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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춘추전국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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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환공
관중. - 제의 명참모겸 장군, 제상
포숙아. - 제의 장군이자 참모, 대부
제의 대부 제의 제환공을 황위에 오르게 한 실질적인 주인공
수습 - 제의 장군
제환공 시절의 장수
역아 - 제의 장군
제환공의 사 후 정변을 일으켜 태자 소를 제치고 주궤를 옹립
손비 - 제의 병법가
막강한 위나라의 군대를 격파 제나라의 위상을 세움
초
장왕
손숙 - 초나라의 대신
심윤 - 초나라의 명참모
초나라가 7웅이 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움
오기 - 초의 제상
오자병법의 지은이
자옥 - 초나라의 명장
성왕이 본국으로 군대를 회군 하려고 하자 결사반대하여
성왕이 나눠준 군대로 송을 공격했다.
굴원 - 초의 정치인
초 후반의 시인
향랑 - 초의 귀족. 부장군
초 멸망시 초의 군관 후에 진시화의 사후 기의군 대장으로 거병
항우 - 초의 귀족
후에 초를 건국 유방과 좌웅을 겨룬다.
진
무공 칭(稱) - 주나라의 명장군. 훗날 진의 황제가 된다 진의 3대 황제
되는 진문공의 할아버지
호언 - 진나라의 명장 진문공의 외숙부
제나라에서 진문공과 그의 일행이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마련
조쇠 - 진나라의 명참모
진문공의 오른팔 진문공이 제나라를 떠나려 하지 않자
진문공의 또다른 가신 고범과 같이 진문공을 술취하게 한 뒤
수레에 싣고 제나라를 떠나 망명길에 오름
진문공이 처음 망명길에 오를 때부터 진문공을 보필함
고범 - 진나라의 명참모
제나라에서 조쇠를 도와 진문공을 망명길에 오르게 하고
송나라가 진문공을 도울 힘이 없음을 알고 송나라를 떠날 것을 아룀
진문공이 처음 망명길에 오를 때부터 진문공을 보필함
목공 - 진나라의 명장
진문공을 황위에 오르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함
위무자 - 진나라의 명참모 겸 명장
개자추 - 진나라의 명장
초위 진의 공격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움
상앙 - 진나라의 참모
진나라의 제상 변법을 단행하여 진나라를 일약 강국으로 올려놓는다.
장의 - 진나라의 재상
유세술로 초나라를 고립시켜 국란의 위기에 빠트림
왕전 - 진나라의 명장
안휘성 수춘에서 진나라를 멸망시킴
오나라
오자서 - 병법사령관 장수며 동시에 참모
초기엔 초나라의 신하였으나 후에 오나라로 망명 오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그 군대로 초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감
오원 - 오나라의 참모
문의 - 오나라의 군사참모
위
오기 - 위의 명장
위의 서쪽 변방에 위치했던 진나라를 제압
이기 - 위의 참모
농업생산 증가에 기여
서문표 - 위나라에 팽배했던 미신을 타파했으며 관개사업을 시행 농업생산에 기여함
연
소왕 - 연의 패왕
연의 왕으로서 문무를 겸비한 왕 연의 황금시대를 열었으나 후에 연은 진에 의해서 멸한다.
악의 - 장군 겸 참모
초기엔 위나라의 신하였으나 후엔 연의 제상이 되어 국정과 연의 방어를 담당했다.
한
신불해 - 한의 재상
한의 황금시대를 구축하였으며 한의 최고 전성기였다. 하지의 그의 사망 후 한에 더 이상의 황금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춘추전국시대(BC 5세기∼BC 3세기) 중국의 패권을 놓고 대립한 7대 강국을 말한다. 동방의 제(齊), 남방의 초(楚), 서방의 진(秦), 북방의 연(燕), 그리고 중앙의 위(魏)·한(韓)·조(趙)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춘추시대에는 독립된 소도시 국가가 100여 개나 산재하고 있었으나 중기 이후 농업생산력의 향상과 상업경제의 발달에 따라 강대한 영역국가가 형성되었다.
7웅이란 이러한 강대국가를 일컫는 말로 각국은 더욱 부강한 국가로 발전하려고 내정의 충실과 군비의 확장에 진력하였다. 이 중 진나라는 상앙(商)의 변법(變法) 이후 국력이 신장하여 BC 221년 천하를 통일하는 데 성공하였다. 즉, 초나라는 진(秦)의 압박을 받아 BC 278년 수도 영이 함락되자 진(陳)으로 천도하였고, 다시 BC 241년 수춘(壽春:安徽省 壽縣)으로 옮겼으나 BC 223년 결국 진에게 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제나라는 이웃나라인 연(燕)·위(魏)와 대립·교전하였으나 BC 3세기 말에 서쪽으로부터 진(秦)의 통일의 손길이 뻗쳐서 BC 221년 마침내 진에 항복하였다
1 위
'한, 위, 조' 삼 국 중 '위나라'에는 '위문후'라는 명군이 나타나 내정개혁과 인재발탁에 힘써 전국 시대 초기 패권을 차지했다. 하북성 중부에 위치했던 중산국을 정벌하여 영토를 넓히고, 오자병법으로 유명한 '오기'를 등용하여 서쪽의 진나라를 제압했으며, 이극이라는 사람을 기용하여 농업생산을 장려 국가의 졍제력을 증대시키고, '서무표'라는 사람을 업의 태수로 삼아 미신을 타파하고 관개사업을 시행하여 산출된 농업샌상물은 위나라 국가의 부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나 '서문표'가 미신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귀신의 일로 사람의 일을 재단하는 자는 귀신으로 취급하겠다.' 라는 명언은 후의 중국 역대 군주들의 정치적인 규범이기도 했다.
즉 죽은 사람의 일로 산 사람의 일이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는 명제는 군주라 할지라도 종교의 명분을 정치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복잡한 중국역사의 전쟁에서 종교전쟁이 끼어들지 않은 것은 '서문표'의 명쾌한 정의에 의해서이다.
2 제
망각한 '위나라'의 패권을 무너뜨린 '제나라'의 군주는 '제위왕'과 그 아들 '선왕'이다. 병법가 손빈을 등용하여 당시 막강한 위나라의 군대를 계릉과 마릉에서 두 번에 걸쳐 궤멸시켜 위나라를 2류국으로 전락시키고 대신 패권국으로 올라섰으나 그 뒤를 이은 제민왕 때에 이르자 월왕 구천의 2세쯤으로 여겨지는 연소와에 의해 제나라는 거의 멸망직전에 몰렸다가 '연나라'의 내분으로 간신히 복국에 성공하여 명맥을 유지하다가 '진시황'에 의해 마지막으로 병합된다.
3 진
남쪽의 '초나라'와 마찬가지로 춘추시대부터 서쪽의 오랑캐 정도로 여겨졌다가 춘추초기 '진 묵공' 이라는 걸출한 군주가 나타나 패자를 넘보는 위치까지 갔으나 '진 묵공'이 죽을 때 '진나라'의 대소 신료 177명을 순장시킴으로써 국세가 급격히 약화되어 2류국으로 전락된다.
순장제도가 시행됨으로 해서 군주가 좋을 때 같이 죽어야 되니 능력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진나라'에 벼슬을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전국시대에 접어들어 순장 제도를 폐지한 '진 헌공'의 뒤를 이어 기원전 361년 즉위한 '진 효공'은 '상앙'을 등용하여 인류역사상 가장 효과적이라고 불리는 개혁 즉 변법을 단행하여 '진나라'를 일약 강국의 위치에 올려놓고, '진나라'는 그 변법으로 인하여 140년 후에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국가를 세울 수 있게 된다.
'진나라'가 중원 진출의 계기가 된 사건은 '제나라'에 의한 '위나라' 군대의 궤멸이다. 당시 '위나라'의 주력은 산서성 남부의 서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진나라'는 위나라 때문에 감히 황하 서쪽의 위수의 지류 낙수를 넘어 올 수 없었다. '제나라'에 의해 '위나라'의 주력부대가 궤멸당하자 그 도성을 동쪽의 개봉으로 옮긴다. 그 기회를 틈타 '진나라'는 낙수를 건너 '위나라'의 황하 서쪽의 땅을 점령하고 그것을 중원 진출의 교두보로 삼은 것이다.
비록 '상앙'은 '혜문왕'에 의해 살해당하지만 '상앙'이 시작한 변법은 '혜문황' 자신과 후계자들에게 계속 시행되어 '진나라'의 국력은 시간이 갈수록 증대되어 전국시대 말에 가서는 나머지 6국의 국력을 전부 합친 것에 필적할 수 있었다. '진나라'는 상앙의 변법을 효과적으로 시행한 결과 증대된 국력으로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고 볼 수 있다.
4. 초
춘추시대 전 기간을 통해 강국이었던 '초나라'는 춘추 말기 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은 '초 평왕'이 '진나라'에 데려온 며느리를 가로채는 과정에서 '오자서 부자'들과 갈등을 빚게 되어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은 '초평왕'에게 살해되고 '오자서'는 '초나라'를 탈출하여 '오나라'로 망명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오나라'를 강대국의 위치에 올려놓은 '오자서'는 '오나라'의 군대를 이용하여 '초나라'를 거의 멸명직전에 몰아넣으나 일치단결한 '초나라'의 군신들과 '진나라'가 보낸 원군의 도움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전국시대로 넘어오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전국시대 중기에 접어들자 '진나라'의 재상이며 '연횡론자' 장의'의 유세술에 농락당해 주변 국가로부터 고립당한 결과 원래의 국가가 발흥했던 형주일대를 '진나라'에 빼앗긴 후 나라를 동쪽 진성으로 올ㅁ기고 이어서 계속 쫓겨 다니다가 안휘성 수춘에서 '진나라'의 장군 '완전'에 의해 멸망당한다.
광대한 영토에 비해 국가 조직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면이 있었다. 초사로 유명한 '굴원'은 전국시대 후반기 초나라의 정치인이자 시인이다. 후에 '진시황'이 망하자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였던 오군에서 일어난 기의군 대장 '향랑'이나 그 조카 서초패왕 '항우'등은 초나라의 귀족 출신이었다. '항량'은 망한 '초나라'의 왕족출신 '웅심'을 찾아 '기의군'의 왕으로 옹립한 것은 전국시대 내내 '진나라'에 핍박받아 원한에 사묻힌 '초나라' 백성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목적이었다.
5. 조
전국시대 중엽 '조나라'에는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출한 왕이 태어나서 '위나라'가 쇠퇴한 틈을 타서 다시 독립한 중산국을 겸병하고, 다시 그 진출방향을 서북쪽으로 잡아 지금의 내몽고 지방과 영하성 일대의 땅과 주민들을 병합하고 일약 당시 초강대국 '진나라'와 세력을 다툴 수 있는 나라로 등장했다. '무령왕'은 중국 전쟁사에서 기병을 처음으로 전투에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무령왕'이 도입한 기병을 '호복기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무령왕'이 후계자 싸움 중에 비명횡사하고 이어서 벌어진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함으로 인해서 더 이상 '진나라'의 통일의지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제거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기원전 260년에 벌어진 '장평대전'에서 '조나라' 40만 대군이 '진나라'의 대군에 의해서 몰살당하자 '진나라'의 중국 통일은 단지 시간문제에 해당하게 된 것입니다.
6. 연
춘추시대나 전국시대 내내 약소국의 위치에 있다가 전국시대 말기 당시 강대국 제나라의 침략을 받아 제나라에 합병될 위기에 처했으나 주변 국가들이 제나라에 압력을 가해 간신히 제나라에 합병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어서 즉위한 '연 소왕'이 '제나라'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황금대를 지어 천하의 능력 있는 인재를 모으는 과정에서 당시 '위나라'로부터 사신의 신분으로 '연나라'를 방문했던 '악의'를 기용하여 '연나라'의 국정을 맡긴다.
7 한
전국시대 내내 가장 국력이 약한 국가였으며, '진나라'에 의해 가장 먼저 멸망당했다.
법가 '신불해'가 재상으로 있을 때 국력이 반짝 했을 뿐 중원의 정 가운데 위치해 있어 항상 주위의 강대국에 의해 시달림을 받다가 결국은 '진나라'에 의해 가장 먼저 망하는 나라가 '한나라'였다
[출처] 전국7웅과 춘추 5패|작성자 소서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