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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바래길, 봄 마중 가다
남녘에서 전해오는 꽃 소식에 마음이 들뜨는 3월.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도 향긋한 봄을 머금었다. 훈훈한 바람이 스치고 간 대지에 생명이 꿈틀거리고 남도에는 봄꽃이 다투어 피어오른다. 파릇한 새순과 화사한 봄꽃이 어우러진 대자연이 손짓한다. 남해바래길에 섰다. 풋풋한 초록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남쪽 바다의 쪽빛 물색과 어우러지는 초록의 느낌은 따뜻하다. 바래길에서 아찔한 봄을 맞는다.
<남해바래길에서 가끔 뒤돌아보면 걸어 온 길이 한눈에 펼쳐진다.>
남해바래길, 보물 찾으러 가는 길
남해를 ‘보물섬’이라고 한다. ‘남쪽 바다’를 지칭하는 남해가 아니라 경상남도 ‘남해군’이라는 행정구역이다. 이곳은 연륙교로 육지와 연결돼있지만 제주도거제도진도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68개의 섬이 302km에 이르는 해안선을 품고, 산과 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남해를 보물섬이라고 부른다.
그 곳에 남해의 역사, 문화, 생태를 오롯하게 담아낸 ‘남해바래길’이 있다. ‘바래’는 남해의 토속말로 어머니들이 물때에 맞춰 호미와 소쿠리를 들고 갯벌과 갯바위로 나가 해초류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말하며, 그 때 가던 길을‘바래길’이라고 한다. 바래길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며, 갯가에서 가족의 먹거리를 담아왔던 ‘생명의 길’이다. 그 길에는 남해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바래길은 남해사람들의 억척스런 삶이 묻어있다. 길을 걸으면 풋풋한 마늘 냄새가 온몸을 감싼다.>
남해는 투명한 바다에 남해도와 창선도 두 섬을 주축으로 올망졸망한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고 그 사이로 고깃배가 유유히 떠다닌다. 산이 바다로 곤두박질치는 가파른 산비탈은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절경을 연속 펼친다. 남해로의 여정은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 한다.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자연이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주는 곳이 바로 남해다. 그러나 그 풍광 뒤에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스스로를 길들이며 살아온 남해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가파른 산기슭에 다랭이논을 일궈야 했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다로 나가야 했던 삶의 엄숙함이 곳곳에 스미어 있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에 선정된 남해바래길은 남해군 해안의 특별한 자연환경을 가슴에 담으며 걷는 길이다. 10개 코스에 총 139.3km 에 이르는 도보여행길로 47시간이 소요된다. 그 중 1코스 ‘다랭이지겟길’을 걷는다. 봄꽃이 아우성치는 그 길에서는 느리면 느릴수록 행복해진다. 천천히 걸을수록 많이 보인다. 멈추면 모두 보인다.
다랭이지겟길, 봄꽃을 지르밟다
다랭이지겟길은 평산항에서 시작해 사촌해수욕장을 거쳐 가천다랭이마을까지 이어지는 해안길이다. 남해의 수려한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척박한 생활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논과 밭으로, 또 바다로 다녔던 지겟길을 통하여 선조들의 억척스러운 삶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평산버스정류장에서 길을 시작한다. 평산항 골목 담벼락에 기댄 바래길 안내판이 따뜻하다. 골목을 지나 마을 언덕에 오르자 푸른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가슴이 후련해지는 바다풍경을 바라보니 근심걱정은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훈풍에 실려 오는 바다 냄새가 짭조름하다. 언덕배기 황토밭 사이로 난 길은 거칠 것이 없다. 자연 그대로의 황톳길에는 양지꽃, 냉이, 봄맞이꽃, 제비꽃, 민들레, 광대나물, 봄까치꽃 등 봄꽃이 지천으로 밟힌다. 들꽃은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예쁘다.
<바래길에서 만나는 봄꽃들. 양지꽃, 봄까치꽃, 황새냉이, 등대풀과 광대나물(왼쪽 위부터)>
한 구비 돌자 마늘밭 아래로 쪽빛 바다가 다가온다. 바다 건너는 여수땅. 돌산대교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광양항으로 드나드는 화물선이 줄을 잇는다. 긴 뱃고동이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다랭이지겟길은 줄곧 바다를 끼고 들고난다. 작은 언덕을 넘고 마늘밭둑을 지난다. 언덕이라도 그리 길지 않아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어느새 언덕배기를 넘는다. 노란 유채꽃이 쪽빛 바다와 어울려 수채화 같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반가운 숲길을 지나기도 하고 매화꽃, 목련꽃이 어우러진 작은 어촌과 반달모양의 백사장을 걷기도 한다.
길은 유구마을 몽돌해안에서 도로로 올라섰다가 산비탈을 휘돌아 사촌해변으로 내려간다.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사촌해변은 아담하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에는 지난 여름의 발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고,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봄 바다는 백사장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사촌해변에서 언덕길을 넘으면 선구 몽돌해변. 항촌조약돌해안까지 몽돌을 밟으며 걷는다. 발 아래에서 자그락거리는 몽돌 부딪치는 소리와 바닷물이 밀려왔다가 몽돌 사이로 싸르락 물 빠지는 소리가 맑은 하모니를 이룬다. 그 소리에 마음이 안정되고 영혼은 자유롭다. 몽들이 부탁을 한다. ‘흔한 몽돌이지만 저에게도 가족이 있습니다. 저를 데려가지 마세요’ 라고.
<몽돌에 찰싹거리는 파도소리는 모래해변과 다르다. 발밑에서 ‘자그락자그락’거리는 소리도 기분 좋게 들린다.>
바래길에서는 자주 뒤를 돌아다봐야 한다. 다른 길과는 달리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걸어온 길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남해 빛담촌 전원마을에서 항촌마을을 뒤돌아본다. 남해는 바다와 땅이 온통 푸릇푸릇하다. 마늘밭, 시금치밭 사이로 난 돌담을 끼고 지나 온 길이 뚜렷하고 바다를 품고 있는 마을은 한없이 평화롭다. 파랗게 돋아난 마늘은 남해의 보물 중 하나다. 해풍을 먹고 자란 남해 보물섬 마늘은 브랜드를 인정받고 있다. 남해에는 국내 최초로 마늘박물관(마늘나라)과 마늘자원연구소가 들어서 있고 해마다 5월에는‘보물섬 남해마늘축제’가 열린다.
가천 다랭이마을, 숨막히는 풍경을 만나다
다랭이지겟길은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정점을 찍는다. 마을 입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숨이 막힌다. 설흘산과 응봉산의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하여 바다로 미끄러질 듯 아주 극적인 모습의 가천 다랭이마을. 설흘산 8부 능선까지 100층이 넘도록 촘촘하게 계단을 이룬 다랑논, 그 다랑논 아래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풍경이 환상적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자리한 다랑논 행렬은 경이롭다.>
다랑논에는 한 줌 땅에 대한 섬사람들의 집념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마을 사람들은 산비탈을 깎고 석축을 쌓아 계단식 다랭이논을 일구었다. ‘다랭이’는 다랑논을 뜻한다. 가파른 산허리를 잘라 평평하게 고른 뒤, 숱한 돌을 손으로 들어내어 담을 쌓고, 바닥에 진흙을 발라 물이 빠지지 않게 해야 비로소 논이 된다. 그렇게 힘들게 얻은 논이기에 다랭이마을에는 삿갓배미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자신의 논을 세어보니 하나가 모자랐다. 아무리 세어도 그 논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땅 바닥에 놓인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잃어버렸던 논 한 배미가 있었다고 한다.
쪽빛 바다 위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한 다랭이마을은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수많은 민박집과 식당, 카페가 들어선 지도 오래됐다. 찾는 사람이 많으니 자연히 음식점과 숙박할 곳도 늘어난다. 층층이 다랭이 논에는 초록의 마늘이 가득하다. 벼농사대신 수익성이 좋은 마늘, 시금치 등의 밭작물을 심기 때문에 다랑논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 풍경을 이제는 보기 힘들다.
옛 가천초교, 가천다랭이 마을 언덕배기 정자에서 남해바래길 1코스를 마친다. 정자에서 내려다 보노라면 앵강만 바다가 환한 코발트색으로 빛나고, 멀리 다랭이마을 골목을 걸어가는 사람과 작은 집이 모두 풍경화 속으로 들어온다.
금산 보리암, 남해바다의 절경을 내려다보다
금산(705m)은 남해가 간직하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남해바래길에서 살짝 벗어난 금산을 그대로 지나치면 매우 섭섭하다. 미조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금산입구에서 내려 보리암으로 올라간다. 차를 이용하면 국립공원 복곡탐방지원센터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보리암 뒤쪽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15분만 걸으면 보리암에 도착하지만 가파른 등산로는 2시간이나 걸린다. 그렇지만 힘들여 올라 온 노고만큼 멋진 풍광이 기다리고 있다.
남해도 남쪽에 솟아있는 산이 바로 금산(錦山)이다.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품은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기기묘묘한 암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절경을 빚어낸다. 금산 정상 턱밑쯤에 보리암이 있다.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기도 도량으로 손꼽는 보리암은 간절한 소망을 지닌 불자들이 한 번쯤은 방문하길 꿈꾸는 곳이다
<남해 금산에서 바라보이는 보리암과 한려해상국립공원. 섬들의 향연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앞 난간에 기대서면 남해바다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조도, 호도 등과 그 너머로 두미도, 욕지도, 연화도까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펼치는 향연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고운 모래사장이 반짝반짝 빛나는 상주은모래해수욕장도 손에 닿을 듯 눈앞에 다가온다. 이 해수욕장의 절경에 반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보리암 해수관음상 아래에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효험을 봤다는 ‘기도발’을 바라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금산을 찾은 사람들은 대개 절집만 들렀다가 내려가곤 하지만, 보리암 종루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금산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풍광이 빼어난 암봉이 불쑥불쑥 솟아있다. 보리암 뒤쪽에 절하는 모양을 한 바위 형리암, 고승들이 앉아서 불법을 닦았다는 좌선대, 바위 모양이 ‘화엄(華嚴)’의 한자 화(華)자 모양을 닮았다는 화엄봉, 사랑에 빠진 남자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상사암 등 38경의 형상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3월 하순, 금산 정상근처에 지천으로 깔린 얼레지가 꽃을 피웠다. 가녀린 꽃줄기 끝에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뒤로 넘기고 발그스름한 얼굴로 수줍은 양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얼레지꽃. 새색시가 길손을 맞이하는 듯 청순하기 그지없다. 높은 산의 숲 속에서 자라는 이 들꽃을 만난 희열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금산에서 뜻밖에 얼레지꽃과 마주한 것은 남해 봄 마중 길의 화룡점정(畵龍點睛).
[여행정보]
◎ 코 스 : 평산항→유구 진달래군락지→사촌해수욕장→ 선구몽돌해변→ 항촌조약돌해변→가천다랭이마을⟶ (구)가천초교
◎ 거 리 : 16km (5시간 소요)
◎ 여행적기 : 봄(3,4월)
◎ 문 의 : 055-863-8778(남해바래길 사람들)
◎ 대중교통 : 남해버스터미널에서 평산행 농어촌버스(7:00, 7:45, 9:30, 10:40, 12:25, 14:55, 16:35, 18:35, 20:15), 다랭이마을에서 금산 보리암
을 가려면 남해읍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이동면에서 하차하여 미조방면 버스로 갈아타고 금산입구에서 내린다. 바래길 2코스에
서 트레킹을 마칠 경우 종점인 벽련마을에서 미조방면 버스를 타고 금산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숙 박: 힐튼남해 골프&스파 리조트(055-860-0100), 남해스포츠파크호텔(055-862-8811), 홍현황토휴양촌펜션(019-524-6242),
남해월포가족휴양촌(055-863-0548), 마린피아 남해리조트(055-862-0099),상주비치펜션(055-863-6001),
고래게스트하우스(055-863-0803), 올댓남해게스트하우스(010-7441-1539)
◎음 식 점 :시골할매막걸리 (멍게비빔밥, 055-862-8381), 다랭이팜농부맛집(멸치쌈밥, 010-5117-1111),
남해자연맛집(멸치쌈밥, 055-863-0863), 하나로횟집(물메기탕, 055-862-2166), 상주바다횟집(생선회, 055-860-8606)
출처 : 리에또웹진
첫댓글 멋집니다~ ^^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