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하려면
뇌를 생각의 뇌(신피질), 감정의 뇌(번연계), 행동의 뇌(소뇌), 죄뇌, 우뇌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성질을 밝히는 것과 같은 연구는 얼마나 믿을 수 있습니까?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보이는 것으로 미시세계나 거시세계를 연구하여 발표하는 것은요?
다른 동물들은 결코 그렇게 못하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과학 활동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활동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원래 믿을 수 있느냐 즉 진위를 따질 수 있는 성격은 아니지요. 학문과 문학, 기술과 예술은 성격이 다른 면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생물들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없으며 그러므로 자체로는 영원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진화하여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혹 모르죠. 인간이 개발시켜 노래 부르는 강아지가 생기게 될지는요. 가능성이 있다면 인간이 개입해서이죠.
인간 중심원리에 따라 다른 생물들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무생물 물질들도요. 이렇다는 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논리는 물리에 앞서고 과학적인 주장보다 논리적인 주장의 신빙성이 앞선다는 것도 원칙인데 이러한 원칙은 또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과학은 논리와 관측이 확보될 때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오성(지성)과 감성에 의해 지지를 받을 때 객관적인 신뢰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한 주장은 믿을 수 있습니까?
과학적 주장보다 더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선험적인 직관에 의해 심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주장은 자기 파괴, 자가당착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믿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선험적으로 입력된 직관이라는 것이죠. 결국 진리가 지닌 특성인 동어 수렴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모든 거짓은 자가당착에 처하게 됩니다. 모든 본질상 부당한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생각이나 태도 자체가 그러하죠. 법칙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법칙처럼, 진리라는 것을 없다는 것을 진리처럼 주장하는 자가당착에 직면하여 자기 파괴를 하기 때문입니다. 긍정법칙에 의한 것이죠.
이러한 것들은 주어진 신성한 것이죠. 과학이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우주에서 가장 큰 해괴한 모순된 현상이죠. 인간 이외의 지성이나 지성적인 존재를 철저히 배제해야 진정한 과학이라는 참으로 해괴망측한 모순된 주장이 바로 세상의 과학이라는 것의 저변에 억지로 깔아놓은 것이죠. 유물론, 무신론이라는 철학위에 서있는 것이죠.
해로운 것을 창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과학으로는 우주를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비행접시를 만든다든지 토끼가 달에서 방아를 찧는 상황을 문자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을 구부리지 않고 뭔가 정교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처럼 무모한 것입니다. 진화되었다는 고집은 손가락을 구부리지 않고 뭘 해보겠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고집과 같아서 때리고 찌르는 파괴적인 일이나 잘하게 되는 것이죠.
인간이 과학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과학을 할 수 있는 관련 모든 기능들이 부여받은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인식에 따라 그러한 기능이 주어진 목적과 방향과 일치하게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건설적인 것만 창출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초고도로 발전한 고대 문명들이 세워졌다 멸망되었다 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왔다는 지구 리셋설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파괴나 중단의 여지가 전혀 없는 문명이 영원히 발전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수천 년 동안 지구를 문명의 낙원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죠. 지금도 지구 곳곳에 과학에 의한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법칙에 대해 무지하거나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인간들이 과학을 한답시고 실패할 운명인 노력을 헛되이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의식이 없기 때문이죠.
곧 문명의 낙원을 우주로 확장시키려는 목적으로 주어진 인간의 과학 하는 기능을 온전히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시대가 시작되며 이는 영원히 그 목적을 이루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