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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가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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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 게시판 스크랩 여수 중앙동 천사골목과 무인도 장군도
멋진남 추천 0 조회 13 12.07.07 11:5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 중앙동 음식골목에 유명한 횟집들이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 중앙동 골목에는 유난히 석축이 많다.

옛날 좌수영성을 그대로 담장으로 삼았거나 성돌을 빼서 석축을 쌓은 것 같다.

 

▲ 중앙동에는 수산상회가 즐비하다.

 

▲  아직도 옛날 여관이 남아있는 중앙동 골목길이다. 

 

▲ 먹자골목의 전설이 담겨있는 중앙동 골목, 이곳에 회를 안주로 삼아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선술집 골목이 들어서기를 기대한다.

 

▲ 여수의 명동 진남로상가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엑스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중앙동 함남면옥을 비롯한 유명 음식점이 많이 들어선 음식점 골목이다.

 

 

▲  중앙동 좌수영 음식 거리이다. 맛있는 선어와 생선구이, 갈치조림, 서대회, 뼈꼬시 등을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여수 대표적인 음식골목이다.

 

여수엑스포의 팁, 중앙동에 가면

박람회를 찾아온 관람객들은 시간에 쫓겨 박람회장을 다 보지 못한다. 그래도 아쉬운 것이 여수를 갔으면 여수의 과거와 사람 사는 모습도 보고 싶어한다. 거기에다 가까운 섬까지 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여기에다 오랫동안 지켜내려온 여수의 맛까지 맛보고 싶다면 바로 중앙동으로 오면 된다.

 

바로 중앙동에는 여수의 과거 진남관과 좌수영성이 있고, 음식골목에다 무인도인 장군도, 천사벽화 골목이 있다.

 

 

▲ 중앙동에서 바라본 장군도와 돌산대교이다.

 

▲ 건어물 상회가 줄줄이 늘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최근에 중앙동 물량장에 조성한 공원이다.

 

▲ 말썽 많았던 이순신광장이 최근 해운항만청의 물량장 확대로 더 넓어졌다.

 

▲ 이순신광장에는 이순신과 그를 도운 장군들에 대한 소개를 하는 조형물이 많다.

 

중앙동을 아시나요?

아파트와 빌딩이 많은 요즈음에는 어느 도시를 가도 똑같은 모습이다. 그 도시의 진짜 멋은 역사가 오래된 옛 도심의 뒷골목을 가면 알 수 있다. 특히 골목길을 걸으면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냄새가 난다. 지금과 같이 신 시가지와 주거지역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그 도시의 중심을 중앙동이라고 하였다.

 

옛 여수시의 중심인 중앙동은 번화가였고, 역사가 있는 지역이었다. 좌수영성이 있는 곳이고, 진남관과 이순신장군 대첩비각이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이순신광장이 세워졌다. 1970년대까지 이곳 중앙동에는 부산으로 떠나는 여객선터미널이 있었고, 수산시장이 있었다. 지금은 아침 일찍 선어중매시장이 열려 옛날의 활기찬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옛날 중앙동 선창가에는 어선들이 많이 드나들어서 비린내가 진동을 하였고, 건어물상회와 선구점이 유난히도 많았다. 지금은 해양항만청에서 선창가를 물량장으로 만들어 해양공원을 조성하여 어선과 여객선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제빙공장에서 만든 사각 얼음덩어리가 컨베어벨트를 타고서 덜커덕거리며 통채로 운반되어 고깃배에서는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모습이 신기하였다.

 

 

▲ 한산해진 아침 때 중앙동 선어시장이다. 고기를 사가는 소매상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 지금 한창 맛이 있는 서대가 들어있는 상자이다.

 

▲ 토막 내어 구워먹거나 감자를 넣어서 지져먹으면 좋은 갈치이다.

 

선창가 뒷골목

진남관이 있었던 주위는 좌수영성이 있었고, 진남관 앞 망해루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이순신광장이 있는 곳은 정박해있던 군선들을 파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파제와 같은 바닷물 속의 담장인 수장이 있었다. 그래서 수장동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중앙동 로터리에 남문이 있어서 남문밖, 구장대, 중장동으로 불렀다.

 

그 후 1953년 여수의 중심이라고 해서 중앙동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인근 고소동과 교동을 합쳐 행정동인 중앙동이 되었다. 고소동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작전 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내린 곳으로 알려진 고소대가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중앙동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선창가이고, 여객선 뱃머리여서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던 곳이었다. 여수 최대 번화가인 진남로 상가가 지금도 성업 중이고, 여수의 맛있는 음식점들이 몰려있는 음식골목이 있다. 언제든지 어판장에서 귀하고, 싱싱한 해산물을 사와서 만든 음식은 손님들을 불러모았다. 싱싱한 해산물을 안주로 삼아서 술을 마시는 술집은 밤 늦도록 소리가 요란하였다.

 

중앙동 뒷골목에 들어서면 옛날 선원들과 섬 사람들이 하룻밤을 보내던 여관들이 지금도 자리를 잡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은 골목을 따라 가면 선원들과 선창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았던 집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반듯반듯한 돌로 축대를 쌓거나 벽을 만든 것을 보면 옛날 좌수영성터였을 거로 추측이 된다.

 

이곳 중앙동 해안통에는 12월 대선의 유력한 주자로 떠올라 있는 안철수 교수의 처가가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천사골목인 벽화골목이 시작되어 젊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 장군도에서 바라본 한신아파트 아래 고소동 천사벽화골목, 산동네가 벽화로 새롭게 변하였다.

 

 

▲ 고소동천사벽화골목이 시작하는 곳에 붙은 안내도

 

▲ 고소동 천사벽화골목은 주민들이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구간은 비용 1,800 여만원을 주민자치위원회가 마련하였다.

 

천사들이 사는 벽화골목 천사골목

여수를 처음 찾아온 사람들은 집이 모두 산꼭대기에 있다는 것에 놀란다. 그것은 항구도시는 바닷가에 모여 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산꼭대기에 집이 있으면 멀리 배가 들어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어서 준비를 하고, 늘 바다를 쳐다보면서 그 날의 일을 계획할 수 있어 편리하다. 

 

옛날 여수에 와서 돈 자랑하지 말라던 수산업이 호황이던 시절 여수는 한 척의 배라도 갖고 있는 선주가 최대 부자였다. 선주와 선원들이 살던 골목길목에 이제는 여수를 상징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생뚱맞게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서 시야를 가리던 곳 아래 마을이 하얀색으로 변하였다. 

 

 

▲ 여수산단공장장협의회와 1단계 사업으로 처음 시작한 벽화골목으로 올라간다.

조금 색이 바랜 것 같아서 높다란 계단에 많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을 느낄 수가 있다.

 

 

▲ 천사벽화골목이 시작하는 중앙동 골목에는 유력한 대선주자 안철수 교수의 장인, 장모가 사는 건물도 있다.

 

 

그 하얀 도화지에 2010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천사벽화골목은 모두 7개의 구간이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마을 주민들이  기금믈 마련하여 조성한 2구간은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처음 1단계 사업은 여수산단 공장장 협의회와 GS칼텍스가 시작하였고, 2단계는 여수시가 나서서 완성하였다.

                    

천사골목 벽화는 패밀리마트에서 시작하여 1구간은 중앙4길 25-1까지 해양관련 동심의 세계, 2구간은 중앙4길 7-1길까지 역대 해양엑스포와 하멜 표류기 관련, 3구간은 대광빌라까지 여수 풍경 및 해양 관련 일상 이야기, 4구간은 고소5길 13까지 개장골마을전설, 포토존 설치, 5구간은 고소5길 27-4까지 주변 환경과 자연 풍경, 6구간은 대첩비각까지 골목길 색칠, 무형의 사람군상, 7구간은 진남관까지 좌수영생활, 이순신 일대기를 주제로 그려져 있다. 

 

 ▲ 고소동 출신으로 극중에서도 여수말을 사용하는 탤런트 백일섭 님을 그린 벽화

 

▲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신호연을 만들어 붙였다. 벽화의 새로운 기법으로 등장하였다.

 

▲ 만든지 오래 된 구간은 칠이 벗겨지지만 주민들의 사랑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 가수 이승기가 1박2일에서 서울 이화동에서 찍어 유명한 천사날개 그림도 있다.

젊은 연인들이 날개를 달아 사진을 찍는다. 모두가 천사가 되는 순간이다.

 

▲ 고소동은 산동네로 집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바다 사정과 배 출항을 지켜볼 수 있다.

 

▲ 그냥 오르고 내려가면 지루할 텐데 벽화 이야기를 들어가며 걸으면 심심치 않다.

 

▲ 천사벽화골목에 있는 이발소도 어울리게 간판을 달았다. 추억과 낭만을 만들어주는 이발소이다.

 

진남관 건너 음식골목 뒤에서 시작한 골목길 걷기는 여관 골목을 지나 중앙동 선어시장쪽에서 오르는 길로 택하였다. 큰 도로에서 고소대 대첩비각까지 올려다보면 까마득하다. 힘겹게 중복도로까지 올라가서 6, 7구간을 제외하고, 거꾸로 걷는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익숙한 탤런트 백일섭 님의 익살스런 모습의 그림이 식객 허영만 화백과 함께 나온다. 탤런트 백일섭 님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곳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 천사골목 포토존에서 바라본 돌산도와 해양공원 사이 모습이다.

말도 많았던 거북선모형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

 

▲ 천사벽화골목에서 바라본 옛날 삼양사 건물과 제재소이다. 역사 흐름이 멈춘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천사골목을 걸으면 벽화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에 못지 않게 산동네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경치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돌산섬과 해양공원 사이를 오가는 배와 돌산 1, 2대교의 웅장함에 눈이 심심하지 않다. 위에서 본 가지런한 해양공원 바닥은 모자이크 작품이다. 커다란 옛 삼양사 건물과 목재를 켜는 제재소는 그 모습 그대로여서 추억이 물씬 풍겨난다.

 

 ▲ 14년째 돌산나룻배를 운항하는 선장님, 손님이 없어서 기름값도 못한다고 한다.

 

▲ 옛날 나룻배의 정취를 느끼려면 요금과 선장 전화번호가 필요하다.

 

▲ 돌산도와 장군도를 다니는 나룻배, 오래 되어서 낡았고, 외부를 판옥선으로 꾸며서 돌산1, 2대교 밑까지 운행하는 유람선 기능까지 하자는 의견도 있음.

 

중앙동 1번지 무인도 장군도

해양공원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멀리 바다로 나가지 않고 도심에서 이처럼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이다. 해양공원 끝에는 돌산나룻터가 있다. 옛날 돌산대교가 들어서기 전 돌산을 드나들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야 한다. 불과 5분 정도 배를 타고서 돌산을 갈 수 있어 무척 편리한 교통 수단이었다. 돌산대교가 들어선 지금은 손님이 없어 하루에 2, 3만원의 수입에 배를 움직여야 해서 선장은 울쌍이다. 기름값도 나오지 않는 운항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장군도까지 나룻배 요금은 왕복 3천원이고, 나룻배는 돌산에 정박해 있어서 건너 중앙동에서는 선장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면 건너온다. 지금은 주로 장군도를 가는 관광객이나 낚싯꾼들이 많이 탄다. 장군도는 중앙동 산 1번지인 섬으로 남산동과 돌산도 사이에 있는 무인도다. 돌산대교를 건너다 보면 왼쪽으로 보이는 섬이 장군도다. 면적은 0.0178㎢, 높이는 80m, 해안선의 길이가 0.6km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이다. 그러나, 이 장군도 섬은 이름만큼이나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 물살이 빠른 장군도는 고기가 잘 잡히는 유명 낚싯터이다.

 

▲ 길이는 짧아도 아담한 숲속길이 있다.

 

▲ 장군도에는 신이대 숲길이 만들어져 오동도와 같은 분위기가 든다.

 

▲ 여수항을 지켜주는 작은 등대와 야간 경관 사업으로 만든 가로등이 보인다.

 

▲ 장군도 갯가로 나오면 돌산대교 아래 모래밭과 카페, 마을이 보인다.

 

▲ 장군도에서는 돌산대교를 올려다본다. 대교 아래 리조트 공사를 하고 있는 경도가 수평으로 보인다.

 

▲ 장군도 주위는 침식을 막기 위해서 2005년 석축을 쌓아서 돌아다니기가 어렵지 않다.

 

 

▲ 섬 한 가운데로 들어서면 널따란 잔디밭이 있어서 작은 음악회를 열 수가 있다.

 

장군도에는 연산군 때 이량 장군이 축성한 수중성이 있다. 장군은 1497년(연산군 3년)에 전라도 흥양에 일어난 왜변을 다스린 공으로 전라좌수사로 발탁되었다. 절도사 이량 장군이 이렇게 수중성을 석축하게 된 이유는 왜구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왜구가 여수항과 돌산도 사이의 빠른 물살을 이용하여 침범하면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왜구의 침입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수중에 큰 돌을 약 100m 정도의 축대를 쌓아 성곽을 만들었다.  

 

▲ 옛날 수중성이 있었던 곳이다. 큰 돌무더기가 다른 곳에 비해 드러나 보인다.

 

 

▲ 이량 장군이 수중성을 쌓은 것을 기념한 빗돌이다.

 

 

▲ 조그만 섬이지만 숲길과 갯가길을 알려주는 조감도이다.

 

 

전국 유일의 수중성 장군도의 묘미        

지금 수중성은 대부분 사라져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으나 돌산과 장군도 사이 가장자리로 갈수록 큰 돌덩이가 놓여있는 것을 보면 대강 추측을 할 수 있다. 한쪽에 '장군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 장군도라는 명칭은 이량 장군이 수중성을 쌓고 이후에 빗돌을 세운 데서 비롯된다. 수중성을 쌓은 것을 기념하는 방왜축제비는 장군성비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고 전한다. 이량의 5세손 이배원이 글을 짓고, 6세손 이릴이 글씨를 써 1643년(인조 21)에 세웠다. 그 후 비가 훼손되자 8세손 이삼이 1710년(숙종 36) 지금의 충무동에 다시 비를 세웠고, 1984년 진남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장군도에 얽힌 전설은 장군도가 마치 여의주와 같아서 당머리 남산의 용과 돌산의 용, 경도의 용 세 마리가 서로 차지하려는 모양과 같다는 것이다. 장군도와 당머리 사이에 유속이 매우 빨라 섬 주변이 깎여 들어가고 있어서 여수시에서는 2005년에 해안 주변에 석축을 쌓아 침식을 막는 공사를 하였다. 해변을 따라 걷기가 편리해졌지만 갯가의 멋이 덜하다. 쉼 없이 오고가는 배들과 조그마한 등대가 세워져 있다. 해류의 흐름이 빠른 곳이어서 물고기가 많이 잡혀 낚싯꾼들이 많이 찾는다. 

 

▲ 장군도에서 바라본 종고산과 진남관, 여수항의 모습이다.

 

▲ 돌산도 진두에 만들어진 물량장에 진모 주차장까지 가지 않은 엑스포 관광버스들이 주차해있다.

 

▲ 전화를 하면 나룻배가 데리려 온다.

 

무엇보다도 장군도의 매력은 갯가를 한 바퀴 돌면 각기 다른 여수항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북쪽으로는 종고산 아래 고즈녁하게 자리잡고 있는 진남관과 여수항의 모습을 비롯하여 서쪽에는 조선소와 카페, 작은 해수욕장 모래밭이 보인다. 남쪽은 돌산대교와 그 아래 한창 리조트 개발 중인 경도가 한 눈으로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천사골목과 해양공원, 돌산2대교가 보인다. 세계적인 아름다운 항구 여수항을 360도 돌려볼 수 있는 곳이 장군도이다.  

 

장군도는 겉보기와 다르게 숲속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와 숲이 잘 조성되어 있다. 섬 한 가운데 잔디밭과 의자가 있어 야외 문화 행사와 모임들을 열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재향군인회에서 벚나무를 많이 심었으나 지금은 벚나무보다 신이대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 숲길은 아무렇게나 자란 풀과 나무 때문에 어수선하다. 숲속 길과 갯가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장군도 답사는 짧은 시간에 비해 여운이 오래 남는 답사 길이다.

 

 

여수풀꽃사랑 7월 첫주 정기 답사

 

▣ 때 : 7월 7일 (토)

▣ 모일 곳과 시각 : 오전 10시 30분 중앙동 이순신광장

▣ 답사 경로 : 이순신광장 - 선어시장 - 안철수교수 처가 - 고소동 천사벽화골목 - 해양공원 - 중앙동 돌산나루터 - 장군도 답사 - 중앙동 돌산나루터 - 중앙동 음식골목 - 길손식장 서대회, 생선구이 식사 - (선택) 박람회장 셔틀버스 탑승

▣ 준비물 : 점심값, 장군도 왕복 배삯

▣ 대상 : 누구나

▣ 비가 와도 우산 쓰고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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