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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늘푸른 은혜 원문보기 글쓴이: 친구
[편집완료] 주님께 영광!!
마지막 장 (The Final Act)
(척 스미스 목사 지음)
한글번역: 김동백 목사
(Pastor Duke Kim. 갈보리 채풀 한인교회)
오늘의 말씀사 발간
척 스미스 목사님의 신간도서 “The Final Act”(마지막 장)를 김동백 목사님이 번역하였습니다. “The Final Act”는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언의 말씀들이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성취되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을 통해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감지 할 수 있듯이 본서는 세계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마지막 때(종말)를 알리는 지구의 운명적, 역사적 시간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본, 도서는 연극을 보듯이 짜임새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체 4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의 전체 분량은 211 페이지입니다. 자료는 영문과 한글번역 대조로서 m/s word로 작성된 것을 한글만 따로 편집하였습니다. 타이핑이 너무나 부실하여 많은 시간(4일)이 소요되었습니다. 아주 귀한 자료이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작권 문제로 스크랩을 금지 하였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할렐루야!
1 막: 무대를 형성
2 막: 휴거
3 막: 대 환란
4 막: 예수님의 재림
5 하늘에서의 앙코르(재청)
머리말: 4 막으로 된 드라마
당신은 연쇄적 효과를 가져오는 긴 줄의 마지막에 서 있어 본적이 있는가? 맨 처음 것이 넘어지면 연쇄 반응으로 그 다음 것이 넘어지고 계속 연쇄 반응으로 모든 것이 다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도미노 현상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형편을 도미노현상이 일어나게 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것을 넘어트리면 연쇄 반응을 일으켜서 줄줄이 일연의 현상이 계속 따라 일어나서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흥분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 뒤에 초청을 받아 관찰하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연극 감독이 모든 배우들을 제자리에 앉히고 모든 것이 제 위치에 있는지를 잘 점검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이제 몇 분이 지나면 감독이 무대의 막이 오르도록 지시할 것입니다. 이러한 비유는 아주 적절한 비유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눈앞에서 모든 나라들과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을 미리 형성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제 마지막 장을 위해서 막이 올라갈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드라마를 위해서 당신자신이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에 비추어서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을 바라보기 전에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서 오시는 날짜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나도 그 날을 모를 뿐만 아니라 그 날과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마태 24:36). 그러나 성경은 강조하기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1-2, 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때를 완전히 알고 있기를 원하시며 기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대로 다시 오심이 아주 가깝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징조들을 성경 말씀에서 제시하고 계십니다. 크리스천인 우리는 이러한 흥분되는 시기에 살면서 이 놀라운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위해서 마지막 장을 4 막으로 나눴습니다.
1 막은 무대가 설립되고 구상이 소개 되며 여기서 이스라엘이 나라를 형성하며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관찰하며 점점 악화되는 세상의 문제들을 주시합니다. 2 막에서는 하나님께서 대 환란이 있기 전에 그의 백성들을 갑자기 데리고 가실 때에 휴거가 일어납니다. 3 막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 하실 때에 대 환란이 시작됩니다. 4 막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모든 사람이 목격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의 왕국을 설립하십니다.
내용이 좋은 드라마마다 앙코르를 요청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마지막 장을 볼 때는 주님의 앙코르가 있을 것인데 그것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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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막 무대설치
1 장: 이스라엘
1948년 5월 14일 오후 4시에 데이빗 벤-게리어가 자랑스럽게 자신이 강단에 올라 텔아비브 박물관 청사에서 운집한 군중들에게 숙명적인 말들을 낭독합니다. 이 글들의 내용은 유대인들이 모든 다른 나라들과 같은 나라를 세우고 자치 국가를 형성하는 자명한 권리를 갖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엄숙한 집회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의 역사적인 권리와 자연적인 미덕과 유엔 총회의 결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라 불리우는 나라가 설립됨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성경 예언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나라로서 다시 태어나는 일이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의 나머지 부분을 성취케 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국가로써 다시 태어나는 것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마지막 장을 열기 전에 세워져야 할 중요한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대의 머리말, 역사적인 고토에 세워진 이스라엘, 두 다른 중요한 연출이 곧 이스라엘과 합류하게 되겠는데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앞을 보기위해서 뒤를 바라보다.
다니엘서는 성경에서 가장 흥미 있는 책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선지자는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첫 번 침공하여 정복했을 때 잡혀간 포로들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끄는 사건들을 이해 할 수 있도록 예리한 통찰력을 주는 예언들을 기록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어느 날 밤에 악몽을 꾸었는데 그 꿈이 심상찮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가 깨었으나 그 꿈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왕은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꿈으로 느끼면서도 그 꿈 내용을 알지 못한 채 두려움에 싸여 있었습니다. 왕은 그 나라의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불러 내가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기억을 못하니 꿈을 찾아내고 또 그 꿈을 해몽하라고 했고 만일 찾지 못하면 목을 벤다는 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얼토당토 않는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에 아연실색 하면서 왕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꿈을 어떻게 해몽하란 말인가? 그들이 목 베임을 당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리옥이라는 왕의 시위 대장이 젊은 다니엘에게 왕의 칙령에 대해서 말하고 자기의 목이 위험한 위치에 있음을 알렸습니다. 다니엘도 왕의 고문으로 훈련을 받고 있는 때라 자신도 목 베임을 당할 위험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시위대장에게 말하기를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므로 그의 종인 내가 그 꿈의 뜻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할 때에 아리옥 시위대장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잡혀온 히브리인 젊은 다니엘이 왕의 꿈을 찾아내고 해몽할 수 있음을 알렸습니다.
그동안 다니엘은 그의 친구들에게 가서 왕이 꾼 꿈을 알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사 그 꿈을 알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뜻이 무엇인지 해몽까지 해 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급히 불러 다니엘로부터 그 꿈과 해몽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다니엘은 말하기를 “왕이여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이 꾼 꿈을 아시고 그 뜻이 무엇인지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 날 밤에 오, 느부갓네살 왕이여 왕께서 침대에 누워서 바벨론 나라의 강대함과 위대함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에 왕의 마음속에 앞으로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세상이 어떻게 끝이 날것인가? 라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왕에게 마지막 때에 어떻게 될 것을 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당신이 꾼 꿈은 왕이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다리는 철로 되었고, 발과 열 발가락은 철과 진흙이 섞여 있었습니다. 왕이 그 신상을 보고 있을 때에 손으로 하지 않은 돌이 날아와서 신상의 발을 처서 신상은 가루가 되어 없어지고 그 돌은 점점 자라서 태산을 이루어 이 세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순간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이 묘사한 그 꿈이 생각이 나서 다니엘에게 그 뜻이 무엇인지 해몽하라고 재촉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설명하기를 “오, 왕이여 그 정금의 머리는 바로 당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온 세상을 점령한 위대하고 강대한 나라를 주셨습니다. 당신 다음에는 당신의 나라보다 조금 못한 은으로 비유한 나라가 일어날 것입니다.
다니엘 8:20을 보면 그 왕국이 메데파사 왕국이며 고레스 왕 때에 바벨론을 정복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꿈 해석이 계속되면서 이 나라가 배와 넓적다리가 놋으로 된 나라에 의해서 망하게 되는데 다니엘 8:21절을 보면 헬라 나라를 지칭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예언의 말씀인데 그때는 주전 약 600년 전으로 헬라는 알려지지 않은 세상의 서쪽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영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헬라 나라는 철의 다리를 상징하는 나라에 의해서 정복 되었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에 이 나라는 로마제국을 의미합니다. 로마는 철과 같이 강하여 온 세상을 철의 주먹으로 자기 나라에 복종시켰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언한 일들은 그 동안 역사를 찾아보면 쉽게 풀이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어떤 나라라고 지목할 수 없는 마지막에 세계를 통치하는 한 왕국의 예언이 남아 있습니다. 로마제국 시대 이후로 전 세계를 통치한 나라는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철과 진흙이 부분적으로 섞여 있다고 묘사한 것을 보면 철은 로마제국을 상징하므로 마지막 왕국이 과거 로마제국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진흙과 혼합된 것을 볼 때에 진흙은 철보다 약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로마제국을 회복함에 있어서 약한 나라를 의미하는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열 발가락은 열 나라를 나타내며 그들이 세력을 뭉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해몽을 다 들었을 때 참으로 다니엘의 하나님과 같은 신은 세상에 없다고 선언하고 그에게 절하며 예물까지 드렸습니다.(다니엘 2:47). 그러나 나중에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두로 평지에 금으로 만든 90 피터(feet)의 신상을 세울 것을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은 아무도 그의 왕국을 정복할 자가 없다고 말하고 바벨론 왕국이 영원히 계속될 것을 선언 했던 것입니다. 또 왕은 모든 사람들은 이 신상에 엎드려 절해야 하며 만일 경배하지 아니하면 사형에 처할 것을 명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히브리 세 청년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의 이야기가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신상에 경배하기를 거절했을 때 풀무불에 던지움을 받았고 그 풀무불 속에는 세 사람 이외에 다른 한사람이 있었는데 마치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생긴분이 그들이 불에 타지 않도록 보호했던 것입니다. (다니엘 3:25, 27)
여기서 세 친구들이 이러한 시련을 당하고 있을 때에 다니엘은 어디에 있었는가? 란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상상하기를 혹시 그가 신상에 절을 했던지(절대 그렇게 한 것같지 않음) 아니면 그는 그때에 타 지방에 출장을 갔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건에서 놀라운 비유를 볼 수 있는데 성경은 우리들에게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한 신상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그 신상에 절할 것을 요구할 것이며 만일 절하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을 명할 것입니다.(계시록 13:15). 세 히브리 청년들은 유대인 144,000인을 비유하며 이 사람들에게 인을 쳐서 불 심판 때에 무사히 보존되는 사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계시록 7:1-8). 다니엘이 여기 나타나지 않는 것은 대 환란 때에 신비롭게 사라진 교회의 비유와도 같습니다.
이 일 후에 느부갓네살 왕이 제 정신을 잃고 들에서 소와 같이 풀을 뜯어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의 털이 새털과 같이 길게 자라서 몸을 덮었고 그리고 그의 손톱은 세의 발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곱 때의 기한동안 제정신을 갖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일곱 때라는 말이 7년인지 아니면 7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하면 삼년 사분의 삼 년일 것입니다. 그의 정신 이상의 기간이 어떠했던지 관계없이 그 기한이 차매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가 원하시는 자를 왕으로 세우시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시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왕은 그의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인지했던 것입니다.(다니엘 4:31-37)
벨사살 왕의 통치하던 원년에 느부갓네살의 꿈 사건 후 약70년경에 다니엘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은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를 보았으며 그리고 한 곰을 보았는데 그 입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이 곰은 사자를 죽이고 그 후에 또 표범에게 죽임을 당하며 이 표범은 넷째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이 짐승은 열 뿔이 있어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먹고 부서뜨렸습니다. 그리고 열한째 뿔이 나타나서 먼저 뿔 중에 셋을 뽑아내고 큰 권세를 받아 참람한 말을 하더라고 했습니다. 여하튼 다니엘의 환상은 느부갓네살의 꿈의 내용과 동일한 것입니다. 다니엘이 환상에서 본 네 동물은 왕이 본 금속으로 된 신상과 같은 뜻을 가진 이 세상을 통치하는 왕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역사를 볼 때 다니엘의 예언이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바벨론 왕국(신상의 금으로 된 머리 혹은 사자)은 메데 파사(은으로 된 가슴 혹은 곰) 메데파사는 헬라(놋으로 된 배 혹은 표범) 에 의해 정복되었고 그 후 헬라는 로마(철로 된 다리 혹은 무서운 짐승)에 의해 멸망되었습니다.(다니엘 7:1-8)
이 예언은 유럽의 동맹국으로 쉽게 규정할 수 있으며 현재 경제적인 조약을 서로 맺어 연합하여 이것이 로마의 조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조약은 유럽 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조직하기 위한 목적이며 아니면 보다 강한 구주경제동맹국(European Economic Community)의 일연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구주 동맹국에 속한 모든 각 나라들의 경제적인 경계가 1992년 12월 밤 영시로 부터 제거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주동맹국의 공동 화폐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각 나라에서 사용하는 현금제도는 폐지된 것으로 간주 됩니다. 우리는 이제 거대한 세계 경제 체제의 한 거인이 형성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무대는 설치되었고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최근의 역사는 어떻게 돌아가며 요 몇 년 간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리고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20세기의 이스라엘
1973년 10월에 옴 키퍼(유대인의 년 중 가장 거룩한 날) 동안 시리아와 애굽이 이스라엘의 두 반대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규 군인들을 포함해서 회당에 가 있던지 아니면 집에서 휴일이라 조용히 쉬고 있었습니다. 옴 키퍼는 공휴일이라 모든 방송망도 하루 종일 침묵을 지켰던 것입니다. 갑자기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도 방송이 시작되었고 군인들을 긴급히 소집하는 암호가 방송되고 예비역이 현역으로 소집되며 국가 비상이 선포 되고 국가 방어에 모두 나섰던 것입니다.
시리아와 애굽은 이스라엘을 전멸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북쪽에서 시리아는 골란 하이트의 약 20마일 지역에 1200대의 탱크를 배치시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히틀러가 2차 대전시 소비에트를 침공할 때에 1000대의 탱크를 약 200마일 지역에 배치시켜 공격했던 것을 보아 그 전쟁 양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쪽의 시나이 반도에서는 애굽이 3000대의 탱크와 1000대의 대포부대를 가지고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 전쟁의 목적은 이스라엘 나라를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절해 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랍동맹국들의 무력이 거의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1967년에 일어났던 것 보다 더 큰 기적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오늘날 나라로서 존재하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아랍 동맹국이 이스라엘 보다 수적으로나 무기의 보유가 월등히 우위에 있었을 때 성경에 나오는 유사한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거의 패망할 지점에 이르렀을 때에 많은 용감하고도 영웅적인 이야기들이 무명한 병사들에 의하여 시행된 사실을 남기고 있습니다. 스가랴가 예언했듯이 약한 병사가 다윗과 같이 되겠다. (스가랴 12:8). 예를 들어 “즈위카”라는 별명을 가진 즈비브 그린골드 중위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의 가족들과 함께 키붓쯔 로타마이 하게타오트에 있었습니다. 그는 즉시 군복을 입고 지나가는 차에 몸을 실어 골란 하이트 전방에 위치한 마페치에 있는 본부로 달려갔습니다. 탱크 한대를 요구했습니다. 본부에는 탱크가 3대 밖에 없었는데 두 대는 고장이 나서 수리 중에 있고 한대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린골드 중위는 탱크 한대를 몰고 전방으로 나갔습니다.
전방을 향해 가보니 수많은 탱크들이 자신을 향하여 공격태세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시리아 탱크를 향하여 발포하여 몇 대를 파손 시켰으나 그동안 자기를 도와야할 아군의 탱크들이 내려가고 있음을 깨닫고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 주된 도로에서 빠져나가 주된 도로와 평행한 위치에 있는 작은 언덕 뒤로 숨었습니다. 그 후 다시 작은 언덕 꼭대기에 올라와서 시리아 탱크를 향하여 발포하여 탱크 몇 대를 파괴하고 언덕 위로 내려가서 다시 올라와 같은 공격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투를 혼자서 반복하는 가운데 너무나 많은 탱크가 파괴 되어 시리인 군인들이 생각하기를 자기들 보다 수가 더 많은 탱크 여단과 맞서 싸우는 줄 착각하고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적과의 50대일의 비율로써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날 즈위카는 시리아의 공격에 홀로 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탱크를 파괴할 때 마다 본부에 무선으로 보고했을 때 본부는 즈위카가 전 탱크 부대를 이끌고 싸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용감한 군인은 단지 자기 혼자서 시리아 탱크 부대의 전진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스토리는 다윗과 같은 수많은 영웅들 중에 하나에 불과한 사건들이 옴키퍼 전쟁 때 있었던 일입니다.
시리아 군대들이 이스라엘의 방어가 미약한 골란 하이트 남부 지역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시리아군은 이스라엘군이 있는 본부에서 불과 1 마일 떨어진 지역까지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때에 시리아군은 이스라엘 전초부대를 향하여 내려오고 있었고 이스라엘의 전방 본부에는 방어 병력이 탱크 두 대와 군인 열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시리아의 수많은 탱크들은 줄을 지어 내려오다가 이스라엘의 중요한 방어기지 전방에서 멈추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골란 하이트 사령관은 웃으며 말하기를 시리아 군대가 내려오다가 갈릴리 바다의 아름다운 광경을 구경하느라 멈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왜 시리아 군대가 저항이 없는 곳에서 멈추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시리아 탱크 부대가 북쪽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군대가 시리아 군대가 급히 몰려오게 하여 남쪽으로 모두 왔을 때 포위하여 공격할 것을 우려하여 멈췄다는 추론을 펴기도 했습니다. 시리아 군대는 전쟁 첫날 그들이 디베랴까지 내려와서 갈릴리 전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남쪽에 있는 시나이반도 지역에는 애굽 군대가 24시간 내에 바렙 지역을 점령할 계획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5시간 만에 그 지역을 점령했기 때문에 너무나 빨리 성공하여 거기서 기다리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나 빨리 점령하는 바람에 그 다음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거기서 텔아비브 까지 가는데 장애물이란 단지 90대의 고장 난 탱크뿐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신비하게도 이 양 나라의 군대인 시리아와 애굽은 진격을 멈추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예비역 소집과 군대를 동원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게 되어 골란 하이트와 시내반도의 침공에 대한 반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골란 하이트를 반격했을 때 시리아군대를 다마스크스 수도의 12마일 지역까지 밀고 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병 부대를 동원하여 시리아 수도를 강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나이반도에서는 아리엘 샤론 장군의 현명한 지략으로 공격 부대를 수에즈 운하를 건너가게 하여 애굽 군대를 완전히 포위하여 보급로를 차단함으로 애굽 군대들은 식량과 의료품이 두절 되어 완전히 이스라엘에게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발발 후 몇 시간 만에 소련 수상인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미국 대통력 리차드 닉슨에게 전화하여 중동에 평화를 위해서 일방적인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소련 운송 비행기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지역에 도착했다는 사실입니다. 1973년 10월 6일에는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러시아의 선박이 애굽의 알렉 산드리아와 시리아의 라타키아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전쟁 발발 3일전에 소련 연방국이 이스라엘 지역을 촬영하고 이스라엘의 군대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 우주선을 우주로 쏘았던 것입니다. 아랍군들의 공격이 원래 옴키퍼 날 오후 6시에 감행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우주선의 관찰에 의해서 이스라엘 군대의 움직임이 시작됨으로 공격을 4시간 앞당겨 했던 것입니다. 시리아는 훈련된 군인이 없었기 때문에 소련 군인들이 침입한 탱크를 조종하는 자들 가운데 포함되어 많은 소련 군인들이 이스라엘 군인에 의하여 포로로 잡혔던 것입니다. 그리고 골란 하이트에서도 많은 소련 군인들이 포로로 잡혔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나중에 비밀로 무마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옴키퍼 전쟁 때 이스라엘에 있었는데 텔아비브로 부터 받욤에 있는 호텔로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 운전사가 이것이 마지막 손님이며 자기가 예비역 중위여서 곧장 현역으로 보고하고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하기를 “내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 하겠습니다. 이 전쟁이 심각하게 보이군요” 라고 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우리는 러시아와 전쟁하고 있읍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고 말하기를 “러시아는 최신 무기인 강력한 유도탄 3-6를 가지고 있음으로 이번에는 러시아의 유도탄과 맞서야 하겠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제가 러시아 무기라고 말하지 않고 러시아 사람들과 싸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골란 하이트에서 몇 러시아 군인들을 체포하였습니다.
골란 하이트에서 러시아 사람들이 체포되었다고 타임잡지에 보도된바 있으나 이상하게도 잠잠해 졌습니다. 시나이반도의 공중전에서 5대의 MIG 소련 비행기가 격추 되였는데 모두 소련 공군 조종사였습니다. 소련의 핵무기로 중무장한 함대가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도착한 것을 미국 정찰기가 포착 했습니다.
브레즈네프가 닉슨 대통령에게 소련 연방국이 중동의 평화를 위해서 일방적인 행동개시를 취하겠다고 알려 주었을 때에 실제로 그는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전쟁의 양상이 애굽과 시리아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는 그들의 수송기에 소련 연방국의 낙하산 부대를 탑승시키고 있었습니다. 붉은 군대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면전을 펼칠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1968년에 체코슬로바키아가 반항을 했을 때 제일 먼저 시도한 작전이 낙하산 부대를 보내어 공항을 장악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붉은 군대가 공항을 장악하여 차단시킨 후에는 즉시 군사 물자와 탱크를 우송하여 그 나라의 중심지대로 진군하여 반란군을 진압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소련의 전략인 것입니다.
브레즈네프가 닉슨 대통령에게 협박의 전보를 보내었을 때에 닉슨 대통령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전 미군에게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는 급히 이스라엘과 시리아 그리고 카이로를 순회하면서 러시아가 개입하기 전에 정전할 것을 촉구했던 것입니다. 한동안 제 삼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1973년에 이세상이 끝이 나겠구나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목적이 계시기 때문에 이 전쟁을 중지시켰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뒤를 돌아보건데 그들이 전진하는 것을 중지했다는 것은 큰 실수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아랍나라들을 압도하고 승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들은 다마스쿠스를 공격하고 탱크를 보내어 그 시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샤론 장군은 애굽 군인들이 포위를 당해 꼼짝도 못하게 갇혀 있을 때에 카이로로 진군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미국이 압력을 가하여 중지시켰고 유대인의 완전승리를 방해 했던 것입니다.
1982년에 소련연방국이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 원조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스라엘의 군사 전략가들이 이스라엘 군대가 6월에 레바논 남쪽으로 배치된 것이 침공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믿고 있습니다. 갈릴리의 화평 작전 수행 중 이스라엘 군대가 북쪽으로 이동하였을 때에 그들은 광대하고도 놀라운 무기 창고를 발견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수상인 메나 켐은 이스라엘의 세계적으로 탁월한 정보 활동이 예상했던 것보다 10배 이상의 무기를 축재하고 있다고 선언 했습니다. 무려 12 이상의 큰 추럭과 트레일러로 그 무기를 하루 24 시간 작업으로 끊임없이 이스라엘로 실어 나르기를 3개월 이상이 소요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침공을 위해서 준비한 400대에 달하는 신형 T-62탱크를 압수 했고 3개 사단의 병력을 무장 시킬 수 있는 무기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막대한 신무기와 훈련고문을 조달할 수 있는 나라는 소련연방국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
주후 72년경에 로마 장군 실바누스가 난공불락의 고지인 마사다 시를 공격했을 때 그 시에 있는 유대인들은 로마병정들이 거대한 토성을 쌓아 마사다의 뒷부분을 통해서 연결하는 건널목을 건설하고 있음을 보고 내일 아침에 로마 군대의 공격에 방어의 능력이 전혀 없음을 잘 알았습니다. 그때 벤 엘리에즈라는 지도자가 사람들을 모두 회당에 소집을 하고 내일 아침에 로마병정이 몰려와서 당신들의 아내를 당신 눈앞에서 강간을 하고 죽이고 살아남은 자는 노예로 끌고 갈 것인데 차라리 우리 모두가 자살하여 명예로운 길을 택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 10사람을 선택하고 마사다 시를 집집마다 찾아가서 먼저 아이들을 죽이고 그 다음 아내와 남편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그들이 각 집을 찾아 갔을 때에 남편과 아내는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땅 바닥에 누워있으면 살해자가 와서 그들의 목을 베어 죽였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죽인 후에 남은 열사람들은 한 방에 모여 누가 우리를 먼저 죽이는가? 제비를 뽑아 모두를 죽인 후에 마지막 남은 사람은 자살하여 모두가 죽었던 것입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로마 군대들이 마사다 시를 공격하여 들어왔을 때 그 전날 밤에 있었던 참혹한 장면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동굴에 숨었던 늙은 할머니와 몇 아이들을 제외 하고는 그 시에 거주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로마 군대들이 마사다를 정복하였으나 그것은 텅빈 헛된 승리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믿었던 것은 노예가 되기보다 자살하는 편이 낫다, 라는 것이 “마사다 정신”으로 알려 져 왔습니다. 1973년 전쟁 전에 이러한 감정이 대부분의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들의 마음가짐 이었습니다. 실제로 요 근래 유대인 사관생도들이 졸업식의 한 행사로 마사다에 가서 리더들이 마사다의 사건을 다시 상시키면서 모든 사관생도들과 장교들이 함께 “마사다는 결코 다시 망하지 않는다.”라고 구호를 외치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골자는 오래전에 저항한 자들의 진술에 동의하면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태도가 새로운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데 “마사다 정신” 대신에 “삼손정신”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삼손도 자살한 사람인데 그가 죽을 때에 모든 원수도 함께 죽였던 것입니다. 삼손은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어떤 조그마한 소년에게 불렛셋 사람들의 신전을 버티고 있는 기둥으로 인도해 달라 요청하고 삼손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여 그 기둥을 넘어트리므로 신전이 폭삭 주저앉아 거기에 있던 불레셋 사람들이 삼손과 함께 모두 죽었던 것입니다. (사사기 16:26-30).
오늘날 이스라엘의 리더중의 혹자는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가야 한다면 그들도 가야하고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말합니다. 온 세상이 우리가 없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온 세상도 우리와 함께 갈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옴키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총알이 거의 다 소모 되었을 때에 독일, 영국, 이탈리아, 불란서 모두가 군수 물자를 보급하는 미국 수송기가 비행장에 착륙하고 연료 공급을 받는 것을 거부 했던 것입니다.
10일 후에 드디어 폴츄갈이 아조레스에 있는 기지에 미국 비행기의 연료공급을 허락하여 이스라엘의 벤케리언 국제공항에 겨우 도착하여 이스라엘 군대의 군수품 재보급이 가능케 되여 전쟁을 계속 수행케 되였던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사건이 저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아 이스라엘은 유럽이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이 들어 밖으로 말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만일 우리가 몰락하다면 이 세상도 우리와 함께 몰락한다. 저들에 대한 관심을 쓸 필요가 뭐냐?”라는 태도인 것입니다.
미래에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에 이스라엘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을 방어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마땅히 그렇게 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 대한 전망
2006년 10월 6일에 아리에 엘다드 교수가 코스타 메사에 있는 갈보리 채플교회 저녁 예배에 초청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존영을 위협하는 러시아의 배후의 도움으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대담한 헤즈볼라 그리고 이슬람의 호전적인 전투원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엘다드 교수는 이스라엘 국회인 크네셋의 현직 국회의원입니다. 그는 크네셋 의회의 윤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활약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신문지에서 진실하고 법을 재정하는 충실한 법률가로서 높이 평가 받는 자입니다. 이 사람은 교수인 동시에 이스라엘 방위군의 육군준장이며 예루살렘에 있는 하닷사 의료센타의 화상 치료팀의 성형외과 과장이기도 합니다. Dr. 엘다드는 미국 화상치료협회로 부터 인정받은 에봔스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엘다드 교수는 시온주의 수정론 자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진술한다면 그는 유대인 자신이 선택하는 이스라엘 땅 어느 곳에서든지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팔레스틴 해방조직에게 이스라엘의 절대권을 양도함을 일체 반대합니다. 그는 또한 요단강 서쪽에서 어떤 팔레스틴, 아랍국을 형성하는 것도 반대합니다. 그러한 가능성이 현재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이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엘다드 교수가 진술한 중요한 요점
레바논 남쪽지역에 거의 20년이 지난 후인 2000년도에 이스라엘의 북부 국경지대에 평화와 안전을 희망하면서 그 지역에서 철수 했었습니다. 금년 7월에 헤스볼라의 테러들이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군인 8명을 죽이고 2명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북쪽 국경과 레바논에서 전쟁이 발발했던 것입니다. 지난 6년 동안 이스라엘 지도자의 정책적 맹점으로 인하여 헤스볼라가 시리아, 이란, 러시아, 중국에서 만든 여러 종류의 사정거리를 가진 미사일 15,000개를 구입하는 기회를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가정집이나 모스크 그리고 학교 아래 땅굴을 파서 광대한 지하 조직을 설립해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과 가자 사이의 국경지역에 아랍 테러들이 이스라엘시를 향하여 수천발의 로켓을 발사했던 것입니다. 이 기간에 무기와 총알, 폭발물 등의 군수 물자들을 애굽에서 시나이반도를 통하여 가자 지역에 축적해놓았던 것입니다. 이 지역이 바로 일년 전에 그 지역의 평화를 위해서 이스라엘이 철수했던 곳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평화 대신에 끝없는 전쟁에 다시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정치가들의 전략적인 맹점으로 평화라는 조건하에 이러한 땅들을 내어 주었으나 오히려 잔인한 테러들의 공격을 유발하게 되었고 오늘날 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군사 전문가와 이슬람의 전문가들은 말하기를 이 두 전방사이에 어떤 관계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마스는 수니 테러 기관입니다. 그들의 본부는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헤스볼라는 쉬아이트 기관으로 이란으로 부터 자금과 무기와 훈련을 받고 있으며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전문가들은 너무나 자세한 것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것을 보는 포괄적인 시각을 상실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수니와 쉬아이트, 시리아와 이란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을 진멸시키는 목표에 있어서는 의견을 일치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양상이 영토문제나 거주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거룩한 땅에서 유대인들이 옛 고토에서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와 가자지역에서 퇴각했을 때에 아랍인들은 그곳을 즉시로 테러 기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랍인들의 눈에는 텔아비브가 베잍엘 샤일로나 크파 아두밈에 있는 나의 집이 마치 자기 땅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랍들은 모든 것을 원하고 유대인들은 모두 죽기를 바랍니다. 테러 자체보다 요 근래 이스라엘의 정치인들이 양보 하고 물러서는 것이 더 위험한 것입니다. 물러서는 것은 단지 테러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더 해롭게 하는 노력을 배로 증가하는데 용기를 북돋우어 줄 따름입니다. 이란은 지난 10년에 걸쳐 참여에 평행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최근 레바논에서 일어난 전쟁은 이스라엘과 이란군인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이란이 우리로 부터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중동의 지도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설명을 한다면 이란은 이스라엘을 국경으로 한 나라가 아닙니다. 이 두 나라 사이의 경계의 거리가 약 1000마일이나 떨어져 있습니다.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영토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를 원합니다.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우라늄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 큰 공장을 세웠습니다. 이란은 또한 이스라엘에 미칠 수 있는 장거리 유도탄도 제작하였습니다. 이란의 핵무기 계획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하여 군사적 공격을 막기 위해서 동맹국인 시리아에 헤즈볼라와 하마스와 같은 테러 기관들을 후방에서 원조하여 이스라엘에 대해서 끝없는 전쟁을 일으켜서 교란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이스라엘의 전 인구가 레바논의 남부지역과 가자지역에 설치 해둔 수천 대의 유도탄의 공격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혀 공격하지 못하도록 효과적으로 작전을 꾸미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서방국의 사람들과 같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란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그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1948년의 피란민들이 영토를 차지한 사실이던지 아니면 영토의 국경이 문제라고 우리들은 유럽 및 미국과 함께 세뇌가 되여 왔습니다. 이란이 재래식 무기로써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시도가 대 참패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란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계속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아시는 분들은 페르시아에서 시작한 이스라엘을 파괴 하고자 하는 계획이 이번이 처음인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을 말살시키자는 계획이 독일 나치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에스더 책(3:8)을 읽어 보면 약 2500전에 페르시아의 왕 아하스에로의 하만 수석 관리가 말하기를,
“8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 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 하나이다.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부쳐 왕의 각도에 보내니 십이월 곧 아달월 십삼 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 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하였고"(에스더3:8, 13)
오늘날 이란에 우라늄 생산을 저지할 막강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기회가 아직도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성공으로 이끌리라는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러한 일을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란은 미국이 자기 나라를 향하여 군사적인 공격을 막기 위해여 장거리 유도탄을 제작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전 자유진영의 나라들에 대한 큰 위협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히틀러 때와 유사한 것으로 국제 사회가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무장하고 싸우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아마디네자드와 그의 계획이 물리적으로 제거 되어야만 합니다. -금년에 아니면 내년- 내년은 아마 너무 늦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외교적으로 국제적인 압력을 가하여 이란의 계획을 중지시키겠다는 희망을 가진 자들은 그들이 그러한 일을 기어코 성취하고 져 하는 동기를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논리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디네자드는 스스로 지신이 이스라엘과 미국에 의해서 대표하는 서방국에 대항하는 무슬림의 지도자로써 자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 3차 전쟁의 중간 지점에 놓여있습니다. 9/11에 일어난 일이 바로 이 전쟁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만일 유럽이 이 전쟁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보호하는 직무를 띠는 책임을 맡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행해야 할 경우 그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행할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에 하나의 밀집된 큰 집단을 이루어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단추만 누르면 모두 멸망하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역과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본국의 경계를 안정시킨 다음 다른 별다른 길이 보이지 않으면 핵무기 계획을 중단하기 위해서 이란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이 이스라엘이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난 전쟁에서 실패한 이스라엘 지도자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원수들을 대항하기 위해서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시편 83편에 있는 다윗왕의 기도를 우리 마음속에 기원하면서 전쟁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83편(아삽의 시. 곧 노래)
“1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치 말고 고요치 마소서 2 대저 주의 원수가 훤화하며 주를 한하는 자가 머리를 들었나이다 3 저희가 주의 백성을 치려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의 숨긴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4 말하기를 가서 저희를 끊어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5 저희가 일심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니 6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7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거민이요 8 앗수르도 저희와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셀라) 9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10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 11 저희 귀인으로 오렙과 스엡 같게 하시며 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12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 13 나의 하나님이여 저희로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초개 같게 하소서 14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화염 같이 15 주의 광풍으로 저희를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저희를 두렵게 하소서 16 여호와여 수치로 저희 얼굴에 가득케 하사 저희로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17 저희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케 하사 18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핵무기 능력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 하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과거에 이락이 이스라엘을 위협했을 때 만일 이락이 그들을 향해서 대량학살의 무기를 사용했다면 이스라엘은 이락을 향하여 전 화력을 사용할 것을 선언 했던바 있습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원수 나라에 대해서 같은 원칙을 적용할 것입니다. 엘다드 교수의 위에서 말한 연설에서 “만일 이스라엘이 홀로 전쟁을 해야 한다면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전쟁을 치룰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주 선언하는 말이 그들은 전쟁에서 패전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나라의 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서 이스라엘은 핵능력의 확대와 그것의 발전을 계속해 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했던 증거로서 1973년 전쟁초기에서 마치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할 것 같은 아주 심각한 순간에 그들은 핵폭탄을 활성화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1977년 초기에 이스라엘이 중성자 폭탄을 소유하고 있는 증거가 있었고 이 무기는 그때 당시 미국은 개발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무기는 사람만 죽이고 건물이나 산업들을 파괴하지 아니하는 아주 인도적인 무기입니다. 이 무기는 초 고성능 방사능에 의해서 사람을 죽이도록 고안 된 것입니다.
히로시마라는 저서에서 존 헐시는 2차 대전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척한 원자 폭탄의 위력을 기술 하였는데 첫 번 투하 한 후에 많은 사람들이 생존했습니다, 마는 나중에 방사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서 눈알이 녹아서 얼굴에 흘러 내렸다고 했습니다. 방사능으로 인한 상처가 낫지 않고 고성능 방사능의 노출에 조직이 썩어 내렸다고 했습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 폭탄의 방사능의 효과가 중성자 폭탄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무기를 사용할 때 그 결과란 무서운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연상해 볼 때 스가랴 14:12 말씀이 아주 흥미롭게 떠오릅니다. 이스라엘의 탄생을 말한 후에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주위에 있는 원수들과 싸우 는 전쟁에 대해서 묘사하기를,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
나에게는 이러한 양상이 심한 방사능으로 인한 죽음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에스겔 39장 1-16을 보면 하나님께서 곡을 멸하실 때에 일어난 사실과 유사합니다.
“1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2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먼 북방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3 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4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움키는 새와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리니 5 네가 빈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6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7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볼찌어다 그 일이 이르고 이루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니라 9 이스라엘 성읍들에 거한 자가 나가서 그 병기를 불 피워 사르되 살과 몽둥이와 창을 취하여 칠년 동안 불 피우리라 10 이와 같이 그 병기로 불을 피울 것이므로 그들이 들에서 나무를 취하지 아니하며 삼림에서 벌목하지 아니하겠고 전에 자기에게서 약탈하던 자의 것을 약탈하며 전에 자기에게서 늑탈하던 자의 것을 늑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1 그 날에 내가 곡을 위하여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편 사람의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리니 통행하던 것이 막힐 것이라 사람이 거기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장사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일컬으리라 12 이스라엘 족속이 일곱 달 동안에 그들을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13 그 땅 모든 백성이 그들을 장사하고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그들이 사람을 택하여 그 땅에 늘 순행하며 장사할 사람으로 더불어 지면에 남아 있는 시체를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일곱 달 후에 그들이 살펴 보되 15 순행하는 자가 그 땅으로 통행하다가 사람의 뼈를 보면 그 곁에 표를 세워 장사하는 자로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하게 할 것이요 16 성의 이름도 하모나라 하리라 그들이 이와 같이 그 땅을 정결케 하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7개월 이란 특별한 기간 동안 아무도 시체의 뼈에 손을 대지 못하고 그 시체에 가까이 가서 깃발을 꽂아 놓고 나중에 전문가가 와서 그 시체를 제거하여 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체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한 것은 고성능 방사능에 감염을 피하기 위함이 아닐까? 약 2500년 전에 하나님께서 강한 중성자 폭탄의 방사능으로 인한 유사한 병을 기술하신 것입니다. 나는 정확히 이스라엘이 러시아 군대를 그렇게 패배시킬지는 확실히 모르나 스가랴의 예언을 보면 그러한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무거운 돌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겔 37: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마른 뼈들이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흩어진지 2000년 후에 하나님께서 그 뼈들을 상합케 하시고 인대와 근육과 살을 부쳐서 그들에게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큰 군대를 이루어 그 땅에 다시 대리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계속해서 예언하기를 그들이 본국에 돌아와서 안연히 거하는 중 악한 생각이 마곡의 대장의 마음에 들어와서 모슬렘국가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파괴하려고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이란 파사 에티오피아 그리고 리비아가 동맹을 하여 예루살렘을 치러 올 것이라 했습니다.
이 장면이 스가랴 12장에서 예언한 것과 같은 맥락인데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말씀하기를 그의 백성이 이스라엘의 고토에 돌아와서 예루살렘에 다시금 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에 예루살렘은 그 주위에 있는 나라들에게 무거운 돌 혹은 골치 아픈 짐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적개심이 가득 찬 나라들에 둘러쌓여 있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갈등이 있을 것을 이스라엘 나라가 태어나기 오래전에 예언 했던 것입니다.
같은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온 세상 나라가 함께 모여 이스라엘을 대항한다 할지라도 (오늘날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거민을 보호하실 것이며 가장 약한 자가 다윗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스가랴 12:2-9)
에스겔과 스가랴의 예언을 보면 이스라엘 주위에 폭풍의 흑운이 둘러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확실한 결론은 우리가 지금 마지막 때에 살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순간이든지 중동에서는 마지막 갈등이 폭발하여 전멸하는 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에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포함한 전 화력을 동원하여 사용 할 것입니다 그러한 행동은 러시아의 즉각적 반응을 유도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어떤 시기에 러시아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공격하게 되는 것인데 이때가 마지막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에스겔 38장과 39장에서 예언한 사건들이 성취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이스라엘 침공이 마지막 7년의 나열된 사건들이 시작하는 때 일 것입니다. 그 사건들은 구주 열나라 동맹국형성, 적그리스도의 출현, 7년 대 환란의 후 삼년반 그리고 예수께서 그의 교회와 함께 영광과 능력으로 재림, 마지막으로 세상은 하나님의 왕국이 설립되는 것을 볼 것이요, 이 왕국은 영원한 의를 가지고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협박
성경은 구주 동맹국인 10 나라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왕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구주 동맹국(EU)을 방해하는 주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구주 동맹국은 러시아가 건재 하는 한 상승하지 못할 것입니다. 러시아는 구주 동맹국의 대륙에 대해서 큰 위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러시아와 그 동맹국을 제거할 것입니까? 구주 동맹국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강국이 되겠습니까?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구주 동맹국의 지도자로서 세계를 그의 능력 아래로 지배할 수 있겠습니까? 그 답은 에스겔의 예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에 명시 했듯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마른 뼈가 있는 골짜기와 영광스런 이스라엘 나라 회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탄생이 있겠다는 예언이 있은 후 이스라엘이 정착하고 평화롭게 사는 동안 일어날 사건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겔 8:1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네 마음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어“
역사를 통해서 마곡은 코카스 산의 북쪽에 있는 광대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그곳을 러시아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겔 38:6) “고멜과 그 모든 떼와 극한 북방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끌어 내리라”
하나님께서 러시아와 동맹할 나라들의 이름까지도 명시 하셨습니다. 그 나라들을 보면 오늘날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인 것입니다.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나라입니다. 에스겔에서 예언한 도갈마는 터키로서 모슬렘 근본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서방국가와 인연을 끊고 이슬람 나라들과 동맹을 맺으려고 꾀하고 있습니다.
(겔 38:4)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
(겔 38:1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가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이때에 하나님께서 노하여 침략하는 러시아 군대를 멸망시킬 것이라 하였습니다. 3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멸망시키는 자세한 내용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때에 러시아 군대 6분의 5가 멸망하고 이스라엘은 전리품을 7년 동안 연료로 사용하겠다는 예언이 있습니다.
(겔 39:27) “곧 내가 그들을 만민 중에서 돌아오게 하고 적국 중에서 모아내어 열국 목전에서 그들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라 28 전에는 내가 그들로 사로잡혀 열국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토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29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신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세 가지 중요한 선언을 주시해보십시오. 이때에는 유대인들이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알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그들에게 더 이상 가리우지 아니하시고 성령을 이스라엘 집에 부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러시아 군대가 멸망을 받는 날 성령을 이스라엘에게 부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에스겔은 그의 예언의 초반부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에스겔 10:18-19). 예수께서 마태복음 23:38절에서 예언하시기를 ‘보라 너희 집이 황패하여 버린바 되리라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을 보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다시금 이스라엘 나라에게 부어주실 때에 그의 역사의 시간이 다시금 시작됩니다. 그때는 세상이 마지막 7년의 기간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이스라엘 침략이 하나님의 모든 계획에서 열쇠적인 중요한 부분을 맡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 군대의 침공이 실제로 마지막 때를 시작케 하는 방아쇠가 될 것입니다. 이 마지막 7년의 기간이 끝날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오셔서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기름 부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 영원한 그의 왕국을 설립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강하게 믿고 있는 바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스라엘에게 오시기 전에 교회가 이 땅에서 들림 받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제 2막에서)
(롬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눈을 더 이상 가리우지 아니하시고 성령을 그의 백성들에게 부어주실 때에 교회가 이 땅에서 제거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영이 이방인들에게 역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만들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의 몸 된 교회가 완성되고 이방인의 충만 한수가 찰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이스라엘 나라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취하시고 자기의 백성으로 다시금 인정하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러시아의 결정적인 패배가 구주 동맹국이 세력의 상승을 얻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 동맹국이 유럽대륙에서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가장 큰 세력으로 부상할 것입니다. 러시아의 이스라엘 침공이 다음에 있을 예언의 큰 사건으로 간주 됩니다.
구주동맹국
요 근래 일어나는 사건들을 볼 때에 유럽 경제 공동체를 형성하고 원래 구주 공동시장(Common Market)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구주 동맹국(EU)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구주 동맹국의 형성이 된 초기의 관념은 로마 클럽으로 알려진 지식인들로 구성된 단체로 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이 조직은 1968년에 형성 되었고 그들의 웹사이트를 보면 로마의 클럽은 일종의 세계적인 민간 석학들의 구성입니다. 이들의 인적 구성을 보면 과학자, 경제인, 재계의 인사들, 국제적인 시민 봉사자들, 국가 원수들, 오대주의 각 나라들의 전직 원수들이 인류의 미래가 한 번에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각 사람마다 인간 사회가 발전되도록 헌신 하자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유럽나라들의 융합은 이러한 토론에 아주 적절한 결과로 생각 되었던 것은 과거에 그들이 한때는 로마제국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로 보이나 실제로 아무 어려움이 없이 성경에서 예언한 말씀과 너무나 잘 부합됩니다. 구주 동맹국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이것은 유럽의 15개국 간의 특수한 조약을 기초로 한 경제와 정치적인 협조를 제정하고 통할하는 기구의 구조입니다. 1950년에 벨지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룩센브르크 그리고 네덜란드의 6 국가의 지도자가 초창기에 모든 면에서 보다 더 낳은 유럽을 형성하기 위해서 서명하여 시작한 것이 후에 구주 동맹국으로 발전 한 것입니다. 처음에 6개국이 유럽의 석탄과 강철 산업(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 ECSC) 영역에서 시작하여 회원국의 정부가 관여 하였습니다. 처음 시작한 것이 석탄과 강철이었고 5년 동안 서로 무역을 하는데 생활필수품의 가치가 129%에 이르도록 상승세를 보았습니다.
여기서 성공을 경험한 회원국들이 용기를 얻어 6개회원국은 그들의 군사적 정치적 면에서도 힘을 합하는 일을 모색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아 다시금 경제적 면에서만 추구 하도록 초점을 바꿨던 것입니다. 그 후 구주경제동맹으로 알려졌던 것입니다.
1955년에 이탈리아의 메시나에서 구주경제동맹EEC(European Economic Community)이 물품과 인적인 요소와 자본과 봉사 면에서 국가 간에 자유롭게 유통하고 보다 넓은 경제적 범위에서 거래할 수 있는 정책에 서명을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화 사업을 목적으로 핵 에너지 사용을 위해서 유럽 원자 에너지 동맹이 결성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자주 로마의 조약으로 간주되고 1957년 3월 25일에 로마에서 서명되었고 1958년 정월에 실제적인 효력을 발생하였습니다.
현재 이러한 열 나라의 발전을 주시하고 있는 우리들은 다니엘의 환상에서 열 발가락과 비교 해볼 때 그러한 발전에 대한 걸림 돌이 바로 러시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건재하는 한 유럽 대륙의 발전에 큰 협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존재하는 한 서방 유럽이 세계의 강국으로 결코 부상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엄청난 군사 무력을 발전시켜 대부분의 화력을 서방 유럽을 향하여 겨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하고 있는 한 러시아의 군사력이 서방 유럽이나 구주동맹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구주동맹국들이 발전하여 경제적으로 미국 보다 우위에 있게 된다 할지라도 러시아가 존재하는 한 세계를 통치하는 위치에는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1990년에 일어난 양상을 다르게 한 사건이 서방국을 놀라게 했습니다. 공산주의의 몰락, 베를린의 담이 무너지고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지며 그리고 동부 유럽의 나라들이 해방되는 일은 세계를 진동하는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소련연방국의 경제의 몰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시는 것 같이 보입니다.
1992 12월 31일에 구주동맹국간의 경제적 경계가 제거되고 회원국 간에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여권이 발급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이 로마 클럽의 꿈이 공식적으로 현실화 된 것입니다. 1999년 정월에 EEC가 처음 유로화패를 발행하였을 때 달러와의 비율이 0.827 이었으나 현재의 비율은 1.356으로 변한 것입니다. 비율이 변할 것을 예상은 하였으나 유로 화패의 가치가 안정되고 주시할만한 상태인 것입니다. 미국의 달러가 오래 동안 세계의 화패기준으로 등장하여 왔으나 이제는 변하고 있습니다. 달러의 가치가 유로 화패에 비해서 하강상태에 있고 5년 내에 유로 화패가 실제로 미국 달러를 제치고 세계화패 기준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동맹국을 분석해보면 이 동맹국이 다니엘의 예언에서 말하는 철의 부분이 있고 또 진흙의 부분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철과 진흙은 결코 함께 한 형질로 혼합 될 수 없습니다. 같은 뜻에서 이 동맹국은 보기에는 합쳐진 것 같으나 결코 완전히 융합이 될 수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회원국인 각 나라마다 구주동맹국에 대한 의무 수행이 자국의 이익을 주는 한도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요 근래 발전된 사건이 나를 아주 흥분케 하고 있는데 그것은 구주 동맹국이 열 부분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서쪽에 다섯, 동쪽에 다섯, 제가 이 말을 들었을 때에 “옳거니! 이제 다니엘의 예언대로 되어 가는군!” 이러한 새로운 발전은 다니엘의 열 발가락의 예언이 성취되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제국 이후로 세계를 통치한 나라와 제국은 없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권세를 가지고 일어났습니다. 어떤 나라는 세계를 통치할 야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예로서 히틀러의 야심, 그러나 어떤 나라도 아직 세계를 통치하는 일에 성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구주동맹국은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제국으로 그 모든 자격을 거의 다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발가락이 철과 진흙으로 혼합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구주동맹국의 부상을 주시할 때 우리는 느부갓넷살 왕의 꿈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고 있구나! 라고 확신 하고 있습니다.
2 장 적그리스도
성경은 때로는 그를 “짐승”이라 부릅니다. 다른 곳에서는 “악의 사람” 혹은 멸망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그의 일반적인 이름이 “적그리스도입니다” 열 나라의 동맹국으로 부터 권세를 가지고 일어날 “뿔”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귀와 연맹을 맺고 역사상 그 어느 누구 보다 마귀의 말대로 순종하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는 하늘에 있는 모든 것에 대적하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놓으려고 시도할 것입니다.(살후 2:3-4)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가 이 세상에서 영접받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은 그의 속임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더 현저히 나타난 곳은 없습니다. 수년을 통하여 내가 유대인인 친구와 메시아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어 왔습니다. “당신들은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왜 보지 못합니까?”라고 물으면 그의 대답은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메시아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신명기 18:15절에 기초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신명기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나는 그에게 이사야 9:6절을 제시했습니다.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유대인들은 이 말씀이 메시아에 관한 말씀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나는 묻기를 “그러면 당신들은 메시아가 아직도 올 것이라고 믿는가? 라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묻기를 “그러면 그가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면 그가 왔을 때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그는 우리들이 성전을 짓도록 인도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기에 적그리스도가 영접될 뿐만 아니라 메시아로서 승인을 얻을 만한 문이 열려져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나라와 7년간 계약을 맺고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제사드림을 허용할 것이라고 했고, 그러나 삼 년 반 후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성전에 서서 자신이 하나님이라 선언한다고 했습니다. (다니엘 12:11)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나를 영접지 아니 하였고 다른 사람이 자기의 이름으로 올 때에 그를 영접 할 것이라”(요한복음 5:43)
우리가 현재 보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적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할 준비가 되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서 예언 하였듯이 (계13:4, 16-17) 적그리스도가 성공적인 화평계획과 새로운 경제 제도를 펼쳐서 모든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공중 앞에 뚜렷이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경제의 기적을 일으킬 것이며 사람들 앞에서 이적도 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놀랄 것이며 세상의 구주로 칭송할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이 안전을 갈구할 때에 그가 그 욕구를 어떠한 방법으로던지 만족 시켜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유럽에서 평화 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봅니다. 평화에 대한 외침이 온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무대는 확실히 성경이 예언한대로 악의 사람이 세상의 평화를 이룩하는 계획을 가지고 곧 나타나 사람들에게 영접되는 무대가 이미 조성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이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나타나게 될 것인데 실제로 그 능력의 근원이 다름 아닌 사탄인 것입니다. 누가 복음 4장을 보면 사탄은 예수가 자기에게 경배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세상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말하기를,
(누가복음 4:4-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너에게 줄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준 것인데 내가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 든지 줄 수 있는 것이다” (흠정역)
예수님은 사탄에게 말하기를,
(누가복음 4: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의 제안을 예수님은 거절하였으나 적그리스도는 영접할 것입니다. 사탄은 그가 말한 대로 능력과 권세와 왕좌를 그에게 경배하는 자에게 줄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진 증거로서 계시록 13:12절에 적그리스도가 아마 암살 시도에서 치명상을 받아 죽게 되었을 때에 낫게 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계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적그리스도를 암살하는 시도가 있었으나 기적적인 회복을 인하여 “세상과 세상에 거하는 사람들이” 그를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파괴 시킬 수 없는 자 같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사탄을 실제로 경배하는 어리석은 일을 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을 현혹할만한 기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을 경배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때에 땅위에 있는 자들이 그를 경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은 무서운 운명의 결과를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14장에서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을 보면,
(계 14:10-11)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시록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그는 말하는 능력을 받아 사람들을 현혹 시킬 것입니다. 히틀러가 독일 사람들에게 말할 때에 사람들이 최면술에 빠진다고 합니다. 적그리스도도 유사한 능력을 받아 그가 말할 때에 하나님을 훼방하는 참람한 말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년 중간인 삼 년 반에 적그리스도는 마지막 시간을 시작하는 어느 시점을 정할 것인데 그때부터 1290일이 지나면 영광의 주님께서 그의 영원한 나라를 설립하실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건을 멸망의 가증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이러한 같은 사건이 다니엘 9장에서도 묘사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고 있었을 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다니엘 9:22-24)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이레란 말은 히브리에서 샤부아(Shabua)인데 7년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이 부분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모두 끝난 사건입니다.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이 부분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다니엘 9:25-26)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26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이것은 놀라운 예언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수백 년 동안 기다려 왔는데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그의 오시는 날을 정확히 말씀 해주셨습니다. 예언에 따르면 메시아가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이 나서부터 69 이레에 (혹은 483년)에 오셨습니다. 다니엘이 일 년이 360일로 계산한 바벨론 달력을 사용하였으므로 69x7x360은 173880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날이 주전 445년 3월 14일인 것입니다. 페르시아 왕인 아닥사스다가 느혜미야에게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이 주어진 날인 것입니다. (역대하 36:22-23). 스가랴 9:9절에 예언한 대로 예수께서 당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이 예루살렘 성을 증축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후 173880인 주후 32년 4월 6일에 스가랴가 예언한대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시고 입성한 날이었습니다.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그리하여 제자들이 외치는 가운데 예수께서 승리의 입성을 하셨습니다.
(시편 118:24)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같은 날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외쳐 말씀하시기를,
(누가복음 19: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이날이 바로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성취한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바되고(이사야 53:3) 천사가 다니엘에게 말한 것과 같이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졌습니다. 예언의 완전한 성취로서 예수께서 거절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왕국을 받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69 이레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천사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에게 말씀하신 칠십 번째의 이레는 아직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칠십 번째의 이레의 마지막에 모든 이상과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며 가장 거룩한 곳이 기름 부음을 받을 것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의의 왕국을 설립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받지 못하시고 끊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주위를 살펴보면 영원한 의가 아직 설립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예언이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칠십 번째 이레가 성취될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천사는 계속해서 다니엘에게 말하기를,
(다니엘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마지막 때의 증세가 어떠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주님의 대답입니다.
(마 24:15-18)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이 사건은 그의 날에 일어날 미래의 사건들을 말씀하신 것이며 그의 재림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70 번째 이레에 (7년 대 환란) 대한 어떤 해석도 제외되는 것입니다. 선지자 다니엘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말에 대하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나라와 계약을 맺을 것입니다. 계약의 일부가 이스라엘이 성전을 건축하고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올 것을 약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삼 년 반 후에 그 계약을 어기며 매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를 페하고 자신이 새로 지은 성전의 거룩한 곳에 서서 자신을 하나님이라 선언하며 자기에게 경배할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살후2:4)
이것이 가증 (abomination)한 것입니다. 참으로 참람 된 일입니다. 이것이 멸망(가증함과 성소의 황폐함)을 초래할 것이며 멸망(desolation) 이란 뜻이 큰 고통과 공허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대 환란에 대해서 언급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의 눈이 드디어 뜨게 될 것이며 그들이 적그리스도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요단 남부지방에 있는 거룩한 장소로 도망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와 이스라엘
몇 년 전 우리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에 나라 전체에 표방하는 말을 차 뒤에 범퍼와 현수막에 선언하기를 “메시아가 오신다.” 라고 써 붙인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유일한 생존의 길은 메시아가 오시는 길 밖에 없다는 결론을 지었습니다. 문제는 참 메시아가 이미 오셨건만 자기 민족에게 거절을 달하고 말았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멸망할 자들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들이 저희들에게 구원을 줄 진리의 사랑을 영접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지금 막는 자가 있어 막는 일이 끝날 때까지는 나타 날수 없습니다. 막는 힘이란 오늘날 교회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인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불의한자에게 그리고 진리를 영접치 않는 멸망할 자들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통치할 때에 교회가 이 땅위에 있겠다는 말씀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데리고 가신 후에 악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 후에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성전을 재건할 것을 계약하고 도와줄 것을 약속할 것입니다. 전에 언급한대로 많은 유대인들이 메시아는 모세와 같은 사람이며 또한 자기들의 성전 재건축을 도와주는 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많은 랍비가 메시아가 곧 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예언한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는 것을 비추어 볼 때에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요한복음 5:43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될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나를 영접치 아니하였고 다른 사람이 자기의 이름으로 올 때에 너희들이 영접하리라”
이제 가짜 메시아를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와 성전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축할 큰 소원이 있음을 볼 때에 놀라운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대학의 교수인 아셔 코프만 박사는 이 운동에 가담한 자입니다. 이 사람은 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곳을 철저한 고고학적 연구를 해온 결과 그 위치가 현재 금 집이 있는 바위에서 북쪽으로 약 322 피트 정도 떨어져 있음을 결론지었습니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지성소가 오늘날 영의 반구형 지붕(Dome of Spirits) 이나 혹은 서판의 반구형 지붕 (Dome of the Tablets)으로 알려져 있는 곳에 위치한 것으로 짐작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확하다면 유대인의 성전이 현재 금 집(the Dome of the Rock)을 제거하지 않고도 지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슬렘과 전면적 지하드 (종교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성전 위치에 대해서 구약성경의 예언을 비추어 볼 때에 흥미 있는 사실 입니다. 에스겔이 환상에서 재건축한 성전을 보았습니다. 그 성전을 재어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에스겔 42:20에서 성전의 전체를 둘린 벽이 길이가 500규빗 (한 규빗이 1.43 feet)이고 넓이가 500규빗이다, 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성전과 참람한 곳을 격리하기 위해서” 성전의 치수가 정해진 것입니다. 금 집은 아랍치수로 그것의 꼭대기가 약 700피트가 되는데 안 밖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도 아니고 그를 낳지도 않았다”라고 선언 했습니다. 이 말은 신약 성경의 요한복음 3: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란 말씀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말입니다.
계시록 11장에서 요한은 대 환란동안에 예루살렘에 서 있는 새 성전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요한에게도 이 성전을 측량해 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전 밖 마당은 측량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이방인들에게 주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만일 새 성전이 지성소의 위치인 영의 집(Dome of Spirits)의 위치에 지어진다면 에스겔이 측량한 것과 유사한 것으로 금 집( the Dome of the Rock)은 성전 벽의 뒷 편에 위치하게 될 것입니다. 금 집은 솔로몬의 성전에서 본다면 바깥마당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새 성전은 성전의 산의 북쪽에 있는 현재 금 집의 북쪽에 위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제시하는 문제해결의 방법일 것입니다. 인간 역사상 오랫동안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인 가장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곳에 쌍방을 만족케 하여 해결책을 가져온데 대해서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천재적인 화평케 하는 자라고 추대 받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를 메시아로 찬양할 것이요, 이것이 다니엘의 예언서에서 묘사한 마지막 7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삼 년 반 후에 그는 거룩한 곳에 서서 자신이 하나님이라 선언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15; 데살노니가후서 :2:3-4) 이때에 유대인들은 그들이 실수를 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삼년 반을 위해서 예비하신 곳으로 도망을 하게 될 것이며 이기간 동안 세상은 역사상 없었던 무서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4:21에서 말씀 하셨듯이 대 환란의 고통과 재난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상을 능가하는 대 환란이 계시록 6장에서 19장 가운데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준 비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이 중요한 사건들의 많은 부분이 지금 세상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배우들이 그들의 역을 맡아 연기를 하고 있고 이제 마지막 장면이 시작될 무렵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다니엘에게 말하기를 70이레를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셨다고 했습니다. 69이레는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천사는 또한 말하기를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이 나서부터 메시아가 올 때까지 정확히 483년이 소요 되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곧 끊어지고 왕국을 받지 못하고 유대인들은 세상에 흩어졌습니다.(다니엘 9:24-26). 천사가 다니엘에게 말한 것과 같이 메시아인 예수께서 왕국을 얻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유대인들은 주후 70년경에 로마군에 의해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예언의 시간은 중단되었습니다. 마지막 7년의 중요한 기간 곧 다니엘의 70이레가 아직 올 것입니다. 이것이 올 때에 다니엘 9장의 모든 예언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의 초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끝이 났습니다. 그 예언의 마지막 부분이 영원한 의와 그의 영원한 왕국을 가지고 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예언의 성취와 가장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 일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이루어져야 할 예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완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7년 기간 동안 악의 사람 혹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적그리스도를 자기의 이름으로 오는 자.”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를 영접할 것이라고 예언 했습니다.(요한 5:43). 이 악의 사람이 유럽 구주동맹국으로 부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설립할 것입니다.
3 장 때의 징조
이 순간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의 증세가 없다 할지라도 여러 증세들이 마지막 때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가 오실 때가 가까울 때에 나타나는 증세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언급한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이러한 증세가 나타나면 너희들은 머리를 들고 위를 쳐다보며 우리의 구속이 가까웠음을 깨달으라고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경고하기를 깨어 있어 준비 하라고 하셨습니다.
증세: 전자 자금 이체(移替)
성경은 말하기를 적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오른 손이나 앞이마에 수를 받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수를 받지 않으면 아무도 사거나 팔거나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계시록 13:17). 이것이 불가능 한 것같이 보이나 1970년대에 우리들은 현금 없는 사회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은행들이 작은 수가 기록된 플라스틱으로 만든 카드를 가지고 거래를 하도록 실시하였습니다. 우리가 시장을 갈 때에 현금 대신에 카드를 가지고 시장에서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직원이 카드로서 모든 거래를 할 수 있게 되고 우리가 사인만 하면 현금 없이 그의 모든 물건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돈이 물건을 팔고사고 하는데 아무가치가 없는 시대가 가까이 왔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자금이 암호 번호를 통해서 거래되는 상업제도를 실시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모든 자금의 거래가 컴퓨터에 의해서 전자적으로 실시 될 것입니다. 교회가 휴거한 다음 남은 각 사람들에게 이 번호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 번호 없이는 아무도 사지도 팔지도 못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로 발전도상에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현금이나 첵으로 쓰지 않는 기술이 발전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큰 회사에서는 봉급을 첵으로 지불하지 않고 직원의 은행구좌에 직접 자동적으로 저금함으로 현금을 취급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컴퓨터의 온라인 구좌로 첵을 쓰지 않고 요금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전자적으로 자금을 이체할 수 있다는 것은 도난을 예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런 거래를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도둑이 컴퓨터의 스틱이 붙지 않은 물건을 팔수 없을 것입니다. 이때는 현금을 훔쳐도 무용지물이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는 많은 범죄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리커 상점에 권총강도나 기름 넣는 정류소에 도둑이나 그리고 집에 도둑이 드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범죄들을 많이 제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거기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러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레디 카드나 데빗카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쉽고 간편하고 편리합니다. 여기도 문제가 있는데 사람이 이 카드를 제시할 때에 이 카드가 그 사람에게 속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라는 것입니다.
증세: 개인적인 식별
대부분 구속된 죄수들이 5 내지 30장의 신용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둑이 지갑을 훔칠 때에 현금보다 신용카드에 더 흥미가 있다고 합니다. 이 카드가 도난 되었다고 보고 되기 전에 허용된 금액으로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훔친 카드 사용자가 가짜인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 문제를 연구하는 자들이 몸에 타투(글을 몸에 쓰는 것)를 제의 했다고 합니다. 레이즈 빔으로써 고통 없이 일초에 32,000 마리의 산 가축의 몸에 입력할 수 있습니다.
레이즈 빔으로써 그 사람에 대한 미세자료를 몸에 입력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로써 성경전체를 작은 핀의 머리 부분 만큼의 크기 속에 입력할 수도 있습니다. 레이즈 빔으로 각 사람에 대한 과거의 경력과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자료를 몸의 편리한 부분(손에)에 입력할 수 있습니다. 레이즈 빔으로 사람의 몸에 타투를 넣어서 신용카드의 소유자를 식별하는 궁극적 해결책이 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방법은 아주 효율성이 있는 방법으로 생각 됩니다.
타투를 입력하는 것은 통증도 없고 복사도 할 수 없는 가짜를 식별하는데 좋은 방법으로 간주 됩니다. 풀로리다에 있는 Applied Digital Solution 이란 회사가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였는데 쌀 한 톨만 한 칩을 만들어 사람의 피부 속에 넣으면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에 바코드를 스캔 하듯이 하여 도난이나 사기적인 신용카드 사용 대신에 거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안전회의에서 이러한 기술이 소개 되였습니다. 이러한 칩이 “손실 방지 해결책”으로 선언되고 이 기술의 특징은 피부 속에 칩을 넣어 안전한 개인 식별과 경제세계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4년 10월에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에서는 Applied Digital Solution 에 승인을 했고 최근에 VeriChip 이라는 상품을 제안했습니다. 이 회사에 따르면 사람의 개인적인 임상병역과 병원들과 의사들과 환자들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정보를 칩에 입력하여 환자 치료와 더 좋은 건강관리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터지에 FDA가 이것을 승인했다는 보고가 나오자 백만 개의 VeriChip을 동물에다 이미 심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술은 말의 소유자가 전자적으로 자기의 말에 입력할 수 있고 이 칩에는 애완동물의 주인의 주소와 표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술이 개와 고양이에게 정규적으로 동물의 몸에 심어지고 있습니다. 더욱 경악할 사실은 그 기사에서 7000칩이 사람들을 위해서 팔렸고 1000칩이 실제로 사람의 몸에 이미 심었다고 보도 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구주동맹국의 지도자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의 오른 손이나 이마에 어떤 숫자를 넣어라, 는 명령을 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숫자를 갖지 못하면 사고, 팔고 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가 아주 가까이 다가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로스리 시장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상품에 UPC 암호 번호가 기록되어 스캐너로서 식별하여 지불하는 제도가 이미 실시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이나 앞이마에 타투에다 스캐너를 대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의 은행저금에서 컴퓨터로 구입한 액수를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행하는 범위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 2000년 전에 성경 말씀이 현대의 환상적인 과학기술을 예언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은 컴퓨터기술의 발전으로 실생활에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많은 증세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다른 증세가 또 무엇이 있습니까?
징조: 세계의 위기
하루는 감람산에 앉았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세상의 끝에 대해서 조용히 물었습니다.
(마가복음 13: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가복음 13:5-8)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7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누가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을 보면,
(누가복음 21:11)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은 무서운 징조들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큰 파괴를 일으키는 지진은 정규적으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2004년에 인도양에서 일어났던 쓰나미 그리고 폭풍은 그 빈도가 더 잦으며 강도도 더욱 강하여지고 있습니다. 카트리나의 무서운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은 해결책을 원합니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때 성경에서 예언을 연구하는 자들은 세상의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주 진지하게 이러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종교적 광신자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진지한 생각을 가진 자들은 이 세상이 당면한 위기를 바라보고 어떤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세상이 제의하는 해결책은 나라들이 서로 다른 목적이나 다른 이상을 가지고 분리되는 것보다 서로가 양보하고 단합하여 한 정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한 종교를 믿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얼마 전에 차 뒤에다 부친 글을 보았는데 “하나님은 한 종교로서는 너무 크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공통적인 목표를 위하여 힘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운동이 세상 마지막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일 세계정부를 세워 한사람이 전 인류를 통치 해야한다, 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징조: 지구가 술 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다
지구 온난 상태가 요 근래 열띤 논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석유연료 방출이나 녹색 비닐하우스 가스에 대한 말을 듣지 않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석유가스를 태우는 것과 산림을 제거하는 것이 동반하여 지구의 온난 상태가 위험 수위에 까지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석유연료를 태우므로 열이 지구의 공기층에 감금되게 하는 가스의 대기 농도가 짙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탄소를 제거할 수목을 벌목함으로 다른 물질이 대기에 오염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인자가 결합하여 지구의 대기 온도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러한 학설에 가담하여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현재 지구의 온난 한 상태가 위험의 수위에 까지 도달 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자들을 고려해 보십시오.
NOAA와 NASA와 미국의 대기와 우주권위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지난 100년 동안에 1.2도 내지 1.4도로 증가 했다고 보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지난 15년 동안에 기록된 지구 온도가 가장 더웠다고 보고 했습니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이 세기의 마지막 때에 지구 온도가 2.5도 내지 10.4도가량 오를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지구의 온난 상태에 더욱 첨가하여 다른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오존층의 상태인 것입니다. 지구는 오존가스층의 담요로 덮여져 있습니다. 이 오존층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살인적인 자외선을 걸러서 보호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욥기 38: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이 말씀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오존층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오존층을 지구 표면으로 끌어내려 온다면 그 뚜께가 3피트 정도 되는 담요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지구를 보호하는 오존층이 파괴되는 위험에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 위험에 대한 첫 번 암시가 1974년경에 사람들이 AEROSOL로 된 상품을 사용하므로 FLOUROCARBON GAS를 대기에 오염시켜 온존과 질소가 결합하여 NITRIC OXIDE를 생성하게 되어 오존층을 파괴하고 또한 초음파 속도의 비행기가 55,000피트 고공에서 시간당 1,500 마일 속도로 비행 하면 오존층에 해를 끼치게 되는데 초음속 비행기에서 배출되는 가스가 산소와 오존의 반응으로 자외선을 방어하는 층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오존층의 파괴로 여러분들이 햇빛에 오래 노출될 때에 피부암 같은 병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수년전에 제가 바다에서 수백 명을 침례 주기 위해서 몇 시간 동안 햇빛에 노출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심한 화상을 내 머리에 입게 되었는데 나의 주치의사가 자외선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생긴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존층의 결핍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에어졸이나 초음속 비행기 이외에도 원자폭탄 시험으로 인해 생기는 큰 먹구름은 오존층을 손상케 하는 원인 중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핵전쟁을 하게 될 때에 핵의 초기의 파괴력도 무서운 일이지만 그 후에 대기에 먹구름이 오염되어 오존층을 파괴하므로 2차적으로 오존층의 결핍으로 나타나는 태양의 자외선의 효과로 그때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타죽는 더욱 무서운 결과를 초래 할 것입니다.
계시록 16장에서 넷째 대접재앙이 대 환란 중에 천사에 의해서 부어질 때에 해에게 능력이 주워져 사람들이 타죽느니라 (계시록 16:8-9). 이것은 오존층의 결핍으로 강한 자외선의 효과로 나타난 결과일 것입니다. 이 사실은 약 2000년 전 대기에 지구를 보호하는 오존층이 존재하는 것을 알기도 전에 이러한 재앙을 예언한 것입니다.
지구 온난 상태와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살충제를 사용하므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충분한 수확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살충제를 사용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살충제 사용의 결과로 현재나 미래에 있어서 인체에 어떠한 해를 끼치는지는 충분한 지식을 아무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수년전에 가장 많이 사용된 살충제 가운데 하나가 DDT이었는데 이 화학 물질은 화학성분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흙에 남아 있어 강으로 흘러가서 결국은 바다에 들어가 해초를 파괴하고 미립자 식물과 생물들과 생선들을 파괴하였습니다. 미국서는 DDT가 그 후로 폐지처분 되었으나 이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다에 사는 대부분의 물고기들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계시록에 명시 되여 있습니다. 요한은 불에 타는 큰 산이 바다로 떨어져 바다에 있는 생물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계 8:8) 그리고 인구 폭발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말하기를 인구 증가에 대한 어떠한 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2200년 경애는 지구가 사람으로 담을 이루는 현상이 나타나겠다고 했습니다.
세계인구가 이미 66억에 다다랐고 매년 전 세계 인구의 2%씩 인구 증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기존하는 인구도 모두 먹일 수가 없습니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고 영양실조에 빠져 있습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식량의 수요도 급증하고 있으나 식량의 공급은 저하되고 있습니다. 결과로 식량의 값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근이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 중에 하나라고 말씀 하였습니다.(마태 24:7). 계시록은 밀 한되에 하루의 일삯 값이 될 것이라 예언 했습니다.(계6:6). 만일 당신이 대 환난 중에 일어날 재앙의 날에 남아 있을 계획을 한다면 금이나 은에 투자하는 것보다 밀에 투자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금으로 아무 것도 살수 없는데 금이 무슨 가치가 있을 것입니까? 실제로 야고보는 경고하기를,
(야고보 5:1-3)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사람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미국도 핵무기와 화학무기 그리고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상 마지막에 대해서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마태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수세기 동안 사람이 스스로를 완전히 자멸 시킨다고 하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라고 했지만 지금은 지구상에 있는 인류를 모두 멸망시킬 수 있는 화력을 보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군사 전문가는 경고하기를 세계적인 핵전쟁은 이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에너지 원천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땅속에서 기름을 뽑아 내여 사용해 왔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장래를 위한 기름은 충분할 것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요즈음은 다른 방법의 에너지 공급을 모색할 때까지 현재의 기름을 절약할 것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석유의 보유가 한정되어 과학자들은 경고하기를 이러한 종류의 에너지가 종결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장에서도 언급한바 있지만 세계적으로 잦은 지진의 빈도와 강도가 그의 재림을 경고하는 또 다른 하나의 징조인 것입니다.(마태 24:7). 물리학자들 역시 종말의 사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구 구조를 연구한 결과 지구의 자계에 영향을 받은 이온들이 현재의 정 북쪽으로 부터 다르게 줄을 지어있는 것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것은 양극 지축의 변동 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른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약 5000년 마다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있었던 지축 변동은 노아 홍수 때 있었다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지축변동의 시간이 아주 넘었다는 뜻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지축이 변동하는 동안 섬이 사라지고 산이 골짜기로 무너져 덮이며 바다 속이 솟아나 육지를 이룬다고 믿고 있습니다. 전 유타주가 한때는 큰 바다이었습니다. 그랜드케넌의 남쪽 절벽 끝의 지역에는 해발 7000피트 지역에서 조개 모양의 화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 바다에서 큰 변화가 있었고 산의 구조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지난 지축의 변동 때에 있었다고 가상한다면 자연의 격변으로 인한 융기에 대한 지질학적 손상을 계산하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사건을 기록한 구절을 읽어봅시다.
(계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이사야 24:20)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지고 다시 일지 못하리라”
징조: 창조와 종결
창조의 날짜를 논한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물리학자들이 그러한 날이 있었다고 깨닫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주에 관해서라는 책에서 제임스 진스 경은 우주라고 하는 것은 거대한 스프링을 제어해 놓은 시계와 같아서 그것이 점점 풀리고 있다고 말한다. 우주의 시간을 측정함에 있어서 시작지점의 그 첫째 증거의 예로서 태양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 보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생물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방출하는 막대한 에너지의 양이 일초에 2백만 톤 이상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이 사실이라 증명된다면 수십억 년을 통해 생긴 우주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에게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무한정의 시간으로 늘린 진화론자들의 설에 따르면 태양뿐만 아니라 다른 별들까지도 에너지 근원이 모두 소모되고 이미 없어진 때가 수십억 년 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별이 영원히 태울 수 있는 에너지 근원을 가지자면 문자 그대로 우주 전체가 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창조의 날이라 불리는 특별한 시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미래에 “종결이라 불리우는 날”의 시점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더욱 고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징조: 사회적 혼란
사회 과학자들은 지구의 물리적인 면에 관한 것만큼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말적인 물리적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수단을 간구 한다 할지라도 많은 전문가들은 인류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의문에 있어서 사회적인 적대감의 증가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사회 범죄가 너무나 범람하기 때문에 경찰이나 치안을 유지하는 기관들이 역부족에 이르러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요 근래 경찰을 불러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도난당한 물건을 경찰에게 보고 하나, 그들이 와서 보고서는 작성하나, 그 물건을 되찾는 것은 그의 불가능이라는 암시를 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아이를 잃어버려 보고 한다면 이러한 사건이 만족하게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범죄의 발생으로 전문가들은 실제로 법과 질서를 다시금 재 설립하는 희망을 포기해오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디모데후서 3:1-3)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슬프게도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과학자나 교수들이나 군사 전문가들이나 사회학자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세상 마지막이다.” 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교회는 침묵해 왔습니다. 아마 교인들의 수가 줄어들므로 경제적인 문제가 급급하여 때의 징조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결론적인 마지막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것과 뜻이 아주 다른 것입니다. 세상 전문가들은 세상 마지막을 물리적인 뜻에서 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마지막에 대하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조직과 제도의 끝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항하는 사탄이 통치하는 세상의 질서가 이제 마지막을 종식한다는 뜻입니다. 교회인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통치체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영원히 통치하는 한 왕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의가 세상을 덮는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정치 체제를 다 시도해 보았습니다. 시와 도 그리고 군왕, 민주주의, 독재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사회주의를 시도했으나 어느 정도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정부를 시도해 보았으나 궁극적으로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이상적이고 완전한 조직 같이 보여도 사람이 욕심과 부패가 없이는 자신을 통치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정부가 약 200년간 유지해 왔으나 결국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혹은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 나라들을 바라 볼 때에 세상을 이끌만한 특출한 나라가 없습니다. 세상은 나뉘어져 있고 나라들은 혼돈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문가들도 경제 상태와 에너지의 위기, 식량부족 등에 대해서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할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한 것과 같이 마지막 때는 나라들이 “혼란한 중에 곤고한 상태”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1:25).
이 모든 혼란과 무질서 가운데서 사람들은 한 지도자를 찾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 한 지도자가 올 것입니다. 그는 자기 이름으로 올 것인데 놀라운 계획을 제시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컴퓨터화 된 상업제도를 도입하여 아주 효과적이고 일반적인 경제계획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오랫동안 갈구해 왔던 화평 계획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가?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21:28).
교회는 이것을 기대 하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목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가만히 기다리고 서 있지만 말고 우리들도 “말세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밝은 세상이 온다고 외쳐야 한다. 이것은 세상이 망하는 절망적인 절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조직이 끝난다는 말을 욕심과 미워함과 전쟁과 기근과 병과 죽음이 끝난다는 뜻입니다. 경제적인 착취로 다른 사람의 소유를 뺏어 사람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일이 영원히 끝날 것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사야 55:2)
이 세상 제도가 끝이 난다는 말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의 통치가 끝이 나며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강수와 같은 평화가 시작하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이사야 66:12). 이제는 아픔과 슬픔이 없고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계시록 21:4)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이사야 35:5-6)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4)
다른 말로 한다면 군비예산을 돌려 농업발전에 사용할 것입니다. 작년에 세상 나라들이 사용한 군사비용이 10조달러 이상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금이 농사발전에 사용되었다면 한사람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미가 4:3-4).
제게는 이것이 암흑의 세계로 보이지 않고 내가 오랫 동안 날마다 행한 기도 “나라가 임하옵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신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옵니다.”라고 소원했던 아름다운 이상적인 새로운 세상으로 보입니다. 기다리기가 힘이 듭니다. “주예수여 오시옵소서”(계시록 22:20) 라고 기도합니다.
다가 올 일들
우리의 세상은 죽음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극치에 치솟았다가 이제는 끝장으로 급히 하강하고 있습니다. 도덕은 부패하여 썩었고 우리 사회의 기둥은 섞여서 모두 쓸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서 탈출할 유일한 소망은 예수께서 그의 추종자들을 죽음으로 미치게 달리는 곳에서 빼내어 가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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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성행위: 로마서 1:17-32, 벧후 2:10, 14: 3:3, 유다 18
참람된 말: 딤후 3:2, 딤후 2:3; 3:2, 벧후 2:3; 3:3, 유다 18
크리스천의 믿음에서 떠남: 살후 2:3, 딤전 4:1, 3-4, 딤후 3:5; 4:3-4, 벧후 3:3-4
양심에 화인 맞음: 딤전 4:2
악령의 활동: 창 6:1-4, 딤전 4:1-3
가짜 화평: 살전 5:1-3, 마태 24:5-11, 벧후 2:1-2
지식과 교통이 빨라짐: 다니엘 12:4
불 법: 시편 78:8, 잠언 30:14-19, 딤후 3:2-3
쾌락을 사랑함: 딤후 3:2, 4
물질주의: 딤후 3:1-2
이스라엘에서의 정치와 종교: 마태 24:32-34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림: 시편 2:1-3, 딤후 4:3-4; 2, 딤후 3:3-4, 16
포 학: 창세기 6:11, 13, 계시록 9:21
전쟁과 전쟁소문: 요엘 3:9-10, 마태 2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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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막 휴 거
무르익어가는 사건들
우리가 I 막에서는 마지막 때의 세계의 무대를 처음 보았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된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이스라엘 나라, 적그리스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I 막에서 재난으로 세상이 파멸하는 장면 이었습니다. 세상이 굶주리고 1장에서는 긴장이 고조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막이 올라가며 II 막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사건이 발생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왕이 그의 교회와 함께 어떤 날 돌아올 것입니다. 그가 그의 교회와 함께 오기 전에 그가 먼저 교회를 위해서 오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의 교회를 위해서 오시는 것을 "휴거"라 하고 교회와 함께 오시는 것을 "재림"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왔을 때 유대인들이 그 도시에서 너무나 많은 소동을 일으켜서 바울이 도저히 그 도시에 머물 수가 없어 그 도시에서 갑자기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영접했으며 바울은 그들에게 앞으로 이 땅위에 예수께서 세우실 영광스런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서 증거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믿는 자들 가운데는 죽은 자도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실 것인데 이미 죽은 성도들이 여기에 참여치 못한다고 생각하여 슬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바로잡고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잘 못된 것 중에 하나가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은 믿는 친구들에 대해서 혹시 저들이 예수님의 오셔서 왕국을 설립할 때에 참여치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 라는 잘못된 개념을 고쳐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기를 “불쌍한 내 친구, 그가 예수님이 오시기전에 죽었으니 그는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치 못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그 생각을 교정하였습니다.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 4:13-15)
1 장 공중으로 끌어 올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1-52)
교회인 우리는 변화를 받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립보 3:20-21).
이러한 변화를 묘사하면서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3)
예수님의 지상 재림 시에 우리 교회가 그와 함께 올 것입니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유다서 14)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휴거란 말의 뜻이 예수께서 교회를 이 세상에서 갑자기 빼내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이러한 일이 어떤 경고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휴거와 예수님의 지상 재림과는 완전히 다른 사건인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휴거 때는 예수께서 그의 성도들을 위해서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휴거란 말이 성경에 없다고 논쟁을 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휴거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휘의 이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헬라 말에는 “HARPAZO”라 되어 있고 그 말을 영어로 “CAUGHT UP”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뜻이 “강권으로 체어 간다.”라는 뜻입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인 불가타(Vulgate)의 번역에는 rapare 혹은 raptus라 되어있습니다. rapare란 말에서 영어에 Rapture(휴거)란 말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헬라말의 “harpazo”와도 같은 말입니다. 영어에서는 “caught up”으로 되었습니다. 같은 뜻의 말인데 다른 언어로 번역이 된 것입니다. Rapture란 말을 할 때는 라틴어로 말하는 것입니다.
순 서
교회의 휴거에 관해서 성경에서 배운 것은 예수 믿는 자들이 이미 죽었을 때 휴거할 때는 그들은 주님께서 함께 남은 우리를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땅위에 남아서 믿는 자 들은 결코 그들을 앞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실 때에”
이때는 주님께서 땅위에 오시지 않고 공중에 오셔서 살아남은 자들을 공중으로 끌어 올려 (휴거) 공중에서 주를 영접 하리니 그리하여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믿다가 죽은 자들과 함께 예수님 앞에서 서로 맞나게 되는 것입니다.
몇 성경 구절이 휴거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1-3에서 예수께서 제자들 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전 15:51-56)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휴거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마지막 나팔에 일어날 것이며 아주 빨리 일어날 것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팔과 천사의 일곱 나팔
지금 이 ”나팔”이란 말을 계시록에 나오는 7 나팔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계시록 11:15 절에 나오는 일곱 나팔은 곧 7년 대 환란이 따르고 데살로니가 전서 4:16절에 나오는 나팔이 불 때에 교회의 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말하는 일곱
나팔은 화가 있을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4째 나팔이 불매 천사가 말하기를 “화, 화, 화”로다, 라고 땅위에 거하는 거민들에게 말하였음은 아직도 세 나팔이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다섯 째 나팔이 불매 한 가지 재앙은 지나갔으나 아직도 두 재앙이 남아 있도다, 라고 선언 했습니다. 여섯째 나팔이 불매 “둘 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계11:14) 그래서 일곱째 나팔은 할렐루야의 나팔도, 하나님께 찬송하는 나팔도 아니고 화를 선언하는 나팔이었습니다.
변 화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배운 것은 휴거가 일어날 때에 우리는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순간적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될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 부모와 족보가 우리에게 땅에 속한 몸을 주었습니다. 어떨 때는 사람을 외모로 보아 그의 부모와 닮아서 자녀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유사한 몸의 특징을 발견치 못한다 할지라도 유전인자를 쫓아 추구해보면 그의 조상에게로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서 몸이 부서져서 썩어져가는 몸이 되었습니다. 몸이 원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휴거 때는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되며 이 죽게 될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에?
휴거에 대해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날과 시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휴거에 대해서 어떤 특수한 날이나 시간을 선언한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그 시간을 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지상에 계실 때의 예수님 보다 더 많이 안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휴거에 대해서 정확한 시간을 모른다 할지라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1-4)
다른 말로 한다면 휴거가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깜짝 놀라게 일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질문하기를 “교회의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무슨 예언이나 조건들이 남아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이제 성취되지 아니한 징조나 예언이 없습니다, 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필요한 예언은 이미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 뜻은 휴거가 곧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휴거가 예수님의 지상 재림 전에 일어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지상 재림 때에 대한 예언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모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휴거는 아주 가깝다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날이 우리들에게 도적같이 임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가 데살로니가 5:4절에서 읽은 말씀대로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예수님 재림 전에 있을 일에 대해서 경고를 하십니다. 휴거에 관해서는 지금 곧 어느 때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주님은 교회가 주님이 곧 오신다는 것을 기대하면서 살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살아야 할 4가지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그가 곳 오신다는 것은 우리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할 사명의 긴급성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의 재림이 오늘일 수도 있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한복음 4:35)
우리는 길 잃고 죽어가는 세상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둘째는 순결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3).
주님이 곧 오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순결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오늘 오실 것이라고 생각할 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말한다면 직장을 그만두지 말고 집을 팔지 말고, 돈을 꾸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누가복음 19:13)
셋째로는 그의 곧 오심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태 24:42-43)
그가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예기치 않았던 시간에 오시므로 예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 째 나타나시리니”(히브리 9:28). 아모스는 외치기를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아모스 4:12) 이 말씀들은 우리들에게 그의 오심을 주의해서 보고 예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릴 때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모든 허물을 제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넷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기대를 가지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지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오심에 대해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 바울은 말하기를 세상의 물질에 대해서는 가능한 가볍게 관계를 갖고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오실 때에 우리는 이 세상 재물에 너무 부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 세상 것과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2 장 예화들
주의 하라
교회의 휴거에 관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의하고 예비하라” 주님께서 주의하고 예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시면서 일련의 예화를 들어 말씀 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마태복음 24:37-38)
노아 때의 사람들은 갑자기 홍수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보통 때와 같이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예수께서 교회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세상의 상태가 그와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매일 정상적인 일이 계속되고 있을 때에 휴거가 갑자기 그들에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 24:42-44)
그리고 주님은 악한 종과 충성된 종에 대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태 24:45-46)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25:2-6절에서 예수께서 열 처녀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다섯은 지혜롭고 다섯은 미련하였습니다. 그들이 오실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랑이 온다는 소리가 났을 때는 그들은 졸고 있었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라고 외칠 때에 그들이 깨어 등잔을 키려고 보니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은 등잔에 기름이 없었습니다. 지혜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빌려달라,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아니 우리가 기름을 당신에게 주고 나면 우리 쓸 것도 모자라니 차라리 나가서 기름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나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준비된 자는 혼인 잔치에 신랑과 함께 들어갔고 문은 굳게 닫쳤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다시피 예수께서 묘사한 경우마다 주의하고 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휴거는 어느 때든지 일어날 수 있고 경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주의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돌아와서 들어오려 하였으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 25:11-13 )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기대하고 주의하고 그가 오실 때에 준비하고 있기를 원하십니다.
3 장 교회를 계시하다
계시록은 사도요한에게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년대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헬라말의 “계시”란 말은 apocalypse 입니다. 그 뜻이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미래를 요한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3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계시록 1:19절에 그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 본 것 과 이제 있는 일 과 장차 될 일 을 기록하라“
1장에서 요한은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의 환상을 기록했는데 그가 교회가운데 서 계시고 그의 오른손에 목사들을 쥐고 계셨습니다. 2장과 3장은 이제 있는 일은 교회의 일이며 교회역사의 일입니다. 2장과 3장에서 예수께서 일곱 교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역사를 연대적으로 일곱 교회에 대해서 일어날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각 교회를 자세히 쳐다보면 거기에 공통되는 줄이 연결되어 있는데 어떤 교회는 칭찬을 받고 어떤 교회는 책망을 받지만 각 교회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라고 격려를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을 듣고 이기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사도시대 교회
예수께서 각 교회마다 메시지를 보내실 때 먼저 그들에게 칭찬할 것이 있으면 그 행한 일에 대해서 먼저 칭찬하십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주님은 먼저 그들의 행한 일과 수고와 인내와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여 내는 것들을 칭찬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계시록 2:1-3)
이 교회는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교회였습니다.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진실로 구원을 얻었으면 구원 얻은 증거가 그의 일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고 선언 하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그들이 악과 타협함을 거절한 것을 칭찬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약점이 악한 일을 용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무리들은 교회가 경건치 못하고 성경적이 아닌 생활태도에 대해서 침묵하기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된 생활을 교회에서 용납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슬프게도 많은 교회들은 그것을 용납하고 있습니다만 에베소 교회는 악을 향하여 단호히 책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타협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이 교회 안에는 좋은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밖에서 볼 때에 잘 조직되어 있고 교회로서 기능을 잘 발휘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 교회를 보면 “야 참 좋은 교회구나 그들의 행위를 보라, 수고를 보라, 사회사업도 많이 하고 그 동네에 영향을 많이 주고 있지 않는가? 라고 하나 주님은 그 교회에 대해서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시록 2:4)
크리스천의 가장 큰 특징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 너희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우리들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모든 옳은 행위를 가졌으나 옳지 못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슨 봉사를 하든지 무슨 행위를 하든지 간에 우리의 동기가 사랑이여야 합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에 결핍된 점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치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분명히 해야 할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기억하고 회개하고 돌아서라,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계시록 2:5상)
“먼저 일을 하라” 어떤 사람들은 에베소 교회와 같이 첫사랑을 떠난 자들이 있습니다. TV보는 것 그만두고 당신이 처음 예수 믿을 때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데 시간을 더 소비하는 그런 첫사랑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다시 불붙게 될 것이며 첫사랑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일을 계속하면 그 결과는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시록 2:5하)
예수님께서는 율법적 관계를 맺는 것을 전혀 원치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의무감에 매여 할수 없이 “내가 주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라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사랑 없는 교회에 머물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은 경고하시기를 주님은 행위나, 수고나, 인내나, 영분별이 사랑의 동기가 되어 하지 않는다면 흥미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다시금 칭찬하셨습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시록 2:6)
니골라 라는 말이 두 헬라 말로 되어 있습니다. 니콜(Nikol)은 제사장, 평신도(Laity or Laocean), 이 말이 합쳐저서 평신도 위에 제사장을 둔다, 입니다. 제사장직의 설립을 뜻합니다. 우리들에게 말하는 것은 제사장 직분이 이미 설립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차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좋은 것이나 우리가 서로 중보자의 역할을 한다고 하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이며 심지어 예수님의 자리에 들어가는 잘못된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당신 사이에 문으로서 역활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에베소교회는 이러한 것을 싫어하여 주님께로 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는 특별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시록 2:7)
역사적인 견지에서 보면 에베소 교회는 원래 사도교회 입니다. 초대교회인 것입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쓸 때에 교회가 약 50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문제가 발생했고 교회역사를 볼 때에 점진적으로 문제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교회를 제외합니다. 이 교회는 태어난지 30년 안에 세계에 복음을 전파 하였고 서로 사랑하고 우애를 잘 나타낸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원래 원하시는 목적을 이룬 교회가 역사를 통해서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교회 역사는 진실로 실패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도 아니고 원하시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후 50년 만에 교회를 책망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일곱 교회 가운데 다섯 교회를 하나하나 이름을 들어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은 회개를 촉구 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참된 모델 교회를 보기 원한다면 교회의 시작인 사도행전 교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서머나: 핍박당한 교회
서머나 교회는 교회 역사적으로 주후 100년에서 315년 경의 교회를 말합니다. 이때에 교회가 로마 정부로 부터 극심한 핍박을 당했습니다. 요한 폭스의 순교자란 책의 기록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성도들이 약 5백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계시록 2:8)
서머나는 현재 이즈머 라는 터키의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아름다운 항구 도시에 사는 성도들이 극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그들이 당한 핍박을 당하신 뜻으로 “처음과 나중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죽임을 당했으나 다시 살아나신 것을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계록 2:9)
초대교회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노예였습니다. 만일 부한 자가 예수를 믿는다면 정부는 그의 재산과 부를 모두 몰수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추구하는 영적인 면에서는 아주 부했습니다. 당신이 은행 저금통장을 가지고 얼마나 부하냐를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참 부의 측량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미리 보낸 영원한 부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부한 자들이 하늘에 가면 아주 가난한자가 될 것이요 이 땅에서 가난했던 자들이 하늘나라에서는 부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태 6:19-20)
참 보화는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계시록 2:9)
초대교회의 대부분의 핍박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일어났으며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끊임없이 유대인들에게 고통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온갖 문제를 일으켜 괴롭혔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며 그를 공격했습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시고 있는 점은 저희들이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들은 전혀 유대인이 아니고 사탄의 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요한 복음 8:39)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요한복음 8:44)
그때에 그들이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격려하기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시록 2:10-11)
10일 동안의 환란이란 열 로마 황제들이 교회에 대항해서 선동하고 큰 핍박을 가하겠다는 예언으로 간주 됩니다. 바울은 네로 황제가 통치하는 기간인 주후 64-68에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 당했습니다. 도메시안 황제 때 요한을 밧모섬으로 주후 95-96년에 귀양을 보냈습니다. 트라잔황제는 이그나시우스를 화형에 처했습니다(주후 104-117). 폴리갑은 말크스 아레리우스 통치 때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폭군들이 계속 나타나서 성도들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세베루스(주후 200-211), 멕시미누스(주후 235-237), 데시우스(주후 250-253), 발레리안(주후 257-260), 아오렐리안(주후 270-275), 이들 중에 가장 악독한 황제가 데오클레시안 (주후 303-313)이었습니다. “두려워 말라”라고 서머나 교회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 10:28)
버가모: 타협하는 교회
버가모 교회는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때의 교회입니다. 이때가 주후 315-505 기간인데 교회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기간 중에 하나입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었을 때 실제로 헌법에 의해 제정된 기독교가 되고 국가와 교회가 서로 결혼하여 가장 큰 악을 생성하였습니다.
버가모 교회에게 예수께서 서두로 하신 말씀은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계시록 2:12), 이러한 묘사는 계시록 1장에서 묘사한 것과 유사합니다.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시록 1:1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느니라(히브리 4:12) 예수께서 이 편지에서 자신을 두 날선 검을 가진 자로 묘사한 것을 보면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시록 2:13)
버가모는 이방종교의 신전으로 가득찬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대부분의 이방 종교는 사탄을 경배했습니다. 버가모가 사탄을 경배하는 가운데서도 예수께서 믿음을 지킨 성도들을 칭찬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들 주위에 악이 관영하고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라도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시록 2:14)
“발람의 교훈이란” 민수기 22장에서 24 장에 그 사건이 잘 기록 되어있습니다. 모압왕인 발락이 발람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금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발락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저주를 할 수 없었을 때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길 수 있도록 암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 그들을 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발락이 자기 나라의 여인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성적 범죄와 우상 숭배를 하도록 교사 하였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우상 숭배였습니다. 넓게 본다면 하나님을 잘못된 방법으로 섬겼습니다. 모압 족속들은 아프로다이트 여신을 섬겼는데 제사형태가 음란한 성적인 의식을 통해서 임신하는 생산여신을 섬겼습니다. 경배 의식이 음란하게 성적인 관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행위를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기꺼이 동참하였습니다. 또 옳지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것은 제사장직의 발전과 어떤 사람을 만들어 숭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지적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계시록 2:15)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을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당을 용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시록 2:16) 그리고 예수님은 각 교회에게 성령의 말씀을 귀담아 듣기를 권고 하셨고 이기는 자에게는 상급을 약속 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 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특별한 이름을 주신다고 하셨고 주님 외에는 알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이름은 아마 미래와 관련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예비하신 것으로 생각 됩니다. 다음 네 교회는 역사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와 사데 교회에 대해서 읽어보면 전통적인 교파의 배경을 가진 독자들은 기분이 안 좋은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특정한 교회를 지적하지는 않지만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잘못된 점과 약점을 노출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것은 역사적으로 교회에 존재해 왔던 문제들입니다.
두아디라: 이방 우상 종교
두아디라 교회는 주후 500년에서 현재까지의 교회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음 네 교회를 묘사할 때 모두 이러한 문제가 현재까지 존재 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께시록2:18). 1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예수께서 불꽃같은 눈과 불에 달련한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묘사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주석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원망할 때에 불 뱀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그 뱀이 사람들을 물어 죽게 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명하여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장대를 바라볼 때에 뱀에 물려 죽게 된 자들이 치유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장대에 매달린 놋 뱀은 그들의 죄가 심판받게 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뱀을 바라보는 자들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한복음 3:14-15). 우리의 죄는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은 이 이방종교 제도에 대한 심판이 올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계2:19)
내가 이것을 읽을 때에 테레사 수녀가 생각납니다. 인도의 가난한 지역에서 헌신한 사실을 기억합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였습니까? 예수께서 모든 것을 희생한 신실한 종들을 보십니다. 가톨릭교회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르쳐왔습니다. 좋은 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2:20)
이세벨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합 왕의 아내였습니다. 이 여인이 북쪽 이스라엘 나라에 바알 우상신을 들여와서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신을 섬기게 하여 영적인 간음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을 한 것과 같이 이스라엘도 하나님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했다는 것은 오직 그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그만 경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면 영적인 간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 20:3-5)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우상을 들여왔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우상을 집에 두고 인도를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우상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교파에서 그런 것들을 봅니다. 예수의 상, 마리아의 상,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인트의 상 등은 유사한 경우인 것입니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 도다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 인 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계시록 2:21-23)
만일 회개치 아니하고 그 행위에서 돌아서지 아니하면 이 교회를 대 환란에 던질 것이라는 말씀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다른 말로 바꾼다면 만일 회개 한다면 대 환란을 면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계시록 2:24)
실제로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시기에 교황 자리가 경매에 붙여졌던 때였습니다. 이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며 교황의 자리가 불경하게 땅에 떨어졌던 것이 여러 번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사에서 이 시기에 많은 훌륭한, 경건한 성도들이 주님을 완전히 사랑했던 자들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주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이기는 자들로 말씀 하셨습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시록 2:25-29)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신 그분이 약속하시기를 우리가 왕국의 제사장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천년동안 통치 할 것이라고 하셨고 이 땅위에서 의로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사데 – 죽은 교회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시록 3:1)
소개의 서론도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사데 교회는 1500년대에서 현재까지의 신교개혁시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혁은 하나님의 성령의 강한 운동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루터, 칼빈, 녹스, 즈윙걸리 그리고 하스 같은 위대한 사람들이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한갓 기관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한 일에 대해서,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계시록 3:2)
신교 개혁은 완전한 개혁이 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가톨릭교회로부터 바벨론의 우상종교의 전통을 신교에 와서도 계속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즉시 교회가 죽고 말았습니다. 큰 교파들의 많은 수가 한때는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 살았으나 오늘날은 죽은 정통성을 지니고 죽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어 유아세례는 성경에서 가르치지도 않는 것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가톨릭이 바벨론 우상종교에서 빌려온 의식인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방 우상종교의 공휴일을 가져와서 크리스마스라 이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의 생일이지만 이날은 로마 우상종교의 날인 세터날리아에 기초하여 세운 절기인 것입니다. 세터날리아라는 날은 세미라미스라는 어머니에게 태어난 타무즈의 생일을 기념하는 고대적 바벨론의 우상종교의 축하일인 것입니다. 타무즈를 신으로 경배 하였는데 그러므로 어머니와 아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난 날짜를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10월 이후에는 목자가 양떼를 밖에서 지키는 일이 거의 없음으로 예수님의 생일이 12월에 있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가톨릭교회가 세미라미스의 축하일을 그리스도의 생일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부활절도 다른 예 중에 하나인데 Easter란 말이 이방 우상종교의 여신의 이름인 아쉬탈트 (Ashtarte)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춘지(Spring Solstice)때에 이방 우상종교의 새 생명에 대한 축하일로서 달걀에 물감을 들이며 생명의 영원성을 표현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이 의식을 답습해서 심지어는 이름까지도 이방 여신의 아쉬탈트라는 이름에서 기인한 이스트(Easter)로 명명한 것입니다. 바벨론의 많은 영향들을 종교개혁 때에 신교에 들여왔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 라” (계시록 3:3)
종교개혁으로 생긴 신교가 그들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다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루터가 담대히 나가 진술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란 말과 또 그가 말한 “성령과 은사는 우리의 것이다”그리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들에 대해서 말한 것들을 기억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존 녹스나 존 웨슬리 같은 인물들이 선언한 말들을 다시 기억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이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그들이 시작한 교회에서 영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시록 3:4)
종교개혁에서 나온 모든 신교가 죽은 것은 아닙니다. 수년에 걸쳐 루터 교회와 장로교회 가운데 훌륭한 목사가 더러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행히도 교회 전체를 볼 때에 교회가 차고 형식적이요, 의식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기 직전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기는 자에게 약속하시기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3:5-6)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거나 한번 구원을 얻었다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해도 결코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영원한 구원의 보장을 준다는 경직한 사상을 가진 자들은 이 구절에서 아주 큰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쓴 성경주석을 보면 예수께서 말씀 하신 구절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것을 보면 아주 흥미 있습니다. 만일 생명록에서 한번 기록된 사람의 이름이 지워질 가능성이 없다면 왜 예수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왜 주님께서 그러한 암시를 하셨을까요? 이기는 자들에게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그들의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 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사랑하는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터키족들이 교회를 파괴하고 거기에 남은 신자들을 살해하기까지 주후 1300년까지 지속하였습니다. 빌라델비아의 고대적 남은 유적은 비잔틴 채플의 남은 유적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계시록 3:7)
주님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 자로 소개하셨습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사람이 없는 그이가 말씀하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시록 3:8)
하나님께서 자주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시려고 열린 문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닫아 놓으신 문을 강제로 문을 부수며 열어 보려고 애쓰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된다고 믿습니다. 나는 열린 문이 우리 앞에 있는 것과 같이 닫힌 문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만일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면 다른 열린 문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닫힌 문을 열어 보려고 부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최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앞에 있는 문을 여시기도 하시고 닫기도 하시도록 허용 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 질것입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계3:8).
빌라델비아 교회는 마지막 때의 교회입니다. 이것은 교파가 아닙니다. 이 교회는 큰 능력이 없고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킨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구절절 한절, 한절 그리고 한 장씩 가르치는 목사가 있는 교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작은 교회는 결코 큰 능력을 가진 교회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을 계속할 것이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3:9)
미래의 어느 날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예수가 약속의 메시아이었였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 그 나라의 역사 가운데서 가 장 큰 비극적인 실수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대 환란기간에 일어날 것인데 그들이 메시아라고 찬양하며 높였던 자가 적그리스도로 변신 할 때입니다. 그가 건축한 성전에 서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언할 때입니다. 그때에 그들이 속은 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돌아 올 것이라 했습니다. 그들이 참된 교회를 알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로 와서 너희 발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시록 3:10)
시험의 때란 물론 대 환란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은 이 무서운 기간 동안 피바다를 경험할 것입니다. 세상이 보지 못한 전무후무한 일이 대 환란에 일어날 것입니다.
요한은 대 환란 동안에 있을 자세한 내용들을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2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눈으로 현대의 모든 발전한 무기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사람이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비행기나 탱크나 인류를 멸망케 하는 현대의 무기를 전혀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것에 대한 지식이 없이 그 시대에 그가 본 현대의 무기들을 최선을 다해 묘사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가 묘사한 모양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대 무기를 묘사한 것같이 느껴집니다. 심지어 원자 핵폭탄까지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와 심판이 이 땅위에 쏟아질 때에 인류의 대 살상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에 우리가 역사책에서 읽는 어떤 사건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의 대학살 사건이나 전쟁들이나, 노아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유황불에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빌리델비아 교회는 하나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그들에게 축복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3:10)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10:11-13)
그는 속히 오실 것입니다. 그의 재림은 빨리 임할 것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이 곧 오실 것을 기억하면서 저희 가가지고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고 권고 하셨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 후서 4:7-8)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굳게 지켜 아무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라오디게아: 미지근한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예수께서 자신을 소개할 때에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참된 증인이란 뜻입니다. 그 말의 뜻은 당신이 만일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 알려고 하면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요한 10:30) 그의 생애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우리들에게 잘 나타내어 주었습니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3:14-16)
오늘날 라오디게아는 폐허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가 존재할 때에는 수도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두 수도관을 먼 지방에서 끌어 들여온 것입니다. 하나는 눈에 덮인 산에서 흘러나는 찬물을 끌어 왔고 다른 하나는 땅속에서 솟아나는 온천수를 끌어 왔던 것입니다. 문제는 한 때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거운 온천수가 5마일이라는 긴 거리를 통과하는 동안 식어서 도시에 이를 때는 미지근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유로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뜨거운 물과 같이 뜨거웠고 어떤 사람들은 어름 물과 같이 차디차고 몇 사람들은 미지근한 상태였습니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가 그러한 교회였습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미지근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 뜨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타락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교회는 가지만 그들의 태도가 ”하든지 말든 지”라는 비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하든지 말든지”의 관계를 가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은 전부를 바쳐서 드리는 관계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3:16-17)
당신은 이 교회가 어떤 면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보는 면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보시는 다른 면이 있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자신을 부하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주 부한 한 교단을 생각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마귀적 이단 교리도 스며들고 있음도 안다고 하셨고 이 교회는 너무나 커졌고 경제적으로 너무나 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 타락한 교회에 대해서 주님은 말씀하기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8)
흥미롭게도 라오디게아 시는 안약을 만드는 제약회사의 중심지였습니다. 히에라폴 리스 근처에 흰 진흙이 눈병을 고치는 약효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 진흙에다 감송향을 섞어 안약을 만들어 전 로마영지에 기적을 일으키는 안약으로 판매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같은 처방을 시험한 결과 아무런 약효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메시지에서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말씀으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이 교회는 눈이 멀었습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상태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장님입니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격입니다.
오늘날 많은 타락한 교회가 동성연애자들인 남녀를 목사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무오성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저희들이 어떻게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가? 의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그들에게 많은 기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직도 존재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영적인 눈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경고를 하십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19)
주님께서는 아직도 그 교회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들을 채찍하여 회개로 이끌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12:5-6)
이 마지막구절에서 교회의 역사가 끝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가 어디서 주님을 찾아 볼 수 있을까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구원이란 것은 우리도 아는 바와 같이 개인적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각자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당신은 종교제도에 의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부모가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유산 받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부르실 때에 당신이 그 말씀에 반응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마음 문을 열 때에 주님께서 무엇을 하시나요? 그가 들어와서 당신과 함께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가 들어와서 당신과 밀접한 사귐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요한 시대의 풍습이 다른 사람과 먹는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에 당신은 그 사람과 같은 영양을 나누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한 덩이의 떡을 조금씩 떼어 같은 한 사발에 담긴 소스에 찍어 다같이 먹습니다. 그때는 다른 각 개인의 사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을 다 먹고 나면 모두가 같은 균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함께 식사한다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이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던 것입니다.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들과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가까이 친밀하게 사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둘이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실 때에 거기에 반응을 할 때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홀드만 한트라는 미술가가 “세상의 빛”이라는 그림을 그릴 때에 예수께서 손에 등잔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의 친구가 그 그림을 보고 하는 말이 “자네 빠진 게 있네! 문에 손잡이가 없군” 이라고 말했을 때에 홀드만의 대답이 “그것이 실수로 빠진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했다네! 왜냐하면 손잡이는 집안에 있기 때문이라네”라고 대답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당신의 마음문을 두드리실 때에 손잡이가 집안에 있기 때문에 만일 당신이 문을 열면 그가 들어오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곱 번째 교회에게 약속하시기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3:21-22)
오늘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그 보좌에 주님과 함께 앉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까? 얼마나 영광스런 약속입니까? 이 일후에 계시록 4:1절에서 “이 일후에”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데 헬라 말에 이 일후에라는 말이 Metatauta 입니다. 계시록 1:19절에서도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이 일후에”metatauta” 일어날 일들을 )” (계 1:19)
4장에서도 이 일후에 metatauta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계시록의 셋째 부분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이 일후에라는 말은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교회에 관련되는 일이 끝난 후에란 뜻입니다.
이 세상에 교회에 관한 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세상에게 증거하는 사명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하늘로 휴거했다는 뜻인가? 3 막에서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 세상이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과 재난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열린 문
이 일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계4:1). 요한은 자기 시대로 부터 휴거까지 교회에 관한 것과 또한 대 환란 동안에 일어날 일도 엿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동시에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기 전에 요한은 먼저 하늘의 광경을 잠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보좌 앞에는 유리 바다가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그룹 천사들이 밤낮으로 선언하기를,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 4:8)
요한이 보니 24 장로들이 작은 보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룹 천사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원하심을 선언할 때에 24 장로들이 금 면류관을 유리바다 위로 던지면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 만물이 주의 기쁨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지음을 받았사오니 영광 받으소서 라고 찬송을 올렸습니다. 흠정역에 보면,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 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주의 기쁨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4:11) [흠정역]
나는 여기서 잠간 이 말씀을 음미를 해보기를 원합니다. 장로들이 선언하기를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의 선하신 기쁨을 위하여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만물은 당신도 포함됩니다. 당신의 존재의 의미가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이 바로 당신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그 외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 땅에 두신 목적에서 미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말하기를 “그것은 받아드릴 수 없군요” 라고 말한다면 안됐지만 그것에 대해서 아무 다른 방책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기어코 자기 마음대로 “나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 것에 대해서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러면 당신의 쾌락을 위해서 한번 살아 보십시오. 당신이 원한다면 아마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보장하기를 당신이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 하는 말이 솔로몬이 자기 인생의 마지막 때에 말한 것과 같이 “헛되도다 헛되도다 만사가 헛되도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존재의 목적을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5장은 요한이 하나님의 손에 일곱 인봉이 있는 두루마리를 보았습니다. 힘센 천사가 큰 소리로 “누가 이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냐?” 라고 선언 할 때에 요한이 보니 하늘이나 땅이나 바다 아래 두루마리를 취하여 인봉을 뗄 자가 없었습니다.
나의 의견에는 이 두루마리는 이 지구의 문서라고 나는 생각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에 이것을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 했을 때 그 지구의 문서를 차압당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으므로 지구의 문서가 사탄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4장 16 장에 보면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에 하나가 지구를 다시 찾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구속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누가 세상을 구속할 것인가! 누가 이 두루마리를 취하여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냐? 라고 했을 때 아무도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없었습니다. 요한이 아무도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없는 것을 보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가 그 인봉을 떼지 못하면 앞으로 지구가 영원히 사탄의 조절 안에 들어갈 것을 깨달았는지 그는 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 5:5)
요한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의 경배하는 가운데 어린양이 섰는데 성경은 그 어린양을 기술하기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계5:6-7)
어린양이 아버지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할 때에 요한은 말하기를 24 장로들이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다고 했습니다. 또 각자가 거문고와 향이 담긴 대접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 고 했습니다(계5:8). 얼마나 자주 당신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워지이다” 라고 기도했습니까? 교회는 이러한 기도를 거의 2000년 동안 해왔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왕국이 될 것이며 메시아가 영원토록 통치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로들이 와서 성도의 기도가 담긴 작은 대접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 앞에 받쳐드렸습니다. 당신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향기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 때에 놀라지 않겠습니까?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당신은 기도할 마음이 더욱 생길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때 성도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 (계 5:9-10)
그 노래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두루마리를 받기에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죽임을 당했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 가운데서 우리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서 드렸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주장하기를 그 노래 내용이 “당신이 죽임을 당했고 그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알렉산드리아 학교의 책에서 나온 몇 안 되는 옛 문서에서 만이 “우리” 대신에 “그들” 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1000편이 넘는 대부분의 옛 문서에서나 혹은 Textus Receptus- 신 흠정역 번역에서도 “그들” 대신에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로" 라고 올바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교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노래도 아닌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모세의 노래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신데 대한 노래인 것입니다. 이 노래는 모든 나라가 속해있는 교회의 노래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가 죽임을 당했고 그의 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두루마리를 취하여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함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 노래는 교회가 불렀고 또한 하늘에서 찬양했기 때문에 교회가 분명히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를 취하여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심을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 심판 곧 대 환란이 예수께서 두루마리의 인을 떼기 시작할 때까지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이 땅위에 대 환란이 일어나는 기간 동안은 교회가 하늘에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노래속에 가사가 전적으로 교회에 관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합창을 할 때 수억의 천사들도 우리와 함께 소리를 높여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천사들이 구속에 대해서 노래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어린양이 능력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노래할 것입니다
거룩, 거룩 천사들의 노래
하늘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니 우리가 들어보지 못한 노래
천사들이 보좌에 앉아있는 어린양을 찬양하도다
아름다운 거문고소리와 많은 음성으로 노래하도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를 섬길 때에
천사들과 같이 찬양하고 봉사하기 원하네
거룩 거룩 천사들이 노래하며 천국의 궁정에서
그들과 함께 원을 만들어
내가 구속의 노래를 부를 때는 그들의 날개를 접을 것일세
천사들은 결코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기쁨은 느끼지 못하리
그러나 다른 찬송이 맑고 큰 음성으로 들려오네
“우리를 사서 구속하여 하나님께로 데리고 오네”라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환란을 통해서 이 밝고 아름다운 땅에 왔도다
끊임없이 흐르는 샘물과 보혈에 우리의 옷을 희게 씼었네
천사들은 서서 듣고 있음은 그들이 같이 부를 수 없는 노래로다
많은 물소리와도 같은 피로 씻음 받는 행복한 무리들의 소리
많은 시련과 전쟁을 통해서 거둔 승리를 노래하네
그들은 “잘하였도다”칭찬하시는 크신 구속자를 찬양 하도다
내가 비록 천사가 아닐지라도 나는 아노라
천사들과 나눌 수 없는 축복된 합창에 합류하리!
나의 구세주를 찬양하노라!
주는 어두운 갈보리 산상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에서 자유함을 주셨다네.
우리의 소리가 수억의 천사들의 소리와 함께 찬양하니 얼마나 놀라운 합창이 될 것인가! 그의 제자들에게 땅위에 다가 올 대 환란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6)
당신도 영접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기도하시오. 예수를 아는 자마다 휴거에 참여하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다만 준비된 자만이 참석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복해서 경고하시기를 주의하고 예비하라고 하셨습니다.
4 장 세 무리
휴거 때에 대해서 왜 사람들이 그렇게도 혼돈하고 있을까요? 왜 세 무리가 생겨야 합니까? 휴거가 대 환란 전, 중, 후로 나뉘어야 합니까?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나라의 완전한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에 대해서 오해하여 이스라엘을 교회로 간주하는 실수로 말미암아 혼돈을 일어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대 환란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것을 야곱의 환란으로도 말합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 (예레미야 30:7)
그러나 그 나라가 대 환란에서 구원받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때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태 23:39)
대 환란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이 말하기를,
“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가 복이 있도다”
예수께서 교회와 함께 다시 오실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말하기를,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슥 13:6)
그리하여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써 처음으로 알고 영접하는 영광스런 때가 예수님이 교회와 함께 이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서 오시는 재림 때입니다.(휴거 후에)
영생을 영원히 잃게 됩니까?
휴거를 놓치면 영생을 영원히 잃게 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계시록 7장에 보면 많은 무리가 보좌와 어린양 앞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가지고,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7:10-12)
하나님의 것을 선언할 때마다 그들의 찬양이 길어지는 것에 유의 하십시오. 첫 번, 두번은 짧았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주의 기쁨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1)
그들이 찬양할 때마다 구절이 더 첨가됩니다. 그래서 이 흰옷을 입은 자가 누구며 어디서 온자들입니까? 수가 많으며 분명히 교회에서 온자들은 아닙니다. 만일 교회라면 요한이 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이 무리가 누구인가를 한 장로가 요한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4:14-17)
이 사람들은 대 환란에서 고통을 당한 자들인 것입니다. 교회의 휴거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아주 마지막에 있을 경종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는 성령을 쫓아 살지 않고 육신을 쫓아 사는 자들이라 생각합니다. 이들은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들림 받지 못하고 땅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적어도 대 환란의 한 고통을 당하기 위해서 이 땅에 남을 것입니다.
교회가 들림 받은 후에 평소 때 그리스도께 완전히 맡긴 생활을 하지 않는 자들이며 영적으로 미지근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주님과의 아주 진지하고도 심각한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사고, 팔고 하기위해서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으라고 명령할 때에 그 명을 거역하고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지 않으므로 목 베임을 당하는 순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불속에서 끄집어 낸 것처럼 주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요한이 말하기를,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6-9-11)
이 무리에게 대 환란에서 순교자의 수가 온전히 차기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 교회는 아니지만 하늘나라에 들어와서 자기처럼 죽임을 당한 동무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는 무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성전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대 환란에서 경험한 고통에서 자유함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조심 하라
주님께서 언제 자기의 교회를 데리려 올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에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35)
먹고 마시고 생활의 염려로 뜻밖에 그날이 덫에 걸리듯 임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는 그의 교회를 위해서 올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에 바쁘게 일하는 교회를 데리려 올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주의하는 자들을 위해서 오실 것이며 많은 자들이 들림 받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쉽게 가는 길이 있고 어렵게 가는 길이 있습니다. 쉽게 가는 길은 그가 오실 때에 주님을 섬기면서 예비하다가 가는 길이요 어렵게 가는 길은 지금 조심 없이 사는 것입니다. 어렵게 가는 길은 하나님을 섬길 때에 자기 편리한데로 하나님을 봉사하고 완전히 주님께 맡기며 살지 않는 태도인 것입니다. 편리할 때만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과 쉽게 자기 형편대로 하든지 말든지의 태도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안일한 지역이 살기에 나쁜 지역입니다. 자신을 만족케 하는 삶은 자기만족의 위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휴거는 아주 가깝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오심을 맞을 준비하며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서 오실 때에 당신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교회는 대 환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로마서 8:1
데살로니가 전서 1:9-10
베드로후서 2:4, 10
계시록 3:10-11
하나님의 약속
요한복음 14:1-3
휴 거
데살로니가 전서 4:13-18
휴거 시 변화
고린도전서 15:51
휴거를 위한 준비
마태복음 24:36-44
마태복음 25:1-44
마가복음 13:32-37
누가복음 17:26,27, 34-37
누가복음 21:34-36
데살로니가 전서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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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막 대 환란
슬 픔
II 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시기 위해서 교회를 데려가셨습니다. 그래서 II 막은 예상대로 기대했던 장면이었습니다. III 막은 슬픔과 무서움과 비극의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읽기에는 너무나 힘든 장면들입니다. 예언속에 담긴 내용들은 마지막 때의 숨겨진 장면들이 더욱 많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상상해보라
50파운드나 되는 얼음덩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해보시라. 50파운드나 되는 우박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난을 상상조차도 못할 일인가? 당신이 어디에 숨어서 이 재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안전한 장소가 어디인가? 큰 덩이의 우박이 지붕위에 떨어질 때에 지붕은 마치 종이 짝처럼 찢어질 것입니다. 자동차는 납작하게 될 것이요, 이렇게 쏟아지는 우박에 무엇이 서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네바다에 있는 시에라 산이 해발 이하 5000피트까지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볼 수 있겠습니까? 그 결과로 나타난 깊은 계곡에 바닷물이 몰려들어 올 것입니다. 서쪽 해변 가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 수백만 명이나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이 죽기를 원해도 죽을 수 없음을 상상 해보았습니까? 예를들어 사람이 차 사고로 아니면 비행기 추락으로 몸이 산산이 부서져 있는데도 영혼이 떠나기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지가 잘라져도 몸에 계속 영혼이 붙어있어 죽기를 원하고 기다려도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상상 해보았습니까?
그러한 일들이 이 지구상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아마 곧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분노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거절하는 사람과 이 땅위에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대 환란이 삼년 반 동안 불안과 참혹함과 망상의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1 장: 두 가지 환란
대 환란의 때가 이 땅에 온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확실한 사실인 것입니다.
(다니엘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여기에 명시한 “책”이란 말은 생명록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약속입니까?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마태 24:21-22)
여기서 택한 자란 본문의 문맥을 보아(16절 20절)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다니엘 두 분 모두가 이 땅위에 다가올 대 환란의 날 환란의 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은 대 환란 동안에 지구상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상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 7인봉 재앙의 심판부터 시작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곱 나팔재앙과 일곱 대접 재앙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위에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 재앙에 대해서 완전한 지식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계시록 6장에서 19장까지를 읽어보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 환란에 대해서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종류의 환란이 있는데,
(1) 예수님과 다니엘과 계시록에서 요한이 자세하게 기술한 대 환란이 있고
(2) 예수께서 약속하신 교회에 올 것 이라는 환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33)
이 세상에서 교회는 환란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당하는 환란은 세상으로 부터 기인하고 사탄이 조절하는 세상의 조직에 의해서 오는 것이며 교회의 공격 배후에는 사탄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에베소 6:12)
악령의 세력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란의 근원이 사탄이 통치하고 있는 세상 조직에 의하여 대부분 일어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 지구상에 떨어지는 대 환란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을 거절하고 죄를 선택한 자들을 향하여 심판 때에 쏟아질 것입니다. 계시록 6:12절에서 여섯 째 인을 떼실 때에 땅위에 있는 자들이 그 진노를 피하려 했습니다.
그들이 바위야 산들아 나에게 떨어져서 어린양의 진노에서 숨겨달라고 외칠 것이라 했습니다. 그의 진노의 큰 날이 왔도다 그들이 말하기를 누가 그의 진노에 설수 있겠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진노가 임하여” (계시록 11:18) 계시록 14:10에는 “하나님의 진노”로 언급하였습니다.
하늘에서 인봉을 뗄 때에 천사들에게 나팔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나팔을 불 때에 동시에 심판이 땅위에 내려졌습니다. 생물(그룹천사)로 부터 받은 대접을 일곱 천사가 쏟을 때에 동시에 심판이 이 땅에 내려 졌습니다. 이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로 부터 오며 하늘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시편 69:20-28절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에서 제자들이 예수께서 가장 필요한 시간에 제자들이 배신하였고 예수님께서 목말라 하실 때에 신포도주를 주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에게 치심을 당한 자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분과 진노로써 쏟아 부어주시기를 구하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란 말이 자주 대 환란 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이사야 26:19-20 ; 이사야 34:1-8 ; 예레미야 10:10 ; 다니엘 8:19 ; 나훔 1:5-6 ; 스바냐 3:8)
(이사야 66:14)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로마서 2:6-8)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브리 10:27)
죄악된 세상에 내려질 대 환란은 하나님께로 부터 올 것입니다. 왜 대 환란이 올 것인가? 성경은 그 목적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1)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그 뜻은 휴거가 있기 전에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들을 뜻합니다(계3:10)
(2) 하나님께서 사악한 자들에게 진노를 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계15:7)
(3) 지구를 파괴한 자들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계11:18)
위의 세 가지 경우에 해당되는 모든 자들이 대 환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성에 심판이 내려 곧 멸망할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공평승을 도전했습니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찌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세기 18:24-25)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의인 50명이 있으면 그들로 인하여 이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한 내용이 의인을 악인과 함께 심판하심이 공평하시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성경 어느 곳에도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실 때에 의인을 악인과 함께 심판하신 것을 발견 할 수 없습니다.
천사들이 소돔에 왔을 때에 아브라함이 중보의 기도를 올렸던 의인 열사람을 찾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의인인 한사람 롯을 구 할 때까지 심판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9:22 절에 롯이 안전한 장소에 갈 때까지 심판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롯이 그 도시에서 벗어났던 같은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6절에 사도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받는 일에 관해서 기록 하였는데 그들을 표본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죄에 대해서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구하셨습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베드로후서 2:9)
데살로니가 전서 5: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진노하심에 이르게 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9)
교회가 대 환란에 들어갈 것이며 앞으로 오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을 증명 하고자 하는 자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그의 노선을 바꾸셨는가?
하나님께서 언제 악인과 의인을 함께 멸망하시기로 결정 하였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의 쏟아지는 진노를 경험하게 강요하신다면 하나님은 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언하시기를,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말라기 3:6)
추리적인 논법에 있어서 이론적으로 변론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 삼단 논법입니다. 삼단 논법에는 대전제와 소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전제가 소극적이고 다른 전제가 적극적일 때에 소극적인 것으로 결론이 따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적극적인 대 전제가 모든 새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소극적인 전제가 모든 개들은 날개가 없다. 이럴 때에 결론이 개는 새가 아니다, 라고 결론을 짓게 됩니다.
우리의 대전제는 소극적인 것입니다. 교회는 노하심에 이르지 않는다(헬라어:orge). 소전제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대 환란은 하나님의 진노의 때입니다.(orge).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6:16-17)
결론은 소극적인 것이며 평범한 것입니다. 교회는 대 환란을 경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다른 방법으로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논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개가 새 인 것을 증명 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교회가 대 환란에 들어가지 않는 다고 증명하려고 더 이상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II막). 그 사실을 강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2 장 칠십 이레
주전 약 583년경에 다니엘 선지자가 그는 바벨론의 포로 생활 70년이 거의 끝나고 있음을 깨닫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에 갑자기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나타났습니다. 이전에도 다니엘 9:24에서 언급했듯이,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다니엘 9:24)
천사가 계속하여 말하기를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은 자가 오기까지 이레와 62이레가 지날 것이요, 종합 69이레가 됩니다. 각 이레가 7년이란 기간을 나타내므로 69이레는 483년이 됩니다. 오실 왕자라는 로버트 앤드슨 경의 책에서 바벨론 달력에서 일년을 365 일로 정하고 계산해보니 483 년이 173,880 날수가 나왔습니다. 주전 445년 3월 14일에 페르샤의 아닥사스다 왕이 느혜미야에게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날부터 178,880일이 지난 후가 주후 32년 4월 6일이었습니다. 이날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승리의 입성한 날이었습니다. (앤더슨의 계산에 따르면)
예언의 첫 부분이 문자 그대로 날짜에 이르기까지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계속 말하기를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이것은 자기 스스로를 위함이 아니며” 문자 그대로 [자신을 위해서 어떤 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것이며” (다니엘 9:26). 성의 훼파는 주후 70년경에 로마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파괴한 사실을 말하며 그러나 그가 백성의 왕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파괴하라고 명한자는 네로 황제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성과 백성들의 성전이 천사가 선언한 대로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흩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비추어 예언이 놀랍게 성취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브리엘천사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70이레로 기한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69이레에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고 여기에서 70이레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9:27절에 천사는 다시금 소문자로 “그”라는 이름을 사용한 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69 “이레”는 예루살렘의 재건의 명령이 내린 날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예언한 것과 같이 왕국을 받지 못하고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졌고” 유대인들은 흩어졌습니다. 미래에 다니엘의 칠십 번째 마지막 이레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의 오심과 이 세상의 마지막 징조에 대해서 물었을 때에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언적인 “이레”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15-17)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그때 예수님께서 대 환란의 때를 예언하셨고 이때가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가증한 것이 멸망의 초래를 시작하는 때가 70이레의 중간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9장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다니엘 9:27)
예수께서 언급하신 이 마지막 7년의 기간이 그가 계셨던 시간에서는 아직 미래에 관한 사실이므로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아직 계약을 맺지 않았고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사실임을 결론짓습니다. 적그리스도가 7넌 동안 계약을 맺는다는 사실은 마지막 7년 기간의 시작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7년의 절반에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날마다 드리는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다니엘 12:11).
그때에 예수께서 교회와 함께 큰 영광의 구름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로새 3:4)
교회 시대가 다니엘의 예언에서 69이레와 70이레 사이에 존재해 왔음이 시간적으로 부합됩니다. 에베소서 3:5절에 이 비밀이 구약성경의 작가들에게는 숨겨져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만들기 위해서 은혜의 성령을 이방인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이방인의 수가 차면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있는 신부인 교회를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휴거인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함
계시록 13장에 보면 죄악의 사람이 와서 “성도들과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계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다니엘도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데 7:21 절에서 “작은 뿔” 혹은 "적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이 교회의 성도이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 장의 첫 부분에서 논한바와 같이 삼단논법이 추리적인 논리의 형태인 것입니다. 이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소극적인 전제와 적극적인 전제가 있을 때에 소극적인 전제가 결론에 이르는 것입니다. 대 전제는 음부의 권세이며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소전제는 성도들인데 적그리스도가 이긴다고 했습니다. 확실한 결론은 성도가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이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라야 하고 마태복음 25:31절에서 “택한 자”라고도 명시했습니다.
3 장 막는 자
데살로니가 후서 2장에서 바울은 교회에 침투한 잘못된 것들을 바르게 하기 위하여 편지를 기록하여 보내었습니다. 어떤 거짓 스승들이 주의 날이 이미 임했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날”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기 위하여 오시는 일이,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한 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믿는 자들에게 한 것은 그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말한 것입니다. 2장에서 바울이 선언하기를,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데살로니가 후서2:6-8)
적그리스도의 나타남을 “막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이라고 믿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이 땅위에 존재하는 동안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저지 될 것입니다. 교회가 이 땅위에서 떠나자마자 적그리스도의 나타남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자유로이 이 세상 정부를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은 이 세상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심으로 무소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떠난 이후에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에스겔 39장 29절에 러시아 군대가 멸망 한 뒤에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어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아마 이 사건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마지막 7년의 기간이 시작하는 시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체의 그림이 함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제거된 후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입니다. 계시록 6장에서 첫 번째의 사건이 일곱 인을 떼실 때에 일어날 것이며 흰말 탄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 세상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임이 분명합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제거되고 지금은 하늘에서 주님과 더불어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이 악의 사람을 막을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이 사람은 세상을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4 장 나팔들
교회가 대 환란을 통과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마지막 나팔과 계시록에서 나오는 7째 나팔이 무엇인지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나팔이 같은 나팔로 보기에는 아주 어려움이 있습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4:16절에 나오는 나팔은 “하나님의 나팔”로 불리고 교회가 휴거할 때에 부는 나팔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째 나팔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에 나오는 나팔은 “마지막 나팔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고전 15:52) 일어나는 사건에 사용된 나팔이며 계시록에 나오는 7째 나팔은 여러 날의 기간 동안에 일어날 사건들에 관한 나팔입니다.
(계시록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나팔과 데살로니가 4:16절에 나오는 나팔은 영광의 나팔입니다. 우리가 변화를 받아 그의 형상같이 되며 공중으로 끌어올려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째 나팔은 계속되는 화에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넷째나팔의 마지막에 천사가 말 한 세 화는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나팔의 마지막에 (계9:12) 천사가 선언하기를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여섯째와 일곱째 나팔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1:14절에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 그리고 즉시 15절에 가면 일곱째 나팔을 불게 되는데 이것은 실제로 셋째 화입니다.
휴거되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를 받는 일들은 화라는 말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입니다. 내가 휴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화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계시록 11장의 일곱째 나팔과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나팔을 같은 것으로 보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과와 시간적인 요소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5 장 첫째 부활
교회가 대 환란을 통과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사용하는 다른 큰 논제는 계시록 20:4-5절을 중심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계시록 20:4-5)
저희들이 제시하는 논쟁은 첫째부활이란 말은 그 이전에 부활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첫째란 첫째를 의미하며 그 이전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첫째부활 모두가 계시록 20장에서 일어난다고 한다면 사탄이 묶여 무저갱에서 천년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데 왜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자들의 첫 열매라고 말씀 하셨는지 설명해야 만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계시록 7:10-13절에 하늘에서 큰 무리가 외치기를,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찌로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계시록 7:10-13)
요한이 대답하기를 모르겠습니다, 라고 할 때에 장로 중 하나가 대답하기를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계7:14-15). 여기서 7장은 대 환난에서 나온 무리며 계시록 20장 전에 부활한 자들입니다.
계시록 15장에서 우리는 하늘에 있는 다른 무리를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이 기록하기를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 무리들은 짐승을 이기고 구속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마지막 대접재앙이 있기 전에 본 자들입니다.
하늘에 두 부활한 무리가 있습니다. 계시록 20장 전에 요한이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을 보았는데 이것이 “첫째부활” 로 언급되었습니다.
계시록 20:4절에서 요한은 두 다른 무리를 보았는데 첫째 20:4 상반절에서 요한은 보좌와 그 위에 앉은 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심판할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이 무리들은 교회임에 의심 할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기는 자에게 하신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하신 약속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시록 3;21).
그리고 요한은 계시록 20:4 하반절에서 둘째 무리를 보았습니다. 그 무리들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입니다. 여기에 분명히 두 다른 무리로 나누워져 있습니다. 하나는 보좌에 앉은 자들이요, 다른 무리는 대 환난에서 적그리스도의 법에 순종치 않고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부터 구원을 얻고 나온 자들입니다.
첫째부활은 한 기간 동안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진노의 기간을 통과하겠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첫째부활을 마지막 날의 부활이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루 24시간을 문자 그대로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첫째부활은 실제로 어떤 한 기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다른 사건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에 부활한자들도 있고(마태복음 27:52), 휴거 때에 부활한 자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같이 오는 자들(데살로니가 전서 4;14), 그리고 대 환난 때에 예수그리스도의 증거를 위하여 순교당한 자들의 부활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경우가 첫째부활에 속하는 것입니다. 첫째 부활은 하나님의 큰 백 보좌 심판대 앞에 서기 위해서 불의한 자들의 부활 곧 둘째 부활에 대조 구별되는 것입니다.
6 장: 조심하고 예비하라
예수께서 각 세대마다 그의 제자들과 교회에게 그가 곧 올 것을 기대하기 원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조심하고 예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오시는 날과 시간을 모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예기치 않았던 때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그들은 항상 조심하고 예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교회가 대 환난에 들어간다고 논쟁을 한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긴급성을 잃게 될 것입니다. 교회도 조심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면 우리들도 그의 오심에 관해 예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우리는 대 환난을 기다려야 하며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실제로 조심스럽게 마지막 사건들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큰 사건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며 그때에 그의 통치를 설립할 것이며 그의 새로운 금융 제도를 실시 할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사고파는 일을 하지 않고 생존하는 어떤 방책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땅위에 내려지기로 예언된 대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특히 새로이 건축된 성전의 지성소에 적그리스도가 서서 매일 드리는 예물과 기도를 중지 시키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예언에 의하면 그날부터 1290을 지나면 예수께서 지상 재림을 하실 것이라 하였습니다.(다니엘 12:11)
성경은 말하기를 그 날과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마태복음 24:36). 이날은 예수께서 지상에 통치하시려고 오시는 날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시는 정확한 날을 다니엘의 예언에서 우리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교회를 이 땅위에서 취해가시는 휴거의 날과 시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들은 주의해서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 대환난이나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느 때라도 오시는 것을 조심해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2에서 예수께서 일련의 비유를 말씀 하시면서 조심하고 예비하라는 권고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고 계십니다.
첫째는 집주인에 관한 비유입니다. 만일 사람이 어느 시각에 도둑이 침입할 것을 미리 안다면 도둑이 집을 뚫지 못 하도록 조심 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도 예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44)
예수께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집을 다스리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그의 주인이 돌아올 때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마태복음 24:45-47).
예수께서 악한 종에게 경고 하십니다. 이 종은 그의 마음속에 “나의 주인이 더디 오시니”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대환난이 지나가기까지 혹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까지는 휴거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자는 실제로 주의 오심이 더디다고 마음속에 믿고 있는 자입니다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는 게으른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종이 예기치 않은 시간에 주님이 오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종은 믿지 않는 자와 같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 하였고 반대로 주님께서 곧 오신다고 믿고 있는 종은 부지런하여 자신을 순결케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 일서 3:2-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주님께서 우리가 조심하고 예비하는 것을 원하심이 분명합니다. 대환난이나 환난의 시작이나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주의 깊게 보고 조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곧 오심을 기다리며 조심하라.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오시기 전에 어떤 사건을 먼저 놓는다는 것은 실제로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믿는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친히 경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예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주님이 오실 때에 준비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신랑이 온다는 외침이 있을 때에 “보라 신랑이 오신다”라고 할 때에 준비된 처녀들은 들어가 신랑을 맞았습니다. 13절에 예수께서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3)
우리는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곧 오신다고 믿습니다. 그의 교회가 들림 받기 전에는 대환난의 예언의 하나도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각 세대마다 주님이 곧 오시니 깨어있어 기다리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마가복음 13:35-37)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7 장: 마지막 때
주님께서 대 환난과 교회에 관련하여 우리들에게 특별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첫 번 약속은 계시록 3:10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인데,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계시록 3:10)
이 말씀을 예수께서 우리를 대 환난 가운데 두시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면서 대 환난을 통과한다는 해석은 성경적인 기초와 건전한 학구적인 면이 결여 되어있는 해석입니다. 그러한 해석은 성경전체의 뜻과 조화를 이루기에는 미흡한 해석입니다. 계시록의 어느 곳에서도 교회를 하나님께서 대환난 중에 보존 하신다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하신다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 144,000에게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인을 치시고 다가올 심판의 한 부분으로 부터 보호를 받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계시록 12장에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여인이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삼년반 동안 양육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9절에서도 바울이 그의 교회를 위하여 오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완전히 나의 죄를 위하여 심판을 받으셨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악한 세상과 함께 심판을 또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세상에게 내려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왜 하나님께서 불의한자와 같이 취급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닙니다.
다른 흥미 있는 약속이 이사야 26:19-21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먼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 다음 말씀 하시기를,
“내 백성아 갈찌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찌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6:19-21)
이사야 선지자는 대 환난 기간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자들을 심판하심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그의 방에 들여 문을 닫고 대 환난이 지나가기까지 한동안 숨겨두신 사실을 예언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페트라의 돌산으로 도망간 유대인들을 두고 말한 것이며 대 환난 동안 그들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16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이사야 16:4-5).
이 본문에서 대환난 중에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을 죽이려 할 때에 모압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취하여 페트라인 셀라에 피신토록 하라는 말씀을 받습니다. 왜 주님께서 대 환난 때에 교회가 아닌 유대인들에게 방패로 막아 주십니까? 만일 주님께서 대 환난으로 부터 교회를 막아줄 방패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면 그 약속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 어느 부분에 교회가 인침을 받고 보호되고 표를 받아 대 환난 때에 해를 입지 않겠다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이 계시록에서 마지막 때에 관한 특별한 모든 사건들을 자세히 밝혀 말할 때에 대환난 중에 교회를 보호한다는 구절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복음 21:34-36절에 예수께서 대 환난과 그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1:34-36)
너희는 장차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주님이 교회를 위해서 오시는 일을 나는 결코 놓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대 환난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나는 대 환난은 반드시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조심하며 깨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부터 두루마리를 취하실 때에 계시록 5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서 있는 큰 무리 중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인봉을 떼실 때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거절한 하나님 없는 세상위에 하나님의 진노를 쏟아 붓는 이 땅위에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것은 오시는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에게 복된 소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복된 소망이신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신 일이 두 번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와 롯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 예수께서 그가 다시오실 때에 유사한 일이 있을 것을 이 두 비유로 보여 주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37)
(누가복음 17:28-29)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이 두 경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의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인치신 144,000의 모형이요 노아 방주에서 심판가운데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롯은 교회의 모형으로 심판으로 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에서 세 히브리 청년의 경우는 용광로에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이때에 “다니엘이 어디 있었는가?”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우상에게 절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신비롭게도 다른 곳에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계시록 13장에 짐승의 우상의 형태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 히브리 소년들은 대 환난에서 보호를 받은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들이며 다니엘은 교회의 모형으로 대 환난에서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Rapture란 말이 전통적으로나 역사적인 교회 교리가 아니라는 논쟁에 대해서 한마디를 해야 하겠습니다. 반면 주님의 재림의 기대가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암흑시대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초대교회(신약시대)도 역사적인 교회의 한 부분임은 사실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때 크리스천들이 예수께서 곧 오실 것을 기대했다는 사실입니다. 데살로니가 4장에서 읽었듯이 초대교회 신자들이 주님오시기 전에 사랑하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슬퍼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많은 역사적인 교리에 대해서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교회교리가 유아세례로서 중생한다는 교리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성경이 유아세례를 가르치고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역사적 교회는 마리아와 죽은 성도의 중보를 가르치는데 나는 성경이 죽은 성도나 마리아의 중보기도를 가르친다고 믿지 않습니다. 역사적 교회는 교황의 무과실성을 가르치는데 나는 교황의 무과실성을 믿지 않습니다.
어떤 역사적 교회교리는 나의 의견으로서는 성경적이 아닙니다. 나는 역사적 교회교리가 모든 면에서 정확한 형태나 개념을 가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교회는 우리가 모방하고 따라야 할 모델 교회가 아닙니다. 유일한 교회의 모델은 사도행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무렵에 수많은 거짓된 교리가 교회 내에 침투하여 예수님께서 거듭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신 것입니다(계시록 2장-3장)
어떤 사람들은 1820년 말경에 플리무스 형제모임에서 휴거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또 영국에 한 모임에서 어떤 여인이 예언의 은사를 통해서 교회를 권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말하기를 주님께서 그의 교회를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에서 취하여 구하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존 넬슨 달비와 사이르스 스코필드는 그때 이러한 관점을 확대하여 사람들에게 전했다고 듣고 있습니다.
다니엘 12:4절에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실 것을 찾고 있을 때에 주님께서 다니엘에게 말씀 하시기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이 본문에서 지식이 더하여진다는 것은 마지막 때까지 봉해진 예언적인 진리의 지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교회를 이 세상에서 취해가는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이때에 대환난이 일기 전에 교회가 휴거할 것이라는 약속을 더욱 우리들에게 알게 해 주시는 것이 아주 적합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말틴 루터나 존 칼빈이나 아니면 어떤 다른 개혁 교회 지도자들에게 나타내지 않았을까? 그들은 교회가 들림 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는 세상 끝 날까지 봉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니엘 12:4절에 분명히 예언의 지식이 더하여 질것이라 약속했습니다. 그러한 말씀을 알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 때에 그의 약속과 그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새로운 통찰력을 주실 것이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가증한 적그리스도
다니엘 9:27; 12:11
마태복음 24:15
데살로니가 후서 2:4
계시록 11:2
적그리스도 독재자의 출현
계시록 13장
적그리스도의 이스라엘과 7년 계약
이사야 28:18
다니엘 9:27
바벨론 경제와 정치적 파괴
계시록 18장
아마겟돈 전쟁
시편 2:1-5,9
이사야 34:1-6; 63:3-4,6
요엘 3:2, 9-16
스가랴 12:2; 14:2-3, 12
계시록 14:14-20; 16:16; 19:11-21
교회 창녀(거짓 교회)
디모데 전서 4:1-3
디모데 후서 3:1-5
계시록 17장
암흑 그리고 극도의 저하
요엘 2:2
계시록 16:10
주의 날
이사야 2:12; 13:6,9
에스겔 13:5; 30:3
요엘 1:15; 2:1,11, 31; 3:14
아모스 5:18,20
오바댜 15
스바냐 1:7, 14
스바냐 14:1
말라기 4:5
사도행전 2:20
데살로니가 5;2
데살로니가 후서 2:2
베드로 후서 3:10
악령의 침투
계시록 9:3-20
마귀숭배와 우상
계시록 9:20;13:11-17
술 취함, 마약과 간통
마태복음 24:38
누가복음 17:27
계시록 9:21
거짓 메시아와 선지자들
마태복음 24:5, 11-24
하나님의 말씀의 흉년
아모스8:11-12
화염과 불타는 태양열
계시록 16:8-9
계시록 18:8-9, 18
이방인들의 형벌
로마서 1:18
데살로니가 2:11-12
계시록 19:15
하나님의 진노
이사야 26:20; 34:2
계시록 6:17
하나님의 원수 갚음
이사야 34:8; 63:1-6
곡과 마곡의 이스라엘 침략
에스겔 38-39
대 환란
마태복음 24:21
하나님의 의한 추수와 사탄
마태복음 13장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
계시록 14:7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파괴할 시도
계시록 12장
이스라엘의 정결
에스겔 20:23, 38
스가랴 13:8-9
말라기 3:3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귀향
이사야 43: 5-6
에스겔 34:11-13; 36:24; 37:1-14
하늘에 순교당한 무리들
계시록 7:9, 14
마지막 날에 물질주의
누가복음 17:28
계시록 18:12-14
천년 왕국을 위한무리들
마태복음 25:32-34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서 무 탈출
아모스 9:2-3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
이사야 2:19-21
계시록 6:15-17
믿는 자를 핍박
마태복음 24:10
계시록 16:6;17:6
이스라엘을 핍박
다니엘 12:1
스가랴 11:16
마태복음 24:21
계시록 12:13
질 병
스가랴 14:12
계시록 16:2
천년왕국을 위한 준비
계시록 16:20
로마제국의 재기
다니엘 2:41; 7:7
계시록 13:1; 17:12
하늘로 부터 쫓김을 받은 사탄
계시록 12:3-15
사탄의 속임수
이사야 14:12-15
일곱 대접 재앙
계시록 16장
칠십의 일곱
다니엘 9:24-27
하늘과 별과 달과 해의 징조
이사야 13:10, 13;24:1, 19-20; 34:10
요엘 2:10, 30-31; 3:15
계시록 6:12-14
계시록 8:7-11, 16-21
여섯 인봉 심판
마태복음 24:4-8
계시록 6장
계시록 8-9;11:15-19
죽음의 슬픔
이사야 13:8
계시록 6:8
세 천사의 메시지
계시록 14:6-12
야곱의 환란의 때
예레미야 30:7
마지막 때
다니엘 12:9
마태복음 13:40, 49
이스라엘 족속, 중생한자, 순교자
마태복음 24:14
계시록 7:1-4
계시록 14:1-5
대 환란의 사망자들
스바냐 1:17
이사야 34:3; 66:24
마태복음 24:28
계시록 14:20
계시록 19:17-19
대 환란에서 나온 생존자
이사야 13:12
두 증인
계시록 11:3-13
전쟁, 기근, 지진, 재난
마태복음 24:6-7
누가복음 21:25
계시록 6:2-6,8
계시록 9:1-2; 14:20
계시록 6:12;11-13; 16-18
계시록 8:7-12; 16:3
세계종교 정치 그리고 경제
계시록 13:4-8, 16-17
계시록 17:1-18; 18:1-24
전무후무한 세상의 환란
다니엘 12:1
마태복음 24: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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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막 주님의 재림
III 막에서 세상의 혼란과 환란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아주 황량한 장면이었습니다. IV 막에서 펼쳐질 드라마를 향한 준비 기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 환란의 어두운 배경에 반하여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그의 장엄한 모습으로 인해 세상의 눈이 휘동그래 해질 것이고 입이 딱 벌려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대 환란의 마지막에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께서 천년동안 세상에 그의 통치를 설치할 것인데 천년 왕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가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를 대항하는 마지막 전쟁을 일으킬 것인데 그 결과는 사탄이 완전히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1 장: 이 돌을 보십니까?
마태복음 23장과 24장에서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바리세인들을 책망을 하시고 그들과 논쟁을 하시고 계셨던 때를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성전을 떠났을 때 제자들이 헤롯이 성전을 지을 때 사용했던 큰 돌들에 대해서 말하기를 시작 했을 때에 맘모스 돌에 관에서 거대한 크기란 표현이 오히려 부적절할 정도로 돌이 컸던 것입니다. 성전에 사용된 제일 작은 돌의 무계가 2내지 3톤이나 되었는데 이것은 코끼리의 무게입니다. 많은 돌들이 그 무개가 50톤이나 되였습니다. 가장 큰 현존하는 돌은 오늘날 예루살렘에 있는 랍비의 터널에 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무계가 무려 570톤이나 됩니다. 제자들이 이 큰 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가리키면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복음 24:2)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얼떨떨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뜻으로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가? 도대체 누가 이 거대한 돌을 옮길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기드론 계곡을 통해서 감람산까지 걸어가면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마태복음 23:4상)
제자들은 이러한 일이 있기 전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지 성전이 파괴되지 전에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 마지막에 대한 것도 알기를 원했습니다.
“또 주의 임 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태복음 24:3하).
세상의 마지막 세대
사람들은 왜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마지막에 대해서 항상 말하고 있는지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것은 우리는 세상의 끝에 대해서 보통 말하지 않고 마지막 세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끝이라고 말하면 어딘가 멀리 있는 곳을 생각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것은 세상조직의 끝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통치하려는 부패로 가득 찬 연약하고 헛된 인간의 시도가 끝이 난다는 뜻이 대개 크리스천들이 말하는 “세상 끝”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은 언제 세상의 끝이 올 것입니까? 무슨 징조가 있을 것입니까? 1 막에서 예수님께서 그 질문에 대해서 특별한 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재림이 아주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련의 비유를 우리에게 주셨고 그리고 이 세대의 마지막이 아주 가깝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1-3)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 교회를 위해서 오시겠다는 언급을 하셨고 교회의 휴거로 알려져 있습니다(II 막) 예수께서 어느 날 그의 교회와 함께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 하실 것입니다.
2 장: 예수님의 재림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약속과 예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언제 건설하실 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말씀이 구약성경 다니엘서 7:13-14절에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7:13-14)
스가랴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예언하였는데,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스가랴 12:10).
스가랴가 예언하기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유대인들이 그가 메시아인 것을 깨닫고 그들의 눈이 오랫동안 가리워 하나님께서 저의 조상들에게 보내신 참 메시아를 거절하고 그에게 입힌 상처를 보고 슬퍼하며 통곡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3)
계시록 1:7절에서도 유사한 말씀이 선언 되었는데,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마태복음 24:30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보았던 것이 사도행전 1:9-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시 스가랴는 14:44 절에,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골로새 3:4절에서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유다서 1:14에서 에녹의 예언을 인용한 말씀이,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계시록 19:11-15절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요한은 말하기를,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상세한 내용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예언은 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예수께서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온 세상이 모두 볼 것이라 했습니다.
셋째는 유대인들이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찌른 자를 볼 것이라”했습니다.
넷째는 성도들이 그와 함께 올 것이라 했습니다. 휴거 때 들림 받은 자들이 그가 이 땅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오실 때에 함께 올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로새 3:4)
다섯째는 그가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와 같이 오시리라 하였습니다. 그의 발이 거기에 닿을 때에 감람산의 가운데가 갈라져서 새로운 큰 계곡을 이룰 것이며 그 산의 한부분이 북쪽으로 다른 부분은 남쪽으로 옮길 것이라 했습니다.
재림의 시기
그의 시림의 시기가 무엇일까? 우리가 II 막과 III 막에서 논했듯이 두 큰 사건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휴거요, 다른 하나는 대 환란인 것입니다. 이제 교회의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한 예언이 성취될 가능성이 있는 징조는 이슬람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이 지구상에서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파괴하려고 침입하는 사건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일이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이슬람 나라들이 침공할 때에 뒷받침할 것이라 했습니다(I막). 성경은 말하기를 궁극적으로 모슬렘들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중지시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생존할 것같이 보이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침략군의 5/6의 군대가 멸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수행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승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슬람의 나라들이 패배한 후에 (러시야가 배후에서 도와 줌) 아주 권세 있고 천재적 재능을 가진 자가 구주 동맹국의 지도자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놀라운 지도력을 나타낼 것이며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문제점의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상은 구세주라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종족 차별의 문제, 범죄문제,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중동의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1290일
이 시기의 어떤 시간대에, 러시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모슬렘을 뒷받침할 때 주님께서 그의 교회를 이 땅위에서 데려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교회를 이 땅위에서 데려갈 것이며(휴거) 이스라엘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때에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마지막 7년의 기간이 시작 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재건할 것입니다. 그들은 매일기도와 제사를 드리는 제도를 세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벌써 제사장의 복장을 준비하고 성전에서 제사에 사용하는 많은 기명과 기구들을 준비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는 없으나 제사를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즐거이 삼 년 반을 지난 후에 구주 동맹국의 지도자가 성전에 들어와서 매일 드리는 기도와 희생 제사를 폐하고 그뿐만 아니라 거룩한 곳에 서서 자신이 하나님이라 선언하고 자기에게 하나님과 같이 경배 드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때까지 생존해 있다면 그날을 달력에 표시하여 그날부터 계산하여 1290일이 지나면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 재림하시게 될 것입니다. 전에 말한 것과 같이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다니엘의 12장에 잘 게시되어 있습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중지시킨 날부터 1290일이 지나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십니다."
이 말씀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논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교회가 들림 받는 휴거와 예수님의 재림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휴거는 어느 때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이 구절을 다 읽기 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휴거가 일어날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기도와 제사를 드리는 것을 중지하고 자신이 거룩한 자리에서서 하나님이라 선언하면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기를 요구하는 날 부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시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참람되고 불경한 일은 하나님의 인내를 끝장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로써 대 환란의 심판이 마지막으로 믿지 않는 세상에 측량할 수 없는 능력으로 이 세상에 내려질 것입니다(III 막을 보시라)
3 장: 천년 왕국
이 세상이 괴롭다고 느낍니까? 정부가 당신을 통치하려는 것을 느낍니까? 그렇다면 이제 마음을 놓으세요. 천년 왕국으로 알려진 기간은 이 지상에서의 생활이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천년 간 드디어 지구가 처음으로 의로 통치함을 받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왕국을 이 땅위에서 설립하시고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제 주님과 함께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사람들이 법을 무시 하거나 법에 반역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철장으로 통치하는 것과 같아서 그의 말씀이 법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동안 시도해온 여러 가지 다른 정부의 구조 가운데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군주국가 등, 가장 효과적인 정부는 군주국가 입니다. 선한 군왕이 통치하면 그 나라는 좋은 제도를 가진 나라가 될 수 있고 왕이 폭군이면 그 나라는 못된 군주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 중 왕 되신 예수께서 의로써 의롭게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 통치를 받기를 원치 않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이 내려질 것입니다. 내가 이해하기는 그리스도와 함께 오는 성도들은 새로운 왕국에서 통치하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 주신 특별한 영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의로 통치하는데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어떠한 지구가 될까?
II 막에서 설명들인 것과 같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지구의 소유권이 바뀌어졌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 지구의 소유권이 차압된 것입니다. 사탄이 소유권을 탈취한 이후로는 세상이 그 이후로 순간마다 고통을 당해 왔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을 지셨을 때 지구를 구속하여 모두 지불했습니다. 그는 지구를 다시 구입하여 하나님께 받쳤습니다. 예수께서 지구문서를 다시 되돌려 받을 때에 몇 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첫째는 사탄이 천년동안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뜻은 사탄이 천년이란 기간 동안 더 이상 우리를 유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지구는 홍수 이전의 에덴동산과 같이 회복되어 낙원과 같이 될 것입니다. 기후도 모두 같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폭풍이 없을 것이며 토네이도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극이나 북극에 지금은 어름으로 덮여 있으나 한때는 숲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 속에 석탄이 생겼다는 것은 수목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시베리아에 있는 얼어붙은 턴더라 들판에는 맘모스의 잔여물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얼음 속에 죽어 같혀 있는 이 거대한 짐승들의 위를 열어보면 열대식물이 아직도 배속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한때 지구가 오늘날과 같지 않은 기후를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북극은 한때는 빙판이 아니라 열대지방의 동물들이 번식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빙판이 없으면 더 많은 지면이 물로써 덮여지게 될 것이며 바다와 육지의 비율이 오늘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양극의 빙판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근본적인 기후의 변화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지구의 축이 23점 삼분의 일도로 되어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우리들에게 계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구의 축을 교정하실 가능성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말하기를 지구가 마치 술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며 그 위치에서 옮겨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지구의 축을 태양과 정면으로 수직적인 관계에 놓이게 한다면 계절은 없어지고 낮이나 밤에 같은 열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면 온 지구가 하와이의 기후와 같이 될 것이며 동시에 사람의 수명도 길어질 것입니다.
더 많은 물이 바다에 몰리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서 더 많은 수분이 증발할 것입니다. 그 결과로 대기층에 수분이 많아질 것입니다. 대기에 수분이 많아짐으로 해로운 자외선을 막아 보호해 줄 것입니다. 지구가 모든 면에서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구는 아름다워질 것이며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의가 이 땅을 덮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원래의 하나님의 계획하신 세계를 즐기며 또한 통치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무엇을 하실까?
예수님께서 그의 왕국을 건설하시기 위해서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실 일은 모든 나라들을 함께 모아놓고 대 환란에서 생존한 자들 중에 누가 왕국으로 들어갈 특권을 가진 자인가를 결정하는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지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즉시로 제거될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 사람들을 구별할 것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마태복음 25:34).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태복음 25:41).
그리고 예수께서 천년동안 통치하실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과 함께 이 땅위에 있는 자들을 나라의 제사장으로써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년 주님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갈 것입니다. 천년왕국 때는 지구의 기후가 변할 뿐 아니라 사람 자신의 속에 있는 것도 변하게 될 것입니다. 질병은 사라지고 불구자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사야는 절음바리가 기쁨으로 뛸 것이며 벙어리가 기쁨으로 외칠 것이며 눈먼 자가 주님의 영광을 보는 영광의 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경험치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병이 나을 것이며 사람들이 죄성을 따라 갈 수 없도록 제재를 받을 것이며 예수께서 천년을 통치하시는 동안 사람들은 의롭게 사는 길 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상적인 환경에서 사람 속에 있는 악한 소원을 발할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그러한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런 몸 안에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그곳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의가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 될 것입니다. 천년동안 우리는 사람들이 의롭게 살 때에 얼마나 놀라운 세상인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경찰 조직이 필요가 없고 법의 제도나 감옥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어 살게 됨으로 주어지는 큰 유익과 축복을 누리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달란트 비유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가 주워졌고 그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져와서 하는 말이,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마태복음25:20)
그의 주인이 대답하기를,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마태복음 25:20-23)
이것은 믿는 자를 위한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실함을 나타낼 때에 예수님께서 천년 왕국에서 우리들에게 책임을 맡길 것입니다. 우리는 주께서 맡겨주신 도시들을 왕으로써 봉사함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데 일을 돕게 될 것입니다. 스가랴 14 장에 이 기간에 살아 있는 자들이 매년 예루살렘에 와서 그리스도께 경배 드리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사야 2장에 보면 우리는 그의 집에 와서 그의 발 앞에 앉아 있고 주님은 그의 도를 우리들에게 가르치실 것입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사야 2:3)
구원 얻지 못하고 죽은 자들
천년동안의 통치 기간에 교회인 우리는 영화로운 몸을 가질 것입니다. 대 환란을 통과하여 생존한 자들은 완전한 조건과 이상적이고 완전한 기후에서 자연적인 몸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질병도 없고 아픔도 없고 날씨의 재난도 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건강한 자들이 될 것인지 상상 해보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고 있을 동안 구원을 얻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성경은 말하기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계시록 20:5).
첫 번 부활은 오랜 세월 동안에 일어 날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시작하여 순교자의 마지막 사람이 영광의 부활을 할 때가 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할 것입니다.
4 장: 사탄의 마지막 반역
화평과 의의 기간인 천년이 지난 후에, 지구상에서 질병과 아픔과 전쟁과 싸움과 재난이 사라진 천년의 기간이 지난 후에 우리가 계시록 20장을 읽을 때에 실제로 연극의 음흉한 배후 음악을 듣게 됩니다. 빛은 사라지고 플루트와 기타가 조화하여 조용한 배경 음악 소리가 연주 됩니다. 무대 밖 어디선가 무시무시한 피아노 음악과 저음의 북소리가 장면의 분위기를 음침하게 바꿔 놓습니다. 우리의 원수가 재현되는 순간입니다.
풀어 놓다
이제 천년의 기간이 차매 사탄이 그의 옥에서 풀려 나왔습니다...(계시록 20:7) 전반부의 말씀을 보면 분명히 말하기를, “사탄이 옥에서 놓여”란 말씀은 그가 탈출한 것도 아니고 그의 악령들로 부터 구출된 것도 아니고 그가 자유 함을 받았다는 것은 곧 풀어준 자가 하나님이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탄을 다시 놓으셨을까? 어떤 자들은 묻기를 “하나님께서 이미 사탄을 묶어 무저갱에 가두셨는데 왜 그곳에 두지 않으셨나? 왜 풀어 주셨나? 사탄의 궁극적인 운명이 멸망이라면 왜 하나님께서 그를 오래전에 멸망시켜 우리들에게 고통과 아픔들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하지 않으셨나?
답은 물론 하나님의 절대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절대권 안에서 이 지구와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계획이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자유를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상적인 조건과 완전하고 의로운 예수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던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반역 하도록 설득을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마음에 악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사람의 반역과 불순종을 나타낼 수 있도록 허락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항상 영원토록 사람의 마음속에 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사람이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환경이 나빠서 나를 악하게 만들었다.” 라고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을 영원히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예수께 사람이 마지막으로 반항하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마음이 절망적으로 사악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사랑의 시험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 주님! 이 세상 어떤 것 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하기는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볼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맹세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시험을 해보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탄을 하나님의 도구로 그 시험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욥이 우리들에게 이것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보이려고 나왔습니다. 그때에 사탄도 그들과 함께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어디로 돌아다니다 왔느냐 물었습니다. 그때에 사탄이 답하기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욥기 1:7)
그는 나가서 의미 없이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나가서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누구를 넘어뜨릴까 아니면 참소할까 찾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을 유의해 보기를 암시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사탄은 비웃었습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 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그래서 욥이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명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의 소유를 모두 없애버리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의 생명은 손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욥이 돈에 탐욕이 있는 자로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부를 쏟아 부어주시니 그를 섬기는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사탄의 태도는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배반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녀들도 주시고 많은 복을 주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축복이나 유익을 위해서 주를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섬깁니까?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서 허락하십니다. 욥이 자녀들과 모든 재산을 잃었을 때 그는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기 1:21)
그 다음 구절에 말하기를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강제로 하는 사랑은 전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나의 아들에게 “아들아 내가 상점에 가서 책상을 하나 사올 테니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내가 이 책상을 이층으로 옮기는데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내가 그 아들을 뒷마당에 있는 나무에다 쇠줄로 묶어 놓고 돌아와서 그 쇠줄을 풀어주고 강제로 책상을 옮기는데 그 아들로 돕게 하고서 하는 말이 “내가 이렇게 순종하는 훌륭한 아들을 가졌군! 내 아들이 자랑스럽구나! 내가 나간 동안 나의 아들이 다른데 가지 않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구나!” 이때에 이 모든 광경을 창문 밖으로 끝까지 쳐다보든 이웃사람이 생각하기를 “당신이 나갔을 동안에 당신 아들이 고함을 지르고 당신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소리를 들었어야만 하는데”라고 했습니다.
반면 만일 내가 나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아들아 내가 책상을 하나 구입하러 가는데 내가 올 때까지 다른 곳에 가지 말고 기다려라 내가 책상을 옮기는데 너의 도움이 필요하구나? 라고 말하고 내가 떠나면서 잔디밭에 물을 주고 있는 나의 이웃에게 말하기를 수고스럽지만 내가 떠난 후에 나의 아들이 어떻게 하는지 좀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없을 때 나의 아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좀 궁금하군요.”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내가 나가서 책상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이웃에게 “어떻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가 하는 말이 “오, 스미스 선생님 당신은 훌륭한 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아들에 대해서 걱정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이 나간 동안 뒷마당에 계속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들이 와서 농구 게임을 하지고 졸라 델 때에 당신 아들이 말하기를 내가 갈수 없다. 나의 아버지가 올 때까지 뒷마당에서 기다리라 하셨다, 라고 말할 때 동무들이, 야 조금 놀다 너의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와있으면 네가 나간는지 알지도 못할 것인데, 라고 하며 계속 졸라 댈 때에 당신 아들이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가 오실 때가 되어 내가 다른데 갈수 없어, 라고 말할 때에 그 동무들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졸라 댈 때에 당신 아들이 동무의 코를 한대 치니 그 친구의 코에서 피가 나면서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미스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에 나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나의 말에 순종하는 아들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험의 필요성을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하라고 명하실 때에 우리를 명령에 순종하도록 묶어 놓으시지 않으시고 자유를 주십니다. 이때에 사탄은 우리가 순종치 못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다르게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마치 욥에 대해서 말씀하시듯 오, 내가 훌륭한 아들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유를 가지도록 또 한 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결심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천년 왕국의 마지막 때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사탄은 큰 군대를 이루어 의로운 자를 둘러싸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공격을 감행할 것입니다.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계시록 20:9)
하나님께서 저들이 반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들을 불로써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전쟁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불쌍한 반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달성 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사악한 자들 위에 쏟아 질 때에 절망적으로 사악한 사람과 하나님의 심판의 절대적 의로우심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일의 배후의 조정자인 사탄을,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시록 20:10)
불 못
성경에 불이 붙는 연못이 있습니다. 이것이 불 못의 지옥으로 (Gehenna)알려져 있습니다. 게헤나는 예루살렘의 남쪽에 있은 계곡으로 힌놈의 골짜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타락하여 바알과 몰렉 우상 신을 섬길 때에 백성들이 우상 신에 대한 제사의식으로 봉화 불을 피우고 그들의 어린 아기를 불에 던져 태우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아이들을 불로 지나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경배하는 행위요 또 원치 않는 어린아이를 버리는 편리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유산을 하는 방법을 몰라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불에 내던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쾌락의 신을 섬기는 행위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리스도 때에 힌놈의 골짜기가 예루살렘시의 쓰레기 처리장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쓰레기를 밤낮으로 태우기 때문에 힌놈의 골짜기를 바라보면 힌놈의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항상 오르고 있습니다. 게헤나라는 이름은 끊임없이 영원히 불타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을 불과 유황 못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처음으로 들어가는 자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 두 사람만이 첫 번의 천년 왕국기간 동안에 불 못에 들어가게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간 동안 사탄은 무저갱이란 곳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천년 마지막에 짧은 기간 동안 하나님을 반역하는 무모한 짓을 하다가 사탄도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가 있는 게헤나에 던져질 것입니다.
(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거기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모두 타버렸다 혹은 파멸되었다”라는 말씀을 하지 않고 “그들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게헤나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악인들을 모두 멸망하고 만다고 해석 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며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악한 자들에 대해서,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시록 14:10-11)
심 판
사탄의 짧은 반역이 파괴된 후로는 주님의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계시록 20:11-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고도 정밀하며 완전한 기록을 보관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여태껏 행한 일과 생각을 모두 기록해 두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소리의 과학과도 유사한 것일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소리는 계속 유지한다고 합니다. 영원히 계속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소리가 한 시간에 727마일을 가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모든 소리는 한번 나면 계속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슨 말이든지 한번 발설하면 어딘가 거기에 말한 소리가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주파수만 잘 맞추면 당신의 부모가 당신이 태어나서 아기 침대에 누워있는 당신의 아기 모습을 보고 귀여워서 “까꿍 그리고 우리아기” 이렇게 말한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론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말했던지 생각이나 행한 것이던지 하나님께서 모두 기록해 두신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시록 20:12-15)
성경은 생명록에 대해서 여러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생명록에서 이름을 지운다는 말씀이 태반이나 됩니다. 모세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주시지 않는다면 나의 이름을 생명록에서 제하여 주십시오, 라고 구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출애굽기 32:3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시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출애굽기 32:33)
시편에서 다윗도 메시아에 대해서 말하기를,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시편 69:28)
예수께서도 계시록 3장에서 사데 교회에게 약속하신 말씀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흰옷을 입혀줄 것이며 그들의 이름을 생명록에서 제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예수께서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고백하겠다고 했습니다. 계시록22:19절에 보면 우리에게 경고하시기를,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둘째 사망
만일 당신이 첫 번 부활에 참여 했다면 당신은 결코 둘째 사망에 참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의 정의에 의하면 죽음이란 하나님으로 부터 사람의 의식이 격리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의식하는 영역 밖에서 살 때에, 당신의 생활에 하나님을 모실 장소가 전혀 없다면, 사귐도 없고 소통도 없고 하나님을 전혀 생각지 않는 다면, 성경에 따르면 그때가 죽음인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장래 육신적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현재 지금 당신은 영적으로 이미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희고 큰 보좌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당신의 이름은 생명록에 기록된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움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죽음인 것입니다.
(계시록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한복음 3:6-7).
당신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태어남을 말합니다. 두 번 나면 한번죽고 한번 태어나면 두 번 죽습니다. 두 번 죽는다고 하는 것은 육신적인 죽음과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는 영적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러면 다시 태어난 중생한 자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들은 한번만 죽는 것입니다. 그들은 앙코르를 경험할 것입니다.
감람산으로 부터 흐르는 강
요엘 3:18
스가랴 14:4, 8, 810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요
이사야 60:1-3
에스겔 39:21
미가 4:1-5
하박국 4:1-5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동물의 양상
이사야 11:6-7; 65:25
이사야 11:8
저주가 제거 되다
창세기 3:17-19
이사야 11:6-9; 35:9; 65:25
요엘 3:18
아모스 9:13-15
사망이 승리의 삼킨바 됨
이사야 25:8
하나님의 증인으로써 이스라엘
이사야 44:8; 61:6; 66:21
에스겔 3:17
미가 5:7
스바냐 3:20
스가랴 8:3
이스라엘을 정결케
예레미야 33:8
스가랴 13:1
이스라엘의 팽창과 변화
이사야 26:13
오바댜 17-21
이방 가운데서 높임을 받는 이스라엘
이사야 14:1-2
이사야 49:22-23
이사야 60:14-17; 61:6-7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알아보다
이사야 8:17; 25:9; 26:8
스가랴 12:10-12
이스라엘이 다시 모임
이사야 43:5-6
예레미야 24:6; 29:14; 31:8-10
에스겔 11:17; 36:24-25, 28
아모스 9:14-15
스가랴 8:6-8
마태복음 24:31
이스라엘이 다시 태어나다
예레미야 31:31-34; 32:39
에스겔 11:19-20; 36:26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혼인
이사야 54; 62:2-5
호세아 2:14-23
거룩한 하늘의 성 예루살렘
예레미야 33:16
이사야 2:2-3
에스겔 48:35
미가 4:1
스가랴 8:5; 14:10
계시록 21:10, 16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통치
시편 2:::6-8, 11
이사야 2:3; 11:4
선한 목자 되신 예수
이사야 40:11; 49:10;58:11
에스겔 34: 11-16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증가
이사야 41:19-20; 54:13
하박국 2:14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다
이사야 65:20
성령의 사역
이사야 32:15; 59:21
에스겔 36:27; 37:14
요엘 2:28-29
압박이 없다
이사야 14:3-6; 49:8-9
스가랴 14:3-6; 49:8-9
질병이 없어지고
이사야 33:24
예레미야 30:17
에스겔 34:16
이사야 29:18; 35:6-7; 61:1-2
예레미야 31:8
해와 달의 빛이 강해진다
이사야 4:5; 30:26; 60:19-20
스가랴 2:5
눈물이 마르다
이사야 25:8; 30:19
성전 재건
이사야 2:2
에스겔 40-48
요엘 3:18
학개 2:7-9
스가랴 6:12-13
입술을 깨끗게
스바냐 3:9
모든 것이 성결
스가랴 14:20-21
온 세상에 평화
이사야 2:4; 32:18
만민의 기도
이사야 56:7; 65:24
스가랴 8:22
온 세상이 찬양
이사야 35:6; 52:9; 54:1; 55:12
예레미야 33:11
광야와 사막에 꽃이 피고
이사야 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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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늘에서의 앙코르(재청)
천 국
연극이 이제 결론을 내립니다. 앞에 나온 4막에서 우리들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보았고 교회의 휴거와 무서운 대 환란과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과 천년왕국의 설립으로 보았습니다. 사탄이 마지막에 힘없는 반역을 다시 일으켰으나 반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박살을 내어 벼렸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드디어 멸망하고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을 보았습니다. 4막의 결론은 슬픔과 파괴가 모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끝이 났다고 생각할 무렵 다시금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훌륭한 연출은 재청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연출보다 더 재청을 받을 만한 연출은 역사상 없습니다. 아직도 보기에 더 아름답고 더 흥분되는 장면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영광스런 미래를 잠간 볼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계속될 앙코르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성경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땅과 하늘에 관하여 아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시편 102:25-26)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우주까지도 열역학적 법칙에 따르고 있습니다(entropy). 과학자인 허쉘 진스 경은 지구를 큰 시계의 조름 새에 비유하여 졸라매었던 스프링이 점점 풀어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는 매초마다 백만 이백 톤의 형질이 감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해의 크기가 너무도 거대하여 곧 없어질 것이라고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천문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해의 감소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100억년이 지나면 태양의 에너지가 줄어 지구상의 생물체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졸든 학생이 정신이 버쩍 들어 교수님께 질문하기를,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교수님께서 대답하기를, 백억년이 지나면 태양의 에너지가 감소하여 지구상의 생물체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그 학생은 말하기를 나는 천만년이라고 말한 줄 알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안도의 숨을 내어쉬었습니다.
(사 65:17-19)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17절에서 창조의 말씀이 히브리말로 bara입니다. 창세기 1:1절에 나오는 창조와 같은 말씀인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도하시다”에서 창조가 bara란 말씀을 사용하였는데 그 뜻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사야의 이 구절에서 선언 하시기를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고 선언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히브리말에 창조나 만들다, 란 말을 asa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서 다른 물건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창세기 일장에서 대부분의 창조가 asa란 말을 사용하였고 이미 창조된 흙에서 사람을 다시 창조하셨다는 창조 asa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bara)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다. 이제 하나님께서 bara 창조를 곧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bara)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 후서 3:10-13 에서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인지 조금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제 우리가 원자 폭탄과 원자 구조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는데 우리는 양자, 전자 그리고 중성자와 같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벽돌이 되겠습니다. 원자 속에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어떤 신비적인 현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자의 핵이 물론 양자들이 함께 붙어 형성되고 있는데 전자가 핵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원자 속에 물질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고 빈 공간이 더 많다고 합니다. 원자의 신비한 것 가운데 하나는 무엇이 양자를 서로 붙들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쿨롬브이 전기 법칙에 따르면 양자끼리 서로 밀어내는 현상이 있는데 양자끼리 서로 밀어내는 힘이 아주 큽니다. 그런데 원자 속에 두 양자로 된 핵이 어떻게 서로 붙어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중성자를 천천히 움직여 핵에 충격을 주워서 원자 속의 핵에 이상을 일으켜서 큰 힘을 만들 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원자 폭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두 양자를 붙드는 힘이 두 양자가 풀어질 때 자아내는 힘보다 훨씬 강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질문은 이 우주를 붙들고 있는 힘이 무엇인가?
바울은 골로새 1:16-17절에서 예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만물을 붙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헬라말 원어의 뜻). 미래의 어떤 날 주님께서 붙들고 있는 것을 놓을 때에 온 우주가 풀어져 없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단지 잡고 계신 것을 놓아버리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 시점에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bara) 하실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에 의해서 아직 오염되지 않은 곳입니다. 이 땅에는 사람들이 침입하지 않은 곳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아직 들어가지 않은 곳의 아름다움을 볼 때에 우리는 감탄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 설계자시요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부터 내려오는 새 하늘과 신선한 새 땅을 상상해 보십시오. 바로 그대로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함께 여기서 거하실 것입니다.
모든 고통과 아픔이 모두 떠날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영원한 왕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때에 절대적인 큰 기쁨과 축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 너무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 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이것은 마치 아름다운 꿈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이 진실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의 말씀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시록 21:9).
요한은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을 보라고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신부가 거할 장소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위해서 예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님의 풍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우리를 용서해 주셨고 풍성하게 사랑하셨고 풍성하게 축복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아름다운 곳을 거의 상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의 것을 조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계시록 21:10-11).
이 돌을 벽옥으로 번역되었는데 수정과 같이 맑지는 않습니다. 이 돌이 다이아몬드 일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는 빛에 반짝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성을 바라볼 때에 밝게 빛날 것입니다.
(계시록 21:12-16)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일만 이천 스타디온 이란 약1500 마일입니다. 그 성은 정사각형의 입방체로써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각각 1500마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을 새로운 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환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놀라운 선물은 우리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고전 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을 때에 육신으로 부활 하신 것을 압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영이 아니다, 라고 하셨고 그의 새로운 몸이 벽을 통과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세포 조직으로 구성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몸도 그의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의 몸이 물질일 것인가, 아니면 영물이 될 것일까? 만일 우리가 영물이라면 인력에 의해서 몸이 구애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아주 흥미 있게 할 것입니다.
이제 만일 우리의 몸이 물질적인 것으로 가상한다면 1500 마일의 사각형의 입방체를 가진 새 예루살렘을 다시금 바라봅시다. 지구에서는 표면에서만 살게 되어있는 반면 우리가 장차 살 곳이 거대한 사각형의 입방체의 안에서도 살 수 있지 않을까? 각층이 일 마일의 높이와 각방의 크기가 일마일 입방 사각형의 모양이라고 가상할 때 몇 사람이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모두에게 충분한 방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계시록 21:17-19)
기초석이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깔을 가졌습니다.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계시록 21:19-20)
각보석마다 색깔을 묘사한다면 에메랄드는 녹색이요, 다섯째는 홍마노는 붉은 색, 여섯째 홍보석은 불타는 듯한 붉은 색, 일곱째 항옥은 금같이 노란색, 여덟째 녹옥은 초록색, 아홉째 담황옥은 초록과 노란색, 열째 비취옥은 금 색깔과 초록색, 열한째 청옥은 자주빛 진한 빨강색 열둘째 자정은 보라색입니다. 그기에 더욱 첨가하여 다이아몬드의 맑고도 깨끗한 광체가 나고 청색이 나는 남보석과 녹색의 에메랄드, 녹색의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된 것을 상상해볼 때 그 성의 기초가 얼마나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과 다이아몬드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아주 가치 있는 보석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열심히 일해서 소유 하려고 할뿐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과 싸우거나 아니면 죽이기까지 하면서 취득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땅에서의 귀한 보석이 하늘에서는 길이 금으로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땅의 보석은 하늘의 아스팔트인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 가면 하나님께서는 금이나 은이나 다이아몬드나 귀한 보석들에 놀라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는 귀한 보석이 너무 많아 집짓는 재료로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이나 은이나 귀한 보석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금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 되었습니다. 모든 은도 그리고 모든 다이아몬드, 남보석, 벽옥 그리고 녹보석들은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을 보물로도 생각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성에 들어갔을 때 우리 눈으로 보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것은 그런 집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출애굽기 19: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특별한 보물이라 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흠정역에 보면 “독특한 보물”로 번역 되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물로 생각하신다는 것은 독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보배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 아닙니다. 그의 백성들입니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바로 당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 중에 당신만을 만들었습니다. 가치가 있는 것은 대게 귀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독특한 보물일 뿐만 아니라 그의 희귀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 이심이라” (계시록 21:21-22)
이제 예수님께서 오셔서 교회를 천국으로 휴거시킬 때에 우리가 첫 하늘에 있는 성전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땅에 지을 성전을 명하신 것과 정확히 같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형이므로 그 치수가 정확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전에 대해서 몇 곳에서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계 7: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계시록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계 15:5-8)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첫 하늘에서 성전이 먼저 자태를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에서는 우리에게 성전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바깥의 빛의 근원이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시록 21:23)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
새 예루살렘에는 낮에 해나 밤에 달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시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빛을 제공하실 것입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시록 21:24-28)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다른 영광스런 일은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은 전혀 없고 순결한 것뿐입니다. 여기서 산상보훈에 예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많은 경우에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미래를 예언하시고 그 예언이 이루어질 때에 “이것이 진실한 말입니다. 신실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라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가 약속한 것을 우리가 받아 드리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우리들에게 확신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음으로 그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향 미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약속을 믿을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묘사가 지상에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묘사하신대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묘사한 것이 초현실적이며 다른 세계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러한 것을 만들 수 있을까?가 질문이 아니라 질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이 믿는가?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지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지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인 불신에 대해서 아주 자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에게 각 사람이 중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결론짓기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은 세상을 심판하려하심이 아니요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에서 실제로 말씀하시기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 3:18-19)
불신은 도덕적 문제입니다. 어두움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이 빛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두움을 싫어하고 빛을 좋아하는 자연현상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오래 동행하면 할수록 더 큰 믿음을 갖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는데 지적인 어려움이 조금 도 없습니다. 나는 믿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지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나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지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조금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실 때에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 “진실로, 진실로”란 말씀인데 두 번 쓰는 말씀은 강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치 “진실로, 진실로”의미합니다. 그것은 그가 말씀 하신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를 위한 하나님의 미래의 계획이 얼마나 놀라운지 우리는 기대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알 수 없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그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에 내가 한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생명나무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시록 22:1-2)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위해서 에덴동산을 창조하셨을 때에 거기에 여러 가지 열매 맺는 과일나무를 두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마음대로 과일을 따먹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산 한 가운데 있는 과일은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선과 악을 아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기를 이 과일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산 안에 다른 나무가 있었으니 그것은 생명나무였습니다. 이 과일을 먹으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브가 사탄의 거짓말에 넘어가서 금지된 과일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담도 그녀를 따라서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동산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 놓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세기 3:22).
하나님의 관심은 아담과 이브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상태인 죄 중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세상에 저주를 불러 왔으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그 저주가 사라지는 것입니다(계시록 22:3)
당신이 죽음의 나무와 생명나무와 둘 중에서 사람이 생명나무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망의 나무를 먼저 택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담이 왜 생명나무를 두고 사망의 나무를 먼저 택하였을까? 그가 어리석은 일을 했다고 그의 실수를 심하게 비평과 질책을 하기 전에 당신은 오늘날도 인류 앞에는 같은 선택이 놓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생명나무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사람들에게는 생명과 사망의 선택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 앞에 생명과 사망을 놓은 것을 보라 생명을 선택하면 영생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택했던 생명보다 사망을 선택했던 어리석음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그 구절에서 우리는 확실히 생명나무가 하나님의 성으로 옮겨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장면을 계시록 22:1-2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시록 22:12)
만국이 어떤 나라들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지구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땅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거기서 살고 있을까? 성경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많은 것들이 아직도 계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나타낼 놀라운 일들을 숨겨놓았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할 것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계시록22”3-5)
더 이상 죄의 저주가 없을 것이요 밤도 없을 것이며 새로운 이름을 약속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영원토록 통치하는 일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약속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요(마태복음 5:8)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계시록 22:6)
이러한 약속들이 너무나 영광스럽고 너무나 아름답고 우리를 위한 유익이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그의 하신 말씀이 진실하심을 마지막 몇 장을 통해서 확인해주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어떤 요정의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상 (賞)
모든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통치하는 권세, 그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며 직접 배우는 축복과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영광스런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축복인데 이 모든 것 위에 성경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위에서 수고한 일에 대해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을 받게 되었음으로 나는 그에게 복종하며 그를 섬길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가 모든 일에 가장 좋은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하신 일을 기억할 때에 그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그를 섬기게 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감사하기 때문에 그를 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무감에서 주를 섬겨야만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는 값 주고 사신바 됨으로 우리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만합니다.(고린도 전서 6:19-20). 예수께서 질문하시기를 “왜 너희는 내가 명한 것을 순종치도 않으면서 나를 주여, 주여 부르느냐?(누가복음 6:46). 그것은 완전히 일치되지 않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써 섬기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가 명하신 일을 신실하게 순종함에 따라 각자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상 주신다는 약속은 구원과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우리에게 맡기실 중요한 직책과 연결됩니다.
제 IV 막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예수께서 달라트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인이 먼 타국에 떠나면서 종들에게 책임을 맡겼습니다.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 그리고 또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각각 맡겼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계산을 할 때에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와서 하는 말이 “주인님 제가 주신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라고 말하고 열 달란트를 주에게 받쳤습니다. “주께서 말씀하기를 “잘 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땅속에 파묻어 두어 결국은 잃고 말았습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는 큰일을 맡길 것이요 적은 일에 충성치 못하는 자는 그 받은 것 까지도 잃겠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을 심판함에 대해서 기록한 것을 보면 바울은 말하기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졌기를 바라노라”(고린도후서 5:10-11).
어느 날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일에 대해서 우리가 주님께 한일을 계산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주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손에 우리들에게 주실 상급을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그는 신부를 데리려 오실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시록 22:17)
당신은 목이 마른가? 여기서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이사야를 통해서 초청하시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이사야 55;1-3)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사람이 땀을 흘리고 열심을 내어야 그들의 신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하늘의 아름다움을 버리고 우리에게로 오셨습니다. 다른 종교는 사람들이 그들의 신의 노를 식히기 위해서 끝없는 희생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축복하시고 관대하고도 끊임없이 축복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오늘 목이 마르십니까? 아마 당신이 당신의 돈을 떡이 아닌 것을 위해서 사용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의 대가는 당신을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세상이 당신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리라 생각하고 바랐다면 당신은 거기서 공허를 느낄 것입니다. 당신이 세상의 가장 좋은 것을 통해서 성취감을 누려 보겠다고 시도했다면 당신은 참된 아름다움에 대한 목마름을 느낄 것이라는 것은 의심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는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나를 따르라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을 순종하라”
회개란 미안하다보다 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 미안하다, 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곧 그와 같은 일을 다시 하게 될 것입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뜻을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뜻은 겸손히 우리가 성취해 보려고 추구하던 헛된 것을 떠나 돌아서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당신의 잘못되고 죄 된 생활로 부터 돌이키는 능력을 부여 받을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할 때에 당신은 과거의 죄 된 생활로부터 변화 받기를 원하는 참된 소원을 또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이라 불리는 새로운 고귀한 질적인 생활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경건 이외에 다른 길은 불 경건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 말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적합한 말입니다. 우리는 불경견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멸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상은 죽음으로 맴돌고 내려가고 있습니다. 회복의 가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한 징조가 우리주위에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자신이 이러한 것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이 점점 어두움에 휩싸이고 있을수록 하나님께서는 그의 빛을 계속 이 세상에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는 그의 진리를 우리에게 숨기지 않고 계십니다. 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길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명기 30:15-16)
다른 말로 한다면 만일 네가 나의 명령을 따르면 네게 기쁨이 충만할 것이며 네가 번성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을 강퍅케 하여 하나님을 거절하고 자기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계시록 9:21).
다른 말로 한다면 “그들의 악행을 회개치 아니한지라” 인류의 특징을 묘사한 것을 볼 때에 적어도 진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어떠할까? 첫째 사람들은 마귀를 숭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활의 방향을 보여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받기보다 뉴에이지의 사탄섬기는 자들의 지도를 따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쟁이나 부적판 (위지보드)이나 점치는 자들에게 자기의 앞길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마귀를 더 섬기고 있습니다. 뉴에이지 운동이 점점 인기 높아가고 있는데 그들의 하는 일이 과거의 소위 현명하다고 하는 자들의 지혜를 현재 추구하는 자들에게 전해준다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고대적의 술객이 하는 일과 유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악령이 자기의 교리를 무당을 통해서 선포하는 일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현대고객들의 구미에 맞는 제복을 입고 무당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 있는 어떤 공립학교 제도에서는 아이들에게 “영의 지도를 받는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그들의 마음속에 조그마한 집에 살고 있는 현명한 작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가르칩니다.
많은 유명한 록음악 그룹들은 아이들에게 사탄을 섬김으로 성취감을 찾으라고 아이들에게 권장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악령을 경배하는 일이 퍼질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들이 마귀만 섬길 뿐 아니라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우상을 경배하는 일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자들이 어떤 목적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대상이 이상주의, 어떤 원리, 어떤 목표, 어떤 야망, 아니면 어떤 물질 등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경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 속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소원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치되는 것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신명기 4:19)
성경은 말하기를 사람이 경배하는 기질이 사람 속에 있어 무엇을 경배하기 마련입니다.
크리스천 대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세상 교수들에게 조롱을 다하곤 합니다. 교수들은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이 조롱이나 웃음거리의 대상을 삼는 일을 즐겨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충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음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하나님을 믿는 일은 필요가 없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집에 가서 집 뒷마당에 있는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우상은 배요 아니면 스포츠자동차 아니면 자기가 매일 가꾸는 정원일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수들 중에 많은 자들이 뉴 에이지운동에 가담하며 마약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다른 그룹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우상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사람들은 그들이 살인하는 일과 점치는 일들을 회개치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영아들이 유산 클리닉에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살인이 관대히 처리되고 심지어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불하며 법정에서는 이것을 방어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생명에 대한 비 존엄성에 대한 행위를 묵과하시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미국이 이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아마 이 심판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한때 없어졌던 거리의 갱단이 마약을 밀수하며 경재적인 조달을 받고 폭력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약 중독과 황폐와 무분별 살인이 미국의 큰 도시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그들의 복술을 회개치 아니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복술이란 헬라 어원이 Phrmakia인데 그 뜻이 “환각이이나 스릴을 위해서 마약을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세대가 마약을 사용하는 일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십시오. 마리후아나 코케인 같은 것을 젊은이들이 사탕을 구입하는 것만큼 쉬워졌습니다. 이러한 마약들은 사람의 인격을 변경시킵니다. 이 약을 사용함으로 잠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사용자의 뇌를 침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약은 정상적인 판단력을 주관하는 뇌의 기관을 공격하여 사용자가 자기 자신이 마약에 중독이 되고 있다는 판단을 상실하게 되어 스스로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관찰에서 사용자의 인격이 변화되고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약의 영향아래 있는 자들은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치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였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마약들이 뇌에 있는 신경화학물질을 파괴하여 그 약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간음하는 것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늘날 이 세상 주위를 살펴볼 때에 고상한 도덕 표준을 낮추고 궁극적으로 제거해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방송이나 신문들은 한때 우리 사회와 사람들이 가졌던 도덕적인 원칙을 파괴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부도덕이 이 사회에 너무나 깊이 침투하여 이제는 동거하는 동반자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없이 자유로이 말하는 것이 마치 그러한 삶이 도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수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도덕한 것, 불경건한 것, 오늘날 인류의 어두운 조건들을 많이 나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고 한탄하기보다 우리는 구주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사람을 회개로 이끈다고 했습니다”(로마서 2:4) 비록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고 또 살인자요, 마약자요, 간음자요, 도둑이요,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찬 죄인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직도 사랑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독생자를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하여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죽을 자리에 자신이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영원토록 깨 끗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양상을 바꾸기를 아주 주저하면서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올 때까지 기다려 보다가 그때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며 돌아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나타나고 있는 지금 회개하지 않는다면 왜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을 내리실 때 회개하려 하는가? 하나님의 선하심이 당신을 그의 권속으로 데려 올수 없다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때에 그렇게 될 것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당신 생활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당신을 회개로 이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을 아주 미안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아주 마음에 미안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마는 당신을 회개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고 당신의 마음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근심이 회개를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잠간 중지하고 반성을 해봅시다. 당신이 가장 즐기고 있는 죄 된 생활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당신의 영혼과 바꿀 가치가 있을까요? 당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왜 바쳐드리지 못합니까? 주님께서 오늘 당신을 위해서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일 그의 왕국에서 영광스런 영원한 미래와 오늘날 당신을 위한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당신은 목이 마르십니까? 당신은 평화와 소망과 아름다운 것과 의에 대해서 목이 마르십니까? 그렇다면 조용한 마음의 시간을 가지고 당신의 생활을 예수님께 바쳐드리십시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또 당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겸손히 주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구하고 주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어떤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교회는 가버리고 세상은 혼란에 빠져있고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인도 되는 문을 닫으시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 자신이 이 땅에 남지 않도록 나는 지금 이 시간 당신이 그렇게 회개하여 죄용서와 영생을 구하는 기도를 주님께 올리기를 권장합니다.
아버지, 놀라운 소망을 주신데 대하여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앞으로 오게 될 왕국의 영광스런 약속을 주시고 거기서 우리가 함께 화평과 사랑가운데서 살며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지금 당신의 왕국에 속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의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말씀하시고 주님께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 문을 여시고 모든 사람을 초청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들어오는 모든 자들을 영접하심을 감사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그리고 이 세상의 염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자들아 주님께 나와 그들의 생활을 주님께 드리고 그들이 염원하던 찬된 평화를 찾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오늘이 그러한 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왕국에 들어와서 그들의 죄가 용서함을 받는 축복을 받고 그들의 소망이 부끄럽지 않으며 그들의 미래는 끝이 없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기쁨을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성령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서서 크게 외쳐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요한복음 7:37)
부 록
멸망의 가증함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성전이 재건되고 지성소에 적그리스도가 서서 자기를 경배하라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마태복음 24:15)
적그리스도
적그리스도라는 말이 “짐승”(계시록 19:20), “멸망의 아들” “악의 사람”혹은 “불법의 사람 ” (데살로니가후서 2:1-9).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마귀와 동맹을 하여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여러 날 동안 활동할 것이며 주께서 재림하셔서 그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
바벨론 제국은 다니엘서에 잘 기록된 환상과 꿈에서 예언한 세상의 네 왕국 중 첫 번 왕국입니다.
교회 혹은 그리스도의 신부
이 두 용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영접한 모든 자들을 묘사하는 동의어로 사용 될 수 있습니다.
공동 시장(유럽 동맹국 혹은 EU)
구주공동시장 혹은 구주동맹국은 어떤 유럽 국가들의 연합국들인데 이 동맹국들이 마지막 세상을 제패하는 왕국이 될 것이며 혹은 로마제국의 부활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주의 날
주의 날이 대 환란의 기간이 시작되는 시기에 대해서 자주 사용되는 구절이며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통치가 끝나는 기간에 사용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데살로니가 전서 5:1-4, 베드로후서 3:1-10)
제자들
예수께서 말씀하신 제자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자입니다.
동부 불럭
동부 불럭의 나라들이란 한때 정치적 군사적으로 전 소련연방의 나라들을 말합니다.
유브라데 강
유브라데는 에덴동산을 지나가는 네 강중의 하나로써 제일 먼저 언급된 중동에 있는 강입니다. 이 강은 구약성경에 많이 인용되었고 계시록에서 마지막으로 “큰 강 유브리데”라고 언급 하고 있습니다.
구주 경제 동맹국
현재 서구 유럽의 나라 간에 경제적 유대를 가진 공동체이다. 이 회원국들은 공통된 현금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여기서 유럽 경제 동맹국이라 부르다가 요 근래는 유럽 동맹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브리엘
가브리엘은 성경에서 이름 하는 하나님의 두 천사 중에 하나입니다. 이 천사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예수탄생을 선언하기 위해서 나타났습니다.
패 역
패역은 죄와 허물을 합한 것입니다.
메데파사 왕국
메데파사 왕국(메데와 파사왕국)은 다니엘에서 나타난 예언적으로 중요한 네 왕국 중에 둘째 번 나라입니다.
메시아
메시아란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지성소
유대인의 성저에는 두 장소가 있는데 하나는 성소이며 거기에는 제사장들만이 들어가서 봉사하도록 허용되며 지성소는(지극히 거룩한 성소)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들어가서 이스라엘 나라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성전 불경의 죄가 대 환란을 유발합니다.
피엘오(PLO) - 블레셋 후예들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팔레스틴 독립된 나라를 창설하기 위해서 팔레스 틴, 아랍인들이 연합하는 정치적 운동기구입니다.
휴 거
휴거란 교회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끌어 올림을 받는 것입니다.(데살로니가 전서 4:13-18)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께서 자주 약속하신 것과 같이 그가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대 환란의 마지막에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70 이레
“이레”라는 말은 다니엘 9:27절에서 사용되고 있는 그 뜻이 문자 그대로 7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7이란 칠년의 기간을 의미하는데 현 세대의 마지막에 극치를 이룰 것입니다.
죄
과녁을 빗나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과녁은 완전한 것입니다. 그곳에 미치지 못하면 죄입니다.
솔로몬의 성전
솔로몬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위해서 짓기를 허락하신 성전으로 거기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대로 경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봉사하며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멸망의 아들.(적그리스도를 참조)
허 물
허물이란 하나님의 법을 일부러 의지적으로 어기는 것을 의미하며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입니다.
환란 / 대 환란
환란을 (때로는 대 환란이라 부릅니다.) 교회가 휴거된 후에 7년간의 기간을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세우시기 바로 전의 기간입니다. (마태복음 24:14-30)
2008.07.22 23:35분 편집완료.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