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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혜초 스님이 머물렀던 선유사의 법왕탑. |
지난 호에 이어 밀첨식 불탑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중국에서 밀첨식 불탑이 유행한 시기는 동한시대(25~250)와 남북조시대(220~589)부터이지만, 현존하는 것은 수당시대 이후의 것이다. 수나라시대(581~ 618)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서안에 있는 선유사(仙遊寺) 법왕(法王)탑〈사진1〉은 1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로 풍광이 수려해 백거이가 이곳에 관리로 있을 때 현종과 양귀비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를 집필한 장소로도 알려진 곳이며, 특히 우리나라의 불교역사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섬서성(陝西省) 주지현(周至縣)에 있는 선유사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저자인 신라의 혜초 스님이 774년 당나라 8대 황제인 대종(代宗)의 간청으로 9일간 머물면서 인근 옥녀담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낸 곳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절이다. 문헌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수나라 문제가 개황(開皇)18년(598년)에 건립하고 2년 후인 인수(仁壽) 원년(601년)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법왕탑을 조성하였다. 최근에 이곳이 수몰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2001년 5월 우리나라 조계종 총무원과 당시 조계사 주지의 소임을 맡고 계시던 지홍 스님 등의 원력으로 새로 이전 복원되었다. 그리고 복원된 선유사에 혜초 스님의 기념비를 세우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현판으로 비각을 세워 혜초 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 곳이다. 현존하는 밀첨식 양식으로 가장 오래된 선유사법왕탑은 4각 7층으로 높이가 35m에 이른다. 같은 밀첨식 양식으로 당나라 시기(618~907)에 조성된 불탑은 개원사수미탑(4각 9층), 보광사탑(4각13층), 불도사탑(4각 13층), 성용사탑(4각 7층)등 대부분이 기단 및 탑신이 4각을 이루지만, 백량수성사탑(6각 13층), 양채전탑(8각 9층), 소혜탑(8각 13층)처럼 6각이나 8각의 양식으로 조성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나라 이후 북방의 유목민족이었던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916~1125) 시대에는 8각형 양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대부분 황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불탑이 조성되어 규모가 크고 조형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사진2> 내몽고자치구 적봉시에 있는 대명탑. |
내몽고자치구 적봉시에 있는 대명탑〈사진2〉은 요대 말기인 1098년에 조성되었는데, 8각 13층으로 높이가 81m가 넘는 것으로 현재 중국에서는 개원사탑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탑이다. 이 불탑의 1층 탑신에는 8각의 각 면마다 여래상과 좌우 협시보살 및 역사상이 아름답고 정교하게 부조로 조각되어 있어서 참배하는 사람들의 불심을 돈독하게 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각 모서리의 기둥을 8개의 보탑으로 장식하였는데, 각 탑에는 8대보탑의 명칭과 협시보살의 명호를 새겨놓았다.〈사진3〉 8대보탑에 관해서는 여러 경전에 설해져 있다. 당나라 시대인 790년에 한역된 〈대승본생심지관경〉에 의하면,
▲ <사진3> 대명탑에는 8대보탑의 명칭과 협시보살의 명호가 새겨져 있다. |
부처님께서 사자분신삼매에 들어 신통으로 가슴과 모든 털구멍에서 큰 빛을 발하였는데, 그 빛 중에 8개의 보탑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러한 8탑은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교화하던 본보기로 사람과 하늘의 유정(有情)이 귀의할 곳이니, 공양하고 공경하면 성불하여 부처를 이루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대정신수대장경〉 3권 294쪽 상단)
이때 나타난 8대 보탑의 장소와 건탑 인연 그리고 탑의 명칭을 표시하면 위의 〈표〉와 같다.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대승본생심지관경〉에 나타난 8탑은 팔대성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널리 알려진 팔대성지와는 지목인연(地目因緣)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사진4> 요녕성 조양시에 있는 속칭 조양북탑. |
일반적으로 팔대성지란 신수대장경을 기준으로 ‘논집부’에 속하는〈불설팔대영탑명호경〉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에서 첫 번째의 장소는 가비라성의 ‘룸비니’로 부처님의 탄생지이다.
두 번째 장소는 마가다국의 니련하 기슭에 있는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로 불도를 깨우친 곳이며, 세 번째는 가시국의 ‘바라나성’으로 처음 불교의 가르침을 편 곳이다. 네 번째는 사위국의 ‘기원정사’로 대신통력을 보인 곳이며, 다섯 번째는 ‘곡녀성’으로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온 곳이다. 여섯 번째는 ‘왕사성’으로 여러 제자들을 받아들여 교화한 곳이며, 일곱 번째는 광엄성의 영탑(靈塔)으로 부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수명에 대해서 사유한 곳이다. 여덟 번째는 구시성의 ‘사라숲’으로 열반에 든 장소이다.
▲ <사진5> 조양북탑 탑신에 부조된 생처탑 |
이처럼 〈대승본생심지관경〉과 〈불설팔대영탑명호경〉을 비교해 볼 때, 명칭탑, 반야탑, 유마탑의 세 탑에 있어서 지목인연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5세기 초에 한역된〈불설팔대영탑명호경〉보다는 약 400년 후인 9세기 초에 한역된〈대승본생심지관경〉의 내용이 보다 더 구체적인데, 특히 반야탑의 건탑 인연에서 대승사상을 나열한 것이나, 유마장자를 거론한 것 등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나라 시대에 조성된 대명탑에 조각된 8대보탑은 〈대승본생심지관경〉에 나오는 탑의 명칭을 충실히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 당시의 불교신앙 내용과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보살에게 〈대승본생심지관경〉을 어느 곳에서나 읽든지 외우든지 풀어서 말하든지 쓰든지 간에 이 경이 머무르는 곳이 곧 불탑이다.(〈대정신수대장경〉 3권, 331쪽 상단)
라고 하여 경전숭배신앙을 불탑예경신앙과 동일시함으로써 불사리 대신 여러 경전을 탑 속에 안치하는 법사리 숭배 불탑신앙의 경설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 <사진6> 요녕성 요양시에 있는 요양백탑 |
즉 ‘경이 있는 곳이 불사리가 있는 곳이다.’ 라는 의미는 불사리와 법사리는 동일시해도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수량이 한정된 불사리를 대용할 당연한 교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요녕성 조양시에 있는 속칭 조양북탑〈사진4〉은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수나라 때 처음 조성되었으나 요대에 와서 대대적인 보수로 형태가 완전히 변하여 전형적인 요대의 밀첨식 불탑 양식을 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불탑은 대명탑과는 달리 각 모서리가 아닌 면 중앙에 여래상 및 협시보살상을 조각하고 그 옆에 8대보탑을 조각하고 각 탑의 명칭을 새겨놓았다.〈사진5〉 이 조양북탑의 도상적 의미에 대하여는 최근에 예일대의 김연미 교수에 의하여 발표되어 (현대불교신문 1006호(2014.8.8자)참조) 세간의 주목을 받은바 있다.
요녕성 요양시에 있는 요양백탑〈사진6〉은 서기 1161년 ~1189년 금나라 시절에 건립된 8각 13층탑으로 높이 71미터로 800여년 역사를 가진 밀첨식탑이다. 이 탑의 주재료는 벽돌인 전탑이다. 그러나 겉표면이 전부 흰색의 백회로 칠해져있어 백탑이라고 부른다. 탑의 기단은 8각의 석재로 되어 있으며, 1층 탑신에는 여래상과 협시보살이 있다.
▲ <사진7> 요양백탑에는 우리나라 선덕대왕 신종의 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다. |
특히 여래상 위에는 우리나라의 선덕대왕 신종에 나타나는 비천상〈사진7〉이 생동감 있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각식(亭閣式)탑은 지금까지 살펴 본 누각식이나 밀첨식과 비교하여 규모나 구조면에 다소 간단한 양식의 불탑이다.
이것은 도교사상에 영향을 받은 중국의 전통 정각위에 인도의 불탑이 탑찰형식으로 올라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조성된 불탑을 말한다. 다음 호에는 정각식불탑의 다양한 시대적 변천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