듣고 얼마나 깊은 묵상을 했는지 모릅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꾸준히 하늘의 것을 구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일지 질문하고, 찾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 답을 알려주시는지도 모를 예수님의 말씀을 짧게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바로 그 유명한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나눈 예수님의 대화의 현장으로 잠시 떠나고자 합니다.
세례요한은 감옥에서 자기 심복 둘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요한은 자기 제자 가운데서 두 사람을 불러, 주님께로 보내어 "선생님이 오실 그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누가복음 7장 18B~19절, 새번역>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례를 베풀며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했던 세례요한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생각했던 메시아가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소위 메시아라면 '하늘의 것'을 구해야 하는 것인데 예수님의 삶은, 예수님의 행보는 최소한 세례요한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사명으로 받은 세례요한의 삶이야말로 오히려 더 '메시아'처럼 보이기에 합당했습니다. 하늘의 것을 구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란 안타까운 생각에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더 간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간단한 대답을 하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하시던 그대로의 삶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온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들으시면서도, 예수님은 변함없이 동일한 행동을 하십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질병과 고통과 악령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많이 고쳐주시고, 또 눈먼 많은 사람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 <누가복음 7장 21절, 새번역>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보여주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 어떤 고귀한 일보다 더 고귀한 '하늘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들려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누가복음 7장 22절, 새번역>
그리고는 자신에게 의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누가복음 7장 23절, 공동번역>
저는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관계에 대해서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례요한의 이런 질문하는 태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높게 사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야 하고, 눈길을 주어야 하고, 발길이 머물러야 할 이야기를 예수님이 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진짜 찐 '하늘의 것'을 설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눈 먼 사람이 다시 보게 됩니다. 비단 육체적인 눈 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던 모든 이들의 눈을 다시 보게 해주십니다.
다리 저는 사람이 걷게 됩니다. 비단 육체적인 다리 뿐이겠습니까? 올바로 걷지 못하던 이들이 드디어 말씀 위에, 반석 위를 걷게 됩니다.
나병환자가 깨끗해집니다. 정죄와 죄책감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의 삶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귀먹은 사람이 듣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합니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듣기 시작합니다. 들음으로부터 모든 삶의 회복이 시작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납니다. 죽음을 이기십니다. 죽음이 더 이상 활개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부활의 능력을 선포하십니다. 부활을 살아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도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습니다. 부자들에게만 향하던(어찌보면 제사장의 아들이었던 세례요한도 마찬가지였던것처럼) 복음이 이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원래대로 정상적으로 전해집니다. 진짜 가난한 이도, 마음이 가난한 이도, 모든 가난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것이 '하늘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고귀한 가치입니다. 예수님이 추구하시던, 하나님의 뜻이 담긴 '복음'입니다.
'하늘의 것'을 구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개인적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절대 생기지 말아야 할 단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필요에 맞는 이들만, 어울릴만한 이들끼리만, 수준과 생각이 비슷한 이들만 함께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교회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야말로 '하늘의 것'을 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눈물이 나고 안타까움만 가득합니다. 진짜 하늘의 것을 구하는 삶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하늘의 것을 구하고 싶으십니까? 그럼 예수님이 가신 길을 꼼꼼히 살펴보시고, 그 길을 따라 가십시오. 그 분이 이 땅에 오시게 된 이유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쫓아보십시오. 그리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렇다면 알게 될 것입니다. 진짜 하늘의 것을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렇게 될 때 오늘 세례요한과 같은 안타까운 질문은 결코 던지지 않을 것입니다.
새삼 '하늘의 것'을 묵상하며 이 구절이 더욱 깊이 와 닿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나누고 짧은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18절, 새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YNkC17jwyeI
https://www.youtube.com/watch?v=6o0f2huI-KE
https://www.youtube.com/watch?v=dAHr4Ng4mXk&list=PLVbVhDrpd5BfwFUzCYS-5-pZLF5BQ5gKF&index=13
https://www.youtube.com/watch?v=acIjSPvVCu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