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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29회
은티마을-지름티재-구왕봉-호리곡재-주치봉-은티재-입석재삼거리
20230219
1.위태로운 암릉과 구왕봉 상고대의 아름다움
2월 19일은 24절기 중 두 번째 절기인,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 절기이다. 날씨는 雨水답지 않게 추웠다. 우숫날 봄맞이 산행으로 충북 괴산군 연풍면 구왕봉-주치봉 산행을 떠났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도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산행 출발지 은티마을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며 비가 뿌린다. 거기에다 구름안개까지 짙게 드리워 을씨년스럽기가 그지없다.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산행을 준비하여 출발한다. 은티마을 입구에는 수령 400년의 소나무 16그루가 자라는 솔숲이 조성되어 있고, 마을유래비와 목장승 한 쌍이 세워져 있다. 마을이 의인촌리(義仁村里)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의인(義仁)은 한국의 민족정신이 함유되었다 하여 은티(銀峙)로 개칭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치동(周峙洞)과 진촌(榛村)의 이름을 따서 주진리(周榛里)가 되었다고 유래비에 적혀 있다. 또한 은티마을 주막집 앞에 '동고제(洞告祭)'를 올리는 남근석이 세워져 있다. 은티마을은 풍수지리학상 자궁혈(子宮穴) 형상의 포근하고 물이 많아 사람 살기에 좋은 땅이지만, 여자의 기(氣)가 너무 세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 남근석(男根石)을 세워 남녀 간 기(氣)의 조화(調和)를 이루고, 매년 정월 초이튿날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동고제(洞告祭)를 올려왔는데, 2015년부터 정월 대보름날로 옮겨서 동고제를 전승하고 있다고 동고제 안내판에 적혀 있다. 은티마을의 민속신앙이 깊게 자리한 속에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봉건시대적 가치가 배어 있는 것 같다.
음푹 파인 지름티재와 동서에 솟아 있는 희양산과 구왕봉을 올려보며 길을 따라오르다가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오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곳에 수차례 왔음에도 잠시 한눈 팔면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지름티재와 호리골재 갈림목에서 산악회 회원 산우 네 분과 헤어져 지름티재로 향하였다. 지름티재에 2년이 안 되어 다시 왔다. 이번에는 바람이 몹시 세차고 구름안개가 잔뜩 끼어 산행 조망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산악회 회원들의 꼬리도 보이지 않는 지름티재에서 홀로 구왕봉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구왕봉까지는 암릉 지대의 밧줄 구간이 곳곳이다. 1차 어려운 곳은 전망바위까지이고 2차 위험 구간은 구왕봉 오르는 곳이다. 위태로운 암릉지대를 조마조마 떨면서 어렵게 통과하는데 '부리나케' 표지리본에 '노자 도덕경'의 문구와 불경 문구가 적혀 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부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 無說說 不聞聞(무설설 불문문) "말함이 없이 말하고 들음이 없이 듣는다." 앎과 말과 들음에 관한 역설적인 내용이 그럴 듯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아는 만큼 말해야 하고 들은 만큼 배우게 되어 인간 사이의 교유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설은 언제나 역설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위태로운 암릉 지대를 밧줄에 의지해 전망 좋은 바위에 올랐다. 그런데 구름안개가 잔뜩 낀 날씨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희양산이 보이지 않으니 조계종 특별수도원으로 선정된 봉암사가 보일 리가 없다. 잿빛 구름안개에 모든 풍경이 무화(無化)되었다. 산행의 큰 기쁨인 조망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허위적허위적, 다시 긴장의 끈을 다지며 구왕봉 오르는 암릉 지대를 위태롭게 올랐다. 아쉬움이 있으면 그에 대한 보상이 뒤따르는 것일까?
구왕봉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내려오는데 떨기나무 가지에 하얀 상고대가 피어나고 있다. 아직 어리고 연약한 상고대지만 이를 만나는 기쁨에 탄성이 터져나왔다. 올해 처음으로 만나는 상고대이다. 안개가 떨기나무 가지에 얹혀 얼음꽃으로 피어나고 있는데 그 안개들이 많이 뭉치지 못하여 성대한 상고대를 아직 이루지는 못하였다. 비록 어리고 연약한 상고대이지만 내게는 소중한 얼음꽃이다. 그들과 한참을 마주했다. 지난 시절 여러 곳에서 마주했던 탐스런 상고대들이 구왕봉 어린 상고대에 얼굴을 비춘다. 세상의 모든 물상은 그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법, 구왕봉의 연약한 상고대가 빛나게 반짝거린다.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1.91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43분
2-1. 백두대간 능선에 이르는 길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은티마을 주차장, 농산물직판장 휴게소와 희양산식당이 오른쪽에 있다.
이번 산행은 백두대간 능선 지름티재에 오른 뒤 구왕봉-호리골재-주치봉-은티재-입석재삼거리로 진행한다.
보호수인 400년 수령의 소나무 16그루가 자라고 있고 목장승 한 쌍, 마을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은티마을 유래비와 목장승 한 쌍이 세워져 있다.
은티부락은 연풍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東은 중리 부락 北은 삼풍리 南은 경북 가은과 접하고 있고 연풍면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는 부락으로서 형성된 시기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연풍면지 등 여러 문헌에 의하면 조선초기 연풍현 당시 현내면 연지동에 속해 있었으며 1812년 작성된 동절목엔 인지동 의인촌리(義仁村里)로 기록, 1910년 경술국치 후 왜인들이 의인(義仁)은 한국의 민족정신이 함유되었다 하여 은티(銀峙)로 개칭,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에 따라 주치동(周峙洞), 진촌(榛村).응암(應岩), 조봉(鳥峰), 중리(中里)를 병합 주치와 진촌의 이름을 따서 주진리라 하였으며, 8,15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주진리를 3개 마을로 나눠 그 중 우리마을을 은티라 칭했다. 퐁수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는 여궁혈(女宮穴)에 자리하고 있어 동구에 남근(南根)을 상징하는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수 있다고 하여 동구 송림 안에 남근석을 세워놓고 매년 음력 정월초이튿날을 정제일로 마을의 평안과 동민 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燒紙)를 올리며 제가 끝나고 나면 한자리에 모여 음복을 하고 제물을 나눠 먹는 동고사를 지내고 있다. 서기 1969년 6월 20일 은티마을 동민 일동
은티주막집 앞에 남근석 사당이 위치한다.
남근석 앞의 설명안내판에서 '동고제(洞告祭)의 유래'를 옮겨 놓는다. 설명안내판의 "여자의 여자의 기(氣)가 너무 세다"에서 '여자의', "구구팔팔 복상사(九九八八 腹上死)"에서 '복상사(腹上死)'가 지워져 있다. 복상사는 문맥에도 맞지 않아 보인다.
백두대간 희양산(999m) 자락에 위치한 은티마을은 풍수지리학상 자궁혈(子宮穴) 형상을 이루고 있어 천지간(天地間)의 기(氣)를 모아 생명이 잉태(孕胎) 되는 양택(陽宅)의 땅이다. 옛 문헌 등 절목(1812년) 기록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말기 천주교의 탄압과 일제강점기 의인(義人)들의 은신처였고 6.25사변 때에도 화를 면했다는 명당 중의 명당(明堂)인 땅이다. 자궁혈의 땅은 포근하고 물이 많아 사람 살기에 좋은 땅이지만 여자의 기(氣)가 너무 세다는 설에 따라 마을 입구에 소나무 숲(陰毛에 해당됨)을 가꾸고 남근석(男根石)을 세워 남녀 간 기(氣)의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어서 은티마을에 발길만 들여놓아도 무병장수의 복을 누리고 남근석 앞에서 남자가 정성을 드려 기도를 올리면 구구팔팔 복상사(九九八八 腹上死)를 받게 되고 특히 여자가 남근석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원하는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은티마을이다. 이에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이튿날(2015년부터 정월 보름날)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동고제(洞告祭)를 올리는 풍습을 전승하고 있다.
왼쪽이 희양산 줄기이고 움푹 파인 곳이 지름티재, 오른쪽이 구왕봉이라 가늠한다.
은티중리4길을 따라간다.
지름티재 가는 길을 놓치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되돌아왔다.
은티중리4길 은티펜션 앞을 거쳐 오른쪽 위 길가의 큰 바위를 지나간다. 맨 뒤쪽에 지름티재가 흐릿하다.
은티중리4길 102 은티마을 맨 꼭대기집을 지나간다.
은티마을 입구에서 출발하여 은티마을 맨 꼭대기 집까지 걸어온 길이 가늠된다.
왼쪽이 지름티재 가는 길, 오른쪽은 호리골재 가는 길이다.
백두대간 희양산과 지름티재 가는 길이다.
지름티재-구왕봉-마당바위-호리골재-주치봉-은티재로 산행을 이어갈 예정이다.
왼쪽은 성터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지름티재 가는 길로, 1km 거리를 올라야 지름티재에 이른다.
왼쪽은 희양산 방향, 오른쪽이 구왕봉 방향이다.
2-2.백두대간 산줄기 산행
(지름티재-구왕봉-주치봉-입석재 삼거리)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의 경계이며 남쪽 문경 지역에 봉암사가 있다.
구왕봉 0.5km 거리가 짧은데, 급경사와 암릉지대여서 몹시 힘겨운 거리이다. 오른쪽 언덕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봉암사 출입을 통제하는 건물이 오른쪽 아래에 보인다.
부리나케 표지리본에 '노자 도덕경'의 문구와 불경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 뜻을 인터넷에서 찾아 옮겨온다.
1.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부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노자(老子)> 56장)
참으로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말로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것을 말로 드러내는 사람은 사실은 참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자불언 언자부지’는 얕은 지식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을 훈계하는 말로 사용된다. 백거이(白居易)는 노자가 이런 말을 해 놓고도 《노자》 오천언을 지은 것을 은근히 야유하는 시인 〈독노자(讀老子)〉를 지었다.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며 아는 사람은 침묵한다. 이 말을 나는 노자에게 들었네. 노자가 정말 아는 사람이라면 어찌하여 스스로 오천언을 지었나.(言者不知知者默 此語吾聞於老君 若道老君是知者 緣何自著五千文) - 다음백과
2.無說說 不聞聞(무설설 불문문) 말함이 없이 말하고 들음이 없이 듣는다.(<관음찬(觀音讚)>의 게송)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 남순동자불문문(南巡童子不聞聞) 백의관음보살님은 말 없이 설법을 하시고, 남순 동자는 듣지 않아도 설법을 알아듣는구나.」 유명한 <관음찬(觀音讚)>에 나오는 게송이다. 즉 “관세음보살은 법을 설해도 전혀 설하는 것이 없이 설하며, 그 설법을 듣는 시자 남순동자는 역시 듣는 것 없이 듣는다.”라는 뜻이다. - 아미산 블로그
표지리본이 달려있는 나무 아래 산길로 내려갔다가 위태로운 암릉 지대를 통과해 전망바위로 오른다.
위태로운 암릉 지대를 힘겹게 통과하여 전망바위에 올랐으나 구름안개에 사방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이곳에서도 희양산과 봉암사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발 879m 구왕봉(九王峰) 정상에 도착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군 가은읍에 걸쳐 있다. 동쪽의 희양산(999m)에 가려 비교적 덜 알려진 산. 아기자기한 등산코스를 자랑하며 희양산과 함께 동서로 나란히 위치한 암산이다. 백두대간 구간 중에서도 급경사와 암릉이 많아 난코스에 속한다. 산자락에는 신라 헌강왕 5년(879년), 지증대사가 심충이라는 사람의 권유로 봉암사 자리를 정하고 그 자리에 있던 큰 못을 메울 때 대사가 신통력을 이용하여 못에 살고 있던 용을 구룡봉으로 쫓았는데 그 곳이 바로 구왕봉이다. 봉암사에서는 이 산을 날개봉이라고도 하는데 창건 설화가 전해져 오며 매년 소금단지를 묻어 기를 눌러준다고 한다. 이 산에서 인상적인 것은 정상에서 은티마을 쪽으로 뻗은 대단애이다. 높이도 꽤 높고 길이도 2~300m 정도 된다. - 두산백과 두피디아
정면에 보이는 산이 주치봉, 오른쪽은 은티마을 내려가는 길이다. 내려가 비석을 보니 안동 김씨와 경주 손씨 합장 묘지이다.
악휘봉 3km 거리가 멀지 않은 거리인데 암릉과 암반 지대, 오르내림이 계속되어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곳에서 주치봉 오르는 비탈길이 가파르다.
왜 주치봉(周峙峰)이라 이름지었을까? 은티마을 유래비를 보면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에 따라 주치동(周峙洞), 진촌(榛村).응암(應岩), 조봉(鳥峰), 중리(中里)를 병합, 주치(周峙)와 진촌(榛村)의 이름을 따서 주진리(周榛里)라 하였다." 그러니까 이 산봉이 주치마을 위의 산봉이어서 주치봉이 되었을 것이며 주치마을은 고개들이 두루 있는 마을이어서 주치마을이 되었을 것이다.
주치봉에서 은티재로 내려가면서 맞은편 산봉을 바라보았다. 암릉과 암반 지대로 이어지는 산봉들 통과하기도 어렵다.
소나무와 낙엽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그 뒤쪽에는참나무들도 군락을 이루고 있는 혼합림이다.
산객 한 분을 은티재에서 만났다. 대구 등고선산악회 회원으로 오늘 새벽 2시 30분에 버리미기재에서 출발하여 주치봉과 구왕봉을 거쳐 은티마을로 하산한다고 한다. 그런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이곳에서 은티마을로 하산한다고 한다.
악휘봉 2.1km 지점인데, 여기서부터 암반과 암봉들을 거쳐가는 산행이 몹시 어렵다.
은티재에서 암봉 아래에서 뒤돌아보니 주치봉과 구왕봉이 모습을 보인다. 구왕봉 뒤 왼쪽에 희양산이 흐릿하다.
밧줄 있는 암반 지대를 통과하며 또 암반 지대가 나온다.
또 하나의 암반 지대를 통과한다. 이 암반 위에서는 전망이 좋지만 구름안개 때문에 제대로 조망을 즐기지 못한다.
중앙에 주치봉, 그 왼쪽 뒤에 구왕봉, 그 왼쪽 뒤에 희양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이곳에 올라 조망이 좋은데 안개구름 때문에 청명한 풍경을 감상하지 못한다. 오른쪽 산길로 이어간다.
앞에 주치봉, 그 왼쪽 뒤에 구왕봉이 보인다. 그 왼쪽 뒤의 흐릿한 희양산이 가늠된다.
오른쪽 뒤에 애기암봉, 왼쪽에 주치봉이 확인된다.
암봉과 725m 산봉을 통과하면 바로 암릉 지대가 이어진다. 앞쪽의 산봉은 810m 산봉으로 저곳에 이르기가 힘겨웠다.
앞에 보이는 산봉이 810m 산봉, 중앙 뒤에 보이는 산봉이 악휘봉삼거리 산봉 821m 산봉일 것이라 추정한다.
왼쪽의 애기암봉에서 중앙의 장성봉, 그 오른쪽의 막장봉을 가늠한다.
왼쪽에 막장봉이 가늠된다. 중앙의 맥두대간 능선이 악휘봉삼거리로 이어진다.
백두대간 능선이 오른쪽 810m 산봉 뒤쪽의 악휘봉삼거리봉 821m 산봉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왼쪽이 810m 산봉, 그 오른쪽 뒤가 악휘봉삼거리 821m 산봉, 중앙이 악휘봉, 맨 오른쪽이 마분봉일 것이라 가늠한다.
중앙 왼쪽에 776m 마분봉, 마분봉 능선이 북쪽을 가로막고 있다.
철계단을 오른 뒤 다시 내려가며 810m 산봉을 올려보았다. 저곳까지가 벅차다.
잡목숲과 바위와 돌길을 힘겹게 돌아올랐다.
드디어 해발810m 산봉 능선으로 올라서며 어려운 곳을 통과한다. 오른쪽 악휘봉삼거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왼쪽 산봉 아래 헬기장에서 787m 산봉(왼쪽)을 거쳐 악휘봉삼거리봉인 821m 산봉(오른쪽)으로 이어진다.
810m 산봉을 내려가 돌아가면 입석재 삼거리와 악휘봉 삼거리가 지척에 있다.
810m 산봉을 내려서서 오른쪽 탁 트인 곳에서 가까이 보이는 마분봉을 조망한다.
이 안내판 아래가 입석재 삼거리이며 그 앞의 산봉이 악휘봉삼거리 825m 산봉이다.
백두대간 능선은 왼쪽 앞 악휘봉삼거리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입석재 내려가는 길이다.
바로 앞 고개의 산봉이 악휘봉삼거리 825m 산봉이며 오른쪽 뒤에 악휘봉이 솟아 있다. 2주전 이곳에서 백두대간 산행을 마치고 오른쪽 입석재 방향으로 하산했다. 오늘도 같은 곳으로 하산한다.
2-3.하산 과정
(입석재 삼거리-입석재-입석골-입석마을)
아침에 출발한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은티마을을 내려보았다.
중앙 뒤쪽은 시루봉과 덕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하산 지점인 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석리 입석마을을 내려보았다.
오른쪽으로 바라보니 중앙 뒤에 희양산, 그 오른쪽 앞에 구왕봉이 조망된다.
오른쪽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은티마을 2.4km, 왼쪽은 적석리 입석마을 2.7km 지점이다.
악휘봉 아래의 입석대가 빛나지만 입석재에도 층층바위들이 서 있다.
입석재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 입석골로 내려간다.
왼쪽은 입석재에서 내려온 길, 위쪽은 악휘봉과 시루봉 갈림목인 샘골고개에서 내려오는 샘골이다.
입석골에서 뒤돌아보니 악휘봉과 악휘봉 암릉 지대가 어림된다.
농부가 큰 바윗돌들이 묻혀 있는 밭을 일구고 있다. 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입석마을로 향한다.
국도34호선 입석교 아래를 통과하여 입석마을로 들어간다.
3.산행을 마치고
오른쪽 뒤에 악휘봉과 암봉이 가늠된다.
백미산 왼쪽에 광산 흔적이 남아 있다.
왼쪽에 입석마을회관, 오른쪽에 입석교회가 있다. 중앙 오른쪽에 악휘봉일 것이라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