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보니 은총
돌아다보니 모든 게 하느님이 이끌어주신 섭리며 은총이었다.
우연인 듯 필연으로, 사소한 듯 비범하게?
“에스텔의 하느님, 찬미와 감사 받으소서!”
유기 서원 시절, ‘ㅂㄹ 선배’가 종종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누워서도 읽고 있었다. 배 위에 성경을 올려놓고. ‘저 책이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누워서도 보게....’ 신학교와 수녀원 선배인 ‘ㄹㅈ 선배’는, “수녀님 시간 되면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강의록을 만들어 봐요.”라고 말했다. 내 입회 동기 p수녀님은 본인이 “학구적 열정이 있어 이책 저책 많이 읽어 보았지만, 성경만 한 책이 없었다”라고 했다.”(당시에는 모두 무심히 보고 들었는데, 때가 되니 기억에 저장된 수녀님들의 모습과 소리들은 메아리가 되어 큰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특히 ㄹㅈ 수녀님의 말씀이. 수준이 결코 강의록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창세기에서 묵시록까지 서너 번 수정한 엄청난 메모와 기록은 수녀님의 한 말씀 덕분이다)
본당 사도직을 할 때, 봉성체를 갔더니 김창악 마리아 할머니는 2층 빌라에 거처하셨다. 할머니는 노환으로 계단을 오르내릴 힘이 없어 2층에만 계셔야 했다. 창살 없는 감옥이라더니 넉넉해 보이는 살림살이도 그분에겐 별 무 소용이었다. 건강은 그러셔도 총기는 대단히 총총하신 분이었다. 얼른 예수님을 영해 드려야 하는데 할머니가 더 많이 말씀하셨다. “신부님, 수녀님 있지? 성경은 구약은 총 00페이지이고 신약은 00페이지야…. 내가 글쎄 오늘부로 성경 전체를 일곱 번 읽었거든, 열한 번만 읽고 하느님께 갔으면 해” ‘헉 일곱 번이나~’ 그때 나는 제대로 한 번도 읽지 않고 있을 때였다. 마리아 할머니는 한글을 깨우치셨다. 성경을 읽기 전에는 날마다 “요기 아파, 조기 아파 병원 데려다 달라”고 성화셔서 같이 사시는 며느님의 마음과 몸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너무 조용하셔서 들여다보니 할머니가 혼자 성경을 읽고 계셨다. 점점 성경통독 삼매경에 빠지시니 아프니 병원 가자는 말도 쏙 들어갔다. 창세기로 시작해 권마다 다 읽으시면, 며느님은 레지오 단원들을 집으로 모셔가 시모님 성경 책거리 잔치를 하셨다. 고부간의 사이도 좋아질 수밖에 없으셔서 이제까지 흉허물은 칭찬으로 변했다. (그날 부끄러운 기억을, 그러나 전환의 큰 계기를 주신 김창악 마리아 할머니를 기억하며 감사를 전한다)
그 무렵 영원한 도움의 수녀님들이 지도하는 성경 공부가 각 교구 본당마다 대성황이었다. 우리 본당도 자매님들도 구름처럼 모여 공부를 했다. 나는 가끔 행사가 있을 때 같이 식사나 했을 뿐, 관심도 없고 참석도 하지 않았다. 만학도로 신학을 공부할 때, ‘방학은 긴데 학기는 왜 그리 짧은지’, 주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학구열은 졸업과 동시에 근 십 년째 담을 쌓고 있었다.
광주 교구 평생교육원 ‘피정*연수과’ 부서로 소임이 났다. 광주는 생경한 곳이다. 지역도 그렇고, 친척, 친구, 더구나 일터가 본당이 아니니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고, 알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하루 일정으로 피정자들이 단체로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상황이니 말이다. 어느 날은 내가 꼭 유배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왜 정약용 요한 선생이 생각났었는지 알 수 없다. ‘어 이백 년 전에 그 양반 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오셨었지, 유배 와서 공부하셨지, 책도 엄청 많이 쓰셨지.... 나도 공부 좀 해 볼까?’
교육원 장소는 전에 광주교구 신학교 터로 일부 교구청 부서들도 함께 있었는데, 성서 사도직 국에서 붙여 놓은, ‘2005년 동계 성경 통독 프로그램’ 이 눈에 확 들어왔다. 피정 업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원장 신부님께 말씀드리니 일정과 큰 금액의 경비를 두 말씀 않으시고 허락해 주셨다. 김 베드로 원장 신부님은 인격적 사목적으로 직원을 많이 배려하는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시다.
피정은 2005년 성탄절에 들어가 송년 신년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 담당 신부님이 시기적으로 들 뜨기 쉬운 경향을 고려해 일부러 맞추신 것 같았다. 그런 일정 구성이 너무 좋았다. 성탄 ♬ 성탄♬ 화려하고 장엄한 성탄 행사보다도. 세례 후 처음으로 제대로 신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먹고 자고 미사하고 남는 시간은 성경만 통독했다. 참으로 은혜로웠다.
연수일정을 마치니 이제 혼자서도 성경을 볼 수 있는 힘이 불끈 생겼다. 자리로 돌아와서 나의 일하는 시간이 한 시간씩 빨라지고 늦어졌다. 함께 일하는 직원이 오기 전 한 시간 전에 도착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하면서 성경을 통독했다. 찬찬히 성경을 보면서, 본문에서 저자가 중요하게 여긴 부분과 나에게 와 닿은 부분을 묵상하며 메모하였다. (이것은 초대교회부터 있어 온 전형적인 성경 공부 방법으로 렉시오 디비나이며 성서백주간 공부 방법이다.)
그날 이후 거의 매일 성경 말씀으로 마음이 가고 대부분 남은 시간을 말씀과 함께했다. 광주에서 신구약 성경 통독을 마치고 바로 수녀원 본부에 정보를 주었다. 마침 담당 신부님이 광주 신학교로 발령이 되시며 형편이 맞아, 200여명 회원 대부분이 몇 차에 걸쳐 성경통독 피정을 할 수 있었다. 회원들이 말하길 역대 피정 중 최고였다고 한다. 그리스도인과 수도 회원으로 당연한 소회라고 생각한다. 회원 수녀님들도 나처럼 힘을 받은 것이다. 솔직히 수도회원에게 성경만큼 직접 보는 그것만큼 큰 은혜가 무엇이 있으랴. 수녀회의 규정집인 회헌도 성경을 보니 자동으로 이해되었다. 각기 제자리에 성경에 맛들이고 살아가기 시작한 수녀님들이 많이 늘어났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물론 아닌 수녀님들도 있다.
2010년 초 성서백주간 소임을 받았다. 보통 삼 년으로 임기가 끝나기에, 그 시간과 장소에 최선을 다해 유영했다. 임기 종료 후 다시 본당 사도직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형편이 되면 교우들과 성서백주간을 하였다.(형편이란 본당 신부님의 사목적 재량을 말한다.)우연한 필연으로 이렇게 큰 축복과 은총을 만날 수 있도록 광주교구와 백주간에 소임을 내 주신 두 분의 관구장 수녀님, 광주교구 김정용 베드로 신부님과 정승욱 다니엘 신부님께 감사 드린다.
그렇게 이십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갔다.
내게 성경은 무엇일까? ‘ 일)공부이며 또한 놀이’이다. 이만한 공부와 놀이가 없다. 분량도 어마어마하고 담고 있는 내용도 무궁무진하니, 남은 시간을 다 바쳐도 빙산의 얼음 한 조각일 공부가 되고 놀이가 될 것이다. 그래도 이것이 어디인가? 하느님을 알고 말씀을 알았다는 것이. 이 부분에서 김창악 마리아 할머니가 생각난다. "수녀님 성경이 너무 재미있어예" 할머니가 툭 던지신 말씀 내가 받을 줄이야!
성서 백주간은 또 어떻기에 이리 매력적될까? 백주간은 다 허용한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만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면 남녀노소 모두를. 그리고 그 허용은 경험한 하느님 백성에게 가슴 뛰는 감사와 자긍심을 갖게한다. 마치 예수님이 당신을 뒤따르는 무수한 제자들에게 그러하셨듯이. 그런 면에서 백주간은 성경 프로그램중에 최고이다.
한 가지 부끄러운 성찰과 고백을 공유한다. 하느님 백성의 참 모습은 ‘열공’보다 ‘증거’이다. 이 시대 “한국교회는 말씀) 열공자가 세계 최고라는데, 말씀) 증거자도 많으냐?" 라고 물으셨다는 교황님 질문에 우리의 주교님들이 아무 대답을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서도 교회 안에서도 그 상황을 목격한다. 그래서 교회에 수도회에 나에게 가장 하느님께, 부끄럽고 죄송하다. 그나마 궁색한 일말의 변명을 하자면, 이렇게나마 말씀으로 신앙과 삶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한다. 그리고 하느님, 교회, 수도회 나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돌아다보니 모든 게 하느님이 이끌어주신 섭리며 은총이었다.
우연인 듯 필연으로, 사소한 듯 비범하게?
”에스텔의 하느님, 찬미와 감사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