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현대시조의 개척자 가람 이병기
가람은 시조를 현대화하고 부흥시키며 후배를 양성하는 등의 한국문학발전에 금자탑을 쌓은 현대시조문학가의 북두北斗라고 하여도 거슬림이 없을 것이다.
가람은 애주가愛酒家 애란가愛蘭家 애서가愛書家로 불리우며, 특히 난蘭처럼 청순하고 깨끗한 삶으로 고고하게 살았다. 일제에 아부하는 시 한편이 없음도 그의 의지와 인간성을 대변하는 대목이다. 가람은 난을 사랑하는 蘭시인으로도 유명하다.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는" 기개를 떨치며 후배들을 사랑한 선비였다. 그는 진정 우러름을 받을 만한 시조시인이며 국문학자이다.
< 난초 蘭草 >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주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매. 수선. 난 梅. 水仙. 蘭>
零下 十五度의 大寒도 다 지내고
잦았던 눈도 어제부터 다 녹이고
뜰앞의 梅花 봉오리도 볼록볼록 하고나
한잠 자고 나면 꿈만 시설스러웠다.
이 늙은 몸에도 이게 벌써 봄 아닌가
일깨어 손주와 함께 뛰고 놀고 하였다
한 盆 水仙은 농주를 지고 있고
여러 蘭과 蕙는 잎새만 퍼런데
호올로 병을 기울 菊花酒를 마셨다
<풍란 風蘭>
-그 잡란 雜蘭
잎이 빳빳하고도 오히려 영롱하다
썩은 향나무 껍질에 玉같은 뿌리를 서려두고
청량한 물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사노니
꽃은 하얗고도 여린 紫煙 빛이다
높고 조촐한 그 品이며 그 香을
숲속에 숨겨 있어도 아는 이는 아노니
<도림난 道林蘭>
蘭의 만여 種이 온 대륙에 펼쳐 있다
계손溪蓀 맥문동麥門冬도 蘭이라 일컷는데
봄에 핀 이 一莖 一花가 정말 蘭이었다
하이얀 줄거리에 비취옥翡翠玉 같은 그 花冠
오늘 새벽에야 바야흐로 벌었다
으늑히 떠 이는 香에 나는 자못 놀랬다
< 蘭과 梅花>
蘭을 蘭을 나는 캐어다 심어도 두고
좀먹은 古書를 한옆에 쌓아도 두고
만발한 野梅와 함께 八 九年을 맞았다
다만 빵으로 사는 이도 있고
영예 또는 신앙으로 사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을 이러하게 살고 있다
< 계곡>
맑은 시내 따라 그늘 짙은 소나무 숲
높은 가지들은 비껴드는 볕을 받아
가는 잎 은바늘처럼 어지러이 반짝인다
靑기와 두어 장을 法堂에 이어두고
앞 뒤 비인 뜰엔 새도 날아 아니 오고
흠으로 내리는 물이 저나 저를 울린다
헝기고 또 헝기어 알알이 닦인 모래
고운 玉과 같이 갈리고 갈린 바위
그려도 더러일까봐 물이 씻어 흐른다
瀑布소리 듣다 귀를 막아도 보다
돌을 베개삼아 모래에 누워도 보고
한손에 해를 가리고 푸른 虛空 바라본다
바위 바위 위로 바위를 업고 안고
또는 넓다 좁다 이리저리 도는 골을
시름도 피로도 모르고 물을 밟아 오른다
얼마나 험하다 하리 오르면 오르는 이길
물소리 끊어지고 흰구름 일어나고
우러러 보이던 봉우리 발 아래로 놓인다.
< 대성암大聖庵 >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만은
풀섶 바위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쪽이 발끝에 부딪치고
城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뫼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깊은 바위굴에 솟아나는 맑은 샘물
위로 뚫린 구멍 내려오던 供養米를
이제도 義湘을 더불어 新羅時節 말한다
별이 쨍쨍하고 하늘도 말갛더니
설레는 바람 끝에 구름은 서둘대고
거뭇한 먼산 머리에 비가 몰아 들은다
< 매화梅花 >
외로 더져 두어 미미히 숨을 지고
따뜻한 봄날 돌아오기 기다리고
음음한 눈얼음 속에 잠을 자던 그 梅花
손에 이아치고 바람으로 시달리다
곧고 급한 성결 그 애를 못 삭이고
맺었던 봉오리 하나 피도 못한 그 梅花
다가 오는 추위 천지를 다 얼려도
찾아드는 볕은 방으로 하나 차다
어느 뉘(世) 다시 보오리 자취 잃은 그 梅花
< 낙엽落葉 >
담머리 굴참나무 그늘도 짙을러니
높은 가지 끝에 한두잎 달려 있고
소소리바람이 치는 벌써 가을이구려
지는 잎 너도 어이 갈 바를 모르고서
바람에 흩날리어 이리저리 헤메느냐
그러나 발에 밟히어 흙이 되고 마느냐
날이 드던 잎이 뜰 앞에 가득하다
바람이 자고 달은 고히 비쳐들고
밤마다 서리는 내려 하얗게도 덮는다
< 봄 >
봄날 궁궐宮闕 안은 고요도 고요하다
어원御苑 넓은 언덕 버들은 푸르르고
소복素服한 宮人은 홀로 하염없이 거닐어라
썩은 고목 아래 전각殿閣은 비어있고
파란 못물 우에 비오리 한 자웅雌雄이
온 종일 서러 따르며 한가로이 떠돈다
< 홍원저조洪原低調 >
어둑 새벽부터 빤히 트이는 하늘
가로 푸른 線은 담록淡綠과 연분홍빛
내 매양 자고 일어나 거울삼아 보노니
몹시 기다리다 아이들 편지 보니
八旬된 아버지 주야로 염려하시니
차디찬 방에 겨오셔 이 겨울을 나신다고
바다를 앞에 두고 보랴 보든 못하여도
전진前津과 송도松島의 그 모양 그 이름과
아울러 파도波濤 소리는 귀에 이미 젖었다
졸다 깨어보니 산뜻한 별이 난다
한나절 오던 눈이 지붕마다 소복하고
흐리던 구름 걷히며 파란 하늘 돋는다
뜰에 나던 볕이 창으로 다시 든다
하루를 보내기 한해도곤 더디더니
어느덧 제 돌을 이어 가을이 되었다
< 창窓 >
우리 방으로는 窓으로 눈을 삼았다
종이 한 장으로 宇宙를 가렸지만
永遠히 太陽과 함께 밝을 대로 밝는다
나의 醜와 美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나의 苦와 樂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그러나 나의 臨終도 네 앞에서 하려 한다
< 냉이꽃 >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詩도 읊고 싶구나
지난 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나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太陽이 그대로라면 지구는 어떨 건가
水素彈 原子彈은 아무리 만든다더라도
냉이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2.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의 년보(행적)
1891년 3월 5일,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진사동) 570번지 수우재守愚齋에서 변호사 이채의 장남으로 출생.
* 원수리(진사동), 가람 이병기의 생가는 초가 네 채로 지방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어 있고, 사랑채에는 수우재守愚齋, 진수당鎭壽堂 등의 편액과 주련柱聯이 걸려있다. 생가 앞에는 너른 들, 뒤에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안채 뜰에는 고풍스런 맷돌, 절구통 등이 놓여 있고 마루에는 뒤주가 놓여지고 벽에는 시렁이 매여져 있다. 가람은 생전에 스스로 三福 곧 술복, 글복, 제자복을 타고났다고 자랑삼아 하였다.
* 아호는 嘉藍 (이밖에 친구들이 부른 별칭으로 임당任堂, 가남柯南이 있음)
1898년∼1908, 고향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
1906년 3월 5일,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은동)의 광산김씨문의 규수와 결혼.
1908년 7월 10일, 장녀 순희 탄생.
1909년 4월 13일, 일기쓰기 시작.
1910년 3월, 전주공립보통학교 졸업.
4월, 관립한성사범학교 입학.
1912년 10월, [조선어강습원] 1년 수료,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문법 강의를 들음.
# 10월에 일본으로 수학여행.
1913년 3월 23일, 관립한성사범학교 졸업.
# 남양, 전주제2, 여산 보통공립학교, 훈도 하며 국어, 국문학, 국사학에 관련된 문헌을 수집하며 시조를 중심으로 시가문학 또는 산문학을 연구 창작함.
1921년 2월 26일, 권덕규, 임영재, 선생들과 [조선어연구회]를 발기함.
12월 3일, [조선어연구회]를 조직 간사에 피임.
1922년 4월, 동광, 휘문, 보고 교원.
1924년 3월 16일, 장녀 순희 신왕균에게 출가(충남 아산군 영안면).
4월 14일, 장남 동희 출생(1945년 학도병으로 나가 실종).
8월 25일, [동아일보]에 시조 <제주ㅅ길에>를 발표함으로 작품활동시작.
1925년, [조선문단]에 시조<한강을 지나며>를 발표.
<한강을 지나며>
어머님 가시던 날이 오늘밤 같았으면
저 좋은 달 아래서 이 강을 건너시련만
그 밤은 모진 물결에 등불조차 없었어라.
1926년 4월 16일, 차녀 한희 출생.
9월 17일, 영도사에서 [시조회]를 발기.
10월∼11월, [동아리보]에 <시조란 무엇인고>를 연재.
12월 2일, 수필 <그리운 가을밤>을 발표.
1928년 9월 2일, [시조회]를 [가요연구회]로 개칭, 연구조직을 확립함.
12월 30일, 천도교강당에서 <시조의 사적 발전과 문학의 지위>로 강연.
12월 30일, [학생]에 <시조와 그 연구>를 발표.
1929년 1월 14∼15일, 안국동 예배당에서 개최된 [한글강습회] 강사로 <한글과 시조>에 대하여 강연.
2월 19일∼20일, [연동청년면려회]에서 <한글과 고가요>에 대하여 강연.
4월, [신생]에 <시조의 현재와 장래>를, [삼천리]에 <도봉산행>을 발표.
6월, [신생]에 기행문 <낙화암을 찾는 길에>를 발표.
7월, 차남 경희 출생.
10월, [신생]에 기행문 <내장산의 단풍>을 발표.
12월, [신생]에 수필 <세모감>을, [신생]에 <주시경 선생 배상전>을 발표.
1930년 [학생] -문예강좌 란에 <시조와 그 연구>를 연재.
5월, [학생]에 기행문 <광주, 남한산성>을 발표.
12월, [신생]에 기행문 <경주의 달밤>을 발표.
12월 13일,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
1931년 7월∼8월, 삼남 각 지방을 순회 <한글과 우리문학>에 대하여 강연을 하며, 각 지방의 방언. 민속. 민요. 고문헌을 수집.
1932년 4월 21일, 삼남 종희 출생.
5월, [신생]에 수필 <경무대>를 발표.
7월, [한글]에 <한글의 경과>를 발표.
11월, [동아일보]에 <시조는 혁신하자>를 발표.
12월, [신생]에 수필 <소춘>을 발표.
1933년 7월 25일∼29일, 화계사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개정안을 토의.
8월, [신동아]에 기행문 <마한고도 익산, 후백제 고도 전주>를 발표, [휘문]에 기행문 <박연행>을 발표.
1934년 3월, 수필 <가람의 출전과 그 유래>를 발표.
9월, [진학단보]에 <시조의 발생과 가곡과의 구분>을 발표.
10월 25일, [동아일보]에 <시조의 기원과 그 형태>를 연재.
1935년 1월 2일, <조선어표준어> 사정위원.
3월, [휘문]에 수필 <서사정과 범양정>을 발표.
9월 4일, [동아일보]에 기행문 <해산유기>를 연재.
12월, [한글]에 <세종대왕과 한글>을 발표.
1936년 2월 10일, [진학단보]에 <송강가사의 연구>를, [삼천리]에 <시조의 감상과 작법>을 발표.
1937년 3월, 구왕궁 아악부, 경복, 덕수상업 강사.
1938년 4월 8일, 연희전문학교 강사, <조선문학>을 강의.
7월, [시학]에 <시와 시조>를 발표.
9월, [박문]에 <약간어제에 대하여> 발표, [동아일보]에 <시조모집고선후> 발표.
1939년 1월, [문장]에 <한중록주해>를 연재.
8월 10일, [조선농업]에 <십혜록>을 연재.
8월 26일, [동아일보] 학예면의 시조란을 담당. 독자들의 시조창작을 지도.
9월, [한글]에 <말모르는 작가들>을 발표, [동아일보]에 <역사문학과 정사>를 발표, [농업조선]에 <전원시조감상>을 발표, [조선일보]에 <시조감상법>을 발표.
1940년 1월, [박문]에 수필<독서>를 발표.
10월 [박문]에 <시화>를 발표.
10월, 보성전문학교에서 <종래의 가악>에 대하여 특강.
1941년 1월, [농업조선]에 <역대의 농정고>를 발표.
10월, [춘추]에 수필<독서와 서지>를 발표.
1942년 10월 22일, 휘문고보 교원을 사임.
#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피검.
1943년 9월 18일, 기소유예로 출감, 귀장서적을 가지고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며 우리 어문학을 연구.
1945년 8월 15일, 해방직후 상경하여 군정청 편수관에 임함.
9월, [진단학회]연구발표회에서 <우리 가요>의 여음에 대하여 발표.
1946년 5월, 군정청 편찬과장에 임함.
9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 국문학과 교수.
1947년 4월 20일, [민중이보]에 <고전문학에 나타난 향토성>을 발표.
7월, 군정청 편선과장을 사임,
7월 20일, [대학신문]에 수필<산유화>를 발표.
12월, [중학생]에 <우리말공부>를 발표.
# 단국대학, 신문학원, 예술대학 강사.
1948년 4월, 동국대학, 국민대학, 숙명여자대학교, 세종중등교원양성소, 의대예과강사.
9월, [새교육]에 <해방후 국어교육>을 발표.
1949년 3월, [새교육]에 <고전과 국어교육>을 발표.
3월 10일, 차녀 한희, 충청남도 공주읍의 송석일과 결혼.
5월 18일, [국도신문]에 <고전의 삼폐>를 발표.
9월 25일∼27일, [경향신문]에 수필<해방전후기>를 발표.
10월 1일, [민성]에 <불우한 문일평군>을 발표.
10월, [신천지]에 수필<유행과 습관>을 발표.
12월 16일∼17일, [서울신문]에 <고전위작>을 연재.
12월, [조선일보]에 <민요와 시조>를 발표, [민성]에 <국학의 세 거인>을 발표.
1951년 1월 3일, 차남 경희,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유재희와 결혼.
2월, [신문화]에 <우리국민>을 발표.
3월, 전주 명륜대학교수, 전북 전시연합대학교수,
11월,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임시관리책임자로 피선.
12월, [학호]에 <국문학연구 -학도에게>를 발표, [지리산]에 <지리산가와 춘향전>을 발표.
1952년, [국어문학]에 <감상력을 주로 한 국어문학연구>를 발표, [국어문학]에 <청구영언과 해동가요>를 발표.
9월 5일, 전북대학교 문리대학 학장.
10월 10일, 삼남 종희, 충청남도 공주읍 윤옥병과 결혼.
1953년 1월, [시조연구]에 <역대시조의 몇몇 작품>을 발표.
4월, [호남절의사]에 <임진왜란과 의병의 궐기와 그 전국추이의 대개>를 발표, [국어문학]에 <시가문학>을 발표, [국어문학]에 <정읍사의 고찰>을 발표.
1954년 2월 16일, [전북대학보]에 수필<삼관여록>을 발표.
3월 22일, [전북대학보]에 <서동요와 설화>를 발표.
4월 6일, 학술원회원.
5월 26일, [전북대학보]에 <속단>을 발표.
5월∼9월, [불교]에 <불교와 국문학>을 발표.
7월 15일, [전북대학보]에 <적성가>와 <시가문학의 본질, 종류, 어원형태규정>을 발표.
8월, [삼남일보]에 <세종대왕의 국문학>을 발표, [단광문화]에 수필<풍란>을 발표.
12월, [전북대학보]에 수필<덕진호반>을 발표, [국어문학]에 <동동과 달거리>를 발표.
1955년 1월 1일, [삼남일보]에 <을미년에 사적 고찰>을 발표.
1월 10일, [삼남일보]에 수필<매화>를 발표.
1월 31일, [전북대학보]에 수필<촛불>을 발표.
1월, [한글]에 <시용향악보의 한 고찰>을 발표.
3월 24일, [전북대학보]에 <극가와 소설>을 발표.
4월 25일, [전북대학보]에 <골계문학>을 발표.
5월 25일, [전북대학보]에 <한자음독>을 발표.
6월 22일, [전북대학보]에 <전원의 노래>를 발표.
7월 10일, [전북대학보]에 수필<난초>를 발표.
10월 9일, [전북대학보]에 <세종대왕의 독서와 창작>을 발표.
10월 11일, [전북대학보]에 <한글과 한글날>을 발표.
11월 30일, [전북대학보]에 <오공즙>을 발표.
# 중앙대학교 문리대 교수.
1956년 1월 1일, [전북일보]에 수필<매란과 새해>를 발표.
2월 5일, [전북일보]에 <구·율·우·송의 교분>을 발표.
3월, [학도주보]에 <시조의 혁신>을 발표.
4월 1일,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5월 1일, 서울대학교 대학원강의.
5월 24일, 학술원주최 <우리 고전문학에 나타난 국민사상>을 시공관에서 학술강연.
6월 30일, [동아일보]에 수필<백련>을 발표.
8월 13일, 정년으로 전북대하교 제반직을 퇴임.
8월 15일, [전북일보]에 <향토와 문학>을 발표.
10월 10일, [삼남일보]에 <우리 문화의 성조 세종대왕>을 발표.
12월, [국어국문학]에 <별사미인곡과 속사미인곡>을 발표.
1957년 4월, 학술원 추천회원.
7월, [사상계]에 수필<누가 판단자이며 누가 애국자인가>를 발표.
9월 14일, [한국일보]에 수필<가을과 독서>를 발표.
# [일석회갑논문집]에 <시조창작론>을 발표.
# [현대]에 <시조창작과 창>을 발표.
# [동방학지]에 <한국서지의 연구 上>을 발표.
10월 9일, 한글날 기념행사 후 귀가도중 뇌일혈로 와병, 한때 언어기능마비였으나 차츰 회복.
1958년 3월 31일, 강단직을 사임하고 생가 수우재守愚齋가 있는 익산으로귀향.
8월, [동방학지]에 <한국서지의 연구 下>를 발표.
1960년 8월 2일, 학술원 임명회원.
1961년 6월 8일, 전북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63년 5월, 갑오동학혁명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1968년 11월 29일, 향년 77세로 새벽 3시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 生家에서 별세함.
1979년 6월, [가람시조문학상]제정.
3. 묘 소 : 전북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 가람의 生家 뒷산 선영에 있으며, 봉분이 따로 없고 묘비 밑이 묘로 되어 있다. 생가 앞에는 차량 2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4. 가람시비 :
* 여산남초등학교교정 시비
생가로부터 멀지 않은 여산남초등학교 교정에는 가람의 족각상과 함께 <별>이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별>
바람이 소슬하여 뜰 앞에 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 익산군 여산남초등학교교정의 시비에 새긴 가람의 시조)
* 전주시 다가공원 시비
전주시 다가공원에는 가람 서거 1주기인 1969. 11. 30에 호국영령탑을 마주한 곳에 시비를 세워 두었는데, 일제 암흑기에 쓰여진 시조 <시름>을 서예가 강암 송성용의 글씨로 새겨 두었다.
<시름>
그대로 괴로운 숨 지고 이어 가랴하니
좁은 가슴 안에 나날이 돋는 시름
회도는 실꾸리같이 감기기만 하여라
아아 슬프단 말 차라리 말을 마라
물도 아니고 돌도 또한 아닌 몸이
웃음을 잊어버리고 눈물마저 모르겠다
쌀쌀한 되바람이 이따끔 불어온다.
실낱만치도 볕은 아니 비쳐든다
친구들 외로이 앉아 못내 초조하노라
(*전주 다가공원 시비에 새겨진 가람의 대표작 시조)
5. 저 서 :
[가람시조집], 1939년 8월 16일, 문장사 刊.
[역대시조선], 1940년 3월 25일, 문서관 刊.
[인현왕후전], 1940년 11월, 박문서관 刊.
[지나명시선], 1944년, 박종화와 共編.
[의유당일기 意幽堂日記], 1948년 5월, 백양당 刊
[근조내간집近朝內簡集], 1948년 1월, 국제문화관 刊.
[요로원야화기], 1949년 5월, 을유문화사 刊.
[가루지기타령], 1949년, 국제문화관 刊.
[역대 조선여류문집], 1950년 1월, 이병주박사와 共編.
[국문학전사國文學全史], 1957년 6월, 백철박사와 共著, 신구문화사 刊.
[현대시조선총], 1958년 4월, 이태극 共編, 새글사 刊.
[국문학개설], 1961년 4월, 일지사 刊.
[가람문선], 1966년 5월 30일, 신구문화사 刊.
[가람 이병기박사 송수논문집], 1966년 11월, 삼화출판사 刊.
6. 상 훈 :
1960년 7월 17일, 학술원공로상을 받음.
1962년 8월 15일, 문화포장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