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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000628_일반법회_응기편20장_김제원교무님설법.hwp
● 원기100년 6월28일 일요일 일반법회
● 주제 : 정산종사법어 응기편 20장
● 김제원교무님 설법
● 타이핑 : 일반7단 이제, 일반 이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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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법어 제8 응기편 20장>
이 제성(李濟性)이 묻기를 [무슨 방법으로 하여야 큰 공부를 하오리까.] 답하시기를 [스승과 사이가 없어야 하나니라.] 또 묻기를 [사이가 없기로 하면 어떻게 하오리까.] 답하시기를 [신(信)만 돈독하면 자연 사이가 없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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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한주간 잘 보내셨지요?
오늘은 유아실에 꼬맹이들이 와있는 것을 보니 메르스가 힘을 좀 잃었는가 봅니다. 메리야스 이제 다 벗어도 되나 보죠?
원산 이제성님 만나뵈신 분 손들어 보세요.
원산님 잘생기셨잖아요. 전주고 출신이시고 그때 다닐 때 연화촌이라고해서 (모임이 있는데) 지금도 연화촌 모임이 있습니다. 연화촌 출신들이 현재 우리 교단 요소요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 유림복지관 관장이셨던 분도 연화촌 출신입니다. 연화촌 출신 교무남도 많고, 연화촌 출신중에 대봉도도 나오고 출가위도 나왔습니다. 너무너무나 소중한 어른들이시죠.
우리 원산님 화곡교당에서도 근무하셨고 전주 교구장도 하셨고, 미국에 가셔서도 어려운 교화를 해주신 어른이십니다.
좀전에 혜선님 강연에 나왔죠~ 응산 이완철 선진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여러 가지 든 생각 중에 질문이 나온 것이죠. 큰 공부를 하고 싶은데 큰 공부를 쉽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을 한거죠~
그러니까 정산종사님께서 아주 심플하게 답하시죠. <스승하고 사이가 없으면 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사이가 없습니까? 그러니 <신심만 돈독하면 된다~> (하시죠)
사실은 큰 공부만이 아니라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죠. 부부간에 제일 잘사는 방법이 믿음입니다. 믿지 못하면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이게 되죠. 사제 간의 관계도 또는 직장에서 직원과의 관계도 믿음의 관계가 참 중요하죠.
원산님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좋겠지만, 사실은 제가 원산님을 많이는 몰라요. 원산님 법문을 서너번 정도 받든거 같고, 동기교무가 원산님 모시고 근무했었죠. 원산님께서 생각보다 일찍 돌아가셨어요.
당시 전주고 출신의 인텔리셨고 법문도 아주 잘하셨고 고경도 아주 잘하셨습니다.
원산님은 정산종사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신심이나 원력이 아주 지극하셨고, 이분이 쓰신 <일원상서원문 해제>를 보면 아주 쉽게 잘해놓으셨어요.
오늘 신(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원산님이 미국에 가셔서 고생을 하신 것도 스승님의 명을 받들어 신심으로 하신거죠!
제가 지난주 월요일에 총부에 다녀왔습니다. 과산 김현교무님이 열반을 하셨어요. 생각보다 일찍 돌아가셨죠. 몸이 안 좋아서 치료를 많이 하셨습니다. 젊을 때 워낙 고생을 많이 하셔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일찍이라고 해도 72세 입니다만은..
그리고 아산 김인용 종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아산님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은 신에 대해서 같이 공부를 해볼까 합니다.
아산님 혹시 아세요? 아산님 아시는 분? 예전에 원광대 총장을 지내신 능산 김정용님의 형님이시죠. 정읍 화해리에서 대종사님과 종산종사님이 처음 만나신 집이 있지요? 혜운할머니 집이라고. 거기가 지금 화해리 교당이 되었는데, 그 집이 아산님 집입니다. 하하하하.
우리 아산님께 배울점이 참 많은데, 오늘 제가 그 스토리를 좀 말씀드리려고 해요.
5~6년 전에 익산에서 7일간의 출가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아산님을 모셔서 말씀을 받들었습니다. 그때 참석해서 들으신 분들은 복이 있으신거죠.
우리 아산님은 키가 크지요. 인물도 아주 후덕하게 생기셨습니다. 저분의 신심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려고 해요.
아산님이 18살이 되어 출가를 하십니다. 혜운할머니의 손자이셨죠. 두 손자가 동시에 출가를 하게 됩니다. 한번은 원기 25년에 동선을 나는데 과자를 먹었나봐요. 과자 봉다리가 있었나봐요. 근데 아산님이 과자 봉다리를 줍고 있어요~ 그걸 보고 대종사님이 “너 그거 왜 줍느냐?” 하니 아신님이 뭐라고 하시나면 “나중에 쓸려고요~” 라고 답을 합니다. 그냥 쓰레기니까 줍는다는게 아니고 나중에 쓸려고 줍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대종사님께서 뭐라고 하시냐면 “인용이는 나중에 교단의 살림시켜야겠다~” 그러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원광대는 능산님께서 총장을 하셨지만 앞 이보다 몇 배의 공덕은 아산님에게 있습니다.
근데 아산님에 대한 오해에 대해 제가 풀어드릴까 합니다. 아산님은 출가위이십니다. 원광대의 거의 모든 건축공사는 아산님이 들어서서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건축문화는요 반이상이 조폭문화입니다. 조폭을 끼고 있구요 또 일명 와이루라고 하죠~ 그것이 없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산님이 뒤로 돈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아산님이 퇴임 후 대중석상에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사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그 자리에서 40여년을 살았겠느냐?” 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를 들어 드릴께요. 원광대학에서 병원을 짓는데, 타 대학에서 500병상 병원을 지으면 약 500억 정도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평당 100만원정도 잡구요. 이분이 원광대학병원 500병상을 얼마에 지었냐~~하면 37억에 지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기적입니다. 어떻게 지었냐? 건축 견적을 받잖아요~ 그러면 전체에서 깍아서 얼마에 하겠다 해요. 그리고 부서별로 따져서 깍아요~얼마나 꼼꼼하신지
그런데 희안한 일이, 돈에 욕심많은 사람들은 이분을 너무 인색하다고 이야기하고, 대체적으로는 업자들 이 ‘특이하신 분이다. 어떻게 저런 분이 있을까.’라고 평했답니다. 왜냐하면 그 업자들을 부처님 대하듯이 하신 거예요. 엄청나게 불공을 하더래요. 그리고 본인이 뒷돈을 일체 안 받습니다. 할말이 없죠~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분이 들어 지은 원광대 건물들이 10배 20배를 받아 지은 건물보다 더 단단하고 누수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 거의 기적적인 일일 겁니다.
이분이 하나하나 자재, 기술직관리, 관급자재, 불량품관리 그 실무진에게 일일이 다 직접 불공을 하세요. 그리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그리고 당신은 국수는 2천원짜리, 밥은 5천원짜리 이상은 안 드셨습니다. 원광대학이 우리나라 대학 중에 조경이 아마 몇 위 안에 듭니다. 2~3번째 안에 듭니다. 그만큼 아름답습니다. 결국은 누구 아이디어냐~ 이분 아이디어입니다.
제가 한복을 하나 맞췄는데 최근에 맞춘 한복이 가장 맘에 듭니다. 왜그러냐하면 옛날에는 돈이 많지 않으니까 싼값으로 하기도 했지만 내가 한복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어요. 기술자들은 대게가 원하는대로 맞춰주거든요~그러다보니까 내가 잘 모를 때는 모르는 만큼 나오고, 아니까 안만큼 나오더라구요.
여러분 지하문화원가셔서 조명 한번 보세요. 그렇게 촘촘한 조명이 없습니다. 그 전기기술자가 이십몇년을 전기를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은 처음 봤데요. 제가 다 그려서 줬어요. 이런 간격으로 스위치는 이렇게 달아라~~ 했더니 못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할 수 있으시면서 왜 그러세요~ 연마해보세요~~” 했습니다. 지하는 어두우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전기도 아껴야 합니다. 밝게 쓸때는 밝게 쓰고 조금만 써야 할때는 조금만 써야한다 그러니까 스위치를 최대한 많이 달게 했습니다. tm위치 이렇게 많이 다는 사람 처음 봤데요~ 그래서 “걱정마세요~ 해주세요~ 할 수 있어요~~ 아저씨니까 할 수 있어~~”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간사들에게 저 사람 교무 맞냐고 하더랍니다. 제가 처음에는 업자들에게 좋게 안해줍니다. 끝나고 나면 저를 다 좋아합니다. 처음에 좋게 해주면 업자들이 저를 이용합니다. 아 함부로 해도 되는구나~ 대강해도 되는구나~~ 그런데 처음에 깐깐하게 하니까 뭐 교무 맞냐고 하지만 결국에는 은혜가 됩니다.
이분이 조경을 한 걸 보면 상담한 감각이 있으십니다. 자기 수준만큼 나오는 겁니다.
자 예를 하나 더 들께요.
이분이 의대를 신설하거나 증원하려하면 허락을 얻기 위해서 교육부장관을 찾아갑니다. 그때는 교육부가 아니라 보건부쪽이 관장을 했었나봐요~초반에, 이분이 어떻게 하냐면, 그 장관이 소록도에 갔다더라고 하니 소록도로 찾아갑니다. 장관을 보자마자 엎어져서 큰절을 하십니다. 장관이 놀래버리죠. 의대를 신설하기 위해서는 병원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등등 여러 가지 조건이 있는데 나중에는 이 장관이 병원 하나를 그냥 준적도 있습니다. 아산님께서 종합청사에 계속 찾아갑니다. 나중에는 교육부 사람들이 우리 직원이라고 농을 했다고 합니다. 경옥고 스틱 가져가서 2개씩 직원들 다 나눠주고, 장관이 출근할 때 새벽에 사가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출근하면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하고. 직원들이 나중에 어떻게 감동을 하냐하면 ‘어떻게 자기집 일보다 더 정성으로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이분들이 허락을 안 해줄 수 가 없어요. 한의대가 그렇게 생겼고 의대가 증원이 돼서 인원수도 많이 받게 되었죠. 원광대가 특이하게 지방대학인데 모든 과가 다 있어요. 약대있죠~ 의대있죠 한의대있죠 치의대있죠~ 이번에 로스쿨도 있죠~~다 있어요. 옛날 그 조그마한 대학에서 말이죠. 멸치가 생선이냐~ 원광대가 대학이냐~고 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종합대학으로서 그렇게 갖춘 것이 결국 이분! 이분의 헌신 속에서 있어진 것이고, 이 원광대학을 통해서 원불교가 이 세상에 더 위력적으로 알려졌지요. 또 학계에서 있어지는 수많은 것들이 있고 그 공덕이 엄청나거든요. 사실은 여러분이 해외에다 교당을 세운다고 해보세요~ 교당보다 무엇부터 세우는 것이 낫겠어요? 교육기관을 세우는 것이 낫습니다. 교당부터 세우면 성공하기 어려워요. 교육기관 또는 의료기관 복지기관 문화기관을 세우면서 훈련기관이나 교당신앙기관을 세우는 것이 순서가 맞습니다. 이분은 이런 교육기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던 거죠. 이분이 이렇게 했던 것은 뭐냐~ 한마디로 하면 서원과 신심이죠. 대종사님이 말하면 다~ 받아들이신 거예요. 그 힘으로 하신 거예요.
이분이 또한 한번은 어떤 것이 있었냐면, 정산종사께서 화해리에서 법문을 하신적이 있었는데 무슨 법문을 하셨냐하면, 인지위덕(忍之爲德) - 참는 것이야 말로 바로 덕이 된다(는 뜻입니다). 덕이라는 것이 도를 행할 때 나오는 것이고 또는 은혜를 주는 것이 덕입니다. 그런데 일을 해보면 진짜 덕 중에 큰 덕이 참는거예요 참는거. 어제도 우리 심월화님이 그러데요~ 주중에 집에서 머리 아프고 머리 뜨거울 일이 많았는데 그냥 교당에서 법회를 보고나면 해소가 되고 또 가서 머리 아프고 뜨겁다가 교당 오면 식고.. 결국은 참았더니 이렇게 이런 일(법호수여?)이 생기더라 그거예요.
덕이라는 것은 참는 거다. 근데 한번 참는 것도 덕이 되지만, 지속적으로 참으라는 거예요. 뭘 위해서? 공을 위해서. 자기 감정을 순간적으로 참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까 이분이 건설을 할 때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이분을 인색하다, 찔려도 피한방울 안날 사람이다, 등 별소리를 다 들으셨어요. 교육부에서 개취급도 하고 그랬을꺼에요. 그런데 공심하나 신심하나로, 오직 공을 이루겠다는 그 한마음으로, 참고 또 참고 참고 하심하고 계속 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500억 견적 건물을 37억에 짓고도 더 단단하게 나오고, 나오지도 않을 허락이 나와서 의대 그 증원수를 다 얻어내고 병원도 희사받고, 이런 것이 뭐냐 한마디로 말하면 서원이요 신심입니다. 그 힘으로 해서 결국 (덕이 되고 성공이 됩니다) 덕이란 성공입니다 성공, 복덕을 말하는 거죠. 성공은 무엇으로써 되냐~~인내. 때로는 인내라는 것이 성공이 되고 덕이 됩니다. 이분은 그 건축하나 할때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어요~ 일 하다보면 박수받고 칭찬받고 인정해주고 누가 알아주면 해요. 그러나 하다보면 공이라고 하는 것은 전(全), 전체예요. 즉 큰일이예요 큰일. 전체 일을 하는 것이 거든요. 그런 일을 하다보면 별사람이 다 있고 별일이 다 있고 별 특성들이 다 있는 거거든요. 그러면 별 의견이 다 있고 별 관점이 다 있고 별 특성이 다 있다 보니까 복잡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죠. 근데 그래도 그걸 꿋꿋히 참고 해 나간다는 것, 그게 신심 없으면 어려운거예요.
이 세상에 저렇게 진실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 학교를 위해서 저렇게 일하니 우리가 안 도와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게 교육부 직원들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공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사익을 취하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어요. 교육부 공무원이 아산님이 아침에 분명히 서울 교육부 건물에 있는 걸 봤어요. 근데 오후에 학교(원광대, 익산)에 전화할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여보세요~” 하는데 그 양반이여~ 아산님. 분명히 오전에 서울에 있었는데 오후에 교육부 직원이 전화했는데 아산님이 전화를 받는거여. 제가 가만히 보면 그런 분이 드물더라구요. 서울에 출장왔다 그러면 어쩌죠? 출장비가 대게 정해지긴 했지만, 비싼방 또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오랜만에 친구 불러서 저녁에 술 한잔 하고 그 핑계대고 집에 갈 수도 있고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누가 그런거 못해서 안합니까? 근데 이양반은 오후에 딱 가서 앉아있어~~ 그런 것이 종합이 돼서 학교 허락이 안 나올 수 없죠.
요새 똑똑한 지도자도 중요하죠. 그러나 진실한 지도자, 믿을만한 지도자, 그리고 공심있는 지도자가 얼마나 되냐는 거죠. 말로는 ‘아’하고 하는 것은 ‘어’ 하잖아요. 얼마나 많아! 근데 신이라는 것은 그게 아니죠. 신이라는 것은 ‘아’했으면 ‘아’ 하는 것이예요. 그게 신이고 신용이고 신뢰고 그렇지 않습니까~
좀 너무 하신일도 많아요. 신정절에 그런답니다. 우리는 구정 세니까 신정절에는 일하자~ 그러고 구정되니까 신정 세지 않았냐고 그러고.. 365일 24시간 일을 시키세요. 근데요 당시에는 이런 분들이 욕을 먹어요. 근데 나중에 생각하면 결국 이런분들이 공덕을 이루어요. 저는 원광대학교를 보면서 정말 부처와 중생이 이렇게 다를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분은 학교를 이렇게 만들어서 어떻게 하면 제생의세 성불제중할까 하는 그 생각이고, 요새 원광대학교 가만 보면 밥상 다 차려지니까 거기 교수들 되겠다고 지그들끼리 쌈하고 그 속에서 총장이 되보겠다고 쌈하고 그 속에서 뒷돈 빼먹고 거기서 업체들 돈 빼먹고 하는거 보면, 이렇게 천지차이가 날까... 불보살은 학교 세우느라고 그렇게 정신없이 해놓았는데, 이 중생들은 지 밥그릇 지 배 채울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하는걸 보면 내가 ‘아.. 이렇게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해봐요.
이분이 교전봉독을 한 400번 정도 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이분이 동생하고 같이 세운 건물이 하나 있는데, 우리 정토회원들이 진짜 열심히 일했거든요. 정토회원들이 하숙도 치고 별 걸 다해요. 옛날 예산님 정토도 마찬가지고. 하숙하고 독서실운영해서 돈 벌었는데, 사람들은 원광대 근무해서 돈 번지 알아. 겁나게 착각들을 많이 하는데.. 사당동에 가면 건물이 하나 있어요. 임*건물인데, 그것을 희사하셨어요. 어떻게 희사를 하게 되냐면, 아산님 자녀가 6명인가 되는데 출가를 못시켰어요. 그래서 당신 마음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여, 내가 자식들을 출가를 못시켰다는 생각에.. 그래서 후진들을 보면 항상 챙겨주셨고 나중에 아예 확실하게 챙기자 해서 두 분이 돈을 희사해서 땅을 사서 건물을 올렸어요. 거기서 연수입이 아마 꽤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걸로 원친회원들- 교무님 자녀들 장학금을 하는데, 지금 중고생들 한테는 한 사람 앞에 30만원 정도 나가던가..(그래요) 옛날에는 그런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원친회도 당신이 자녀를 출가를 못시켰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했어요.
우리 정타원님도 고혜경 예비교무를 후원하고 있어요. 언제 갑자기 오셔서 “교무님 잠깐만 뵙자”고 해서 들어오시라 했더니, 내가 자식이 없지 않습니까? 내생에 인연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혜경교우 후원하고 싶다고 그래요. 제가 참 그날을 잊지를 못해요. 그 광경과 눈빛 표정을.. 인과를 배워서 아는 사람, 신심이 있는 사람은 알아서 스스로 하는 거예요. 하라고 사정을 해도 띵겨버리는 사람,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하는 사람, 본인이 찾아서 하는 사람, 인과를 확실히 하는 사람은 찾아서 합니다~ 찾아서해요.
자! 아산님 칭찬만 해줘서 했을까요? 아까 우리 이제성 선진님, 칭찬해줘서 했을까요?? 신심으로 하는거여~ 그런 힘이 있었다 그런 것이죠.
우리는 참 이런 선진들을 인연이 돼서 그런 사례를 보고 듣고 접하고 또 은혜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행복하다 생각해 봅니다.
신이란 뭡니까? 신이 뭣이여? 전라도 말로 해보까? 신이 뭣이여?
자 신(信). 신은 뭐예요?
신은 믿음을 이름이니, 그렇게 나와 있죠. 그러면서 뭐라고 하셨죠? 정전에 다 나와 있는데~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다. 만사를 이루려할 때~라고 하셨어요. 만사를 이루려 할 때는 먼저 마음을 정해야한다는 말이예요.
신(信)은= 정(定이)다. 정이라는 것은 뭐냐면 정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법회를 갈거나~ 말꺼냐~ 안 정하면 머리가 아프죠. 갑자기 핑계를 대고 싶고 갑자기 날씨가 안 좋고 다리가 저리고,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간다고 정해 놓으면, 다른 조건들이 다 뒤로 물러나거든요. 딱 정해버리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즉 정하지 못하면, 즉 불신이 되면 요란해집니다. 맞아요? 여러분 다 해보셨지요? 얼마나 요란해지는지 몰라요.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고요해지죠. 고요해지니까 안에서 깊은 생각이 일어나요. 심사(深思)라고 해요. 그러면서 맑아지거든. 맑아지니까 다 통해져요. 그러니까 도통도 하고 영통도 하고 법통도 하고 그러는거죠.
이 신이 출발이예요 출발. 참 중요해요 신이. 그러면 무엇을 신(信)하자는 거냐. 무엇을 믿자는 거여? 네?
신의 첫째는 뭐예요. 뭘 믿자는 거예요? 이 신에는 자와 타가 있어요. 보통 기독교에서는 타에 대한 신이죠. 불교는 자타력 병진이죠. 즉 스스로 내 불성을 믿자는 것이 첫째죠. 즉 난 본래 원만구족 지공무사한 일원상이라는 거예요. 나는 본래 일원상이라는 걸 믿자는 것 이예요. 난 중생인데 수행을 통해서 부처의 자리로 가보자는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라는 거예요. 따라서 해요. 본래~! 본래 부처.
내가 본래 부처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 하늘에 구름 끼고 태풍이 불고 바람이 몰아치듯이, 내가 욕심의 때로 무명이 되어 가려요. <욕심>이 올라서니까 <무명>이 거기에 딱 붙고 <습관>하고 3놈이 힘이 딱 합해져요. 그래서 중생짓 하는 거예요. 그것을 탐진치라고도 이야기 해요. 욕심이 가리니까 무명이 되고 그것이 반복을 해서 습관과 업력이 되요. 그래서 내가 나를 어찌할지 모르고 ‘내가 이렇다’고 하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고 해요. 나는 그런 업력의 습관을 가진 사람입니까? 본래 나는 업력에 의해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내 본래는 원만구족 지공무사한 부처님이다 그 말입니다. 이것을 첫째로 믿자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부대효과가 있느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부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양반입니다.
그런데 이게 실패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요, 실패를 한 것이 마치 10가지 중에 하나로 보지 않고, 그 실패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특히 부정적인 사람. 하다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데 실패한 그것이 되게~ (크게 봐요), 그것을 부분 오류라고 해요. 부분을 되게 크게 보는 거야. 그래서 예를 들어서, 어떤 일을 하다 안 되면, 내가 무슨 개떡같은 부처냐, 나는 부처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여~~부처가 아니여서 내가 못하고 발전이 안 되고 변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제대로 내가 못하니까 그런 것이예요. 그래서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는 곳이 있다~ 내가 부처임을 알려주는 타력이 있는데, 그 첫째가 뭐야~~ 진리다. 두 번째가 법이다. 세 번째가 스승이다. 네 번째가 회상이다. 이것이 타력신이예요. 그런데 이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뭐냐, 이중에도 순서로 선(우선)이 있어요. 진리가 있고 법을 내놓은 양반이 있어요. 그 진리를 깨치고 법을 내놓은 양반이 누구예요? 스승이지~ 그래서 그 스승을 따라서 그 진리와 법을 공부하는 팀들이 회상이예요.
그러면 순서가 어떻게 되냐? 진리가 있고, 그 스승이 진리를 깨쳐 법을 내놓았죠. 그 법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회상이여. 스승이라는 것은 맞춤복과 같다고 했죠. 기성복이 아니다 이말입니다. 출가자들은 그래도 스승에 대한 신이 강하거든요, 근데 제가들은 보면 스승보다는 법 또는 진리.
출가자들은 스승과 회상에 대한 게 강한데 제가들은 이 부분이 좀 약한듯한 느낌이 있어요. 뭐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힘을 좀 못타더라 하는 생각이 들어요. 힘을 못타는 것이~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스승입니다. 스승에 대한 신이 있어야 그 다음에 진리에 대해서 가늠을 잡게 되고 또 그 스승의 법을 통해서 진리로 가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 믿음 중에는 또 뭐가 있냐면 바른 믿음(正信)과 미신적 믿음(迷信)이 있어요. 바른 믿음은 밝은데서 밝은 데로 가는 것이고, 미신은 어두운데서 어두운 데로 간다고 해요. 더 들어가서 미신과 맹신이 왜 나오냐 하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법을 못 만난 이유도 있고 인연의 이유도 있지만, 모르기 때문인 부분이 제일 커요. 그러니까 원불교는 방식이 이거예요.
어줍잖은 똑똑이 들의 멍청한 예를 하나 들어 드릴께요. (칠판지우개를 드시고) 이게 뭐예요? 지우개죠~~ 제가 이걸 단상 아래로 감췄어요. 근데 어떤 사람이 들어왔어요. 내 오른손에 지금 뭐가 있게? 지우개 있죠. 다 봤어요. 여러분은 대단한 사람들이네. 막 들어온 사람은 모르는데 여러분들은 알고 있어요. 근데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내 오른손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어요. 그러면 어떤 게 정답일까요? 지우개 있다는게 정답이죠? 제일 첫째 답은 지우개가 있다는게 정답이예요. 근데 그것은 투시안경을 쓰고 보면 가능할거예요. 그러나 육안으로는 몰라. 그러니까 지우개라고 대답은 못할꺼예요. 그러면 두 번째 답은 뭐예요? 뭐가 답이예요? 모른다? 그쵸~~ 모른다가 답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답해요? 없다고 하죠. 자기 눈에 안보이면 없데요. 자기가 모르면 없다고 하고, 자기가 자기 눈에 안 보이면 없다고 해요. 그러면 제가 (지우개를 들어보이며) 없냐?고 반문하고 싶어요.
더 쉽게 예를 들어 볼께요. 뉴욕 가보신분. 손들어보세요~ 한 5~6명되네요. 저도 가봤습니다.
뉴욕을 안 가본 사람에게 뉴욕이 있냐고 물어요. 그럼 어떻해요? 그것은 믿겠지요~ TV에도 한번씩 나오고요~ 안 가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뉴욕을 갔다 온 사람들 뭐했다고 말을 해요. 그러면 믿는다 이 말입니다. 근데 유형적인 것은 믿어요. 그런데 중요한 인과의 진리 이런 것은 참말을 해도 믿기가 곤란해요. 그리고 안 믿고 싶어요~ 부담스럽단 말이예요.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요. 야~ 니가 모른면 무작정 부정하지 말고 어른들이, 또는 믿을만 한 사람이 있다 그러면 있다 생각하고 나중에 진짜 있나? 하고 의심을 걸어봐라~~ 하고 이야기 해요. 그게 뭐냐하면 딱 대종사님 방법이예요.
신->분->의->성
불신 탐욕 나 우
젊은 사람들, 또는 겉똑똑이 들이 하는 미스가 이거예요. 자기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내가 알고 경험한 것만 믿어요. 그런데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그럴수도 있으려나~ 하고 의심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엑스자야. 다 엑스자를 놔버려요.
근데 철학이란 무엇이냐 하면, 뭔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하는 학문이 철학이예요.
종교와 철학의 차이가 무엇이냐, 철학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구하는 것이 철학이라 하면, 종교는 답을 줘버려요. 그 답을 모르고 믿기만 하면 미신이고 맹신이예요. 그런데 답을 믿기는 믿는데 몰라~ 그러니 의심으로 가라 이거예요. 신에 바탕한 의심이죠. 근데 보통 범부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불신에 바탕해서 자기가 경험한 만큼만 믿겠다는 거예요. 인생이 그렇게 기나? 곧 관에 들어가는데. 중생들은 상처를 스스로 장만해서 상처를 치유하다가 생을 마감해요. 업을 지어서 그 업을 갚다가 생을 마감하는 거예요.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도전적이고 창의적으로 할 것이 있고 받아들일 것이 있는데, 이것을 구분을 못해요. 그래서 신에 바탕한 의심을 통해서 모른면 자기것화 하라는 것이예요. 이것이 제대로 된 정신, 바른 믿음이라 이말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여러분은 어떤 분이라구요? 아이고~~~해도 안되는 사람이지요? 저 그 말 많이 들었거든요. 교무님~~ 해도 안되~~! 그런소리 하지마.
그래서 대종사님은 신은 그릇이다고 했습니다. 뭘 담아요? 무형의 법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형상없는 그릇이예요. 그래서 자기 그릇만큼 받아들이는 거예요. 사람이 그릇이 커야 합니다. 그릇이 작으면 자기가 조금 돈벌면 교만해지구요, 자기가 조금 잘나가면 딴짓 합니다. 그릇이 작으면 조금 잘해주다가 서운하게 하면 확 돌아서버려요. 사람이 그릇이 작으면 그래요.
신은 법을 담는 그릇이요~ 그리고 뭐라고 했어요? 의심을 해결하는 원동력이라고 했어요. 왜 그렇지? 하고 의심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처처불상에 의심이 걸렸어요. 저런 자식이 무슨 처처불상 부처님야? 하면서 제가 욕이 막 나오더라구요. 아주 못된 놈이 있었어요. 아주 그냥 사람을 괴롭히는데, 너 엿먹어라 하면서 괴롭혀요. 근데 대종사님이 부처님이라고 했잖아요. 의심에 걸려요 제가. 제가 불신에 바탕했다면 의심할 것 이 없어요. 니가 무슨 부처님이냐 하고 끝나버리죠. 근데 대종사님은 그 못된 녀석이 부처님이라는 거예요. 안 믿어져요~ 안 믿어지지만 믿었어요. 그러니까 뭐가 걸려요? 의심이 걸리잖아요. 그럼 도대체 부처는 뭐지?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하는 의심에 걸린다는 거예요. 그랬는데 가만히 공부해보니까 뭐가 있어요? 부처님은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로 이야기 하는데, 이 화신불 중에서 두 부처님이 있더라. 첫째는 뭐예요? 정화신불. 정화신불은 항마위 이상을 말하는 거예요. 또는 항마위가 아니여도 온전한 마음을 제대로 발휘하면 그때는 정화신불이예요. 여러분도 그럴 때 많지요. 검나게 착해질때가 있지요. 지금 다 부처님이고마~~. 우리 철원님도 웃고 있는데 보니까 부처님이여. 그러제~ 부처님이요. 그런데 성질 나봐~! 꼬라지 나봐~~ 그때는 아니죠? 그때는 뭐냐면 편화신불이예요. 그러니까 제가 왜 처처불상에 의심을 가졌냐. 내가 생각한 부처님은 원만구족 지공무사해서 저런 심법을 안 쓰는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단 말예요. 그런데 아주 못된 놈이예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그런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겠냐는 말이죠. 너죽고 나죽자 할 정도인데. 근데 그래도 부처님이라는 거예요 대종사님이.
그래도 신이 있다면, 연구를 하게 되고, 연구를 하다보니까 “아! 저 부처님은 지금 탐진치에 끌려서 행동하는 부처님이구나” 하는 것이죠. 부처님은 부처님이여. 근데 그 부처님이 나에게 위력을 줘요 안줘요? 안줘? 위력을 주잖아요. 성질나게 해봐요~~ 그래서 제가 양복 찢어진 일 말씀드렸잖아요. 아무리 미천한, 아무리 약한, 아무리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부처님이더라. 왜 엄청난 위력이 있다니깐. 길가다 어떤 사람 성질나게 해서, 교당 불질러봐~ 그러면 어떻게 할꺼에요. 화재보험에 들긴 했지만 그래도 타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 힘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부처님이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라는 거예요. 믿음이 있으면 의심에 걸리게 되어 있어요. 왜그러지? 근데 믿음이 없으면 의심 안 해버려요. 나는 처처불상을 교리적으로 믿어보니까, 그러면 왜 처처불상이냐 하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더라 하는 것이죠. 맞아요?
그리고 신심이 있으면 계문을 지키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계문은 무엇이냐 하면 주로 이 몸둥아리가 지 욕심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예요. 근데 대종사님은 그것을 계를 줘서, 야! 이렇게 해봐라 하고 주셨다는 거예요. 그러면 신앙인을 그것을 100%로 다 지키냐? 아니예요~ 저도 못 지킬 때 많아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확실히 줄어들죠. 근데 그 심이 큰 만큼 깊은 만큼 철저한 만큼! 달라지더라~ 예를 들어서 술 문제, 담배 문제, 남 과실 말하는 문제, 낮잠 자는 문제, 아만심으로 생기는 문제, 탐심으로 생기는 문제 등. 제가 지금 여러분이 걸리기 쉬운 것으로만 말하고 있어요. 그것이 신이 있으면 지키려고 한다는 거예요. 근데 신이 없으면 어떻게 되냐. 어쩔 수 없다~ 아~ 안돼!~ 자기 스스로 합리화 해버립니다.
제가 이 4가지(진리,법,스승,회상) 중에 스승에 대한 신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는데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제가 원산 이제용 선진님, 아산 김인용선진님 이 두 분의 예를 들었지만, 이 두 분의 핵심은 무엇이냐 하면 신심입니다. 신심으로 그렇게 아쉬운 소리하고 무시 받고 그렇게 아끼고 그렇게 고생하고 그렇게 하심했다는 말씀입니다, 신심으로~. 오직 우리 대종사님이 새부처님이다~고 확신하신 거예요, 이 분들은. 새부처님이 대종사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믿으셨어요. 그게 바로 신입니다. 스승에 대한 신, 대종사님에 대한 신이라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새부처님으로 오신 주세불이라는 신이 확신하셨어요. 여러분은 그런 자신이라든지 프라이드를 가지고 계세요?
우리 아버지가 저한테 말한 몇 가지 중에, 초반에 별로 듣기 싫었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인과 이야기를 하면 듣기 싫었어요. “에이~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이 세상 좋게 만들라고 하는 소리지~!” 제가 고등학교때나 대학교 1학년 때는 아버지에게 막 따지고 그랬어요. 나중에 또 듣기 싫은 소리가 뭐냐면, 주세불이라는 거예요~ 대종사님이. 하! 그거 듣기 싫었어요. 주세불이라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라는 말과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요, 여러분 그런 생각 안 드세요? 저는 그런 생각 많이 하는데. 내가 만약에 제7 안식일을 만났다면, 통일교를 만났다면, 내가 SGI라고 남녀호랑개교를 만났다면, 증산도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거든요. 저 죽어라 열심히 했을 것 같아요. 만났다면.. 그게 인연의 힘이예요. 여러분 무슨 복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 주세불과 대종사님과 인연이 된 것이 정말 복중에 큰 복이예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보시면 어때요? 나보다도 똑똑한 사람들이, 나보다도 훌륭한 사람들이, 나보다도 지혜있는 사람들이 믿는다...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아까 아래서 누가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조직의 행복론에 대해 공부하는데, 조직의 행복론을 공부했더니 옛날 지도자들이 맨날 양분된 생각이여. 사람 중심이냐 일 중심이냐, 본래 뛰어나냐 (아니냐~) 맨날 양분되는데 대종사님은 중도적 방법으로 조직의 원리를 내놓으셨다~ 어떻게 이렇게 하셨을까 하는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경영학과 교수들이 원불교 법을 접하면 되게 좋아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 경영학과 교수 중에 원불교 교도가 되게 많습니다. 원광대 한양대 서울대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들이 다 원불교 교도예요. 왜냐하면 이 법을 공부하면 경영학의 원리가 딱 있어요. 특히 사리연구보면 경영학의 핵심적 객관적 테이터가 그대로 사리연구입니다. 공부해보시면 알아요. 대종사님이 촌에서 일자무식같이 깨치셨지만 그 내놓으신 법을 나보다 더 훌륭하신 전공자들이나 그런 분들이 오히려 더 인정하는걸 보면, 아하! 뭔가 있는가보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주세불은 이 세상을 책임지고 나오셨다 그래요. 역대 종법사님들은 그 책임을 좌우에서 보좌해서 연결시켜주신 분이다 그러죠. 그래서 여러분은 어떠셨어요?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이 직접 찾으셨는데..
옛날에 보면 불경을 하나 구하기 위해서나 스승을 찾기 위해서 막 돌아다니잖아요. 여러분은 교무님이 몇 번 찾아가고 연원이 몇 번 찾아가도 튕기고 그러지 않았어요?? 사람마다 참 다양해요~ 어떤 사람은 스승을 찾아서 구만리를 헤매고, 어떤 사람은 밥을 사줘~ 뭘 해줘도 자기가 뭔가 가진 것 같이 툭툭~ 튕기고 하는거 보면 인연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원불교의 스승은 젤 위가 대종사님입니다. 그렇지만 항마 이상은 스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원불교에 있어서는 스승이 한 분이 아니라 역대 많은 스승을 모시라고 했습니다. 마치 무엇과 같느냐. 벌이 여러 꽃에서 꿀을 모으는 것과 같다. 꿀 중에 제일 좋은 꿀이 뭔지 아세요? 잡꿀이예요. 꿀 중에 최고가 잡꿀이예요. 꿀이 여러 꽃에서 얻었으니, 얼마나 다양한 성분이 있겠습니까. 그와 같다. 우리가 스승을 모실 때 여러 스승을 다함께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젤 위는 대종사님이고, 내가 소속된 곳의 스승을 대종사님 다음으로 아셔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멍청한 사람이 영어시간에 수학하고 수학시간에 영어하거든요. 내가 소속된 곳의 - 예를 들어서 우리 교무님이 최고요, 우리 교구장님이 최고요, 우리 종법사님이 최고요~ 이렇게 해야지, 우리 교무님은 아닌 것 같어~! 그러면서 멀리 농타원님이 최고네 승산님이 최고네~ 이렇게 하고 다니시는 분이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내 부모형제와 내 해당 교무님이에요. 아시겠어요? 그걸 생각해보세요. 근데 정 인연이 얽혀서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싫어서 떠나신 분도 계시구요, 제가 좋다고 세세생생 모시겠다는 사람들 있어요. 이것은 한편으로 인연소치도 있습니다. 삼세에 다 연관이 있어요.
다른 선진님도 계시고 구정선사 이야기도 있지만, 정산종사님께서 전주는 들르지 마라 하시니 전주 쪽은 쳐다보지도 안 했다고 하시고 불경을 보지 말라 하시니 경상도 외면했다고 하시는데, 여러분은 어떠실 것 같아요? 저 같으면 왜 보지 말라고 했지? 하면서 쳐다볼 것 같고, 왜 들리지 말라 했지? 하면서 그쪽 한번 쳐다볼 것 같은데~~ 저하고는 좀 다른거 같아요.
제가 교무하면서 느낀거 하나 말씀드리면, 그릇이 큰 사람은 신심이 장하더라하는 것입니다. 어중띠한 사람들은 신심을 잘 못내요. 순박한 사람들은 신심을 잘 내구요~ 그릇이 큰사람이 신심을 잘 내구요, 지혜있는 사람이 신심을 잘 내요. 제 경험이예요~ 청년들도 보면 신심을 누가 내냐? 알아서 신심내는사람이 있구요, 순수해서 신심내는 사람이 있어요. 순수하니까 받아들여요~ ‘교무님이 거짓말 하겠어?’ 하면서 받아들여요. 근데 교무님이 말해도 “에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도 일생을 재색명리 던져버리고 살겠다고 나온 교무님이 침튀겨가며 말해도 “에이~~”하며 안 들어요. 제가 보니까 순수하지 않은 사람은 신심나기가 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보면 언제 신심이 올라가냐? 자기가 수행을 하고 공부하고 안만큼 신심이 더 납니다. 초반에는 칭찬을 많이 듣고 이쁨 받으면 신심나요. 이것이 초창기 신심이예요. 예를 들어서 다 초입교도인데 제가 유타원님에게 정이 가~ 그래서 유타원님을 겁나게 이뻐해요~ 그러면 유타원님이 신심이 나요. 신심이 났으면 어떻게해요~? 다른사람에게 옮겨가야죠. 그런데 멍청한 사람은 자기만 예뻐해달라고 해요. 그럼 저는 에너지를 다른데 써야하는데 어떡해요? 그러잖아요. 그릇이 작은 사람은 ‘옛날같지 않네~~’ 그래요. 자식이 하나였다가 둘 셋 낳으면 엄마의 에너지가 둘째 셋째에게 가야되잖아요, 그럼 큰놈은 왜 옛날같지 않냐고 그러죠.
신심이 흔들릴 때가 어떨 때인가 말씀드리죠. 아까 사람관계가 언제 많이 틀어지냐면, 좋게 해줄 때는 좋은데, 일할 때. 같이 시비이해가 얽히다 보면(틀어지죠).
아랫사람이 왜 신심을 더 내야하냐면, 몰라서도 신심이 안나요. 아랫사람들이 상사를 많이 씹잖아요. 우리 사장은 왜 저런다냐~ 우리 원장은 왜 저런다냐~ 우리 과장은 왜 그런다냐~ 그래요. 씹는 것의 거의 반 이상은 뭔 줄 아세요? 자기가 몰라서예요. 경험이 없어서. 그 심정과 그 이치와 그 속사정을 몰라서 구업을 짓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사실. 많이 하셨죠? 그래서 약자들은 구업을 많이 짓게 되어있어요.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죄업 중에도 모르는 죄업이 가장 크거든요.
그런데 자 보십시오. 내가 정릉님에게 잘해주다가 정릉님이 뭔 의견을 냈는데 제가 그 의견을 안 들어줬어요. 그러면 어떨까요? 거기다가 혼내기까지 했어요. 그러면 어떨까요? 바로 꼴아버려요?
좋게 해주니까 신심나고 안 좋게 해주니까 흔들리는 것은 신심이 아니예요.
진짜 신심의 가치는 어디에 있냐면, 신심을 놓고 싶을 때 또는 불신의 마음이 들 때 내는 것이 신심이예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신심내고 싶을 때 내는 것은 신심 아니예요. 안날 때 내는게 신심이예요. 얼마나 어렵겠어요? 안 나는걸 내라는 거예요. 이게 신심이예요. 따라서 해보시겠어요? <<신심이 안 나는데 그때 내는 마음, 그것이 신심이다.>> 제 생각에 법호타고 항마위 올라가신 분들 중에 이놈의 원불교가 사람잡네~ 소리를 몇 번이나 했을까, 이걸 엎어버리고 싶었을 때가 몇 번 이였을까, 나가버리고 싶었을 때가 몇 번 이였을까, 원불교가 밥 먹여주냐, 내가 뭐가 아쉽냐, 이런 생각을.. 몇 번 하셨어요? 물어보고 싶어요. 저도 교무하다가 확~! 엎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번 있었어요. 진짜 성질 나대요. 확! 엎어버리고 싶대요~ 생각만 한번 해 봤어요, 한번. 왜 경계가 없겠냐~~ 경계 속에서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세우는 마음, 놓치 않는 그 마음, 그것이 신심입니다.
그럼 어떤 효과가 있냐? 신심으로 해서 손해본사람 손 들어봐요. 이것이 답이에요. 아주 간단해요~
그런데 그 순간의 감정, 그 순간의 억울함, 그 순간의 분별심, 그 순간의 불신감, 이것이 자기를 흔들어버려요. 한편으로는 어떤 의혹이 드는 스승이 있다면, 사실은 자기의 복을 한탄하라고 했어요. 첫째는 자기 복을 한탄해라. 그리고 그래도 의혹이 가면 어떻게 해요? 직접 가서 물어라. 그리고 스승의 자격이 없는 스승이라면 뒤로 돌아서세요. 괜찮아요. 근데 나 혼자 착각으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이건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별로 잘난 사람 아니예요. 그래도 제가 어떻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죠? 그래도 대종사님 법이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내 생을 여기에 다 바치겠다고 나온 사람이예요. 그리고 성질도 고약하고 그렇지만 왠만하면 대종사님 법대로 살겠다고 하고, 그것도 1년하고 만 사람도 아니에요. 저도 근 30년 했어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요. 교화현장에서, 즉 교당에서 20년이상 현장근무를 하신 분들에게는 무조건 고개를 숙인다구요. 얼마나 현장교화가 어렵운가에 대한 제 마음의 반증이죠. 교화를 그분이 현재 성공을 시키든 못시키든, 저는 현장에서 20년이상 근무하셨다면 (고개를 숙입니다). 왜? 보통사람이라면 진작 집어던져버렸죠~ 생병이 나버렸던가. 그래도 신심으로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대종사님 달라 정산종사님 달라 대산종사님 달라, 얼굴도 달라 목소리도 달라 태어난 곳도 달라, 취사의 방법도 조금씩 다 달라요~그렇죠? 정산종사님은 겁나게 부드럽지만 옆에 시자에게는 깐깐하게 합니다. 잘 모르셨죠? 대산종산님한테 사람들이 따뜻하다고 그러는데, 성격 급해요~ 말도 안 나와서 시자에게 와다다다 막 그러세요. 대종사님은 어때요? 혼낼 때는 호랑이같이 혼내시잖아요~ 뭐냐하면 특성이 다 달라, 그렇지만 뭘 봐야해요? 그 스승의 본의! 스승의 본의를 보면 그 특성이 달라도 신심이 변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본의를 봐야해요. 그 본의를 보는게 뭐냐하면, “수행의 표본” 따라서 해요. “수행의 표본”. 우리가 <일원상> 또는 <제불제성의 심인>, 그랬는데 <수행의 표본>이라고 해요. 만약에 대종사님의 모든 방법이 “표준”이였다면 우리는 대종사님처럼 똑같이 해야해요. 하지만 대종사님이 “수행의 표본”이였어요. 표본의 하나의 모델이요 본보기요 사례예요. 그래서 그 표본의 이면을 봐야하는데, 그게 뭐예요? 일원상의 마음이더라 하는 거죠. 일원상의 마음을 어떤 마음이예요? 서원의 마음이더라. 성불제중의 마음이더라. 제생의세의 마음이더라. 일원상 자체의 마음이더라. 그것을 볼 때 우리가 신심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질문하세요.
다 조사해봐야 하는데, 몇 번 나갈려다가 말았는지. 옛날 우리 운타원님도 안 나올려고 했다고 했는데.
지금 쉬고 계신 분들도 있지요. 혼자 오해해가지고.
상전급까지는 미안하지만 자기가 자기를 믿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자기생각에 자기가 속아요. 상전급까지는 자기 생각도 자기가 믿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신은 먼저 내 생각을 믿기 보다는 대종사님의 교법, 그 법을 먼저 믿어라. 그래서 사람만 믿지 말고 먼저 그 법을 믿어라~ 그 사람도 믿지만 그 법을 믿어라~ 이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