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임재문
방금 따온 모과를 한 개 책상위에 올려놓고 생각에 잠긴다.
그윽한 모과향이 코끝을 간질거린다.
과일중에도 모과만큼 못생긴 과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윽한 모과향이야 말로 천하일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과도 종류가 여러가지가 있는가 보다. 더러 어린이 머리만큼이나 큰 모과가 있는가 하면 다른과일 못지않게 예쁜 살결과 곡선미를 자랑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예쁜 몸매를 한 모과는 모과향이 더 풍부하지 않고 보기에 재미가 없어서 싫다.
지금 내 책상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과는 아주 못생긴 전형적인 토종 모과이다.
어른 주먹보다도 약간 더 큰 이 모과는 울퉁불퉁한 몸매에 검버섯처럼 무늬가 있는 모과다.
그 작은 몸에서 나는 그윽한 모과향이 나를 기억의 저편으로 몰고 가기 안성맞춤이 아닌가?
내가 광주교도소에 근무할 때다 그러니까 삼십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광주교도소가 31사단이 가까운 오치동 쪽으로 이전을 했지만, 그당시 광주 문흥동에 위치한 광주교도소에서 근무할 때다.
광주교도소 정원에 커다란 모과나무가 두그루 있었다. 흡사 부부인것처럼 한 그루는 좀 크고 또 한 그루는 좀 작고 아담한 나무인데 몸매 자체가 울퉁불퉁하고 껍질이 벗겨질 무렵이면 나는 흡사 여인의 옷을 벗기는 기분으로 껍질을 벗겨내곤 했었다.
가을이 되어 모과가 익어갈 무렵이면 나는 바람부는 날 모과나무 밑을 서성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꼭 그곳에는 잘 익은 모과가 한 두개씩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바람부는 날 떨어진 모과를 주우면 크게 횡재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그렇게 모과를 주워다가 모과차를 끓이고, 보과주를 담근다. 아내는 반주로 모과주를 약간씩 내어놓지만, 술을 좋아하는 나는 아내가 주는 술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은 아내 몰래 또 퍼다가 마시고 취해야 적성이 풀리고는 했다.
모과향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그렇게 취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피리를 내다가 불었다.결혼 전 충남 홍성교도소에서 근무할 때 하숙집에서 악보를 보고 익힌 피리소리다. 나는 그 때 내가 분 피리소리를 녹음기에 녹음해두고 틀면서 또 같이 부는 것을 좋아했다.
나 아닌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연주를 하는 착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창살을 때리는 비바람 소리와 어울려 내 피리소리는 그렇게 고독을 달래는 서글픈 가락으로 울려퍼지고는 했다.
모과향과 모과주에 취해 불어대는 내 서글픈 피리소리. 아리랑으로부터 시작해서 노들강변 도라지타령 번지 없는 주막 희망가 등등... 나는 결국 내 피리소리로 서글픈 추억을 되새기며 살아야 했다.
모과는 그렇게 한 많은 내 청춘을 떠오르게 한다. 이제는 정말이지 술도 잘 하지 않고, 달도 차면 기운다고 나도 모과를 닮아 원래 못생긴 얼굴에 잔주름까지 늘어만 가니, 바람부는 어느날 떨어져 내린 모과처럼 내 인생도 그렇게 황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민속촌이라던가 토속 공예품을 파는 가게에 으례히 등장해서 잘 팔리던 대나무 피리 !
이제는 민속촌에 가도 대나무피리를 파는 곳이 없다. 대나무 단소를 파는 곳만 있다. 그것도 소량을 갖다가 전시용으로 놓아둘 정도다.
또 옛날에는 눈먼 장님이 모자를 앞에 뒤접어 놓고 앉아 피리를 불고 있노라면, 길가는 사람들이 동전을 넣어주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모습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녹음기에 가요를 녹음해서 틀고 다니던가 아니면 기독교인의 심성을 자극하기 위해 찬송가를 틀고 다니며 구걸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을 뿐이다.
노랗게 익은 모과. 못생긴 모과에서 풍기는 모과향이 그렇게 피리소리를 떠올리게 하고 기억의 저편 다시 오지 않는 내 청춘의 그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다시 한 번 모과를 어루만지며 흘러간 옛노래로 추억을 달래어 보아야겠다.
그윽한 모과 차로 목을 축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정담을 나누고 싶다.
모과야 ! 너는 어찌 그리도 못나 내 청춘을 닮아 있느냐 ? 그러나 나는 너처럼 향기롭지 못하니 흘러간 옛날을 떠올리며 살아가야 하는가 보다.
모과향은 지금도 내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다.
강릉고도소 복지과장 정년퇴임
1986년 봄 한국수필 추천완료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역임
수필집 "담너머 부는 바람" "사형수의 발을 씻기며" 전자책 발간
sullb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